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큐베이터 안의 아기

 

아기가 이제 호흡기를 떼고도 숨이 좀 편안해지고, 우유도 먹기 시작한 걸 확인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별로 좋은 소식도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별로 알리지도 못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미역하고 조그만 꽃바구니가 하나 배달되어 왔다. 첫 아이 때에는 꽃바구니가 꽤 왔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연락도 못했다.

 

아기는 태어나서 잠시 숨을 쉬는 것 같았는데, 체중 검사 등 등록절차를 하느라고 잠시 기다리는 게 꽤 길어진 이후, 숨을 못 쉰다는 얘기를 들었다. 종종 있는 일이라는 설명을 듣기는 했는데, 아직 원인은 모른다니, 마음을 놓기가 쉽지가 않다.

 

어쨌든 다음 날 저녁 때, 아기는 호흡기를 떼었지만, 간헐적으로 숨이 거칠어지고는 했다. 오늘에야 숨이 편해지고, 조금씩 우유도 먹기 시작했다. 산다는 게, 늘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눈 앞에서 지켜보고 있기가 그렇게 편한 일은 아니다.

 

아기가 아직은 인큐베이터 안에 있다. 그래도 며칠 만에 나도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내는 일요일 날 퇴원하지만, 아기는 며칠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 마음이 짠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며칠 전에 비할 바는 아니다.

 

큰 아기는 크게 우는 모습을 첫 모습으로 보았는데, 둘째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그래도 그나마 표정이 편해진 모습이 첫 모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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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가의 노래, 새로운 작업을 위한 모색 중

 

박근혜 정부 2년차, 참 고통스럽다. 고통스럽고 답이 안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꾸질꾸질하게, 우린 질 거야, 아마, 그렇게 있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나는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다. 막 태어난 아기랑 아내와 함께 실랑이하는 게 좀 지나고 나니, 이제는 그래도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앉아서 글을 쓸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글을 안 쓰고 있으면, 더 답답하다. 뭐라도 쓰고 있어야그래서 나는 늘 글을 쓸 주제를 찾는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글이 나온다, 난 아직 그런 경지에는 가 보지 못했고, 뭔가 주제를 정해서 오랫동안 생각해보면서 하나씩 꺼집어내는 편이다. 그래서 더더욱, 오랫동안 길게 생각할 주제가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말로, 내 무의식 속에 뭐가 제일 인상 깊었고, 이 시기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가, 짜낼대로 짜내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 속에서 나온 게, ‘형가의 노래였다. 사실 별 노래는 아니다.

 

바람은 소소히 불고, 역수물은 차구나

장사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딱 두 연 짜리 시이다. 별 내용도 없고, 별 뜻도 없는데, 나는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었다. 어렸을 때에도 좋아했는데, 학위를 받고 나서도 난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었다.

 

아내에게 처음 쓴 연애편지에도 이 노래를 썼던 걸로 기억난다. 아내는, 그 정도가 아니라 처음 했던 데이트에서도 이 노래 얘기를 했다고사람들이 미친 넘이라고 하더니, 자세히 보니 진짜 미친 넘이라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 때 형가의 노래 얘기만 안했으면, 좀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는 토를 달아주었다.

 

생각해보니, 난 누군가에게 진심을 가지고 얘기할 때, 늘 형가의 노래를 얘기했던 것 같다.

 

장사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나는 이 노래가 그렇게 좋았었다. 지금도 좋을까?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 여전히 좋다.

 

형가가 죽으러 가면서 불렀던 노래가 형가의 노래이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몇 주 전, 아내가 얘기한다. “너는 형가를 제일 좋아했어.”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 뭐 그런 중국 고전 중에서 내가 누구를 좋아했나 가만히 생각해본다. 강유를 참 좋아했고, 한신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 중의 제일은, 형가, 정확히는 형가의 노래이다. 이제 좀 있으면 쉰이 되는 나이, 내 삶을 돌이켜보니 진짜로 내가 좋아했던 것은 형가의 노래였다. ? 모른다. 그냥 좋았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아주 조그맣게 메모했던 문장이 있다.

 

박근혜 시대, 마키아벨리 이후의 책들은 필요 없고, 효능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제왕, 그들을 모셨던 사람들의 얘기가 오히려 더 유효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것 같다. 현대 정치학은 정당을 중심으로 얘기를 푼다. 양당제니, 다당제니, 대의제 민주주의니 혹은 직접 민주주의제이니, 기본적으로는 정당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얘기이다.

 

박근혜 시대, 이게 다 개뻥이다.

 

중세 유럽을 비꼰 얘기 하나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왕이 아침에 일어날 때 침대에서 왼발로 내리면 성군이 되고, 오른발로 내리면 폭군이 되고, 그래서 사람들은 왕이 어떤 쪽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는지 아주 관심이 있었다고

 

지금 우리가 딱 그런 꼴이다. 군주의 심기를 살펴야

 

침대에서 어떤 발로 내렸는지 알아야 하는 것, 이런 된장, 야당의 비대위원장도 딱 그런 꼴 아닌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근대적 인간의 출발에 해당하는 책이다. 야박하게 얘기하면 이익, 좀 점잖게 얘기하면 합리성, 그런 걸 갖춘 인간들이 만드는 사회의 시스템에 관한 글이다.

 

2014년 대한민국, 그런 근대성에 대한 분석과 이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차라리 왜 한신이 숙청되었는가, 장량은 어떻게 버텼는가, 그리고형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역수를 건넜고, 그가 노래를 불렀던 동기는 무엇일까, 그걸 생각하는 게 빠르지.

 

형가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모아보고 싶은 글들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종의 소품 코미디같은 것이다.

 

그래도 웃어야지, 어쩌겠냐.

 

하여간 이런저런 이유로 연말까지는 책상에 앉아서 자료들 쭉 펼쳐놓고 하는 그런 작업은 할 수가 없다. 뜨문뜨문, 책 읽고, 머리 속에서 혼자 생각하고, 하루에 한 두 시간 정도 글을 쓰는 그런 형편에서, 형가의 노래를 가지고 소품 코미디를 만들어본다는 생각으로

 

마키아벨리 이후의 책은 전부 필요 없다. 그런 근혜 시대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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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것들 전성시대, 작업을 준비하며

 

아기가 태어나면 이제 노트북을 가지고 글을 쓰려는 야무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노트북도 구해다 놓았다. 물론 무식의 소치였다. 아기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도저히 노트북을 켤 수가 없게 되었다. 모니터를 향해서 광속으로 돌진, 키보드를 두 손으로 팡팡! 그럼 책은 읽을 수 있나? 책이든 신문이든, 뭔가 잡고 읽는 꼴을 그냥 두지는 않는다. 그 덕분에 동화책은 지난 1년 반 동안 겁나게 많이 읽었다. 그것도 많이 읽다보니, 이제는 작가의 집필 의도와 전략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는 게, 참 오묘한 존재이다.

 

육아집 써달라는 얘기는, 정말 거짓말 약간 보태면 매 주 한 번 듣는다. 출판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나 혹은 나를 모르는 사람이나, 하여간 간만에 오는 연락의 대부분은 육아집에 관한 얘기이다. 몇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가제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싸기’, 이런 것도 정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아기를 생각하면 안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대선이 끝나고 아기 키우고 있는 동안에 한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다루어야 할 주제와 책이 겁나게 많이 밀리게 되었다. 아직 책 형태와 스타일이 잡히지 않아서 계속 밀리고 있는 주제로 불타는 금요일이 하나 있고, 농업 경제와 원전 얘기도 어떻게든 한 번은 정리할 생각이다. 농업, 원자력, 겁나게 안 팔리는 분야의 주제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미루어둘 수도 없고. 한 번은 정리해볼 생각이다.

 

처음 냈던 책이 이번에 복간된다. 10년만이다. 그리고 보니, 나도 책 쓰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세상이 조금은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책을 쓰기 시작한 건데, 좋아졌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 그새 10년이 흘렀다.

 

명박에 이어 근혜 시대를 사는 중이다. 마흔살이 되면서 명박의 시대를 맞았는데, 나의 40대는 그들과 함께, 엉엉.

 

보수 7년차, 정말 더는 못 참겠다. 일상이 비루해지는 것은 참는다고 하더라도, 이 시대가 무너져내리는 것은 정말로 참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뭐 별다른 대안 세력이 있느냐? 안 보인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아니다, 그런 논쟁이 내부에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얘기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얘기이다. 그게 아니라는 얘기는, 야당이 잘 못하니까 안 되는 거지, 제대로만 하면 안될 이유가 없는 여건이라는 얘기이다.

 

이 논쟁을 측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아예 절벽 앞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은, 기울어져서 갸우뚱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절벽에 매달려 안 떨어지려고 죽을 똥 살 똥, 그러고 있는 느낌이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처럼

 

닝기미, 모든 국민들이 연어가 되어 살아남으라이게 말이 되느냐.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이 시궁창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잡것들이 정말 신났다. 그 사람들은, 뭘 해도 잘 된다. 신나게 승진하고, 몇 칸씩 뛰어서 승진하고, 정부 눈먼 가지고 덩더쿵 덩더쿵.

 

작년에 진지하게 검토를 하다가, 좀 더 자금 사정이 좋아지면 하자고 내려놓은 영화 기획이 하나 있다. 이완용 일대기였는데, 조철현 대표가 이 얘기를 정말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좀 살펴보니, 이완용의 삶이 정말 재 밌는 삶이다. 나라를 팔아먹는데 압장선 것을 중심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삶 중심으로 보면, ‘잡것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나름 살펴볼 구석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라는, 이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 팔아먹는 거다그렇게 스토리 라인을 구성하려고 했었다.

 

이완용은 실력으로 그 자리에 간 사람이다. 물론 깨끗한 일만 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어쨌든 불법과 탈법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타던 사람이다.

 

이완용만도 못한 사람, 이것들을 잡것이라고 부를 생각이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그에 한참 못미치는 잡것들은 그냥 나라를 망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이 순간을 뭐라고 얘기할지 생각해보니까, ‘잡것들 전성시대’, 딱 이거 아니겠는가?

 

잡것들에게 싸가지라고 불리는 상황, 딱 요 상황이다.

 

싸가지로 치면, 나도 한 싸가지 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싸가리스, 싸가를 탑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잡것들에게 싸가리스라고 듣는 게 우아한 상황은 아니다.

 

하여, ‘잡것들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글들을 좀 써보려고 한다.

 

감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영화로 치면, 요즘 내가 밀고 있는 소품 코미디형식으로. 하여간 아기 보는 틈틈이 약간씩 시간을 내서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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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코미디 영화, 기획을 시작하다

 

요즘 나의 무기력감은 좀 도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이다.

 

오늘 아침, 아기 어린이집 보내놓고 잠시 누워서 눈을 부쳤는데,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 이런 꿈은 꾼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의 악몽을 꾸었다. , 내용은 별 게 아니다. 이미 나간 방송에 대한 젊은 PD들의 은근한 야지, 뭐 그런 거였다. 여기에 직장 그만둘 때의 마지막 상사, 정말 내가 몸이 아팠을 때 병원에서 맡았던 소독약 냄새, 그리고 보너스로 커피 시켰는데, 주머니에는 동전 몇 개만 있는 상황, 이런 것들이 잡다하게 결합되어, 딱히 강렬한 모티브도 없지만 내내 시달리는 그런 무서운 꿈이 되었다.

 

개꿈은 차라리 낫고, 완전 잡꿈인 셈이다. 하여간 별 것도 아닌 잡다한 것들의 무의식이 모여서,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던 상황을 구현하고 있는 것, 그게 요즘의 내 꿈이다. 흡혈귀가 나오고 10대 시절의 악몽과, 좀비가 주로 나오던 20대 시절의 악몽은 차라리 좀 낫다. 그거야 뭐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는지, 아주 강렬한 것들이 있으니까 나름 분석을 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같이 잡다하고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악몽은, 그냥 기억하기가 싫을 뿐이다.

 

어쨌든 이런 게 요즘 나의 난감한 상황이라는 것은, 맞기는 맞는 것 같다. 뭐가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고, 어디에서부터 엇나간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마음은 불편한. 그렇다고 딱히 뭘 하고 싶은 것이 있지도 않은. 이제 곧 나이 50살인데, 아침 나절에 나는 이런 잡스러운 꿈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렇다. 나는 원래도 이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사는 중이다. 다만 예전의 굵직한 잡스러움이 요즘은 좀 더 자잘한 잡스러움으로., 훨씬 더 잘잘하게, 그리고 훨씬 더 좀스럽게.

 

하여간 그런 마음 속에서, 요 며칠간 오가던 정치 코미디에 관한 영화의 기획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굵게 안되면, 쫀쫀하게.

 

야당이든, 여당이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요즘 살펴보면 너무 치사하다. 아니면 너무 용감하거나.

 

제목만 일단 비대위라고 가제 상태로 정해놓은 상태이고, 주인공과 안타고니스트 일단 다 여성으로. 여기에 뭘 채워넣을지는 이제 차분히 좀 고민을 해보려고 한다.

 

아직 마음을 먹지 못한 건, 원래의 생각으로는 클라이막스에 선거를 넣겠다는 거였는데, 이런 정공법이 옳을지, 아니면 좀 더 쫀뜩쫀뜩하게 치사한 사건으로 갈지

 

하여간 나의 무의식을 황폐하게 만든 지난 수 년간의 정치 사건을 코미디 형식으로 한 번 풀어보는 것을 기획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쫀쫀하고 끈적끈적한 사건, 그런 걸 한 번 푸하하, 웃을 수 있는 걸로 좀 바꾸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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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복지 정책을 담당한 김근태 계열의 선배가 오늘 오후에 내게 보내준 글이다.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_______________

 

 

2016, 진보민주-시민사회, 무엇을 할 것인가

 

최 민 식

()생활정치연구소 상임이사

 

 

아빠 왜 세상이 이래

 

2014. 4. 16. 세월호 참사는 잊을 수도 잊혀져서도 안될 역사적 사건이다. 지난 71일 진도항에서, 나는 10년 뒤 돌아와서 수장된 아이들에게 내 10년의 행적을 보고하기로 맹세했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본 모든 양심적 인사들이 그러한 마음이었을 것이리라.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날의 민주화운동, 민주화세력의 집권전선에서 싸웠던 전과, 훌륭하신 선배님들을 모셨던 추억, 무엇보다도 현대적 복지제도입법을 성과있게 했다는 복지전략가로서의 자부심.. 그런데 진도항에서 다 무너졌다. 아니 그 전에 내 아들이 던진 한마디에 그랬다. “아빠 왜 세상이 이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한다. 무엇이라도 좋다. 어떤 작은 일이라도 좋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 수만 있다면, 무슨일이라도 하리라. 사회운동을 시작한 게 1987년이고 정치권에선 1995년부터 20년 가까이 밥먹고 살았으니, 정치에 기여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사회에서는 11표라서 돈 많은 사람의 발언권이 쎄다지만, 정치에서는 11표라는 기본적 민주주의 원리가 그나마 작동하기에, 나는 정치를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영역이라고 아직도 생각해왔다. 그런데 정치에서의 실패, 야권의 7.30 재보선 참패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올바른 대책마련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말았다.

 

 

야권, 참패의 역사를 뒤짚어라

 

지난 2007년부터 7년간, 두 번의 대선 참패와 두 번의 총선 참패, 2014년 지방선거의 아쉬운 실패, 그리고 스물 몇 번의 재보선 참패에 이르기까지, 야당의 최근 선거사는 패배의 역사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패배를 보는 눈은 극명하게 갈렸다. 보수로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그만큼 했으면 잘했다는 구조적 필패론과, 사실상 보수-진보가 총동원된 대선 전쟁에서 양 대선캠프의 캠페인전에서의 명암이 승부를 갈랐다는 전략부재 무능론이 대표적이다. 나는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그것은 본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7.30 재보선의 대참패도 야당의 존재의 근거를 다시 물어야 할 정도의 참담한 패배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40%의 황금비율이 깨져나가고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참사와 세월호 참사 양 참사가 민심을 격동시킨 상황이었다. 그런데 세간의 예상을 비웃듯이 11:4라는 어처구니 없는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이 패배의 원인은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이미 물러났지만 김한길 안철수의 모자란 리더쉽이 불러온 패배라는 리더쉽무능론은 차라리 쉽다. 패배의 대표적 원인은 공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천의 혼선과 실패가 낳은 재앙이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무엇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구도, 전략, 전술, 리더쉽에서 캠페인까지, 승패를 가른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야권은 공천을 저리하고 늘상 선거연대에 시달리고 젊은층 투표율에 기대하다가 또다시 지고 만다.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패배이고 반복되는 분석이고 또다시 분열되며 지리멸렬해진다. 패배의 늪에 깊이 빠진 야권, 어떻게 살아나야 하나.

 

관점을 정확하게 정리해보자. 이런때 일수록 통찰적 접근이 필요하다. 승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통찰적 관점, 그것이 나의 관점이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김종필을 껴안아 호남충청연합으로 이회창을 이겼다. 신한국당은 이인제의 분열로 표가 더 분산되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국민경선의 역동성에 더해 정몽준을 껴안아 미래지향적인 세대교체흐름까지 포괄했다. 이회창은 특권층을 대표하는 낡은 인물로 낙인되어 또다시 패했다. 승리의 역사가 알려주는 통찰은, ‘단결과 변화이다.

 

 

세가지 문제와 세가지 해법

 

첫 번째 문제, 야권은 분열되었다. 2007년 대선 패배직후 어느 모임에서 누구는 민주당 혁신론은 누구는 신당추진론을 누구는 진보정당론을 누구는 사회운동 강화론을 펼치는데, 중요한 점은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차이를 더큰 차별로 만들고 다른 길로 가는 모습이었다. 현재 민주진보진영은 새정치민주연합, 진보정의당, 통합진보당, 사회당, 녹색당 등 여러정파로 분열되었다. 심지어 같은 당 안에서도 대선후보 중심으로 계파 분열되어있다. 반면에 보수진영은 현실의 지역주의 정치판에서 영남과 충청을 하나로 묶어냈다는 점에다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바로 보수진영 전체를 단 하나의 단일정당으로 완성시켜냈다는 점이다.

 

민주진보진영은 분열을 독립으로 합리화한다. 다수파인 민주당은 손해볼 것이 없다고 안주하고, 소수파 진보정당은 진보성을 지속시키기 위한 전략적노선으로 착각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현상은 성과없는 연합정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감동도 없다 오히려 식상하다. 선거는 구도다. 1표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종다수대표제 선거체제하에서 새누리당과 민주진보진영간의 사실상의 1:1 구도만 선거판에서 만들면 된다라고 떠드는 자들이 한심할 뿐이다.

 

해법1. 어떤 손해를 보고 어떤 욕을 먹더라도 깨지지 않는 단일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야권의 노선 정체성이다. 아직도 진보냐 온건중도냐다. 이념적 정체성은 사실 낡은 잣대다. 야권은 2차원적인 진보와 보수의 줄 위에서 줄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런데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생산적 복지를 했고 이명박 통치기에는 정치권에 복지국가 담론도 수용되었다. 실용주의다. 무슨 이념적 선명성을 내세운다는 것은 시대착오다. 노선, 그것은 시대의 위기를 종합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야권에 필요한 것은 진보적 선명성이나 중간층을 공략하기 위한 중도성이 아니라. 문제해결능력 그 자체일 뿐이다.

 

해법2.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유능한 전문가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야권의 행위적 정체성이다. 대적투쟁전선이냐 문제해결정책전선이냐. 섬멸적 투쟁성을 야권의 행위적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그룹이 항상 존재한다. ‘야성’. 사실 반독재민주화운동기의 야당은 독재라는 거악에 맞서 목숨걸고 싸웠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통치가 독재인가. 아니다. 철저하게 민주주의다.(물론 기업사회체제를 옹위하는 관리민주주의이지만) 선거로 뽑혔고 법대로 인사하고 법대로 행정하고 있다. 지금 야당의 투쟁이란 87년 체제가 낳은 반독재민주화운동의 변형으로 보일 뿐이다. 그것도 그나마 야권내부의 시선으로 볼 때 그렇지, 기실 절차적 민주주의의 결과인 박 대통령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몰상식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야권은 대선직후부터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 1년넘게 이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야권의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가세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대선불복으로 비쳤다. 이 사안을 간단히 볼 것이 아니다. 낙선한 후보자가 대통령이 부정한 방법을 총동원해 당선되었다고 주장한다.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그걸 빌미로 다음 선거에 활용한다. 그것이 팩트가 되었다. 야권은 민주주의 회복 투쟁을 했을 뿐이라지만, 사회적으로는 대선불복프레임이 완성되어 버린 것이다.

 

해법3. 정쟁에서 떠나 문제해결 정책전선을 대폭 확장하는 것이다.

 

감히 생활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왜 무상급식이 성공한 진보의 프레임이 되었는가 상기하길 바란다. 아이들 학교급식 문제, 엄마들 골치아픈 도시락 준비문제, 친환경 음식 문제 등, 생활현장에서의 문제들을 가치있는 방향으로 해결한다. 이것이 진짜 진보다.

 

 

변화하기 위해 변화하자

 

올바른 방향으로, 가치있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현재 새정치연합과 민주진보진영은 변화하고 있는가. 아니다. 더 퇴보하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고 노력하는가. 아니다. 안주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빨간색으로 과감한 색상변화를 한 것에 새정치연합은 수동적으로 파란색으로 정했다. 변화가 아니다.

 

이번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은 고집쟁이 이정현을 순천에 공천하고 당선시켰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지역위원장들을 공천했다. 당선시켰다. 새정치연합은 출마안하겠다던 권은희를 광주에 공천했다. 당선은 되었으나 오히려 대선불복 프레임이 가동되었다. 정의당은 배수진을 치고 당대표급들을 출전시켜 단일화 테이블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젊은 후보 기동민은 사라졌으며 노회찬 단일후보는 너무 늦어서 단일화 효과도 나오지 못했다. 무엇이 변화인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공들인 지역도 포기하고 마구 옮겼다는 비판이 거셌다.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니라 권력 탐욕이라는 악성프레임이 작동되었다.

 

선거직후 손학규는 정계를 은퇴했다. 전격적이었고 패배감에 젖던 가슴아픈 사람들의 마음에 다소나마 위안을 선사했다. 변화의 방향은 세대교체인 듯 했다. 그리고 다시 반발이 거셌다. 변화는 또 다시 뒤안길로 사라졌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변화는 변화의 내용보다는 변화할 수 있다고 변화하는 것이리라.

 

 

삶속변화

 

이 시대 민주주의는 이미 기업의 손아귀에 놓여있다. 정치가 사회 경제 문화를 지배하고 모든 것을 통치하던 시절은 끝났다. 경제가 정치를 리드한다. 민주주의란 관리된다. 좁은 여의도 안에서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누구를 위하여 운영되는가의 근본적인 문제를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 결코 권력자 일인을 위한 정치독재 시스템이 아니다. 근본적 권력이동이 이미 경제로 옮겨진 이상, 정치가 해야할 일이란 무엇인가. 바로 경제정의다.

 

경제사회 전영역에서 양극화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일자리를 지키고 늘려야 한다.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중산층 지갑에 단돈 천원이라도 불어나야 하고, 죽기 일보직전에 몰린 빈곤층들에게 생존의 사다리를 다시 놓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 정치권, 그것도 야권이 싸워야 할 대상이 독재망령이 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자 아이러니다. 국민들의 삶속으로 생활속으로 지역속으로 들어가야 보인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의 변화는 삶속변화.

 

 

새로운 정당의 모델, ‘사회정당

 

정치혁신, 정당혁신.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대 대한민국 정치시스템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종다수 일위대표 국회의원제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 본질적으로 접근해보면, 법과 예산을 다룬다는 면에서 볼때, 정치를 진짜로 하는 것은 관료들이다. 대통령 마저 관료들 아래에 있다. 문제해결의 키를 쥔 선장들이 관료사회에 차고 넘친다. 반면에 정치권에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섬멸적 투쟁에 앞장서는 이들이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작용으로 대중적 명망가들을 영입하기에 바빴다. 세상을 바꾸는 데 쓰고자 정치를 취했지만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적 후진성과 구조적 무능성을 접하면서 부터는 그저 직업정치인으로 안주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더욱 위대한 일이다. 힘든 일이기 때문에 더욱 성과있고 강고해질 일이다. 시스템의 문제는 정치에서 풀 수밖에 없다. 정치에서 한 발 나아가지 못하면, 경제사회문제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나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정당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혁해 사회정당을 건설하라.

 

첫째, 정당의 주요구성요소인 인물의 특징을 문제해결능력을 갖춘 전문가들로 일대혁신하라. 정책전선을 다양하게 펼치고 문제해결능력을 지금 당장 보여라. 만약에 국민들 호주머니에 단 돈 1천원을 늘려주는 삶의 정책을 내놓는다면, 다음 선거는 무조건 승리할 것이다.

둘째, 정당의 모든 부면을 개방하고 시민사회와 풀뿌리 지역활동가들과 접속하고 네트워크하라. 원래 정당은 계층기반과 지역기반이 있다. 한마디로 올라오는것이다. 기존의 동원정당은 계파정치의 후과다. 계파동원정당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물망을 건설하라.

셋째, 정당의 운영방식을 sns로 일대 혁신하라. 카톡이며 페북이며 순식간에 소통된다. 당론이나 정책이 당원이든 지지자들에게 일독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한 시간도 들지 않을 것이다. 단지 소통이 문제가 아니다. 소통의 속도를 건설하라.

 

한마디로 정당을 사회화하라. 사회정당을 건설하라. 이것이 새정치연합이 살고 소수 진보정당이 살 길이며, 다른 한편 현존하는 사회운동이 역사에 기여하는 길이다. 이미 민주화운동의 후광은 사라졌다. 486은 새로운 사회정당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야한다. 지금 민주진보진영이 가야할 형극의 변화는, 바로, 정치주체의 사회화다. 그 길이 복잡하고 어렵고 오래걸리더라도, 반드시 달성해야할 선도적 변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20164월 총선은 몇가지 점에서 민주진보진영에게 기회이다.

먼저, 박근혜 정권을 통째로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주까지는 아니어도 작금의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은 줄푸세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자리도 더 줄어들 것이다. 대북관계도 개선할 의지나 방법이 없다. 사회불안도 나날이 악화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낙제점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2017년 대선 일년 반 전에 총선이 있다는 점이다. 대권후보에게 바치는 상납정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드리는 사회정당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셋째,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진행되는 공론이다. 더 이상 패배해서는 안된다는 소명이 있다. 새정치연합 홀로 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내외에서 형성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민주진보진영이 기회를 박찬다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20개월 6백일이 남았다. 분투하자. 함께 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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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키우면서 글쓰다 보니, 정말로 물리적으로 뭘 어쩔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다.

 

꼭 쓰고 싶었는데, 쓰지 못한 글들, 제목만 잠시...

 

- 머머, 치치포포

 

- 이오, 치코

 

- 내 인생에 최고로 행복한 날들

 

- 마, 빠 그리고 마

 

- 저농약 쿵

 

쓰고 싶은 글이 좀 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된다... 그리하여 제목이라도 기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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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 원고를 끝내고 나서

 

‘FTA 한 스푼을 끝내고 나서 다시는 이렇게 사회적인 일에 급작스럽게 책을 쓰는 일은 안하겠다고 굳게 결심을 했었다. 이게 너무 힘든 일이다.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만, 온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전선과 같은 곳이라서, 그 긴장감을 견뎌내는 것은 더 힘들다. 한 번 그렇게 끝내고 나면,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다. 결혼 초기에는 그래도 나도 어느 정도는 건강이 있어서 버텨내고는 했는데, 이제 나도 40대 후반을 향해 가는 나이, 아기 키우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세월호 사건 초기에, 이걸 한 번 정리해달라는 요청이 그렇게 많았었다. 그래도 못한다고, 이해해달라고 했었다.

 

그 긴장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내 일정도 있고, 10월이면 둘째 아이도 태어난다. 그냥 안 하고 싶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래도 결국 하게 되었다. 너무 이상한 일이 많았다. 진짜 이 사건은 이상한 사건이다.

 

하여간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바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 조금씩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 때까지만 좀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내려 놓을 생각이었다.

 

결정적으로 이걸 꼭 해야겠다고 생각을 먹고, 속도를 부쩍  높인 것은, 대통령의 사과를 보고 나서이다. 원래도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이상한지는 몰랐다. 황당

 

그 때가 내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하여간 그 사건을 계기로 나도 속도를 냈고, 본문은 이제 1교가 끝났고, 나도 남겨놓았던 에필로그와 서문을 오늘 마쳤다.

 

책 제목은 원래 부제로 달아놓았던 내릴 수 없는 배가 되었다. 처음에 생각한 제목은 사고가 난 4 16일이라는 의미에서 4.16으로 일단 달아놓고 시작했었다. 공교롭게도 책의 도입부로 사용한 까뮈의 페스트에서 쥐들의 시체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페스트가 발병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그날도 4 16일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사과에서 이 날을 기념하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제목에서 자동 탈락.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본 한국은, 진짜로 이상한 곳이었다. 그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분석을 해보니까 정말로 이상한 곳이다.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나니, 배 사건은 100% 또 발생한다. 안 나면 그게 이상한 것이고, 확률의 법칙을 넘어서는 일이다.

 

우리 편은 좀 나은가?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황당한 건 마찬가지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93년 서해페리호 사건이 나고 4년 후에 국가부도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세월호 이후에는? 대통령 하시는 양상으로 봐서 4년보다는 줄어들 것 같다. 기가 막힐 정도로 서해페리호 사건과 세월호의 전개과정은 복사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 그 때보다 뭐든지 조금 더 나쁘다고 보면 딱 세월호 사건이 된다. IMF에 대해서 나도 참 많은 언급을 하고 분석도 많이 했었는데, 서해페리호 사건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여간 뭔가 덥기 위해서 YS가 이것저것 삽질하던 끝에 국가부도 사태가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4년 혹은 그보다 약간 더 빠른 시기에 국가부도급 위기를 맞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검토하다 보니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형 사고가 벌어져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시스템이 좋아진 경우가 별로 없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아주 심하고.

 

사건이 벌어지면 수습한다고 하면서 원래 그냥 자기들 하고 싶은 거 더 쎄게 하는 거, 그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은데, 실제로 그렇게 가는 게 일반적 패턴이다. 나도 놀랐다.

 

최경환이 세월호 거론하면서 LTV 풀겠다고 하는데…. MB도 그건 안 풀었다.

 

솔로 경제학까지, 큰 책 두 권을 연달아 작업을 하고 났더니 내 정신 세계가 완전 망신창이 되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싶어요, 이 말이 절로 나온다.

 

특히 지금처럼 사회적 문제에 단기적으로 대응하는 책은, 정말 다시는 안 할 생각이다. 내가 무슨 조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들어줄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맨몸으로 다 때우는데, 이제는 정말이지 체력이 안 된다.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책 작업을 시작한 게 2005년부터니까, 이래저래 올해가 10년째 이러고 있는 셈이다. 10년을 이러고 살았으니, 진짜 사회적 논쟁의 최전선에 10년 동안 서 있었던 거다. 이제는 슬슬 그만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올 겨울에 가장 먼저 나왔던, 그래서 일종의 데뷔작이 되었던 아픈 아이들의 세대개정판이 나온다. 벌써 한 바퀴를 돌아서, 이미 절판된 책을 다시 내고 싶어하는 출판사가 생겨났다. 그렇다고 모든 절판된 모든 책을 다 개정판을 낼 건 아니고, 이번 한 번 정도 예외적으로

 

하여간 세월호 얘기가 드디어 내 손을 떠나간다. 그 동안 참 많이 울었다. 울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안 울려고 하는데, 이거야 원

 

당장 좀 쉬고 싶은데, 일정상 작년에 방송했던 인터뷰들 정리하는 작업이 하나 더 남아있다. 이것까지는 마무리 지어야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 연이나그러고 나면 둘짜 아기 태어나서, 다시 꽝.

 

교육에 대한 것도 좀 더 써보고 싶고, 아직 해보고 싶은 연구들이 남아있기는 한데그럴 여력이 될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교육부 장관 하겠다는 어떤 할아버지는 평생 책 한 권도 안 썼다는데, 매년 2~3권씩 쓰는 나는 도대체 뭐 하느라고 이렇게 바보 같이 살고 있느냐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별로 효율적이지도 않고, 힘만 많이 빠지고, 불필요하게 긴장감을 높여야 하는 삶이다. 이게 좋은 건 아니다. 나도 안다.

 

그나마, 내고자 계획한 책을 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하여간 언제부턴가 책이 손에서 떠나가는 순간이면 왠지 모를 허무함 같은 게 생겼다. 처음에 좀 체계적으로 접근할 때에는 책을 떠나 보내고 나면 외국에 갔었다. 그러면 지나간 책을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는 좋은 장점이 있다. 그것도 좀 열심히 살 때 얘기고, 요즘은 귀찮아서 그런 것도 잘 못한다.

 

어느덧 나도 아기 키우는 부모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은,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어딘가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요즘은 조금씩 해보기 시작한다.

 

세월호 사건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뭔가 성취감이나 해방감이 생기는 구조가 아니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찝찝하고, 알면 아는 대로 더 슬프고. 글을 마치고 나서 잠깐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게 기본 구조이다.

 

하여간 이제 내 손을 떠나간다. 허망에서 허무로 떠나는 여행이라고나 할까. 끝내고 보니 안 썼으면 후회할 것 같은데, 쓰고 나서도 후회하는 그런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 이 고통스러운 뫼비우스, 이 사건이 갖는 본질적 특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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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대선 이후에 어떻게 살지, 생각해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후 1년 반 정도, 정말 막 살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고민을 계속 했다. , 그것은 언제나 고민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지금같이 미리 생각해둔 아무 지표도 없을 때 더더욱 그렇다. 나는 성격상, 빼곡하게 계획을 세우고, 수 년 후에 할 일들을 미리 정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물론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고칠 계획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이런 백지 같은 진공상태에 놓여본 적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래도 이렇게 방향도 없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어떻게 살지, 방향을 잘 모르니까 글도 써지지가 않는다. 내가 요즘 쓰는 글들은 기능적인 글들이지, 정말로 본질의 대한 갈등이나 고민 속에서 나오는 글은 아니다. 분석과 선택은 분명히 다르다. 분석은 여전히 할 수는 있지만 선택을 지금 할 수는 없다.

 

아기 아빠로서, 아이 키우면서 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했다.

 

그러다 최근에 결심을 하나 했다. 결심이라 봐야 결국은 책에 관한 결심일 뿐이지만.

 

내년에는 책 두 권을 쓰는 걸로 목표를 정했다. 정확히는 두권 + 알파, 이게 알파인 것은 쓸 수 있을지 없을지, 쓸지 말지 아직도 마음을 못 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안 팔린다고 검증이 끝난 책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농업에 관한 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원자력에 관한 책이다.

 

원래에도 계획에 있기는 한데, 힘은 많이 들지만, 절대로, 정말 아무도 안 볼 책이라서 계속 우선 순위가 뒤로 가던 책들이다.

 

농업경제학은 쌀 얘기와 부재지주 얘기를 중심으로 풀어나갈 생각이다. 여기에 최근 탑재한 고베 이야기까지아직 고베를 못 가봐서 가을 정도에 갔다 올 생각이다.

 

2004년 생각이 많이 난다. 대학원 때 농업 공부를 좀 한 이후로 오랫동안 농업 공부를 안 했다. 결국 생태경제 얘기를 더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늦게라도 농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열이면 열, 내 주변의 동료들은 다 반대했다. 원래 있던 농경제학과도 예를 들면 응용경제학 같은 걸로 이름을 바꾸고, 생태나 환경과 결합시키려고 하는 게 흐름인데왜 너는 생태경제라는 유망분야를 잡고 있으면서도 사양산업이 농업 쪽으로 오려고 하느냐전망없다, 하지마라

 

그래서 나는 이걸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루고 미루던 그 일을 내년에는 하려고 한다.

 

원래는 12권으로 계획된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10권에 해당하는 책인데, 시리즈는 이제 그만 종료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과는 독립된 별권으로 농업경제학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11권은 과학경제학이었고, 12권은 언론경제학이었다.

 

과학 경제학은 박근혜의 창조경제 이후, 내가 그 얘기를 더 하기가 싫어졌다.

 

언론경제학은, 그 사이에 종편이 생겨났다는 변화가 생겼다. 종편 별로 안 보고 싶은데, 분석을 하려면 안 볼 도리가 없다. 시리즈를 완결하기 위해서 종편을 보느니, 차라리 계획된 책을 없애는 편이 더 편하다.

 

그리하여 2004년에 농업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딱 10년만에 그 동안 내가 한 공부를 총정리하는 책을 한 권 내려고 한다.

 

절대적으로 안 팔릴 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하여간 내 양심과 같은 책이다. 내년 상반기로 생각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를 1권으로, 노무현 후반기부터 시작한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요렇게 해서 마감이다.

 

하반기에 한 권 생각하는 것은, 할지 말지, 계속 고민만 하다가 얼마 전에야 마음을 먹은 책이다.

 

원자력 관련된 책을 한 번 쓰려고 한다.

 

요것도 절대적으로 안 팔릴 책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말리는 책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할 때, 그 때 정책을 지휘하던 친구가 이재영이다. 친구 잘못 둔 덕분에, 그 선거에 환경 분야만 조금 도와준다고 끼어들었다가 완전 제대로 코가 걸린 적이 있었다.

 

그 때 탈핵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 전에는 반핵이라고 불렀다. 반핵은 공당이 쓸 용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탈핵이라는 용어를 썼다.

 

젊었을 때 나의 친구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책이다. 공직 시절, 내가 하던 일이 이 일 아니었나. 퇴직하고 나서 아직까지 에너지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고, 전기에 대한 얘기도 각을 세워서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해야 할 것 같다.

 

역시 내 양심에 관한 얘기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얘기 하나는, 이제영 평전에 해당하는 인민노련 얘기이다. 인민노련에 강조점을 둘지, 이재영에 강조점을 둘지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걸 내년에 할지, 아니면 더 있다가 할지, 그것도 마음이 잘 정해지지가 않는다.

 

암으로 일찍 죽은 이재영이 너무 그립다. 그가 없어지고 나니,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짜로 뭘 하고 싶어하는 건지, 그걸 통으로 이해하고 있는 친구가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내 친구들이나 내 동료들은 나의 일부분만 안다. 내 전체를 아는 사람은 이재영 밖에 없었다.

 

그게 대한 얘기를 꼭 한 번은 하고, 내 친구가 얼마나 똑똑했는지, 내 친구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그런 얘기를 한 번 하고 싶다.

 

지난 겨울이 이재영 1주기였다.

 

뒤늦게 모여 앉은 사람들 중에 노회찬과 조승수 그리고 김종철이 있었다. 난 좀 더 늦게 있고 싶었지만 아기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종철이는 계속해서 동작을에서 지역 활동 중이다. 거기에 노회찬까지 밀고 들어가서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대략 난감이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이재영 얘기나 더 할란다

 

하여간 내년에 뭘 할지는 잡혔다.

 

이건, 아무 일도 안 한다는 결심과 같다. 이런저런 자리에 대한 제안들이 있었는데, 내가 뭘 할 것인지 잘 생각해둔 게 없어서, 거절의 말을 단호하게 하지 못했다. 이제는 아무 것도 안 한다는 말을, 좀 더 정확하게 할 생각이다.

 

내년에는 이 사회에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정확하게 하는 한 해로 하려고 한다.

 

지금 정기적으로 매체에 쓰는 글들이 있다. 하반기를 맞아, 이것도 정리하려고 한다. 내년에는 책 두 권 외에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기 둘 키우는 아빠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그 정도일 것 같다.

 

방송은

 

이건 좀 생각이 복잡하다. 지금 하고 있는 걸 동료들과 가는 데까지 가보는 정도, 그 이상 늘리거나 더 하거나 그러지는 않으려고 한다.

 

후년은, 아직 모르겠다. 일단 결정된 것은 내년까지이다.

 

어쨌든 그게 정당이 되었든, 정부가 되었든,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일은 아무 것도 안 할 생각이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자문하는 일도 안 하려고 한다. 총선, 대선 때도 아무 것도 안 할 생각이다. 사실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고, 한다고 해봐야 결과가 좋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얘기는, 내년에 쓰기로 한 책 두 권에 다 넣을 생각이다.

 

후년에 계속해서 서울에서 살지, 아니면 한국에 계속 있을지, 이건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 같으면, 번잡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 여기, 이걸 좀 떠날 생각이 있다. 하여간 그 때 가서 결정하면 될 일이지만, 후년이 되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내년에는 내 주변 정리를 말끔히 하는 게 일단은 계획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그게 내가 되고 싶은 궁극의 상태이다.

 

문창극을 보면서 그야말로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그렇게 쥐고도 또 쥐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망대로 살면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창극과 반대의 길을 가고 싶고, 그와 정반대의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지 않고 어영부영, 대충 지내다가 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사람 사는 게,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대충 시간 보내면서 어영부영 하다가는 문창극처럼 되기 딱 좋다. 그렇게 하기는 싫다.

 

몇 달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진짜 고민고민 했었는데, 이제 고민의 시간은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막상 마음을 먹고 나니, 또 다른 홀가분함이 있다.

 

삶이라는 게, 큰 집착이든 작은 집착이든, 집착의 연속이다. 내려놓지를 못하니까 고민이 많지, 내려놓기로 마음을 먹으면 고민도 사라진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길이 보인다. 이제 조금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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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1.

박근혜 2, 그 어느 때보다도 글 쓰기가 편치가 않다. 실제로 글 한 줄 쓰기도 어렵다. 글 쓰는 것만 어려운 게 아니라,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더 강해졌다.

 

글 쓰는 것만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내가 하던 대부분의 일이 별로 하고 싶지 않아졌고, 그냥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요즘 내가 먼저 뭐를 하자고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거나, 제안하는 일은 거의 없다. 몇 년 전부터 하기로 했던 것 혹은 하던 연구가 거의 대부분이다. 최근에 유일하게, 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건 좀 해야겠다고 한 게 세월호 책 정도이다. 아마 내가 아빠가 되었고, 그리고 10월에 또 다른 아빠가 되는 그런 극적인 심경의 변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런 책을 쓴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뭐라고 썼는지 지켜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분명히 있기는 한 것 같다. 이건 초고이고, 습작으로 쓴 것이라는 걸 얘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겨나는 글의 부담감이라고나 할까, 분명히 그런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무게감을 짋어지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더 밝게, 더 발랄하게, 그리하여 가벼움 그 자체로 쓰는 글을 원래도 좋아했고, 더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누군가 뭐라고 엄청 복잡하게 나에게 얘기하면

 

그냥,

 

조까

 

이렇게 속으로 생각할 마음의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글 쓰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나이 때문은 아닌 것 같다.

 

2.

가장 근본에 있는 마음 속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명박과 5년 그리고 근혜와 또 다른 5년을 보내게 되면서,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자신감 자체가 나에게 없어진 것 같다.

 

2004,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 때는 다소간의 무게감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나 내 주변의 친구들이나, 전부 다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이 뭔가 직접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친구들은 민주당 근처에 가서,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찾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별로 스스로 뭔가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당시 분당하기 전의 민주노동당 근처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많이 꺼내놓으면서, 그래도 누군가 잘되기를 바라는 일을 했던 것 같다. 그 시절, 그렇게 처음으로 진보정당이라고 우리가 불렀던 곳에서 원내 진출을 했다. 그 때 들어간 사람들을 다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들어가는 게, 세상 좋아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나와 같이 일하던 파트너가, 어쩌면 내가 눈을 감을 때 내 인생의 최고의 친구라고 할지도 모르는, 바로 그 이재영이다. 하여간 그와 그 시절의 동료들은,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좋아질 거이라는 데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88만원 세대를 비롯해서, 내가 수 년 동안 밤 새면서 미친듯이 써내려갔던 책이나 글들은, 어쨌든 세상은 좋아질 것이고, 그 방향을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돌려보고 싶다는 긴박감에서 나왔던 것 같다.

 

3.

근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세상이 과연 좋아질 것인가? 아주 마음 속 깊숙이, 진지하게 나에게 물어볼 때, 잘 모르겠다.

 

형식적으로 혹은 상태적으로 잠시 좋아질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로 좋아지는 것인지 혹은 그런 상태가 잠시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간만큼 유지되기라도 할 것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이거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그런 글을 지금도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면 좋을텐데, 그런 글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능적이다. 써야만 하니까 혹은 쓰기로 했으니까 쓰고 있는 글, 그런 것들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운 것은, 어차피 잘 안될 거니까, 그런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

 

기능적인 삶, 그런 게 제일 살고 싶지 않았던 삶이다.

 

그런데 까딱하면 내 삶은 물론이고, 내 글도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 더더욱 글을 안 쓰고 싶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4.

세월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점점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야말로, 된장이다.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쓰는 것, 그런 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 그 때는 힘들어도,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 도대체 한 번의 숨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을까 싶다.

 

별로 좋아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기능적으로 뭔가 쓰는 것, 이거는 정말 못할 일이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뭔가 써야 한다고 억지로 버티는 것은, 세상이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그 밑바닥까지 가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는, 좀 허접하면서도 불쌍한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이게 진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어차피 질 건데, 그래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더 처참하게 되는 것. 패전 처리 투수, 차라리 그 정도면 좀 낫다. 그 뒤에 의미 없이 지는 게임에 서 있어야 하는 외야수들.

 

마침 요런 심난한 마음에 필연적 기분을 더해준 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올해는 역시 꼴지에서 그냥 헤맨다. 아마 열심히 하면, 꼴지에서 한 칸 정도 벗어난 정도에서 시즌을 끝내지 않을까 싶다. 안 그래도 심난한데, 응원하는 팀도 심난하고, 이래저래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그런 상황이다.

 

질 때 지더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 그것은 아주 길게 보는 낙관적인 생각이 있을 때 힘이 난다. 져도 괜찮다, 그럴 때는. 그러나 내가 보는 상황이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정말로 하기 싫지만, 그래도 기능적인 일이라도, 예컨데 질 때 지더라도 너무 황당하게 지지는 않으면 좋겠다.는 심정.

 

그러다 보니, 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정말로 아무 것도 안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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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삼촌이 아프다

 

 

두 달 전부터, 내가 바보 삼촌이라고 부르는 고양이가 기침을 시작했다. 가끔 고양이들이 기침을 하는 건 안 본 건 아니다. 몇 번 동물병원에 가서 물어보면 바이러스성 질환이라고 얘기도 하고, 연고 같이 생긴 약을 가져다 먹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바보 삼촌의 기침은 점점 더 심해지고, 요즘은 10분 넘게, 그야말로 폐병 환자처럼 쿨럭쿨럭거리는 소리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요즘은 덤불 안에 숨어서 길게 기침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같이 산다고는 하지만, 어지간한 포획작전을 하지 않으면 잡기도 어렵고, 워낙 고양이 여러 마리들이 교대로 다니기 때문에 그렇게 잡기도 어렵다. 솔직히, 아기 보는 것도 어렵다. 게다가 10월이면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아내는 슬슬 만삭의 분위기로 가기 시작한다.

 

고양이는 전형적인 야생동물인데, 야생동물이라는 말은 꾀병이 없다는 말이다. 아프다 싶으면 여지 없고, 아파 보이지 않아도 잠시 안 보여서 찾아가면 무지개 다리 건너가 있는 게 야생 고양이들이 삶이다. 내 손으로 참 많은 고양이들을 안아서 떠나 보내고는 하였다.

 

너무 이른 생각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바보 삼촌의 우리 집을 떠나가는 날에 대해서 슬슬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녀석과 벌써 4년을 같이 살았다. 장마가 한참 극성이던 때, 마루 옆의 베란다에서 빗소리와 함께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연신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 중에 결국 혼자 살아남아 그 해 겨울을 같이 났다. 그 겨울을 같이 났던 아빠 고양이가 그 다음 해 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참 예쁜 고양이들이 많이 태어났는데, 그 중에 결국 한 마리가 살아남아서 무사히 우리 집까지 이사를 했다. 녀석과 같이 한 배에서 태어난, 내가 생협이라고 불렀던 고양이는 이사오기 직전, 처음으로 영하로 내려가던 날 죽었다. 마루 베란다 한 구석에서 녀석을 찾아내서 안아들고, 정말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수많은 새끼 고양이들이 내 품을 거쳐갔다. 살아남은 고양이보다, 내 품에 그렇게 안겨서 영원히 떠나간 고양이들이 더 많다. 한 마리 한 마리, 돌아보면 눈에 밟히지 않는 녀석이 없다.

 

내 입장에서는, 바보 삼촌이 잘 버텨서, 지난 세 번의 겨울을 나와 같이 났던 것처럼, 또 몇 번의 겨울을 더 나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밥을 제 때 주고, 물 깨끗하게 갈아주고, 그런 기본적인 것 외에 뭘 더 해주기가 어렵다.

 

야옹구가 많이 아픈 적이 있었다. 전날 저녁에 아프다 싶었는데, 그 날 오후에 영 이상해서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그야말로 구름 다리 넘어가는 걸 겨우겨우 잡아 온 셈이 되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

 

녀석들은 꾀병이 없어서, 아프면 정말 아픈 거다.

 

삶이라는 것, 늘 좋을 때에 밝은 낯으로 서로를 볼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어려울 때도 겪고, 심통 날 때도 겪고, 그리고 음, 아주 많이 심통 날 때도 겼고. 그런 게 식구와 같은 사이라고 할 만할 것 같다.

 

나도 식구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중에 한 명은 벌써 떠났다. 가끔 술 마시고 취하면, 이렇게 얘기하고는 한다.

 

씨발 넘이 벌써 뒤지고 지랄이야

 

그래도 그가 죽고 몇 해가 지나니, 이제는 울지 않고 그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사람은 또 남은 사람이라, 그의 아내와 자식들과 매달 만나면서 또 몇 년이 지나니, 이제는 그도 좀 덤덤해진다.

 

내년에는 출간 일정을 이리저리 치워서, 먼저 죽은 나의 친구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쓸 시간을 좀 만들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쓰려고 했던 책인데, 그가 떠나고 난 뒤, 그와의 삶을 생각하면서 쓰는 책이 되어버렸다.

 

시간이라는 것은 나름 편리한 것이다. 많은 것을 무덤덤하게 만들고, 견딜만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바보 삼촌이 지금의 기침 증상을 잘 이겨내고, 앞으로 열 번쯤 나와 같이 겨울을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더라도, 그것도 받아들이려고 한다. 어쩌겠는가. 다 자기 명이 있는 걸. 녀석도 이미 그 또래의 고양이들에 비하면 이미 충분히 오래, 충분히 재밌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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