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게 남는 거다, 영화 <킹스맨>

 

1.

 

"저건, 마가랏 대처의 암살을 막았을 때 사진."

"왜 그런 일을 하셨어요?"

"아무에게도 좋은 소리 못 들었지."

 

영화 <킹스맨>을 다시 봤다. 이 얘기는 1995 BBC에서 나온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시작된다. 드라마는 6부작이다. 지금까지 나온 <오만과 편견> 중에서 제인 오스틴의 의도를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문제의 바로 그 '오만', 다아시로 나온 사람이 젊은 콜린 퍼스이다.

 

<오만과 편견> 6부작 드라마를 다시 봤는가? 죽고 싶지 않아서 보았다. 이제 나이 50, 되는 대로 살다가는 아주 비참한 60대를 보내기에 딱 좋은 구조이다. 나는 조금 더 메이커로 살아가고 싶은데,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지난 몇 년간 너무 안 했다. 진짜,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나에게 들어오는 의뢰 중에서 나도 하고 싶은 게 겹치는 게 주로 코미디 시나리오이다. 나도 해보고 싶고, 주변 사람들도 목놓고 기다린다. 몇 년 전에 정치 코미디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입으로만 구상을 주변에 얘기했었는데, 이게 삽시간에 소문이 퍼져서 진짜로 유명한 감독들이 해보고 싶다고 건너건너 연락이 왔었다.

 

만약 그 때 차분하게 앉아서 그걸 마무리 지었으면, 지난 몇 년간 내가 겪었던 그 비참함과 비루함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차분하게 살지 못했고, 내 또래 남자들이 주로 그렇듯, 나도 희생이라는 비겁한 변명 아래 영광과 권력을 향해서 뛰어간 것 같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진짜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거기다, 애 둘 보고 있으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

 

그래서 진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잡은 게 BBC에서 만든 <오만과 편견> 6부작 드라마이다. 대략, 10번쯤 본 것 같다. 재밌다. 진짜 재밌다.

 

여기에 젊은 시절의 콜린 퍼스가 나온다. 아직은 파릇파릇하다.

 



2.

 

영화 <브릿지 존스의 다이어리> <오만과 편견>을 그대로 영화로 가져왔다. 콜린 퍼스가 연기했던 BBC 드라마의 다아시 캐릭터는 영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그 배우 그대로, 극중 이름 그대로, 콜린 퍼스가 다아시를 연기하는 새로운 영화가 만들어진다. 영화도 대성공을 거둔다. 다아시라는 캐릭터는, 원작의 소설에서도 그랬지만 드라마에서도 영화에서도 빅히트를 친다. 그리고 콜린 퍼스의 시대의 최정점을 찍는다.

 

결국 다이어리 시리즈는 3편까지 나왔는데, 나는 2편이 제일 좋았다. 특히 휴 그랜트와 콜린 퍼스가 분수대 안에서 혈투를 벌이는 장면은 진짜로 재미 얄지다. 돈 잘 버는 인권 변호사와 잘 나가는 TV 진행자가 한 여자를 놓고 한 판 벌이는 것인데굳이 한국 상황과 비교를 하자면 젊고 괜찮던 시절의 변호사 노무현과 역시 젊고 멋진 손석희가 사랑을 놓고 치고 받는 개싸움을 하는 것이다.

 

, 이들의 사랑을 받는 브릿지 존스가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 별로 그렇게 행복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젊고 잘 생긴 사람과의 다아시와의 연적 관계, 원래 <오만과 편견>에 나왔던 핵심 모티브이기도 하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 <브릿지 존스의 다이어리>, 일종의 모자 관계이다. 다아시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콜린 퍼스가 두 코미디의 공유된 DNA이다. 제인 오스틴의 영국식 유머가 그렇게 찰진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3.

그리고 <킹스맨>, 역시 자잘한 영국식 유머가 넘친다. B급 정서에 화장실 유머, 한국에서는 통할 때도 있고, 안 통할 때도 있는데, 어쨌든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감독과 제작을 동시에 하는 매튜 본은 원래 웃기는 거 겁나게 잘 하는 사람이다.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축구 시합을 그린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실컷 웃었다.

 

최근의 <엑스맨> 시리즈도 매튜 맨이 연출을 한다. 엑스맨에 유머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아포칼립스 스타일이다. 세계 평화를 너무 걱정하다 보니까, 잔잔하게 유머작렬시키는 영화와는 좀 차이가 난다. 그런 매튜 맨이 <킹스맨>에서는 진짜로 각 잡고 웃겼다.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콜린 퍼스에서 <킹스맨>의 콜린 퍼스에 이르기까지, 그 한 인생을 놓고 보면 할 얘기들이 많을 것 같다. 내가 그 안에서 읽은 것은, 대놓고 웃기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 속에 녹아들어들어가는 유머, 그런 것이 갖고 있는 미덕이다.

 

4.

나 자신을 돌아본다. MB 5, 근혜 - 아니 순실이 - 5년을 거치면서 감성이 너무 매말라 버렸다. 웃는 것도 미안하고, 웃기는 것도 죄짓는 것 같은 그 10년을 보냈다.

 

우리나라 경제만 바짝 마른 나무들처럼 매마른 것이 아니라, 나의 정서와 감성도 바짝 마른 것 같다. 독설로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버나드 쇼가 그렇게 독설을 잘 했다고 알고 있다.

 

독설과 욕이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원래도 욕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 물론 욕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하고 나서 기분이 좋기보다는 뭔가 찜찜했다. 그냥 내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 그리고 가급적 욕을 안하고 사는 방식으로 지금껏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감정은 메마르고, 삶은 힘들고, 우리 모두 힘들고. 힘들고 어렵다, 이런 감정 말고는 남는 게 없다.

 

MB, 순실이, 책임지라고 해도 그럴 리가 없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분노? 분노로 10년씩 버티지 못한다. 진짜로 분노만 남으면, 일상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분노는 때때로, 가끔 폭발하는 것이지, 분노의 마음만으로 삶을 유지할 수가 없다. 정말로 그렇게 하면 정신과 주치의가 생겨나게 된다. 그렇게는 못산다.

 

그럼 슬픔? 미안함과 슬픔, 그런 게 새누리당 아저씨들이 만들어낸 10년을 지내면서 보편화된 감정이다. 늘 미안하고, 돌아서면 슬프다. 잘 못해서 미안하고, 잘 안 되서 슬프고, 이기지 못해서 미안하고, 이길 수 없어서 슬프다. 개인사든 사회의 역사든, 지난 10년간 미안함 아니면 슬픔이었다.

 

"왜 마가렛 대처 암살을 막으셨어요?"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콜린 퍼스의 애환, 이런 게 코미디적 요소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걸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것 같다.

 

5.

BBC 드라마 6부작 <오만과 편견>에서 <브릿지 존스의 다이어리> 그리고 <킹스맨>까지, 그렇게 보다 보니까 콜린 퍼스의 일대기가 되어버렸다. 이걸 전체적으로 몇 번에 걸쳐보고 딱 남은 말 하나가,

 

"웃기는 게 남는 거다",

 

요 한 문장이다. 뭐가 웃기는 거냐? 그렇게 정색을 하고 물어보면 나도 마땅한 답변은 없다. 그렇지만 미안함과 슬픔이 있는 자리에 웃기기 위한 노력이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다.

 

50을 넘으면서, 나도 영광스럽던 지난 10년을 털고, 밑바닥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 절절함이 아니었으면 20년 전 BBC에서 했던 드라마를 그렇게 목숨 걸고 다시 볼 이유가 있겠나? 읽어야 할 책은 책상 위에 가득가득 놓여 있고, 써야 할 글도 잔뜩인데, 만사 다 제쳐놓고 화면도 구린 옛날 드라마를 뭐하러 봤겠냐?

 

죽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웃기지 못하면, 남 욕이라도 하게 된다. 남 욕하는 걸 스타일로 삼는 건, 진짜로 죽기 보다 싫다. 웃겨야 산다. 웃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그런 노력이 미안함과 슬픔 보다는 나에게 훨씬 낫다. 심각한 문장들, 이제는 내가 참기가 어렵다. 나를 위해서도 더 코미디 쪽으로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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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집회에서 삼성을 옹호하는 발언이 꽤 나왔다. 삼성 망하면 나라 망한다, 그런 어조의 얘기들이다.

10년 전부터, 법조계에서 삼성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다. 그 때 유행했던 말이, "삼성만큼만 하라고 해", 그런 거였다.

어차피 기업들, 대충 구리고, 이리 털든 저리 털든, 문제 많다는 전제 하에서 성립된 말이다. 삼성도 문제 많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삼성이 덜 문제 있는 거다, 그러니 대충 좀 넘어가자, 그런 뉘앙스의 말이다.

그 이후, 삼성처럼 했던 기업들, 문제가 아주 많아졌다. 삼성에 비교적 관대한 법조 분위기 속에서, 삼성은 스스로 문제를 풀 기회를 많이 놓친 것 같다.

이 사회는 어떤 이유로든, 오랫동안 삼성에 관대했다. 그리고 무서워했다.

태극기 집회에서 삼성에 우호적인 발언이 많이 나온다. 이게 삼성 입장에서 정말로 긍정적이고 유리한 일일까? 이런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삼성 경영진 입장에서, 태극기 집회에서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이재용을 보호하자, 그렇게 보이는 게, 꼭 좋아보이기만 할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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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첫 발표 순간을 들으려고 버티다가, 너무 늦어져서 결국 잠이 들었다.

아이들 어린이집 데려다 주려고 일어나면서 이재용 구속 소식을 들었다. 내가 이재용하고 개인적으로 감정으로 가질 일은 없다. 다른 사람이 구속되었다고 해서 내가 괜히 기분이 좋거나 그럴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진짜로 기뻤다. 요즘 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 자주 만나서 신나게 수다떨고 지내는 것도 아니다. 기다리고 버티는 것, 그렇게 살아간다. 이재용 구속, 진짜로 기뻤다.

1997년 12월의 IMF 경제위기는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타면서 들었다. 그 이후로, 단건으로 기분 좋은 경제 뉴스는 접한 적이 없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경제 뉴스들은 우울하거나, 별 의미 없는데 언론에서 난리치는 것들이다.

멀리 더 어렸을 때까지 기억을 돌려본다. 내가 경제 뉴스를 보고 진정으로 기뻐했던 적이 있었을까? 없었던 것 같다. 회사가 잘 되면 노동자들이 어려워지고, 집값이 올라가면 서민들은 힘들어진다. 경제가 그렇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의 댓가가 있다. 많은 경우, 제로섬 게임과 비슷해서, 일방적으로 기쁜 뉴스라는 게 생기기 어렵다.

이재용 구속은, 경제학자로서 정말로 처음 보는 생생한 기쁜 소식인 것 같다.

순실이 이후로 나라의 전환점이 잘 생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 첫 전환점이 바로 이 구속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든 부자든, 적당히 '사바사바', 대충하고 넘어가고, 그 한계의 선을 그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넘어가도, 이 정도는 안돼!

경제는 좋아질 것 같다. 패도적 재벌의 이상한 지배구조, 그런 것만 완화되어도 지금보다 경제는 탄력 받는다.

간만에,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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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이후로 사람들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감성은 바뀔 것 같다. 어떻게 바뀔까? 나도 가설 형태로만 생각해보는 중이라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68 이후로 바뀐 감성들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한다. 입생로랑도 68을 겪었다. 입생로랑도 그 때 프레타뽀르떼, 기성복 시장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저는 이미 새장 안에 갇혀버린 새였어요."

그는 오뜨꾸뛰르 매종에서 시작하였다. 첫 데뷔는 크리스찬 디오르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그를 승계한 수석 디자이너. 그 때 그의 나이가 21세였다. 알제리 전쟁에 파병될 때, 그는 이 '더러운 전쟁'에 참가하는 걸 거부한다. 그리고 매우 보수적인 크리스찬 디오르에서 해고된다. 그 위기 속에서 그는 자신의 매종을 열게 된다.

매종에서 시작, 매종에서 그의 디자인 인생은 마감된다. 68혁명은 그에게 기성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준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매종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다. 매종이 아닌 다른 방식의 옷 만드는 법을 상상하지 못했다.

패션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라인과 색상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길을 열어준 입생로랑이 자신을 '새장 안에 갇힌 새'라고 하다니... 그게 68이 그에게 준 영감이었다.

그는 상속녀나 부자집 마담이 아닌, 스스로 성공한 직장 여성들이 자신의 옷을 입을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저렴하게 옷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물론 오뜨꾸튀르 매종이라서, 아주 싼 옷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최대한 낮추려고 했다.

그게 68이 입생로랑에게 준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입생로랑의 표정이 가장 밝고 행복했던 것은,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였다. 미테랑 정권이 열렸을 때, 그와 그의 파트너들의 표정은 진짜로 밝다. 이유없이 행복해했다. 68이후로 13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리고 미테랑 정권이 끝나고, 입생로랑은 다시 어려워진다. 술을 점점 더 많이 마시고, 마약도 하게 된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장례식에 사르코지가 참석한다. 그의 장례식 필름을 보았는데, 많은 디자이너 등 그의 동료들이 완전 똥 씹은 표정이다. 입생로랑의 관이 사르코지가 온 걸 좋아할까? 아마 똥 씹은 기분일텐데...

무언가 참여하고 노력하고, 그 결과를 눈 앞에서 볼 때, 우리는 입생로랑도 생애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 행복감이 만들어낼 변화가 과연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두 아이의 육아로부터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나도 입생로랑 평전 쓰고 싶다. 명박의 시절, 순실의 시대, 그 10년 동안 나도 '새장 속에 갇힌 새' 같은 느낌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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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는, '지도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삶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었었다. 의식했든 못했든, 지도자의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은 지도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지랄하네',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2010년대 한국, 누가 누구를 지도하고 그런 게 아니다.

선배, 후배라는, 고풍찬란한 일본식 단어를 안 쓴지 몇 년 된다. 원래 한국에는 그런 말 없었고, 그런 전통도 없었다.

소학교 시절 얘기 중 감명깊게 들은 게, 같은 반에서 서로 존대해다는 말이다. 누구는 좀 어리고, 누구는 벌써 아기 아빠인데, 친구라고 반말하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는. 기수 따지고, 학번 따지고, 그런 얘기 안 한지 좀 된다.

학교 얘기도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 하는데, 한국 말에 '자연어'처럼 배어 있는 거라서, 아예 안 하기가 쉽지는 않다.

'지도자'라는 단어도 몇 년째 쓰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지도하고 지랄이야... 그런 건 아예 없는 것 같다.

아무도 지도받을 필요 없고, 아무도 지도할 필요 없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살고, 그리고 수틀리면 그냥 서로 싸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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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좀 커서 애들 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1. 책 읽을 때 만년필로 줄을 친다. 큰 아이가 한 번, 둘째 아이가 두 번, 만년필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결국 두 아이의 두 손, 네 개의 손이 온통 잉크 범벅이 되었다. 물티슈로 닦다가, 결국 비누로 두 손을 빡빡 닦을 수밖에 없었다. 30분이 지나갔다.


2. 조그만 소반을 놓고 책을 읽는데, 둘째가 어깨 위로 올라가고, 팔 위로 올라간다. 10킬로 가까운 아이를 어깨에 올리고 30분간 책을 읽었다. 아이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 쪽 어깨로 옮겨다녔다.


3. 실로 짠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결국 가슴팍에서 길게 실을 뽑아 냈고, 가슴팍의 조임매가 풀렸다. 아이 손에 실뭉치가. 오래 입기는 했어도 내가 가진 니트 중에서는 가장 비싼 건데, 외출할 때 입기는 어렵게 되었다. 올이 풀려버린 옷을 보면서 두 아이가 박장대소를 하고 행복해한다.


마침 읽고 있는 구절이, 1970년대 이후 여성들의 행복도가 전세계적으로 줄었다는 얘기였다.
나의 행복도도 줄어들고 있었다.


4. 아내가, 아이 둘 어깨에 태우고 책 읽는 거,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라고 한 마디 하고 갔다. 나도 어깨가 쑤셔서 더는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이를 보면서 두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절절하게 했다. 방법이 없다,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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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질 것인가?

난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 걸 알아, 이미 알고 있었다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멋있어 보이기는 한다. 물론 진짜 그런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세상이 좋아질 것인가? 물론이다. 어렵긴 하지만, 세상은 결국 좋아질 것이다. 지금이라고 말하지는 않겠고, 정권만 바뀌면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결국 좋아질 것이다.

대선이 조기에 시작되었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그깐 정권 바꿔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렇게 얘기한다. 그렇게 얘기하는 게, 자신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방어적 연애와 비슷하기도 하다.

어차피 잘 안 될 줄 알고 있었다니까. 속은 덜 상하다. 그러나 좋아지는 게 있을까? 단 한 번의 연애, 단 한 번의 사랑, 그리고 결국 결혼.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냈던 이계안의 삶이 그렇다. 대학 시절 첫 번째 미팅에서 결혼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쭉.

뭐, 그렇다고 해서 그가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래서 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도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안되면? 시간이 더 흐르면 잘 될 것이라고, 다시 또 생각을 한다.

대선 국면이다. 누구를 지지하든, 누구를 지지하지 않든, 정책 때문이든, 팬덤 때문이든, 본격적인 경쟁 구도에 들어간다.

모든 후보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에 임한다.

상황에 따라서, 물어보는 말의 강도와 맥락에 따라서, 별로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난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산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둘이나 낳고, 지금의 이 개고생을 안고 살 이유가 없다. 세상은 결국에는 좋아질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모두의 삶이 좋아지고, 모두가 만족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박근혜의 삶도 좋아질 지는 모르겠다. 순실이 언젠가는 행복을 찾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좋아질 것이다. 결국에는, 좋아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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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하다보니, 블로그 방문수가 백 만이 넘어갔다.

좀 열심히 쓰던 시절도 있었는데, 한동안 진짜로 정신이 없어서 그냥 방치해둔 시절도 있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가끔 글을 쓴다. 장기적 계획, 그딴 거 없다. 둘째가 언제 또 아파서 입원할지도 모르는 그런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사는데, 블로그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한 때는 여기도 어마무시하게 많은 사람들이 보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황폐하고, 망조 든 가문의 허물어져가는 대문을 보는 것과 같다.

뭐, 별 상관은 없다.

대다수의 청년들이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어를 외치고 있는데, 독야청청 잘났다고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폭망과 이생망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내 인생은 그래도 값지고 보람있었다, 요러고 있는 게,

딱 반기문스럽다.

수많은 이생망들이 블로그에 와서, 똑바로 안하면 블로그 폭파시켜버린다고 할 때, 그 때가 내 삶에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아주 열심히 살아가는 반기문을 보면서 요즘 배우는 게 적지 않다.

아, 저렇게 하면 저따구로 보이고, 요렇게 하면 요따구로 보이는구나.

<자본론> 전 3권을 통으로 읽어내는 것보다, 반기문 하는 거 유심히 살펴보는 게 배우는 게 더 많을 것 같다.

반기문이 인천공항에서 에비앙을 턱하고 드는 걸 보면서, 탄자니아에서 에비앙을 턱하고 들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 내가 그렇게 보였었겠구나...

아디오스 에비앙, 포 에버...

생수를 마시더라도 동네 가면 동네 물을 마셔야한다는 귀한 교훈을 얻었다.

한 때의 영광에 이제는 별 내용도 없어 황폐해진 블로그를 보면서, 그래도 내가 반기문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잠시의 위로를 받는다.

'지나간 곳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영광을 구하지 말지어다, 블로그와 반기문을 교차로 생각하면서 잠시 교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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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토론회에서 쓸 발제문 쓰고 나니까 2시가 넘었다. 30대 때에는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토론회 발제문을 썼었다. 40대 때에는, 초반에는 좀 쓰다가 나중에는 꾀가 나서, 아예 토론회 참석을 안했다. 바쁘다는 핑게를 댔지만, 핑게는 핑게일 뿐이다.


옛날 서울말로 나이가 50이 되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했다. 그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내가 본 많은 영감들이 나이를 먹으면 지갑은 점점 더 꽁꽁 닫고, 입을 엄청 열었다. 이것저것 사정 아는 처지에, 정말 꼴값이라는 생각 많이 했었다, 내 처지에, 여전히 지갑을 열 형편은 아니다. 미안하니까 입이라도 연다는 건데, 이게 참 꼴값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나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살았는데, 딱 그렇게 생겨먹는 꼴이다. 진짜 간만에 토론회 발제문 쓰고 나니, 역시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지갑 대신 입을 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인가?


근혜 말대로,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 들어...


50이 넘으면서 단호함 같은 게 생기기는 했다.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서 움직이고, 보람이 있는 일을 피하지는 않겠다... 내가 생각하는 경제가, 모두가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그런 세계이다. 돈 때문에, 의무감 때문에, 그게 좋은 건 아니다. 잠시 그렇게 움직일 수는 있지만, 평생 그렇게 움직이면 삶 자체에 자괴감 외에는 남는 게 없다. 돈이 모든 것을 보상해줄까? 돈은 잠시 행복하게 해주지만, 길게 기쁨을 주지는 않는다. 생물학에서 얘기하는 역치의 법칙 그대로이다. 없으면 티가 금방 나지만, 있으면 조금 더 있다고 해서 조금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돈 없으면 꽝이다, 사회 구성원들끼리 서로 이렇게 얘기하는 사회, 좋은 사회는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도 아니고. 성숙과는 거리가 먼, 그저 순실이 같은 얘들한테 놀림받기 딱 좋은 사회 아닌가 싶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정말로 대한민국이 순실이 놀이터였다. 신나게 놀고, 재밌게 놀고, 딱 털고 나가려는 순간, 그야말로 재수가 없어서 걸린 거 아닌가 싶다.


한국이 빠른 시간에 그렇게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자랐을 때, "돈 없으면 꽝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그런 것을 법칙처럼 모시지 않아도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그 편이 서로에게 편하다. 돈과 권력이 마법의 열쇠가 되어서 뭐든지 열고 다닐 수 있는 사회, 그렇게 좋은 사회는 아니다. 한국의 상층부, 마법 열쇠 들고 다니는 순실에게는 그냥 훌렁훌렁 열렸다. 그들이 청년에게는, 약자에게는 또 얼마나 단호하게 잘 난 척을 하시고, 갑질들을 하셨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지갑을 열 수 없으면, 입이라도 다물어야지... 토론회 발제문 다시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떠벌떠벌 입을 여는 게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인가, 다시 한 번 물어보게 된다. 그냥 머리 박고 살면서, 이래라 저래라, 그런 거 절대 안하고, 참견질, 상관질, 조언질, 이딴 거 없는 삶, 그렇게 살고 싶다.


입을 열면, 약속을 하게 되고, 약속을 하면 지키고 싶어지고, 그렇게 되면서 집착이 생긴다. 그리고는 욕심이 생긴다. 되고 싶은 것도 생기고, 이루고 싶은 것도 생기고. 그리고 이런 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꼴불견이다. 순실이도 자신은 충신이 되려고 했다는 거 아니냐...


그렇다고 살아있는 사람이 아예 입을 다물 수는 없고. 어떻게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앞으로 1년간 곰곰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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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에게 뇌물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당연한 일인데, 당연한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게 돌아가던 나라라서 신기할 정도이다.

작게 보면 삼성이라는 하나의 기업에 관한 문제이고, 크게 보면 세습 자본주의로 전락해가는 3세 경영의 문제이기도 하다. 2세든 3세든, 정상적으로 상속세 낼 거 내고 진행되었으면 좀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하면 또 다른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이건희의 삼성, 그건 크게 보면 공포를 상징했다. 과장되었든, 제대로 보았든, 한국은 이건희를 두려워했다. 미화하든, 칭송하든 혹은 공포에 떨든, 이건희의 삼성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삼성 국정원'이 국정원 정보보다 더 낫다는 것을 은연 중 받아들였다.

3세인 이재용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부러워하는 사람은 있을 수도 있고, 시기하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그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공포가 없으면 실력이 좋아야 하는데, 별로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덩치가 그렇다. 순실이 뭐가 무섭다고, 그 앞에서 덜덜덜 떨면서 아기 취급을 받았을까?

이재용이 감옥가면 경제가 망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한국이 덩치가 커져서, 부패와 조직 비효율로 인한 손해가 당장의 기계적 손실보다는 더 클 것 같다. 이재용이 감옥 간다고 해서, 당장 재벌에 엄청난 변화가 오지도 않고, 갑자기 오너들이 경영에서 손 떼고 전문 경영인 체계로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궁극의 모습은, 오너가 쥐고 흔들면서 불법과 합법의 기묘한 경계를 타는 지금의 모습은 완화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재용의 구속영장이 제대로 처리되면, 그만큼 한국 경제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성도 손을 못 쓰는데, 다른 곳은 어쩔까 싶은, 그런 전체적 교훈이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세 승계, 3세 승계, 세금 낼 거 내고 해라. 그렇게 할 지분이 없으면, 오너로서의 명예만 갖고, 적당치 않은 3세들 황제 경영 청산하고.

상속 자본주의로 한국은 너무 빨리 가고 있었다. 그것에 약간의 브레이크 역할을 이재용의 구속이 해줄 것 같다. 괜히 국민연금 건드리고, 정권과 한 배 타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비즈니스가 잘 되는 건 아니라는 우리의 제도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상속의 경제적 실익과 사업의 성과, 잘 계산해보지도 않고 식구 경영하는 것, 이제 차분히 생각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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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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