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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앤북] “억울한 ‘갑질 문화’ 타개할 방법은 ‘직장 민주주의’뿐”
최혜빈 기자  |  choi0309@econovill.com  |  승인 2018.12.23  09:34:19

   


<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우석훈 지음, 한겨레출판사 펴냄 

  

[이코노믹리뷰=최혜빈 기자] 저서 <88만원세대>로 세대 간 불균형 문제를 지적하며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저자가 직장 내민주주의의 부재를 지적하고 나섰다. 대한항공 조현민의 ‘물컵 갑질’,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직원 폭력’ 등 유독 직장 내에서만 비민주적인 행동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음을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예일대 정치학 교수이며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로 꼽히는 로버트 달은 “국가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던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기업에서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기업은 민주화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많은 직장인이 회사에서 겪는 억울한 사연들을 때로는 풍자와 자조를 곁들이기도 하고, 공포와 절망을 담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저자는 단순히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담은 ‘직장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그는 자기의 주장이 결코 기업에 유해한 것이 아님을 명백히 전제한다. “기업을 망하게 하고 기업가들에게 무언가 뺏기 위해서 직장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중략) 직장 민주주의는 조직 내부의 경쟁게임을 협력게임으로 전환시키는 장치 중 하나다. 내부의 더 많은 소통, 더 많은 협력 그리고 쌍방향적인 관계, 이런 것들이 직장 민주주의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결과다”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 방법은 팀장 민주주의·젠더 민주주의·오너 민주주의다. 팀장 민주주의는 회사 조직 내 팀장으로 대변되는 ‘작은’ 권력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다. 직장 내의 수직적인 위계와 권력의 집중이 문제인데, 팀장들에게 최소한의 직장 민주주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젠더 민주주의는 직장 내 여성의 노동 조건에 관한 것이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직장 어린이집 등의 회사복지를 국가복지로 전환하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동일처우라는 ‘3동 원칙’의 개념을 소개한다. 오너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사회이사제와 감사제를 보완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하자고 주장한다. ‘직장 민주주의 인증’으로 직장에 민주주의가 잘 안착되었음을 인정받도록 하는 제도도 유효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원래 그런 것”이라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체념하듯 살고 있는 많은 직장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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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스님들과 신부님들, 그런 종교계 어른들과 같이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느꼈던 게, 이렇게 도 닦는 일에 따라붙는 게 애정결핍 아닐까 싶은. 혼자 오래 있다 보면 생기는 건지, 아니면 누군가를 지도하는 위치에 사는 사람들의 숙명인 건지.

누가 조금만 모른척 해도 금방 마음 상하고, 사람들이 자주 돌아보지 않으면 심통나고.

유명한 사람 중에는 애정결핍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매니저 등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움을 혼자서 잘 버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다. 고승과 애정결핍,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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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서울 시장 때 중앙 버스차선제를 놓고 약간의 격론이 벌어졌다. 이거 기본적으로는 좋은 거다. 나쁜 넘이 하쟎아? 나쁜 놈이 하는 걸 어떻게 찬성해? 좋은 넘이 하면 좋은 거고, 나쁜 넘이 하면 나쁜 건가?

가끔 이런 어처구니 없는 논쟁 앞에 놓이게 된다. 나쁜 넘이 하는 나쁜 일은 나쁜 거고, 나쁜 넘이 해도 좋은 일은 좋은 거다. 마찬가지로 좋은 넘이 하는 좋은 일은 좋은 거고, 좋은 넘이 해도 나쁜 일은 나쁜 일이다.

그렇지만 늘상 우리는 어처구니 없는 논쟁 구조에 들어간다. 그냥 도망다니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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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뭔가 맡아달라는 부탁이 몇 개 왔다. 몰아서 오늘 아침에 힘들겠다고 한꺼번에 답을 했다. 애들 보는 처지라서 상근하는 건 당분간 택도 없고, 그냥 회의에만 나가는 것도 무리다. 여성가족부에서 하는 가족친화형 기업 인증위원은 장관 부탁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진짜, 누님만 아니라면 ㅠㅠ.. 조한혜정 선생이 하자고 하는 장관 자문도 별 수 없이 하게 된. 이건 피할 방법이 없어서, 젠더 경제학 출간 일정을 바꿔서 어차피 하게 될 거, 그냥 즐기자, 그렇게.

작년에 공기업 등 정부기관 기관장 문의가 몇 번 왔었는데, 전혀 형편이 안된다고 말도 못 꺼내게 했다. 그런 거 할 생각 있었으면, 정세균 국회의장 하던 시절에 벌써 국회직 했다. 그 때는 둘째가 아프고 입원하고, 그래서 뭘 할 처지가 아니기도 했고, 정세균 덕봤다는 소리 듣는 것도 싫었다.

최근에 나한테 온 제안들이 국회의원 할 생각 있으면 꽤 괜찮은 것이기는 한데,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다시 어깨싸움으로 들어가, 패거리 몰고 제압할 것이냐, 제압당할 것이냐,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처음 시민운동 출발은 나도 참여연대의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생태운동하면서 환경단체에 많이 관여했었고. 환경운동연합 간사랑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게 지금의 아내다. 에너지 관련 단체, 농업 단체, 이런 데와도 뭘 많이 했다. 그리고 뜨문뜨문 문화연대랑도 일했고.

아이들 조금 더 크고 나도 여유가 생기면 문화 분야 쪽으로는 시민운동을 조금 더 할 생각이 있기는 하다. 환경운동은 평생을 해서, 이제 지겹다. 그리고 맨날 지기만 하는 싸움, 그 안타까움을 이겨내는 것도 이제 버겁다. 그게 내가 얼핏 생각하는 내 삶의 장기적 계획이다. 지금은, 택도 없다. 큰 애는 어린이집 앞에서 매일 들어가기 싫다고 운다. 오늘도 달래고 들여보냈다. 그 대신 일찍 데리러 온다고 했다. 이게 요즘의 내 삶이다.

정부든 국회든,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문고리들한테 잘 보이는 것도 싫고, 실세들한테 아는 척하는 것도 싫다. 내가 왜?

명박 시대도 그렇고, 박근혜 때도 그렇고.. 국가에 충성할 사람은 필요없고, 문고리에 충성할 사람들을 구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에게 충성하면 안 되고, 문고리에 충성해야 한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그 때는 몰랐다. 문고리 중의 왕 문고리가 최순실이라는 걸. 이런 게 요즘은 좀 많이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어제 민병두 의원하고 커피 한 잔 하다가 웃기는 얘기를 했다. 여의도 한 가운데 있는 민병두보다 내가 여기저기 얘기를 더 자세하게 알고 있는. 자기한테는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준단다. 나는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니까, 속상한 얘기, 열받는 얘기, 이러면 안 된다는 분통들,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종종 한다. 어쩌다 보니까 내가 그런 시시콜콜한 정보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하긴, 애들 보다가 정신 없으면 누가 전화걸어서 그냥 수다떠는 것도 잘 받아준다. 나도 재밌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잡스러운 얘기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국회의원한테 전화해서 속상한 하소연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민원 넣을 거 아니면. 그냥 애보는 아빠나 붙잡고 속상한 얘기하지.

사는 게, 딱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흐르는 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힘들면 철푸덕, 쉬었다 가도 아무 상관 없다. 학교에서는 잠시도 쉬지 말고 죽어라고 달리라고 한다. 그게, 그 편이 관리가 쉬워서 그렇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지식경제, 창조경제라고 하는 세상은 더더욱 그렇다.

남자들의 어깨싸움에서 나왔더니, 애 키우는 아줌마들의 수다가 기다린다. 나는 그 세계가 더 좋고, 더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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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시시하지만 추접하지는 않다. 내 삶은 남루하지만, 비겁하지는 않다. 내 삶은 너절하지만, 더럽지는 않다. 내 삶은 고단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다. 내 삶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작지만 찬란한 꽃이 피어난다. 내 삶은 소소하지만, 그래도 생산적이다. 누구한테 나에게 시중들거나 접대하게 하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가 만들고 싶은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삶. 나도 누구에게 머리 숙이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머리 숙일 필요가 없는 삶. 그렇게 살다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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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 직장 민주주의 책 독자 티타임입니다..

 

장소가 바뀌어서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댓글은 요쪽으로 부탁드립니다.

http://retired.tistory.com/2308?category=74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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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 대한 연구가 사회과학으로서 한국에 돌아온 내가 처음 해보고 싶었던 연구였다. , 기회가 잘 오지는 않았는데, 나름 혼자서 이것저것 관찰만 했다. 그 때 봤던 10대들이 20대가 되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88만원 세대가 되었다.

 

그와는 별도로, 농업경제학이라는 책이 진짜 데뷔 초창기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저렇게 밀려서 지금까지. 순서로는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데뷔작이 되었지만, 사실 먼저 쓴 것은 음식국부론이었다. 농업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집회하는 얘기와 농업 관련된 얘기들이 대거 짤린. 그 때는 내가 힘이 없었다. 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나중에 csa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이건 책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김희진하고 농업경제학 책 계약을 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이건 적당한 시기에 마무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올해 여름 고베에 갔다왔다. 그 유명한 고베 생협과 csa를 연결시켜주는 총본진 그리고 마침 바로 그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 여기였구나, 전세계적인 그 흐름의 출발지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오래 보지는 못하고, 그야말로 느낌만 보고 왔다.

 

이 두 개의 엇갈린 길이 2019년 나의 작업에서 딱 만나게 되었다. 농업경제학은 원래는 여성들과 아줌마들의 얘기처럼 하는 게 처음 생각이었는데, 그것보다 더 시급한 게 중3을 축으로 하는 남학생들. 그래서 본격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해줄 것인가, 크게 한 번 급선회를 했다..

 

영국 중산층의 식습관과 도시 연구, 이런 것들이 선행연구였다. 그리고 결국 제이미 올리버가 등장했다. 그래서 바꾼 게, 중학생들의 교과목.. 불량 청소년들에 대한 구호사업처럼 시작한 제이미 올리버의 일이 결국 공교육 전체로 퍼져나간, 그런 사회적 개혁 과정 같은 게 되었다. 그걸로 훈장도 타고, 세계적 스타가 되고..

 

그렇게 제일 시급한 것 그러나 역시 변화를 위해서 장기적인 것, 그걸 농업경제학에 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제이미 올리버가 했던 일을 왜 우리는 못해?

 

10대에 대한 연구는 보통 인류학에서 많이 하고, 사회학에서도 한다. 그런 연구가 기반이 되어서 많은 청소년 관련 정책이 생겨나고 돈이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좀 어렵다.

 

현장에서 보면 주로 정부의 돈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다문화 관련 연구 그리고 젠더 연구, 이런 쪽인 것 같다. 10대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별 거 없다. 그 빈 공간을 그냥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사교육이 채운다.

 

내년에는 농업과 젠더, 두 축으로 책을 쓸 거다. 이게 딱 만나는 지점도 사실 중3 남학생들이다. 여기가 분기점이다. 3 남학생들이 여성혐오가 가장 강하다. 막상 만나보면 말도 안 통할 정도다. 너는 남자인데, 왜 여자 응원해? 이런, 얘들 왜 이래.. 이런 변화를 최소한 6~7년 전부터는 목격한 것 같다. 대안학교라고 해서 좀 다를까? 내가 본 바로는 별로 다르지 않다. 뭐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게 뭔지,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88만원 세대를 쓸 때 한국인의 최대 분기점이 대학입학과 대학졸업, 그 시절이라고 생각했다. 2006, 사실 그 때는 그게 맞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좀 아닌 것 같다.

 

국제중 등 분기점을 초등학교로 내리려는 명박네들의 가열찬 시도가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내려가지는 않았다. 대체적으로 중3에서 지금은 그 분기점이 갈리는 것 같다.

 

3이면 대충 안다. 자기가 특목고를 가게 될 것인지, 아니면 그냥그냥 살아가게 될지.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감을 잡는 것 같다. 가끔 동료나 친구들의 고등학교 딸하고 식사를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대부분 특목고 그것도 기숙학교에 다닌다. 엄청 부자집도 아니지만, 그렇다. 그렇다면 일반고는? 일부러 찾아봐야 만나게 된다.

 

자기가 특목고를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중3 남학생들이 자신이 잘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애정을 충분히 받게 될까? 그 속에서 다양한 경로로 혐오가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파편적으로 많이 지적된 얘기지만, 이걸 농업 얘기를 통해서 재구성을 해보려고 하는 게 이번 작업의 목표다. 임시로 정크푸드 세대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군대 얘기다. 한동안 군대의 급식 개선과 관련해서 글도 많이 썼지만 조언도 많이 주었다. 군대 급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도 해보지 못한 장애를 만났다. 급식의 질은 더 좋아지는데, 점점 더 군인들이 급식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다. 그냥 매점에서 사먹는 게 훨씬 더 맛있다는.. 어쩌지, 어쩌지, 발만 동동.

 

이게 시작된 게 군대 이전의 일이다.

 

여러가지 의미로 한국 사회의 변곡점이 중3 남학생에게서 걸린다. 게임만 하는 10대와 로얄젤리 먹고 여왕벌로 사육되는 것 같은 로얄코스 사이의 길이 거기서 갈린다. 그게 굳건할수록, 망조든 사회인데, 뭐 차곡차곡 한국은 그 망조든 사회로 가고 있다. 이제 몇 년 후면 우리 애들들도 거기로 들어가게 된다.

 

뒤에서 5등 딱 이 또래에 들에 관한 개념들을 몇 번 만들고 글도 쓴 적이 있기는 하다. 반응은 영 시원챦았다. 그래서 그냥 정크푸드 세대로 가려고 한다. 내 데뷔작이 아픈 아이들의 세대였다. 미세먼지 문제를 그 때 처음 다루었다. 그 때 내가 보았던 그 아이들이 이제 자라서 딱 정크푸드 세대나이가 된 것이다. 그런 큰 흐름으로 보면 오히려 ‘88만원 세대가 방계 작업이었고.

 

하여간 이렇게 기본 가닥을 잡았다.

 

정크푸드 먹어도 된다. 그러나 정크푸드만 먹는 걸 슬픈 일이고, 정크푸드만 맛있다고 하는 것은 진짜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게 한국 청소년들이 걸어가는 길이다. 쯧쯧쯧, 그렇게 할 일은 아니다.

 

이게 21세기 버전의 격차 사회에 대한 얘기고, 계급사회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

 

난 원래 바닥부터 박박 기는 스타일의 작업을 더 좋아하고 그게 더 익숙하다. 박사과정 때 내가 속했던 연구소가 파리 10대학의 경제인류학 연구소였다. 맑스계열 연구를 하기는 하는데, 위에서 밑으로 내리는 스타일보다는 좀 박박기로, 현실적인 연구를 하려는 학풍이 좀 있었다. 그게 DNA처럼 내 몸에 남았다.

 

인터뷰도 하고, 현장도 돌아다니고, 핑계 대고 외국도 좀.

 

3이나 고1 자녀 있으신 분들, 사례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빼곡빼곡, 사례들로 채우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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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솔직하게 나의 고민을 말해보자면, 지금의 30대, 그들이 20대가 되었을 때, 난 그들을 조금은 이해했던 것 같다. 내가 이해한 그대로 그 시절을 묘사했고, 그게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되었다. 사전 연구로, 난 그들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 사실 잘 모르겠다. 변화가 너무 빠르다. 억지로 내가 아는 틀에 우겨넣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그래서 내 출발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10대 연구로 돌아갈 생각이다. 진짜 무명 시절, 그 시절의 10대를 열심히 봤었다.

그냥 그 시절처럼, 내가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 다시 10대 연구를. 다음 주에는 전주 완산고에 강연을 간다. 머리 박고, 다시 밑바닥부터, 지금의 10대 연구를 다시 할 생각이다. 그 접점이, 농업이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나는 지금의 20대는 정말 모르겠다. 억지로 알려고 해봐야 될 것 같지도 않다. 이제 나는 50대.. 아직 10년은 남았다.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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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논문 막 제출했던 시절..)

 

꿈에 다섯 살 때 살았던 외할머니 댁에 있는 다리 위를 운전하면서 지났다. 개봉동. 어린 시절, 나는 외할머니가 키워주셨다. 마포구청에서 받은 장한 어머니상 표창장이 방 한 귀퉁이에 걸려 있었다. 가끔 꿈을 꾸면 개봉동 살던 시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나는 외할머니 작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큰 애는 오늘 어린이집 신발장 앞에서 오늘은 그냥 집에 있으면 안되냐고 울었다. 이럴 때는 난감하다. 그냥 뭐라고 막 하면서 혼내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데리고 집에 올 수도 없고. 이따 일찍 데리러 간다고 했다. 그러면 교실 앞까지라도 데려다 달라고 한다. 그렇게 했다.

나는 학교 가는 걸 그렇게 싫어했다. 큰 애가 어린이집 안 가고 싶어하는 건 나 닮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학교 들어가면 더 할 것 같다. 나는 학교 가기 싫었던 게 대학교 가서 없어졌다. 운동권에 술군 스타일로 학교 다니니까, 학교가 너무 재밌었다. 그 시절에 많은 운동권들이 그런 것처럼, 수업도 잘 안 들어갔다. 꼭 뭐가 있어서 안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 대신 도서관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유학가니까, 진짜 천국이었다. 대학원 첫 학기 때 헤맸던 걸 제외하면, 수업도 들어가다 말다 했다. 어차피 수업 듣는다고 시험 잘 보는 것도 아니고, 논문 잘 써지는 것도 아니고. 내 맘대로 공부했는데, 점수는 무쟈게 잘 나왔다. 대학원 1년, 코스웍 1년, 그래도 억지로 수업도 좀 들어가고 그러던 시간도 끝나고, 망빵 자유의 시간이 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통털어, 나는 박사과정 3년이 최고로 즐거웠다. 수업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물론 한국에서 대학원 나왔으면.. 좃됐다, 이런 소리 입에 달고 살았을 것 같다. 학과에 설치던 연구소는, 진짜로 공부하다 뭐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러 가고, 자료 찾아주고. 도움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사과정 그냥 뺑뺑 돌리는.

수업 제안이 오기는 왔는데, 그냥 나는 학위 논문 일찍 쓴다고, 안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용돈이라도 번다고, 아무 수업이나 걸리는 대로 막 해야 한다. 그나마도 요즘은 자른다고 난리다.

박사과정 때 너무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다. 아마 내가 암으로 먼저 죽은 친구들과 달리, 이 나이에도 아직 버티는 것은 짧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학위가 끝나고, 마침 출범한지 얼마 안되는 WTO에 추천받아 갈 일이 생겼다. 프랑스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서 교수 제안도 왔다. 일생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에서도 연구원 정도는 갈 수 있었는데, 당시 정권이 좀 거지 같아서 국적을 바꿔야 했다. 그건 좀 아니다 싶었다.

결국 그냥 한국에 왔고, 가을부터 강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는 그래도 나름 잘 해줬다. 암 것도 아닌 그냥 초보 시간강사인데, 방도 줬다. 나중에 건교부 장관한 서승환 선생이 불쌍하다고, 자기네 방에 있던 책장도 하나 빼주었다. 학부 시절부터 나를 정말로 싫어하던 선생이 몇 명 있었다. 그렇지만 나머지 선생들은, 이상하게 강사하던 나한테 잘 해주었다.

그 해에 한국에서 경제학 사전이나 프랑스에 관한 종합적인 책 중 프랑스 관련된 것, 경제학 관련된 것은 거의 내가 썼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죽어라고 썼다.

그 몇 달 사이에, 이렇게 살다가는 내 정신이 너무 피폐해져서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 데나 제일 먼저 오는데 간다고, 간단한 원칙을 정했다. 그 때 나를 뽑아준 사람이 이계안이다. 좀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 하여간 그렇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다 반대했다. 기업에 뭐하러 가냐.. 제일 반대한 사람이 있다. 그 반대가 애정이라는 것은 안다. 고맙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이회창 환경특보가 되었다. 어색했다. 그래도 그 양반 덕분에 현대 있던 시절에도 계속 강의를 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봐주고, 학교에서도 봐주고, 강의를 두 개나 했다. 연대 하나, 동국대 하나.

풍요의 시대, 그 시절에 나는 회사에 있었다. 진짜로 풍요로왔다. 아무리 써도 통장에 돈이 넘쳐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돈이 너무 많아서, 집을 샀다. 그 집이 커지고 커져서, 지금 사는 집이 되었다. IMF 이후에 나와 같은 길을 간 후배들은 나보다 몇 배는 열심히 사는데, 나처럼 풍요롭고 편안한 기간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는 것 같다.

IMF 이후, 회사가 어려운 순간이 왔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회사에서는 현대건설 기획실, 현대자동차 그리고 대북사업단이라는 세 가지 카드를 제시했다. 그 때 사장으로 간 이계안 따라서 현대자동차 갔으면? 내 인생은 좀 다른 식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현대건설 기획실로 가라고 했다. 좋은 기회라고. 좋은 기회는 개뿔, 인생 패대기치면서 살았을 거다. 내가 만약 토건을 반대하는 쪽이 아니라, 토건을 기획하는 쪽으로 최선을 다 했다면? 어쩌면 한국은 지금보다 더 개판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냥 있기도 싫고.. 이런 와중에 에너지관리공단에서 팀장 제안과 청와대 근무 제안이 거의 동시에 왔다. DJ 정부였다. 사람들은 다 청와대 가라고 했는데, 나는 "머리에 총 맞았어, 새벽부터 출근하게", 그냥 에너지관리공단 부장으로 갔다. 가서 첫 달에, 월급봉투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월급이야, 보너스야? 그래도 나중에는 꽤 올려주기는 했다.

그 후에 청와대 갈 일이 몇 번 더 있었는데, 다 안 갔다. 갈려면 옛날에 벌써 갔어, DJ 시절에. 몇 년 후에 총리실과 청와대 그리고 외교부에서 거의 동시에 제안이 왔었다. 그 때도 총리실로 갔다. 청와대, 아침 근무 싫어.. 나라를 위해서 일하다가 암 걸려 죽을 일은 없다.

그렇게 사는 게 좋으면 지금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요 몇 달 사이에도 연구원장 제안이 왔었다. 못 이기는 척하고 약간 빼면서 여지를 남기는 게 일반적인 해법인데, "머리에 총 맞았어요, 싫어요", 여지가 없이 야박하게 단칼에.

아침에 아이들 어린이집 데려다주면서 차분 - 아니 번잡스럽게 - 하루를 시작하는 지금의 삶이 나는 좋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는 아내에게 등원 보고를 문자로 넣는다. 수 백명 아니 수 천 명이 나를 보고 있는 순간보다, 식구 몇 명, 동료 몇 명 사이에서 다른 사람 도와주고 있는 내 삶이 더 진실하다.

국가를 위해서 뭘 해야하는 거 아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너보다 내가 국가를 위해서 더 많은 걸 해.. 의미 있는 책 쓰고, 가치 있는 얘기 만드는 게 우리 사회를 위해서 더 많은 기여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집 현관에서 그냥 오늘은 집에 있으면 안되느냐고 울고 있는 큰 애를 보면서, 내가 살아온 삶이 잠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이 아이도 거칠고 허당스러운 한국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될 거다. 고집스러운 엄마와 아빠 때문에 남들이 다 권하는 로얄스러운 그딴 거는 이 아이의 인생에 없다.

오늘 하루, 그냥 애들 둘 데리고 집에서 놀아줄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아니야.. 나는 비정한 판단을 했다. 그냥 어린이집 교실까지 데려다주고 돌아나왔다.

어제 이런 생각을 잠시 했다. 세상에 목숨을 걸고 자기 인생을 살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 하나하나의 사연이 모두 우주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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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 된 내 성격에 좋은 점이 있다. 패닉이 없고, 분노가 없다. 잠깐 택배 받는 사이, 애들 양 쪽으로 기저귀 떼고 마루에 똥 싼 것을 당황하지 않고 해결한 이후, 내 인생에 패닉은 없어졌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포기하지 않을 건 최대한 되게 하고. 그리고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의 힘으로 뭔가 일을 할 나이도 지났다. 내 안에 더 이상 분노도 없고.. 좋은 점을 좋게 생각하고 고마워하는 동안, 분노가 사라져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감정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뒷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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