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몇 줄 안 썼는데,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이 가까워온다. 아침에 애들이 깨워서 일어나고, 이래저래 실강이 하다가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오면 그 때부터가 내가 잠시 일하는 시간이다. 운이 좋으면 3~4시간, 운이 없으면 1~2시간.

최근에 몇 가지 사건이 있었고, 기본소득에 대한 책을 한 권 정리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정을 아무리 봐도 내년에 책 더 찔러넣은 공간이 없다. 매년 일정대로 맞추려고 하는데, 1권 정도는 그 해에 소화를 다 못하고 다음 해로 넘어간다. 그러면 그 다음 해 일정도 또 어버버, 정신이 없다. 그나마 애 아프면 일단 올스톱, 무한대로 시간이 길어지는 거고.

최근에 낸 책 중에서는 사회적 경제 책이 가장 보람이 있었다. 딱딱하고 인기 없는 주제이기는 한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읽어주었다. 이건 사회적 운동 차원에서 내는 거라서, 강연도 가능한한 많이 했다. 지역의 작은 사회적 관련 기구나 시민단체가 무슨 돈이 있겠나. 그냥 되는 대로 하고..

'직장 민주주의'는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한 거였는데, 하면서 규모도 커지고 분량도 커지게 된 경우다. 막상 틀을 잡아보니까 이게 가볍게 툭 치고 넘어갈 얘기가 아니다. 그래도 이 작업도 이제 거의 끝나간다. '삼성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걸려서 덜컥덜컥거리고 있지만, 오늘, 내일 중으로 그래도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남들 관심 없거나 방치된 주제, 나는 이런 게 좋다. 그런 건 하면서도 보람 있고, 나중에도 보람 있다.

내가 성격이 더러운 게, 옛날에 했던 거 파먹고 산다는 생각이 들면 진짜 하루도 못 견딘다. 단 일보를 가더라도 앞으로 가야하고, 새 거를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허무함을 버티지 못한다.

틀이나 구조를 바꾸기 어려우면 내용이라도 새 거를 만들든지. 그리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시선을 계속 만들지 않으면 내가 답답해서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해도, 결국에는 그 나물에 그 밥 느낌이 드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되는 데까지는 계속..

'남들은 모르지.. > 직장 민주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PlanEnergi  (0) 2018.09.27
여기는 또 다른 고향..  (0) 2018.09.23
삼성 민주주의?  (1) 2018.09.11
오래된 미래...  (0) 2018.09.08
하이고, 지친다..  (3) 2018.08.30
Posted by retired
,

서울시 토론문 하나 쓰는데, 3일이. 물론 저녁 때 애들 어린이집 데리고 오는 일들이 계속 있었고, 중간에 지방에도 하루 갔다왔고. 토론문이라는 게, 특별한 형식이 있는 건 아니다.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a4 다섯 장, 내용만큼은 공들여서 꼼꼼하게 썼다. 보거나 말거나.

문화 분야의 기본소득에 관한 발제자료도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별 내용이 없는 거라. 이런 것까지 다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야 하나 싶은. 하여간 정부기관들 하는 일이, 뭐 좀.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이 엄청나게,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순탄하게 잘 굴러간다. 일부러 짜증날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짜증내거나 심통낼 일도 거의 없다. 늘 살면서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런 아쉬움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요즘은 그런 아쉬움도 거의 없다. 돈이 엄청나게 많아져서가 아니라, 노는 것도 힘들다.. 애들 데리고 놀러갔다 오려면 차라리 그냥 집에서 개기는 게 더 편한. 그러다보니 크게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고, 그냥 소소한 생활의 비용들.

문득문득 나만 혼자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모르겠다.. 이러다 또 힘든 순간이 내게도 또 오겠지.

경제 인류학이 60~70년대 한참 유행하던 시절 같이 유행했던 표현이다.

want not, lack not.

뭐 특별히 원하는 게 없으면, 특별히 부족한 것도 없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내년,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후년으로 다 미루어놓았다. 그러니 당장 조바심 내서 뭔가 해야할 것도 별로 없다.

명분은... 큰 애 학교 들어가고 나면.

그리고 그 다음에는, 둘째 애 학교 들어가면, 그렇게 또 미룰 생각이다.

나는 내가 하던 일들을 대부분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없앤 게 "꼭", "기필코", "반드시", 요런 표현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어렵다 싶으면 미리 포기한다. 병신아냐? 병신 맞을 줄 모른다. 그러나 내 수준과 내 여건에 맞는 일만 한다. 시간을 많이 써야 하고, 겁나게 열심히 해야 하는 일, 아예 시작을 안 한다.

그러니까 하는 모든 일은 잘 된다. 아주 크게는 아니더라도, 그냥 물 흘러가듯이, 이렇게 저렇게, 큰 질곡 없이 잘 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될 일만 한다. 아닌 것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칠 수 있는 볼만 치고, 잡을 수 있는 볼만 잡고.. 내가 딱 그렇게 산다.

그래서 누가 병신 아니냐고 하면, 그냥 병신 맞다고 한다. 속도 없냐고 하면, 속도 없다고 한다. 뭐 별의별 말들을 다 한다. 죽 쒀서 개준다는 둥,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둥.

다 듣고 한 마디 한다. "나중에 천국 가고 싶다... 아마 갈겨."

그래도 뭔가 안 되서 아둥바둥거리는 것보다, 이것도 잘 돼, 저것도 잘 돼, 이러고 있는 게 낫다.

조금 하고, 살살 하면, 진짜로 물 흐르듯이 일을 하게 된다. 시간 안 모자르냐고 사람들이 물어본다. 시간은 남는다. 요즘은 마당 고양이들 돌보는 시간도 조금 더 늘어났다. 못 보던 고양이들이 많아졌다. 천국 갈겨...

Posted by retired
,
직장 민주주의 중 병원 민주주의, 막 끝냈다. 중간에 일본 여행이 끼어 있어서, 이래저래 정신이 없었던. 그래도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여기에 할애해, 내 수준에서는 괜찮게 내용을 뽑아낸 것 같다.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김소현 간호사와의 인터뷰 내용에 기발하고 좋은 게 많았다. 나중에 보니까 현장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본인이 자기 이름 소개해도 된다고, 기꺼이.

이제 이 책의 마지막 산, '삼성 민주주의' 차례다. 길게 쓰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비겁하게 "별 내용이 없다", 도망가지는 않으려고 한다. 원래는 더 앞에 있었는데, 뭘 헤드로 써야할지, 그런 게 잘 안 잡혀서 뒷자리로 옮겼다.

상조형이라고 부르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욕 엄청나게 먹는다. 당대표 시절의 문재인 대표에게 상조형 소개하고 연락해서 강연 세션 만드는 걸 내가 했었다. 지금은 청와대 정책실장이 된 장하성 선생에게 당대표 메신저로 가는 것도 내가 갔었다. 서로들 뻘쭘해서 연락을 못하고 있을 때, "니가 좀 가라", 그렇게 되었던.

상조형이나 장하성 선생이 생각하는 삼성 대책이 있다. 나는 그와 좀 결이 다르다. 지나서 하는 얘기지만, 삼성 미래본 사장이나 부사장에게 연락해준 것은, 상조형.. 나도 교수 시절의 김상조 덕분에 삼성 수뇌부들을 만났었다.

길게 쓸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김상조나 장하성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결에서 삼성 민주주의에 대한 내용을 써보려고 한다. 일단은 점심부터 먹고...

'남들은 모르지.. > 직장 민주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기는 또 다른 고향..  (0) 2018.09.23
삼성 민주주의 쓰다가...  (0) 2018.09.19
오래된 미래...  (0) 2018.09.08
하이고, 지친다..  (3) 2018.08.30
병원 민주주의, 글을 시작하며  (2) 2018.08.28
Posted by retired
,
8월 30일날 마지막 수정한 파일을 열었다. 직장 민주주의, 여행 가기 전에 끝내고 싶었는데, 아직도 꽤 되는 분량을 정리해야 하는. 추석 전에는 그래도 손에서 떠나보내겠지 싶다.

사회과학 책을 앞으로 얼마나 더 쓰게 될까? 농업 경제학이 있고, 도서관 경제학이 있다. 이건 계약까지 끝난 책들이고. 놀부의 경제학은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지난 얘기들에 대한 것이라서 할지말지, 아직도 재보는 중이다.

요즘은 혼돈의 시기다. 평화 얘기하면서 원자력에 사죽을 못 쓰는 사람들이 힘 쓰는 시기다. 미래 얘기하면서 원전에 미래가 있다고 여전히 믿는 사람들도 힘 좀 쓴다. 다음 세상에 대한 얘기는 없고, 노태우 시기에 토지 공개념 얘기에서 거의 하나도 변하지 않은, 똑같은 얘기들이 21세기에 신문 지면을 채우고 있다.

미래 질문은 무엇일까? 아주 선호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돌아보면 '오래된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엄청나게 새로운 것일까? 이윤이 움직이는 사회에서 결국 새로운 것은 착취의 양상일 뿐 아닌가?

 

우리는 '오래된 구태'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노태우 시기에 했던 논쟁에서 우리는 얼마나 더 미래로 왔을까?

 

YS는 세계화를 엄청 세게 밀었다. 그 전에 있던 국제화를 쎄게 하면 '세계화'가 된다고 하던 농담이.. 당시 세계화 추진을 맡았던 양반과 대학 도서관에서 차 마셨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엄청 좌파라고 한참 복잡한 얘기하더니, 낼름, 세계화 논리를 끌어오는데 1등 공신이 되었다.

 

난... 그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힘이 다가 아니다. 인기가 다가 아니다. 그리고 유명해진 게 다가 아니다. 돈도 다가 아니다.

 

돌아볼 때, 내가 한 행동이 내가 생각해도 떳떳할 때, 그 때 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자신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떳떳한 일이다.

 

새로운 논리나 얘기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떳떳한 일이다. 그게 엄청나게 큰 돈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 미래를 향해 조금씩 걸어가는 것은, 떳떳한 일이다.

 

직장 민주주의가 그런 주제다. 직장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잘 안다.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잘 안다. 그렇지만 직장 민주주의는 편한 주제도 아니고, 많이 다루어본 주제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인 것은 맞다.

 

오래된 미래와 같은 얘기다.

 

남의 집 어린이와 아동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런 것과 같은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어린이에게 불친절 할 뿐 아니라,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인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다. 그렇게 하도록 배우고, 그렇게 어른이 된 것 아닌가 싶다.

 

선진국 문턱 앞에서, 잠시 되돌아서 생각해보는 일... 우리의 미래는 그곳으로부터 나올 것 같다.

 

 

 

'남들은 모르지.. > 직장 민주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성 민주주의 쓰다가...  (0) 2018.09.19
삼성 민주주의?  (1) 2018.09.11
하이고, 지친다..  (3) 2018.08.30
병원 민주주의, 글을 시작하며  (2) 2018.08.28
병원 민주주의 시작...  (0) 2018.08.27
Posted by retired
,

직장 민주주의, 이게 생각보다 힘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이렇게 힘이 들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안한다고.. 살아온 모든 경험을 탈탈 털어내는 기분. 금요일부터는 1주일 동안 일본 여행이다. 그리고 2주는 더 작업해야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추석. 책 끝냈다고 쉬고 쉽거나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이 책은 좀 그렇다. 10월달 일정을 보니까 매주 하나씩 잡혀 있다. 된장. 애들 둘 데리고 떠나는 여행을 해볼까? 날 추워지기 전에. 별 생각이 다 든다. 2년 전 여름부터 지금까지, 너무 달렸다. 이래저래 일정이 꽉 차서, 쉼 없이 갈리기만 한 것 같다. 애 보면서...

아내가 작업실 따로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어본다. 됐슈. 멀쩡한 집 놔두고 뭐하러 돈을 써.

노트북 없이 버틴 것도 몇 년 된다. 컴 잘 돌아가는데 그런 게 뭐하러 필요해.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으로 지난 2년을 버틴 것 같다.

어쨌든 직장 민주주의 끝나면 멍하니 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나면 다시 하루에 2권 읽기 모드로 돌아갈까 한다.

직장 민주주의 작업 혹은 지난 2년 동안의 집중적인 작업의 후유증이, 호기심이 사라져버린 것. 혹은 육아의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호기심이 사라졌다.

몰라, 몰라,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

책을 좀 죽어라고 읽으면 뭔가 궁금증이 다시 돌아올까?

'남들은 모르지.. > 직장 민주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성 민주주의?  (1) 2018.09.11
오래된 미래...  (0) 2018.09.08
병원 민주주의, 글을 시작하며  (2) 2018.08.28
병원 민주주의 시작...  (0) 2018.08.27
아시아나 민주주의 끝내고...  (1) 2018.08.27
Posted by retired
,

내가 쓰는 책들은 작게는 30개 많게는 50개 정도의 꼭지로 구성된다. 처음부터 이걸 다 잡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시작하면서 아주 초기에 대체적인 꼭지들이 구성된다. 이걸 절이라고 부른다. 중간에 원고를 갈아엎을 때에도, 절이 없어지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일종의 카드놀이처럼, 절을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꼭지를 먼저 잡고 구조를 만드는 경우는? 재밌는 작업이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장 구조를 먼저 생각하고 절은 그 다음에 생각하는 편이다. 절부터 잡으면 병렬형 구조가 된다. 취향상, 병렬형 구조를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겨울부터 쓰게 될 농업경제학은 50개 정도의 꼭지부터 잡고 시작하려고 한다. 이건 일반적으로 내가 쓰던 방식과 구조와 접근이 전혀 다를 것 같다. 그만큼 농업 얘기 접근이 어려워서, 특단의 대책을.

 

직장 민주주의는 33개 정도의 꼭지로 이루어진다. 그중 28번째가 병원 민주주의다. 인터뷰가 포함된 사례분석에 관한 것이다. 원래는 어제 쓰기 시작하려고 했는데, 어제, 오늘, 수면 부족으로 탈진, 결국 새로운 절에 들어갈 힘이 없어서 일단 포기.

 

책 시작도 어렵지만, 절도 시작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쭉 연결되어서 앞의 꼭지의 내용을 받아서 뒤로 넘어가면 좀 나은데, 독립된 절의 경우는 매번 만만치 않다. 첫 문장을 못 써서 글을 뒤로 미루기보다는 일단 공격적으로 들어가는 편의 글을 주로 쓴다. 늘 시원스럽게 첫 문장을 시작하는 꿈을 꾼다. 그렇지만 만만치는 않다. 그런 점에서는 짝사랑 연애편지 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연인과는 달리, 어쩌지, 어쩌지, 그런 고민을 담아서 뭔가 써야할 때, 그 느낌과 안 다를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내용을,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나누는 글의 첫 부분.

 

병원 민주주의는 골격이 되는 기본 내용은 잡혀 있는데, 이틀째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해서 내내 미루고 있는 중이다. 이럴 때면 관련된 내용을 몇 개 써보고 다시 들어가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혹은 1보 후퇴, 며칠 신나게 딴 거 하고 놀다가 다시 오기도 한다. 그렇지면 너무 놀면, 뭐하다가 손을 놨는지, 아예 까먹기도. 하여간 지금까지 절의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해서 쓰던 책을 집어던진 적은 없다.

 

병원 얘기가 어려운 게, 친한 사람 중에서 병원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없다 보니, 정서적으로 느낌이 팍 오지 않는 이유도 좀 있는 것 같다. 옛날 친구 중에는 의사들도 있고, 간호사도 있는데, 안 보지 너무 오래 되어서 정서적 느낌 같은 건 잘 모르겠다. 은행원, 공무원, 연구원, 이런 사람들이 겁나게 많다. 진짜로 일상적으로 보는 사람 중에는 의사도 없고, 간호사도 없고, 약사도 없고. 공무원, 교수, 교사, 연구원, 이런 사람들만 드립다.. 하나도 도움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애꿎은 OECD 자료만 계속 뒤적이고 있다. 병원 관련된 자료가 별로 없다. 다른 분야는 백서가 나오는데, 여기는 그런 것도 별로. 회사 특히 상장된 회사는 이렇게 저렇게 경영보고서 같은 게 공개되는데, 병원 경영 보고서도 잘 못 찾겠다. 헤맬 때 기본적으로 현황 자료들 쭉 보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데, 병원이나 간호사 관련된 것은 그런 게 다른 데 비해서는 별로 없다. 물론 더 찾으면 어딘가 있을텐데, 그 내용이 바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서 목숨 걸면서 병원 경영 보고서까지는 좀.

 

학위 받고는 병원 관련된 연구를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이래저래 내가 귀찮아서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고대병원하고 예방의학 관련된 정책 연구를 할 뻔한 적은 있었다. 연구의 제도 같은 것은 좀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있다. 의료제도도 health economics 연장선에서 몇 번 봤었다. 의사들하고도 연구를 아예 안 한 건 아닌데, 계속 만나거나 그렇게 알고 지내게 되지는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 내 친구들 중에도 의사 되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건 한 번도 되고 싶지가 않았다. 되고 싶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뭐 하는 건지 관심도 없었다. 하긴. 내가 관심 없는 것은 대부분의 직업 세계가 다 그렇다. 대학 들어갈 때까지도 직업에 대한 희망은 커녕 관심도 없었고, 대학을 졸업할 때에도 아무 관심 없었다. 그리고는 학위가 확정된 시점 쯤에 갑자기 덜컥, 클 났네, 뭐 먹고 살지그랬다.

 

그나마 의사 중에서 가장 많이 마음을 주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수의사 박상표였는데. 아마 나와 낮술 마신 거의 유일한 의사일 듯. 대학로 근처 한 모퉁이에서 편육 놓고 낮술을 몇 번 했다. 나중에 그는 자살했다..

 

간호사라. 친척을 아무리 넓히고 넓혀도 간호사는 진짜 한 명도 없다. 그냥 느닷없이 이건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전화해서 편하게 물어볼 간호사 한 명 없이 인생을 살았다니. , 그런 의사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만약에 농업 같았으면, 그럭저럭 수십 명 붙들고,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그랬을 상황인데.

 

생각해보니 모든 걸 나 혼자서 분석하고 해결하려고 하다가, 가끔 어쩔 수 없이 벽에 부딪히는, 그런 문제인 것 같다. 직접 경험은 물론이고, 간접 경험도 없다.

 

그런데 나는 왜 병원 민주주의 같은 생소한 주제를 분석하려고 했을까, 그 출발지부터 다시 질문해보게 된다. 이게 다 태움 때문이야그리고 여자들끼리 있으면 남자들보다 더 하다는 얘기에, 그럴 리가 있나, 다 그런 구조와 상황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그런 약간의 열받음이 좀. 그리고 막상 조사를 하다 보니, 경영 및 관리 구조가 너무 허술해서, 뭐 이딴 게 있나 싶기도 했고.

 

병원 민주주의’, ‘학교 민주주의그리고 어쩔 수 없이 후퇴, 뒤로 미루어 놓은 삼성 민주주의’, 그야말로 난제 3종 셋트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일본으로 출국한다. 그 전에 최소한 이 세 개는 마무리하고 갈 생각이었는데, 힘들 것 같다. 병원 민주주의를 아직 시작도 못했다. 그러면 열흘 넘게 딴 생각하다가 다시 이리로 돌아와야 하는데..

 

다행히 그 사이에 뭔가 새로운 것들이 생각이 많이 나면.. 그렇지만 너무 많이 나면 지금 여기로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고. 뭐 하다 말았더라, 가물가물하기도 하다.

 

길어봐야 A4 두 장을 절대 넘지 않는 글들은 논리만으로도 쓸 수 있다. 그리고 보고서는 가능하면 논리만으로 쓰는 게 낫다. 위에 상관들이 보게 될 글은, 대가리에 어떤 넘이 있을지 모른다. 꼭 나랑 생각이나 결이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보장은 별로 없고, 별 쌩 양아치 같은 넘들도 내 보고서를 보고 결재 도장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니까.. 진짜로 감정이나 감정을 유발할 만한 요소들은 빼고, 논리만으로 쓰는 게 최고다. 약간이라도 감정을 넣으면 이거 쓴 새끼, 보나마나 빨갱이야”,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나만 혼나는 게 아니라, 내 위에 있던 사람들 줄줄이 개박살.. 30대 초반에 내가 쓰던 보고서들은 그래서 감정은 뺄 수 있을 만큼 다 빼고, 혹시라도 감정을 유발할 만한 요소도 철저히 빼고, 극단적으로 드라이하게 썼다. 그 편이 더 효율적이다.

 

그러나 책은 논리만으로는 못 쓴다. 말이 좋아서 50개 꼭지지, 50개의 논리 덩어리를 읽으라고 하는 건데, 그건 고욕이다. 맞는 말이라도, 힘이 들어서 못 읽는다. 그리고 50개의 논리 덩어리를 다 통으로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다. 부부간에도 그러기 어렵다. 생각이 같은 거 일부, 다른 거 일부, 그렇게 구성될 수밖에 없다.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 건 안 읽어, 그러면 고전 중에서는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다. 대충 참고 하면서 보는 거다. 그렇지만 논리만으로 구성된 50개의 꼭지는 요즘 같으면 읽을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감정이 필요하게 된다. 논리만으로 구성하면 글에 감정이 생기지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게, 쓸 때 감정을 만드는 일이다. 사실 논리는 자료 분석하고, 전체를 구성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세울 수 있다. 기능적인 일이다. 그거야 열심히, 대가리 박고, 군소리 안 하고. 그냥 하면 어느 정도는 한다. 그러나 감정을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다.

 

논리와 감정은 움직이는 방향도, 생성 방향도 다른 것 같다. 논리가 선다고 해서 감정이 그때 그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어렵다. 책 특히 요즘 책은 그래서 감정이 더 어려운 것 같다.

 

한 때, 사회과학에서는 날 선 논리로 상대방을 죽죽 무찌르고 가는, 그런 무협지 스타일을 최고로 쳤던 것 같다. 그러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두를 무찌르는 그런 최강의 논리라는 것은 없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옳고 그름도 변한다. 마스터의 시대는 끝났다. 그래서 감정이 더 중요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부작용도 있다. 전혀 감정적인 요소를 느끼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그냥 논리만 세우는 것보다 더 다가가기 어렵다. 나도 안다. 그러나 현실은, 무협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 편, 남의 편, 이러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이기는 게 최고인 것만도 아니다.

 

어느 간호사가 자기 일기를 보여주었다. 나에게는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남들은 모르지.. > 직장 민주주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미래...  (0) 2018.09.08
하이고, 지친다..  (3) 2018.08.30
병원 민주주의 시작...  (0) 2018.08.27
아시아나 민주주의 끝내고...  (1) 2018.08.27
직장 민주주의, 6장...  (0) 2018.08.23
Posted by retired
,

"직장이라는 공간은 원래 이렇게 비인간적인 곳이 없나. 만약 직장이 이처럼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곳이고, 그런 상황들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라면, 직장은 민주주의 시민사회에서 없어지거나 계몽이 필요한 마지막 공간일 것이다."

내가 전달받은 어느 병원 간호사의 일기 중의 한 대목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적어간 글자 속에서 마음이 느껴진다. 병원.. 그나저나 며칠 간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 일들 분석하다가, 갑자기 공간을 바꾸어 병원으로 들어오니, 나야말로 얼떨떨. 소설가 김탁환이 메르스 문제로 병원 문제 취재하던 얘기 들었던 게 얼마 안된다...

Posted by retired
,

직장 민주주의, 아시아나 민주주의 끝냈다. 권순정 의원은 무척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 유쾌함을 내가 다 받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유쾌함의 여운이 남는다. 이제 병원 민주주의 차례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소개를 받아서 엄청난 분을 만났었다. 28세였는데,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태움'으로 유명해진 병원 사태, 잘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별 지원이나 후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관심이 있는 일도 아니다. 하거나 말거나, 그냥 사회 한 구텅이에서 조용히 그리고 조그맣게 사람들 만나고, 자료 정리하고, 그러는 정도의 일이다. 거의 신경도 안 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 시대의 최전선에 있다는 정도는 안다. 병원 정리하면 다음 차례는 학교 민주주의다. 삼성 민주주의는 그 다음 순서로 바꾸었다. 가장 해결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조직. 한숨부터 나온다. 그 뒤의 세 개는 일종의 모범 사례, 가능하면 유쾌하고 경쾌하게 쓰려고 한다.

비가 엄청나게 내린다. 배 고프다. 냉우동 끓여먹기로 했다...

Posted by retired
,

직장 민주주의의 클라이막스는 6장이다. 사례 분석과 인터뷰 작업이 여기 들어간다. 기록적인 폭염, 몇 주 동안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원래 이 책은 이렇게까지 분야별, 유형별 사례 분석까지 생각했던 책은 아니었다. 하다보니까, 책을 좀 늦추고, 고생을 좀 더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좀 더 챙겨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일단 6장 목차를 새로 정리했다 (해보고 내용 없는 건 빼는 방식으로...)

6장. 우리 직장 민주주의
1. KBS 민주주의
2. 삼성 민주주의
3. 아시아나 민주주의
4. 병원 민주주의
5. 학교 민주주의
6. 서울우유 민주주의
7. 카카오 민주주의
8. 여행박사 민주주의

Posted by retired
,

 

거지하다 보니까 법랑 냄비 뚜껑에 4각 접시가 기가 막히게 들어갔다. 우찌 들어갔는지. 빼려고 보니까 네 귀퉁이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아서 안 빠진다. 법랑 냄비도 휘지 않고, 접시도 휘지 않는다 부러지면 부러지지, 휘지는 않는 성질 더러븐 녀석 둘이 제대로 만났다. 게다가 포기 하기에는, 비싼 녀석들. 

30분을 낑낑대고, 젓가락 두 개를 동원해서 겨우 뻬냈다. 

울 뻔했다, 땀범벅이 되어. 주여, 나는 오늘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접시 빼고 나서, 냉장고에 있는 소주 꺼냈다. 삐뚤어질테다... 세상이 착하게 살려고 맘 먹은 사람의 삶을 너무 도와주지 않는다. 이제는 접시 마저도.. (아내가 나랑 결혼한다고 저금통 털어서 산 접시라, 깰 수가 없었다..) 들어갔으니까 나오기도 하겠지, 이 신념 하나로 버텼다. 해결하고도, 행복하지 않고, 서럽기만 했다.

'남들은 모르지.. > 소소한 패러독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현실주의..  (2) 2018.12.09
쪽 팔리지는 않게..  (0) 2018.11.23
나 말고는 다 바보...  (0) 2018.07.18
차보다 사람이 먼저니까요  (0) 2018.06.18
어른들의 얘기  (1) 2018.05.11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