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동안 이래저래 내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될 기회가 되었다.

결정을 내릴 때 난 주변 사람들 조언을 많이 구하는 편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한다. 특히나 중요한 결정일수록, 중론을 따른다. 고집은 거의 안 부리는 편인데, 가끔 하지 말자는 것에 대해서는 좀 고집을 부린다. 하자는 것에 대해서 고집을 부린 적은 별로 없다.

살면서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기는 하다. 경제학 전공인데 프랑스로 유학 간다고 할 때, 진짜로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 또 한 번은 내 이름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에너지관리공단 부장에서 그만둘 때. 두 번 다 나는 한 가지 답변을 했다. 내 인생 대신 살아줄 거 아니면 관심 끄시라고. 참, 싸가지 없이 말했다.

나머지 결정들은, 찬반이 분분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랬거나 저랬거나, 그 때는 중요한 것 같았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별 상관이 없었을 것 같다. 인생에서 하나하나의 선택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 같지만, 지나와서 돌아보면 별 상관도 없었을 것 같다. 그 순간 순간, 결정이 어려워서 술을 많이 마셨다. 돌아보면, 술 마시려고 억지로 핑계를 만든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결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 전제로 이것저것 생각을 하는 게, 그게 너무 도구적 사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을 중요한 결정을 중심으로 보는 것, 간단하고 편하기는 한데, 결정이 그게 뭐 그렇게 큰 것인가 싶기도 하다.

몇 년 전까지는 내가 프랑스에서 공부한 게 내 정체성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50이 되고 보니까, 그건 하나도 안 중요한 일이다. 내가 박사인 것이 중요할까? 지금 와서 보면,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하고 학위가 있는 것,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기분이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학위가 있느냐 없느냐, 이건 아무 상관도 없다. 학위도 그런데, 그게 프랑스일지, 독일일지, 영국일지, 아니면 미국일지, 이런 게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허상인 것 같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지, 나머지는 사실 다 허깨비일지도 모른다.

하나하나의 결정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매 순간 좋은 결정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면… 암 걸린다. 너무 긴장하지 않고, 적당히 생각하고, 되는대로 결정하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 나는 그렇게 잘 못살았다. 앞으로는 그냥 대충 살 거다. 그럼 인생 개판 될까? 그렇지 않다. 매일매일매일이 즐겁고. 오늘이 영원히 붙잡고 싶은 바로 그 순간인 삶이 왜 개판일까? 뭔가 엄청난 것을 하거나 자기 희생 속에 엄청난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는 삶이 개판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 얼굴은 엄청 진지한데 삼구삼진 당하는 타자들… 요렇게 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그래서 나는 마치 오늘만 있는 사람처럼 살 꺼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 행복하지 않은데, 내일 내가 행복할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엄청나게 중요한 결정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 요것도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인의 삶, 긴장도가 너무 높다. 그것을 낮추기 위해서 조금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편안해진다. 괜히 인상 쓰지 말고, 괜히 배 내밀지 말고. 그냥 담백하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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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출간 일정이 거의 확정된 것 같다. 예전에는 3년치씩 미리 확정을 지었는데, 그 때만 해도 내가 30대였고, 에너지도 넘쳤다. 뒤로 넘기거나 취소한 것들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거의 소화를 했다. 지금은 그렇게 못한다. 앞으로는 딱 1년치씩만 확정을 하려고 한다. 권수도 2~3권 정도로 좀 낮추고. 그리고 정말 쓰고 싶은 책만 쓰기로.

50이 넘어가니까, 이제 돈도 필요없고, 명예도 필요없고, 심지어는 실속도 필요없다. 하면서 재미 없을 건 안한다. 의무감으로, 이런 것도 필요없다. 나말고도 할 사람 많다. 가벼운 것도 안 할 생각이다. 굳이 그런 것까지 내가 해야할까, 동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가끔 돈 되는 책 하자고 연락하는 분들이 있다. 고마운 얘기기는 한데, 돈 되는 책도 별로 안 하고 싶다. 지금 와서 그런 걸 하면,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이 너무 불쌍해진다. 그리고 나는 씀씀이가 워낙 작아서,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한 삶도 아니다. 적당히, 그걸로도 충분하다.

태풍의 씨앗을 만드는 일, 그게 내가 정의한 책을 비롯해서 뭔가 만드는 일이다. 태풍을 쫓아다니는 일은 또 하고 싶은 사람들 많다. 조용한 곳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태풍의 씨앗을 만드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뭐가 태풍으로 자라날지 모른다. 진짜로 모르겠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 씨앗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크게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는 책 쓰면서 이게 팔릴까, 저게 팔릴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가끔은 그런 생각도 좀 한 게 사실인데, 이게 별로 재미없는 방식이다. 이게 의미있을까, 저게 의미있을까, 이게 태풍이 될까, 저게 태풍이 될까, 그렇게 상상하는 게 더 재밌는 방식이다.

하여 나는... 책을 준비하면서 돈과는 아무런 연관을 짓지 않고, 의미와 재미, 이런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진작에 이렇게 생각을 했더라면, 한 권 한 권 준비하면서 더 그 과정을 즐겼을 것 같다. 별로 그렇게 즐기지는 못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지난 10년을 참 바보처럼 살았다.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였을텐데, 팔릴지 안팔릴지, 매번 나도 가슴을 좀 졸이기는 했다.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을 하면서, 술만 처먹고, 결국 살만 쪘다. 이게 뭐냐, 애들한테 돼지 소리 듣게 생겼다.

이제부터라도 나도 과정을 좀 즐겨야겠다. 박민규가 말했다. 칠 수 있는 공만 치고, 잡을 수 있는 공만 잡고. 원래 인생이 그렇다. 열심히 하면 어려운 것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 착각이다. 괜히 힘만 들고, 살만 찐다. 그거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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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시절

책에 대한 단상 2018. 4. 13. 11:14

(나의 습작은 '생태요괴전'보다 더 기괴한 얘기들의 연속이다...)

 

나는 왜 글을 쓸까? 가끔 나에게 물어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을 처음 쓴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라디오 듣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라디오 DJ가 말하는 대본 같은 것을 써보기 시작한 게 맨 처음 쓴 글이다. 별 생각 없이 써본 건데, 쓰면서 재밌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백일장 같은 데에서 상을 막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평생 시간 나면 하는 일이 글 쓰는 일이었다.

 

내 경우는 글을 쓰고 공부를 한 건 아니고, 글을 쓰다가 공부를 하게 된 경우다. 그래서 무슨 할 얘기가 있어서 글을 쓴다, 이건 사실 뻥이고, 글 쓸 거리를 찾아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습작을 한다. 그것도 아주 길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책을 읽고 필사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 같다. 나는 거꾸로 했다. 책을 읽고, 그런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성질이 지랄 맞아서 그런 것 같다. 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어했던 것 같다. 진짜 지랄 맞은 성격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 이제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하여간 내가 이해한 한국 사회는, 겁나게 드럽고 아주 지랄이 끝까지 간 사회다. 나는 그 얘기를 잘 못했다. 얘기해봐야, 너만 그렇게 생각한다거나, 사회부적응자라고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 얘기가 더 많아졌다. 진짜로 많아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에게 죽어라고 글 쓰기를 시켰다. 그리고 자기들은 술 마시러 갔다. 나도 빨리 글을 끝내고 술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밤을 새서 글 쓰기를 마치고, 진짜로 술마셨다.

 

처음에는 기관장들만 따로 보는 글을 썼는데, 나중에는 장관만 보는 글을 쓰거나, 장관의 글을 대신 써주는 일을 했다. 좀 지나니까 대통령 보고서를 쓰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총리가 보는 보고서를 쓰는 게 일이 되었다. DJ를 먼발치 말고 직접 본 일은 없다. 어쨌든 그가 내가 쓴 글을 좋아하신다는 얘기는 건네 들었다. 대통령 보고서는 워낙 여러 사람이 관여하니까 사실 누구 글이라고 할 것도 없다. 나는 동료들하고 초안을 잡았을 뿐이고, 그 중의 일부만 내가 썼다. 한 번은 청와대에서 별 의미도 없는 보고서 하나를 나보러 가지고 오라고 했다. 지가 청와대만 청와대지, 뭘 오라가라해, 툴툴거렸지만 상사들은 군말 말고 가라고 그랬다. 용인에서 청와대까지, 그 날이 안 잊혀지는 게, 주차장이 너무 좁아서 돌아 나오다가 차 긁었다. 그 후로는 청와대 갈 때에는 다시는 차 안 가지고 간다. 겁나 툴툴 거리면ㅅ너 갔는데, 보고서랑 자료 주니까, 담당 과장이 내 얼굴 뻔히 한 번 보더니 두고 가라는 거다. 이런 된장, 지가 청와대면 청와대지, 용인에서 광화문까지 심부름을 시켜, 그냥 메일로 보내준다는데아주 나중에 건네들었다. 담당자가 글 쓴 사람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했다고. 어쨌든 그 시절의 그 사건이 큰 사건이기는 했다. 그 후로 대통령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탄성치 개념을 알고 싶어하고 그걸 이해한 유일한 사람은 DJ였을 것 같다.

 

그럼 그 시절에 내가 글을 잘 썼느냐? 나중에 그 시절처럼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 몇 년을 고생을 했다. 이런 된장, 뭘 좀 써 보려니까 영 보고서체 아니면 찍땡체다. 뭐야 이거? ‘오염된 글이라는 표현을 쓰면, 그 시절에 내 글이 오염되어 있었다. 뭔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그야말로 뭔소리인지만 알겠지, 아무 감흥이 없는 글들을 쓰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스케치를 하는데, 내 글은 스케치로 끝이 난다. 공식 보고서 치고는 그래도 여운이 있는 글이기는 한데, 진짜 바짝 메말라 습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글을 쓰고 있었다.

 

2003년 여름부터 새로 습작을 시작했다. 워낙 무식하게 살아온 인생이라서, 습작도 단순 무식했다. 하루에 A4 10. 딱 그 기준에 맞추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필명이 비나리였다. 주제를 바꾸어가면서 A4 3~4장 정도 되는 글을 매일 발표했고, 그것 말고도 발표 안 하는 글을 1~2개 정도 썼다. 그 습작 기간이 그 후 10년 정도 되는 책들의 원형들이 만들어지는 시기였다. 그 글들을 그냥 자기들이 실을 수 있게 해달라고 브레이크 뉴스와 대자보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 사람들은, 나보다 더 가난했다. 오후 3시에 만났는데, 아무래도 소주라도 한 잔 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골을 시켰던 것 같고, 나는 소주 한 병 정도 마셨던 것 같다. 같이 온 사람 중에 유달리 기뻐하며 소주 두 병을 마신 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변희재였다. , 사람 인생 모른다. 그가 태극기 앞에 저렇게 서있을 줄, 나는 진짜 몰랐다.

 

그 습작기가 1년 정도 간 것 같다. 물론 그 뒤에도 습작 연습은 계속 했고, 아직도 하는 중이다. 2004년 여름에는 책 계약을 하고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에 두 권의 책을 냈다. 블로그는 책을 내고 나서 열었다. 지금도 나는 습작을 계속 한다. 아직도 나는 어딘가 있는 것, 어쩐지 본 것 같은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뭐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같은 것을 계속해서는 내가 견딜 수가 없다.

 

그 시절의 몸부림이 극한까지 간 책이 <생태요괴전>이다. 생태경제학을 요괴와 흡혈귀 은유를 가지고 쓴 책은 없다. 내가 아는 것을 다 녹여낸다는 마음으로 썼다. 좀 팔렸다. 그렇지만 이 책이 그 후 10년의 내 삶을 결정하는 책이 될 줄은, 그 때는 몰랐다. 이 책을 본 사람들이, 쟤는 영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그 후에 시나리오를 정말로 직업으로 쓰거나 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그와는 별도로 영화제에도 초청받아서 가게 되었다. 나중에 내 삶을 돌아보면, 결국 내가 먹고 사는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준 책으로 이 책이 기억날 것 같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88만원 세대>로 받은 인세는 청년단체나 시민단체에 기부할 생각이다. 그 생각은 진작에 했는데, 아이들이 연거푸 태어나면서 아직도 실행을그래도 꼭 할 거다. 그것도 내 양심이다.

 

지금 돌아보면, 내 삶의 대부분은 혼자 앉아서 몸부림을 치면서 만들었던 습작들에 있다. 내 습작들은 기괴한 상상, 끔찍한 환상 혹은 전혀 구조화되지 않은 단편, 그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도 나는 몸부림을 친다. 같은 것을 또 하거나, 익숙한 것을 다시 하지 않는 것, 그게 내 습작의 원칙이다.

 

내년에 낼 책 중에 농업경제학이 있다. 생태요괴전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을 했는데, 아직도 손도 못 대고 있는. 이제 겨우 한 것은, 일정을 잡은 것이다.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이건 편지글로 해야겠다는 정도다. 아빠와 아들의 대화는 이미 쟝 지글러가 <세상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에서 했다. 편지글 습작은 꽤 전에 한 적이 있다. 이 때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딸을 설정하고 아빠가 편지보내는 것이었는데, 된장딸은 결국 태어나지 않았다.

 

아직 정확히 아이의 나이를 정하지는 않았는데, 대학교 1학년 정도로 할까 싶다. 내가 사랑하는 둘째가 대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아빠가 농업에 대해서 해주는 편지들, 그런 정도로. 진짜 나도, 몸부림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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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기자한테 전화와서 통화하다가, 애 키우는 얘기가 나왔다. 큰 애 보는 아빠 중에서는 최고령일 거라고. 나는 오랫동안 최연소에 익숙해 있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 최고령 기록들을 세우기 시작한다. 나이가 뭔 의미가 있겠냐, 그냥 할 일 없으니까 잠시 웃자고 하는 얘기들이지. 내가 하는 일들을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40대에는 그러지를 못했다. 좀 더 나은 게 있는데 사정상 이렇게 밀려 있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이거라도 할 수 있는 게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자들의 어깨 싸움, 거기에서 한 발, 아니 여러 발 비껴 서 있다. 이제는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멍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지니까. 또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그냥 하루하루, 삶을 보낼 뿐이다. 거기에 좋은 것, 나쁜 것, 그런 건 없다. 산다는 건, 거기서 거기다. 거기에 의미를 찾고, 즐길 것인가, 아닌가, 그런 차이만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아내 출근하고,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멍하고 잠시 있는다. 그래도 밀린 일들이 있다. 다시 컴을 켜고, 뭔가를 한다. 이렇게 살면 억울하지 않느냐고, 가끔 전화해서 염장질 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 나이에 귀향 갔던 사람들보다는 낫지 않느냐, 웃으면서 말한다. 남자들은 너무 높은 곳을 보고 살도록 훈련 받는다. 자기도 불행하고, 주변도 불행하다.

우리는 생활을 음미하는 훈련을 너무 못받았다. 내가 만난 유럽 사람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은 다른 지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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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이 처음 금감원장 인사에 올랐을 때 사람들이 내게 물었었다. 그 때 이렇게 말했다.

 

권혁세 보다는 낫지 않겠냐.”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권혁세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언론형이기는 했지만, 그는 부패하지는 않았다. 그가 어느 날 재경부 수첩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많은 재경부 공무원들이 강남에 사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서울 외곽에 살았다. 그는 드물게, 부패하지는 않은 공무원이다. 그렇지만 그는 금융은 잘 모른다. 세무 전문이었다. 강직한 세무 공무원인 것은 맞지만, 금융은 자기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가 MB 말기 금감원장이 되었다. 기가 찼다. 그리고 은행장들 점심 때 불러서 돌아가면서 밥 먹으면서 배드뱅크만들어야 한다고 그러고 다녔다. 진짜 권혁세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지가 배드뱅크를 뭔 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 <모피아>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는 원형이 있는 경우도 없고, 없는 경우도 없다. 모피아 중의 한 명의 원형이 권혁세다. 그만큼 내가 잘 알고, 오래 본 사람도 없어서. 더 나쁜 놈도 좀 더 아는데, 가까이 근무한 적이 없거나 경험한 적이 없어서 속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금감원장은 나쁜 놈과 모르는 놈, 이 두 스타일이 돌아가면서 했다. 너무 속내를 잘 알고 나쁜 짓 하는 넘 아니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멍하니 있는 넘, 이 두 스타일이 청와대가 모피아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김기식이 금융에 정통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최소한 권혁세보다는 낫지 않겠냐? 이게 내 생각이다.

 

인간 김기식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단상이 흐른다. 나는 97년부터 보았다. IMF 경제 위기 전에 참여사회연구소에 연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진짜 엣날 일이다. 수없이 많은 일들을 그와 함께 하거나 겪었다.

 

그러나 나는 김기식에 대한 모든 평을 몇 년 전에 접었다. 그 후에도 내게 김기식에 대한 불평이나 흉을 본 사람들은 많다. 그 때마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다.

 

자식 죽은 아비가, 뭔 영광을 볼 게 있겠냐!

 

나는 김기식이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강했다. 지금 얘기 나오는 그 미국 연수 길에 같이 나섰던 중학생 자식이 서울에 돌아온 다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내가 그 경우였다면, 나는 정말로 다 네려 놓고 아무 일도 안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사회적 일이 있는지라, 김기식은 뭔가를 더 했다. 자식과 좀 대화를 더 했었어야 했는데, 이상증후를 보고도 그렇게 못했다마지막으로 그와 나눈 사적인 대화가 그거였다. 나는 지금도 김기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김기식도 나름 욕심이 있고, 자리를 잘 챙긴다는 얘기들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누구처럼 자리 욕심이 있거나 영광을 보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자살한 후에, 그는 하던 일을 접고 떠나려고 했다. 이번 일만 처리하고, 이번 일만그러다 지금까지 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금감원장으로, 김기식이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권혁세 보다는 잘 할 것이다. 그가 금융 관련된 일만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권혁세 반대편에 서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찾아내는 일을 좀 했다. 설마, 권혁세처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에게 혹시 김기식을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김기식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도 절대로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김기식을 믿느냐고 하면, 아이 잃은 아비의 심정을 믿는다고 할 것이다.

 

단체활동가들의 삶이 생각보다 바쁘다, 그래서 그 속에서 개인 소사에 대한 크고 작은 아픔들이 생겨난다. 김기식도 그런 삶의 피해자 중의 한 명이다. 그가 아직도 엄청난 개인적 야망이 남아있거나, 한풀이 하기 위해서 뭔가 칼을 휘두르려고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기식이 일하는 방식이 좀 치사빤쓰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참여연대가, 단체 스타일이 약간 그렇다. 박원순도 옆에서 같이 일하면, 약간 좀 치사빤쓰 스타일이기는 하다. 어떨 때는 치사빤쓰 동빤쓰, 활동가들이 술 마시면서 그렇게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스타일이다.

 

김기식이 금감원장이 되면, 아마 역대 금감원장 중에서는 가장 잘 하지 않을까 한다. 몇 년 전에, 안철수와 지금 청와대 정책실장인 장하성 선생이 한 편 먹고, 내가 반대편에 서서 금감원 개혁안에 대해서 아주 거대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때 금감원 노조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 것 같다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자기네 자료를 주고 간 적이 있었다. 금감원에는 윗대가리들만 있는 게 아니라 노조도 있고, 나름 개혁하고 싶어하는 직원들도 있다.

 

그런 내부의 개혁 세력을 잘 통제하거나 구슬리고 억압하는 게 지금까지 금감원장이 해온 일이다. 그러니 부패하고, 서로 이익을 주고, 심지어 채용특혜까지.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게 지금부터 금감원장이 할 일이다. 김기식이 그 정도는 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더 나은 사람? 있으면 내가 추천한다. 한국에 금감원장으로 김기식만한 사람도 없다. 다른 대안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에 김기식 인사평을 물었을 때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권혁세보다는 낫지 않겠냐

 

한국당이 인사할 때, 최고의 인사가 권혁세였다. 그만한 사람도 사실 없었다. 나머지는, 인사라기 보다는 쓰레기에 가까워서 입에 올리는 것도 지저분해지고. 그런 권혁세보다는 김기식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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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넘게 반정부 인사로 살았다. 토건 문제로 글을 좀 쓸까 싶은데, 참내. 신문사에서 지면은 확보를 해줬는데, 다시 또 반정부 인사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깝깝하다. 예전에는 집요하게 거의 모든 길을 막아놓았었는데, 이번 정부도 그렇게 할까? 그냥 못 본 척하고 눈 딱 감고 살아도 되는데...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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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재로나 읽히는 농업경제학을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 책으로 바꿀 것인가, 10년도 더 된 나의 해묵은 과제다. 아직도 해법을 못찾고 있다...)

1.

많은 문화 창작은 누가 이것을 볼 것인가, 관객과 관련되어 있다. 당연한 얘기다. 몇 년 전 연극계에서는 아침 10시에 하는 연극 공연을 선보였다. 아침에 출근과 등교 준비를 끝낸 아줌마들을 좀 더 연극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였다. 신선했다. 이런 것을 전문 용어로 관객 개발이라고 불렀다. 연극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연극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객 개발과 같은 문제는 한국의 문화 영역 전반에서 벌어지는 고민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연극이 더 치열했을 뿐이다.

 

책에서도 이 문제가 생겨난다. 사람들이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으면서 독서 캠페인 같은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무의미한 얘기는 아니다. 개별적으로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접근하면 타킷 독자에 대한 마케팅 강화 같은 형식이 된다. 누가 읽을 것인가, 그걸 좁혀서 더 그 독자에 맞추자는 방식이다.

 

이러한 마케팅 접근이 나쁜 것은 아닌데, 나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늘상 이 문제로 출판사와 갈등한다. 연령별, 성별로 읽을 사람을 정하고 거기에 맞추는 시도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러면 저자 자신이 얄팍해진다. 나는 여전히 최소한 한 나라 안에서는 보편적이고,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꾸 얄팍해지면, 나중에는 쓸 내용 자체가 말라버린다. 그런 점에서는 나는 여전히 고전적이다. 그렇지만 누가 읽을 것인가, 이런 걸 고민하지는 않을 수 없다.

 

2.

<88만원 세대>를 처음 준비할 때, 몇 개 출판사와 얘기가 있었었다. 그 때는 결론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 출판 쪽 사람들은 이 책이 대학생에 대한 권면과 같은, 이러면 안된다, 그런 기성세대의 관점으로 마무리가 되기를 바랬다. 무슨 엄청난 철학적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대학생은 책을 안 본다는 게 거의 정설이었다. 어차피 책을 살 사람들은 기성세대니까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책을 마무리해야 나머지 내용이라도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거다. 대학생들이 책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큰 전제 하에서 생겨난 일이다. 나는 내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독자들이나 국민들을 힐난하거나 욕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서 지난한 분석 작업을 하거나 원고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중에 문제적 요소가 된 바리케이드와 짱돌에 관한 장 하나를 더 추가했다. 원래의 원고는 정책 대안들을 얘기하고 끝나는 형태였다. 출판사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차라리 내가 원고를 다 버리면 버리지 그렇게는 절대로 안하겠다고 오히려 더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 쪽을 추가했다. 그거 보면, 나도 어지간히 똘아이다. 누가 뭐라고 하면 방향을 돌리는 게 아니라, 그 방향으로 더 나가버리는 반항적 성격! 내가 생각해도 나도 참 지랄맞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게, 소위 딜리버리 문제라고 하는, 책이 필요한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이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복지 분야에서 딜리버리 문제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것에 대한 논쟁의 핵심이다. 선별적 복지를 할 때 어떻게 꼭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 배달할 것인가, 이 설계가 쉽지 않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받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행정적 절차나 규정 미비 등 여러가지로 배달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일반적으로 한국 출판계에서 주요하게 책 안 읽는 3대 집단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생

2. 농민

3. 민주당 당원

 

대학생은 원래는 사회과학의 주력 독자였는데, IMF 경제 위기 이후로 책 안 읽는 집단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 경향성은 점점 더 강화된다. 최근에는 거의 대학생 독서 절벽이라고 할 정도로 안 읽는다. 여기에서부터 청년들의 문제는 물론이고, 전문적 서적의 고사 같은 일들이 시작된다. “대학교 교제 같다”, 이 얘기는 자발적으로는 아무도 안 읽을 것 같다는 표현이다.

 

농민은, 사실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이게 딜레마다. 농민들이 책을 안 읽으니까 농업에 관한 책은 정말로 큰 맘 먹고 쓰거나, 음식 책처럼 달달하게 가는 수밖에 없다. 농업의 위기 원인 중의 하나가 농민들이 책을 안 읽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농민들에게 책 좀 읽으세요,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당 당원은 왜 책을 안 읽을까? 계량적으로 수치를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예전의 민주노동당 당원 지금의 정의당 당원들이 민주당 당원 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다는 판단들은 일부 있다. 물론 민주당 당원들도 가끔 응원과 지지의 성격으로 특정 책을 많이 사주기는 하는데, 다양한 층위의 독서와는 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당 당원, 이 집단은 책을 가장 많이 읽고, 가장 많이 사는 집단으로 분류된다. 이건 독자 성별 조사 같은 것으로는 잘 안 잡힌다. 최근에는 좀 변했겠지만 한국의 주요 사무실의 부장이나 이사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박근혜 지지하는 보수층인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자기 돈으로 사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많이, 자기 사무실이나 자료실을 통해서 책을 산다. 월간조선류 시장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누가 샀는지 정확하게는 집계 못해도 사기는 샀고, 읽기는 읽는. 몇 년 전 출판 분석 많이 하던 사람이 나에게 해준 말이, 내 책도 아마도 보수 쪽에서 더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사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 이건 팬과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구매 패턴이다. 저놈의 자식이 뭐라고 하는지 좀 보자

 

출판사에서 이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당원은 심정적으로는 가까운데 책은 안 보고, 보수는 심정적으로 너무 먼데 그래도 거기는 책을 좀 사보고.

 

프랑스는 사회당 당원들이 정말 책을 많이 본다. 그래서 그 쪽 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그런 것들이 세계적 빅 히트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그런 정치적 성향과 독서가 좀 반대 방향으로 가서, 좀 더 진지하게 주제를 다루고 싶은 민주당 계열 학자들이 결국 펜을 꺾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가설만 있지, 아무도 진짜 이유는 모른다. 어쨌든 민주당 당원들은 팬덤 패턴 분석이 조금 더 정확하지 독자 패턴 분석으로 뭔가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3.

배달 문제는 크게 집단으로 분류해볼 수도 있지만,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할 수도 있다. , 누군가 불법 다단계에 심하게 빠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본격적인 진단을 한다고 해보자.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을까? 근본적인 딜레마가 발생한다. 다단계 중독인 사람이 과연 책을 읽을 정신이 있을까? 그리고 그런 중독 상황에서 책 좀 본다고 자신의 생각이나 행위가 바뀔까? 여기까지 배달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경제 다루는 사람들도 다단계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공익적 가치는 충분히 있는데, 배달이 거의 불가능하다. 알고는 있지만 다루기는 쉽지 않다.

 

배달의 문제는 출판사는 물론이고 저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다. 물론 부정적 영향이다. 주로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방향보다는, 뭘 하지 말아야겠다, 뭘 못하겠다, 이런 형태로 나타난다. 책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특징이 결국 배달, 딜리버리의 문제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교적 초기에 쓰기로 마음을 먹고도 아직도 미적미적거리고 있는 주제가 농업경제학이다. 이것도 근본적으로는 배달 문제를 넘어서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농업경제학 2019’라는 제목으로, 무조건 내년에는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배달과 판매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맞는데, 그러면 사람이 얄팍해진다. 다루기 어렵고 팔기 어려운 주제들, 꺼내기 쉽지 않은 문제들을 다루는 편이 그래도 좀 더 오래 가기에는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면, 결국에는 실력이 는다.

 

(배달의 문제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유료 독자의 문제라는 것도 있다. 이건 다음 번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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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슬슬 공약도 나오기 시작한다. 지역별로, 청년 완전고용 공약 정도는 이제는 나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서비스, 복지, 소규모 창업 등 연결시키면 일부 지역은 불가능하지도 않다. 미국, 일본 등 몇 군데 경제는 사실상 완전 고용이다. 이제는 지자체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공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쟁을 좀 하면 좋겠다. 공약이, 다 거기서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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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블로그는 사연이 많다. 몇 년 동안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서 지금은 쪼그라져 있지만, 참 많은 일들이 블로그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많은 돈을 가져다 주었다. 나도 이 블로그로 인해서 이렇게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될 줄 진짜로 몰랐다. 많은 일과 인연이 블로그로부터 출발을 하게 된. 그리고 진짜로 돈도. (아내는 그렇게 돈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마지막 순간까지 믿지 않았다. 지금은 전부 다 아내 통장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블로그는 여전히 유지하는 중이다. 한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정을 붙이고, 소중하게 다루려고 한다.

요즘 생각이, 사람들은 태풍만 보려고 하지만, 태풍이 만들어지는 순간, 태풍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어느 태풍의 씨앗이 진짜 태풍이 되었는지, 사후적으로도 알기 어렵다.

비교를 하자면, 페북은 바람과 같다. 센 바람이 있기도 하고, 약한 바람이 있기도 하고. 블로그는 샘물 같은 것이다. 그 안에 미약하지만, 뭔가 고인다. 그리고 그런 샘물에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오면서, 그렇게 숲 생태계가 돌아간다. 누군가 물을 마시러 올 수 있게 새로운 물을 준비하는 것, 그게 블로그 운영과 비슷한 것 같다. 바람은, 누적되지는 않는다. 물은, 누적되고 쌓인다.

나는 점점 더 메이커의 세계로 가려고 한다. 그래서 더 전위적이고, 더 선명한 각을 만들려고 한다. 블로그는, 그럴 때 도움이 된다. 조금씩이지만 쌓고 누적적이고.

이럴 때 보면 내가 굉장히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다. 2명, 3명, 10명, 그런 작은 논의그룹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천 명, 만 명, 10만 명,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다. 판매하고 유통하는 데에는 이런 수치들이 중요할 수 있지만, 만드는 순간에는 혼자가 아닌 상황이면 충분하다. 머릿수로 물건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애 키우는 와중에,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블로그 운영이다. 이런 자부심은 있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방송에도 없고, 신문에도 없고, 책에도 없는 내용들을 쓰는 경우가 많다. 태풍의 씨앗을 뿌린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 태풍의 씨앗을 뿌려서 거대한 태풍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게, 이 나라가 잘 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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