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제주도로 1박 2일 출장, 우리는 애들 다 데리고 출동. 큰 애가 기침감기가 남아 있었고, 물갈이 하느라 둘째날 설사. 나는 애만 봤는데, 애들하고 틈틈히 바닷가 가서, 바다는 정말 원없이 봤다.

제주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인생 별 거 없다. 주어진 시간 열심히 살고, 내가 남들에게 뭘 해줄 수 있나 더 생각하고, 잠시라도 짬이 나면 행복을 향해 질주!


(쓰다보니, 요 문장이 너무 맘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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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찬 기자 사건으로 한겨레 신문사가 직접 사과문을 걸었다. 이제, 사건은 진짜 사건이 되었다.

1.
안수찬 사건이라고 해서 직접 찾아봤다. 좀 과한 글을 쓴 것은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안 써도 되는 글을 쓴 것처럼 보인다. 공인이 되면, 효과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게 된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그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말로 사회적 효과가 발생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격하게 써도 된다. 그것도 글의 테크닉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런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면, 최대한 부드럽게 쓰는 게 낫다.

몇 년 전, 안수찬 기자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종종 만났다. 의욕과 패기가 넘쳤고, 뭔고 하고 싶어 '미치고 싶은 상태'였다.

요즘은 기자나 편집국에서 직접 아는 사람들에게 메일이나 문자로 취재동향을 알려주는 게 흔한 일이 되어다. 자신의 기자로서의 일상을 일일이 써서 보내준 건, 안수찬 기자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깊이 인상에 남았다. 어떤 의미로든, 안타까운 일이다.

2.
신정부 이후, 진보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나는 한겨레에 글을 오래 썼고, 그 시절에도 한겨레에 글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겨레 내부에 엄청 친한 기자가 있어서 내부 사정을 잘 알고, 그러지는 않았다.

하여간 그 시절, 시민단체 내부에서는 신문으로서의 한겨레의 운영에 대해서 불만이 좀 있었다. 그 시절의 한겨레 운영진을 '부국강병파'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민감한 사건이 꽤 있었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논쟁들, 새만금을 보는 시선, 굴직굴직한 논쟁들이 있었다. 아마 이라크 파병 이후로 부국강병파라는 말이 나왔던 것 같다. 국가는 부유하고, 군사는 강하고... 당시 청와대가 아니라 한겨레의 기본 논조를 그렇게 비판하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당시 내가 쓰던 글을 한겨레에서 교정교열이나 문단의 순서배치 말고는 크게 손 댄 적은 없다. 딱 한 번, 내부의 의견을 반영해서 고쳐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황우석 사태와 관련된 글이었다. 별로 고치고 싶지 않았지만, 죽어라고 고집한다고 해서 민주평화가 오는 것도 아니니... 그러시라, 그랬다. 물론,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완전 열받았었다. 혼자 그러고 말았다.

정권과 비판, 이건 언론이 가진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편, 남의 편, 이건 선거 때의 일이고, 정권이 형성되면 잘 한 건 잘했다, 못한 건 못했다, 이상한 건 이상하다,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덜 이상해진다.

3.
신정부가 들어섰다.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잘 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고, 잘못된 일도 있을 것이다. 잘 하는 거야, 잘 했다고 하면 되니까 쉬운 거고. 못하는 것도 다루기가 쉽다. 이렇게 하면 잘 하쟎아, 이런 방식으로 서로 너무 곤란하지 않은 정도에서 절충안을 만들 수가 있다. A안, B안, 그도 아니면 C안, 이런 글이 사실 제일 쓰기 쉽다.

그렇다면 잘못한 일은?

하거나 말거나, 기술적으로 중간 대안이 없는 일은 다루기가 아주 어렵다. 이라크 파병, 가거나 말거나. 이미 진행된 상태의 황우석 사건, 덮거나 열거나.

덮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많은 경우 거대한 충격파를 감내해야 한다. 정권에 대해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일은, 어느 쪽 정권이라도 부담되는 일이다. 정권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무오류를 증명하려고 한다. 그 거대한 충격파에 맞서는 일은,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쉽지 않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벌어진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 그건 선거 전에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국가의 일 혹은 정책의 일에는 기술적인 측면이 붙는다. 이 얘기를 할 거냐 말 거냐, 그걸 선택해야 한다.

안수찬 사건은, 그래서 충격파이기는 하다. 아쉬운 것은, 안수찬이 하지 않아도 되는 글을 너무 열심히 썼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고 기술적 논쟁이 시작된 이후에 안수찬의 글이 나왔다면, 좀 다른 맥락으로 읽혔을 수도 있다. 글이 날 것인 게 문제? 어차피 sns에는 날 것이 올라간다. 심각하고도 의도적인 허위에 기반한 글이 아니라면, 정제된 글을 사람들이 거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안수찬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한겨레 경영진이 시민단체 사람들에게 '부국강병파'라고 불리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당선 이후, 언론이 하는 주요 기능은 용비어천가는 아니다. 기술적 분석을 하고, 기술적 지적을 하는 것이다. 대안이 없으면? 그러면 하지 말라고, 목을 내놓고 그 얘기를 하는 거다. 그래야 발전한다. 그리고 그렇게 용기를 내야 세상이 좋아진다.

선거 한 번으로 정책이 조화롭게 만들어지는 것, 그런 건 아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5022.html?_fr=m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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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책의 마지막 절은 '신들의 경제' 정도의 제목을 달고 종교 얘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종교 얘기에 얽히는 게 귀찮기도 하고, 또 몇 년된 정보들을 다시 최근형으로 업데이트 할려면 에고고...

그래도 마음을 먹은 것은, 내가 왜 책을 쓰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내가 책을 쓸까? 모른다. 올해까지는 쓸 것 같고, 내년은 나도 모른다. 수 년에 걸쳐 이것저것, 출판사와 계약된 책들은 올해 다 끝난다. 내년에는 출간 계획이 없다. 2005년부터 시작해서 출간 계획이 없는 해는 내년이 처음이다. 갑자기 마음이 엄청나게 바뀌지 않으면 내년 출간계획을 따로 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쓸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다.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예상할 수도 없다. 모르는 게 흠은 아니지만, 모르는 데도 아는 척하는 것은 흠이다. 다음 정권은 어떻게 될까? 모른다. 잘 하기를 바라지만 잘 할지 못할지, 모른다. 어떻게 될지 미리 예상하고 설정할 수는 없다. 급격한 변동이 올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그러니 미리 예상을 하고, 출간 일정을 세울 수는 없다.

입문서나 청소년용 책, 그런 가벼운 책에 대한 요구를 많이 받는다. 사회과학 방법론에 대해서 딱 한 번 입문서를 쓴 적이 있다. 정말 예외적인 경우다.

처음 책 쓰기 시작하면서, 입문서를 쓰거나 좀 더 대중적으로 편안한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책 쓰는 일을 내려놓겠다고 나하고 했던 약속이 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책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물론 그렇게 아방가르드처럼 살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경제라는 주제를 다루는 내 입장은, 가장 첨예한 전선, 바로 그 대치점 맨 앞에 서 있을 거 아니라면 안 다룬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치열한 전장 한 가운데 어딘가에 서 있지 않을 거라면, 굳이 경제학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필요도 없고, 그걸 또 어렵게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책으로 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만큼은 지금도 변한 것은 없다.

삶은 지난 10년 동안 많이 변했다. 한 때 시민운동의 상근활동가였고, 연대 조직의 사무국장도 했다. 현장 한 가운데에서 살았고, 늘 내 몸은 전국의 현장 어딘가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는 현장에 서 있기가 어려워졌다.

맨 앞에 있는 치열한 얘기들 혹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논의되지 않짐나 궁극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별 재미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내가 책을 쓰고, 시간을 들일 이유는 없다.

종교와 경제, 전격적으로 한 권으로 다루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늘 치열한 현장에 서 있었다,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 경제의 마지막 절은 종교 얘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이럴 생각이다. 치열한 얘기 아니면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책 한 권 낼 때 연구조사 등 내가 쓰는 돈이 더 많아졌다. 내 책은, 준비하는데 돈 많이 들어가는 책이다. 그만큼 치열한 얘기니까, 내 돈을 써가면서 연구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거라면, 논쟁을 피하거나 숨어가면서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간만에, 내가 왜 책을 쓰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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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 어린이집에서 요즘 "박근혜는 퇴진하라", 요게 놀이로 꽤 인기를 끈다. 거짓말 할머니(=최순실) , 대통령 할머니, 이런 용어로 어떤 일이 돌아가고 있는 중인지, 기본적인 설명은 해주었다. 요 '거짓말 할머니'라는 용어도 어린이집에서 유행이다.

둘째가 워낙 호흡기가 안 좋아서, 촛불집회에 한 번도 데리고 가지 못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쨌든 6살짜리 반에서 "박근혜는 퇴진하라", 그런 놀이가 한참인다. 큰 애는 이 말 뜻을 못 알아들었다.

"박근혜는 돼지 나와라, 박근혜는 돼지 나와라."

집에서 이러고 있다. 촛불집회 구경 못시켜준 아빠 잘못이다, 돼지 그만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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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토요일 점심, 아내와 아이들이 외출한 이후, 동네 식당에서 혼자 육개장을 먹었다. 특이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메뉴, 간만에 혼자 먹는다는 것 말고는 정말로 특이할 게 없다.

그래도 오늘 점심은 진짜로 특이했다.

어제 박근혜 탄핵이 있었다. 판결문은 생각보다 어조가 강했고, 전원일치로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간만에 아무 걱정이 없는 날이었다.

지난 10년간, MB 이래로 늘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 그야말로 '램상주' 프로그램처럼 상주하고 있었다. 그게 없는 첫 날이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일들은, 그냥그냥 잘 된다. 어려운 고비들도 많았는데, 이렇게 저렇게, 고비들을 조금씩 넘기고 이제는 자리를 잡아간다.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변화가 생기고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세 끼 밥 먹고 살 걱정까지는 없다는 정도...

DJ가 당선되고는 기쁘다고 할 수가 없이, IMF 경제위기 한 가운데였다. 나는 별 일 없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워낙 힘들어서 기쁘다는 생각 자체를 가질 수가 없었다.

노무현의 당선 때는 어땠을까? 며칠 기뻤다. 아주 잠시. 그리고 인수위 명단 보던 순간부터 마음이 확 잡쳤다. 아니나 다를까, 인수위 뒤로 흘러나오는 온갖 잡소리, 거기에 첫 인선들.

내가 정부에서 더 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정부 출범한 다음 주 사직서를 냈다. 아직 결혼하기 전인 아내에게 내가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몇 주 걸렸다. 실제로 결혼은 그 후 1년 후에 했다.

가끔 그 시절 얘기를 하면, 노무현 정부 사람들이, 그렇게 알았으면 얘기를 좀 해줘야 했었을 것 아니냐, 내 탓을 한다.

난 그냥 실무 팀장일 뿐이다. 그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그렇다고 비선 따라따라 더 위에 "이건 아니다", 그렇게 말할 상황도 아니고.

MB가 되었을 때, 뭐 우리는 바보가 아니니까 그 몇 달 전에는 알았었다.

좃됐다...

이 생각이 들었다.

근혜가 되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하나다.

도닦자...

다음 날 사놓고 방치되었던 유모차 조립을 했다. 큰 애 태어난지 4개월째 일이다.

MB가 당선되기 직전, 가장 친한 친구가 암으로 죽었다. 오늘 혼자 밥 먹다가 든 생각이, 딱 그거다.

이재영, 참 아깝다...

근혜가 탄핵되기 몇 달 전, 한 살 위의 선배가 암으로 죽었다. 스트레스가 과하면...

노무현 시절에 정부연구소 원장하다가 MB 때 '코드인사' 한다고 쫓겨난 선배도 몇 달 전 암으로 죽었다. 화만 내다 인생의 마지막을 한 번도 웃어보지 못하고...

정말로 아무 걱정 없는 순간, 어른이 되면 그런 순간이 몇 번 없다. 그리고 지난 10년, 아무런 걱정도 없는 순간이 정말로 단 한 번도 없었다. 걱정이 아주 많거나, 그나마 걱정이 좀 줄거나, 그렇게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살았다.

앞으로도 걱정스러운 일이 또 생겨날 것이다. 새로 출범할 정부가 잘 한다는 보장도 없고, 또 그냥 잘할 것이라고 멍하니 보고만 있기도 그렇다.

그래도 미래의 걱정까지 당겨서 미리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제의 걱정이 어제 끝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또 걱정이 생기고, 또 조바심낼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 때 가서 고민하려고 한다.

혼자 앉아서 먹었던 육개장 한 그릇, 정말로 아무 걱정 없이 밥알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면서 먹었던 밥, 진짜로 오랫만이다.

벌써 20년 전이다. 학위 막 끝내고 한국에 오기 전, 잠시 별 걱정없이 그냥 편안하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막 학위 받고 제일 처음 제안받은 자리가 아시아 WTO의 아시아담당관이었다. 파리 생활을 7년을 했는데, 또 제네바에서 직장생활을?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그냥 서울에 왔다.

그 시절, 큰 걱정이 없었다. 시드니와 싱가폴 같은 데에서도 제안이 왔는데, 그냥 편하게 살래요, 그렇게 하고 서울에 왔다.

그 이후로는? 진짜로 걱정 없는 날이 거의 하루도 없었다.

내가 오늘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가?

며칠 전에 받아놓은 강석훈 선생 전번을 만지작 만지작거리면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해볼까, 말까, 그렇게 다른 사람을 다 챙길 정도다.

그 양반한테 개인적으로 고맙다고 해야 할 게 좀 있다. 오래된 것도 있고,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도 있고. 1년 반 전인가, 국회에서 만나서 소주 한 잔 하자고 서로 신신당부했었다.

그리고는 쪼르르, 나는 아기 아파서 집으로 왔다. 그 양반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갔다. 이 난감한 시절, 소주 한 잔 마시자고 얘기하기가 좀 그랬다. 순실이 파동이 날 줄, 그 때 그가 알아겠는가? 나도 잘 몰랐다.

대통령 직무정지 그리고 탄핵, 그 시간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지내는 게 어떤 마음일까? 그래도 위로를 좀 해주고 싶었을 정도로, 내가 오늘은 편한 마음이다. 진짜로 편안하게, 아무 걱정 없이 밥 한 그릇 먹었다.

살면서 진짜로 아무 걱정 없이 밥 먹을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몇 번 안된다. 이제 50, 어른이 된 이후로 편안하게 먹은 밥이 진짜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오늘이 갑 중의 갑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내일, 마음에 깊이 남을 편한한 한 끼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원없이 맘 편해도 되는 날, 인생에 몇 번 없다.

다행히 둘째 애의 거친 기침이 어제 조금 가라앉았다. 오늘은 편해도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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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올해 50이다. 이 나이가 공교롭다. 서른이 되었을 때, DJ가 집권을 하였다. 군바리들과 싸우면서 보냈던 20대를 뒤로, 전혀 새로운 시대를 만났다. 그리고 다시 노무현의 시대가 열렸다. 이렇게 30대가 지났다.

마흔이 되었을 때, 명박이 왔다. 그리고 박근혜가 순실과 함께 또 5년을 난리를 치고 나니, 40대가 끝났다. 돌아보면 사기꾼의 시대 그리고 바보의 시대를 보낸 셈이다. 그리고 나의 40대가 끝났다. 40대의 기억은, 고생한 것, 힘들었던 것, 안타까왔던 것 그리고 촌티낸 것, 그런 것 밖에 없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40대가 지나갔다.

요약하면, "진짜로 '드럽게' 힘들었다."

이 10년 동안, 행복한 기억이 아주 드물다. 아이들 태어나고 아이들하고 지지고 볶고, 어쩔 수 없이 같이 지냈던 그 시간들을 빼면 대부분의 기억이 안타깝거나 힘들거나.

지금까지의 패턴이라면, 또 새로운 10년이 올 것이다. 이 시기는 어떨까? 어떤 시기가 올지 예상하는 것보다는 어떤 시대를 같이 만들어갈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노무현의 시대는 참여를 내걸었지만, 실제로 참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던 것 같고.

사기꾼의 시대, 바보의 시대를 넘어서 새로 펼쳐질 시대, 어쨌든 즐거움과 보람으로 가득찬 시대가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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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위기, 6월 위기, 아니 사드위기


 

지난 연말,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 경제는 진짜 살얼음처럼 지나왔다. 그걸 억지로 버티게 - 아니 버티는 것처럼 보이게 - 만든 것이 초이노믹스라는 황당한 이름으로 불린 최경환 독트린이다. 이론은 단순하다. '빚 내서 집 사라', 그야말로 빚 권하는 사회였다.

 

4월 위기설, 6월 위기설, 그렇게 두 개의 위기설이 돌았다. 2008년에도 그런 게 돌았었다. 그렇지만 9월에 리만 브라더스발로 그렇게 터질지, 사실 거의 몰랐던 것 같다. '마진콜' 같은 영화의 소재가 될 정도로 긴박하고 급박했다.

 

나는 올해가 한국 경제의 최대 위기라는 생각은 하지만, 4월 위기설, 6월 위기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트럼프 집권을 너무 공포스럽게 생각하면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복합적인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위기설인데, 개연성이 높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시기는 맞출 수 있지만, 한국 경제의 위기 메커니즘이라고 보기에는 좀 너무 멀어 보였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사드를 견제하기 위한 경제 제재는 진짜로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단시간에 끝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약점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형적인 토건 경제이고, 국토부 장관 서승환, 기재부 최경환, 이 두 전형적인 토건쟁이 이후로 더 심해졌다. 원래 있던 구조를 근혜네 얘들이 더 공고하게 만들었다.

 

토건과 같이 가는 쌍은 관광이다. 물론 원래 의미의 관광산업은 토건과는 좀 다르고, 프랑스에서 관광부가 만들어진 이유도 좀 다르다. 문화와 노동, 복지, 이런 유럽식 개념의 연장에서 관광산업이 현대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토건경제인 일본과 한국은 이런 복지의 연장으로서의 관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집 짓고 싶어서 짓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집이 예전처럼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이 때 토건이 눈 돌리는 대형 사업이 관광이다. 90년대 경제 위기가 오면서 일본에서 리조트법 같은 거 생기고, 죽어라고 골프장과 테마파크 짓고, 이런 거 위해서는 공항 필요하다고 나중에 유령 공항이 되는 지방 공항들 만드는 게 딱 일본식 토건 메커니즘이다.

 

박근혜 시절, 우리도 똑같이 갔다. 그리고 여기에는 좌우도 없고, 지역감정도 없다. 있다면 쪽지 예산만 있다.

 

중국이 건드린 것은, 이 토건의 마지막 판에 불같이 타오르게 되는 관광 메커니즘이다. 명동에 가게 몇 개 망하고, 면세점 사업 어려워진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망하거나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덩치는 크다.

 

그러나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서 관광발 토건으로 지난 몇 년간 지방에서 벌여놓은 사업들은 진짜로 위기가 된다. 이건 아파트 과잉 공급으로 집값이 부분적으로 하락하는 것과는 질을 달리하는 근본적 위기이다.

 

중국이 건드린 건 여기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얹히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조만간 올라갈 것 같다. 금리인상이 여러 군데에 충격을 줄 것인데, 어쨌든 가장 직격탄은 토건경제가 만들어놓은 어마무시한 가계부채다. 이건 방법이 없다.

 

중국발 위기와 금리인상이 동시에 타격을 주는 데가, 하필이면 건설사와 지방경제다. 서울의 큰 회사 몇 개 혹은 특정 산업의 충격 가지고 한국이 당장 어려워지지는 않는다. 규모가 주는 효과다.

 

그렇지만 서울 등 중앙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터져 나오는 위기는 경제의 근본을 해체시킬 정도로 강력할 것 같다. 일부는 롯데가 망하고, 그 충격으로 경제 위기가 온다는 분석을 하기도 하는데, 롯데나 망하냐 마냐, 이런 건 전국화된 분산형 위기에 비하면 뉴스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근본부터 붕괴되고 하면, 국민경제가 진짜 재건을 얘기해야 하는 수준으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금방 극복될 성격, 즉 우리에게 익숙한 V자형 혹은 그래도 감내할만한 U자형 패턴이 아니라, 모두가 두려워하는 L자형 혹은 W, 심지어는 연속 W형 같은 게 될 수도 있다.

 

이 위기를 4월 위기나 6월 위기라고 부르는 것 보다는 '사드위기'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위태위태하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넘어갈 수도 있던 것이 사드에 대한 과대한 이념적 욕심 때문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경제는 경제로 보는 게 맞다. 순실이네, 경제를 너무 이념적으로 보았다. 보는 건 이념적으로 봐도 된다. 그러나 행동은 좀 조심스럽게 그리고 사려 깊게 했어야 했다. 너무 이념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다 보니, 지금은 돌아나올 길이 없다.

 

중국도 우리와는 매락이 좀 다르지만, 토건 겁나게 한 나라이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지역별로 발생하는 토건의 폐해를 우리보다 좀 더 다양하게 알고 있다. 오죽하면 지역균형과 소득주도 등, 유럽 사민주의자들이 할 얘기를 먼저 했겠나.

 

한국 경제의 약점을 중국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 이게 순실이네 얘들한테 경제를 맡겨 놓은 우리의 비극이다. 돌아나올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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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주일 남짓 남았나, 헌재 결정까지? 나는 기다리는 건 그래도 잘 하는 편이다. 많은 걸 기다리면서 살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지가, 기다리지 않으면 어쩔 건데?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그리고 그 결과도 잘 감내해왔다. 몇 번을 제외하면, 그렇게 기다린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참고, 또 다음 번 일이나 다음 번 기회를 기다렸다.

마지막 남은 이 일주일 정도는, 진짜로 기다리기가 어렵다. 기다리지 않고 뭐라고 할 수 있으면 좀 낫겠지만, 아이들 줄줄 끌고 뭔가 하기도 힘들다. 그냥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초조하고, 가장 큰 기다림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학이야, 떨어지면 후기로 가던지, 재수하면 그만이었다. 별 거 아니었다. 유학 가서 대학원 시험 결과 기다릴 때, 어차피 한 번에 붙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별 생각 안하고 있다가 갑자기 합격증이 왔다고 해서, 몇 배로 더 기쁘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 때 시간이 생겼다고 몇 배로 더 행복해지지도 않았다. 뒤돌아보면, 시간 남는다고 괜히 뻘짓만 했다.

그 후에도 기다렸던 것들이 있기는 한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결과가 그렇게 내 삶을 바꾸지는 않았을 것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보지도 않았다. 안되면 다음, 또 안되면 또 다음, 그리고 정 안되면 그 옆의 비슷한 길, 되는 대로 살았다. 처절하게 무엇인가를 기대한 적도, 간절히 바란 적도 없다.

결혼하고 9년을 기다려서 아이가 태어났다. 그렇지만 그건 기다림과는 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세상 일, 억지로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기다리고 감사하고, 그냥 자연이 지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다. 아이를 기다린다고 뭐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소하게 기다리는 일이 여전히 있지만, 본질적으로 삶에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덜 피곤한 방식으로 갈 것인가, 좀 더 피곤한 방식으로 갈 것인가, 그 정도의 차이만 있다.

이번의 기다림은 다르다. 헌재의 인용은, 삶의 거의 대부분을 바꿀 정도로 큰 일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뀔 것이다.

MB 이해로, 찌질하게 살았고, 화내는 것을 줄였다. 그리고 참았다. 참는 것은 기다림과는 좀 다른 일이다. 화나도 참고, 참으면 참는 만큼, 속으로 깊어지는 게 아니라, 찌질해졌다. 그리고 더 참으면 더 참을수록, 삶의 벼랑끝으로 내몰린다. 존심? 그런 건 애저녁에 시궁창에 처 박았다.

10년을 참았다. 그렇게 참다 보니, 속으로 쌓아놓은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방법 자체를 아예 까먹었다. 참는 게 그냥 삶의 방식이 되었고, 찌질함은 본질이 되었다.

마지막 1주일, 기다림이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도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다시는 이런 기다림이 존재하지 않을 그런 미래를 사람들과 같이 만들고 싶다. 이런 치사한 종류의 기다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다시 기다린다. 내 삶에서 가장 간절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기다림, 그래도 다시 참고 기다릴 것이다. 다시는 기다릴 일이 없도록, 지금 기다릴 것이다.


- 우석훈 (2017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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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게 남는 거다, 영화 <킹스맨>

 

1.

 

"저건, 마가랏 대처의 암살을 막았을 때 사진."

"왜 그런 일을 하셨어요?"

"아무에게도 좋은 소리 못 들었지."

 

영화 <킹스맨>을 다시 봤다. 이 얘기는 1995 BBC에서 나온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시작된다. 드라마는 6부작이다. 지금까지 나온 <오만과 편견> 중에서 제인 오스틴의 의도를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문제의 바로 그 '오만', 다아시로 나온 사람이 젊은 콜린 퍼스이다.

 

<오만과 편견> 6부작 드라마를 다시 봤는가? 죽고 싶지 않아서 보았다. 이제 나이 50, 되는 대로 살다가는 아주 비참한 60대를 보내기에 딱 좋은 구조이다. 나는 조금 더 메이커로 살아가고 싶은데,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지난 몇 년간 너무 안 했다. 진짜,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나에게 들어오는 의뢰 중에서 나도 하고 싶은 게 겹치는 게 주로 코미디 시나리오이다. 나도 해보고 싶고, 주변 사람들도 목놓고 기다린다. 몇 년 전에 정치 코미디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입으로만 구상을 주변에 얘기했었는데, 이게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서 진짜로 유명한 감독들이 해보고 싶다고 건너건너 연락이 왔었다.

 

만약 그 때 차분하게 앉아서 그걸 마무리 지었으면, 지난 몇 년간 내가 겪었던 그 비참함과 비루함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차분하게 살지 못했고, 내 또래 남자들이 주로 그렇듯, 나도 희생이라는 비겁한 변명 아래 영광과 권력을 향해서 뛰어간 것 같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진짜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거기다, 애 둘 보고 있으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

 

그래서 진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잡은 게 BBC에서 만든 <오만과 편견> 6부작 드라마이다. 대략, 10번쯤 본 것 같다. 재밌다. 진짜 재밌다.

 

여기에 젊은 시절의 콜린 퍼스가 나온다. 아직은 파릇파릇하다.

 



2.

 

영화 <브릿지 존스의 다이어리> <오만과 편견>을 그대로 영화로 가져왔다. 콜린 퍼스가 연기했던 BBC 드라마의 다아시 캐릭터는 영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그 배우 그대로, 극중 이름 그대로, 콜린 퍼스가 다아시를 연기하는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진다. 영화도 대성공을 거둔다. 다아시라는 캐릭터는, 원작의 소설에서도 그랬지만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빅히트를 친다. 그리고 콜린 퍼스의 시대의 최정점을 찍는다.

 

결국 다이어리 시리즈는 3편까지 나왔는데, 나는 2편이 제일 좋았다. 특히 휴 그랜트와 콜린 퍼스가 분수대 안에서 혈투를 벌이는 장면은 진짜로 재미 얄지다. 돈 잘 버는 인권 변호사와 잘 나가는 TV 진행자가 한 여자를 놓고 한 판 벌이는 것인데굳이 한국 상황과 비교를 하자면 젊고 괜찮던 시절의 변호사 노무현과 역시 젊고 멋진 손석희가 사랑을 놓고 치고 받는 개싸움을 하는 것이다.

 

, 이들의 사랑을 받는 브릿지 존스가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 별로 그렇게 행복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젊고 잘 생긴 사람과의 다아시와의 연적 관계, 원래 <오만과 편견>에 나왔던 핵심 모티브이기도 하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 <브릿지 존스의 다이어리>, 일종의 모자 관계이다. 다아시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콜린 퍼스가 두 코미디의 공유된 DNA이다. 제인 오스틴의 영국식 유머가 그렇게 찰진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3.

그리고 <킹스맨>, 역시 자잘한 영국식 유머가 넘친다. B급 정서에 화장실 유머, 한국에서는 통할 때도 있고, 안 통할 때도 있는데, 어쨌든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감독과 제작을 동시에 하는 매튜 본은 원래 웃기는 거 겁나게 잘 하는 사람이다.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축구 시합을 그린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실컷 웃었다.

 

최근의 <엑스맨> 시리즈도 매튜 맨이 연출을 한다. 엑스맨에 유머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아포칼립스 스타일이다. 세계 평화를 너무 걱정하다 보니까, 잔잔하게 유머작렬시키는 영화와는 좀 차이가 난다. 그런 매튜 맨이 <킹스맨>에서는 진짜로 각 잡고 웃겼다.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콜린 퍼스에서 <킹스맨>의 콜린 퍼스에 이르기까지, 그 한 인생을 놓고 보면 할 얘기들이 많을 것 같다. 내가 그 안에서 읽은 것은, 대놓고 웃기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 속에 녹아들어들어가는 유머, 그런 것이 갖고 있는 미덕이다.

 

4.

나 자신을 돌아본다. MB 5, 근혜 - 아니 순실이 - 5년을 거치면서 감성이 너무 매말라 버렸다. 웃는 것도 미안하고, 웃기는 것도 죄짓는 것 같은 그 10년을 보냈다.

 

우리나라 경제만 바짝 마른 나무들처럼 매마른 것이 아니라, 나의 정서와 감성도 바짝 마른 것 같다. 독설로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버나드 쇼가 그렇게 독설을 잘 했다고 알고 있다.

 

독설과 욕이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원래도 욕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 물론 욕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하고 나서 기분이 좋기보다는 뭔가 찜찜했다. 그냥 내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 그리고 가급적 욕을 안하고 사는 방식으로 지금껏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감정은 메마르고, 삶은 힘들고, 우리 모두 힘들고. 힘들고 어렵다, 이런 감정 말고는 남는 게 없다.

 

MB, 순실이, 책임지라고 해도 그럴 리가 없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분노? 분노로 10년씩 버티지 못한다. 진짜로 분노만 남으면, 일상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분노는 때때로, 가끔 폭발하는 것이지, 분노의 마음만으로 삶을 유지할 수가 없다. 정말로 그렇게 하면 정신과 주치의가 생겨나게 된다. 그렇게는 못산다.

 

그럼 슬픔? 미안함과 슬픔, 그런 게 새누리당 아저씨들이 만들어낸 10년을 지내면서 보편화된 감정이다. 늘 미안하고, 돌아서면 슬프다. 잘 못해서 미안하고, 잘 안 되서 슬프고, 이기지 못해서 미안하고, 이길 수 없어서 슬프다. 개인사든 사회의 역사든, 지난 10년간 미안함 아니면 슬픔이었다.

 

"왜 마가렛 대처 암살을 막으셨어요?"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콜린 퍼스의 애환, 이런 게 코미디적 요소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걸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것 같다.

 

5.

BBC 드라마 6부작 <오만과 편견>에서 <브릿지 존스의 다이어리> 그리고 <킹스맨>까지, 그렇게 보다 보니까 콜린 퍼스의 일대기가 되어버렸다. 이걸 전체적으로 몇 번에 걸쳐보고 딱 남은 말 하나가,

 

"웃기는 게 남는 거다",

 

요 한 문장이다. 뭐가 웃기는 거냐? 그렇게 정색을 하고 물어보면 나도 마땅한 답변은 없다. 그렇지만 미안함과 슬픔이 있는 자리에 웃기기 위한 노력이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50을 넘으면서, 나도 영광스럽던 지난 10년을 털고, 밑바닥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 절절함이 아니었으면 20년 전 BBC에서 했던 드라마를 그렇게 목숨 걸고 다시 볼 이유가 있겠나? 읽어야 할 책은 책상 위에 가득가득 놓여 있고, 써야 할 글도 잔뜩인데, 만사 다 제쳐놓고 화면도 구린 옛날 드라마를 뭐하러 봤겠냐?

 

죽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웃기지 못하면, 남 욕이라도 하게 된다. 남 욕하는 걸 스타일로 삼는 건, 진짜로 죽기 보다 싫다. 웃겨야 산다. 웃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그런 노력이 미안함과 슬픔 보다는 나에게 훨씬 낫다. 심각한 문장들, 이제는 내가 참기가 어렵다. 나를 위해서도 더 코미디 쪽으로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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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집회에서 삼성을 옹호하는 발언이 꽤 나왔다. 삼성 망하면 나라 망한다, 그런 어조의 얘기들이다.

10년 전부터, 법조계에서 삼성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다. 그 때 유행했던 말이, "삼성만큼만 하라고 해", 그런 거였다.

어차피 기업들, 대충 구리고, 이리 털든 저리 털든, 문제 많다는 전제 하에서 성립된 말이다. 삼성도 문제 많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삼성이 덜 문제 있는 거다, 그러니 대충 좀 넘어가자, 그런 뉘앙스의 말이다.

그 이후, 삼성처럼 했던 기업들, 문제가 아주 많아졌다. 삼성에 비교적 관대한 법조 분위기 속에서, 삼성은 스스로 문제를 풀 기회를 많이 놓친 것 같다.

이 사회는 어떤 이유로든, 오랫동안 삼성에 관대했다. 그리고 무서워했다.

태극기 집회에서 삼성에 우호적인 발언이 많이 나온다. 이게 삼성 입장에서 정말로 긍정적이고 유리한 일일까?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삼성 경영진 입장에서, 태극기 집회에서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이재용을 보호하자, 그렇게 보이는 게, 꼭 좋아보이기만 할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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