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인사이더>가 있다. 담배회사에서 담배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담배 안에 섞은 사건인데, 이 사건을 sixty minutes라는 프로그램에 올리기 위해서 PD와 퇴직 부사장이 겪게 되는 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알 파치노가 좌파 성향의 PD로 나오고, 러셀 크로우가 천식인 딸을 위해서 의료보험을 포기할 수 없어 고등학교 과학교사가 되는 전직 부사장으로 나온다. 아마 내 인생에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친 영화로 남을 것 같다.

 

이 영화가 슬펐던 것은, 그렇게 오랫동안 사회가 만든 PD와 과학자가, 이 사건을 끝으로 방송을 떠나거나 과학 연구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공공의 적 2>에, 마지막 쯤에 검찰총장에게 서울검찰청장이 자기 자리를 걸고, 수사를 보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출국하려는 범죄자의 출국을 막기 위해서 했던 대사 하나가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왜 검사들이 나쁜 자들보다 늘 24시간 늦는 겁니까?"

 

김용철 사건이 났을 때, 좀 조용해지면 <인 사이더> 혹은 비슷한 내용으로 내부고발자 사건들에 대해서, 그 중 경제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바빴다.

 

왜 우리는 늘 한 발 늦고, 늘 뒤통수를 맞는 것일까?

 

이 질문은, 답하기가 쉽지 않다.

 

2.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교보에서 산 일이다. 밀린 일들이 많았고, 공식적 일정이 많았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다른 일들을 제치고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아마 이 책을 당분간은 10권 이상은 살 것 같다.

 

이상은의 앨범들을 선물로 오랫동안 사용했었는데, 그런 내가 주로 사용하는 선물 리스트에 이 책이 맨 앞을 차지할 것 같다.

 

3.

삼성에서 법무팀을 꾸리고 현직 검사를 영입했다는 소식을, 나는 현대에 있던 시절에 들었다.

 

김용철이 있던 시절, 나는 현대에 있었고, 그만큼 핵심 자료들을 다루고 있지는 않았지만, 역시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99년에 현대에서 나왔다.

 

IMF 경제위기와 국민의 정부 출범, 그 한가운데에서 나도 참 못볼 꼴 많이 보았다.

 

워낙 돈단위가 큰 재경 쪽에는 모피아라는 이름으로 그 이름이라도 붙어있지만, 양상은 돈 단위, 즉 '오더'만 달랐지, 김용철이 우리에게 보여준 그 법조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큰 도둑, 작은 도둑이 따로 있을까...

 

나는 우리나라에 김용철 같은 인사이더들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4.

공직 생활 동안에는, 나는 삼성과는 내내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너무 보여지는 이미지 사업들만 하고, 실제로 필요한 기술투자는 잘 안한다는 게 내가 가지고 있던 불만이었다.

 

삼성전자의 몇 가지 내부 설비와 현대자동차의 에너지 맵 같은 데에 불만이 있었고, 이걸 제대로 좀 해보고 싶었는데...

 

내 접근은 곧잘 차단되고는 했다.

 

한 번은, 큰 맘 먹고 타워팰리스의 몇 가지 시설 문제에 대해서 살펴볼려고 했는데...

 

내 상관 중의 한 명이 여기의 아주 큰 평수 아파트의 분양을 받았다고.

 

아 놔, 더러버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와도 한바탕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아는 것들은.

 

이제 그만둔지 7년이 지나는 데에도, 그 수많은 마피아 집단들이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늘 마음이 편치는 않다.

 

5.

아마 삼성이나 검찰 혹은 법원에서 김용철의 책을 본다면, 일부는 아주 눈쌀이 찌뿌려지겠지만.

 

몇 가지 기술적인 얘기들, 예를 들면, 자수하면 감면한다는 방식을 경제범죄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 외에는, 대체적으로 풍문으로 떠돌던 것들을, 김용철이 실제로 그러하다고 확인해준 것에 가깝다.

 

분식회계와 관련해서는 엔론 사태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다.

 

김용철의 글은, 대체적으로 편안하게 읽히는 편이다. 그동안 맘 고생을 많이 했을텐데, 이렇게 차분하게 써내려갈 수 있다니, 놀랍기마저 하다.

 

6.

앞으로 삼성이 변하게 될까?

 

언제 부터인가... 내 기억으로는 IMF 경제위기가 지나고 2~3년 이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삼성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국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70~80년대에 간첩을 조심하는 것만큼이나 국민들은 삼성을 조심하게 되었다.

 

이게 영, 나라 꼴이 아니다.

 

지난 2~3년 동안, 한국에서 내재화된 공포는 삼성과 조선일보인 셈이다.

 

이 두 가지를, 아마 국민들의 절반 정도는 무서워하거나 가끔은 그 무서움을 뛰어넘어 혐오하거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이게 제대로 된 나라 꼬라지가 아니다.

 

삼성과 조선일보를 비교하면.

 

삼성처럼 강력한 조직 문화 속에서도 내부 고발자가 나왔다. 조선일보에는, 아직은 없다.

 

그만큼 독특한 기업 내의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고, 삼성 이상으로 균질적이며, 구조본보다 더 뭔가를 잘 한다고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육해공군, 경찰, 검찰, 어떤 식으로든 내부 고발자가 나왔다.

 

금융과 관련해서는 이런저런 경로로 얘기들이 많이 흘러나와서, 더 이상 한국은행이 어떤 식으로 통제되고 있고, 주요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이제 비밀도 아닌 상황이다. 정작 한국은행 당사자들만, 얘기하면 큰 일 난다고 쉬쉬.

 

7.

김용철의 책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은 자신과 자신의 삶 혹은 주변에 관한 것들을 생각하게 해볼 것 같다.

 

큰 비리와 작은 비리, 큰 결탁과 작은 결탁.

 

과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혹은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8.

전직 공무원들이 로펌 고문으로 가는 것은, 요즘도 흔한 관행처럼 되었다. 도덕심이 꽤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이런 데에 대해서는 별로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다.

 

크고 작은 비리 혹은 그와 연결될 것들이, 아직 이 사회에 너무 많고, 명박 정부 이후로 오히려 '매관매직'이 횡행하는 것을 가끔 목격하고는 한다.

 

참 안 보고 싶은데, 자꾸만 보인다.

 

가슴이 여전히 무겁지만.

 

'진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말을 얼마 전부터 종종 생각했는데, 이 표현이야말로 김용철에게 아주 적합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국제적 기준으로만 말하자면.

 

삼성에 노조가 생기고, 분식회계가 정리되어야, 이 모든 일들이 한 번쯤은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 참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는데.

 

삼성도 이제는 이 정도의 국제 기준 정도는 지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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