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부터 강연을 없애는 중이었다. 내년에는 강연 계획이 없었다. 애들 보면서 강연 일정 소화하는 것도 무리고,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직장 민주주의 책은, 결점이 없는 책이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거나, 구조를 너무 무리하게 짰거나, 아니면 너무 안이하게 주제에 접근했거나.. 지나고 보면 크고 작은 결점들이 책에서 보인다. 직장 민주주의 책은 더 잘 쓰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좋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내 실력으로는 여기까지가 거의 극한치다. 그리고 게임이론을 비롯해서 지나치게 어려워보이는 2장을 완전히 들어내서, 몇 페이지로 결론만 요약했다.
책 반응은 별로다. 보통은 이러면 그냥 내려놓고 다음 책 일정으로 넘어간다. 그래도 이 주제는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제일 큰 문제는, 일단 내가 인기가 바닥이라는 점. 애 보면서 방송에도 안 나가고, 딱히 노출될 만한 일을 하는 게 없다. 국민연대 공동대표하던 시절처럼 시민운동 맨 앞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되는대로 지방에서 몇 군데 강연 일정을 잡았다. 부산이나 광주 같은 데는 강연장 채우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강연도 못 잡았다. 부산대에서 대형 강의실 꽉꽉 채우던 시절도 있었지만, 애 둘 보는 아빠가 그런 옛날 생각 해봐야 별로 정신건강에 좋은 일도 아니고.
나는 강연은 정말 최소한만 하고, 그것도 되게 까다롭게 고른다. 기업 강의는 안 하고, 특히 직원 교육용 강의는 절대 안 한다. 그런 데는 '긍정적 마인드' 같은 강의가 더 어울린다. 괜히 이것저것 비판하는 얘기를 그런 데 가서 해봐야, 서로 불편하기만 하다.
이번에는 기업 강의도 하기로 했다. 주제가 그렇다.
아직 날짜는 안 정해졌는데, 여성정책연구원에서 하기로 했고, 연금관리공단 노조에서 하기로 했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되는대로. 그래도 많이 가면 갈수록 뭔가 변화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한다. 삼성계열사에서도 강연 부탁 들어온 게 하나 있다. 할 생각이다.
시민운동 하던 시절에는 정말 바닥에서 돌아다니는 일을 많이 했었다.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지역에서 조그만 단체 생길 때 창립 기념 특강, 이런 것도 많이 했다. 강의료 받는 것 보다 술 사주는 돈이 더 많이 들어간.. 나는 그런 일에는 아주 익숙하다.
본격적인 직장 민주주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나왔다. 생활 경제, 생활 민주주의, 최근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책을 계속 써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날은 춥다. 그리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먼, 그런 나그네 심정은 아니다. 낙수물은 차고, 장부가 길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으리, 그런 형가의 심정도 아니다. 초봄에 씨 뿌리는 농부의 심정에 더 가깝다.
당분간은 좀 돌아다니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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