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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슈트 스토리

2018.12.01 15:39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 내가 내 책은 못 팔아도 남의 책은 잘 팔아줬다. '정의란 무엇인가" 처음 나왔을 때, 책 소개하는 행사를 내가 했었다. 그 후 어마무시하게 나갔다. '세상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 혹은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요런 책들이 내 해제를 달고 나가서, 진짜 겁나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이젠 나도 나이를 먹었고, 어마어마하게 빅히트를 만들어주는 재주도 사라졌다. 고만고만하게, 그래도 아주 손해를 보지 않게하는 정도라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오세영의 소설 <자산어보>를 너무 재밌게 읽어서 감상문을 길게 썼다. 결국 소설이 재출간되었다. 소설과는 무관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준익의 다음 영화가 <자산어보>다. 한참 캐스팅 진행 중이다. 이런 일련의 일이, 블로그에 작게 남긴 독서 감상문에서부터 시작된.

나도 이제 나이가 50이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성공하는 경험도 있고, 크게 시작해서 작게 성공한 경험도 있고,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완전히 망한 경험도 있고.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내가 나한테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성격이다. 남의 일이라도 도와주는.. 어려운 시절, 그렇게라도 버텨야 하지 않겠나 싶다.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당신이 입은 그 슈트, 400년 역사가 담겼죠

조선일보
  • 우석훈 경제학자
  • 입력 2018.12.01 03:00

    모던 슈트 스토리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지난겨울 오래된 슈트들을 버렸다. 1996년 첫 출근을 하면서 당시 돈으로 1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 옷들이다. 감은 정말 좋은 옷들이지만 쉰 살이 넘어가면서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못 입는다. 그리고 올가을, 한껏 멋을 낸 두꺼운 겨울 재킷들을 버렸다. 코트 없이 스웨터만 받쳐 입으면 겨울에 입을 수 있는 옷들인데, 이제 그렇게 입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남성들의 겨울 슈트는 요즘 터무니없이 얇게 나온다. 유행이 바뀌어서 못 입는다. 슈트를 입어야 하는 남성에게 필요한 최소 숫자는 세 벌. 여름, 겨울 그리고 봄여름. 허리에 살이 붙기 시작한 이후, 나도 매년 세 벌의 슈트를 산다. 싫지만, 자꾸 남들이 내 옷을 쳐다보는 게 싫어서 그냥 적당한 거 산다.

    아스텔리아 사전예약 중

    에든버러대학의 크리스토퍼 브루어드가 쓴 '모던 슈트 스토리'(시대의창)는 직업상 슈트를 입어야 하는 남성들이 자신이 입는 특정한 양식의 옷에 대한 문화사적 상식에 관한 책이다. 근대 국가의 형성과 함께 등장한 군대의 유니폼, 최대한의 금욕을 강조한 종교적 전통, 그리고 측정과 표준이라는 공업화의 과정이 우리가 입는 슈트에 남은 흔적들을 감칠맛 나게 보여준다. 청바지와 티셔츠, 잠바, 모두 서양 옷이지만, 우리는 슈트라는 매우 특정한 옷에만 양복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갑오개혁 이후로 육군 그리고 문관들의 관복을 슈트로 정했기 때문이다.

    모던 슈트 스토리

    책은 문화사의 맥락을 따라서 검은색 상복 같은 슈트가 좀 더 화려하고 도발적인 댄디즘과 부딪히는 과정,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르마니가 전 세계를 휩쓰는 과정 등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사실 특별히 패션이나 의상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맨날 입으면서도 이 옷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몰라도 된다. 그러나 알면 일상이 조금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에는, 인류의 문명을 특정 짓는 이성·평등·아름 다움·진보라는 가치가 슈트와 함께 계속되는 한, 슈트 역시 지금으로부터 또다시 400년을 이어가리라는 희망이 있다." 책의 마무리 문장이다. 저자는 슈트는 앞으로도 400년은 갈 거란다. 섬유와 의류를 사양산업이라고 생각하는 정책 당국자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남성 그리고 이제는 여성들의 정장, 슈트의 스토리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산업적으로도.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01/2018120100059.html

    Comment

    1. 2018.12.01 22:46

      비밀댓글입니다

    2. 2018.12.03 01:05

      비밀댓글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

    2018.11.21 21:59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책 두 권을 읽기로 했다. 가슴이 차가와지는 책,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 보들레르, 내가 참 차가운 가슴으로 살았던 시절에 읽은 책들. 슈트 스토리, 이 책의 한국편이 언젠가 써보고 싶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 패션지에 정기 기고할 일이 생겼는데, 광고주들 너무 불편하게 할 것 같다고 결국 스톱. 나이 먹고 좀 한가해지면 나도 슈트 책 한 권 쓸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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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책 칼럼 연재 시작...

    2018.08.13 11:10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책 소개하는 책 칼럼을 쓰기로 했다. 조선일보다. 고민을 안 했다면 거짓말인데, 결국에는 쓰기로 했다. 조선일보랑 인터뷰도 몇 번 했었고, 부탁을 받아서 기고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정기적인 글은 처음이다. 나름 고민한 것 중 하나는 책 쓰면서 책 소개도 같이 하는 게 과연 정당한 일인가, 그런 질문. 김재동 화백이 책 소개하면서 자기 책 소개하는 것을 봤을 때의 그 황망함을 넘어선 기발함의 충격? 어쨌든 괜찮은 책들을 소개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기는 하다. 조선일보 독자들이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책을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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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라쟁이 2018.08.14 23:57 신고

      노회찬 친구라며 라디오방송에 이름 내밀던 분이 이따위 글을 찌끄리던 데에 글을 쓰시다고요?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8072001630

    2. 먹깨비 2018.08.15 14:30 신고

      조선일보에 책 칼럼 연재는 재미있는 일인가요 돈 되는 일인가요 보람있는 일인가요?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2018.06.10 17:16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1981년 강연을 정리한 책이다. 레이건이 막 등장하고, 프랑스의 미테랑이 대통령 되는 그 즈음의 얘기다. 그 후로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돌풍이 불었고, 현실 사회주의도 붕괴했다. 그리고 21세기가 되었다. 이 케케묵은 책을 지금 와서 다시 읽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읽어서 손해볼 책은 없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나는 경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게 좀, 모호하다. 많은 경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 한동안 다들 이 표현을 앞에 걸기는 했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저마다 다르다. connotation이라고 부르는 문제가 좀 생긴다. 다들 이해하는 함의가 달라서 서로 얘기가 잘 안 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아주 제한적으로만 이 단어를 쓴다.

     

    또 한 가지는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목적과 수단에 대해서,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뒤집히기도 한다. 어떤 상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민주주의이지만, 많은 경우 민주주의가 그 자체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결핍으로부터 발생하는 수단과 목적의 도치 현상 같은 것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경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나는 잘 쓰지 않는다. 경제가 원래도 좀 애매한데, 가급적이면 애매한 표현들을 나는 좀 줄이고 싶어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라는 오래된 표현을 다시 집어든 것은, 대한항공 조씨 일가 등의 희한한 행태로 기업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 좀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좀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1915년 연방대법원은 종업원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한 계약을 불법으로 본 캔자스 주법을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75페이지,

     

    20세기 초반, 미국의 분위기도 좀 살벌했던 것 같다. 캔자스에서 노조가입 안된다고 하면 안되요, 이랬더니 바로 위헌 때려버린.

     

    책 전체는 기업의 소유권, 즉 이건 기업이 내 꺼니까 내 맘대로 할래요 하는 기업 우선주의와, 사회의 일반적인 정의에 대한 규율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충돌에 관해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뒷부분으로 가면서 자치기업(self-governing enterprise)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회사를 소유하거나 혹은 의사결정에 중요하게 참여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그런 얘기다. 요즘의 눈으로 보면 협동조합이나 종업원 지주제 정도의 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상당히 이론적이고, 개념적인 측면도 있다.

     

    사회주의권과 자본주의권이 한참 경쟁하던 시절의 얘기니까, 기업이라는 것의 운영방식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모르지만, 내가 경영학에 대한 내 입장에 대해서 한참 고민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나는 나름 감회를 가지고 읽었다.

     

    프랑스에 갔더니,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을 괜히 내가 학부 시절에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이 좋아요, 경영학이 좋아요, 우린 이런 질문에 종종 부딪혔었다. 된장프랑스에는 경영학이 학부에 없쟎아! 대학원부터 시작된다. 별 필요도 없는 고민을

     

    나는 조직론을 대학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업이라는 생산의 단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어떻게 결정하는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를 것 같지만, 생산과 유통을 결정하는 조직론적 구성에서 많이 다를까? 원론적으로는 엄청나게 다르다고 배웠는데, 막상 기술적 결정을 하는 데에서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 달이 자치기업을 보는 눈이 그렇다. 그래서 후반부로 가면서 좀 더 익숙했던, 20대의 내가 많이 생각했던 질문들을 만나게 되었다. 뒷부분의 얘기는 우리 식으로 하면 협동조합의 운영원리에 관한 얘기들이다. 사회적 경제를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고.

     

    가슴에 남는 구절들이 좀 있다.

     

    왜냐하면, 공정이나 정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정치 질서는 공정한 데 반해 경제 질서는 지독히도 불공정하면 이것은 불행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게 요즘 우리 얘기랑 상당히 비슷했다. 정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치에만 많은 사람들이 눈을 돌리면 지독할 정도로 불공정한 지금의 경제 구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안 갖게 될 수도 있다. 유행하는 용어로는 격차 사회. 뜨끔했다.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라고 간판을 달아도 좋을 듯 싶다. 한 때 최장집 선생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로 빅히트가 나온 적이 있다. 그 출발점으로, 옛날 애기 보듯이 속 편하게 읽으면 좋을 책일 것 같다 (토크빌 얘기가 전반에 길게 나오는데, 토크빌이 익숙치 않으면 대충 무시하고 넘어가고 읽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미국 민주주의에 관한 토크빌이 미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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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솔길 2018.06.11 09:24 신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책을 사는 두 부류중에서 밑줄치고 읽기위해 사는 타입이시군요 다른 유형은 컬렉션을 위한.. 그래서 신규 저자의 진입 장벽이 높다고 하신 ㅠㅠ

    2. 고전세 2018.06.11 10:20 신고

      최근 노엄 촘스키의 <불평등의 이유>란 책을 읽었는데요. 미국 민주주의가 사실은 일반 대중응 위한 것이 아니라 가진자 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그 정점에 달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미국을 따라가는 우리도 대중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높였지만, '경제' 문제는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개별 기업에서의 민주화? 풀기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정순철 평전 독서 중

    2018.04.20 09:53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몇 년 동안 유교에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어린이'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보니까, 정순철 평전을 읽게 되었다. 현직 장관의 책을 읽는 아주 진기하고 기이한 경험을. 나도 작년까지는 정순철을 몰랐다. 정순철이 누구야? '우리 애기 행진곡', 엄마 앞에서 짝짜쿵 작곡가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졸업식이면 늘 부르는 그 노래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해월 최시형의 딸이 정순철의 엄마니까, 최시형 손자이기도 한. 그리고 소파 방정환의 절친. 언제가 쓰고 싶은 책 리스트에 언제나 1번 자리는 방정환 평전이었다. 그리하여 정순철 평전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도종환 장관님께서 아시는 게 너무 많으신 분이라... 얘기 시작하기 전에 동학 정신과 이론 체계부터 일단 설렵들 하시고, 에 또... 핵핵. 정순철 얘기 들어가기도 전에 동학 얘기에서 힘 쭉 빼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보니까 유교 사회 속에서 동학이 가졌던 힘 같은 것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는.

    가설이지만, 이 두 개의 힘이 예를 들면, 연남동 같은 곳에서 만난다. 동학과 색동회의 힘으로 만들어진 '어린이'라는 이름과, 젠트리피케이션 지역 중에서 노키즈 존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연남동. 어린이를 데리고 연남동에 가면 애들 데리고 오지 말라는 유교적 발상과 카페 주인의 종교인 기독교 그리고 '어린이' 행진곡이 기묘하게 충돌한다. 한국의 노키즈존은 유교적이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적인 흐름 위에 서 있다. 가끔은 결과론적인 상술도. 둘 다, 어린이를 어린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는 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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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책] 광주는 내게 무슨 의미일까?

    2017.09.03 22:19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광주는 내게 무슨 의미일까?

     

    송갑석,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

     

    1.

    광주에 대해서 잘 아는가, 혹시 누가 나한테 물어보면 참 답하기 어렵다.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광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상에 대해서는, 뭐 전혀 모른다.

     

    하여간 진짜 우연하게 책 한 권이 손에 들어왔다. 선물 받은 것이기는 한데, 여기에도 약간의 사연이 생겼다. 어쨌든 이 책을 읽기 위해서 두 아이들을 키즈 카페에 데리고 가서 놀리고, 나는 책을 읽었다.

     

    2.

    충장로와 금남로에 대학 시절에 처음 가봤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아니었다면 그 이름도 잘 몰랐을 것이고, 또 일부로 그곳에 가서 자고 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초기에 전라도로 가는 길목을 막았던 이치재 전투는 약간은 알고 있다. 권율의 이름이 여기에서 처음 높아진다. 선조는 벌써 도망갔고, 위쪽을 어느 정도 정리한 왜군이 전라도로 넘어오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 전쟁을 극적으로 마친 권율은 하여간 왕에게 승전을 알려야 했다. 여기까지는 마라톤 전투와 크게 다른 얘기는 아니다.

     

    이 때 소년이 한 명 자원했다. 옻을 온몸에 발라서 나병환자로 위장하고, 적진을 뚫어 결국 왕에게 승전고를 알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정묘호란 때 계속해서 맹활약했다. 그가 죽고 나서 금남군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이게 금남로그랬나?

     

    충장로는 조금 더 짠하다. 26세에 조선 의병을 총괄하는 의병대장이 되었다가 29세에 선조에게 맞아 죽는 바로 그 김덕령의 군호였다.

     

    3.

    송갑석의 <무등산 역사길이 내게로 왔다>는 무등산의 역사길에 얽힌 이런저런 얘기들을 담은 책이다. 동네에 무슨무슨 올래 하면서, 고만고만한 책들 중 하나 아녀? ,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데 간단한 얘기만은 아니다.

     

    송갑석은 전대협 4기 의장이다. , 지금은 엄청난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된 줄줄줄, 그런 사람들이 배출된.

     

    그렇게 인생이 이후로 순탄하게 풀리지는 않은 것 같고, 대전 교도소와 대구 교도소를 거치면서 5 2개월, 만기 출소를 한다.

     

    그런 일이 있었나? 나도 잘 몰랐다.

     

    그리고 월요일마다 직장 다니는 형이 그 교도소를 면회하면서 옥바라지를 했다. 그 형님을 내가 조금 안다. 소주 한 잔 하기로 연초에 약속을 했는데, 반 년이 넘도록 소주 한 잔 못했다. 이러다 해 넘기겠다 싶어서, 애기 아빠가 통영도서관 강연에 끼어서, 광주로 갔다. 그리고 광주에서 하룻밤 잤다.

     

    그 저녁에, 혹시 송갑석을 아느냐면서 들은 얘기가 바로 이 책 얘기다. 동생 얘기를 하는데, 참 애잔했다.

     

    감옥에 있던 동생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책이 있는 건 몰랐는데, 나중에 헤어질 때 동생 책이라고 건냈다.

     

    이 정도 사연이면, 집에 오자마자 주루루 읽는 게 인간된 처지의 기본 도리인 것 같아서

     

    3.

    책은 재밌다. 역사를 알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잘 몰라도 우리 또래라면 나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책에 김정호 얘기가 나온다. 아내에게 김정호를 물어보니까, 모른단다. 85년에 죽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김정호의 할아버지 얘기는 나도 처음 들었다. 판소리의 대가였던 그의 할아버지와 월북 얘기, 그런 건 정말 몰랐다.

     

    김정호의 죽음이 나에게도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3 때 죽었는데, 워낙 좋아하던 가수라서.

     

    하얀나비' '이름 모를 소녀', 그런 노래들이 있다.

     

    그런데 그 이름 모를 소녀와, 김정호는 나중에 진짜로 결혼을 했단다. 그래? 그리고도 33살에 죽었다. 대체적으로 천재들은 짠 것처럼 33살에 죽는다. 소파 방정환도 그 나이다. 심지어 김정호마저!

     

    4.

    정걸 얘기도 재밌었다. 물론 이건 나만 재밌을 얘기다. 실록에 행주대첩에서 충정 해군들이 배 두 척에 화살을 싣고 와서 행주대첩이 결정적으로 역전승으로 끝나게 되는 얘기가 짧게 나온다. 이 얘기는 초등학교 때 본 얘기이기는 한데, 실록에서 이 이야기를 본 건 작년이다. 1년 전 일인데, 그 다음부터 뭔가 얘기들을 만들어나가보는 중이다.

     

    정걸이 고흥 사람이란다. 이순신의 부하였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뭐가 좀 복잡하다. 출생은 고흥이고, 이순신과 일을 했고, 한양성 수복할 때에는 충청도에 있었고잘 싸우는 사람인가 보다.

     

    요런 조만조만한 얘기들이 많이 있다.

     

    송갑석의 친형은 동생이 감옥에 있을 때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을 읽었는데, 그게 무슨 엄청난 이론서는 아니고

     

    그런 고향에 관한 상식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소쇄원은 한 번 가본다고 생각만 하고 아직도 못가봤다.



    (송갑석이 감옥에서 서경식의 책을 읽을 때의 열독 허가증... 서경식 형제의 가슴 아픈 사연도 책의 중요한 모티브.)

     

    5.

    광주는 어떤 도시인가? 광주에 꽤 많이 갔고, 광주 얘기를 진짜 많이 듣기는 했는데, 이 정도로 깊게 광주의 얘기를 본 것은 처음이다.

     

    어차피 요즘은 전국이 다 비슷비슷해져서, 경관만 놓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주상복합에서 젠트리피케이션까지, 겉으로만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이런 고향 얘기는 안동 사람들이 엄청 한다. 그리고 경상도 지역마다 한 무더기씩 이런 얘기들이 있다. 전북에 가도 엄청 많다. 다 고향마다 사연이 한 무더기이다.

     

    광주 얘기는 많이 못 들어본 것 같다. 금남로가 뭔지, 나도 이제야 알았으니.

     

    책을 덮고 나니, 이 책이 딱 필요한 사람이 생각났다.

     

    안철수

     

    그가 광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있는지 잘은 모른다. 하여간 그에게 권해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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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박사님 역사책도 내주시면 안될까요? 너무바쁘신거아는데... 너무좋아서리..

    [볼책] 홍사익 중장의 처형

    2017.08.31 18:14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시대가 변한다. 물론 매 시대는 바뀐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시대마다 생각도 바뀌고, 해석도 바뀐다.


    <홍사익 중장의 처형>이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도조 히데키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거부터 보라고.


    홍사익을 내가 알까? 알긴, 개뿔을 아나.


    도조 히데키와 같이 처형당한 일본의 a급 전범 4명 중의 한 명이다. 그리고 조선인이다. 그 정도가 아니라, 영친왕과 함께 일본으로 유학 보낸 청년 중의 한 명.


    중장까지 올라갔고, 거기에 처형까지.


    아우라가 보통 아니다.


    1986년 일본 문예춘추에서 발간된 책인데, 이제 번역되어서 나왔다. 직접 산 건 아니라 선물이기는 한데, 어쨌든 내 손에 이 책이 들어온 것도 기적적인 일이다.


    그래서 볼 책 리스트에. 주말에 일부라도 펼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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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책]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 황선도


     


    저번 책도 아직 못 읽었는데, 또 새 책을 집으려니까 좀 그렇다. 그래도 마침 아내가 다 읽은 책이 있어서.


     


    생태학 관련 책은 가능하면 많이 보고, 또 소개도 많이 하려고 한다. 몇 년 전에 숲 생태학에 관한 책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 책에도 소개를 했다.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았으니까, 소개를 했더라도 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좀 곤란한 일이 생겨났다. 공무원 대상 강연을 몇 번 했는데, 아 글쎄내가 소개한 책의 저자가 4대강 찬성 쪽으로 배 바꿔 탔다는 거다. 이런 난감. 이해는 가지만, 하여간 뭐 그런 책을 소개하느냐고 꽤 여러 번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몰랐어요


     


    국내 저자 중에는 그렇게 배 바꿔 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주 친했던 양반 중에도, 벌써 넘어간. 그래도 가능하면, 우리나라 책을 좀 많이 보고, 나도 교양 수준의 바닥을 면하려고 하는.


     


    황선도 박사의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는 우리나라 물고기 생태에 관한 짧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비슷한 책들을 몇 년 전에 쭉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 책을 봇 봤다.


     


    <자산어보>라는 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국내 어류 얘기는 자산어보 스타일이 많다. 그러다보니까 정보만 있고 얘기가 없어서, 읽고 나면 머리에 잘 안 남는다.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이 얘기는 어류 생태학 중에서는 좀 유명한 얘기다. 생선 귀 어딘가에 나이테 비슷한 게 있어서, 모든 물고기는 원칙적으로 나이를 알 수 있다. 그 얘기에 물고기 얘기들을 얹어서 만든 책으로 알고 있다.


     


    30대 시절의 일이다. 고래 연구를 좀 했었다. 그 시절에 대학원생 한 명의 논문 지도를 고래 생태학 가지고 했었다. 한동안 울산에서 고래 토론회 할 때 단골로 불려간 적도 있었다. 혼획에 관한 연구도 좀 했었는데, 워낙 우리나라에 고래 관련된 자료가 없어서 논문을 쓰거나, 글로 남기지는 못했다.


     


    여유가 되면 국내에서 나온 생태학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는 걸 좀 하고 싶다. 아울러 나도 고래에 대한 걸 좀 더 써보고 싶기도 하고,


     


    정색을 하고 다시 연구를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물고기 관련된 글이라도 좀 읽어두려고.


     


    (한겨레에서 발굴한 저자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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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태어나기 전에는 책 읽고 나서, 짧게라도 메모를 읽는 게 습관이고 또 큰 재미였다.


    책상 옆에 몇 줄로 산을 이루고 쌓여 있는 책들 보면, 진짜 한숨부터 난다. 읽기는 읽어야 하는데, 도통 짬이 안난다. 그러다 보니 잠깐 읽은 책도, 뭔가 메모를 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러다가 그냥 한세상 가겠다는 두려움이 잠시...


    그리하여, '볼 책' 리스트라도 그 때 그 때 적어놓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김주원 교수의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훈민정음의 역사>가 그 리스트 1번이 되었다.


    (읽고, 짧게라도 메모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훈민정음이야 다 아는 얘기 - 가 아니라, 사실 정설이 아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실록에 훈민정음 창제 앞에, 진짜로 아무 기록이 없다. 어느날 갑자기, 두둥...


    김주원의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훈민정음의 역사'에 당시 실록본이, 겨우겨우 중간에 다시 만든 건데,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활자도 엉망이고,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얘기가 있다는 걸 소개 받았다. 그럼 봐야지, 뭐.


    안 그래도 언어학자가 쓴 훈민정음에 관한 글을 좀 보려고 했었다.


    (한국은 언어학자가 개 똥구녕 소리하는 사람으로나 알고 있다, 끌끌.)


    이유는 이렇고...


    추가적으로, 요즘 정인지라는 아주 골때리는 캐릭터에 팍 꽂혀서, 여유 되는 대로 정인지에 관한 걸 좀 모아서 보는 중이다.


    세종 시절의 신하들 중, 이름은 고약해가 끝내주지만, 진짜로는 정인지가 이게 아주 미스테리의 연구 대상인 인간이다. 알듯 모를듯, 서양사에서도 이 정도의 울트라 정신영웅의 슈퍼갑 캐릭터는 본 적이 없다.


    일단 내 연구가설은,


    기본적으로는 정인지와 이완용이 같은 종류이며 같은 캐릭터의 인간 아닐까 싶은.


    (그래도 영 같은 캐릭터라고만 하기는 어려운게, 고종이 이완용을 대하는 태도에 비하면 세종이 정인지를 대하는 태도는 약간 떫더름한 구석이 있는.)


    실록에 있는 기록만으로는, 정인지가 아주 끝내주는 발언을 한다.


    세종 죽고 5일째인가,


    세종은 니도 알고 내도 알고, 한 게 별로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세종이라는 휘호는 거두라.. 바로 갑질 들어간다. 그 대신에, 책은 좀 냈으니까, 지금이라도 정직하게 '문종'이라고 하자.


    그 말을 듣던 세종의 아들 문종이, 야, 그래도 북방 개척하면서 전쟁도 좀 괜찮게 했으니까, 그냥 세종으로 가자...


    (요게 실록에는 더 자세한 기록이 없다. 하여간 정인지계 신하들은, 에이, 세종은 아니다, 문종은 에이, 세종 맞다 요랬다.)


    그냥 추측하면, 아마도 문종 죽고 나서, 정인지께서, "엣다, 문종", 이리하지 않았을까 싶은.


    게다가 정인지는 잘 먹고 잘 살. 어느 정도? 장안 최대급 부자.


    (요기에 좀 남사스러운 전설급 사연들이 약간 더...)


    그리하여, 일단 김주원의 <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훈민정음의 역사>부터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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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테라미르 2017.08.20 19:55 신고

      볼책에 대한 간단한 글이 아닌데요? ㅎㅎ
      그냥 읽어도 재밌고 세종에 대한 모르는 이야기, 많을 듯해요

    2. 텡굴 2017.08.24 00:36 신고

      샘... 정인지를 알려면 신숙주가 뭐라 욕하는지 들어보면 되요. 동국정운 서문!

    최승호의 말놀이 동시집

    2017.05.28 21:47 | Posted by 우석훈 retired


    일요일 오후, 진짜 간만에 아이들 데리고 교보문고 놀러갔다.


    여섯 살 큰 애는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집을 사줬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여러 번 빌려다 본 건데, 워낙 좋아해서 결국 그냥 사기로 했다.


    4살, 여섯 살, 두 애들 전부 다 좋아한다. 겁나 좋아한다.


    시인 중에 제일 친한 사람은 역시 지리산의 이원규 시인을 것 같다. 학부 때 회계학인가 전공을 해서, 돈 얘기도 같이 많이 한다. 재밌다.


    그렇지만 시로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사람은 최승호와 최영미일 것 같다. 최영미는 공부 다 끝나갈 때쯤 시를 읽게 되었고, 학부 시절에 영향 많이 받은 것은 최승호의 시다.


    진짜로 좋아했다. 대설주의보 같은 시들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생관과 삶도...


    마지막 본 게 아마 10년쯤 전, 광화문 어느 호프집이었을 것 같다. 새만금 관련 공판이 한참이던 때... 그는 환경운동연합의 대표였다.


    이제 아이들의 최승호의 동시를 읽는다. 나도 같이 읽는다.


    대설주의보 시인의 요즘 얼굴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아, 나도 같이 웃게 된다.


    한국 어린이들이 읽을만한 동시로는, 단연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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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umphius 2017.08.23 02:25 신고

      이 책 반갑네요. 꽤 오래전에 나온걸로 기억하는데. 큰애 한글 배울 무렵에요. 시간이 정말 빨라요. 지날때는 지긋지긋 안 지나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