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책은 돈 주고 사서 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본다는 게 원칙이기는 하지만, 부끄럽게도 요즘 내가 보는 책 중의 상당수는 그냥 보내줘서 읽는 것들이 많다. 더 부끄러운 것은, 그렇게 나에게 오는 책을 다 읽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박스로 책들이 오는데, 잘 감당이 안된다.
그 중에는 좋은 책도 있고, 그렇게까지 좋아보이지 않는 책도 있는데, 그냥 받은 책에 대해서 혹평을 하는 게 미안하다.
그리고 더 힘든 게 그렇게 책이 만들어진 상태에서 오는 책만큼이나 파일로 된 원고로 된 책들도 많이 온다.
그런 책들을 하도 많이 보다보니까. 별 내용은 아니지만 팔릴 것 같은 책, 그리고 정말 좋은 책인데 그냥 묻힐 책, 그런 게 이제는 조금 구분이 된다.
가끔 추천사 부탁을 받을 때, 몇 줄짜리 추천사 대신에 해제 형식으로 좀 길게 나름대로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장 지글러의 빈곤에 관한 책이나 세계사에 관한 책이 대표적인 책들이었는데, 원고 상태에서는 도대체 한국에서 이게 얼마나 팔리겠나, 싶어서 나름대로는 좀 고민을 해서 해제를 달았는데, 반응이 썩 괜찮았던 경우이다. 내가 원고 보는 솜씨가 별로인가 보다...
2.
책 중에는 책 자체가 중요한 책도 있고, 책을 둘러싼 맥락이 중요한 책도 있다. 김예슬 선언의 경우는 책도 중요하지만, 그 맥락이 훨씬 중요한 책의 경우가 아닐까?
현각 스님이 엮어낸 <숭산 대선사의 가르침: 선의 나침반>이라는 책이 그런 경우이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지금 최대의 이슈 중의 하나와 직접 연관되어 있는 책이지만, 아마 그렇게 이 책이 한국에서 수용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현각도 그리고 출판사였던 김영사도, 그렇게는 생각을 안해봤을 것 같다.
3.
기독교에 관한 책은 꽤 많이 읽어봤는데, 불교에 대한 책은 나도 그렇게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다.
지난 10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의 책들은 편집 방식이나 디자인도 많이 바뀌었지만, 어투나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불과 10년만에 한국 책에서 생겨난 스타일 차이 역시, 좋거나 싫거나와 상관없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변화 속에서 본다면, 불교의 책들은 정말 올드 스타일, 여전히 한문체 혹은 언문체, 그래서 나도 읽는데 불편함을 가끔 느낀다.
야, 딱딱하다...
도법스님의 책들도 좀 그렇다. 직접 말씀을 들을 때는 정말 재밌는 얘기였는데, 책으로 바뀌면 엄청 딱딱하다.
그런 점에서 법정스님은, 불가에서는 드물게 스타일리쉬한 셈이고, 시대의 문법을 정말 기똥차게 포착한.
3.
숭산이 누군가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니, 숭산 얘기 하기 전에 숭산의 글을 엮어낸 현각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는 게 순서일지도 모르겠다.
'명랑'을 모토로 사는 나에게 그런 적이 있었을까 싶지만, 나에게도 우울증 중증 시절이 있었고, 아침에 눈만 뜨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그런 때가 있었다.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앞 부분에 딱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대기업에 가고 싶어 애타는 사람들에게 가끔 그 시절 얘기를 해주면, 별로 동감하는 눈치는 아니지만, 지금 대학생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바로 그 위치의 최정점에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해서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시절에 보았던 책이 단테의 <신곡>과 현각의 책이었다.
얼마 전에 본 다큐에서 하버드에 간 한국 학생들에 대한 얘기가 있다.
얘기는 간단하다. 요즘 난리치는 고등학교의 하버드 입학 열풍에도 불구하고 하버드에 간 한국 학생의 자살율이 너무 높아서 미국 교육당국에서 그 원인을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에 가는 것까지는 생각을 해봤는데, 막상 하버드에 가고 나니, 이제 뭘 하지? 그런 질문이 생겨났고, 그래서 자살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는 하버드에 갈 일이 두 번이 있었는데, 두 번 다 안 갔다. 갔다면 인생이 좀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을까? 어차피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이계안이 하버드에 1년 가 있었다. 자기는 즐겁다고 맨날 나한테 얘기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좀 별로였다. 요즘에야, 그 일이 후회된다고 얘기를 하두만.
하여간 현각은 한국에서는 인기 최고인 바로 그 하버드에 있었고, 하버드에서 숭산의 강연을 들었고, 그 길로 다 때려치고 불가에 입문한 사람이다.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불교계의 박노자인 셈이다.
현각이 <선의 나침반> 맨 뒤에 달아놓은 글이 있는데, 바로 명박이 들으면 펄펄 뛸, 광우병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서울을 떠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경북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길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숭산, 현각 그리고 광우병으로 통하는 이 얘기가 숭산의 책을 편역한 그 책 말미에 있다는 사실.
이게 지금의 한국 불교가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예전 내가 자살충동에 시달리던 시기에는 현각의 책을 읽으면서, 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딱 보자마자, 맞아 이거야,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당시 나는 내가 왜 사는지, 그 질문에 도저히 답할 수가 없어서 아주 괴로워했는데, 눈을 뜨면 그래도 출근을 하고, 외국으로 출장을 나가야 하고, 뭐 그랬다.
4. 숭산이 누구야?
세계 4대 성불이라는 표현이 몇 년전까지 유행했다.
달라이 라마, 틱탓한, 마하 거사난다 그리고 숭산.
한국에서 숭산을 물어보면, 아마 거의 모를 것 같지만, 불가에서는 배분이 엄청 높으신 분이다.
예전에는 법문으로 된 불경을 중국어로 옮겨오고, 그걸 다시 우리 말로 옮기는 그런 게 중요했었던 것 같다.
<쌍윳따 니까야> 등 최근에 법문을 다시 번역하는 게 유행이기도 하고, 선이고 혜능이고, 그딴 거 없고 다시 초기 불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그게 좀 유행이다.
나도 그런 유행에 빠져서 또 한참 그런 강의를 하기도 했었는데, 작년 가을에 법문으로 된 불경 공부 한참 하다가 문득...
그것도 덧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중아함경 같은 것을 잔뜩 쌓아놓고 읽다가, 어느날 든 생각이.
유행 다 덧없다.
하여간 49년, 고봉의 법맥을 이어받아 78대 조사가 되었는데, 국내 보다는 해외에서 선원을 설립하여, 외국에서는 엄청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뭐, 그런 사람 있나보다, 원래 스승들이 고향에서는 별 대접받지 못하는 편이니, 그렇게 간단하게 치부하고 넘어가기도 좋기는 한데.
숭산이 말년에 화계사에 있었고, 2004년에 화계사에서 입적을 하셨다.
자, 이제부터 노무현과 새만금 그리고 불교의 얘기가 나온다.
5.
딱 고만 때, 수경과 문규현 신부, 그리고 나의 아내의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내는 태권도 사범이고, 삼보일배 한참일 때 삼보일배단에서 스포츠 마사지 전담이었다. 고된 일과가 끝나고 마사지 하는 그런 게 일이었다.
나는 물대포를 제대로 맞은 적이 없는데, 아내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시절, 새만금 방조제 위에 올라가서 물대포 제대로 맞았던 적이 있다.
하여간 아내는 수경스님의 전담 트레이너였던 셈이고, 수경스님은 그런 여인과 결혼한 사람 그렇게 나를 알고 있다.
결혼은 그 뒤에 했다.
도법스님과는 불교에 대한 얘기도 꽤 많이 물어보고, 그랬던 것 같은데, 수경스님하고는 불교 얘기, 그딴 거 없다.
어떻게 하면 노무현이 새만금에 대한 생각을 돌리게 할 것인가, 맨날 그 딴 얘기만 했고, 삼보일배로도 안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느냐, 그런 불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만 했다.
아주 드물게 불교에 대한 얘기는, 봉은사가 어떻고, 화계사가 어떻고, 그런 부패한 사찰에 대한 뒷다마, 당취 얘기, 그런 정도.
6.
화계사는 큰 절이다 보니 금전 문제로 인한 부패가 아주 곤란했던 상황인데, 그건 봉은사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봉은사 개혁이 먼저 진행되면서 봉은사에 불교생협을 만들고, 그런 일에 나도 관여를 하게 되었다. 처음 봉은사에서 대중강연할 때가 기억이 난다. 맨날 지나가면서만 보았지, 여기서 강연할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하여간 그런 일이 생겼다. 이게 불교계에서는 아주 큰 개혁에 대한 흐름이었다.
안상수 선수가 요즘 봉은사 때문에 약간 곤경을 치루는 것 같은데, 사실 봉은사에서 했던 것은 안상수가 생각하듯이 그런 좌파 불교 그런 건 아니었고, 생명 불교로의 전환에 따른 유기농업 운동, 그런 게 본류이다.
다 새만금과 삼보일배에서 시작된 일이다.
하여간 막 그러던 시절, 화계사에서 숭산의 제자들이 모여서 숭산이 입적한 화계사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런 아주 길고 긴 회의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삼보일배의 여파로 무릎 수술 하고, 장애인 수첩 나왔다고 좋아하던, 지리산 선방에 다시 처박히겠다는 수경을 들어다가 화계사 주지로 앉힌 것이다.
수경이, 부패는 하지 않을 거 아녀...
숭산 선원, 나이스 샷!
내가 마지막 타본 마티즈가, 수경스님이 화계사에서 부르셔서 갔더니, 동네 마실이나 나가자고 어느 신도분이 운전해주시던 차에 같이 탔던 것이다.
화계사 주지쯤 되면 뭐 벤츠 정도야, 할 사람이 있겠지만, 진짜 마티즈였다.
어떤 단체에 후원금 내야될 일이 있었는데, 진짜 여기저기 부탁해서 꼬깃꼬깃 만원짜리들로 겨우 얼마를 모아서 후원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후원받은 단체에서는, 수경스님이 돈을 너무 적게 주셨다고 불평을 해서, 간만에 내가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도대체 그 돈이 어떻게 생겨난 돈인지 알기나 하느냐!
화계사 주지를 근접 거리에서 모시면서, 정말 맛잇는 간장 한 병 얻어먹은 적이 있고, 손수 그림과 글씨를 쓰셔서 코팅한 걸로 설날 선물로 받은 적이 있고.
다른 건 몰라도 수경이 부패는 하지 않을 거다...
이게 숭산의 제자들이 수경을 화계사 주지로 모시면서 했던 생각으로 알고 있다.
그 수경이 바로 촛불집회 때 열렸던 대법회에 개회사를 하셨던, 바로 그 장애인 스님이다.
그런 수경에게 나도 꼭 하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 번도 못했던 말이 있다.
스님, 녹색당 당원 좀 하시지요...
차마 나도 그런 말은 못했다.
하여간 숭산선원에서 화계사 주지로 수경을 모셔오면서, 지리산 뒷방에서 10년간 면벽이나 하고 분파는 물론 제자도 거느리지 않던 수경이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족보를 따지자면, 수경은 해인사에서 성철을 모시던 성철의 직계 제자이기는 하다.
해인사 청동불 사건의 바로 그 '토깽이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그로 인해서 해인사의 토깽이 제자들에게는 '죽일 놈'이 된 바로 그 양반이기도 하다.
7.
요즘은 수경이 4대강에 대한 참회를 한다고 여주 남한강 앞에 콘테이너 갔다놓고 계신데, 삼보일배 후유증이 있어서 그 안에서는 못 주무시고 그냥 노숙을 하시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다음 주에 한 번 찾아뵙기로 하고, 읽으실만한 책이 뭐가 있나 이것저것 뒤적거리던 중에...
딱 <선의 나침반>이 걸렸더라, 그래서 식탁에 앉은 길로 쭉 읽었더라...
한국 불교의 힘은, 아직 부패하지 않은 제자들이 남아서, 힘과 권력을 탐하지 않고, 초기 불교의 가르침대로 가난하게,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살아가는 게 남아있더라, 그런 거 아닐까?
가만히 앉아서 따져보니, 성철의 법통과 숭산의 법통이 지금 한나라당에서 좌파 주지라고 하고, 촛불집회 때 개회사했던 그런 사람을 화계사 주지에 어떻게 앉혀놓을 수 있느냐하지만.
숭산의 제자들이 수경을 그 자리에 앉혔고, 진짜 장애인 수첩 외에는 딸랑 아무 것도 없는, 진짜 가난한 스님이 화계사 주지이고, 그 주지는 지금 남한강변에서 노숙을 하고 계시더라...
8.
<선의 나침반>은 원래 영어로 쓰여진 책이고, 그래서 외국인들을 위한 불교 입문서이다.
불교를 처음 접하면, 불가의 사람들은 다 줄구장창 입에 달고 다니는 얘기들인데, 저게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는 말들이 좀 있다.
딱 그거, 정말 입문서용으로 불교에 대해서 궁금했던 이것저것, 딱 고렇게 되어 있다.
한 번쯤 읽어두면 재밌을 얘기이기도 한데, 책 보다도 이 책을 둘러싼 얘기들이 현재 진행형의 한참 클라이막스로 가고 있는 얘기라서.
한나라당에서는 화계사의 수경을 끌어내리려고 할텐데, 그러면 숭산의 제자들, 그야말로 세계 4대 성불의 직계제자들과 일전불사를 치루어야 할텐데, 그게 만만치는 않아보인다.
4대강과 불교의 싸움은, 카톨릭의 경우와 달리, 세계적인 선불교의 법통을 이어가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하버드의 동양철학 전공자들을 비롯한 전세계 선불교와 한나라당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천주교도 이번에 마음 단단히 먹고 마지노선을 치고 있지만, 불교계도 만만치 않다. 돈으로 간단하게 이미 매수해버린 조계사 총무원과는 또 다른 불교의 법맥이 있는 셈이다.
성철의 제자들, 법정의 제자들 거기에 숭산의 제자들, 불가는 방송국과 달리 사장만 장악하면 간단히 '9시 뉴스'로 장악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이사회 구조가 아니다.
여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또 오래된 숨은 힘들이 몇 개 더 있다.
한나라당이 불교를 KBS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 게... 한국은 좋으나 싫으나 불교의 나라이다. 그 천년을 넘은 법통이, 어찌 조계종만 장악하면 된다고 생각했누...
책을 다 읽기 어려우면, 뒤에 실린 현각의 글이라도 읽으시기 바란다.
한나라당 조기유학파들이 그렇게 숭배하는 하버드 출신의 현각 스님이 광우병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주 잘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