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이 처음 금감원장 인사에 올랐을 때 사람들이 내게 물었었다. 그 때 이렇게 말했다.

 

권혁세 보다는 낫지 않겠냐.”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권혁세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언론형이기는 했지만, 그는 부패하지는 않았다. 그가 어느 날 재경부 수첩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많은 재경부 공무원들이 강남에 사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서울 외곽에 살았다. 그는 드물게, 부패하지는 않은 공무원이다. 그렇지만 그는 금융은 잘 모른다. 세무 전문이었다. 강직한 세무 공무원인 것은 맞지만, 금융은 자기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가 MB 말기 금감원장이 되었다. 기가 찼다. 그리고 은행장들 점심 때 불러서 돌아가면서 밥 먹으면서 배드뱅크만들어야 한다고 그러고 다녔다. 진짜 권혁세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지가 배드뱅크를 뭔 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 <모피아>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는 원형이 있는 경우도 없고, 없는 경우도 없다. 모피아 중의 한 명의 원형이 권혁세다. 그만큼 내가 잘 알고, 오래 본 사람도 없어서. 더 나쁜 놈도 좀 더 아는데, 가까이 근무한 적이 없거나 경험한 적이 없어서 속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금감원장은 나쁜 놈과 모르는 놈, 이 두 스타일이 돌아가면서 했다. 너무 속내를 잘 알고 나쁜 짓 하는 넘 아니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멍하니 있는 넘, 이 두 스타일이 청와대가 모피아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김기식이 금융에 정통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최소한 권혁세보다는 낫지 않겠냐? 이게 내 생각이다.

 

인간 김기식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단상이 흐른다. 나는 97년부터 보았다. IMF 경제 위기 전에 참여사회연구소에 연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진짜 엣날 일이다. 수없이 많은 일들을 그와 함께 하거나 겪었다.

 

그러나 나는 김기식에 대한 모든 평을 몇 년 전에 접었다. 그 후에도 내게 김기식에 대한 불평이나 흉을 본 사람들은 많다. 그 때마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다.

 

자식 죽은 아비가, 뭔 영광을 볼 게 있겠냐!

 

나는 김기식이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강했다. 지금 얘기 나오는 그 미국 연수 길에 같이 나섰던 중학생 자식이 서울에 돌아온 다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내가 그 경우였다면, 나는 정말로 다 네려 놓고 아무 일도 안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사회적 일이 있는지라, 김기식은 뭔가를 더 했다. 자식과 좀 대화를 더 했었어야 했는데, 이상증후를 보고도 그렇게 못했다마지막으로 그와 나눈 사적인 대화가 그거였다. 나는 지금도 김기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김기식도 나름 욕심이 있고, 자리를 잘 챙긴다는 얘기들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누구처럼 자리 욕심이 있거나 영광을 보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자살한 후에, 그는 하던 일을 접고 떠나려고 했다. 이번 일만 처리하고, 이번 일만그러다 지금까지 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금감원장으로, 김기식이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권혁세 보다는 잘 할 것이다. 그가 금융 관련된 일만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권혁세 반대편에 서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찾아내는 일을 좀 했다. 설마, 권혁세처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에게 혹시 김기식을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김기식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도 절대로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김기식을 믿느냐고 하면, 아이 잃은 아비의 심정을 믿는다고 할 것이다.

 

단체활동가들의 삶이 생각보다 바쁘다, 그래서 그 속에서 개인 소사에 대한 크고 작은 아픔들이 생겨난다. 김기식도 그런 삶의 피해자 중의 한 명이다. 그가 아직도 엄청난 개인적 야망이 남아있거나, 한풀이 하기 위해서 뭔가 칼을 휘두르려고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기식이 일하는 방식이 좀 치사빤쓰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참여연대가, 단체 스타일이 약간 그렇다. 박원순도 옆에서 같이 일하면, 약간 좀 치사빤쓰 스타일이기는 하다. 어떨 때는 치사빤쓰 동빤쓰, 활동가들이 술 마시면서 그렇게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스타일이다.

 

김기식이 금감원장이 되면, 아마 역대 금감원장 중에서는 가장 잘 하지 않을까 한다. 몇 년 전에, 안철수와 지금 청와대 정책실장인 장하성 선생이 한 편 먹고, 내가 반대편에 서서 금감원 개혁안에 대해서 아주 거대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때 금감원 노조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 것 같다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자기네 자료를 주고 간 적이 있었다. 금감원에는 윗대가리들만 있는 게 아니라 노조도 있고, 나름 개혁하고 싶어하는 직원들도 있다.

 

그런 내부의 개혁 세력을 잘 통제하거나 구슬리고 억압하는 게 지금까지 금감원장이 해온 일이다. 그러니 부패하고, 서로 이익을 주고, 심지어 채용특혜까지.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게 지금부터 금감원장이 할 일이다. 김기식이 그 정도는 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더 나은 사람? 있으면 내가 추천한다. 한국에 금감원장으로 김기식만한 사람도 없다. 다른 대안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에 김기식 인사평을 물었을 때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권혁세보다는 낫지 않겠냐

 

한국당이 인사할 때, 최고의 인사가 권혁세였다. 그만한 사람도 사실 없었다. 나머지는, 인사라기 보다는 쓰레기에 가까워서 입에 올리는 것도 지저분해지고. 그런 권혁세보다는 김기식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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