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박산호씨의 에세이집을 샀다. 나는 필요한 책이면 어지간하면 사는 편이다. 꼭 내가 알아야 하는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냥 세상 동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사고. 박산호 에세이집은 읽고 짧은 감상기라도 쓰려고 한다. 감상기를 쓰면 책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기억도 오래가지만, 자료 정리의 의미도 생긴다. 읽고 해석하면서, 책은 나에게 의미가 생긴다.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30대에 책을 쓸지 말지 고민하던 시절, 이런 분석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회과학의 독자는 대체적으로 2만명.. 그게 15년 전의 계산인데, 아직도 그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렇게 가설을 놓고 검산을 해보면, 대체적으로 맞는다. 사회과학 독자들이 전부 사 보는 책이면 2만부.. 사실 거기까지 가기 어렵다.

같은 책을 사서 읽는 집단이 만 명 정도 있다고 하자. 그래서 괜찮은 책이거나 아니면 미래가 담겨 있다고 하는 책은 만 명 정도 사준다고 해보자. 물론 그렇게 받는 인세가 엄청난 돈도 아니고, 팔자 고칠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새롭게 데뷔하는 저자나 작가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 걸 운동으로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애 태어나고 어쩌구 저쩌구 하다 보니까, 나도 독서량 자체가 줄었다. 잠시 책상에 앉아있기도 힘든데, 이것저것 벌일 여유가 없었다.

50대, 나는 뭐 엄청난 일을 할 생각은 없다. 그냥 소소하게 하던 일이나 망치지 않고 처리하는 이상의 일을 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어떻게 하면 새로운 저자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데 약간 손 보태는 정도의 일은 할 생각이 있다. 책이라는 게, 목숨 걸고 그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내지 않으면 그냥 나오고 버티는 게 아니다. 원래도 책이란 건 그랬다. 자본주의 시절에도 그렇고, 그 이전에도 그랬다. 책 특히 좋은 책은 목숨 걸고 그 사회 구성원들이 지키는 것이다. 안 그러면? 별 거 없는 문화가 되고, 그 문명도 별 거 없다.

만 명 정도가 1년에 책 20~30권 사는 거, 그렇게 어려운 일 아니다. 최소한 그 정도의 일들이 몇 번 벌어져야 이 사회가 좋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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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때문에 잔뜩 쫄았는데, 결국 힘이 약해져 미풍으로. 애들은 뒤늦게 어린이집에 갔고, 재택근무 신청한 아내도 일 한다고 카페로 나갔다.

여성가족부에서 여성친화기업 관련된 위원을 해주기로 했는데, 첫 회의 한다고 나오란다. 정부에 있을 때에는 이런 위원회 간사 역할을 주로 했다. 위원회 만들고, 수발드는 일. 공식적으로 정부 위원회에 들어간 거는 진짜 오랜만의 일이다. 에너지나 산업 관련 위원회, 일절 안했다. 왠지 옛날에 먹던 자리 가서 남은 거 얻어먹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또 막상 이상한 거 보면서 가만히 있기도 그런데, 내가 만들어놓은 기본틀을 내가 잘못한다고 뭐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이래저래, 그냥 안했다.

이게 위원회가, 한번 뭐 하나 하기 시작하면 줄줄이 몇 개를 하게 된다. 그렇게 할 맘은 없고.

강연, 컨퍼런스 발제, 이런 거 요즘 엄청 들어온다. 대부분 사정을 들어 못한다고.. 내가 진짜 열심히 살았던 것은 30대다. 88만원 세대나 괴물의 탄생 등, 내가 한국 경제를 보는 독특한 시각 자체를 그 시기에 만들었다.

보통은 그렇게 한 번 해놓고, 적당히 그걸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그게 싫었다. 50이 되면서, 예전에 해놓은 것은 다 내려놓고, 새로운 것 아니면 안한다는 약간의 결심을 했다. 뭐, 말만 그렇지 매번 새로운 것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새 내용을 만들지 않으면 입 다문다...

우연히 tv에서 박범신이 아버지 얘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박범신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박범신처럼 살고 싶지 않다... 가 지난 10년 동안 내 삶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mb 시절 서울재단 이사장하고 등등.. 개인에게 특별히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처세도 선택이고,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방식으로, 그래도 적당히 자기 거 챙기며...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자리에 앉아 자료들 팍 펼쳐놓고, 낑낑거리기 시작한다. 태풍이 열기라도 좀 식혀주었으면 싶었는데, 너무 힘없이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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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의 클라이막스는 6장이다. 사례 분석과 인터뷰 작업이 여기 들어간다. 기록적인 폭염, 몇 주 동안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원래 이 책은 이렇게까지 분야별, 유형별 사례 분석까지 생각했던 책은 아니었다. 하다보니까, 책을 좀 늦추고, 고생을 좀 더 하더라도 이번 기회에 좀 더 챙겨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일단 6장 목차를 새로 정리했다 (해보고 내용 없는 건 빼는 방식으로...)

6장. 우리 직장 민주주의
1. KBS 민주주의
2. 삼성 민주주의
3. 아시아나 민주주의
4. 병원 민주주의
5. 학교 민주주의
6. 서울우유 민주주의
7. 카카오 민주주의
8. 여행박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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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생각...

낸책, 낼책 2018. 8. 21. 14:31

"이재영이 죽었다. 나는 공산당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나는 아무에게도 지켜야 할 약속이 남지 않게 되었다. 그는 'MB시대'를 버텨내지 못했다. 50이라는 나이는 그런 나이다. 친구나 지인 한두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것, 그게 20대와 다른 점 아닐까? 내 친구들은 참 많이도 죽었다. 민주노동당에 재영이가 두 명 있었다. 정책을 맡았던 이재영, 조직을 맡았던 오재영. 나는 두 명의 재영이와 모두 친했다. 오재영은 나와 한 잔 하기로 약속을 잡은 주에 죽었다. 과로사였다. 서울시장 선거에 노회찬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노회찬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오재영과 그 선거를 치르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의사 박상표는 광우병 싸움으로 유명한 인사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영향을 받아서 나는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했다. 꽃처럼 아름다웠던 친구들이 50이라는 나이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우리끼리 모였을 때, 너무나 친했던 친구나 지인이 한두 명 죽는 건 술자리 화제 축에 끼지도 못한다. 그게 20대나 30대 시절의 우리와 50대가 되어버린 우리가 다른 점이다. 이제는 죽음에 조금 더 익숙하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도 준비해나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50대 에세이에 썼던 한 구절이다. 이 귀절에 나온 친구들이 결국 다 죽었다. 그렇지만 이걸 쓸 때 노회찬도 죽을 줄은 진짜 몰랐다. 틈틈이 기억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 시간을 견뎌나가는 것은 남은 자의 몫이기도 할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노회찬과 미처 하지 못한 일들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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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하다 보니까 법랑 냄비 뚜껑에 4각 접시가 기가 막히게 들어갔다. 우찌 들어갔는지. 빼려고 보니까 네 귀퉁이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아서 안 빠진다. 법랑 냄비도 휘지 않고, 접시도 휘지 않는다 부러지면 부러지지, 휘지는 않는 성질 더러븐 녀석 둘이 제대로 만났다. 게다가 포기 하기에는, 비싼 녀석들. 

30분을 낑낑대고, 젓가락 두 개를 동원해서 겨우 뻬냈다. 

울 뻔했다, 땀범벅이 되어. 주여, 나는 오늘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접시 빼고 나서, 냉장고에 있는 소주 꺼냈다. 삐뚤어질테다... 세상이 착하게 살려고 맘 먹은 사람의 삶을 너무 도와주지 않는다. 이제는 접시 마저도.. (아내가 나랑 결혼한다고 저금통 털어서 산 접시라, 깰 수가 없었다..) 들어갔으니까 나오기도 하겠지, 이 신념 하나로 버텼다. 해결하고도, 행복하지 않고, 서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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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익숙하지 않은 꽃들이 주변에 많이 피어났다. 설악초라고 하는 것 같다. 미국이 원산지.

 

늘 보던 꽃들과는 좀 다르다. 익숙하지 않은 날씨, 익숙하지 않은 꽃들이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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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민주주의, 인터뷰 작업도 거의 끝나간다. 오늘은 정의당의 서울시 의원 권수정. 오전에 만났는데, 엄청 즐겁고 유쾌했다. 절 제목은 '아시아나 민주주의'라고 할 생각이다. 항공사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상식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협상가 시절, ICAO랑도 일을 좀 했었는데.. 한국은 국제 표준과도 너무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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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둘째. 얘가 아프고 나서 내 인생이 많이 변했다. 좋아진 건지는 잘 모르겠고, 하여간 변하기는 했다. 요즘 키 많이 컸다. 그리고 그보다는 살이 조금 더 붙었다. 사진 찍는 게, 참 어렵다. 뭘 맞추고, 조절하고, 그럴 여유가 안 된다. 그냥 그날 들고 있는 렌즈, 되는대로.. 그래도 둘째 사진 찍을 때면 조금이라도 더 화사하게 찍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사람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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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큰 애. 일곱 살이다. 영어 유치원도 안 보냈고, 그 흔한 학습지 한 번 쥐어준 적 없다. 남들 다 한다고 하는 사교육도 아마 거의 구경 못 해볼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노는 거 하나는 남부럽지 않게 놀게 해주려고 한다. 

영어유치원 보냈다 치고, 그 돈으로 놀러다니기로 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공교롭게도 바닷가에서 생일을 맞았다. 행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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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과 애들. 아마도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찬란한 시절을 지금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살아서 이런 순간을 맞을 수 있을까? 내가 50이니.. 아마 나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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