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물질

책에 대한 단상 2018. 4. 10. 11:04

 

(내가 얘기하는 이물질과 사진의 이물질은 아무 상관은 없다...)

 

이물질

 

요즘 나는 부쩍 이물질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단어이기는 한데, 정서적으로 아름답지는 못한 표현이다. 처음에 책을 쓸 때에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다가 고치는 과정에서 많이 쓰게 되는 표현이다. 특정한 개념을 설명하거나 감정을 만들기 위해서 본 라인에서 약간 빠져나와서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래는 이렇게 우회해서 많이 돌아갈수록 후반부에 더 풍부한 사례와 함께 감정을 만들기가 좋다. 그게 책과 논문이 다른 점이다. 논문은 가능하면 직선으로 가지만, 책은 그렇게 가면 너무 매말라서 읽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 결론이라는 게, 사실은 읽는 사람 마음 속에서 무슨 효과가 나야 의미가 있는 거라서, 이것 저것 다 자르고 결론만, 그러면 정말 장작개비처럼 매마른 애기가 된다.

 

초고를 쓰고 나면, 이제 다시 얘기가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얘기를 풍부하게 할 것 같아서 집어넣었는데, 감정만 소모하고 본 가지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걸 이물질이라고 부른다. 이런 게 이물질인지 핵심요소인지 사실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무의미한 것을 처음부터 그 자리에 배치하고 쓰는 사람은 없다. 돌았냐? 쓸 데 없는 얘기를 쓰게. 책이 대충 300페이지라고 보면, 생각보다 짧다. 죽 달려가도 꼭 필요한 얘기들을 결국에는 분량 조절하기 위해서 빼야 하는데, 꼭 필요하지 않은 얘기를 누가 쓰겠나? 그래도 애초에 생각했던 것 같은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서브라인들이 생겨난다. 이 순간이 고통스럽다. 너는 이물질이야 하고 날려버릴지, 아니면 좀 더 손을 봐서 본문의 내용과 좀 더 호응을 하게 다듬을지,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판단이 어렵다. 어쨌든 이물질이라고 판단되면, 어느 저자가 상관없이 가차 없이 날린다. 이물질 같은 데에도 느낌이 있어서 남겨둔 것들이 있다. 나중에 독자들이 그 부분이 좋았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물질을 처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냥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가면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좀 다른 방식으로 읽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남겨진 이물질이 보너스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

 

요즘 방식으로 책을 편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학계에서 최고의 책으로 치는 다윈의 <비글호 여행기>가 있다. 여행기랑 상관 없는 개인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요즘 책 편집 같이 하면 비글호 여행기는 온갖 이물질 투성이이고, 이것도 자르자, 저것도 자르자. 그 두꺼운 책이 남는 게 없을 것이다. 과학계에 남을 명저 중의 명저다. 마찬가지 관점으로,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저선을 보면 온통 이물질 투성이다. 어디 그런 책만 그러겠느냐? 심지어 <자본론>도 논리의 전개에 방해가 되는 이물질 덩어리이다. 게다가 결론도 불투명하다. 아마 요즘 책 편집하는 방식으로 하면 <자본론>에는 필요 없는 서문들, 길게 늘어진 수다들, 별 효과적이지 않는 인용들, 다 날라가고 100페이지 미만이 될 것이다. 그랬다면 <자본론>을 읽고 혁명을 꿈꿨던 청춘이 지금과 같이 많았을까? 좋은 책, 고전이 된 책, 어떻게 보면 이물질 덩어리다. 그런 이물질이 거의 없는 것은, 최근에 읽은 시나리오인 사무엘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진짜 중요한 대목인데도 아주 짧게 처리하고 넘어간다. 정보가 너무 중요한 것인데, 설레발 없다. 진짜 기능적으로 딱 필요한 얘기들만 들어가게 설계되어 있다. 영어와 불어, 모국어와 외국어를 바꿔가며 글을 쓰는 사무엘 바케트가 이 대목에서 특별히 한 얘기가 있다. 외국어로 글을 쓰면 복잡한 수식 같은 것을 줄여서 간결해지는 장점이 있다고 (그래, 잘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익스피어도 참 이물질 없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기능적으로 필요한 요소들만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세익스피어가 사람이 아니라고 하나보다.

 

글과 책은 다르다. 원고지 10매짜리 글에는 이물질이 들어갈 요소가 없다. 밥 먹고 잠깐 커피 한 잔 마시러 나갔다 오는 산책과 같다. 그러나 책은 다르다. 34일 혹은 일주일 이상 걸릴 긴 여행이다. 목표만 보고 달리면, 중간에 왜 달리는지 이유를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책을 던져 버린다. 중간에 잡념도 하고, 일상 생활을 하고, 그러다 다시 책을 집는다. 쉬어갈 공간도 필요하고, 책과는 상관 없지만 자신의 소양에 도움이 되는 얘기들이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 에코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에코 아내 얘기다. 위스키라고 사과 주스나 포도 주스를 주고, 일절 술을 못마시게 하는 아내에 대한 불평. 그리고 책을 쓰는 데 방해를 하는, 어수선하고 번잡스러운 자식의 친구들. 그래서 우리는 에코는 따로 작업실이나 집무실을 두지 않고 그냥 집에서 글을 쓴다는 것을 알았다. 이게 무슨 중요한 지식이야?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에코를 이해하고, 에코의 글들이 좀 달라 보이는 효과를 갖게 한다.

 

그래서 책은 어떻게 보면 이물질과의 전쟁일 수도 있다. 다 걷어내면 못 읽는다. 그대로 두면, 그래도 번잡스러워서 못 읽는다.

 

(원래 이렇게 마무리할 생각은 아니었고, 일상 생활에서의 이물질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점심 약속이 생겨서 이만 나가봐야 한다. 나 자신의 이물질처럼 느껴지는 일상의 쓸쓸함을 쓰려고 했는데, 본문 자체가 이물질이 되어버렸다.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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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까지 사진을 찍다가 둘째 태어나고 얼마 후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아이는 죽을지 살지, 숨도 제대로 못쉬는데, 뭔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권 후반기로 가면서, 매일 누군가 만나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전부라서, 카메라를 들고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내 삶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시간들이었다.

5년만인지 6년만인지, 올 봄에 카메라를 다시 집어들었다. 달리, 별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사진 찍으러 어디 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냥 왔다갔다 하는 공간에서. 가끔 놀러가는데.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

요즘 사진 찍는 컨셉은, '심도는 얕게, 애정은 깊게'. 말이 좋아서 심도는 얕게지, 이게 돈 때려 박는 일이다. 대학 시절 미학 공부할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미학 교과서라는 게 리얼리즘 얘기가 기본이었다. 나중에 보니까 그랬다. 그래서 심도 깊은 것들, 이런 데 대해서 나도 뼈 속까지 스며든 집착 같은 게 있다.

이제 좀 심도 얕은 것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물론 이게 돈 많이 드는 일이다. 밝은 렌즈가 필요하고, 대구경 렌즈가 필요하고... 심도 얕은데, 어떻게 하면 재수 없지 않을까, 그런 게 요즘 한참 생각하는 고민이다. 좋은 사진은, 원래는 심도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좋은 얘기도, 심도와는 상관 없다.

심도는, 밀도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심도를 얕게 하기 위해서는 밀도를 높여야 한다. 빛도 많이 필요하고, 더 합축하고... 심도가 원래 그런 개념이다. 그래서 돈 많이 든다.

사진에 애정이 있을까? 보기에 따라서는 있다고 할 수 있고, 기계적으로만 보면 애정 같은 것은 없다. 빛이 많거나 적거나 그런 것이지. 그렇지만 묘한 애정 같은 게 사진에는 담겨 나온다. 그리고 반대로 차가움 같은 것도 있다. 사진 기자들이 루틴하게 찍는 사진들은 묘하게 차갑다. 그리고 때때로 짜증이 가득 묻어있다. 이해는 간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르뽀 사진에는 슬픔이 묻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이해는 간다.

하여간 나도 답은 없는데, 그런 '심도는 얕게, 애정은 깊게', 요런 컨셉 같은 것을 머리에 담고, 구현을 해보려고 한다. 무작정 떠나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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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완전고용 선언을 하기 직전이다. 일본은 정치적으로 여러 분란이 있지만, 경제 자체는 실질적 완전 고용이다. 우리는 완전 고용을 얘기만 해도 정치학이나 사회학하는 사람들이, 그게 말이 되느냐고 생난리를 친다. 나는 안될 것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도 각기 경로도 다르고 이유도 다르지만,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를 몇 년째 유지한다. 그 상태에서 실질 임금도 올라간다. 우리는 왜 이런 상상 자체를 못할까? 경제에는 적당히 실업이 좀 있어야 한다는 신화가 우리에게는 너무 강하다. 그리고 좀 노는 사람 있어도, 전체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 아무 문제 없다는 약간의 적당주의도 있다. 그리고 고용 보다는 일단은 케이블카도 만들고, 도로도 좀 만들자는 지역의 강력한 토건주의도 여전히 잔존하고. 상상 자체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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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아이들 어린이집 가는 게 두 번이 된지 이제 두 달 조금 넘는다. 낮에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게 좀 있지만 아직은 무리다.

 

큰 애는 어린이집 적응을 잘 못한다. 아침에 울고, 저녁 때 운다. 조금만 늦게 가면 울고 있다. 정말 서럽게 울고 있다. 방법이 없다. 일찍 가고, 더 많이 놀아주는 수밖에.

 

겨울에는 추워서 꼼짝을 못했는데, 이제는 좀 날이 좋아져서 여기저기 움직여볼 대안이 좀 생겼다. 애들 데리고 움직이려면 렌즈 한 가방, 이렇게는 안되고,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만 들고 나와서 그냥 그날의 운에 맡기는. 이렇게 나도 놀이 중이다. 오늘은 좀 큰 놀이터로 왔다.

 

꽃이 좋은 계절이다. 개나리에서 벗꽃까지, 일제히 다 피는 진귀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오늘은 30미리 접사렌즈 들고 나섰다. 싼 렌즈인데, 그래도 나는 재밌어 하는 렌즈다. 원래는 접사용이지만, 스냅샷 찍을 때에도 많이 쓴다.  

 

 

 

 

노을 지는 시간에 진달래. 진달래는 꽃이 작아서 사진은 잘 안 찍게 된다. 진짜 간만에 진달래...

 

 

30미리 접사렌즈는 단렌즈 치고 하나도 밝지가 않은 렌즈다. 값도 싸고. 이래저래 잘 안 쓰기는 하지만, 빛만 좋으면 얘도 화사하게 사진을 뽑아주기는 한다.

 

아팠던 둘째 아이다. 언제나 가슴 속에 담아놓고 산다. 더 예쁘고, 더 밝게 찍어주고 싶다.

 

 

 

 

30미리 장점은, 눈에 보이는 시선과 비슷하기 때문에 보는 대로 나온다는 점. 그래서 스냅 찍을 때 많이 사용하는. 아쉬운 점은, 장점의 반대. 좀 멀거나, 좀 가깝거나, 애매해진다.

애들 뛰는 거 30미리로 찍을려면, 진짜 큰 마음 먹고 딱 준비하고 있다가 한 방에 들어가야. 찬스는 딱 한 번. 진짜 찍으면서 하늘의 운에 맡기는...

 

 

 

이것도 역시 30미리. 벗꽃은 벗꽃인데, 큰 벗꽃 나무 한 구석에서 작게 꽃이 피어 올랐다. 접사용 렌즈이기는 한데, 다루기가 쉽지 않은. 10장 정도 실패하고, 결국 조리개 수치를 9까지 올렸다. 아예 15 정도 한 번에 갈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서. 고양이 찍을 때 이렇게 조리개 높이면 터락 같은 게 다 뭉개진다. 그래도 정물은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 해 좋고, 숨만 잘 참으면... 이 정도 수치면 슬슬 팬 포커스 시작될텐데, 접사 렌즈라서 여전히 심도는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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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

잠시 생각을 2018. 4. 9. 14:29

 

 

 

30미리 매크로 렌즈. 이 렌즈가 별로 특징 없고, 다루기도 힘들다. 그렇게 밝은 렌즈도 아니고, 화각도 애매하다. 그냥 가지고 다니다가 스냅샷으로 쓰기도 하는데, 애매한 만큼 독특한 느낌의 사진을 종종 만들어준다. 접사로 하면 삥 맞추기 어렵고, 노출 조절도 어렵다. 최대노출로 하면, 진짜 촛점 범위 극히 일부 말고는 다 날아간다. 그런데 내가 가진 바디가 그렇게 삥을 잘 잡아주지는 못하고. 매뉴얼로 맞추다 보면, 낯술 마신 것처럼 머리만 빙빙 돈다. 눈 아파서, 노안 온 눈으로는 그렇게 못한다. 어지간해서는 렌즈를 잘 안 조이는 편인데, 이넘은 최대로 조이게 된다. 그래도 접사라, 심도가 너무 낮다. 이래저래, 다루기 힘들다. 앵두꽃, 쉽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다. 가끔 있어도, 다들 벗꽃인 줄 안다. 사실 거기서 거기인 나무지만, 그래도 엄연히 앵두꽃이다...

 

그래도 내가 올해는 좀 살만하가 보다. 몇 년만에 카메라를 집어들고, 세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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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10, 주인 없는 나라 같다

 

 

보수 정권 10년을 거쳤다. 정확히는 9. 삼성증권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과연 이게 실수였는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문제의 이상신호일 뿐인지, 여러 가지를 돌아보게 한다. 없는 증권을 실제로 팔았다는 것, 이게 과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보수 정권 내내 인사가 문제였다. MB는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고 표를 받아갔다. 집권 내내, 경제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인사들이 지독할 정도의 정치주의만 있었던 것 같았다. 박근혜 때는? 괜찮은 인사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능력도 있고, 평도 괜찮은 사람이 가끔 있었다. 그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이상했다. 그 중의 일부는 순실이 인사라고 들었는데, 실제 언론에서 기자들이 취재하는 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다. 돈을 받고 한 건지, 친구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를 앉힌 건지, 아마 언론의 시각 뒤에서 벌어진 일들은 영원히 역사로 묻힐 것 같다. 별 대단한 기관의 엄청난 인사도 아니니까, 역사 책에도 한 줄 기록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하여간 알려졌으면 대형 참사가 될만한 일들이 그냥 묻히는 것을 보았다.

 

그거야 그렇다 치자. 일상적이거나 근본에 해당하는 일들이 그 동안 어떻게 되었을까? 대표적인 사건이 미세먼지 대응이다. 내가 늘상 미세먼지만 보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피엠텐이라는 단어를 들고 와서 저자로 데뷔했다. 초기에 보수 쪽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취했던 입장은, 중국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계절별 자료 같은 걸로, 결국 해봐야 소용 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있자, 이런 게 보수 정권 내의 기본 기류였다. 대기에 기저 효과라는 것이 존재하니까, 중국 것은 중국 것대로 외교적으로 푼다고 하더라도 기저에 해당하는 것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었는데, 보수 정권은 그냥 뭉갰다. 결국 중국이 자기들이 견디다 못해서 고강도의 도시 대기정책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중국은 그냥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니까 아무 것도 아니다, 임시방편이다, 요런 얘기들을 했다. 중국이 그것만 한 것은 아니고, 전통적인 가정 난방 방식인 석탄 난방을 줄이고 천연가스로 전환하는 노력을 했다. 몇 년 후면 중국 도시들의 미세먼지 수치가 한국을 역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들도 나온다. 보수 정권 9, 집권세력의 기조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는 것이, 뭔가 하는 것보다 더 강했다. 주인 없는 나라 같았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뭔가 하는 방식과 같았다. 그게 오늘의 현실이다.

 

쓰레기, 배출 문제는 더 심각하다. 결국 중국에서 한국산 폐비닐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문제는 좀 더 기원이 깊다. 지금의 수도권 매립지를 소위 sanitary land-fill, 위생 매립지로 조성하겠다고 하는 초기 논의 과정에서부터 설계가 좀 엇나갔다. 침출수 문제가 불거지면서 매립을 하고, 나중에 메탄 가스로 재수거하는 그런 장기적 관리계획이 아니라 너무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갔다. 지금 하늘공원이 있던 난지도 매립장은, 옛날에 매립했지만 메탄 가스 재활용을 한다. 모든 것을 다 분리시키는 것이 과연 옳았는가? 이런 것은 중장기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질문이기는 하다. 어쨌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원칙대로 하면, 매립할 것은 매립하고, 재활용할 것은 재활용하고, 그렇게 하면 된다. 그리고 최대한 가정과 산업에서의 배출량을 줄이고. 그건 교과서인데, 그렇게 안했다. 민간 위탁하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폐기물 문제를 이제는 남의 일 보듯이 한다. 그렇지만 이 지경일 줄은, 나도 놀랐다. 뭔가 우리가 처리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가정용 폐기물은 중국에 팔고, 산업용 폐기물은 남해 바다에 던졌다. 그래서 해양오염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해양 투기를 멈추게 되었다. 이제 어쩌지? 나머지는 중국에 보냈다. 중국이 안 받아 준단다. 이제 어쩌지? 우리나라는 민간에서 쓰레기 분리수거 참여도 등 각종 지표는 거의 세계 최고급이다. 만약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홍보를 늘리고 시민들의 참여와 협조를 더 구할 수 있다. 그냥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그냥 눙깠다’. 이 정도면 더 많은 분량을 태우는 방법 밖에 없다. 다이옥신 등 그 유명한 환경 호르몬 문제가 눈앞에 불거질 것이다. 보수 시절의 역대 환경부 장관들, 도대체 뭘 했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4대강이 경제적이라는 둥,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둥, 이 딴 소리에 동의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았다.

 

문제는 지금 심각하다. 지금이라도 전체적으로 폐기물에 대한 밑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다시 한 번 고민할 때이다. 지금까지야 보수 정권이라서 그랬다 치고, 앞으로는?

 

여기서부터가 통치 행위다. 지난 일들을 들추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쟤 잘못했어요, 쟤 나쁜 사람이예요, 이런 일러주기는 비교적 쉽다.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 쉽지 않다. 지금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여러 분야를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도대체 보수 10, 그들은 뭘 한 거야? 우리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나 쓰레기,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이 어느 정도 돌아갈 정도의 시스템도 안 만들었다. 박근혜 집권 초기, 한국의 보수들이 영구 집권을 꿈꿨었다. 그렇게 자기들의 나라라고 생각을 했으면, 주인 의식을 가지고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방법을 도모했어야 할 것 아닌가? 이건, 여기저기서 해먹을 생각만 했지, 도무지 통치자로서 뭔가 노력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도서관, 이런 기본에 해당하는 것들도 더 손대기 어려울 정동이 엉망이 되었다. 심지어 주식 발행과 관리까지,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을 정도다. 도대체 그들은 그 10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 중국의 대기질 조건이 한국을 역전하고, 중국이 폐기물 안 받아준다고 하니까 국가적 대란이 날 지경이고. 뭐야? 기생충이야? 자기네 나라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자기네가, 그게 기본적 원칙이다. 그 정도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놓고, 뭘 했느냐?

 

정치는 눈에 보인다. 바로바로 보인다. 반응도 즉각적이고, 대응도 즉각적이다. 경제는 눈에 잘 안 보인다. 생활경제는 더더군다나 잘 안 보인다. 이런 걸 차분히 개선하면서 장기적 시스템을 갖추는 정권이 유능한 정권이다. 보수 10, 그들은 정치만 했다. 그리고 부패했다. 그게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난장판이다. 안 보이는 걸 잘 하는 것, 그게 진짜 실력이다. 그리고 그 체질이 튼튼해지는 것, 그게 선진국이다. 환경 문제에서 한국과 중국은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나라였다. 지금 이게 뭐냐? 중국 탓만 10년 동안 했는데, 진짜로 이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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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가려고 한 것은 아닌데,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가 정족산사고를 들르게 되었다. 뭔가, 잠시 느껴지는 게 있었다...)

 

1.

5, 7, 두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을 옮기고 나서, 적응을 잘 못한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전에 있던 어린이집이 워낙 좋았다. 아침마다 몇 시에 데리러 올 건지, 더 일찍 올 수는 없는지, 아이의 관심은 오로지 하원 시간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아침에 어린이집 안 간다고 운다. 방법이 없다. 오후에 길이 막혀서 약간이라도 늦으면 아이는 울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나한테 막 뭐라 뭐라 한다. 내가 이렇게 혼이 날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질른 건가, 가끔 황망하기도 하다. 어쨌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여행 다니고. 마침 봄도 오고 해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더 많이 여행을 갈 생각이다.

 

집에서 가깝고, 익숙한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 일부러 가려고 한 것은 아닌데, 전등사가 지켜온 정족산사고를 보게 되었다. 작년 11월에 애달 데리고 갔다가 전주사고를 본 적이 있다. 아련한 생각들이 난다. 여기 오기 전 들렀던 강화문학관에서 팔만대장경 경판이 머리 속에서 겹쳐진다. 책이란 게 뭘까?

 

2.

한국에서 책은 위기다. 사회과학도 위기고, 그림책도 위기고, 심지어는 아이들 보는 동화책도 위기다. 386들이 부모가 되면서 한동안 동화책의 전성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다 옛날 얘기이거나, 기대가 너무 많아서 생겨난 신화 같은 얘기다.

 

하루걸러 들려오는 얘기들이, 누가 누가 책을 더 이상 안 쓰기로 했다, 누가 그냥 취직했다. 그런 얘기들이다. 이러다가 정말 작가 중에서 굶어 죽는 사람 나오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전업작가들이 맞게 된 최대의 위기 국면이다.

 

사실 나도 책을 계속 써야하는지, 2년 전부터 고민을 했다. 내가 처음 나왔을 때, 출판사 MD들이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라는 얘기를 하고는 했다. 여전히 사회과학 전업작가라는 이름을 들을 정도이기는 한데, ‘가난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어야 한다. 수식어 하나를 더 단다면 강연 안하는정도 될 것 같다. 강연을 아예 안하지는 않는데, 고등학교나 시민단체 같은 데에서 부탁 오는 것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해주는 정도다. 게다가 나는 돈 받고 강연 듣는, 소위 유료강연은 안 한다. 책을 사면서 돈을 낸 건데, 무슨 돈을 또 받아, 그런 생각이 강하다.

 

작년 말에, 언제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책을 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다 반대했다. 반대의 의미는 명확했다. 이게 돈이 안된다, 애들 둘을 어떻게 키우려고 하냐? 무책임하게

 

솔직히 애들 키울 생활비까지 걱정하면서 살아야하는, 그런 정도는 아니다. 그냥 먹고 살만은 하다. 벤츠나 그런 거 사야겠다고 갑자기 정신이 해까닥하는 경우만 아니면, 별 걱정은 없다. 지금처럼 아내의 모닝 가끔 얻어 타면서 살면, 별 걱정은 없다. 어쨌든 계속해서 책을 잘 쓰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해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친구 한 명은, 당장 벤츠를 사라고 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거라고. 벤츠도 사고, 골프도 치고, 에 또 뭐 그런 그런 것도 다 하면 지금처럼 벌어서는 택도 없다. 그래서 좀 남자로서, 어른으로서, 욕망이라는 것을 가지라고 한다. 그게 성공이라고. 그래서 벤츠를 사면 결국 벤츠만큼 돈을 벌게된다는, 별 말도 안되는 경제 강의를 내 앞에서친구야, 미안한데, 내가 경제학 박사 20년차다. 나는 머리에 총맞았냐고 그랬다. 내가 총맞았냐, 벤츠를 타게. 지금 행복한데, 불확실한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포기할 것인가! 총 맞았거나, 미친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부모가 돈 벼락을 주거나, 하늘이 돈 벼락을 내려도 나는 그렇게는 안 살 것 같다. 그 돈이면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많은데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책을 쓰기로 작년 말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목표는 딱 우리 집 생활비만큼. 목표는 그런데, 좀 안 맞아도 별 상관 없다. 내 마음이 그렇다. 한국에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로서, 그렇게 살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걸로 족하다. 이 얘기도 크게 하지 어려운 게, 주변의 저자나 작가들의 삶이 진짜로 너무너무 힘들다. 최선을 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힘들고 미안하다. 세상이 원래 그래, 배울 만큼 배우고 할 만큼 한 40, 50줄의 작가들이 이런 얘기를 서로 위로라고 하는 게 정상적으로 보이는가? 뭔가 이상한 것이다. 꼭 대학 입시 앞두고 점수가 잘 안 나올 때, 대학 졸업하고 취업 잘 안될 때 청소년과 청년들이 하는 것 같은 얘기를, 나름 스타급 작가들이 지금 서로 위로라고 하고 있다. 다른 얘기를 하기는, 너무 서로 미안하다. 세상이 원래 그래, 그런 얘기가 참 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다르게 할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다.

 

3.

책은 한 사람이 모을 수 있는 지식을 최대한도로 담아내는 최고의 매체다. 물론 누구나 그 정도는 인정한다. 그래서 책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가 힘 있는 사회다.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나라들 대부분, 그 시절에 자신들의 출판문화도 전성기였다.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지식이나 경험이 책으로 나올 수 있는 나라, 그 나라가 잘 사는 나라다. 잘 살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렇게 책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지식을 모아 나가다 보니까 잘 사는 나라가 된 것 아닐까 싶다.

 

책은 전세계적으로 약해지는 흐름에 놓여있기는 하다.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건 비정상적이다. 원래 그래, 그게 아니라, 우리만 그래그게 좀 더 정확한 진단일 것 같다.

 

4.

태풍이라는 은유를 요즘 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태풍의 눈이라는 얘기를 참 좋아했다. 영화 <퍼펙트 스톰>에 가장 슬픈 태풍의 눈 얘기가 나온다. 즐거운 버전의 얘기도 있다. 진짜로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그걸 만드는 사람들만 잘 모르는 경우. 태풍의 눈이라서 그렇다고들 한다.

 

요즘은 태풍의 씨앗 혹은 태풍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런 얘기를 가끔 생각한다. 북태평양 어느 한적한 섬 앞바다, 그곳에서 태풍의 씨앗이 만들어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피어 오르는 물기운 중의 하나가 결국 태풍이 된다. 어느 씨앗이 태풍이 되었는지, 언제 되었는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태풍이 태풍으로서 형성이 되고 자리를 잡아야 그 때부터 위성 관측이 시작된다. 친구 중에 태풍이 오는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인 사람이 있다. 작은 태풍이 거대한 태풍으로 자라날 때 즐거워한다. 태풍의 피해자들이 보면 미친 놈이기는 할텐데, 위성으로 태풍 관찰하는 게 거의 유일한 취미다. 그런 사람도 태풍의 씨앗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송과 책을 비교해보자. 방송은 태풍을 쫓아다니는 것이다. 태풍이나 태풍급, 그 정도가 된 것들 것 쫓아다니는 행위를 우리는 방송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방송 하는 사람들의 머리는 이미 다 된 것들 혹은 터지기 직전의 마지막 몽우리, 이런 것을 찾는데 특화되어 있다. 태풍이 아닌 것은 손도 대지 않는다. 그걸 옆에서 보면, 좀 웃기기는 하다. 자기는 태풍이 아닌데, 태풍들만 만나다 보니, 자기가 태풍급이라고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좀 험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방송에서 보는 것들은, 그 세계에서는 태풍이 된 사람들을 본다. 그래서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노래가 되는 것이다.

 

책은 방송과는 다르다.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책을 쓰고, 출간하는 과정, 이것들은 북태평양 어느 곳에서 태풍의 싹을 만드는 일과 같다. 너절하고, 전혀 멋진 일이 아니다. 다만 그 후에 생겨날 태풍을 생각하면서 고단하고 지난한 과정을 참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태풍의 싹이 전부 태풍으로 자라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상 없이는, 춥고 배고프고 고단한 과정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태풍의 싹의 일부가, 당대 혹은 후대에라도 태풍이 된다. 보람 있는 일이다.

 

태풍을 보는 눈과 태풍의 싹을 만드는 눈은 다르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은 트렌드를 쫓아간다. 책은 트렌드를 만든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여전히 책을 중요한 매체로 생각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 아닌가?

 

5.

지역의 소소한 이야기, 지역색과 향토색 가득한 이야기, 이런 건 요즘 책이 안된다. 로컬의 문제,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평생을 사진만 찍은 사진 전문가가 알게 된 세상에 대한 지혜, 이런 것도 책이 안된다. 책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보려고 하는 사람이 적어서 그렇다. 쉽게 버리기 어려운 얘기들이 요즘에는 책이 안된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게 된 사회, 그 사회가 진짜로 강한 사회다. 우리에게는 더 소소하고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한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런 지식들이 사회화되기에는 너무 체질이 허약해져 버렸다. 그러면 잘 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한말에 한국에 온 선교사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한국에 관한 책을 쓰고 그런 것들이 발간되었다. 우리는 소중한 자료라고 한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한국인이 외국에 와서 보고 느낀 것, 그런 것이 지금 우리에게서 출간될 수 있을까? 꼭 하멜 표류기 같인 희귀성이 있는 것 아니더라도 나름 그 나라에서 발간이 되고, 우리에게 소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는 지금 태풍만 찾아 헤맨다. 그러다 길을 잃는다. 다들 미래학만 하려고 한다. 정부나 민간이나. 현재를 잃어버린 나라가 미래만 찾는다. 앞길이 어두울 때 종교만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책을 계속해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뭔가 만드는 것, 얘기든 내용이든 논리든, 그런 일을 좋아했다. 태풍이 되든 태풍이 되지 않든, 태풍의 씨앗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은 내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것이 태풍이 되든 되지 않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태풍의 씨앗을 만드는 일, 그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보람된 일 중의 하나다.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최근에 느낀 게 있다.

 

책은 정직해야 하고, 내용도 정직해야 한다. 그래야 태풍이 되지 않더라도 미풍이라도 된다. 그리고 그 미풍이라도 필요했던 사람의 눈에 전달될 수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책 만들 때 사용하는 기법 같은 것들을 될 수 있으면 빼고, 담백하게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태풍이 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나는 태풍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내 일을 한다.

 

우리는 세계사에서 드물게 실록을 만들고, 그것을 죽어라고 보존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게 뭐 팔리겠냐, 우리의 선조들이 순실이나 근혜처럼 국가를 가볍게 생각했다면 우리는 벌써 망했을 것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 목숨 걸고 팔만대장경을 찍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게 우리의 DNA 안에 흐를 것 같다.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고, 삶을 바꾸는 일은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풍이 여러 개 필요하다. 그 태풍의 눈을 만드는 사람들의 삶은 순결하고, 정직하다. 지금 이 시대에 아직도 책을 쓴다고 마음을 먹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존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매체로서의 책이 망하는 속도가 한국에서는 너무 빠르다. 벌써. 나의 경험담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일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요즘 내 책들이 예전 책보다 훨씬 공도 많이 들어가고, 품도 많이 들어간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정성 들여 책 내용을 구상하고, 고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보다 훨씬 잘 팔렸고, 영향력도 높았다. 지금은, 예전의 3~4권 만들었을 힘을 책 하나에 쏟는다. 그래도 버티기 힘들다. 할 수 없다. 시대가 변했다.

 

예전에는 책의 의미에 대해서 지금처럼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요즘 생각해보니까, 지금 책을 만드는 것은 태풍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태풍의 눈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인, 이제 태풍은 아니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행위가 태풍의 눈 같은 것은 아니다. 조용하고, 계속 조용하고, 앞으로도 조용할 것이다. 전혀 다른 시선과 전혀 다른 각오로, 태풍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책 만드는 행위에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 일은 혼자 하면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자신의 최선을 담아서 책을 내기 시작하는 것, 그렇게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는 변화에서 의미가 생긴다. 나는 아직도 거대한 태풍을 기다린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푸른 하늘이 나타난다. 나는 아직도 그런 맑은 하늘에 대한 꿈을 거두지 않았다.

 

 

(강화문학관에 갔다가 팔만대장경 장판 하나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만들어졌다고, 그냥 잠시 스쳐지나갔듯이 보기만 했었다. 진짜로 만져볼 수도 있고, 먹물로 종이에 찍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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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전등사에서. 마치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할 것 같은 하루를 보냈다. 매일, 매 순간이 늘 즐거울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렇지만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처럼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삶에 가장 행복한 순간, 그 순간인 지금 그리고 바로 오늘, 그렇게 살아가기로 한다.

 

자꾸 신경질 내고 심통내봐야, 좋아질 것도 별로 없다.

 

6학년 때 아버지하고 전등사를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기분은 별로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이후로 전등사 안으로 들어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매일매일,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이들과 떠나는 긴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원래는 아내는 그냥 집에서 좀 쉬고, 나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고 했었다. 이번에는 아내도 같이 가고 싶다고.

 

일단은 내가 가보지 않은 시와 군, 기초 단위의 지역들을 좀 더 돌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잘 몰랐던 느낌들을 좀 잡아보고 싶은 약간의 욕심도.

 

그렇게 알아서 뭐에다 쓸 것인가? 목적은 없다. 그냥 안 가본데 가보는... 그러다보면 나도 뭔가 느껴지는 게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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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전등사. 애들하고 있는 게 늘 즐겁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많이 즐겁다. 큰 애가 어린이집 옮긴 이후로 계속 기분이 안 좋고, 우울해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놀아주려고 노력 중이다. 내년에는 학교 들어간다. 당분간, 어딘가 같이 많이 돌아다니려고 한다. 결국 맺는 말에서는 뺐지만, 50대 에세이를 쓰고 난 나의 결론이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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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나는 출판사를 고르지는 않고 에디터를 고르는 편이다. 같이 호흡 맞춰서 일하는 에디터가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낸다. 글쎄... 출판사에 따른 변화는 크지 않고, 에디터와 호흡이 더 큰 편이다. 그래서 내 책 손 본 에디터들과는 굉장히 오랫동안 알고 지낸다. 사장 거치지 않고 직접 일하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는데, 길게 보면 좋은 점이 더 많다.

 

<아날로그 사랑법>이 요즘도 팬레터가 종종 오는 책이다. 에디터가 나중에 회사를 옮기면서 한동안 연락 못했다. 간만에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더니, 그 사이 쌍둥이 엄마가 되었다. 두 달 되었단다. 오매나야... 견디다 못해서 언니 도움을 좀 받으려고 오늘 이사하는 날이랜다. 애 둘 키우면, 둘이 키우면 둘이 뻗고, 셋이 키우면 셋이 뻗고, 넷이 보면 한 명이 그래도 좀 쉰다. 엄마, 아빠, 두 명이 감당할 노동량을 넘어선다. 막 웃는다. 그렇단다.

 

간만에 책 얘기도 좀 했다. 나는 몰랐는데, <아날로그 사랑법>이 좋은 에세이로 선정되어서 정부 지원도 좀 받고 그랬었단다. 정부 욕 잔뜩 해놨었는데. 예전에 공지영 작가님이 나에게 <봉순이 언니> 얘기를 몇 번 하신 적이 있다. 내가 좀 헤맬 때였다. 써놓고 잊어버린 책이었는데, 그 책이 나중에 다시 살아났다고. 꼭 그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쓸 때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책과 실제 팔린 책 사이에는 좀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영혼 한 부분을 떼어넣는다고 생각하면, 책들이 다 의미가 생기기 마련이다.

 

간만에 부인 출근이랑 애들 어린이집까지 다 챙겨보내고 잠시 커피 한 잔 마시고 예전 지인이랑 옛날 얘기 좀 했다. 오후에는 식구들 다 데리고 바닷가로 여행 간다. 노는 게 남는 거다, 인생의 철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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