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터뷰 2시간 넘게 했더니, 피곤이 영 가시지 않는다. 끝나고 조금 쉬어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져서 바로 애들 데리러 가서 다시 시달리고. 이제 인터뷰가 두개 남았나 했더니, 하나 더 남았다.

유명해지기 전의 일이다. 그 시절에는 여성동아 등 여성지, 패션지, 그리고 10대들 보는 쥬니어 패션지, 이런데 인터뷰를 많이 했다. 내 기사도 그런 데 주로 나왔고. 거기다 샘터나 그 비슷하게 생긴 잡지들에 주로.

생활 경제에 관한 작은 얘기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잡지들에서. 화장품 관련된 책을 준비하다가 '88만원 세대' 준비에 치어서 결국 화장품 얘기는 쓰지 못했다. 조향사와 관련된 얘기도 (조향사와 관련된 얘기는 결국 이번에 농업 경제학에서 일부 다루기로. 알고나면 진짜 음식에 대한 심미적 기준이 바뀔 수도.)

그 당시 잡지는 주로 가판대에서 팔았다. 주위에서 '가판대 그랜드 슬램' 했다고 놀렸다. 레몬트리인가, 중앙일보에서 나오던 쥬니어 패션지 느낌의 잡지, 그런 데가 주로 내가 놀던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잡지에서 환경이나 농업, 식품, 이런 데 관심 있는 젊은 기자들이 엄청나게 밀어주고 도와준 거였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렇다. 하다못해 신동아 같은 데에서 내 얘기를 다뤄주고, 막 그랬다.

그 후로 정말 오랫만에, 직장 민주주의 주제 가지고 그랜드 슬램 한 번 할 것 같다. 한참 때에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이 동시에 인터뷰한 적은 없었다.

그냥 나는 이렇게 밑바닥에서, "이게 중요하다", 이렇게 움직이는 게 체질에 더 잘 맞는다. 사회과학은 이렇게 바닥부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고.

오늘 행주산성 자료 정리하는 걸 시작으로, 이제 나는 다음 작업으로 이동한다. 약간의 인터뷰 남은 것과, 강연 정도만 남기고 다시 이동한다.

행군 간에.. 군가는 없다. 그냥 조용하게, 다음 목표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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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랑 나랑 너무 힘들어서 저녁은 그냥 나가서 먹기로 했다. 주섬주섬 옷 챙겨입고 나가려는 순간. 큰 애가 소리쳤다.

"준비 그만, 나 똥."

지금 다들 멍하니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들의 똥, 참 맥락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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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한 현장형 검사가 부장 검사까지 승진하였다. 드문 일이라고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이 다루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책을 썼다. 책은 겁나게 웃긴다. 그리고 대박이다.

 

<국가의 사기> 원고를 출판사에 막 넘기고 이 책을 읽었다. 한 가지 메시지가 강렬하게 남는다.

 

형사사건으로서의 사기, 기본적으로는 자기 욕심에 자기가 넘어가는 것이다..

 

형사부 검사의 조언이자 결론이다.

 

그러나 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배달의 오류', 그런 걸 이미 아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정말로 이 얘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이 책은 배달되기 어렵다. 배달의 오류라는 개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읽어두어서 해로울 것 없다. 아는 것 같아도, 우린 사기 사건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다. 전문가의 조언, 들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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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만년필로 줄 그으면서 보고, 중요한 개념들은 책 맨 앞 페이지에 노트한다. 전에는 따로 독서 노트를 만들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는 못 하고 바로 책에다. 근데 뭔가 잘 안 되는 시절에는.. 책이 있으면 만년필이 안 보이고, 만년필이 있으면 정작 책이 안 보이고. 이래저래 책 안 볼 핑계만 대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상태가 며칠이 가기도 한다. 정작 시간이 잠깐 났을 때.. 애 키우는 순간의 아픔이다.

요즘 그렇다. 만년필이 대체 어디 간 거지? 30분째 이 지랄하고 있다.. 책 보기 싫은겨, 아마도. 그걸 만년필이 안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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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1319&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헤매는 우리 경제, 이거 하면 살아나
청와대가 먼저 '직장 민주주의' 해보자"

[신년 인터뷰] 새 화두 꺼낸 우석훈 "절 싫으면 중 떠나라는 건 옛날 방식"

19.01.07 07:58l최종 업데이트 19.01.07 07:5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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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버리려다 보니, 하퍼스 바자 인터뷰가 튀어나왔다. 패션지 등 인터뷰 엄청 했는데, 몇 번 이사하면서 버렸거나, 없어진.

 

연대 강사 시절이다. 햐, 과거는 늘 미화되고, 아름답게 각색된다고는 하지만.. 저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치열한 진실을 너무 현장에서 보면 괴롭다. 그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무기력함도.

 

저 시절에 인터넷 활용 강의 전체 1위를 했었나? 하여간 뭐 그런 소소한 일들이 있기는 했지만, 너무 날 것의 진실을 눈앞에서 직면하는 그런 괴로움들이 너무 컸다.

 

하여간 나만 보면 사람들이..

 

팔리지도 않는 책, 뭐하러 쓰냐, 어디 월급 주는 데 그냥 처박혀라.

 

엄청들 그랬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했지만, 그냥 꾹 삼키고, "네, 고맙습니다", 했더랬다.

 

안 팔리는 걸 누가 모르냐? 뭔가 솔직하게 얘기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모르니까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것이지.

 

예나 지금이나, 친한 사람이나 안 친한 사람이나, 팔리지도 않는 책 뭐하러 쓰냐고 아주 지랄들을 한다.

 

여기에 2년 전부터는 버전이 하나 더 붙었다. 애 둘 아버지씩이나 되서 뭣하는 짓이냐? 넌 왜 그렇게 책임감 없이 너만 좋은 인생을 사느냐? 애들은 뭔 잘못이냐?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러고 만다.

 

(20대 같았으면, 너 화장실로 나와.. 한 번만 더 이런 개소리하면, 아구창을 미싱으로 확 박아뿔라.)

 

하퍼스 바자 인터뷰를 보면서, 꾸역꾸역 그런 조롱을 10년 넘게 참아온 지난 시절이 문득.

 

앞으로 10년 넘게 이 지랄을 나도 하고 있을까? 그건 모른다. 그 때까지도 할 얘기가 남아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그 때까지 건강이나 지능이 감당이 될지도 잘 모르겠고. 내년 일도 잘 모르는데, 10년 뒤 일을 누가 알겠나?

 

친한 박사 친구가, 책은 뭘하러 그렇게 꾸역꾸역 쓰고 자빠졌냐, 건강도 안 좋다면서, 속을 확 긁어놓는다 (속으로는, 너는 왜 하라는 결혼은 안 하고, 연애는 좀 하냐?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나는 인격이 되니까, 푸하하.)

 

그래도 나이 처먹는 게 좋은 점은 하나 있다. 신경줄도 굵어지고, 훨씬 더 잘 참게 된다. 모욕, 수모 혹은 조롱, 이젠 별로 그렇게 참는 게 어렵지는 않다. 애도 보는데, 그 정도야, 뭐.

 

그래도 꾸역꾸역 참으면서 한 자 한 자 써보는 건,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의 의무라고나 할까. 그 진창길을 걸어서 아직도 목이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그것만 해도 나는 생큐 베리버치, 메리시 보꾸!

 

그래도 둘째가 조금만 있으면 혼자 화장실에서 밑 닦을 있는 경지에 도달할 거다. 그나마 살만하니까, 요즘 이것저것 신경도 좀 쓰고. 그 전에는 누가 조롱을 하거나 말거나, 놀리거나 말거나, 갑자기 전화 걸어서 "너 아직도 책 같은 거 쓰고 자빠졌냐", 이러거나 말거나. 그냥 잠이나 좀 더 잤으면, 이런 생각 밖에는 못했다. 그래도 다 좋아진 결과 아니겠나 싶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조롱을 참으면서, 신경줄만 굵어진 게 아니라, 더 많은 낙관도 생겨났다. 그래도 잘 될 거야.. 입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속으로도 그런 생각이 든다. 강해진겨! 그래도 30대 보다는 내가 많이 강해진겨!

 

어느덧 한국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모진 조롱에 대한 저항력을 갖추는 것 - 싸우는 것은 택도 없이 중과부적이고 - 이 되었다. 그래도 참는 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경제학을 science economique라고 부른다. '경제 과학'.. 나는 과학자로 훈련받았고, 과학자로 분석했고, 과학자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개 똥 취급하는 조롱도 잘 견딘다. 나는 시방 과학을 하는겨..

 

그렇다고 상대방의 조롱을 같이 조롱으로 던지는 건, 개 똥 같은 삶이다. 그렇게 살 수는 없고.

 

그래서 내 삶의 마지막 - 아니 거의 마지막 - 단계의 점프는, 조롱이 아닌, 조소가 아닌, 진정한 유머로서 이 조롱들을 극복하는 것.

 

조롱과 멸시를 유머로 이기는 법, 아직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걸 이제 좀 해보려고 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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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몇 년째 파리 날리는 중이다. 한참 때 5천 명에서 만 명 정도가 왔었는데, 요즘은 쥔장이 아이들 둘과 함께 해탈의 장도를 걸어가느라. '임시연습장'이라는 이름을 '임시해탈기'로 바꾸고 싶은 욕망이 불끈불끈.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순전히 이게 내 성격이 더러워서 생기는 일인데.. 핫한 얘기를 트렌디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은 별로 재미 없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얘기를 결국 공론장 한 가운데로 끌어내서 핫하게 만드는 것, 그건 재밌다.

책 처음 내고 얼마 후에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는데, 그 때 주제가 미세먼지, 피엠텐이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20대 얘기도 결국은 여기서 태풍의 중심까지 밀어넣는데 성공하였다.

요즘은 직장 민주주의, 회사 안의 약자들의 얘기가 점점 태풍의 중심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정작 나는, 아주 평범하게 - 그래서 특목고 따위는 갈 것 같지 않은 - 버림받을지 말지, 그 중간에 있는 10대들 연구를 이제 막 시작한다. 요즘 누가 10대에 관심 있어?

그 말이 맞긴 하다. 대한민국이 10대에 관심 있었던 것은 딱 한 번, 영화 "행복은 선착순이 아니쟎아요 나왔을 때.."

그래서 그냥 임시연습장을 유지하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소외된 존재를 무대 위에 올려세워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는 것, 그것을 나의 역할로 다시 설정.

파리 날리는 것, 생각해보니 그게 나의 본질이기도 하다. 나는 소외되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곳으로 걸어들어가서 정말 아무도 관심 없는 분야를 연구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화려함, 그서은 나와는 좀 거리가 먼 동네의 얘기다.

이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본격적인 직장 민주주의 책을 왜 내가 처음 쓰게 되었는가? 겁나게 많은 사람들이 노동경제학 전공이라고 하고, 민주주의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여의도 근처에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왜 내가 처음 쓰게 된겨?

에고, 파리날리는 나의 운명..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블로그 제목은 당분간 계속 '임시연습장'.. (그래도 '파리날리 연습장'이라고 하면 웃기기는 하지만 좀 슬플 것 같다.)

 

** 결국 '파리날리 연습장'으로 바꾸기로 했다. 기왕 파리 날리는 거, 웃기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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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똥

아이들 메모 2019. 1. 6. 18:09

아내가 오후에 할 일이 있어서 애들 데리고 롯데몰에 가서 놀다 왔다. 잘 놀고 오는데, 둘째가 "아빠 똥." 큰 애는 의젓하게, "소변만 보고, 똥은 좀 참고 집에 가서 누면 안돼?", 그랬드랬다.

줄 서서 변기 차례와서 들어가려는데, 큰 애가 갑자기 "아빠, 똥." 둘째는 아직은 어른 변기에서는 손을 잡아줘야 안 빠지고.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큰 애가 새치기, 결국 둘째 울 뻔했다.

하여간 이것들은 벌싸 2년째, 매번 같은 시간에 대변을. 집에서나 나와서나.. 나만 땀 삐질삐질. 집에 가서, 이렇게 봐주는 건 절대 없다, 그것도 곱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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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큰 애가 무서운 꿈을 꾸었단다. 뭔데?

"부모가 다 죽는 거."

그 뒤는 생각이 안 난단다. 몇 달 전에 길에 잠시 혼자 있게 된 다음, 큰 애는 공포에 대해서 알기 시작한 것 같다.

둘째가 자기는 재밌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에 커다란 광선검이 막 돌아다니면서 집안 여기저기를 막 부수고 다녔댄다.

"광선검이, 응, 엄마 방도 부수고, 아빠 방도 부쉈어."

둘째는 이 꿈을 재밌는 꿈이라고 기억한다.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

고양이도 꿈을 꾼다. 혼자 자다 무서운 꿈을 꾸고, 놀라서 깨어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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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중학교 때 명동에 있던 유네스코 빌딩의 작은 극장에서 처음 보았다.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어송과 함께 갔는데, 밤 늦게 끝나서 거의 마지막 버스를 타고 콩닥콩닥, 그런 마음으로 집에 온 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아마 지금까지 백 번도 넘게 본 것 같다.

 

여기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 “신은 한 쪽 창문을 닫을 때, 다른 쪽 창문을 열어 주신다.” 어린 내 마음에도 이 말이 참 좋았다. 그리고 그 때는 이 작은 대사 하나가 나의 삶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말이 될 줄은 몰랐다.

 

교회에 대한 경험들이 좀 진하게 있다. 그 안에는 증오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싫었다. 하긴, 그 시절 사랑의 교회에는 사랑이라고는 정말 돈에 대한 사랑과 지위에 대한 사랑 밖에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게.. 장로가 되려고 하는 명박이 주차 안내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단 한 명을 저주하고, 남들에게 욕 퍼붓는 게 정신의 핵심인 종교가 어디 있겠는가. 다 불운했던 한국의 근현대사가 만들어 놓은 이상한 현상일 뿐이다.

 

2.

둘째가 아파서 하던 일들을 모두 내려놓던 순간 아니 그 기간을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익숙해서도 그렇고, 아까워서도 그렇고, 선뜻 뭔가 결심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나는 결심을 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현실은 그렇게 되었고, 그걸 피할 수 없던 상황을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나중에 미화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아팠고, 아내는 육아 우울증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은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내용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은 그 기간들을 지내면서 사후적으로 선택한, 아니 다른 선택지는 없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 때 화려함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같이 내려놓았다. 언젠가 있을 또 다른 성과를 위해 현재를 희생? 그런 건 비겁한 변명이다. 그냥 이렇게 살다, 때 되면 눈 감는. 그런 내 삶을 받아들였다. 내 나이 50, 남들은 한참 활동한다고 할 나이이고, 인생 2모작이니, 내 인생은 60부터, 그런 소리들을 찍찍 한다.

 

다 개체적 욕망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나타난 기현상이다. 자연적이지 않고, 사회적이지도 않다. 그냥 자본주의적일 뿐이다. 병든 한국 자본주의에, 뭐라도 한 번 더, 그런 개인의 욕망이 만나서, 같이 병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휴식 없이 죽을 때까지 개지랄을 한 번 더’, 그냥 그걸 언론의 언어로 바꾼 것일 뿐이다.

 

죽을 때까지 뭐라도 돈을 부여잡지 못해서 발버둥치게 만드는 것, 최소한 이게 노르딕 스타일도 아니고 복지 국가의 미래도 아니다.

 

나는 그렇게 돈이든 명성이든 아니면 권력이든, 놓지 못해서 끝까지 부여잡고 아둥바둥하는 스타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바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면, 나는 죽을 때 눈을 못 감을 것 같다. 도대체 뭐하고 산겨? 만족할 인생을 살지는 못해도 괜찮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게 내가 생각한 찌그러지는 맛이다.

 

마지막 눈 감는 그 순간까지, 난 찌그러져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조롱을 견뎌냈다. 무기력도 견뎌냈다. 냉정한 현실을 참았다. 그래도 내가 잘나서 이렇게 한 거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작년부터는 은행 잔고가 그렇게 바닥을 치는 순간은 벗어났다. 호사롭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세 끼 밥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 없다. 몇 년만에 내 통장에 돈이 좀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깊게 고인 물은 아니지만, 흘러 들어오는 대로 바로 흘러 나가는 옹달샘은 아니다.

 

3.

지난 10, 한국은 연성, 그야말로 극도의 연성적인 매체들만 살아남는 사회가 되었다. 경성이라고 불렀던 그런 분야는 진짜로 돈은 먹고 죽으려도 없다는 상황이 되었다. 인식론에 hard sciencesoft science를 구반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hard, 그야말로 하드코어 영화의 한 구석에나 나오는.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경성의 스타일인 것만은 아니다. 아주 부드럽고 상업적인 매체도 다룬다. 그렇지만 내가 쓰는 글들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딱딱하고 경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분야일 것이다. , 그 중에서도 사회과학은 가장 딱딱하다.

 

그냥 생태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시대와 구조의 변화에 맞추지 못해 죽어가는 멸종 위기종에 가깝다. 그런데 딜레마가 있다. 사회과학을 비롯한 경성 과학이 죽으면, 그 사회도 같이 죽는다. 아주 오래된 얘기지만, 맛있는 것만 먹는다고 건강해지지 않는 것과 같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는 체리와 캔디 그리고 초콜릿만 주면 좋은 부모일까? 당연히 그런 건 아니다.

 

자본주의는 체리와 캔디만 주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와 같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것만 한다면, 대학이라는 게 왜 존재하고, 학문이 왜 존재하겠는가?

 

나는 이런 질문 앞에 서 있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나는 한 번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탈탈 털어버린 이후의 삶이기 때문이다. 보람도 없느냐, 그런 건 아니다. 이런 딱딱한 분야가, 그래도 보람은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보람과 행복 그리고 소소한 잔재미들은 있다.

 

그걸로 만족할 수 있는가? 다행히도 나는 이제 그런 걸로 만족할 수 있는가?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어? 이 질문은 어렵다. 나는 충분할 정도로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내 뒤에 올 사람도 그럴 수 있느냐, 그게 보장이 없다. 그래서 판 걷어내고, 다른 양지 바르고 부드러운 데로 이사,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나는 오랫동안 작은 이정표 역할은 하게 될 것 같다. “여기로 가면 딱딱한 길이 나옵니다.” 그렇게 알려주고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그냥 내 건강과 여력이 허용하는 그 시간 정도일 것이다.

 

이정표가 이정표 역할을 하는 건 내 일은 아니다. 그건 내 능력 범위를 넘어선다. 그래도 이정표 역할이나마 하게 된 건, 어쩌면 50이 된 신이 나에게 열어 주신 또 다른 작은 문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내 삶은 편안하다. 건강이 메롱이지만, 그래서 더 살살 산다. 무리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래도 이 만큼이라도 버틴 게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었다는 정도는 안다.

 

<음식국부론> 내고, “그런 걸 알면 삶이 더 찝찝해져서 그냥 모르고 살래요”,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뭐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런 걸 탓해본 적도 없다. 그냥 나는 알면 찝찝한얘기를 하는 사람인 내 모습이 좋다. 다만 좀 더 그걸 웃을 수 있게, 유머러스하게 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알면 인생이 더 피곤해져”, 그런 벽 앞에서 나는 춤추고 노래한다. 그렇게 살아왔다. 이제 더 작은 마이크를 들었고, 더 작은 규모의 사람들과 대화한다. 괜찮다. 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으련다.. 누군가는 아주 딱딱한 코어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그리고 아직은 그런 걸 몇 번은 더 할 수 있다는 게, 썩 고맙기만 하다.

 

(쥴리 앤드루스가 가장 멋있었던 것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아니라 <프린세스 다이어리>였었다. 진짜,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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