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서평을 쓰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에 쓰는데, 하여간 욕은 옴팡지게 먹었다. 욕이야, 뭘해도 먹는 게 욕이다. 뭘 하면 한다고 욕 먹고, 가만히 있으면 수수방관한다고 욕 먹고.

어쨌든 애들 둘 보면서 책을 별로 못 봤는데, 서평 쓰니까 책은 야무지게 읽게 된다. 막상 글을 쓰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일단 읽어야 쓰니까 절대 시간을 쓰게 된다. 그리고 뭘 읽을지를 알아야 읽는데, 이게 참.. 읽어야 뭘 읽을지를 알게 된다는 또 다른 딜레마가.

책 고르는데 원칙이 있나? 없다. 마음 가는데로. 박노자 책을 고를 때가 제일 힘들었다. 박노자 책 서평을 쓰고 나니, 마치 인생의 숙제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박노자가 몇 번 나를 비난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거는 박노자 생각이고, 나의 박노자에 대한 생각은 또 다르다. 박노자 때에는 편집국이 잔뜩 긴장했다. 쓴다고 몇 주 전에 알려줬고, 원고도 일주일 전에 줬다. 혹시 이거는 안 된다고 하는 경우, 대타로 쓸 책도 준비해두었다. 다행히 그대로 나갔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고르는 절반 정도의 책은 일반적인 조선일보 독자들이 아주 불편해하거나 싫어할 내용들이다. 그리고 많은 진보 쪽 독자들도 싫어할 내용이다.

그런 책을 준비할 때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긴장도 된다. 그리고 그냥 평이한 걸로 갈까 하는 꾀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마나한 얘기로 떼우면서 세상을 살지는 않았다. 크든 작은, 지면이 주어지면 내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얘기를 최선의 노력을 다 해서 만들어낸다. 그렇게 살아왔다.

몇 년 전, 하도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국방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자격이 되고, 추천해줄 장군들도 있었다. 전쟁사와 특히 해전 중심으로 그래서 다시 대학원에 다닐까,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집에서 멀지 않아서 갈까 싶었는데.. 된장, 거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논산으로 이사간댄다.

인연이 아닌가벼..

그래도 서평을 쓸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은, 국방대학원이 논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어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변화 때문에..

만약 지금 대학원 다니고 있으면, 애 보다 잠깐씩 나가서 수업 받고 오는 것 외에 뭘 더 할 수 있겠나?

인생이란 그렇게 알기 어려운 복잡한 우연들이 겹치면서 만들어지는 작은 소품 같은 것이다.

아내는 나랑 결혼하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이 살았겠나? 이런 말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아내는 두 아이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다. 그리고 지금의 삶에 대해서 가끔은 감사하는 것 같다.

아내는 딱 15년만 더 일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마 그 정도는 어찌어찌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더 킹>에 감찰부 여검사가 나온다. 딱 아내 캐릭터다. 어마무시, 살벌 맥시멈,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그리고 남자들 특히 '개저씨' 스타일이 그냥 얼굴만 보고도 무서워한다. 본능적으로, 개저씨들도 누가 무서운지는 아는 것 같다. 그래서 불이익을 많이 당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지난 일이다.

내가 국방대학원에 가지 않았고, 아내가 그래도 좀 편안하게 지내기 때문에 책을 좀 읽고, 서평이라도 쓸만한 여유가 생겼다. 소소하지만 매우 작은 우연들이 모여서, 나는 지금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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