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국가' 한국일보 서평. 아무 생각 없이 주말이 왔다. 서평이 생각보다 많이, 아니 아주 많이 나왔다. 보통 한두 개 받기도 어렵다. 전혀 서평 없던 적도 꽤 있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이번에는 진짜 많이 나왔다. '88만원 세대'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사회과학은 그 사이, 장르 자체가 무너졌다. 그래도 좀 더 버텨볼 생각이다..
저출생 책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 잡았던 제목은 “모두의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였다. 한국에서 저출생 문제에 해법을 찾기 어려운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는 문제라고 보았다. 지금도 이게 가장 정직한 책의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책의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처음에 했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요즘 인기도 없고, 책도 잘 안 팔리는 비리비리한 저자다. 고집만 세울 일이 아니라는.. 자신과 패기 결여.
결국 본문 내용 중에서 사용했던 컨셉 중의 하나인 “천만국가”가 최종 제목이 되었다. 아주 간단한 약간의 계산을 통해서 나온 숫자이기는 한데.. 이게 얼마나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비교적 정직한 제목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계획을 잡고 한 것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까 법무부 장관 시절의 한동훈이 했던 정책들을 좀 자세하게 분석하게 되었다. 원래의 의도는 한국의 보수 혹은 지배층이 저출생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단면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래저래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데, 이 책은 지금 고치고 있는 죽음 에세이랑 일종의 쌍둥이 책이 되었다. 영유아와 어린이들에 대한 얘기가 저출생 책에 들어가게 되었고, 늙어서 죽음을 준비하게 되는 노년들의 얘기가 죽음 에세이에 들어가게 되었다. 흔히 이걸 합쳐서 저출산 고령화하는 무감각한 용어로 하나로 놓고 얘기하는데. 일부러 처음부터 그렇게 준비한 건 아닌데, 하다 보니까 한 부분의 얘기가 각각의 책에 들어가서, 두 권이 같은 현상을 좀 다른 각도와 다른 주제로 얘기하는 쌍둥이 책이 되었다.
나중에 저출생 책 고치면서, 죽음 에세이의 핵심 결론을 이쪽으로 당겨오면서 그 책은 앙꼬 빠진 찐빵처럼 되었다. 그래서 전면적으로 새로 고치는 작업을 지금 하는 중이다.
저출생 책부터는 나도 분위기도 바꾸고, 스타일도 바꾸기 위해서 그야말로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그렇다고 사회과학이라는 장르에서 해볼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2016년부터인가 같은 저자 소개를 썼는데, 이제 시대 흐름에는 안 맞는 것 같았다. 저자 소개라도 전면 개정.
사실 요즘 내 형편이 변두리 저자와 다를 게 별로 없다. 나도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좀 더 변두리스럽게, 좀 더 주변부답게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제 현실이 그렇다. 그렇다고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그건 또 어렵다. 둘째가 입원한지 이제 한 달이나 될까. 아직은 내 손이 많이 필요하고, 나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형편은 아니다. 변두리스럽고, 그렇다고 ‘바지런’ 떨지도 못할 형편, 그냥 그 상황에 맞게, 그렇게 B급 정서에 좀 더 가깝게,.
아내가 지방 출장이다. 요즘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냥 저녁은 외식하기로 했다. 둘째는 요즘 호흡기 강화 차원에서 수영장에 다닌다. 갈 때는 알아서 가는데, 올 때는 저녁 시간이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그냥 데리러 간다. 하여간 거기는 식당이 많아서 안 가본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나도 잘 모르는 곳이다. 술 마시러는 종종 갔지만.
날도 추워서 오래 돌 수가 없어서 곱창 전골 먹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이제는 곱창전골도 잘 먹는다. 어렸을 때 매운 걸 먹지 못하니까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그리하야 곱창전골을 시켰는데.. 망했다. 반찬은 매운 김치 밖에 없어서 어린이들은 못 먹고. 곱창전골은 순한 맛을 시켰는데, 이거.. 내 입에도 맵다. 두부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좀 나을텐데, 없다.. 어린이들이 맵다고 하면서 겨우겨우 먹는데, 미안해서 죽을 뻔 했다. 그래도 좀 덜 매운 곱창만 다 집어서 어린이들 줬다. 어린이들이 물 한 통 다 먹고, 더 시켜서 마셨다.
애운 데 맛있다고 하는데.. 그냥 미안할 뿐이다. 완전 폭망! 맵기 조절에 실패. 와 봤으면 양념 좀 덜어달라고 하면 되는 건데. 돌아오면서 근처에 다슬기 해장국집을 봤다. 다음에는 저기 오자, 그랬더니.. 큰 애가 처음에 자기가 저기 가자고 했는데, 내가 별로일 것 같다고 했단다.. 아참, 그랬지. 더 미안해졌다. 오늘의 선택 곱창전골, 완전 실패.
도서관 경제학 후반 작업을 위해 잠시 쉬는 동안 죽음 에세이의 맨 앞에 올 글을 새로 쓰는 중이다. 톤도 바꾸고, 거의 다시 쓰는 수준의 대대적인 전면 개편을 위해서는 새로운 스타일을 잡아야 한다. 그렇게 잠시 쉬면서 도서관 얘기들을 일단 털어놓으려고 하는 게 지금 하는 일의 목표다. 책을 쓰다 보면 너무 책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평소 같으면 꼭 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했을 것도 책에 과몰입하면 안 보이게 된다. 집중도가 너무 높으면, 다른 걸 더 열심히 하면 좀 해소가 된다.
첫 번째 글은 ‘개막장’을 모티브로 썼는데, 쓰다가 좀 아닌 것 같아서 날려버렸다. 스타일에 대한 얘기인데, 스타일을 스타일로 보여줘야지, 이렇게 하겠다. 이게 좀 불안한 접근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포기.
결국 40대의 이혼 얘기로 다시 출발을 했다. 원래 이거는 젠더 경제학에서 핵심으로 쓰려고 뒀던 얘기이고, 그 일부는 본문 중에 있기도 한데.. 모르겠다. 일단 빼서 쓰기로 했다. 이 얘기의 제대로 된 활용도는 지금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뒤에 책에서 쓸려고 꼬불친 얘기들을 앞에 책에서 당겨 쓰는 경우가 종종 생겨난다. 지금 하는 축음 에세이의 추가 작업도, 원래 여기의 클라이막스에 들어간 얘기들을 며칠 후에 나올 저출생 책에서 빼가서 생겨난 일이다. 그야말로 양꼬를 통째로 빼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저출생 책에서 그 얘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먼저 나올 책에 최선을 다 하고, 다음 책은 그때 가서 해결한다.. 이렇게 뭄부림을 치면서 벌어진 일이다.
어지간한 얘기로는 그 빈 공간이 메워지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영끌 하듯이 이것저것 다 긁어모아야.. 그러다보니까 다음 책에서 쓸 거를 일단 들고와서 채워넣게 된다. 글 한 덩어리가 몇 년에 걸쳐서 만들어낸 것이라서, 단기간에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얘기가 금방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몇 년 동안 같은 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얘기 하나가 형성이 된다. 나는 절 단위로 고민을 하는데, 금방금방 새로운 생각이 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하여.. 죽음 에세이의 첫 번째 글은 ‘40대 여성은 왜 이혼을 고민할까?”이런 제목을 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