며칠 동안 틈틈이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 다 읽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제목만 보고 멋있어서 영문판을 집어들었는데, 몇 달 가지고만 다니고 앞부분만 읽고 다 못 읽었던 소설이었다. 

그 시절에는 자원 선물시장을 잘 몰랐다. 나중에 대학원 때 이걸 전공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파리에 자원 선물시장이 새로 생겼고, 그해 파리10대학 국제경제 전공한 대학원생들에게는 국제자원에 관한 논문을 쓰도록 되었다. 그리고 희망하면 약간의 교육과 함께 선물시장 거래 자격증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물론 나는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선물시장 거래 자격증 과정으로 가지는 않았는데.. 석사 졸업하자 마자 취업 제안서가 두 통이나 왔다. 가끔 그때 짧게라도 그 제안 중에 하나를 받아들고 취업을 했다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여간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자원시장은 잘 몰랐고, 선물시장은 더더군다나 몰랐다. 게다가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사건이라고 할 게 별로 없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만 있는 형식이라, 그 시절에는 내가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몇 년만에 소설을 이렇게 재밌게 읽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60페이지 정도의 짧은 소설인데, 첫 사건이 아버지와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잠시 아버지를 보고, 그 식사가 시작되는 데에 40페이지 정도가 걸린다. 

하따, 이 아저씨 말 많네.. 

몇 년 동안 한 번 간다고 하면서도 결국 못 간 데가 필라델피아였다. 주인공은 필라델피아 주립대학을 중퇴했다. 배우가 되기 위해서. 

아주 인상적인 문장들이 좀 있었다. 

“그의 인생 역정은 그런 오판이 열번이나 거듭된 결과였다.”

오판을 열 번쯤 거듭하면 인생이 이렇게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판을 몇 번 했을까? 

다 읽고 나서 해설도 읽었는데, 솔 벨로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있는 소설이란다. 식구들은 사업을 하기를 바랬지만, 작가가 되면서 늘 돈이 없었고, 나중에 안정적인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중압감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건지, 그저 좀 약하고 우유부단한 정도의 한 사나이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순간들에 대한 심정이 절절했다. 가슴을 후벼판다는 느낌이 이런 거 아니겠나 싶다. 

마지막은 어쨌든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흘러 퍼지는 음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마음의 평온을 느끼는 문장으로 끝난다. 아마 미리 써놓은 수표 때문에 파산 선거를 받기는 하겠지만, 재정적 파산이 곧 인생의 파산은 아니다. 그 뒤의 얘기는 알아서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정말로 간만에 소설을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다. 솔 벨로 소설을 조금 더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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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다 봤다. 

설 전 마지막 일요일이라서, 어머님 모시고 아버지 봉안당에 갔다왔다. 바로 밑의 동생도 한 번은 갔다와야 할 것 같아서, 카니발 빌렸다. 가끔 카니발 렌트하는 일이 생기는데, 매번 버튼이 조금씩 바뀌고, 기능이 추가된다. 가끔 운전하는 처지에서는 조금 피곤함이 느껴지는. 모닝 타다가 카니발 타니까, 차가 왜 이리 잘 나가는지. 모닝 운전하면 풀 악셀을 종종 밟고, 언덕에서도 엑셀 꾹꾹 밟는 습관이 생긴다. 차가 작으면 덜 힘들 것 같지만, 다리는 더 힘들다. 그 습관으로 카니발 운전했더니, 된장, 차가 날라다닌다. 카니발이 이렇게 순발력 좋고 잘 나가던 차였나? 이런, 이건 휘발유 차였다.. 

아침부터 운전만 하고 들어왔지만, 박찬일 책의 잔상이 남아서 마지 읽었다. 어딘지 모르게, 움베르트 에코의 문제 느낌이 들었다. 재밌는 에피소드들이기는 한데, 시칠리 얘기에 문제가 묻어간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초창기 시절의 박찬일은 글을 이렇게 썼구나, 그런 느낌. 

시칠리는 그야말로 영화 <대부>에서나 봤지, 자세하게 볼 일은 거의 없었다. 이탈리아는 밀라노에만 1주일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계속 회의에만 붙잡혀 있어서, 밀라노라고 해도 숙소와 회의장 말고는 가본 데가 거의 없다. 밥도 거의 회의장 근처에서 대충대충 먹었고. 

글은 재밌는데, 너무 재밌게 쓰려고 했다는 느낌이 좀 들었다.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는 기자가 쓴 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스타일의 글들은 매주 신문을 펴면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3일 사이에 연거푸 박찬일 책 세 권을 읽고나서 보니 <내가 노포에서 배운 것들>은 매우 정직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초창기에 쓰던 글 스타일과 노포 책 사이에는 꽤 큰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아마 시칠리에서 처음 출발하던 시절의 얘기를 회상하는 박찬일과 10년에 걸친 노포 취재를 마친 박찬일 사이에도 좀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일단은 박찬일 독서는 이걸로 잠시 마무리를 하고, 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며칠 동안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잠시 행복했다. 나도 데뷔하던 시절의 생각이 나기도 하고, 살아온 순간들에 대한 반성, 아니 꽤 많은 반성을 했다. 

세 권을 읽고 짧은 느낌을 적자면.. 

박찬일의 노포책 이후로 나의 삶도 바뀔 것 같다. 사실 모든 책이 삶을 바꾸기는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게 없다면, 평론가의 눈으로 독서를 하느라, 정말 중요한 얘기들은 놓친 셈이 된다. 독서가와 평론가는 다른 사람이다. 평을 하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것 아니겠나 싶다. 

책으로 내가 크게 바뀐 걸 곰곰이 되짚어보니까, 중학교 때 세익스피어 책, 대학원 때 허쉬만 책 그리고 50대 중반이 되어서 읽은 박찬일의 노포 책, 그런 것 같다. 허쉬만은 학위 받고 정말 허쉬만이 있는 연구소로 포닥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나이 많아서 이미 새로운 사람은 안 받는다고 하고, 그 다음으로 추천을 받았는데.. 그 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미국에 포닥가려고 했던 게 아니라 허쉬만에게서 뭔가 더 배우고 싶은 거라서. 그냥 짐 싸서 한국에 돌아왔다. 

박찬일은.. 

내가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최초의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 인생도 조금은 바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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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다 읽었다. 

책을 재밌게 읽은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내가 읽는 책들은 더럽게 재미 없는 책들이다.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가 그나마 좀 재밌게 읽은 책인데, 뒷부분에 짧게 쓴 자신의 자서전 비슷한 내용이 있어서.. 아, 크루그먼이 이렇게 살았구나, 그래서 좀 재미가 있었던. 

내가 보는 책들은 전화번호부만한 게 많고, 재미 대가리 없다. 어렵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서 읽는다. 

박찬일의 책은, 그냥 읽은 거다. 그냥 읽으면 재밌을 수도 있는데, 나도 읽어야 할 책들이 워낙 밀려 있어서 그냥 읽기가 쉽지 않다. 

사실 나는 책을 즐겨서 읽는 스타일은 아니다. 솔직히 책 안 보고 싶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꾹 참고 읽는 편이다. 정말 더럽게 책 안 읽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 책 안 봐도 되는 직업을 가졌으면 한다. 

박찬일의 책은 나와는 정반대의 스타일의 책이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맛있는 거 따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맛있다고 하는 집, 안 간다. 욕심이 생겨나는 게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절대로 줄 서는 집도 안 가고, 소문난 맛집은 일부러 피해서 간다. 

내가 뭔가 맛있게 하려는 건, 일단은 그렇게 안 하면 우리 집 어린이들이 쳐다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맛에 대한 책인데, 사실 가본 데가 별로 없다. 줄 서는 냉면집 절대 안 가고, 냉면 먹고 싶으면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데 간다. 청진옥은 누가 가자고 하면 가기는 가는데, 사실 내 입맛에는 좀 별로다. 좀 더 매워야..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미슐랭 별 달린 집은 거의 안 간다. 너무 비싸다. 예약하기도 쉽지 않다. 가끔씩 그런 데서 약속이 생겨서 가기는 하는데, 너무 비싼 거 얻어먹은 거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다보니까 미슐랭 나온 집이라고 tv에서 얘기하면, 일단 채널부터 돌리고 본다. 

비슷한 이유로, 포도주도 일부러 비싼 거 안 마신다. 제일 좋아하던 건 생떼밀리옹인데, 이건 내가 먹기에는 너무 비싸고. 예전에 선물할 때 주로 썼다. 선물만 하고, 정작 나는 20년째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코뜨뒤론느, 이게 내 입맛에는 그런대로 맛있는데, 이것도 한국에서는 생각보다 비싸다. 그리고 거의 없다. 그렇지만 너무 맛없는 포도주는 피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먹을 수 있는 포도주가 몇 종류 없다. 

어지간한 사람들이 평생 마실 포도주보다 더 많은 양을 20대에 이미 다 마셔버렸다. 그냥 적당한 가격에 왠만한 맛이면 그냥 마신다. 자고 일어나면 다 똑같다.. 비싸든 안 비싸든, 머리 아픈 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일의 책을 한 방에 다 읽은 건, 재밌어서 그렇다. 원래는 앞에 조금만 읽고, 하던 일 마저 할려고 그랬는데, 한 방에 다 읽어버렸다. 몇 권 더 사서 읽으려다가, 워워.. 나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게 책을 많이 읽으면, 책 쓴 사람의 성격이나 그런 게 어지간해서는 조금은 보인다. 거기에 나온 정보가 필요해서 읽는 거지, 인격적으로는 영 아니다 싶은 사람들이 많다. 유명 저자가 되면, 움베르트 에코 정도 되는 사람 아니면 재수가 없어지나보다. 재수 없는데, 그냥 참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그 사람의 정보나 지식이 나에게는 꼭 필요하니까.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존경하게 되는 건 매우 드문 경험이다. 그 사람의 지식은 필요해도,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그 쓴 사람을 직접 알면.. 아이고, 존경하기 쉽지 않다. 

음식 책도 사실 꽤 많이 읽었다. 읽다가 집어던진 적이 있다. 뭐, 이런 양아치가 다 있나.. (딱 그 사람이 스캔들이 생겼을 때, 안타깝다는 생각은 했다.) 

박찬일의 노포 얘기를 보면서, 꼭 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돼지국밥 별로 안 좋아한다. 원래도 안 좋아했는데, 몇 달 동안 맛없는 돼지국밥을 매주 먹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아주 학을 떼었다. 내 인생에 돼지국밥은 다시는 없는 걸로.. 

돼지국밥 얘기가 맨 앞에 나왔다. 글이 재미가 없었으면,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추어탕도 좀 그랬다. 추어탕을 안 먹는 건 아니지만, 박찬일이 맛있다고 하는 스타일의 추어탕에는 구미가 전혀 안 갔다. 

입맛이야 뭐 사람마다 다 다른 거니까. 

대구탕이라고 해서 예전에 한참 웃었던 대구의 육계장은 좀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실 대구에서 그 대구탕을 맛있게 먹은 적은 없고, 울산의 현대자동차 인근에서 쇠고기 국밥인가, 그런 이름의 국밥을 아주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굵은 고기가 뭉텅이로 나오는, 책에 나오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냉면집에 잘 안 가는 건, 그렇게 유명한 냉면집에 가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별로 없는 데다다.. 누군가 같이 가면, 어휴 지겨워, 뭔 설명이 그렇게 긴지. 맛 별로라니까.. 그래도 여름에 냉면집에 가는 건, 콩국수집이 잘 없어서 그렇다. 그리고 콩국수는 짜장면 맛있는 집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면이 유명 콩국수집하고 급이 다르다. 콩국은 콩국수 전문점이 잘 낼지 모르지만, 면은 역시 짜장면집이.. 내 입맛은 그렇다. 우동도 냉우동을 최고로 친다. 얼음에 담그면 우동 면발이 좀 약해도, 엄청 맛있어진다. 라면도 마찬가지다. 냉라면, 신주꾸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직도 입에 선한.. 

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장충동 족발집 얘기가 나온다. 거긴 맛있지. 시간강사 시절, 동국대에서 여러 학기 수업을 했었다. 틈틈이 먹었다. 

나랑 입맛이랑 취향이랑 별로 안 맞아도 책을 빨려들듯이 재밌게 읽은 건, 그가 하는 얘기가 맞기 때문이다. 문화의 일종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도 일종의 민중사라는 것. 

더 중요한 건, 참 욕심 없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런 게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서.. 이런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글은 꾸밈없고 단백한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유 없이 멋부리는 글을 아주 싫어한다. 그런 면에서 박찬일은 거의 교과서다. 멋부리는 문체는 한 때 '보그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그에서 많이 썼고, 패션지에 아주 많다. 그래도 그건 아름다움을 다루는 일이라서 그런가보다 한다. 

박찬일의 문체는 '노포'를 닮았다. 그래서 그의 글만 보고 있어도 왠지 그 가게 어느 한 쪽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포는 그렇게 화려한 곳이 아니다. 나무꾼들이 모여들었고, 그곳에 식당이 생기고, 그렇게 생겨난 곳들. 거기에 삶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진국'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 

박찬일의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나 자신을 좀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겉멋 같은 게 아직 빠지지 않은 게 있나, 의미 없는 허세가 남은 게 있을까. 

박찬일의 책은 심신수양이 필요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잔뜩 오염된 삶을 살면서, 왠지 불안해하고, 주변에서 '멘토' 같은 거 찾는. 노포들이 성장하고 살아남는 길은 그 진국 같은 것이다. 귀찮은 거 하고, 싫어도 버티고, 더 편한 거 알아도 피하고.. 물론 어렵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게 진국 아닌가 싶다. 

글은 박찬일처럼 써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조만간 그의 책을 몇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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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의 처우와 삶에 대한 얘기는 몇 년 전부터 계속된 얘기지만, 특별히 개선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마이크와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에 대한 얘기와 같은 구조다. 전에 미국에서 방송 길드들이 연합해서 총파업하면서 'pencil down, channel down'이란 구호를 내건 걸 인상 깊게 본 적이 없다. mb 때 방송 개혁 한다고 하면서 놀고 먹는 pd들이 작가들이 하는 일도 하면 된다면서, 작가들 다 없애자고 하는 얼척 없는 걸 정책이라고 추진한 적도 있었다..
방송 작가 문제, 생각보다 오래 간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98536&PAGE_CD=N0002&CMPT_CD=M0117&fbclid=IwAR0h-zNBVF9jCCdiPN179uw8W9w87v2e0eEEs7_lWA2N4QFElxGNCXbYdJc 

 

방송작가가 더는 '불쌍해지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

[서평] 이은혜 작가의 책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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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한 내가 더 예뻤는데,
그래서 내가 더 행복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더 행복해 보였어요.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어요.

배리나,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

 


배리나의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 다 읽었다. e북을 다 읽으면 평점 주고 인상 쓰는 칸이 있는데, 정말 간만에 평점도 주고, 인상도 짧게 적어놓았다.

대충은 아는 얘기이기는 한데, 그래도 직접 살았던 사람이 자기 얘기를 쓴 거라서, 느껴지는 온도감이 달랐다.

중간에 캐나다에 혼자 가서 살았을 때의 경험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다. 캐나다에서는 예쁘다, 안 예쁘다. 그 지랄들을 안 한다는 거다.

캐나다에서 친구에게 "예쁘다"고 했다가, 아주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 에피소드도 인상 깊었다. 너는 지금 평가를 한 거야, 아주 질이 좋지 않은 평가를..

예쁘다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작가의 얘기를 들으면서, 음,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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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 에세이집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읽었다. 가슴이 찡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CD를 주문했는데, 살 수 있는 건 한 장 밖에 없었다. 그나마 수입판.. 배송비가 나와서 전부터 사려고 하던 조지 윈스턴의 December도 함께. (도대체 이건 몇 장을 사는 건지 모르겠다..)

예술가의 책을 읽고, 감동 받아 CD를 주문하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내 식의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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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책 <공정한 경쟁> 읽었다.

일단 데이타 미스. 우리나라 공공부문은 oecd 평균 보다 많이 낮고, 일본보다도 낮다. 공무원 집단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는 건, 일반적인 견해기는 하다. 권력으로 보면 그렇지만, 고용으로 보면 좀 다른..

20대 보수를 한국에서 만나는 것은 좀 생소한 일이지만,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흔한 일이다. 우리는 이걸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20대 극우도 만나게 될 것이다.

파리에서 했던 대학원 시절에는 스킨 헤드 친구도 있었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기는 했지만, 공부 엄청 잘 했다. 로그 함수에 대해서 기똥차게 설명을 해서, 많이 배웠다.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오가는 20대 엘리트 중에서 저항심에 머리 미는 친구들을 90년대에 종종 봤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유럽식 20대 극우도 나오게 될 것이다.

이준석 열풍은 더 커질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니 청년 정치 혹은 586에 대한 반발만이 이준석 현상을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영리 병원에서 대학 자율성까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꼭 보수 아니더라도 진보들도 사석에서 종종 하는 얘기다. 한국의 폐쇄적인 관료 행태와 제도의 경직성, 정파와 상관 없이 다 하는 얘기다.

궁극적으로 이준석 현상은 '멀정한 보수' 1세대의 등장으로 볼 수 있다. 이승만은 물론이고, 박정희까지, 보수라고 하기에는 좀 하자 있던 시대라는 게, 이준석의 얘기다. 군바리들하고는 같이 놀기 싫다.. 이게 이준석의 정체성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박근혜하고도 기꺼이 결별을 한 거고.

하자 있는 보수 혹은 이상한 보수들의 나라에서, 이준석은 '멀쩡한 보수' 1세대 운동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책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인간이 이상한 것, 그게 오랫동안 한국 사회가 보수를 봤던 눈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 그런 얘기가 나왔을 것 같고.

전두환에게 돌 던질 수 있는 보수, 그게 이준석 현상의 밑에 깔려 있지 않나 싶다. 사석에서 '홍어' 얘기하는 좀 옛날 보수와는 결이 다른.

무능해 보이는 586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 + 멀쩡한 보수 현상에 대해서, 이 정도면 나도 이들과 함께..

이 두 개가 이준석 돌풍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 한국의 보수는 '반북 보수'와 '경제 보수', 이 두 가지였는데, 이것과도 결이 다른 '멀쩡한 보수'가 등장한 것.. 요렇게 보인다.

외국의 보수와 좀 다른 것은 젠더에 대한 역사적 시각의 결여.. 요건 이준석의 특징이기도 하고, 이 시대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그게 이준석이라는 범선이 바람을 타고 항해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한데, 이게 결국 엘리트주의를 선호하는 이준석식 보수의 확장성의 한계 혹은 궁극의 한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치인으로서의 유승민은 경제 정책도 좀 오락가락했고, 사드 논의와 함께 '강력한 국방', 여기저기 좀 왔다갔다 했었다.

그에 비하면 이준석은 좀 더 '단단한 보수 + 마일드 여혐' 정도인 것 같다. 여혐에 '마일드'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어야 하는 것은, 그냥 무지막지하게 여성들 때문에 너무 힘들다, 그런 선까지 확 가지는 않는다.

mbc에서 한 tv 토론 일부 봤다. '멀쩡한 보수'라는 이미지가 아주 강했고, 그 옆에 선 사람들이 뭔가 하자 있는 인간들이라는 이미지를 주게 되었다.

이준석 현상, 생각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것 같다. 그 인간의 매력 때문에 표를 주어도 창피하지 않은 보수, 한국에서는 어쩌면 처음이지 않나 싶다.

mb는 창피하지만 "일은 잘 하잖아", 이런 수식어가 필요했다. 박근혜에게 찍는 게 얼핏 손이 안 가지만, "선거의 여왕"이래잖아, 요렇게 수식했다. 둘 다 물건은 하자 있지만, 대안은 없어, 요런 시대였다.

이준석의 견해에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앞뒤가 안 맞는 것들이 좀 있기는 하다. 대담집이니, 일단 넘어가는 것도 있지만, 그건 표준적인 보수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표준 코드 같은 것에 가깝다.

해고를 쉽게 해, 그러면 "유 어 파이어드", 트럼프 산업을 만나게 될 것이다.. 표현만 좀 다르지, 한국 보수들은 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게 보수를 표방한 이준석의 흠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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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의 책 '당신을 이어 말한다', 마저 보았다. 피케티 책 추천사 써주기로 한 게 있어서, 그걸 읽어야 하는데, 읽던 거라 마저 읽는 편이..

가끔 인생을 바꾼 책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움베르트 에코의 책들이 대체적으로 그랬다. 뉴욕 평론가 스타일이나 파리 평론가들의 익숙한 글이 아닌 다른 방식, 다른 내용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이제 50대 중반이다. 애들 보는 중이라서 더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새로 만나는 사람은 매우 적고, 나에게 오는 정보들은 고급 정보일지는 몰라도 제한적이다. 그것만 가지고 세상을 좁게 보면, 병신, 쪼다, 머저리, 이렇게 되기 딱 좋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의 내 인생을 바꾸게 될 책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내가 누구랑 얘기하고, 누구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어디를 처다보면서 살아야 할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길보라라는 이름은 잘 몰랐지만, 하자 주변에 있을 때 '로드스쿨러'라는 말은 들었고, 탈학교 운동 쪽에서 그런 얘기를 몇 번 들었다. 

아주 예전의 기억을 연결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보던 이슬아 등의 이야기가 책 막판에 연결되면서 기억 속 퍼즐의 한 조각들이 맞아나갔다. 권김형연은 녹색당 시절에 처음 만났던 것 같고, 그후 대학원에서 강연을 한 번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때도 참 기억에 오래 남았는데, 책을 통해서 또 다른 갈래를 이해하게 되었다. 마침 이번 주에 다른 행사에서 만난다. 

주류 상업주의 시각으로 보면 그야말로 변방에서 벌어지는 마이너들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가 지내던 곳이 원래 그런 곳이다. 돈 안되고 아무도 잘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곳, 나는 그곳에서 출발했고, 여전히 그런 일들을 주로 한다. 생태 운동 초창기가 그랬고, urbanism 처음 시작할 때에는 더 그랬다.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풀뿌리 민주주의 같은 얘기는, 처음 내가 그 주제를 다룰 때나 지금에나 일관되게 밝은 이미지가 아니라 어두운 이미지다. 한국은 여전히 중앙주의적이고, 로컬은 여전히 '지방 방송'이다. 지역에서 로컬을 소리 높여 외치는 순간은 공항 같은 거 만든다고 하는 토건 행진을 할 때 정도 아닌가? 

이길보라의 책을 읽으면서 이준석 생각이 잠시 났다. 그도 참 춥고 어두운 시절을 견디기는 했는데, 머리가 너무 좋은 게 한계인지, 아니면 그 덕분에 길을 개척한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건 그가 살아갈 인생이고, 또 한 명의 정치 지도자로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한국에서 지금 이준석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이길보라와 그와 글이든 영화든,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 아닐까 싶다. 

내가 누구와 남은 인생을 보내야 할지, 깊게 생각해보는 순간이었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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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이걸 읽기로 했다. 책 만지는 순간,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다니.. 작은 감동과 애잔함이 있었다. 사실 조봉암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것밖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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