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과 학부를 졸업했고, 공식적으로는 내내 경제학과 내에서만 학위를 받았다. 당연 경제사를 많이 들었고, 경제사가 붕괴하는 상황 아니었으면 경제사를 전공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제는 한국의 경제사 연구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주경철 선배랑 같이 공부를 했던.. 몇 년간 커피 마시고, 떠들고, 또 술도 진창 마신.
그런데도 상속세에 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안 배운 게 아니라, 안 가르쳐준 거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상속제도에 대해서 생각보다 깊은 연구가 없다. 외국은 알고, 우리는 모르고?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상속제도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빨간 머리 앤> 때문이다. 앤은 입양아다. 그리고 여성이다. 앤의 양부모들은 앤에게 재산을 상속할 방법이 없었다. 그 대신 앤에게 공부를 시킨다. 이게 뭐야?
여기에는 여성의 재산권이라는 문제와 함께 여성도 교육을 시켜야한다는 스코틀랜드의 특이한 전통 같은 것들이 개입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이 때쯤 <오만과 편견>을 정말로 진지하게 읽게 된다. 된장.. 내가 까막눈이었구나. 소설 <오만과 편견>은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론>과 함께, 여성들의 경제활동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룬 거의 유일한 교과서 같은 책이다.
마침 또 bbc에서 만든 <오만과 편견> 드라마가 있었다 (얼마전 한정폰 블루레이가 나왔다. 아내가 샀다.) 달시가 물에 뛰어드는 순간, bbc 아니 영국 최고 시청률을 찍어다는 바로 그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장소는 여전히 관광객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는. 그 사진을 영국 얘기에 정통한 중앙일보 기자 한 분에게 기념으로 받은 적이..)
인류학에서 근대 유럽의 역사를 차남과 여성의 역사로 얘기하기도 한다. 차남들의 세계는 셜록홈즈에 보면 종종 나온다 (<88만원 세대>에서 이 얘기를 인용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반성했다. 아, 내가 아는 게 없구나..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사실 저 경제사 공부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들어앉아서 이 문제를 파기에는, 난 형편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생활인일 뿐이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성과 은행 거래, 송금의 역사, 뭐 이런 회계의 역사와는 약간 곁박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여성들의 경제사 같은 게 있다. 있다는 것 혹은 있을 수 있다는 것만 알고, 나도 손도 못대고 있다.
내가 손도 못 대는 주제가 어디 한두 개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 문제는 사실 보기는 봐야 하는데, 나는 요즘 소형 디젤 발전기 뒤지는 중이라, 여전히 손도 못대고 있는.
백승종의 <상속의 역사>는 이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출발지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궁금한 게 다 풀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 수준이 현재, 그렇다는 것을 확인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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