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은 논리나 감정, 한 가지만 가지고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책은 논리만 가지고는 못 쓴다. 그리고 교과서나 참고서 아니면 그렇게 논리만 가지고는 읽기가 너무 힘들다. 논리를 세우고, 근거를 만드는 설계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을 만드는 일은, 이건 설명하기가 어렵다. 노력한다고 해도 안되고, 억지로 끌어내려고 해도 안된다. 억지로 만든 감정은, 잠시만 시간이 지나도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책을 쓰는 것은, 일시적으로 미친 놈이 되는 것과 같다. 많은 창작 작업과 마찬가지다. 그 감정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게 제일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만드는 작업을 동시에 두 개를 할 수는 없다. 논리적으로 맞추고 줄기를 세우는 것은 기계적인 작업이다. 이건 할 수 있다. 그러나 써나가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두 개의 감정이 섞이면, 이제 슬슬 사람이 미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쓰는 작업을 동시에 하지는 않는다.

(구상과 조사 같은 것은 몇 개를 병행해서 하더라도, 크게 겹치지는 않는다.)

감정을 만들지 않으면, 설명하거나 설득하려고 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서, 독자들이 설명하는 방식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서 근본적인 딜레마가 생겨난다.

설명하지 않고도 설명하는 법, 무슨 파르메니데스의 역설 같은 느낌이다. 10년 전에는, 이렇게까지 감정을 많이 동원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전체적인 어법과 이해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논리만 가지고 책을 세울 수가 없다.

감정,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주제 자체가 그렇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보려고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다보니, 엉뚱하게 다른 실력이 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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