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토론문 하나 쓰는데, 3일이. 물론 저녁 때 애들 어린이집 데리고 오는 일들이 계속 있었고, 중간에 지방에도 하루 갔다왔고. 토론문이라는 게, 특별한 형식이 있는 건 아니다.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a4 다섯 장, 내용만큼은 공들여서 꼼꼼하게 썼다. 보거나 말거나.

문화 분야의 기본소득에 관한 발제자료도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별 내용이 없는 거라. 이런 것까지 다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야 하나 싶은. 하여간 정부기관들 하는 일이, 뭐 좀.

요즘 내가 하는 일들이 엄청나게,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순탄하게 잘 굴러간다. 일부러 짜증날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짜증내거나 심통낼 일도 거의 없다. 늘 살면서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런 아쉬움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요즘은 그런 아쉬움도 거의 없다. 돈이 엄청나게 많아져서가 아니라, 노는 것도 힘들다.. 애들 데리고 놀러갔다 오려면 차라리 그냥 집에서 개기는 게 더 편한. 그러다보니 크게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고, 그냥 소소한 생활의 비용들.

문득문득 나만 혼자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모르겠다.. 이러다 또 힘든 순간이 내게도 또 오겠지.

경제 인류학이 60~70년대 한참 유행하던 시절 같이 유행했던 표현이다.

want not, lack not.

뭐 특별히 원하는 게 없으면, 특별히 부족한 것도 없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내년,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후년으로 다 미루어놓았다. 그러니 당장 조바심 내서 뭔가 해야할 것도 별로 없다.

명분은... 큰 애 학교 들어가고 나면.

그리고 그 다음에는, 둘째 애 학교 들어가면, 그렇게 또 미룰 생각이다.

나는 내가 하던 일들을 대부분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없앤 게 "꼭", "기필코", "반드시", 요런 표현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어렵다 싶으면 미리 포기한다. 병신아냐? 병신 맞을 줄 모른다. 그러나 내 수준과 내 여건에 맞는 일만 한다. 시간을 많이 써야 하고, 겁나게 열심히 해야 하는 일, 아예 시작을 안 한다.

그러니까 하는 모든 일은 잘 된다. 아주 크게는 아니더라도, 그냥 물 흘러가듯이, 이렇게 저렇게, 큰 질곡 없이 잘 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될 일만 한다. 아닌 것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

박민규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칠 수 있는 볼만 치고, 잡을 수 있는 볼만 잡고.. 내가 딱 그렇게 산다.

그래서 누가 병신 아니냐고 하면, 그냥 병신 맞다고 한다. 속도 없냐고 하면, 속도 없다고 한다. 뭐 별의별 말들을 다 한다. 죽 쒀서 개준다는 둥, 남 좋은 일만 시킨다는 둥.

다 듣고 한 마디 한다. "나중에 천국 가고 싶다... 아마 갈겨."

그래도 뭔가 안 되서 아둥바둥거리는 것보다, 이것도 잘 돼, 저것도 잘 돼, 이러고 있는 게 낫다.

조금 하고, 살살 하면, 진짜로 물 흐르듯이 일을 하게 된다. 시간 안 모자르냐고 사람들이 물어본다. 시간은 남는다. 요즘은 마당 고양이들 돌보는 시간도 조금 더 늘어났다. 못 보던 고양이들이 많아졌다. 천국 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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