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아하지 않은 시대

 

가난한 건 참겠는데, 우아하지 않은 것은 좀 참기가 어렵다. 회사에서 품위유지비라는 걸 지급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로 품위가 유지되지는 않을 것 같다. 우아하다는 것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가끔 그런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덕지덕지 처바른 럭셔리 제품으로 우아함이 생겨나는 건 아니다. 그냥, 돈 좀 많겠네 혹은 별로 현명하지 않은 소비를 하는군,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돈으로 우아함을 사기는 어렵다.

 

좌파들은 가난해서 그런지, 우아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사는 게 힘드니까 최소한의 자기 존엄성 마저도 지키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생계형 전향이라고 쉽게 표현하지만, 막상 그 결정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손가락질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나도 그 상황에 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감정과 논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복합적이다.

 

하여간 대선에서 승리한 후, 이제 한국은 보수들의 영구집권에 대해서 걱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듯 싶다. 그 실력으로 영구 집권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야당 하는 거 보면,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면서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하여간 야당은 존재감 없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무게감 있는 개인이 툭툭 찔러주는 그런 맛도 요즘은 없는 듯 싶다. 한동안 진중권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는데, 그도 지친 것인지, 아니면 아직은 타이밍이 아닌 것인지, 의미 있는 반대추 역할을 해주는 개인도 거의 없는듯 싶다.

 

얼음왕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손석희의 경우는, 일종의 거울과도 같았다. 그 스스로 뭔가 얘기를 하기 보다는, 그에게 비치어진 사람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박근혜의 지금 저와 싸우시자는 건가요?” 등 주옥 같은 어록들이 손석희의 거울에 비치면서 툭툭 튀어나왔다. 그런 그가 이제 JTBC로 옮겨간다. 나는 그가 종편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가 MBC 사장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마도 당분간 벌어지지 않았다. JTBC에서 얼마나 좋은 대우를 약속했을까, 그런 것도 한 가지 시선이지만, 새로운 MBC 사장이 또 얼마나 달달볶았거나 아니면 달달 볶을 것이 예상되었을까, 그런 게 또 다른 시선일 수 있다. 그라고 해서 JTBC로 옮겨가면서 마음이 편했을 것인가?

 

하여간 상황이 이러다 보니, 새누리당의 질주에 대해서 마땅히 견제구를 던질 세력도 없고, 그럴 위인도 안 계신다. ‘님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식상에서 쓰느니 마느니, 그런 논쟁이나 하고 있고. 그 정도는 승자의 아량으로, 좀 너그럽게 넘어가주면 안되나?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목포의 눈물도 금지곡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그런 얘기가 나올 정도 아닌가?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느닷없이 터져 나온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 이거 누가 시킨 사람도 없고, 사주한 사람도 없다. 미국 한 가운데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가 알 턱도 없고, 시시콜콜하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그야말로 자기들끼리 알아서 좌충우돌, 자승자박, 뭐 그런 형상인데, 참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방이 너무 우습게 보이니까 자기네들 하고 싶은 데로 막 하는 셈인데,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올라갈 때에는 내려올 길을 조심해라, 그런 말이 있는데, 워싱턴 갈 때에는 귀국길을 조심해라, 그렇게 변형해서 써도 좋을 정도이다.

 

앞으로 5, 뭐하고 이 시간을 보내나 싶었는데, 심심하지는 않을 듯싶다. 상상초월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묘한 전율감도.

 

꼬질꼬질’, 선거에 패배한 사람들의 삶은 대체적으로 꼬질꼬질해졌다. 진 것도 진 것이지만, 하여간 경제의 전환이 늦어지면서 먹고 사느라고 좀 꼬질꼬질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우아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도 역시 진흙탕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듯 싶다. 너무 아무 것도 없어도, 너무 많아도, 문제는 문제다. 견제자 없이 권력과 금권을 온통 틀어쥔 자들이 할 수 있는 게 너무 뻔하지 않은가?

 

이래저래, 참 우아하지 않은 시대를 우리가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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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takE 방송후기 20. 개성공단편

 

 

 

개성공단 문제가 요즘 점입가경이다. 과연 10년만에 문을 닫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가능성을 아직도 열어놓고 있는 것일까, 그 분기점에 서있다.

 

오늘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그리고 유창근 기업협회 대표가 키맨으로 나왔다. , 박근혜 주변에 별이 14개라나, 수없이 많은 장군들이 내리는 선택이 너무 눈에 보이기는 한다. 요즘 청와대에서는 사람은 민간인과 군인으로 구분된다는 농담이 있다나 어쩐다나.

 

하여간 유창근 대표의 얘기 중에는 재밌는 얘기가 많았다. 해마다 삼봉천에서 이맘때쯤이면 쑥을 뜯어먹었는데, 그게 먹을 게 없어서 쑥을 뜯어 먹고 있더라는 얘기로 와전되었다는 둥.

 

워낙 초기에는 업체들이 상황을 파악을 제대로 못해서 식자료 반입이 필요하다고 얘기는 했는데, 남측 근로자 및 북측 근로자들이 대거 철수하면서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한다.

 

우리 측 업자들 중에서는 이대로 가면 끝장이라고 숨어서 잔류하려던 사람도 있었던 모양인데, 북한측에서는 괜히 인질 잡고 있다고 오해 받기 싫다고, 그 쪽에서 찾아서 같이 내려가게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평화의 경제적 가치, 예를 들면 인천의 자유무역지구의 경제적 효과, 그런 것들에 대해서 좀 진지하게 계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고고, 내 몸이 너무 무거운 게 문제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쨌든 대통령의 테이블 위에 모든 결정이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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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울 혹은 서울 인근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이다.

 

학자로서, 오기가 들 정도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도시이다.

 

그리고 여기 왔다 갔다 하면서, 참 많은 돈과 시간을 들였다.

 

마린시티, 다시 많은 것을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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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로 산다는 것

 

사람한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경제학자로서의 내 삶은, 그 많은 모습 중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감정이 가장 많이 움직인 것은, 마당에 살던 고양이들과의 삶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녀석들을 데리고 이사를 오고, 그들이 무사히 정착한 모습을 보여줄 때까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나 감정의 크기가 삶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고양이들에게 많은 감정을 주었다고 해서, 내 삶이 고양이를 돌보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고양이를 몇 마리를 돌보고 있든, 나는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가장 많을 때는 막 태어난 새끼들까지, 8마리의 고양이를 동시에 돌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경제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은, 내가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내려 놓기로 오래 전부터 결정해놓고 있던 시기였고, 또 그 시간만을 기다리면서 지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경제학자라는 말은, 직업과는 좀 다른 의미이다. 수치를 표고, 자료를 보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수치를 찾아내거나 관계를 뒤집어본다. 그게 내가 주로 하는 일이다.

 

한국의 언론과 기사는 광고주 혹은 스폰을 보면 90% 이상 읽힌다. 누가 뒷돈을 대느냐, 그것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말이 결정된다. 뒤집어서 말하면, 스폰 관계만 읽으면 90% 이상의 진실은 그냥 먹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아파트 분양 광고를 전면에 내고 있는 신문에서 부동산에 대한 상식적인 진단을 내리겠는가? 이건희에게 월급을 받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삼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자체를 위한 얘기를 과연 몇 퍼센트나 하겠는가?

 

그런 고통 속에서, 과연 누구를 위해서 생각을 하고, 어떤 사실을 말할 것인가, 그런 게 학자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긴장감이다. 약간만 눈을 감고, 조금만 뉘앙스를 흐뜨리면 사는 건 아주 편하다. 그렇게 살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

 

그 생각을 속으로만 할 수 있고, 한다고 하더라도 술자리에서 아주 절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얘기할 수 있다. 술이라는 핑계, 지인 사이의 농담이라는 안전장치, 그렇게 겹겹이 안전장치를 만들어놓고 얘기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아무 얘기도 안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학자의 삶이다.

 

물론, 아주 쎄게 얘기할 수 있고, 아주 살살 얘기할 수는 있다.

 

그런 삶은 그만 살고 싶었다.

 

돈은 아주 조금만 벌고, 소비도 아주 조금만 하고.

 

하여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경제학자로서의 삶은 이제 그만 살려고 하던 원래의 생각을 조금 바꿨다. 엄청나게 고강도는 아니고, 아주 살살, 아주 가늘게, 뭐가 맞고 틀리다, 그런 경제학자로서의 얘기를 조금 더 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한 가지 있고, 이제 이재영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영은 내 삶과 생각을 바꾸어놓은 친구이다. 언제 바꾸었는지도 몰랐는데, 지나 보니,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재영은 명랑했고, 밝았고, 그리고 진보가 집권을 한 순간을 위한 준비를 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바로 선거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재영의 그런 주장을 믿었던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젠장. 삶의 타이밍은 언제나 예술이다.

 

이재영이 장지로 떠나는 날, 그날이 바로 문재인 후보의 두 번째 광화문 유세가 있던 날이었다. 명목상으로 그의 공동 장례위원장 중의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려놓았는데, 그의 마지막 길에도 역시 나는 같이 하지 못했다. 삶이, 왜 맨날 이런가!

 

이재영의 친구들은 꼬질꼬질해졌고, 그가 지지했던 사람들의 삶은 남루해졌다. 그렇다면 이재영의 꿈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재영과 우리가 꾸었던 꿈에 대해서 5년만 더 같이 생각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재영을 위해서 나의 평생을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존경했던, 그리고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리고 늘 밝았던 이재영을 위해서 경제학자로서의 활동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이재영이 누구야?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레디앙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유는 이재영 때문이었고, 이 책의 마지막 교정교열을 보면서 내가 마지막으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게 도와준 담당 에디터가 바로 이재영이었다.

 

,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경제학자로서 조금 더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영이 꾸었던 꿈을 대신 이루어줄 수는 없지만, 그의 꿈이 그냥 땅바닥에 팽겨쳐지는 것을 친구로서 그냥 보고 있고 싶지는 않다.

 

하여간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경제학자로 살아가기’, 이 삶을 조금 더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명박, 박근혜, 10년 정권을 보내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전향하지도 않을 것이고, 화려한 자리를 맡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꼬질꼬질하게, 고통과 비극 그리고 무기력함을 사람들과 같이 보낼 것이다.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분석도 하고, 발언도 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정권의 사람들은 참 나를 싫어했다. 명박 정권 때, 아마도 힘 있는 사람들은 나를 끔찍이 싫어했던 것 같다. 청와대 홍보 쪽인가, 하여간 그런 데서 나온 얘기가 돌고 돌아 결국 입 조심하라는 협박 비슷한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다. 박근혜 시대의 실세들, 역시 나를 싫어할 것이다.

 

그게 경제학자의 삶이다.

 

아마 어떤 정권이 오더라도, 그것이 이재영이 꿈꿨던 정권이 아니라면, 나는 늘 핍박받고 견제받고, 때때로 사이비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학자로서의 삶 보다는 고양이들을 돌보는 어느 아저씨의 삶이 더 좋다. 그리고 영화 기획자나 시나리오 작가 혹은 동화 작가로서의 삶이 더 좋다.

 

그러나 5년간은, 경제학자로서 살아갈 생각이다.

 

내 친구 이재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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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고양이들, 풀어주다

 

지난 집에서 이사 오면서 마지막으로 고양이들을 전부 잡은 것은 크리스마스 날 오후였다. 엄마 고양이와 강북걸은 금방 잡혔는데, 열흘 넘게 바보 삼촌이 애를 먹이고 있었다. 엄청 추운 날들, 시간을 맞춰가면서 겨우겨우 열흘 넘는 시도만에 겨우 바보 삼촌을 잡았다.

 

그리고 긴 겨울을 지금의 집에 설치한 케이지 안에서 보내면서 언제 풀어줄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케이지 안에서 고양이들 화장실 치워주고, 여기저기 싸놓은 똥들 정리하고, 최소한의 청결이라도 유지하느라고 엄청 애먹었었다.

 

이제는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몇 주 전부터 내가 케이지 안에 들어가는 것을 바보 삼촌이 엄청 싫어하면서 좀 심하다고 할 정도로 하악질을 했다. 문을 열기 위해서 잠금쇠를 풀 때마다 바보 삼촌의 발톱을 피하기 위해서 좀 신경을 썼어야 했다. , 이 정도로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적으로 나오는 바보 삼촌이라면, 기억도 나지 않을 예전 집으로 무작정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더 이상 케이지가 자신들의 집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일은 없을 듯 싶었다.

 

두 번째 이유는, 위생상의 문제였다. 세 마리가 화장실을 같이 쓰는데, 매일 치워주어도 엄청나게 쌓이는 배설물을 깨끗하게 치워줄 수 있는 물리적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좁은 케이지에 모래가 흩어진 곳들에다 고양이들이 배설을 하는데, 그것도 고양이들 놀랄까봐 매번 치워주기가 어렵다. 겨울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케이지 안에서 위생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몇 주를 고민하다가 드디어 오늘 케이지 문을 열어주었다. 처음 열어주었을 때에는, 전혀 케이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물과 사료를 주었다. 녀석들은, 열린 문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한참 후 다시 열어주었다. 그리고 잠시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5분 후, 케이지 안에 더 이상 고양이는 없었다. 이제 그들은 문 밖으로 나가는 선택을 한 것이다. 이곳에서 살지, 아니면 예전에 살던 곳을 죽어라고 찾아갈 것인지 혹은 또 다른 선택을 할지, 하여간 그들은 나갔다.

 

그리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느낌과 상상으로는, 케이즈 바깥부터 천천히 관찰을 하고 그렇게 활동범위를 넓혀나갈 것 같지만, 고양이들이 늘 상상을 뛰어넘듯이, 그냥 보이지 않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예전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곳은 잘 못 찾고, 그렇다고 지금의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하는

 

그 거리가 직선 거리로 1.8킬로미터 정도 된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북악산과 북한산, 다른 산으로 완전히 생태계가 바뀌는 일이다. 이 이주방사 계획을 짠, 그야말로 전문가들과 가장 걱정한 것은, 두 지점 사이에서 길을 잃는 일이었다. 중간에 머물 수 있는, 소위 임시 스팟 같은 게 혹시 있나 점검을 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이 집에 있거나, 저 집에 가거나, 두 개 다 해법인데, 그 중간에서 어느 집도 못 가고 완전히 길을 잃는 게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1.8킬로의 거리가 딱 그러기에 좋은 거리였다. 아예 멀지도 않고, 아주 가깝지도 않은. 그래서 몇 달에 걸친 케이지 생활이 시작된 이유가, 그렇게 과학적으로 계산된 거리 사이에서 적정 방식이었다.

 

그리고 원래 우리가 계획한 것은 6개월이었다. 그 정도면 예전 집의 기억을 잃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기에 충분한 시간.

 

그런데 위생상의 문제 등으로, 4달 반만에 문을 열어주는 일을 오늘 한 것이다.

 

케이지 안이 오염될 위험이 있다

 

그런데 고양이들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으니, 내 속이 얼마나 타들어갔겠나.

 

케이지 안에 마련한 물통에 물 마신 흔적도 없고, 사료를 먹은 흔적도 없이,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너무 일찍 열어주었나?

 

녀석들이 떠나간 케이지를 계속해서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10,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 어두운 밤에 고양이들의 실루엣이 잡혔다. 물도 먹고, 먹이도 먹고, 그렇게 노는 걸 보았다.

 

왔구나!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생협이 맨 처음 모습을 보였고, 가로등 사이로 바보 삼촌이 걸어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 고양이는? 이리저리 살피는데, 언뜻 보인다. 엄마 고양이는 먼저 케이지 안에 들어가서 저녁 먹고 있었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캔을 뜯어놓고, 고양이들을 살펴본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엄마 고양이는 조그만 텃밭에, 아내가 겨우 땅을 골라놓은 곳에 시원하게 대변을 놓고, 열심히 흙을 덮어놓고 있었다. 아내가 보면, 경일 치리라!

 

이들의 이사는 이제야 끝났다. 내가 이 녀석들과 얼마나 더 같이 살게 될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또 한 고비를 녀석들과 넘어갔다.

 

아내의 얘기로는, 녀석들을 풀어주고 내가 나간 다음에, 고양이들끼리 살벌하게 싸우는 소리가 났었다고 한다. , 이 골목에 먼저 살던 녀석들이 있었을 것이고그 싸움과 그 삶을 내가 대신 해줄 수는 없다. 그건 녀석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 물과 사료는 줄 수 있지만, 그 공짜의 대가댓 아주 없지는 않다. 이런 삶의 공간을 원하는 고양이들은 엄청 많다.

 

어쨌든, 이런 복잡한 얘기는 다음에 생각해도 좋을 듯 싶다.

 

죽도록 춥던 지난 겨울을 같이 보낸 마당 고양이들, 오늘 처음으로 케이지에서 나온 날이다. 그리고 갇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마당에서 첫 밤을 보내는 날이다.

 

삶은, 때때로 행복하다.

 

아직은, 그런 것 같다.

 

(명랑이 함께 하기를, 이 디렉토리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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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방송후기 19. , 황유미!

 

드디어 내가 쓰는 방송 후기에 정부 쪽 인사에게서 항의가 들어온 것 같다. 우리는 논쟁은 언제나 환영! 반론이 있으면 언제든지 손님 접대할 생각이 있다. 기꺼이 항의 주시라!

 

오늘 방송은 산업재해편, ‘산업공화국이라는 키워드를 달고 나갔다. 그러나 아마도 이 방송을 그렇게 산업재해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로 이해할 사람은 없을 듯 싶다. 그렇다! 오늘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선생님이 방송에 나오는 날이다.

 

그렇게 논란 중에 진행되었고, 이제 2심이 두달 앞으로 나온,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정말로 처음으로 알고 있다. 공중파를 비롯해서 어지간한 케이블에서도 다 한 번씩 아이템을 준비한 건데, 실제로 나간 적은 없다.

 

, 이유야 경로는 잘 모른다. 하여간 이게 처음이다. 그래서 너무 감격했다. 과연 우리가 이걸 방송할 수 있을지 없을지, 어제까지도 좀 아리송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방송은 나갔다.

 

 

21살에 취직해서 23살에 사망한 고 황유미씨, 그 사건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걸 직접 겪어낸 부친이 너무 담담하게 얘기를 하셔서 더 놀랐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모친도 이 사건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3시간마다 한 명이 사망한다는 한국, 여기에 더 보탤 말이 뭐가 있겠나. 산업재해로 암이 판정되는 비율은 프랑스의 1/50, , 더 할 말이 없다.

 

여기에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괜히 눈물이 나서. 오늘은 얘기를 별로 못하고, 그냥 우는 모습만 방송에 나갔다. , 나야 원래 눈물이 많으니까, 내가 울었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 얘기이기는 하다.

 

시간도 짧고, 서브 아이템으로 들어와 있고,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얘기를 더 보탤 수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 황유미씨의 아버님의 얘기를 듣는데, 그렇게 자꾸 눈물이 났다.  

 

 

(고 황유미씨. 출처 - 반올림)

 

세 시간마다 한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이 눈감고 살고 있는 나라!

 

이 나라 언론이 언론이냐 싶다. 오늘은 그냥 울고만 싶다. 경제고 뭐고, 이게 사람들이 하는 얘기지, 동물들이 하는 얘기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는 사람들의 공동체이지, 개돼지들의 공화국은 아니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죽어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또 하나의 가족이 영화 두레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도움들 주셨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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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방송후기 18. 축제의 경제학 혹은 장소 마케팅의 종말

 

내가 학위 받은 게 1996년이니까, 올해로 18년째이다. 그 동안 참 많은 논쟁을 했다. 큰 논쟁도 했고, 작은 논쟁도 했다. 그 중에는 울산에서 술고래 축제를 만들자는 단체장에 맞서, 그거 아니다, 뭐 그런 소소한 논쟁도.

 

하여간 페스티발 혹은 카니발, 이런 거에 대해서 난 기본적으로는 찬성이고, 이런 게 더 많아지는 게 문화적인 측면에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게 기본입장이다.

 

경제인류학자 중에 라파포라는 사람이 있다. ‘Pigs for the ancesters’, 조상에게 바치는 돼지, 요 테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 덕분에 생태인류학이라는 게 생겨났다. 요즘은 그런 얘기 덜 하지만, 라파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서 생태인류학이라는 한 분과를 만들려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 벌써 몇 년 되고, 대학 강의를 그만하겠다고 하면서 좀 시들해진 얘기이기는 하지만. 스페인의 투우나 파파아 뉴기니아 등 도서 지역에서의 돼지 축제 등, 기본적으로는 축제에 관한 얘기이다.

 

생태인류학이라는 주제로, 축제에 관한 얘기들만 모아서 별도의 책을 하나 기획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것도 불과 2년 전인가?

 

연이나

 

2000년대에 유행처럼 돌풍을 일으켰던 한국의 축제붐은, ‘장소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토건 + 토호, 딱 요 포맷이다. 내가 여행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페스티발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야말로 토건의 장소 마케팅으로 각 지역에서 진행되던 많은 축제들과는 참 많은 논쟁을 했던 기억이다. 무슨무슨 아가씨 선발대회, 요런 거 가지고도 많이 싸웠다. 예전 한나라당 성향의 사람들과도 힘을 합쳤던 적이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시간이 많은 것을 자연스럽게 해결해주지 않는가, 격세지감이다. 그 화려했던 시기도 끝나가고, 이제는 구조조정 단계로 들어간다.

 

장소 마케팅 논쟁이 한참일 때, 내가 주로 사례로 들었던 것은 영화 <반지의 제왕>이다. 3부 전체의 배경이 되었던 미나스트리스 같은 셋트장, 한국 같았으면 무슨무슨 촬영지, 무슨무슨 페스티발, 이렇게 생난리를 쳤을 듯 싶지 않나? 더군다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정도의 세계적 히트작이고, 특수효과를 담당하던 피터 잭슨팀이 여전히 뉴질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장소 마케팅 한참하던 우리의 눈으로 보면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경제적 자산이고, 문화적 유산이고, 에또, 경제적 파급효과가 몇 조원대이고, 일자리 창출도….

 

<반지의 제왕> 셋트는 영화 촬영이 끝나고 아낌없이 철거되었다. 그 편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100, 답이다.

 

한국과 뉴질랜드의 차이는, 한국은 지방 토호들이 토건을 이끌어가는 나라였고, 뉴질랜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차이 하나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일본의 그 무수한 테마파크들은?

 

에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권해드리고 싶다. 그 배경이 바로 90년대 버블붕괴로 폐허가 된 테마파크다.

 

좀 너무 야박하다 싶은 평가일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지금 한국 지자체에서 억지로 하고 있는 축제 절반은 곧 귀곡성으로 바뀔 것이다.

 

한 때, 일본 사람들이 세계를 헤매고 다닐 때, ‘유럽 3대 사기라고 했던 게 있다.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 브뤼셀의 오줌 싸는 소년,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 그렇지만 이 3대 사기는 앞으로도 10년은 더 갈 것이다. 기념상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닐지라도 그곳의 삶은, 뭉클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관제 축제의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그렇게 난리치던 장소 마케팅의 종료되는 걸 보면서, 정말로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나한테 이 축제의 경제적 효과는, 고용창출효과는, 혹은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등등 침 튀기며 떠들던 그 많던 연구원들, 그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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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방송후기 17. 갑을공화국편

 

가끔 살다 보면 정말로 지지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나온 황치오 변호사와 강운산 박사의 경우가 그렇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시간을 써보려고 한다.

 

두 사람 다 방송은 거의 처음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중요한 사람들을 방송에서 보기 어려웠다는 게, 참 그렇다. (아쉽게도 강운산 박사는 시간관계상 1부에만 참여하고 먼저 나가서 사진이 없다.)

 

계약이라는 것은 청약과 응낙이라는 두 가지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론 이건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이고, 기본적으로는 비대칭적 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사주와 노동자가 그렇고, 하청관계의 많은 계약들이 비대칭적이다.

 

황치오 변호사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공정거래 분야에 특화한 거의 유일한 변호사이고, 약자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뛰어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별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삶을 바친 사람

 

, 이렇게 얘기하면 무기력하면서도 정의감만으로,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그런 루저 분위기를 상상할테지만! 서울중앙지법 등 판사 출신이었고, 김앤장, 그렇다, 바로 그 김앤장 변호사였다. 여기에 워싱턴대 로스쿨을 졸업해서 뉴욕 변호사 시험에 붙었다. 국제 변호사, 이런 걸로 M&A나 론스타 같은 쪽에 일을 했을 법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정거래전문변호사이다. 그야말로 공정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양반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런 삶을 동경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있다고 부자 쪽으로 배 바꿔 타고 가는 사람들만 줄구장창 보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 가슴 찡한 감동을 느꼈다.

 

 

 

기왕 인물 얘기를 하는 김에, 강운산 박사에 대한 얘기를 더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양반을 보는 키포인트는, 이 양반이 소속된 기관인 건설산업연구원이라는 곳이다.

 

선대인 연구소의 바로 그 선대인이 틈만 나면, 업자들 기관이면서 정부출연연구소 코스프레를 한다고 방방거리는, 문제의 바로 그 연구소이다. 업자들 대변하는 업자 스피커, 뭐 그런 이미지이고, 실제로 그런 일도 많이 한다.

 

개인적으로는 난 좀 착잡하다. 초창기 시절, 이 연구원을 만든 초기 멤버들은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도 현대시절, 회의한다고 여기 많이 갔었고, 같이 일한 적도 있다. 조금 더 중립적인 위치에서 정부가 직접 하지 않지만, 회사 이권과도 좀 떨어져서 연구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보자는 그런 취지가 좀 있었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연구소라는 게 좀 묘하다. 삼성경제연구소면 삼성의 잇권을 위해서 맹수처럼 뛰는 그런 사람들만 있느냐, 현대경제연구원이면 정씨 일가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느냐, 꼭 그렇지는 않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데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그런 데서 하는 연구 프로젝트 중에는 정말로 공익적 의도를 가지고 추진되는 것도 있고.

 

강운산 박사가 하여간 하도급에서의 불공정 문제를 풀고자 애쓰는, 그런 대표적인 연구자다.

 

두 사람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지를 보낸다.

 

언제가 더 많은 성과로, 한국 계약의 불공정 관행이 얼마나 시정되었는지, 그런 얘기를 다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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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방송후기 16. 창조경제편

 

창조경제라는 단어에 대해서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게 어디까지 갈지, 어디가 한계일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박근혜 자신도 모르는 걸, 도대체 외부에서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다른 방송에서도 창조경제에 대한 논쟁을 몇 번 하기는 했는데, 불투명한 것은 나만이 아니라 저 쪽에서 나온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이 말을 김종인에게 건의해서 박근혜가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그 최초의 입안자를 만나게 되었다. 김창경 교수, 그가 바로 이 복합적인 사건의 첫 출발이다. 어쨌거나 첫 입안자이니까, 그를 통해서 개념이 해석되는 것이 옳다. Take에 바로 그 양반이 나왔다. 오메나야!

 

 

방송이 부드럽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전화 연결된 이인영 의원을 통해서 창조 경제에는 노동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 너무 두리뭉실하게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만약 토론 방송이었다면, 여기에서 더 한바탕 했을테지만, 그 정도의 전격적인 NS 토크를 하기 위한 토론 방송은 아니다.

 

진화경제학이라는 흐름 내에서 내가 이해하고 있는 creativity라는 개념이 있고, 창의성과 관련해서도 몇 가지 생각이 있다. 어쨌든 김창경이 이해하는 정도가 창조경제의 개념의 전부라면, 약점이 너무 많거나 아니면 덜 정리되었거나. 약간 이론적인 용어로, ‘enabling environment’라고 부르는, 일종의 환경조성에 관한 얘기들은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가 얘기하는 대로, 가난한 사람도 자신의 기술로 먹고 사는, ‘짬짜면이 창조경제의 대표사례라면, ‘의자뺏기가 아니냐라는 반론을 피하기 어렵다. 자신은 수요자 중심으로 사유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생산자 중심의 창업론 해석 성향이 너무 강하다.

 

 

일단은 어디가 구멍이고, 어디가 한계인지, 약간의 이해가 생겼기 때문에, 나에게 오늘 방송은 특히 유익한 것이었다. 하여간 어쩌다 보니, 그야말로 지적재산권을 가지고 있는 원작자가 방송에 나오게 된 셈인데, 원래는 A4 용지 앞뒤로 가득찰 만한 섭외자 리스트가 있었는데, 모두 실패하였다는 후문이다.

 

각론보다는 총론을 정리하는 상황이라, 황세진씨가 준비한 자료들의 상당 부분은 결국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1, 2부로 나누었던 것도 진행 과정에서 통합해서, 별도의 부 구분 없이 통으로 갔다.

 

오늘 방송의 최고 코멘트는 김학도씨의 입에서 나왔다. 그늘 오늘은 정말 펜을 들고 메모하면서 열심히 경청하였는데, 방송 끝내기 직전에

 

별 거 없네요!

 

사실 별 거 없다. 그렇지만 앞으로 별 거가 생길 것인가? 현재 형태로라면, 앞으로도 별 거 없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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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박사라는 여행사는 여러 가지로 연구대상이다. 이제 쉰 살 가량 된 신창연 대표는 어쨌든 화제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다.  스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화재성 만큼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자잘한 얘기는 다 빼더라도, 일단 아침 회의는 없고, 출근은 점심 식사 전에만 오면 되는 게 원칙이다. 필요하면 재택근무를 해도 된다. 20% 가량의 직원은 회사 사옥에서 산다. 출퇴근 거리가 3시간이 넘으면 사옥에 들어갈 수 있다. 복지는, 일반 회사 기준으로는 상상 초월이다.

 

정년 없고, 해고 없다. 툭하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사장이 경영 이득에 대해서 관여하거나 챙겨가지 않으니까, 이익이 생기면 직원들이 알아서 나눠가지면 된다. 방법은, 자기들이 결정하면 된다.

 

여기에 입사에 대표나 임원들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 학력란은 기재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팀장 등 간부는 직선제로 뽑는다는 것. 연임을 위해서는 2년차 60%, 3년차 70%의 지지율을 받아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20세 고졸 신입사원도 팀장이 될 수 있다는 거.

 

 

이 시스템이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많았을텐데, 나는 돌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게 포디즘으로 꽉 짜여진, 그리하여 획일적일 수 밖에 없는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도 효율성을 보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독일에서 경영위원회에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걸 보면, 불가능할 것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하여간 상당히 유연하고 아이디어가 중요한 여행업에서는 일단 가능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입증은 된 듯 싶다.

 

그러나 서비스가 과연 좋을까,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원래 의심이 많으니까, 당장 여행박사 홈피에 방문했다. 일본은 내가 해마다 2~3번씩 방문하는 곳이다. 당장 다음 달에도 일본에 간다.

 

5분 살펴본 결과, 대박 편안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나는 일본에서 차를 렌트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다음 달에 방문하는 히로시마는 아주 큰 메이저 여행사를 비롯해서, 국제예약이 안된다는 둥, 브랜치가 없다는 둥, 예약을 하고 히로시마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3분 정도 살펴본 후, 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토요타 시엔타 렌트의 예약 직전까지 갈 수 있었다. 여행에 관한 한, 나도 별 까탈스러운 취향을 가진 편인데, 다른 데는 몰라도 일본 여행에 관해서는 누적된 지식이 많은 곳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담당자가 자주 바뀌지 않고, 팀결정이 원할하게 이루어지는 곳에서 비로소 혁신이든 개선이든 생겨나는 것 아닌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절대 경쟁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생존은 가능한 수준이라고 본다.

 

게다가 올해는 엔화 약세, 한국으로 관광객을 데리고 오는 데는 아주 어렵고, 외국으로 관광객을 보내는 여행사는 올해 상당히 괜찮을 것이다. 이래저래, 여기는 올해 평온한 한 해를 보낼 듯 싶다.

 

 

며칠 만에 우리의 김미우씨가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신입직원 뽑는 기준이, 일반적인 자기 소개서 대신 이색적인 사진을 찍는 거였다. 김미우씨가 나름대로 이색 사진을 연출해보기는 했는데, 중간에 흐름이 끊겨서 잠시 어색한 시간이.

 

아직은 우리는 이것저것 실험 중이다. 아직 더 맞춰봐야 할 구석이 많다.

 

내일은 창조경제편이다. 오 마이 갓! 김창경 전 교육부 차관이 나온다. 박근혜의 창조경제를 만들었다는 바로 그 사람이다. 프로 생긴 이후로 가장 핫한 인물이 직접 나온다. 손님 접대를 어떻게 해야할지, 벌써 머리가 욱신욱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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