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쓸 때에는, 이 책이 나를 바꾸는 책이 될 줄 몰랐다. 아마 내 모든 책 중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정말로 많은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이런 기적적인 일을 이 책이 만들게 될지, 쓰는 중에는 정말 몰랐다. 여전히 팬레터가 꾸준히 오는 책이기도 하다. 인생이 바뀌었다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날로그 사랑법>은 내가 사랑하는 책이 되었다...)

 

책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써보라는 요청은 종종 받는다. 근데 이게 두 가지 이유로 쓸 수가 없다. 일단 나는 책 쓰는 법을 잘 모른다. 매번 쓰는 방식이 다르고, 매번 접근 방식도 다르다. 주제에 따라서도 변하고, 에디터에 따라서도 변한다. 심지어 출판사에 따라서도 변한다. 어떻게 쓰는 건지, 알고 쓰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그때 생기는 벽들을 넘어간다. 벽의 종류에 따라서 넘어가는 법도 매번 바뀐다. 그리고 못 넘어간 경우도 많다. 그때는 좀 작업을 해 놓았어도 출간을 포기한다.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그리고 좀 더 결정적으로, 나는 책 파는 법을 모른다. 여러가지로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해준다. 나도 그런 도움을 잘 참고해서 잘 해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그걸 내가 알면 벌써 책 파는 법’, 대박 학원을 내서 떼돈 벌었을 것 같다. 그런 걸 안하는 건, 내가 엄청 양심적이거나 돈 버는 걸 싫어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렇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그런 재주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면절대로 그건 책으로 내지 않고 학원을 낼 거다. 그것도 돈 아주 많이 받고. 그렇지만 아마 나 살아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책 파는 법을 내가 잘 터득하면 나만 잘 먹고 살지,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나? (아침에 해주는 증권 방송 볼 때마다 느끼는 일이다. 증권을 그렇게 잘 알면 벌써 떼돈 벌어서 하와이 같은 데 가서 살았을 것 같은데, 이 추운 날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에게 증권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을까? 저 사람이야말로 진짜 박애주의로 깨달은 사람일까?)

 

그래서 나는 아직 책 파는 법은 전혀 모르고, 심지어는 책 쓰는 법도 모른다. 그냥, 매번 어떻게 어떻게 주어진 문제들을 극복할 뿐이다. 새로운 문제는, 또 새로운 방법으로 극복한다. 그리고 종종 실패한다. 그러니 나는 책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쓸 수가 없다. 내가 책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쓰면, 100% ‘바담풍이다. 나는 이렇게 잘 못했는데, 여러분은 잘 해보세요루소가 도망다닐 때 음악선생님을 했다는 얘기와 같다. 그걸 구경 온 진짜 음악 선생님이, 소질이 엿보이니까 정말로 음악 할 생각 있으면 자기한테 연락하시라고루소가 엄청 쪽팔려했다는 후일담이. 근대를 만든, 바로 그 루소에 대한 얘기다.

 

이런 기타 등등의 이유로, 맨 번 책 쓰는 것에 대한 책을 써보라고 하면 거절했다. 내가 지금 쓰면, 사기꾼이다. 알면 너부터 잘 해봐, 딱 그런 구조에 걸려 있다. 게다가 한 권 한 권 책 내는 게, 아직도 너무 힘들다. 그리고 갈수록 더 힘들다. 뭘 잘 모르던 시절, 마침 그때는 출판 시장이 괜찮았다. 지금처럼 공을 안 들여도 잘 팔렸다. 지금은, 한 권 한 권이 다 너무 힘들다. 진을 뽑을 정도로 힘을 들여서, 겨우 체면치례 할 정도가 된다. 실력이 내가 줄었나? 실력이 주는 경우는 없다. 분명 더 늘었고, 더 나아졌는데, 옛날만큼 하기가 너무 힘들다. 분명히 내가 쓰는 방법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를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더 힘들다.

 

그래도 책 쓰기 폴더를 하나 열었다. 계기는 간단하다.

 

번역가 박산호 선생이 요즘 사진을 배우신다. 같이 배우는 사람이 찍어준 사진을 흑백으로 전환해서 올려놓으셨다. 사진은 화사하다.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쪽팔림을 감수하고 얼굴을 가끔은 들이미는 것, 그게 책 쓰기의 시작과 비슷하다. 싫어도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한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그게 출발이다.

 

문득내가 가지게 된 약간의 노하우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쓰는 법까지는 아니고,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어서, 하다보니까 길 수 있게 된 것.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메모를 해보기로 했다. 난 뭘 잘 모르기도 하지만, 까먹는 것도 빛의 속도로 까먹는다. 3년 정도 그런 메모를 모으면, 그 때쯤은 지금보다 책 쓰는 법이나 책 파는 법을 조금은 더 알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진짜로 책 쓰는 법이라는 책을 낼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할 일이 없는 오후, 잠시 쓸데없는 짓을 좀 해본다.

 

요령1. 쓸 데 없는 글을 쓸 때가 가장 생산적이다.

 

쓸 데 없는 글들을 되도록 많이 쓸 것.

 

'책에 대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좀 더 전위적인 시도를 위해서  (1) 2018.04.15
습작 시절  (3) 2018.04.13
책과 배달 문제  (0) 2018.04.11
이물질  (4) 2018.04.10
책에 대한 단상 – 전등사편  (4) 2018.04.08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