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3/19주간경향 1017호
지난 대선에 우리는 많은 것을 걸어놓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금융 민주화였고, 그 핵심은 외환은행 사태 해결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안철수 진영과 문재인 진영 모두 외환은행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만시지탄이다. 뭐, 대선과 함께 해법이 모호해진 것이 어찌 외환은행뿐이랴!

하여간 독자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사건을 정리하면,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로부터 매입하면서 길고긴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노사정 합의를 통해서 하나금융지주는 향후 5년간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한·미 FTA 협상을 통해서 유명해진 ISD라는 이름투자자-국가소송이 벨기에 법인을 통하여 진행되는 중이다. 여기까지가 대선 전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하나금융지주가 갑자기 외환은행의 나머지 주식에 대해서 공개매수 대신 ‘주식교환 승인’이라는 결정을 내리기로 하면서 일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노리는 것은 외한은행의 주식상장 폐지로 보인다. 5년간 독립경영 보장이라는 약속을 대선이 끝나자마자 뒤집는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쟁점이 생겼다. 아직 론스타가 금융자본인가, 산업자본인가, 해묵은 논쟁에서 외환은행 주주들이 갖는 법적 권리가 한 가지 쟁점이다. 여기에 전성인 교수가 새롭게 제기한 문제, 그게 바로 하나고 문제이다.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인 하나은행이 대주주 특수관계인 하나고에 거액의 은행 자산을 무상양도해 은행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제35조의 2 8항). 쉽게 말하면, 뒤로 돈을 몰래 빼돌리는 불법을 한 하나지주는 현행법상 건전성을 위반했으니 외환은행을 보유할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다. 말은 되는데, 언제 우리나라의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이 법대로 제대로 결정을 내린 적이 있나 생각해보면, 그냥 답답할 뿐이다.

여기에 또 하나 쟁점이 생긴 것이 바로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등 소위 공적 자금의 주식 보유권에 대한 사회적 역할이다. 외환은행이 이런 황당한 꼴을 겪고 있을 때,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이 과연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게 맞느냐, 아니면 기계적으로 투자 수익률만을 계산하는 게 맞느냐, 이런 문제에 봉착했다. 국민연금도 하나금융지주에서는 소액주주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없는 침묵, 이건 박근혜 정부가 내건 정책 방향과는 다르다. 한국에서 금융 민주화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의 거의 모든 것이 외환은행 사태에 걸려 있다. 여기에 김승유라는 독특한 인물과 하나고라는 교육기관까지 연계되면, 도대체 이게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었다는 한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가, 아연실색하게 된다. 금융의 공공성을 고민하는 시민사회에게 외환은행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질문이 하나 던져진 것이고, 동시에 막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금융 민주화란 무엇인가, 역시 곤란한 질문 하나를 받아들게 되었다.

좋은 점은 박근혜 정부도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의 주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나쁜 점은 론스타 매각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경제금융비서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외환은행 사태, 박근혜 정부의 금융정책이 맞게 된 첫 번째 대형사건이 되어버렸다.

우석훈 <타이거 픽쳐스 자문·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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