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사람들이 가끔 전화를 건다. 아내는 이런 전화 별로 안 좋아한다. 보통은 해주는 것도 없이 뭐 해달라는 부탁인 경우가 많아서. 아내가 전화에다 대고 절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 오영호 차관. 오차관한테는 아내가 전화에다 대고 절을 한다. 진짜로 내가 힘들 때, 밥은 먹고 다니냐고 챙겨준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기억이..

며칠 전에 뜬굼없이 전화와서 술 먹자고 해서, 내일 먹기로 했다.

뭐, 그 얘기가 생각나서 펜을 든 건 아니고.

총리실에 있을 때, 골프 열광이 불었다. 아예 실장이 대놓고 골프장에서 업무 지시하는 분위기.

견디다 못해서, 나도 골프 쳐야하나, 고민을 했다. 그 때 국장 시절의 오영호가..

"우박, 니는 골프 치지 말래이. 골프 안 치고도 세상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한 명은 보여야 할 거 아니냐. 난 이미 배린 몸, 니는 골프 치지 말래이."

인생에 딱 한 번 골프 칠까 생각이 들었던 날, 오차관이 골프 치지 말라고 아예 대못질을 쾅.

요즘 그 시절 생각이 난다. 골프는 안 쳐도, 혼자 있을 때 하고 놀 수 있는 건 많다.

얼마 전부터 몇 년 동안 내려놓고 있던 기타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해금도 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연습할 데가 없다. 몇 년 전에 팬이 그냥 손에 해금을 쥐어주고 가버렸다. 돌려줄 방법이 없어서 아직도 가지고 있다.

조철현, 이송원, 이런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내가 요구한 건 두 가지. 골프랑 룸쌀롱 가는 사람들과 일 안함.. 이송원, 애시당초 끊을 게 없었고, 조철현은 골프채 선물.

올해 인생 목표를 크게 전환했다.

저녁 먹고 나서는 일 하지 않고, 운동 조금 하거나 기타 치거나, 정 여의치 않으면 피아노라도. 그냥 놀기로. 그것도 힘들면 애들 데리고 나가서 산책이라도.

골프 안 치고도 사회생활 하는 데 아무 문제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유학 안 가도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된장.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초등학생도 유학가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하루에 몇 시간은 그냥 노닥노닥, 목표도 지표도 없이, 그냥 몸이나 뒹굴뒹굴하면서 보내기로.

우리는 모든 일에 "이걸 하면 바로", 이런 목표와 성과를 연결시키는 데 익숙해져서 살았다. 그게 다 빌어먹을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에서 시작된 잘못된 인생관이다.

몸과 마음을 그냥 놀리는 걸 못한다. 이젠 그런 걸 좀 해보려고 한다. 지랄맞게 죽어라고 "내가 세상을 사는 건", 이런 되도 않는 이유를 붙이고, 결국은 실패할 성과지상주의의 삶을 살아간다. 돌아보면 나도 참, 병신처럼 살았다.

목표도 버리고, 목적도 버리고.

그게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내가 즐겁지 않은데, 누구한테 즐거움을 얘기할 수 있겠나 싶다.

애들 노는 거 보면서, 내가 다시 배운다,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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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웃는 순간을 메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분 나쁘거나,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거 말고. 정말로 영혼이 낄낄낄 웃는 순간들, 이제는 메모를 좀 해놓으려고 한다. 50.. 많다면 많은 나이이지만, 지금이라도 웃음을 좀 저축해놓고 싶은. 정말로 웃음이 나오지 않는 순간이 나에게도 올지 모른다. 아직은, 맨날 신나게 웃고 지내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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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겨레 인터뷰 나간 뒤에, 자기 학교로 모시지 못해서 미안하게 되었다는 연락이 몇 개 왔다.

학교 갈 생각을 마지막으로 접은 건 이제 7~8년 되는 것 같다. 그냥 버티고 있으면 갈 데도 있었고, 1년만 눈 딱 감고 있었으면 후다닥 갈 데도. 안 가기로 그 때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편해졌다.

제자가 없는 정도가 좀 아쉽지만, 그것도 뭐 날 선배라고 부르는 후배들이 워낙 많아서..

"말 좀 잘 들으면 오게 해줄께.."

요런 얘기 듣고, "됐어요, 그냥 말 안 들을래요." 요랬던 게 거의 마지막이었나? 아, 최근에도 와볼래? 뭐 이런 게 있기는 했다.

나는 지금이 딱 좋다. 그리고 활동이나 시간이나, 지금보다 더 줄여서, 그야말로 실실 운동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지금 아쉬운 게 있어야 뭘 더 하고 싶어지는데, 그런 게 진짜로 없다.

진짜로 마지막으로 가볼까 생각했던 것은, 동경대에서 조그맣게라도 자리를 만들어보겠다는 얘기가 나왔던 몇 년 전이다. 그것도 귀찮았다.

난 지금이 딱 좋다.

아직 못 하는 것은, 저녁 먹고 나서 일하는 시간을 완전히 없애는 것. 그게 올해의 작은 목표다. 욕심을 다 버리지는 못했다. 아직은 조금씩 더 해보고 싶은 게 있는.

몇 년 지나면 그것도 다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도달해보고 싶은 상황이다. 죽을 때까지 바둥바둥거리며 사는 것, 그렇게는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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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잘못을 기록해둔 책.

 

예나 지금이나, 반성은 참 어려운 일이다. 가끔 나도 <징비록>을 여기저기 뒤적거리기는 한다. 나라는 이미 전쟁 전에 무너졌다는 것이 옳을 정도로, 수비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도성의 성첩과 병사의 수를 비교하는 대목에서, 이게 나라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자신의 맹활약을 쓰는 책들은 엄청나게 많지만, 자신의 반성에 관한 책은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반성일지도.

 

나도 내 삶을 돌아보며, 가끔 꺼내본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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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울다가 웃다가. 통영에서.

 

 

통영항, 이순신 공원에서. 내내 비가 오는듯 하다가 마침 해도 나왔겠다, 조리개 최대로 조여봤다. 해만 보면 그냥 렌즈부터 들이대는 습관이.. 필카 시절에는 이 조건이면 거의 사진 망했는데, 요즘 기계가 좋아져서.

 

 

 

통영, 윤이상 기념 공원. 이번 여행에서 통영은 다 좋았는데, 특히 윤이상 기념공원이 어마무시하게 좋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베를린의 윤이상 자택 복원한 사무실. 느낌 있었다.

 

 

통영은 종종 가던 곳이기는 한데, 아내는 처음이고, 당연히 애들도 처음이다.

 

이런 곳에 몇 달 있다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너무 힘들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많이 줄여야 하고, 움직이는 동선도 더 줄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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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 사태로 불리는 그 사건을 일본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도 충격적이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나?

 

그런데 이런 사건을 헤쳐나가기 위한 노력에서, 일본이 가진 우리와는 다른 힘을 보고 놀랐다.

 

'동일본 대지진과 핵재난'이라는 이름을 가진 와세다 리포트 시리즈는 관련 지식과 활동을 모아서 문고판으로 낸 보고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대학교에서 번역 출간하였다.

 

우리는 이런 거 할 수 있을까? 못 한다. 학계와 사회는 너무 많이 떨어져 있기도 하고, 대학은 돈 되는 거 아닌 일과는 정말로 이제 너무 먼 곳에 가버렸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원전파와 태양광파의 전쟁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골육상쟁이다. 이거 왜 이런 거냐?

 

이 전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전말을 지켜본 나는, 진짜 어디 도망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다. 눈 뜨고 보고 있기가 민망하다.

 

이 모든 아수라장의 시작은.. 생각지도 못하는 전혀 엉뚱한 인사들 몇 명, 좁게 잡으면 두 명에서 시작되었다. 두 명 다, 내가 웃으면서 만났던 사람들 (진짜 돌겠네..) 한 명 더 있다는데, 이 제 3의 인물은 몇 달간 추적을 했는데, 결국 누구인지 못 밝혀냈다 (나한테는 못 알려준다는 것 같은..)

 

높은 자리 가겠다고 몇 명이 삽질하는 동안,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래서 후쿠시마 사태 이후 대학의 힘을 모두 모아서 와세다 리포트를 내는 일본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그나마 그걸 번역 출간이라도 한 고려대학교가, 한국에서는 어쨌든 대학의 최소한의 기능이라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라더라도, 대학과 사회, 최소한의 기능은 하고, 미니멀리즘이라도 사회에 결과물을 줘야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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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하고 얘기하다 이런 얘기가 나왔다. 현 정권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 중 상당수가 '개천에서 용난' 경우이기 때문에 아니겠냐고. 자기도 했는데, 노력하면 되는 거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거라고 잘 보이지 않을 거라는.

운동권에서 높은 자리까지 간 경우, 조선일보류는 그냥 줄 서서 으쌰으쌰, 간 거라고 한다. 그렇지만은 않다. 나름대로 노력도 하고, 은근 실력도 있는 경우가 그렇게 없지는 않다. 그런데 여기에 작은 함정이.

양아치들은 제외하고 보더라도, 엄마친구아들, 엄친아 아니면 정말로 개천에서 용 난. 그래서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그 정도면 극복할 수 있는 거 아님?", 이런 거의 무의식적인 자신감으로 인해서 보지 못하는.

mb 정권은 양아치와 곽승준 같은 금수저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현실을 몰랐다.

지금 정권은 아주 많은 양아치와 엄친아 그리고 개천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 <전우치>에 "이게 안되나, 이게", 임수정의 대사다. "이게 안 되나, 이게", 그런데 요즘은 이게 안 된다. 이걸 이해하기가 엄친아나 개천용에게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나는 해보니까 되던 걸..

소통의 단절을 넘어, 감성의 단절이다. 공감한다고 말하는 것, 어쩌면 다 거짓말일 수도 있다. 어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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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을 처음 만난 것은 인사동 뒷골목의 작은 술집이었던 것 같다. 녹색연합의 활동가들과 회원들과 하는 작은 자리였었다. 그리고 내가 하던 수업에 그녀의 다큐와 함께 작은 세미나 자리를 마련했었다.

 

그녀가 한참 로드킬 무비 작업을 할 때, 그녀에게 자문해주던 사람들이 이래저래 내가 알만한 사람들이었다. 또 나도 그 시절에는 지리산에 자주 가던 때였고 (공지영 작가가 본격적으로 지리산에 오던 것은 그 약간 뒤의 일이다.)

 

무엇을 먹을까, 이건 농업의 질문과 직결되는 얘기다.

 

<음식국부론> 내기 전까지는 나도 사람들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다. 나는 삶에 대한 관심이 안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게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이라는 막역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든 뭐든, 알고 싶지 않아했다. 그냥 외면하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난 그런 건 절대 보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더 불편해질테니까", 그랬다.

 

알고 싶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알고 싶지 않으니까, 너도 절대로 그런 얘기 하지 마라.. (날 고민하게 하면 죽여버리고 싶어, 이런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그 때 알았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아는 것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흐름이 하나 있다는 것을.

 

황윤은 그 벽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을 것이다. 그 벽은 공고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특히, 잘 균열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황윤에게 늘, 퐈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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