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에세이, 마지막 고치는 중이다. 그리고 한 꼭지 정도, 더 쓸 생각이다. 책을 핑계로, 진짜로 삶을 한 번 되돌아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남에게 충고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삶이 되었다. 나에게 해줄 충고도 없는데, 남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어제 사무실에 잠시 나갔다. 새로 들어온 스탭들이 복도까지 나와서 인사를 한다. 어색하다. 나는 그들 이름도 기억 못하는데. 미안할 뿐이다. 얼마 전에 아이들 데리고 산에서 산책했다. 누군가 인사를 하는데, 진짜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아빠 친구냐고 물어본다.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에세이가 참 독특한 분야다. 책 쓰는 동안에도 내가 많이 변했다. 그리고 탈고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동안, 서운하거나 서먹한 상태로 안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된다. 그걸 그냥 틀어쥐고 나머지 삶을 살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아내가 얼마 전부터 필라델피아 갔다오라고 한다. 돈은 줄테니까, 가서 좀 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럴 돈도 없고, 꼭 가야할 이유도 별로 잘 모르겠다. 아내는, 지금 내가 가면 뭔가 느낄 게 많을 것 같으니까, 혼자라도 갔다오라고 했다. 연말이든 연초든, 필라델피아에 갔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꼭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만은 아니다. 그냥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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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 30미리 접사렌즈. 예전 살던 집 마당에는 꽃이 참 많아서 그 때는 접사 진짜 많이 찍었었다. 백사실 계곡에도 자주 갔었고. 몇 년만에 접사 렌즈 집어 들었는데, 사실 어떻게 찍는 건지 그 사이 많이 까먹었다. 사과꽃을 본 건, 몇 년 전이 처음이다. 사실, 볼 일이 별로 없다... 올해 사과꽃이 필 때면 지리산의 후배 사과 농장에 꼭 간다고 철썩 같이 다짐을 했는데, 막상 아무 생각 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가 사과꽃 계절이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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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짝패, 충청도 사투리가 겁나 나온다. 그렇기는 한데, 장소가 충청도 어디인가를 가르쳐주는 것 외에 언어로서의 내면적 기능은 없다...) 

 

1.

몇 년 전부터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웃음과 풍자, 그런 것을 갈망하는 생각이 나에게 계속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20대에서 30대를 짙게 누르고 있던, 뭔가 모르는 비극적 결말 혹은 구조 악 같은 것만을 다루던 상태에서 잠시 일탈적 해방 같은 느끼고 싶다는 본능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지고 있지 못한, 아니면 가져 보지 못한 장난감을 더 가지고 싶은 그런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형식이 무엇이든, 코미디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약간의 시도는 했었다. 정치 코미디를 써보려고 했었고, 기본적인 얼개를 잡아 놓기도 했었다. 매번 쓰다 만 글에는 바빠졌다거나 형편이 되지 않았다는 비겁한 변명이 달린다.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곧 죽어도 능력이 안되어서 포기했다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그렇다.)

 

2.

여전히 코미디는 언제나 내가 써야 할 글 목록의 매우 상위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물론 예전에도 방법이나 대안은 없었지만, 지금도 그렇다. 리스트에 올리고, 때가 되면 뚝닥뚝닥 결국은 해치우는, 나는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은 아니다. 수많은 목록을 리스트에 올리고, 지우고, 또 올리고, 또 지우고, 언제나 그 지랄을 한다.

 

그래도 이렇게 쓰고 싶은 글을 리스트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영향을 받기는 한다. 잠재적으로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 하는 일에 아주 약간이라도 영향을 주게 되기는 한다. 나의 리스트에 절대로 올라오지 않는 것은, 절절한 사랑 이야기 같은 거아니면 로맨스 코미디. 별의별 희한한 흡혈귀나 좀비 얘기 아니면 찌질한 SF류까지 전부 리스트에 올라오는데, 절절한 사랑류에 대해서는 한 번도. 하여간 마음이 안 간다.

 

3.

사투리를 사투리라고 그냥 생각하지 않게 된 계기는 제주도 연구할 때인 것 같다. 양씨니 고씨니 하는 제주 할망과 함께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들 혹은 입도 몇 대를 따지는 제주도 사람들하고 작업을 꽤 길게 했다. 그 시절에 지방의 방언, 사투리, 이런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었다.

 

요즘 지방에 가도 사투리 듣기가 쉽지는 않다. 처음 대구에 갔을 때 들었던 그 느낌을 지금은 거의 받기 어렵다. 지방 사람들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4.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 멀리 놀라 가기가 어려우니까 요 몇 년간은 주로 충청도로 갔었다. 태안과 그 인근 지역들. 꽤 길게 머물기도 했다.

 

사투리에 관한 얘기들이, 사실 우리는 많이 써먹었다. 전두환 시절부터 서울말 가미된 대구 사투리를 궁중어라고 불렀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했던 바로 그 말. 강남 살던 시절, 사방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바로 그 궁중어였다. DJ 시절에는 목포 형님들과 함께, 전라도 사투리에 익숙해졌다. 한 때 내 바로 위의 상관이 목포 형님, 그와 함께 매생이국이라는 것을 처음 먹었다. 그리고 노무현 시대가 되었고, 평생 들은 것 만큼의 부산말들을 듣게 되었다. 부산 말, 다시 대구 말, 부산 말 대구 말 그리고 그 틈틈이 광주말

 

충청도 사투리는, JP와 함께 찾아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직은 익숙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덜 소비된 말이기도 하다. 백제로 치면, 어디가 본당이야? 전라도권, 충청도권? 지금에 와서, 알게 뭐냐? 그리고 그런 화석화 된 논쟁이 뭐가 중요할까 싶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당분간 나는 충청도 갈 일이 많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보면, 얻어걸리는 것도 있기는 할 것이다.

 

5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재능과는 아주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아쉽지만 그렇다. 뭔가 기똥찬 생각이나 아이디어 같은 것이 불현듯 떠올라, 일필휘지별로 안 그렇다. 앞으로 할 것, 꼬박꼬박 리스트를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일정표도 몇 년치, 꼬박꼬박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계획한 대로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매번 수정한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는 처지였으면, 그렇게 일정표 만들고 메모 정리할 시간에, 그냥 그걸 쓰라고 할 것 같다. 그렇긴 하다.

 

<88만원 세대>가 대표적으로, 몇 년간 모아둔 메모와 이건 좀 이상한데?”, 그렇게 적어 둔 것들 것 모아서 만든 대표적인 책이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기획하다가 버린 메모 노트 같은 것까지 참고했다. 자기는 쓸 필요 없다고 버리려고 하는 걸 그것 좀 잠깐 줘보세요”, 그런 것까지 탈탈탈 털었다. 독일 사례가 그렇게 나온 얘기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아니, 종종 배신한다. 그렇지만 그런 배신까지 다 포함해서, 뭐라도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땀은 좀 흘려야 한다.

 

뭔가 메모를 하고, 리스트에 올려놓으면 시간이 지났을 때, 모이는 게 좀 생긴다. 그런 메모도 없이 멍하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도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다. 내 경우는 그렇다.

 

블로그에 이것저것, 되는 얘기 건 되지 않는 얘기 건, 생각날 때 정리해 놓는 것은 내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한 것 같다 (제일 잘 했다거나, 제일 많이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충청도말 + 코미디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결합한 메모 하나를 더 한다. 조각조각 모아서 해보는 일을, 한 번 더 하려고 한다.

 

어차피 나는 시간이 많다.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다. 천천히 모아가면서 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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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고와 배화여고를 비교하는 교육 책은, 내년 출간 일정에서 빠지게 되었다. 자사고와 혁신고를 비교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어서 꼭 해보고 싶기는 했는데... 내년에는 일정이 안 나온다. 그렇다면 후년에는? 그것도 모른다. 빛의 속도로 날라와서 꽂히는 것들이 있어서, 후년에도 기약이 없다.

원래는 모피아 2권을 교육 마피아로 할 생각이 있었다. 모피아가 기획 단계부터 처음부터 3부작이었다. 드라마 판권은 팔렸는데, 박근혜 시대라 편성은 안되었다. 그리고 나도 계속 모피아 시리즈 붙잡고 있기에는, 일정이 급해져서 결국 내려놓았다. 모피아 2권이 이화여고 3학년 여학생과 중앙고 3학년 남학생의 연애 얘기를 중심으로 구성이 되었었다. 여주인공 이름도 정해놓았었다. 결국 계속 쓰지 못한 건, 교육 얘기가 생각보다 인기가 없다. 전체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내 주변 동료들 사이에서는 우선 순위가 떨어진다.

그렇게 한 번 내려놓았던 이화여고 얘기를, 다시 한 번 배화여고와의 비교로 올려볼까, 그럴 생각이 있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강남의 돼지엄마를 중심으로 한 시나리오도 한 번 테이블 위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할 생각이 있었는데, 결국 나중에 밀고 들어온 아이템들에게 밀려서...

이래저래 교육 얘기들은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아이들 학교 들어가면 후회할까? 그래도 어떻게든 이 얘기를 좀 다루면서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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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을 조금 읽었다. 책을 읽는 것은, 자기 시간을 내어놓는 것과 같다. 나에게 책은, 언제나 괴로운 일이다. 내가 모르는 것에 관해서 책을 읽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내가 전혀 모르던 것에 대해서 생각을 죽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전혀 모르던 것에 대한 작은 우주가 생기고, 내가 알던 작은 소행성 하나가 산산히 부수어져 나간다. 그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책을 읽는 가장 나쁜 자세 중의 하나가, 자기가 필요한 것만 읽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실용적인 자세로 장점들만 자기 안에 들어올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10년 혹은 20년이 지나면 이게 결정적으로 해로운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책의 실용적 장점만이 모여서 지식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머리에 똥만 차게 된다.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저자를 온전하고 완벽한 한 사람이라고 일단은 전제하고 그의 생각들을 읽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책은 부분적으로 옳고, 부분적으로 틀리다. 시기가 변하면 그 자체로 완벽하게 자신과 맞는 책은 없다. 심지어 자기가 쓴 책도 시기에 따라서 다루는 대상과 생각의 변화 때문에 자기와 맞지 않게 되기도 한다. 남이 쓴 책이야 오죽하겠냐.

그걸 자기가 우월자의 시선으로 재단하고 심판하면서 읽으면, 책의 미덕 자체도 온전하게 자신에게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은 배운다는 생각 그리고 '온전하게' 하나의 세계관을 맞이한다는 생각으로 읽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매번 고통스럽다.

이런 생각을 딜타이 등의 말을 빌려서, 해석학적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키워드 하나면 꼽으면 context,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컨텍스트를 읽을 수 없는데, 텍스트를 어설프게 재단하면서 자신이 더 우월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건방떨면, 컨텍스트 근처에도 못 가본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여전히 나에게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여전히 내게 독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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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경제만 보면 현 정부가 딱히 엄청나게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조금씩 핀트가 안 맞는다. 좀 만족스럽지 않다는 정도? 그러다가 김문수가 서울시장 하겠다고 내세운 얘기들 보면, 좀 아닌 게 아니라,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재건축 다 풀어주고,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두면알아서 시장이 작동할 것 아니냐? 이게 언제적 얘기인가 싶다. 유럽에서는 극우파들도 이렇게 무식하게 옛날 얘기 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복지 얘기도 하지만, 무엇이 진짜로 자국 청년들에게 유리한 것인가, 요 정도 얘기는 하는 것 같다.

 

시라크 이후로 프랑스도 보수들이 꽤 오래 집권했다. 김문수처럼 하면 파리도 고도제한 같은 거 다 풀고, 그냥 집장사들 하고 싶은 데로 다 할 것 같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보수 정권들 들어오면 우리 식으로 아파트 분양제 막 하면서 정부 돈 끌여다가 민간인 집장사 하는 데 보태주고 그럴 것 같지만, 그런 일도 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도 보수가 좀 제대로 출발점을 세울 수 없을까 싶다. 사실 부동산 시장이나 민간 주택 관리 그리고 임대주택 등 큰 틀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진보나 보수나, 다 거기서 거기다. 이런 거 보수적 관점에서도 제대로 해보자고 확 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토건에 관해서도, 하는 말만 좀 다르지 지역으로 가면 별 다르게 크게 다르지도 않다. 정치적 극단주의로 너무 밀리기는 했지만, 프랑스 사르코지 시절에 하던 생태 정책은 지금 정의당 보다도 더 급진적이다. 독일의 탈핵은 무슨 사민당이나 녹색당 연정으로 추진하는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아니다. 여기도 그냥 우리식 보수 진영에서 국가적 합의를 만들어서 추진하는 것이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이건 안철수가 주로 했던 얘기인데, 이것도 좀 얄팍하다. 지금까지 가장 보수 중에서 왼쪽으로 깊게 찌르고 온 사람은, 여전히 유승민이다. 그가 여당 원내대표로 중부담 중복지얘기할 때, 많은 진보 쪽 인사들이 위협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 일찍 박근혜 아니 순실인가? – 눈 밖에 났다. 국회 연설 몇 번 한 게 다다. 법안 통과도 제대로 시켜보지 못하고 실각하였다.

 

김문수처럼 그렇게 그냥 시장은 다 해 줘요, 그러니 나 서울 시장 할래요?”, 이러고 있어서는 사람들 웃음거리 밖에 안된다. 우리 말이 좀 그렇다. 마켓, 그 시장도 시장이고, 메이어, 그 시장도 시장이다. 듣는 사람 헷갈리게 말해놓고, “내가 다 맞아요”, 그러고 있어서는 뭔가 바꾸고 싶다는 심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국 보수당의 43, 데이빗 케머론의 고든의 노동당으로부터 정권 뺐어올 때에는 사회적 경제를 비롯해서, 정말로 꽤 훅 치고 들어왔다. 우리 식으로 치면 심상정이 했을 것 같은 얘기들도 처칠의 후예인 데이빗 케머론 입에서 막 나왔다. 영국 노조와 노동당에서는, “그것 다 거짓부렁이래요”, 방어하느라고 급급했다.

 

최저임금만 해도 그렇다. 이게 꼭 무슨 좌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신자유주의라고 악명 떨치는 사람들 진영에서 이게 처음 제안되었고, 실제로 이걸 미국에서 실행하려고 행정적 검토까지 한 사람은 닉슨이다.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 그래, 바로 그 닉슨이다. 그리고 음의 소득세라는 개념으로 이걸 처음 디자인한 사람은 밀턴 프리드만이다 (근데 김문수는 우파 중의 보수 경제학자인 프리드만 이름이나 알랑가?) 그렇게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우익 중의 우익 정도로만 보이는 일본 아베가 지금의 경제 틀을 구상하면서 맨 앞에 내세운 게 최저임금 상승이다. 정치적 입장으로만 보자면 아베나 김문수나, 이제 와서는 극우 중의 극우가 되었다. 아베가 최저임금 주창하면서 아베노믹스의 한 축으로 세운 거, 그게 그의 롱런 비결 중의 하나가 아닌가?

 

솔직히 지금 와서, 김문수 하듯이 집 여러 채 가진 사람들과 재건축에 목매단 사람들 표 얼마 더 얻는다고 해서 한국당에 갑자기 물 들어오듯이 새로운 흐름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차피 거기가 전통적으로 경제 보수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쳤던 자기네 핵심 지지 그룹 중의 하나 아닌가? 망할 대로 망한 보수 입장에서는 물 한 모금 더 마시나 들 마시나, 전멸 직전까지 가는 데 큰 차이 없을 것 같다.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김문수의 얘기는 그렇게 밖에 안 보인다. 그래도 마이크 들이대는데, 아무 얘기도 안 할 수는 없는 거 아니야, 이렇게 밖에 안 보인다.

 

좀 생각해보시라. 외국 보수들이 궤멸 직전에 놓였거나 정권을 내어주고 나서 어떤 변화를 했는지? 트럼프처럼 드물게 좀 더 오른쪽으로 확 치고 들어가면서 어영부영하던 개혁의 뒷구멍을 치고 들어간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례는 드물다. 많은 경우는, 왼쪽 깊숙히 훅 치고 들어오는 전략을 썼다. 경제가 그렇다. 정치적으로는 좌우로 확 나뉘는 것 같지만, 최소한 1929년의 대공황의 수정 자본주의 이후 혹은 1945년 전후복구 중에 나온 복지국가 담론 이후, 별로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기본 입장 자체가 국가가 적당히 개입하고, 어느 정도 선에서는 복지를 하고, 생태나 토건 혹은 문화 같은 것은 명확하게 좌우가 나뉘지 않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분야는 신좌파로 별도 분류할 정도가 되었다.

 

더 위로 기원을 찾아가보자. 복지의 기원으로 우리가 다 아는 게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아니었던가? 그는 귀족들에게 복지는 체제 유지비용이라고 말했다. 적당히 기본 체제를 유지하고 싶으면 이 정도 비용은 대라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나, 현실적으로 보나, 21세기의 외국 우파들이 그렇게 딱딱하게 래세패르, 자유방임만을 줄구장창 외치고 있지는 않다. 경제도 현실이고, 정치도 현실이다. 성과 없으면 정치도 안 되고, 정치를 하기 위해서 더 나은 성과를 보이는 정책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정책은 이념일 것 같지만, 21세기에는 그냥 도구일 뿐이다. 그렇게 보지 않으면 독일 메르켈 총리의 강력한 탈핵 정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차피 이번 지방 선거에서 한국당은 지금처럼 하면 괴멸적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면 다음 번 총선은? IMF 경제위기급의 급격한 외환위기 같은 게 오기 전에는 경제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 지형도 변할 게 별로 없다. 다음 대선은 택도 없고, 다다음 대선도 지금 같아서는 한국당에게는 아무런 기회도 없다. 그러면 15년 아니 14년 후는? 혹시라도 개헌이 되고 새로운 헌정질서가 오면? 다음 총선에서 싹슬이할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보이기 전에는 한국당이 정치적으로 주도할 기회가 오지 않는다. 자기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어차피 태극기 할아버지들은 한국에서는 변치 않는 상수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비전도 만들 수가 없다. 지금은 21세기다. 청년 보수가 새롭게 등장할까? 외국에서는 다양하게 등장하기는 했는데, 지금 한국당 실력으로는 그것도 어렵다.

 

멀정한 보수가 등장하기에 사실 지금은 좋은 조건이다. 별로 잃을 것도 없다. 기다리다 다음 총선 때 사멸하거나, 아니면 지금 바꾸거나? 트럼프 같은 기가 막힌 어벤저스 멤버급 스타가 등장할 것 아니면, 할 수 있는 건 왼쪽으로 확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더도 말고 딱 심상정 바로 왼쪽 정도 간다고 생각하고 달려가면 심상정 바로 오른 쪽 정도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시장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준다”, 이런 교조주의적 명제만 포기하면 현실적 정책에서는 거기에도 좋은 게 많다. 아베가 최저임금 전국적 상승한다고 밀고 나올 때, 그게 원래 자기 철학에 맞거나 좋아서 했겠는가?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한 것 아닌가?

 

아파트 분양제를 비롯해서, 현 정부가 별 대안도 없고, 그저 크게 문제 일으키지만 않을 정도로 적당히 현상관리만 하는 분야들은 많다. 빈 공간이 숭숭이다. 보수들이 그 쪽으로 치고 들어가면? 2000년에 영국에서 일어났던 것 같은 변화가 생겨날 수 있다.

 

작은 소망이다. 한국의 보수들도 이제는 제 정신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한국을 보고 싶다. 그게 우리가 진짜로 5만달러, 6만달러, 제대로 된 경제 성장궤적을 가지게 되는 길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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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고양이 강북. 낯에 이렇게 본 건 몇 달만인 것 같다. 이전에 살던 집 마당에서 태어났고, 아직도 쌩쌩하다. 태어날 때, 어렸을 때, 유달리 몸집이 작아서 이게 얼마나 버티겠나 싶었다. 이제 아홉살인가? 모진 겨울들 많이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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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큰 애 어린이집 데려다주는데, 문 앞에서 돌아나오는데 울기 시작했다. 큰 애는 요즘 두 번째 맞는 사춘기인 것 같다. 게다가 주말에 아주 잘 놀아서 월요병도 있는 것 같고. 나도 그렇게 학교 다니기를 아주 싫어했다. 큰 애 보다 한 살 어린 시절, 집에서 미술학원을 보냈는데, 그게 그렇게 싫어서 도망다니면서 땡땡이쳤었다. 큰 애 어린이집 교실 문앞에서 우는 거 보는데, 딱 그 시절의 내 생각 났다. 학위 받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그렇게 학교 가는 게 싫었다. 공부 좋아서 한다는 사람도 가끔 있던데, 나는 느무느무 싫은 걸 참고 억지로 한 거다. 책 읽기가 재밌다는 사람도 아직 이해 못하겠다. 읽기 싫은데, 죽기 싫어서 참고 읽는 게 책이다. 가기 싫은데 방법 없으니까 참고 가는 게 학교였고. 다행인 건... 집에 있고 싶지 않은데 참고 버티는 게 아니라는 점. 나갈 데도 많고, 나오라는 사람도 많은데, 집에 있는 것만은 느무느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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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강변북로에서 운전할 때였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 흘러나왔다. 원래 팝송 들을 때 가사 잘 안 듣는다. 그 날따라 가사를 좀 신경 써서 들었다.

Man, what are you doing, here?

이 가사가 확 가슴을 후벼팠다. 와... 눈물이 핑 돌았다. 운전하다 눈물 났던 건, 이상훈이 코리안 시리즈에서 삼성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은 이후로 처음.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 나중에 차를 세워놓고 혼자서 10분 넘게 울었던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이 얘기는 실화였다. 젊은 빌리 조엘이 첫 앨범 내고 실패하고, 스튜디오 근처에서 알바하던 시절에 자기가 겪은 얘기. 그리고 웨이트리스 걸과 결혼도 하고 (나중에 이혼.)

어쩌면 이 노래 가사 한 구절이 내 삶을 크게 바꾸게 된 결정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부터 아주 곰곰이, man, what are you doing, her... 나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리고 결국 결정을 내렸다.

애나 보자...

사람들은 지금도 가끔 왜 애를 보기로 그렇게 갑자기 결정을 했느냐고 물어본다. 둘째가 두 번째로 폐렴으로 입원할 때쯤, 나는 여수행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 비행기에서 내린 후, 다음 날 광주에서 서울 오는 ktx를 탈 때까지, 내내 man, what are you doing here, 이 생각만 했다. 그 ktx 안에서 최종적으로 결심했다.

애나 보자...

그리고 그 아이가 올해 처음으로 미세먼지 가득 찬 4월에 폐렴 없이 넘어갔다. 오늘 이 아이 손을 잡고 5킬로미터 가량 같이 걸었다.

Man, what are you doing, here?

어쩌면 내 인생을 바꾼 한 마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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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는 앉아서 만화책 보고 있고, 둘째는 머리 묶고 레고 블록 하고 있다. 우리 집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소리 지르고 혼내고, 울고... 그런 순간들이 하루에 몇 분씩 있다. 그 시간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천국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 50미리 렌즈. 얘가 다루기는 힘들어도, 가끔씩 느낌 있는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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