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워낙 민감해서 나도 어지간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매릴랜드 대학인가, 하여간 행복경제 전공하는 어느 교수가 오바마 당선과 함께 진보센타의 간부로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벌써 1년 가깝게 되는데, 그 이후에 새로운 테제가 나왔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어쨌든 '행복'을 계량적으로 접근해서 지수를 뽑아내는 것을 주제로 하는 경제학이 최소한 10년 전부터 등장해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행복경제학 공부한 사람이나 전공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는 있다. 가끔 코멘트 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는 하는데, 나도 행복의 계량기법에 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른다고 하고 도망간다.

 

<행복경제 디자인>이라는 책은, 행복 경제학과는 아무런 상관은 없는 책이다.

 

이 책은 얼마 전에 한국사회경제학회가 참여하는 공동학술대회에 구경하러 갔다가 그냥 나오기가 미안해서 사들고 온 책이다. 학회비 안 내기 시작한지도 꽤 되는데, 그 동안에 나도 멜 주소가 여러 번 바뀌어서 학회비 내라는 얘기를 안한다. 어차피 자주 나가지도 않는 학회인데, 그냥 모르겠다... 고 뭉개는 중인데, 그렇다고 마음에 미안함 마저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이 책은 대구에서 석학강연 시리즈로 진행된 여섯 개의 강연을 책으로 모은 것이다.

 

이정우, 김윤상. 김유선, 김수행, 장상환, 이병천, 이렇게 6명의 강연이 모여있다. 이 정도면, 한국 진보의 state of art라고 할만하다 (좌파의 state of art는 아니고.)

 

김윤상 교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분들은 평소에 어떤 얘기를 주로 하는지 잘 아는 편이고. 김윤상은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역시 도시계획학 분야에서 도시공학적 접근을 하지 않는 시각에 대해서는 익숙한 것들이고.

 

김수행 선생과는 지승호의 김수행 인터뷰 작업 중에 대담자로 같이 만난 적이 있어서 최근의 생각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하게 들을 기회가 있었고. 이병천 선생과는 폴라니 학회를 만드는 것과 관련해서 이것저것 건네들을 기회가 있었고.

 

그러다보니 이 책에서 내가 잘 모르던 얘기를 비교적 소상하게 볼 기회가 된 것은 이정우 선생의 경우이다. 이정우... 노무현 초기에 정책에 관한 평가에서 빼놓고 넘어갈 수 없는 인물이다.

 

1년 전인가, 사회평론에서 부탁받은 글에서, 한 절을 노무현 시절의 정책실장들에 대해서 비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잡지사에서는 비판이 너무 민감한 내용이라고 수위조절을 좀 해주면 좋겠다고 했었고, 나는 기분이 팍 나빠져서, 절 하나를 통으로 빼버리고 엄한 얘기들로 다시 보내준 적이 있었다. 스노비즘에 관한 글이 다소 맥 빠진 글이 되어버린 것은, 하일라이트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실장에 대한 비교가 빠져서 그렇다.

 

노무현 초기 시절의 이정우-정태인 라인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이게 사실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정태인 선배와는 몇 번 얘기한 적이 있다. 류종일 선배와는, 당시에 환경운동연합에서 주관을 해서 토론회를 기획하기는 했었는데, 그가 중국에 안식년을 급하게 떠나게 되어서 일정상, 그 기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기회가 없어졌다.

 

만약 토론회에서 만났다면 물어보고 싶은 몇 가지 얘기들이 이정우의 강연에 거의 대부분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아, 그랬구나...

 

나도 궁금하던 것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과연 노무현 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기회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오면서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이라는 자리를 없앴다. 그러다보니 정책의 프레임을 끌고 가는 핵심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게 정부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첫 정부가 출범할 때, 곽승준이 그 비슷한 역할을 했었는데, 자산이 100억원이 넘는다는 사실과 농지투기에 대한 건 등으로 그가 계속 흔들리다가, 결국 촛불집회 때 청와대에서 나오고 이후로는 외곽 단체에서 계속해서 집권세력과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참여정부 시절처럼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자리가 계속 있었다면, 지금의 곽승준이 예전의 이정우의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데.

 

김수행이나 장상환이나 평소에 목소리를 일반인들이 잘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현 시점에서 한국을 보는 눈, 그런 것들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진보의 스타학자라면, 최고의 스타학자들을 모아놓은 책이기는 한데...

 

별로 팔릴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면, 내가 출판사를 직접 만든다고 하더라도 이분들의 글을 원고로 받아서 출판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배분으로 치면 맨 상위의 배분들이고, 원고 빨리빨리 안 쓰기로도 또 유명한 분들이기는 한데.

 

이 정도를 모아놓았는데도, 책은 어지간히도 안 팔리는 모양이다.

 

이게 강연이라는 형식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보의 정책이라는 게 워낙 안 팔리는 아이템이라서 그런지... 질문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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