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 민주주의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작업하면서도 많이 배웠고, 나도 모르던 일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좋았던 것은, 이게 적어도 한국에서는 미래 가치라는 점이다. 이미 많이 논의 했었어야 했는데, 되지 않은 것.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나갈 때가 사실 여전히 가장 재밌고,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2.

내년에 농업 경제학과 도서관 경제학 책을 낸다. 그 정도가 당분간 내가 경제학 책으로 계획된 거의 마지막인 것 같다. 물론 놀부의 경제학처럼, 머리 속에서는 해보고는 싶은데, 현실적으로 과연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 것들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당분간 직장 민주주의가 일본식 표현대로 본격 경제학 책의 거의 마지막인 것 같다.

 

이것까지 내고 나면 영화 쪽에서 펼쳐 놓은 일들을 좀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 영화를 하게 된 건, 10년 약간 안 된다. 얘기를 시작한 것은 <님은 먼곳에> 시사회 때부터니까 딱 10년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합류한 것은 <평양성> 망한 다음부터니까 8년째. 그 동안 참 별의별 일이 다 벌어졌다. 별의별 일이 다 있었는데, 어쨌든 결론은 어느 정도는 해피엔딩.

 

그 일들도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정리 및 정돈 작업들이 좀 필요하다. 그 얘기 정리해서 책으로 내는 것도 이제 더 미루기가 어렵고.

 

어차피 내가 하는 일들이 전부 텍스트와 관련된 일이다. 얼마 전에 그렇게 정리 정돈을 했다. ‘문자와로 아니묄세’… 문자로 움직이는 일들이 내가 주로 하는 일이다. 내가 글을 쓰거나, 누군가 글을 쓰게 하거나. 하여간 텍스트를 만들고, 그걸 다듬어서 완성시키는 일들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의 거의 대부분이다. 나머지 일들은 여력이 안 되어서, 이럭저럭 정리를 거쳤다. 경제 다큐가 꽤 오랫동안 해야 할 일의 리스트에 있었는데, 내려놓았다. 너무 힘들다. 더 이상 경제다큐가 필요하다고 지원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다시는 안 할 생각이다. 그것만 안 하면 살면서 누군가에게 머리 숙일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이제는 그렇게 머리 숙이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3.

직장 민주주의는 슬슬 중반 지나서 마무리를 향해간다. 원래는 오너 민주주의라고 이름 붙였던 자을 우리 직장 민주주의로 이름을 바꾸고, 개별 회사별 분석을 하기로 했다. 벙벙한 얘기들이 계속 오다가, 클라이막스 직전인데 오너 얘기를 하려고 하니까 다시 벙벙한 얘기를 하는 게흐름상, 영 아니다 싶었다. 중요한 얘기이기는 한데, 그런 건 참여연대에서 낸 성명서에 많이 있는 얘기고.

 

아주 솔직히 말하면 김상조가 늘 하던 얘기와 같은 얘기를 굳이 내가 반복해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오너 민주주의라는 제목을 달고는, 누가 해도 거기에서 많이 벗어나기는 어렵다.

 

참여연대 초장기 때 참여사회연구소를 통해서 같이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90년대 후반이다. IMF 경제 위기 한 가운데그렇게 시작된 논의들이 많이 발전된 것도 사실이고, 한국에 기여를 많이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좀 지겹다. 참여연대 시각의 틀이라는 것이 이제는 어느 정도 좀 정형화되었다. 이젠 좀 다른 틀에서, 좀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들여다보고 싶다.

 

그렇게 형성된 경제 민주화 틀도 이제는 지겹다. 민주화와 민주주의가 뭐가 달라? 진짜 말 장난 같은 얘기다. 그러나 말장난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회사별로 인터뷰 작업을 하기로 했다. 출간 일정은 좀 늦어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턴 추가 작업을 하고 나면 내용은 좋아질 것 같다. 내용만 좋아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지막에 쓸 문장 하나가 생기느냐, 안 생기느냐, 그런 순간이기도 하다.

 

한겨레 출판부랑 일 하니까 좋은 점 하나는회사별 노조 같은데 공식적으로 인터뷰 부탁을 하기가 좀 더 편하다. 예전에 한참 활동하던 시절에는 이런 인터뷰 일도 아니었는데, 나도 들어앉은지 2년 되었고. 이제는 담당자들도 많이 바뀌었고, 나랑 일하던 파트너들도 그 사이 좀 더 뒷자리로. 친한 데 몇 곳 빼고는 그냥 출판사에 부탁. 마침 날도 더운데, 죽어라고 앉아서 쓰기 보다는 돌아다니면서 인터뷰 작업 하는 편이.

 

4.

이런 작업을 계속 하다 보니까, 직장 민주주의는 그냥 책만 내고 끝낼 일이 아니라, 뭔가 계속해서 고민하고 후속 작업을 할 그룹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우리도 도대체 한국에서 직장 민주주의라는 것은 뭐냐, 이런 고민을 개개인이 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는 할 것이다.

 

크게 보면, 우리는 거시경제 얘기만 너무 많이 했다. 그리고 업종으로 넘어오면 갑자기 너무 규모가 작아진, 마이크로도 아니고 그냥 업계 숙원 사항.

 

업계는 이 숙원사업을 들고, 한국당과 민주당에 줄서기를 시킨다. 오랫동안 그 줄서기를 한국당이 잘 했다. 대개는 한국당으로 간다. 그리고 가끔 민주당이 받아 먹는다. 정의당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회찬이 엄청나게 고민을 했던 청소 노동자 문제처럼, 직접 가고, 직접 이슈를 발굴해서 사회화되는 경로 정도가 그들에게 허용되어 있을 뿐.

 

그러다 보니까 마이크로 단위로 가면 정책은 사라지고 정치만 남는다. 그 중에 기가 막히면 개인 역량을 잘 발휘한 사람은 비례대표 챙겨가고. 그리고 그런 뒷거래는 한국당이 또 잘 한다. 그래서 중소기업 등 작은 단위로 내려가면 대부분 한국당 앞마당처럼 되어 있다. 회사는 약체지만, 그들이 보이면 보수적인 데에는 이런 정당 주변의 줄서기 메커니즘이.

 

직장 민주주의는 마이크로 중의 마이크로다. 업계 숙원사업 보다 더 아랫단위 그야말로 회사 안에서도 또 세부 문제를 다룬다. 내가 알기로는, 이 단위에서 뭔가 공약이 개발되고, 정책의 눈이 닿았던 적이 없다. 마이크로 오브 마이크로, 기본적으로는 이런 문제다. 더 발굴해보면 아주 재밌고, 다양한 문제들이 나올 것 같다.

 

물론 나도 해볼만큼은 책에서 가보려고 한다. 그렇지만 혼자서 그리고 책 한 권 분량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은 한계가 있다. 기본의 노동연구원과는 별개로, ‘직장 민주주의 연구원같은 국책 연구원이 하나 생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노동연구원이 이걸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산업연구원에서 하기도 좀 어색하다. 이 정도 맡아서 하는 정부 연구원 하나 정도 생겨서, 세상이 좋아진다면 그게 뭐 그렇게 돈 아까운 일이겠는가 싶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어렸을 때부터 지겹게 들은 얘기다. 직장 민주주의를 위해서 꼭 피를 흘려야 할까? 이게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피까지. 제도적으로, 요구하고 타협하면서 만들어 나갈 길이 있을 것 같다. 필요하면 포럼도 만들고, 논의그룹도 만들고, 그 정도는 나도 좀 협조적이고 개방적으로, 뭔가 해볼 생각이 있다.

 

포럼도 만들고, 논의도 하다 보면, 이런 게 정책의 형태로 공약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어느덧 세상이 조금 바뀌고. 그리고 그 시기가 되면 다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고.

 

정치가 있고, 정책이 있다. 정치가 먼저 정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잘 못 봤다. 정책이 만들어지고, 논의를 하면 정치가 뒤에 따라온다. 물론 온 세상이 꼭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루즈벨트 시절에는, 정치가 정책을 끌고 나갔다. 그 때 미국이 많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그런 적이 별로 없다. 연구실에서 나오든, 학교에서 나오든 혹은 책 어느 한 곳에서 나오거나,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나오든대체적으로 정책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정치가 나중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왔다.

 

정책이 나오지 않는 정치는, 결국 쓰러졌다. 박근혜 때, 새로 나온 게 거의 없다. 있던 것들에 대한 반대 아니면 껍데기만 바꾸는 호치키스 정책.. 그리고 망했다. 아마 한동안 한국은 이렇게 갈 것 같다. 별 거 안 나오고, 상대방의 것을 반대하거나 결국은 자기 것을 반대하는 과정을 거쳐간다. 그리고 폭망. 정권교체. 대체적으로 흐름은 그랬다. 새 거를 들고 나와서 집권하고, 상대방 것을 반대하는 일을 한 동안 그리고 자기가 하던 것도 반대.. 결국은 미래 의제가 계속 나와야 논의가 오래 간다. 순실이네도 이 공식에서 별로 다르지 않다. 상대방 것은 무조건 반대, 자기가 하던 것도 반대, 유승민이 한다고 하면. 그리고 결국은 지 처먹는 것만 하다가 망했다.

 

다음 번 논의, 미래 주제에 대해서, 여전히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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