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다 봤다. 

설 전 마지막 일요일이라서, 어머님 모시고 아버지 봉안당에 갔다왔다. 바로 밑의 동생도 한 번은 갔다와야 할 것 같아서, 카니발 빌렸다. 가끔 카니발 렌트하는 일이 생기는데, 매번 버튼이 조금씩 바뀌고, 기능이 추가된다. 가끔 운전하는 처지에서는 조금 피곤함이 느껴지는. 모닝 타다가 카니발 타니까, 차가 왜 이리 잘 나가는지. 모닝 운전하면 풀 악셀을 종종 밟고, 언덕에서도 엑셀 꾹꾹 밟는 습관이 생긴다. 차가 작으면 덜 힘들 것 같지만, 다리는 더 힘들다. 그 습관으로 카니발 운전했더니, 된장, 차가 날라다닌다. 카니발이 이렇게 순발력 좋고 잘 나가던 차였나? 이런, 이건 휘발유 차였다.. 

아침부터 운전만 하고 들어왔지만, 박찬일 책의 잔상이 남아서 마지 읽었다. 어딘지 모르게, 움베르트 에코의 문제 느낌이 들었다. 재밌는 에피소드들이기는 한데, 시칠리 얘기에 문제가 묻어간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초창기 시절의 박찬일은 글을 이렇게 썼구나, 그런 느낌. 

시칠리는 그야말로 영화 <대부>에서나 봤지, 자세하게 볼 일은 거의 없었다. 이탈리아는 밀라노에만 1주일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계속 회의에만 붙잡혀 있어서, 밀라노라고 해도 숙소와 회의장 말고는 가본 데가 거의 없다. 밥도 거의 회의장 근처에서 대충대충 먹었고. 

글은 재밌는데, 너무 재밌게 쓰려고 했다는 느낌이 좀 들었다.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는 기자가 쓴 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스타일의 글들은 매주 신문을 펴면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3일 사이에 연거푸 박찬일 책 세 권을 읽고나서 보니 <내가 노포에서 배운 것들>은 매우 정직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초창기에 쓰던 글 스타일과 노포 책 사이에는 꽤 큰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아마 시칠리에서 처음 출발하던 시절의 얘기를 회상하는 박찬일과 10년에 걸친 노포 취재를 마친 박찬일 사이에도 좀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일단은 박찬일 독서는 이걸로 잠시 마무리를 하고, 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며칠 동안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잠시 행복했다. 나도 데뷔하던 시절의 생각이 나기도 하고, 살아온 순간들에 대한 반성, 아니 꽤 많은 반성을 했다. 

세 권을 읽고 짧은 느낌을 적자면.. 

박찬일의 노포책 이후로 나의 삶도 바뀔 것 같다. 사실 모든 책이 삶을 바꾸기는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게 없다면, 평론가의 눈으로 독서를 하느라, 정말 중요한 얘기들은 놓친 셈이 된다. 독서가와 평론가는 다른 사람이다. 평을 하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독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 책을 보는 것 아니겠나 싶다. 

책으로 내가 크게 바뀐 걸 곰곰이 되짚어보니까, 중학교 때 세익스피어 책, 대학원 때 허쉬만 책 그리고 50대 중반이 되어서 읽은 박찬일의 노포 책, 그런 것 같다. 허쉬만은 학위 받고 정말 허쉬만이 있는 연구소로 포닥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나이 많아서 이미 새로운 사람은 안 받는다고 하고, 그 다음으로 추천을 받았는데.. 그 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미국에 포닥가려고 했던 게 아니라 허쉬만에게서 뭔가 더 배우고 싶은 거라서. 그냥 짐 싸서 한국에 돌아왔다. 

박찬일은.. 

내가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최초의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 인생도 조금은 바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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