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과 학부를 졸업했고, 공식적으로는 내내 경제학과 내에서만 학위를 받았다. 당연 경제사를 많이 들었고, 경제사가 붕괴하는 상황 아니었으면 경제사를 전공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제는 한국의 경제사 연구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주경철 선배랑 같이 공부를 했던.. 몇 년간 커피 마시고, 떠들고, 또 술도 진창 마신.

 

그런데도 상속세에 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안 배운 게 아니라, 안 가르쳐준 거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상속제도에 대해서 생각보다 깊은 연구가 없다. 외국은 알고, 우리는 모르고?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상속제도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빨간 머리 앤> 때문이다. 앤은 입양아다. 그리고 여성이다. 앤의 양부모들은 앤에게 재산을 상속할 방법이 없었다. 그 대신 앤에게 공부를 시킨다. 이게 뭐야?

 

여기에는 여성의 재산권이라는 문제와 함께 여성도 교육을 시켜야한다는 스코틀랜드의 특이한 전통 같은 것들이 개입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이 때쯤 <오만과 편견>을 정말로 진지하게 읽게 된다. 된장.. 내가 까막눈이었구나. 소설 <오만과 편견>은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론>과 함께, 여성들의 경제활동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룬 거의 유일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마침 또 bbc에서 만든 <오만과 편견> 드라마가 있었다 (얼마전 한정폰 블루레이가 나왔다. 아내가 샀다.) 달시가 물에 뛰어드는 순간, bbc 아니 영국 최고 시청률을 찍어다는 바로 그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장소는 여전히 관광객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는. 그 사진을 영국 얘기에 정통한 중앙일보 기자 한 분에게 기념으로 받은 적이..)

 

인류학에서 근대 유럽의 역사를 차남과 여성의 역사로 얘기하기도 한다. 차남들의 세계는 셜록홈즈에 보면 종종 나온다 (<88만원 세대>에서 이 얘기를 인용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반성했다. 아, 내가 아는 게 없구나..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사실 저 경제사 공부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들어앉아서 이 문제를 파기에는, 난 형편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활인일 뿐이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성과 은행 거래, 송금의 역사, 뭐 이런 회계의 역사와는 약간 곁박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여성들의 경제사 같은 게 있다. 있다는 것 혹은 있을 수 있다는 것만 알고, 나도 손도 못대고 있다.

 

내가 손도 못 대는 주제가 어디 한두 개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사실 보기는 봐야 하는데, 나는 요즘 소형 디젤 발전기 뒤지는 중이라, 여전히 손도 못대고 있는.

 

백승종의 <상속의 역사>는 이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출발지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궁금한 게 다 풀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 수준이 현재, 그렇다는 것을 확인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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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 comedy라는 단어가 있다. 헐리우드식 용어다. 나는 이걸 '소품 코메디'라고도 부른다. 한 블록 내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얘기할 때 이렇게 부른다. 코미디는 아니지만 제임스 완의 기념비적인 공포 영화 컨저링이 이런 구분에 들어갈 수 있다. 정확히 한 블록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건이 건물 하나와 정원 사이에서 벌어진다. 제대로 된 공포영화들이 이렇게 한 블록 안의 일로 집어넣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공포의 원조격인 '어셔가의 몰락'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다.

그에 비하면 또 다른 원형인 '드라큘라 백작'은 동선이 크다. 첫 장면부터 루마니아의 백작성에 도착하기까지, 마차 장면이 초반에 길게 펼쳐진다. 그리고 루마니아 성에서 런던에 이르는 항해 장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그걸 거슬러가서 루마니아까지의 추격적, 역시 귀족의 상징인 드라큘라답게 동선이 크고 시원시원하다.

얘기를 한 블록 안에서 마무리지을 것인가, 기왕에 블록을 벗어난 것, 시원시원하게 움직여볼 것인가.. 얘기를 시작하기 전, 동선 스케일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고, 공간의 이동 경로도 어느 정도는 설계를 해야 한다.

<장미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얘기를 만들기도 전에 대부분의 얘기가 벌어진 수도원에 대한 설계부터. 이건 얘기가 장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얘기를 자연스럽게 인도해 낸 경우.

그렇지만 여전히 block comedy는 많은 사람의 로망이다. 한 블록 내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도 밀도 있는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영화 <그래버티>가 우주 공간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설정하고 있지만, 사실은 인공위성 몇 개 내에서 벌어지는.. 이것도 block comedy의 쟝르에 넣을 수 있다. 지구 괘도가 한 블록이라고 하면, 좀 큰 블록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지도가 있고, 주소가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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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긴 하루가 이제 끝났다. 아침 9시 반에 집에서 나서서 대구에서 강연하고. 밤 12시까지 하는 kbs 신년 토론회.. 대구 왔다갔다 하는 것만 아니면 그렇게 고된 일정은 아닌데, 이동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일은 잘 안 하려고 하는데, 가끔은 방법이 없다.

생방송은 언제나 힘들다. 예전에 아침 방송을 어떻게 했는지, 진짜로 모르겠다. 그 때만 해도 내가 더 젊었다. 이제는 매일 하는 아침 방송은 커녕, 주간 방송도 힘들어서 못한다. 방송만 하는 게 아니라서..

최근에 경제방송에 대한 얘기들이 몇 군데 있기는 한데, 다 몸사리는 중이다. 올해 책 일정 제대로 소화하는 것도 힘들다. 건강도 좀 회복해야 하고. 몇 년간 몸을 너무 막 굴리고, 힘들게 살았더니 진짜 온 몸이 만신창이다. 요즘은 힘들어서 술도 맛이 없을 정도.

그나마 이제 둘째는 폐렴에서 완전히 나왔고, 큰 애도 크게 신경 쓰게 하지 않으니까, 나를 돌아볼 여유가 조금 생긴. 애들 아플 때에는, 에고고, 매일매일 비상근무.

애들 키우면서 욕심을 내려놓는 혹은 관리하는 방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 뭔가 더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거기서 서는 게 좋다. 인생은 고지전이 아니다. 그렇게 올라갈 데가 있지도 않고, 올라간다고 해야 별 거 없다.

어제 <마약왕> 봤다. 돈 낸 게 아까와서 오늘 한 번 더 보려고 한다. 그래, 기왕 봤으면 뭐라도 교훈을.

<마약왕>의 유일한 교훈은, 뭔가 틀어쥐려고 한 자들은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는 거 (그러나 이 교훈이 한국에서 의미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싶다. mb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마약왕>이 아니라 <토건왕>으로 바꾸면 그대로 mb 영화일 것 같기도. 한 때, 한국 최대의 토건왕이기도 했고, 그걸로 정말 왕의 자리에 가기도 했다. 너무 재미없는 영화이기는 했지만, 저걸 mb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면 혹시 재밌는 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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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보면서 매 순간이 힘들지만, 가장 힘들었던 때를 생각해보면..

 

작년 딱 요맘 때, 애들 어린이집 옮길 때였다. 둘을 동시에 옮길 수가 없어서, 큰 애가 한 달 먼저 갔다. 형이 먼저 가 있어야 동생의 대기 번호에 우선권이 주어져서 그래도 따라 옮겨갈 수 있다는 거다.

 

뭔 미친 짓인가 싶었다. 육아행정이 거지 같지만, 그 거지 같은 일의 끝판왕 정도 된다.

 

그 때 큰 애가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하는 일이 생겼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일단 몸이 너무 힘들었다. 아침에 꽤 먼 어린이집부터 집 근처까지, 그야말로 셔틀을 도는데, 진짜 죽을 맛 같았다. 같은 짓을 오후에 한 번 더 해야 한다. 방법 없다.

 

그 때 너무 힘들어서 차 잠깐 세워놓고 쉴 때였다. 박원순이 어머니들 만나서 82년생 김지영 무슨, 뭐 그런 토론회 비슷한 걸 한다는 얘기였다. 젠장, 눈물이 핑 돌았다.

 

힘들다, 이거 너무 힘들다..

 

나는 68년생 아빠다. 그날만큼은 나도 너무 힘들어서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

 

당장 육아관련 무슨무슨 본부 같은 거 만들고, 내가 나서서 본부장 하겠다고 손 들 생각이 머리 끝까지 올랐다. 돈 말고도 간단한  행정 조치만으로 지금보다 2~3배는 편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담배 한 대 피우고, 제정신이 돌아왔다. 혹시라도 내가 뭐 한다고 나설까봐 견제가 몇 년째 장난 아니다. 한 때는 동지였고, 동료였던 사람들인데, 내가 움직일 만한 공간은 다 막아놓고 있다.

 

이제는? 마찬가지다.

 

그냥 애 키우면서 지내는 게 이제 2년이 넘었다. 이제는 애 보는 게 힘들어서 아무 일도 못한다.

 

내년이면 큰 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아내가 3월 한달은 육아휴직 신청을 했다. 방법이 없다. 그리고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 끝날 때쯤까지, 나는 매일 매일이 거의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그래도 나는 건강이 형편없는 거 빼면, 사정은 좀 낫다.

 

<82년생 김지영>은 그런 삶에 관한 얘기다.

 

바로 소설을 읽어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정작 내가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그 후로도 1년이 지난 다음이다. 책을 조금씩은 읽는데, 소설을 읽을 여유까지 생기지는 않는다.

 

여유.. 하긴, 그딴 건 없다. 그냥 다른 일을 밀어치고 하는 거지.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따로 서문이 없어서 1장을 읽었는데.. 햐, 1장 읽다가 눈물 날 뻔 했다. 소설로는 별로라고 개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그야말로 애 안 키워본 할배 같은 소리 아닌가 싶다.

 

할배들, 이것들 정말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었다.

 

아주아주 유명한 할배들이다. tv에도 나오고, 책에도 나오고, 에 또 틈틈이 신문 인터뷰도 나오는, 겁나 유명한 할배들이다. 한국의 지성, 이런급 사람들이다.

 

"애 보는 게 그렇게 어려워?"

 

네, 그렇지요, 뭐. 얼버무리고 대답하고 얘기를 하는데, 진짜 애 보는 게 '눈으로' 애만 보면 되는 건 줄 알고 있는 할배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니가 뭘 좀 해야지, 애만 보고 있냐고 지랄들이다. 그 정도면 그냥 넘어갈려고 했다.

 

"조선 시대에 훌륭한 사람들은 다 처가에서 컸는데.."

 

애들은 처가집에 맡기고, 대충 자기들 따가리짓이나 마저 해달라는 건데..

 

솔직히 패 죽이고 싶었다.

 

나도 여력이 있으면 <48년생 할배들>, 그런 거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고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책의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그런 할배로 늙어가고 싶지 않다는..

 

애 키우다 보면, 영혼이 산화된다.

 

소설은 그렇게 영혼이 산화된 어느 젊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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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문 읽기, 내일은 '82년생 김지영'. 책도 새로 샀다. 소설 너무 안 읽는 것 같아서. 매일 서문을 하나씩 읽고, 여유를 조금 내서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는다. 가끔은 이미 읽었던 책 중에서 다시 읽을 책을 꺼내기도 하고.

내 생활이 여유가 없을 것 같지만, 하루에 서문 하나 읽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여유가 없지는 않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애들 기저귀 차고 있을 때에는 물리적으로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지만, 큰 애가 이제 초등학교 입학하려고 입학할 날자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까지 여유가 없지는 않다.

책을 많이 읽는 시절에 쓰는 글은, 글도 좀 윤기가 나고 때깔이 난다. 꼭 필요한 책만 읽는다고 그런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좀 풍성해야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생각도 좀 많아지고, 다양해진다.

그게 결국 글에 반영이 되어서 좀 윤기나는, 아주 척박하지 않은 글이 나온다. 쓰는 사람의 마음이 급하다고, 독자도 급한 마음으로 읽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읽기 싫다고, 그냥 던져버리지..

이리하야..

아마도 나는 한국에서 가장 한가로운 아이 아빠가 된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애 둘 보는 아빠 중에서만 추리면, 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1등 하기 쉽다. 너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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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책은 오마이뉴스 강연과 광주 강연이 새로 잡혔다. 나도 이젠 예전처럼 큰 강연은 잘 안하고, 가능하면 좀 작게 작게 하려고 한다. 큰 데 채울 능력도 안 되고. 독서모임도 그야말로 독자 다섯 분만 있으면 간다.. 독서모임은 강연처럼 하지는 않고, 티타임 형식으로, 앞으로 쓸 책에 대한 얘기도 좀 더 자유롭게 많이 해보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학자로 활동하면서 갖게 된 가장 큰 장점은, 그야말로 생활형. 장도 보고, 음식도 하고, 애들도 보고. 눈 높이를 낮추는 게 아니라, 내가 그냥 그 낮은 데에서 하루하루 일상 생활을 한다.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그만두고 난 다음 제일 어색한 게, 낮에 돌아다니는 거였다. 그 시절만 해도 남자들은 무조건 어딘가 가서 일을 하는.. 문정동 아파트에서 낮에 돌아다는 남자는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그냥 츄리닝 입고, 여기저기 잘 돌아다닌다.

작은 독서모임은 그냥 츄리닝 입고 갈까 싶기도 한. 그런 독자모임 티타임은 지난 책에 관한 얘기와 함께 새로 쓸 얘기에 대한 수다를 겸해서 해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정색을 하고 따로 인터뷰를 하는 건, 여전히 품이 들지만.. 평소에 다양한 사람들 만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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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관련된 얘기를 내가 하는 경우는 드물다. 계약서에 비밀 유지 조항 같은 게 복잡하게 달려 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냥 조용히 일하는 게 내 방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굴, 이름, 가능하면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한 게,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언젠가는 영화에 대한 책을 쓸 생각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나도 자연스럽게 영화에 관한 책을 쓰게 될 것 같다.

 

'세이브 더 캣'은 아마도 한국에서도 가장 많이 읽은 시나리오 작법서가 아닐까 한다. 또 실제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오래 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집어든 이유는, 이런 방식으로 얘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지겨워졌기 때문이다. 성격 드럽다..

 

한 번 유행이 지나고나면, 혁신적이거나 창의적인 방식도 식상한 방식이 된다.

 

'캐릭터'에 대한 집착은 10여년 전에 한국에서 형성된 것 같다.

 

근데, 이게 재미가 없다. 캐릭터? 사람이 만드는 캐릭터는 다 거기서 거기다.

 

애들 책 읽어주다보니 그리스 신화나 <해저 이만리> 같이 오래된 책들을 지겹도록 여러번 읽게 되었다.

 

이게, 지금 봐도 다 재밌다. 캐릭터? 개뿔이다. 얘기가 재밌으면 그 자체로 재밌는 거지, 그 이상 뭐가 필요하나? 헤라클레스 같은 신화를 요즘의 캐릭터 분석식으로 해보면, 재미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 얘기는 재밌는 얘기다.

 

<해저 이만리>를 다시 읽으면서, 몇 년 전 다윈의 <비글호 여행기>를 다시 읽는 것 같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아, 이게 그렇게 만만한 책이 아니었구나. 아마 언젠가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을 꼽으라면 결국 나는 <해저 이만리>를 꼽을 것 같다.

 

캐릭터? 개떡이다. 얘기가 재미가 없으니까 자꾸 곁다리 분석을 하고, 부수적인 것들이 오히려 상전 자리에 들어오게 된다.

 

이게 요즘의 내 생각이다.

 

'세이브 더 캣', 진짜 지겹도록 들은 얘기다. 요즘은, '세이브 더 캣 신'도 개떡이다. 그런 얄팍한 장치들을 배치하는데 힘을 쓰다보니까, 얘기의 본령에 대한 고민이 얄팍해지는.

 

힘은 어디에 써야 하나? 진짜 얘기가 재밌어야 하는. 그게 다다. 요즘 내 생각이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나리오 작법책을 비롯한, 글쓰기 관련된 책들을 안 보는 건 아니다. 읽어두면 다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유행을 새로 만드는 것은, 그런 작법서로 되는 건 아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그런 얘기다. 고양이를 구하든 말든.. 사람은 그런 얄팍한 존재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다시 나는 한국의 시나리오 표준 작법서가 되어버린 <save the cat!>을 다시 집어든다.

 

어쨌든 읽어두면, 정신 세계가 조금은 더 풍성해진다. 영화를 좋아하든 아니든, 이야기의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must it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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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나랑 싱크로율이 가장 높은 경제학자 두 명을 꼽자면, 신의순과 이정전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비유를 들자면, 신의순은 나를 돕기만 한 사람이고, 이정전은 내가 돕기만 한 사람이고. 어쨌든 이 두 사람이 나와 이론적 싱크로율이 가장 높다.

 

만약 신의순 선생이 그 때 대선에서 이회창 환경특보가 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나도 가끔 돌아보는 질문이다. 어쩌면 나는 적당히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었을 거고, 그냥 특별한 주제로 학위를 한 고만고만한 학자 중의 한 명이라,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명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나는 판단을 했고, 신의순 선생과 멀어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그 시절이 생각나는 것은, 신의순 선생이 마침 그 때 연세대 경제학과의 학과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너무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훨씬더 황당한 곳에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없다. 빨갱이라도, 쟤가 하는 말이 맞아, 수업도 챙겨주고, 이것저것 챙겨준 사람은 신의순 선생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국에서 첫 발을 내딛었다.

 

그렇다면 이정전은?

 

반대로, 이래저래 나는 그를 돕기만 한 것 같다.

 

문재인 당대표 시절이다. 이준구, 이지순, 이런 경제학계의 원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런 된장..

 

그 때 찾아간 사람이 이정전 교수였다.

 

내가 알았던 가장 최근의 스토리는..

 

이정전, 이준구 테니스를 치다가, 이정전 선생이 쓰러졌다는 거. 그걸 이준구 선생이 정말 눈치 빠르게 조치해서 이정전 선생이 살아날 수 있었다는 거.

 

그 시절, 우리는 야당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는 코너에 몰려있었다. 안철수 등, 무지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여간 갔다..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막 은퇴한 이준구 교수와 이지순 선생이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햐, 할배들.

 

나는 그냥 꾸벅, 도와달라고 했다.

 

이정전 선생이, 내가 갈 거라고, 연통 정도 넣어주신 상태였다.

 

_________

 

이지순 선생은 그날, 점심으로 햄버거 같이 먹었다. 그 때 나에게,

 

"아내 얼굴 봐서라도 제발, 헛짓거리 하지 마시게."

 

그런 얘기를 하셨다. 문재인 메시지를 들고 찾아갔는데,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돌아서서, 이준구 선생 방앞까지 안내해주셨다.

 

이준구 선생은..

 

"잘 해요, 우박사가 잘 해야.."

 

하여간 난 메시지는 전달했다.

 

_____

 

그 뒤에도 난 그 일을 몇 달을 더 했다. 장하성 선생도 고대 경영학과까지 찾아가서 만나고.. 틈 나는 대로 그런 양반들을 찾아다녔다.

 

난 배알도 없냐? 방법 없다. 그 시절에는, 그 일이 내 일이었다.

 

야당 시절, 그냥 도와달라고 찾아다녔다. 연구실 앞에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하고. 쪽지도 남기고, 그러고 다녔다.

 

아마 둘째가 폐렴으로 입원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나는 그뒤로도 꽤 오래 그런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프다..

 

나는 내가 하던 일을 그만해야겠다고 결정을 했다.

 

당대표를 그만 둔 이후의 문재인, 그 뒤로 두 번 만났다. 통화는 몇 번 했지만, 실제로 본 건 두 번이다. 한 번은 양산집에서, 한 번은 마포에서.. 마지막 만났을 때, 캠프는 안 한다고 했다.

 

그 날 식당에서 나오면서, 아마 이 순간이 마지막 보는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다.

 

곧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안해요", 그렇게 돌아서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_______

 

이정전의 책 "주적은 불평등이다" 서문을 읽으면서, 이정전과 지낸 시간은 물론이고, 그와 겪은 많은 일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내가 그의 책을 정독해서 읽은 게 과연 몇 번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정전 선생이 그의 절친 동료, 이준구나 이지순 선생을 설득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이 한 것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자로서 이정전이 하는 얘기, 나 역시도 성실하게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준구나 이지순, 한국경제학회 학회장인 이지순의 상징과 자리를 탐한다.

 

나도 그런 잡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그들의 친구이자, 여전히 성실하게 글을 쓰는 이정전의 메시지를 너무 가볍게, 어, 늘 하던 그런 얘기.. 이렇게 가벼이 취급한 거 아닌가?

 

개뿔, 내가 알기는 뭐를 알았나.

 

"주적은 불평등이다", 이 책 서문을 읽으면서 지난 몇 년간 나의 개떡 같은 삶을 잠시 돌아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햐..

 

우리 시대 최고의 경제학자는, 이정전이다.

 

나는 이제야 알겠다. 그걸 모르고 살았다. 내가 까막눈이다..

 

이정전 선생을, 이준구 선생 만나는 소개처 정도로 생각했던 내가, 사람도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참, 잡놈.. 스스로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state of art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 분들께, 이정전 선생의 책을 권해드린다. 당대 최고의 학자가 촛불집회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한 책이다. it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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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책, 민변 독서모임에 가기로 했다. 보통은 강연도 거의 최소한으로 하고, 독서모임에 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직장 민주주의가, 그냥 묻어둘 주제는 좀 아닌 것 같아서.. 나도 불편을 조금은 더 감수하기로. 원칙은, 독자 다섯 분만 있으면 간다 (언제나, 어디나, 이렇게는 애 보는 아빠 처지에, 그렇게 기동력 있게 하기는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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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친구랑 상가집에서 만나서 술 한 잔 했다. 친구가 말했다. 이젠 남들도 좀 도우면서 살면 좋지 않을까?

내가 말했다. 나라도 멀쩡히 사는 게 남들 돕는 것 보다 나아. 돕긴 누굴 도와. 지도 제대로 못 살면서. 남 걱정 안 시키고 사는 것도 어려워.

그렇긴 그렇네. 친구가 말했다.

남 돕는다고 호들갑 떨거 없다. 지나 잘 살면 돼.

나이 50, 사는 게 뭔지,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엄청 의미들을 찾는다. 나는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

남 돕는다는 거, 그거 아니다. 돕긴 누가 누굴 돕나. 그냥 살면서, 조금씩 서로 의지하는 거,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남을 돕기 위해 일단 내가 먼저 잘 살아야겠다는 거, 소박한 위선일지도 모른다. 니나 잘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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