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선생을 생각함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나도 많은 사람들을 참고했다. 요즘은 경북이라고 하면, 어쩐지 마초들이고, 어쩐지 새누리당 지지자들이고,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로 비춰지는 경향이 있는 듯 싶다. 그 한 가운데 청송이라는 곳이 있다. 작년, 올해는 안 갔지만, 지난 수 년 동안 해마다 몇 번씩 갔던 도시가 청송이다.

 

청송, 영화 <홀리데이>의 바로 그 청송 감호소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신정아가 농업에 대한 지원금 명목으로 대출받은 청송 농협이 이곳에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오덕 선생이 태어나신 곳으로 기억된다.

 

책을 내면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는다. 이오덕 선생의 출판기념회라는 재수없는 행사에 대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당신 보시기에 흡족하게 산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최대한 그렇지 않도록 노력은 한다.

 

교육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하고, 어린이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냥 신나게 내 삶의 무궁한 영광만을 위해서 살지 않는 데에는 이오덕 선생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고 내가 이오덕 선생 책을 그 후에도 늘 옆구리에 끼면서 펼쳐 보는 것은 아니다. 안 읽은 책도 많고, 이제는 어디 가 있는지 찾기도 어려운 책들도 많다. 어쨌든 그런 양반들이 우리 선대에 있었다는 거, 그게 참 좋았다.

 

권정생 선생의 삶은 감히 따라하거나 흉내내겠다고 생각을 먹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삶이다. 인생은 소풍, 아니 인생은 쇼핑, 우린 그렇게 산다. 이오덕 선생의 삶은, 어쩌면 비슷하게 흉내내본다고 하면 아주 다르지는 않게 살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그 이유 때문에 이오덕 선생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명박네 애들이 최고라고 얘기하는, 지네들끼리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했던 그 삶의 정반대편에 이오덕 선생의 삶이 있다. 소박하고, 은근하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모두 이렇게 하면 참 세상이 좋아지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 당신은 꾸밈이 없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하셨다. 나 같이 글 잘 못 쓰는 사람에게는 이게 참, 큰 위안이 되었다.

 

그냥 하고 싶은 얘기, 부담 없이 편하게 풀어놓으면 된다나도 남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친다. 다 당신 덕분이다.

 

<울면서 하는 숙제>, 이런 게 참 좋은 작품이다.

 

운동회에 관한 얘기를 한 번 해보자. 그 시절, 이 양반들은 운동회에서 꼴찌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100미터 달리기를 손잡고 하자는 얘기들을 했다. 예전에 그거 볼 때, 좀 지나친 이상주의자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달리기라고 하면, 숨이 턱에 받치듯이 뛰고, 승부가 칼 같이 갈리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소박한 그 마음만 받자, 뭐 요런 식으로 간단하게 생각했었다.

 

이런 된장최근에 일본 방송을 하나 봤다. 안경 쓰고, 어지간히 시니컬한 인텔리처럼 보이는 어떤 패널이, 요즘 일본 운동회에서 손잡고 달리기를 하는 바람에 일본 아이들이 패기가 사라지고,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아주 생지랄을 하고 있는 걸 봤다.

 

아니, 일본에서는 손잡고 달리기, 그걸 한단 말이야? 리얼리? 순간 이오덕 선생이나 권정생 선생이 늘 하던 손잡고 달리기 얘기가 생각났고, 도대체 우리는 뭐 하는 사람들인가, 그런 생각이 뒤통수를 팍 치고 지나갔다. 명박네 애들은 일제고사 쫙 보고, 그게 과학적 평가라고 엄청 생지랄들 했다. 당근, 많은 부모들도 시험 보게 해달라고 사정 사정. 우리가 그 지랄하고 있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운동회에서 이오덕 선생 같은 양반들이 정말로 아방가라드처럼 한 얘기를 정말로 구현하고 있단 말이야? 오 마이 갓!

 

오 신이시여, 저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나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교육의 최고 개판은, 대치동 교육도 아니고 목동 교육이다. 꽤 많은 학원원장이나 사교육 종사자들과도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해봤는데, 이유와 근거는 조금씩 달라도 결국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사실이다.

 

목동, 이건 교육도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니 교육을 위해서라면, 일단 목통을 탈출하라!

 

목동 교육은 대치동 비슷한 것 같은데, 그건 보이는 양상만 그렇고 내면적으로는 더 개판이다. 실제로 대치동에는, 사실 그 동네 사람 자녀들은 별로 없다. 이미 다 미국으로 보내셔서, 이러 거나 저러 거나, 오리지날 대치동 주민들은 사실은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한국 교육과는 무관한 사람들이고. 아주 희한하지만, 그 묘절함이 대치동 교육을 완전 개판 5분전에서 구원해준 힘이 되었다.

 

이오덕 선생의 정신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최악의 교육은 목동 그것도 초등교육이다. 처음에 목동 초등학교 1학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축구 클럽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한 건데, 이게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정말로 지옥의 야차들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교육인 거라. 간단하게 말하면,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왕따 놓는 걸 교육 시키고 있더라, 이 얘기이다.

 

통계를 내보고 싶었는데, 어지간히 돈 들이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통계라서 일단 접어놓고 있지만,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왕따 지수가 가장 높이 나올 곳이, 목동 아닐까, 그런 작업 가설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때의 축구 클럽이 나중에도 계속 가고, 부모들이 만들어주고 싶은 건, 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네트워크와 친분 관계라는 건데. 나중에 학교에 오거나 혹시 숫자가 맞지 않아서 축구 클럽에 못 들어간 아이는 구조적 왕따에 시달리게 되어있다. 내가 아는 고위 공직자 몇 사람은 결국 목동에서의 이 지독한 왕따를 견디다 못해, 엄마까지 딸려서 미국 유학 가거나, 온 가족이 지방 근무로 간 사례들이 좀 있다. 그 때는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랐는데, 목동이라는 곳이 독특한 교육 시스템을 들여다 보니

 

, 그럼 그 왕따 놓으면서 한 명씩 따돌리고 제끼는 게 삶의 지혜라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칼 같이 습득한 그 어린이들의 삶이 부모들의 바람처럼 행복하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겠는가?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거면, 일본이 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손잡고 뛰는 달리기를 하겠는가? 그 사람들은 자본주의 아니고, 그 사람들은 바보라서? 이오덕 선생 같은 분은 왜 수 십년 전에 그런 주장을 하였겠는가? 이상주의자이고 빨갱이라서? 그게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수 십만명 아니 수백만명의 예비 이명박을 만드는 교육 같은 것 아닌가?

 

목동 엄마들한테 조언을 한다면, 혹시 축구 클럽 같은 데 자기 아들이 다니고 있으면, 일단 그것부터 끊으시길. 자식의 미래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사교육은 좀 천천히 끊어도 되고, 독서 교육은 적당한 때에 자연스럽게 시작해도 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왕따 놓는 것이 삶이고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것, 그건 정말로 자식들을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망치는 길이다.

 

내가 이해한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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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보수?

 

나는 전또깡 이래로 민주정의당의 후신들에 투표를 해본 적이 없다. 아주 솔직하게, 조선일보 기자들을 만날 때도 편치 않다. 그래도 책 막 나왔을 때, 이럴 때 상황 봐서 만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주변에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집안에서, 부모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친척들 중, 새누리당에 투표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아주 어렵다. 서울 보수, 그런 사람들이 온통이다. 결국은 대학 시절, 집을 나가고 나서야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그렇지만 새누리당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차별하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나는 정치적인 선택을 이유로, 많은 차별을 당했고, 오랫동안 소수자처럼 살았다. 그건 내 선택이다. 회색인처럼 살고, 회색지대를 선언하면서, 적당히 중도라고 그러면서 살아도 상관은 없다. 그렇지만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내 얼굴을 감추면서 하고 싶은 얘기나 표현을 감추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냥 가난과 차별 같은 것을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감수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무엇인가 선택하거나 채점하는 자리에 왔을 때, 정치적인 선택을 이유로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짓을 하면, 나도 마찬가지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게 이기는 것도 아니다.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 같은 것을 선출하는 인사위원회에 가끔 들어가게 되는 일이 생긴다. 50살 넘은 아저씨들의 세계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도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겉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냥 양쪽에 다 다리를 걸고 있는, 기가 막힌 로비의 대가, 그런 것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앞으로도 나는, 정치적인 선택을 이유로 누군가를 부당하게 대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공개적으로 좌파 선언을 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좌파는, 어쨌든공개적인 자리에서 스스로 불리는 이름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하여간 이건 나의 선택이고, 그로 인한 불이익은 그냥 감수하고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불이익을 선택하면서 살아가면 좋은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삶이 소박해진다. 지금도 그냥 츄리닝 입고 다니고, 아주 특별한 경우 아니면 청바지도 비싸서 못 산다. 구질구질해 보이기는 하지만, 삶이 구질구질한 것보다는 낫다. 내가 하는 유일한 호사는, 안주는 그래도 새우깡 보다는 좋은 거 먹자

 

술 마실 때 새우깡 혹은 새우깡 수준의 안주를 먹으면 너무 우울해진다. 소주에 새우깡 먹던 그 스무살로 돌아간 거 같아서 급 우울해진다. 그래서 그것보다는 좀 좋은 안주를 마시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좋은 것은, 요행수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직접 한 일도 뺏기는 판인데, 내가 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뭔가 좋은 일이 생기는 일, 그런 건 내 삶에 절대 없다. 10개를 하면 결국 하나나 두 개만 성과로 남게 된다. 요행수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실망하거나 속상할 일도 별로 없다. 아주 잘 해야 본전, 그렇지 않으면 대박 망하는 것이 현실에서 한국의 좌파들이 살아가는 삶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성격이었는지, 꿈을 가져본 적도 없고, 희망을 크게 키워본 적도 없다.

 

그냥 세 끼 밥이나 입에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이렇게 살면 정말 좋은 게, 속상할 일이 별로 없다. 물론 살다 보면 명박네 삽질 하는 거 보면서 속상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세끼 밥만 입에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하면, 크게 속상해할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일종의 강요당한 소박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또 다른 것들, 예를 들면 아름다움이나 낭만 혹은 구구절절한 사랑, 이런 것들에 눈을 뜨게 된다.

 

아주 어렸을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었다. 6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난다.

 

신이 한 쪽 창문을 닫을 때, 다른 쪽 창문을 열어준다.”

 

지내 보니까, 정말로 그렇다. 교수 지원하고 총장 면접 볼 때마다 번번이 떨어지던 시절에는 정말 술 처먹고 우울하게 지내고 그랬다. 생각해보니까, 그건 그냥 내가 감수해야 할 삶인 듯 싶다. 그래서 그냥 감수하고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나서 우울증이 사라졌다.

 

물론 그래도 대인기피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 무슨 상관이 있으랴. 같이 작업하는 소수의 동료들을 아주 자주 만나면, 그 삶도 부담스럽지는 않다. 게다가 무대 앞에 나서는 화려한 순간을 일부러 피하니까, 혼자 있는 시간이 아주 많이 생겨서 더 좋다. 아이와 부인, 고양이들과 몇 명의 동료들,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도 아주 재밌다.

 

이런 내 삶을 전제로, 박근혜에게 기꺼이 투표하는 정도가 아니라 박근혜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삶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20대 보수에 대해서 요즘 조금씩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20대들을 좋든 싫든, 많이 만난다. 좋아서도 만나고 어쩔 수 없이도 만난다. ‘88만원 세대이후로, 20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고, 싫든 좋든 만나게 되는 게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 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이해하는 게, 아무리 머리 속에서 논리적으로 따져본다고 해서 이해가 될 수 있겠는가? 경제학과 수업이나 경제학과 특강 혹은 상대 특강 같은 건 잘 안 하려고 한다. 평생을 경제학자로 살아왔는데, 경제학과 수업을 안 하다니!

 

경제학과에 가면 20대 보수를 아주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냥 자신이 뭔가 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키기 위해서 보수가 된 게 아니라, 정말로 좌파들을 너무너무 싫어하고, 체질적으로 증오한다고 믿고 있는 그런 20대 대학생들을 아주 많이 만날 수 있다.

 

나한테 왜 FTA에 대해서 그렇게 이해하느냐고, 나의 후배라고 하면서 덤비는 친구들, 그런 사람들이 경제학과에 가면 아주 많다. 대학원 전공이 국제경제학이었다. 그래서 국제통상학부나 그런 곳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 종종 생기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적극적으로 박근혜를 지지한다. 영화 지망생 중에서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그들을 차별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에게 나의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개인의 문제에서, 모든 사람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연민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삶은 삶, 그 모든 것들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제학도들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그 이전부터 지독할 정도로 보수주의적이라는 사실은, 가끔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가 박사가 될 때까지 혹은 학위를 마치고 시간강사가 될 때까지, 일부 좀 너무하다 싶은 몇 명의 선생을 제외하고는 저것도 쟤의 선택이고, 시험 점수로만 평가하겠다고 많은 선생들이 대해주었다. 재벌계열사나 정부에 있을 때에도, 나의 상관이나 상사들 중 좀 너무하다 싶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냥 업무 성과로만 평가하겠다고, 내가 속 편하게 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었다.

 

그게 내가 20대 보수를 대하는 자세이다. 그 개별적 이유를 정형화시키기에는, 그들도 많은 이유가 있다. 출신 지역에 따른 편향이 있고, 부모와의 특수 관계에 대한 개별적 성향이 있고, 문화적이든 정치적이든, 그들이 이미 내린 과거의 선택이 있다. 조사에 따라 다르지만 작을 때는 20대의 17% 많을 때는 30% 정도가 박근혜에게 투표하겠다고 대답한다. 비록 나는 박근혜가 만들어내는 세상을 도저히 참을 수는 없지만, 그를 지도자로 선택한 사람들의 개별적 선택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도덕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 경제의 밑바닥에는 윤리하는 것이 존재하고, 그 윤리가 없다면 경제는 금방 개판 5분 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도덕적 우월감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경계한다. 내가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근혜 지지자에 비해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큰 일 난다. 그건 논리적인 일이다. DJ 시절, DJ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그야말로 호남 향우회 스타일의 인간들을 보면서, 그건 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노무현 열성 지지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을 했었다. 노무현 지지는 개별적 선택이지만, 그것이 그 선택을 내린 사람의 우월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것이 도덕적 우월성일 때, 그것은 금방 증오와 폭력적 사유와 연결된다. 동일한 논리로, 그 시절 그 사람들에 대해서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그래도 박근혜, 그것 역시 좀 아닌 듯싶다.

 

20대 보수, 쉽지 않은 주제이다. 만약 재벌 3세라서 자신이 보수적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영 미친 넘 한 넘 있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실존적인 삶에서 보수의 길을 선택한 20, 그건 여러 가지로 같이 생각해볼 문제이고, 주제이다. 공교롭게도 20대 내에서는 박근혜 지지자가 소수이다. 물론 그 소수는 지배적 위치에 있는 소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영 가난하고, 앞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데도 박근혜 지지자라면?

 

어쩌면 왕따에 대한 기원론적 질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남을 왕따 놓는 건지, 왕따가 된 건지. 철학적 질문에 대해서는 답이 잘 없다. 한국에서 박근혜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 20, 그 질문 역시 철학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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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몇 번 갈아엎고 다시 시작한 적이 있다.

 

매 번 목적과 이유가 있기는 했는데, 지금 블로그도 얼마 전에 리부팅한 버전...

 

아무래도 나도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고,

 

그냥 친분 있는 분들만 쏙닥하게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냥 흥미로...

 

어떤 분들이 이 블로그에 오시는지, 저도 궁금하고.

 

댓글 남겨주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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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림 엽서 같은

 

모든 일에는 시간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장소라는 질문이 있다. 언제 어디서 벌어진 일인가라는 질문, 나는 그 질문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 제국주의적 미덕이라면, 식민지로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그 시간과 공간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 식민지의 속성을 탈피하는 첫 번째 돌파구일지도 모른다.

 

보편적인 것이 나쁘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보편주의 만큼 식민지를 통치하는 제국을 편하게 하는 장치가 또 있겠느냐? 네가 조선의 식민주의 백성이라도, 당신만 잘 하면 다 되는 거다, 그게 왜정 시대에 조선인 제자를 정말로 사랑한 선생이 해줄 수 있는 얘기가 그것 밖에는 뭐가 있겠는가?

 

물론 너만 잘 하면 된다는 얘기는, 어디서나 쉽게 하는, 도망가기 쉬운 인스턴트식 해법이다. 그러나 이게 식민지가 가지고 있는 절망과 부딪히면 더욱 크게 증폭되는 것 아니겠는가? 식민지 시대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냥 맞춰 사는 것과 아주 어렵지만 독립을 위해서 뭔가 하는 것, 그런 해법 정도 밖에 더 있겠나? 그 어느 쪽이라도 제 정신이라면 좌절하게 된다. 창씨 개명을 조선인들이 하자고 한 것을 총독부에서 받아들여준 거라는 얘기가 무얼 의미하겠는가?

 

나는 시대를 뛰어넘는 뭔가를 하라는, 일종의 순수예술의 좌우명처럼 우리의 선배들이 걸어놓고 있던 그 예술관이 그렇게 싫었다. 언제 어디서, 최소한 그런 구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얘기들은 자칫하면 제국의 통치술에 말려들게 되는 그런 거라는 의심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무엇을 그리고 왜, 그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너만 잘 하면 된다, 그것은 언제나 옳은 말이다. 작은 상황이든 큰 상황이든, 적절한 화각으로 청자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 같이 식민지적 상황을 종결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또한 위험한 얘기이기도 하다. 모든 말에는 겉말과 속말이 있고, 모든 단어에도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가을이 한참 깊어가고 있는 요즘, 그림 엽서로 써도 좋을 만큼 예쁜 고양이 사진들을 몇 장 찍었다. 가을볕이 참 좋은 조건이다. 적당히 노랗고 그러면서도 적당히 암물한 기묘함이 묘한 긴장감을 준다.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고양이들도 서로 붙어 있으면서 기분 좋은 실루엣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고양이들과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은 명박 시대의 어두움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이라는 면에서만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다른 때 보았어도 에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로 2012, 명박 시대의 마지막 해의 가을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해방의 욕구, 그런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던 순간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과로에 의한 피로감으로, 그야말로 대선이 오는 그 날이면 나도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악으로 버티던 시간의 기억이기도 하다. 작은 휴식과 위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휴식이고 어디부터가 일탈인가, 그런 질문을 가끔은 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순수를 외쳤던 그 모든 것들은 제국 통치술의 값싼 뻰치에 불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예술을 원했지만, 문방구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싸구려 그림 엽서 같은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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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들의 시대

 

 

 

엄마 고양이가 얼마 전에 새끼를 또 낳았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무언가 태어났다는 게 그저 즐거울 뿐이다.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일단 세 마리가 있다. 노랑이, 반노랑 그리고 삼색. 녀석들이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나도 아직 제대로 얼굴도 못 봤다. 인기척만 나오면 후다닥 도망가는데, 그렇다고 억지로 따라가고 싶지는 않고.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엄마랑 물을 먹고 있는 순간을 보았다.

 

영원히 붙잡고 싶은 순간, 그건 녀석들에게도 그럴지도 모르고, 나한테도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모범적으로 살아온 사람도 아니고, 남한테도 내 삶이 모범이라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니, 누군가가 나같이 한다고 하면, 절대로 큰 일 난다고 그렇게 말하는 편이다.

 

내 삶은 고통이 많고, 외로움이 많은 삶이다. 남들이 내리지 않는 선택을 할 때마다 가혹한 대가가 뒤따른다. 나는 매번 그냥 감내하겠다고 하면서 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마저 편한 것은 아니다. 세 끼 밥이 입에 들어간다고 해서, 고통스러웠던 순간까지도 잊혀지는 건 아니다.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같이 앉아서 물을 마시는 걸 보면서, 그런 고통에 대해서 회상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고양이들에게 주는 물통에는 벌레들이 늘 빠져 죽어있다. 마침 오늘 플라스틱 물통을 깨끗하게 씻고 새로 물을 주었는데, 엄마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바로 물을 마시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행복을 잡으려고 하면, 그게 잡아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흘려 보내고, 순간을 흘려 보내고, 기억도 흘려 보내고. 집착, 그건 사랑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10대 자녀들 교육에 목을 매면서 사교육으로, 특목고로, 그리고 그것이 행복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에게 저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건 사랑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고양이와 사람은 다르지 않은가?

 

큰 눈으로 보면, 잠시 머물러 있다 가는 생명이라는 점에서 다를 것 아무 것도 없다. 인간이나 고양이나 다 포유류, 열심히 젖을 만들어 새끼를 키우는 그런 같은 분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내가 이들을 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늘 지켜줄 수 없다. 그들에게는 그들 사이의 법칙이 있고,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내가 먹이를 구해준다고 해서, 내 고양이가 아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행복은 언제나 순간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아름다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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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준비 거의 끝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경제사상사로 시작을 했다. 아마 공산권이 붕괴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자본론에 대한 연구를 하고, 경제사상사와 경제철학 사이에서 책을 읽고, 또 책을 쓰는 그런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경제사상사나 경제학설사는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 그럴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강단에 서서 경제학설사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은 외국의 대학 밖에 없었다. 외국에 그렇게 가서, 그냥 그렇게 다른 나라를 위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학위 받은 순간부터 치면 올해가 17년째인데,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은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해본 것 같은데, 학설사 강의는 동국대에서 한 학기 짜리로 딱 한 번 해본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공대에서 강의를 했다. 겸임교수는 두 번을 했는데, 두 번 다 공대에서. 그냥 공대에 눌러앉아서 살아도 되기는 했는데, 내 머리 위로 윤진식이 오는 바람에.

 

하여간 이제 내려놓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학설사 수업을 제대로 못해본 것, 경제철학이라는 수업을 개설해보지 못한 것, 그 정도이다. 한국사회경제학회에 더 이상 후배가 들어오지는 않는다. 아마 이런 걸 진지하게 공부했던 사람은 내 대에서 끝나지 않을까, 그런 얘기들을 좀 한다.

 

때로는 정부를 통해서, 때로는 시민단체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세상을 구현해보려고 참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한미 fta와 함께 현업 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는 것,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어서 내 삶은 보람 있던 것 같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거로는 꽤 오랫동안 버틴 것 같은데, 어차피 이 정도가 한계치가 아닐까 싶다. 시뮬레이션 모델링 작업 같은 거를 더 해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내 눈이 그런 수치 작업과 모델링 작업을 허락하지 않는다. , 누구나 나이는 먹는 거니까.

 

이제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캠프에 들어갈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들어갔다. 나는 안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아마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최대치가 아니었나 싶은. 그렇게 내려놓으려고 한다. 정부에 오래 있었고, 또 그 후에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문을 하거나 정부 운용하는 데 계속해서 참여할 기회들이 있었다. 그런 것도 이제는 내려놓으려고 한다.

 

내년에는 별 계획은 없다. 일단 겨울에는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동화책을 쓰려고 한다. 에니메이션 기획에 대한 제안들이 가끔 오는데, 아직 딱 이거다 싶은 내 얘기가 있는 건 아니다.

 

올해 준비한 영화는 캐스팅 중이다. 끝없는 기다림

 

아마 앞으로 강의를 하게 될 일이 있더라도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에 대한 걸 하지는 않을 것 같고, 지금까지 내가 분석하는 영화들에 관한, 그런 분석 방법론 같은 거,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올해까지는 책들을 다 정리하려고 했었는데, 경제 대장정 시리즈가 아직도 끝이 안 났다. 시리즈는 마저 할지, 아니면 덮을지, 그건 좀 놀다가 천천히 생각해보면 될 일이고.

 

그냥 시민의 한 사람으로 혹은 영화 기획자나 동화작가, 그렇게 살살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 그런 거 하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의미와 의무로 사는 것, 오래 살았다. 난 그렇게 사회적 인간도 아니고, 남들 앞에 서는 게 행복한 스타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대인기피증이 깊다. 여전히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 만날 때 결국 술을 마시게 되는데, 그렇게까지 사회를 위해서 영원히 사는 건 아닌 듯 싶고.

 

어쨌든 처음으로 내년도 계획을 세워보는 중인데, 경제학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 리스트에는 없다.

 

나름 홀가분하다.

 

그러고 나니, 경제학설사 같은 거 제대로 강의를 못해본 게 약간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고.

 

내일은 아기 낳고 처음으로 아내와 잠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모유수유 중이라서 멀리는 못 가고, 강화도나. 살면서 진짜로 중요한 일은 따로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대선 이후에 나꼽살 종료하는 게 아쉽기는 하다. 누군가 그걸 계속 이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그 방송이 은근 품이 많이 들어간다. 출연자 4명에, 작가와 매니저 그렇게 여섯 명이 지난 1년간을 죽도로 뛴 건데, 한 회분 방송 기획이 보통 2~3주 걸린다. 공중파 같으면 3~4팀이 붙어서 돌아갈 상황인데, 그걸 그냥 몸으로 때우면서 온 거라서. 설날, 추석, 그럴 때도 안 쉬었다.

 

얼마 전에 안철수 쪽에 나꼽살 초청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여의치 않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가 아닌가,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철수 쪽에서 답이 오면, 문재인 쪽에도 연락을 하고, 혹시 분위기가 좋으면 둘이서 토론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고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우리의 맨 파워로는 이 이상은 무리다. 지금도 이미 무리한 거고.

 

돌아보면, 삶이라는 것은 늘 아쉬움의 연속 아니겠는가? 아쉬움을 남기고 뭔가를 정리하면서,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경제학 아니라도 세상에 보람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활동하던 시기는, 한국에서 경제 이데올로기가 극한으로 올라가던 시기였다. 명박과 함께, 그 한 시대도 끝나가는 듯싶다. 돈만을 숭상하면서 모두가 달려가던 한 시기, 그건 진짜 재미없던 시기였다. 그 지랄 끝이 바로 명박의 시대 아니었겠는가? 근혜 시대가 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게 지난 1년을 보낸 것 같다. 그러나 삶을 언제까지 이렇게 비상 상태로 만들어놓고 살 수는 없다. 우리들의 비상 상황은 이번 대선으로 끝나야 한다. 경제학자가 마이크 쥐고, 이건 아니다, 저건 아니다, 그런 상황이 정상적인 건 아니다.

 

대선 쌈박하게 이기고, 내년부터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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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민주화는 뭘까?

 

곽노현 공대위 쪽에서 연락이 왔다. 이렇게 저렇게 조율해보니, 결국 나꼽살에서 교육 민주화 쪽 내용을 한 번 자기들이 추천하는 사람으로, 해달라는 얘기가 되었다.

 

김윤자 선생님이 나오신다는 것 같다. , 나야, 무조건 찬성이다. 살다보니, 나는 누님들하고 늘 사이가 좋았고, 누님들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 방송 진행을 맡은 미화 누님도… 1년 가까이 매주 만나서 몇 시간씩 같이 지내다 보니 정말로 식구와 같았다. 김윤자 선생, 정말로 내가 20대 시절부터 누님으로 모시던

 

작년인가 학회 가서 만났는데, 너도 이제 흰머리가 다 생겼구나하긴 20대부터 보던 사이라서 이제 어느덧 우리 나이도 만만치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선대인이 급작스럽게 안철수 캠프로 가는 바람에, 나꼽살 방송 기획을 다시 맡게 되었다. 금주 세션까지 끝내면서 방송 기획은 선대인에게 넘겼는데, 다시 덤탱이를. 몇 번 남지는 않았는데, 이것저것 방송 기획을 새로 다시 해보는 중이다.

 

할지 안할지, 마음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서울대 철학과의 김상환 선배를 한 번 불러볼까아뿔싸, 핸펀에 전화번호가 없다. 하여간 누가될지, 나꼽살 끝나기 전에 철학자 모시고 경제에 대한 얘기를 하는 기회는 꼭 가지고 싶다.

 

친한 철학자가 여러 분 있기는 한데, 친한 걸로 따지면 역시 상환이형이그냥 친한 정도가 아니다. 나를 만들어준 사람이 김상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체나 프로이드 공부는 그 양반 아니었으면 할 기회가 없었을 거다.

 

여기에 몇 달 전부터 조금씩 준비하던 방송이, 임순례 감독 모시고 하는 동물복지편. 영화 후반 작업 중이라서, 아직 정확하게 시간을 정하지는 못했고.

 

이런 와중에 교육 민주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김윤자 선생이랑 실제 사교육 원장 한 분 모시고, 그렇게 진영을 짜볼까 한다. 학원 원장 섭외도 대충은 끝났고.

 

교육 민주화가 개념적으로 성립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 방식은 아닌 건 누구나 동의할 것이고. 교육행정이 워낙 복잡해서, 얼핏 봐서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장학사와 교장, 교감, 뭐가 이렇게 내부적으로 복잡한 건지

 

그냥 좀 과격하게 얘기하면

 

자기 자식을 한국 교육에 맡겨놓지 않은 정치인들은 교육에 대해서 얘기할 자격이 없는 거 아니냐는. 예전부터 이게 참 싫었다. 사회 엘리트라고 그러는 사람들, 자기 자식은 다 미국에 보내놓고, 그 송금 채운다고 온갖 비리 저지르면서 사는 꼴. 그러면서도 공개적으로 교육이 이러느니 저러느니, 그건 좀 아니다 싶었다.

 

내 삶에서 후회하는 게 몇 가지가 있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유학 갔다 온 게 참 싫었다. 그래서 후배들은 다시는 공부를 위해서 유학 가지 않아도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거이게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했던 결심이다. 왠걸, 시간이 지나고 보니 초등학생까지 유학 가는

 

유명한 선생들이 자기 수제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미국 보내고, 국내에 남은 제자들은 공부 못한다고 들들 볶고, 착취에 가깝도록 마구 일 시키고

 

내가 대학 근처에 가 있는 걸 너무 괴로워하는 것은, 대학원생이나 박사과정들 이러고 있는 걸 직접 쳐다보는 게 마음에 부대껴서 그렇다. 아예 안 본다고 해서, 그 상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늘 쳐다보고 있는 건 정말로 힘들다.

 

영화 제작사에서 좋은 거 하나가, 여기는 이런 꼴분견이 없다는 점이다. 학벌이나 학연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요새 젊은 사람들에게서나 그렇고 오랫동안 했던 사람들은 그런 게 거의 없다.

 

타이거 픽쳐스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은, 여기는 학벌은 커녕 영화 전공한 사람도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출신학교나 배경 같은 얘기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 국가의 기본에 관한 걸 곰곰이 생각해보면, 역시 한국 보수들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결론. 왜정 때 일본식 전통으로 1, 2, 그러고 살면 딱 좋을 사람들이다.

 

좌파들도 학연에서는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경기 3대 천재니, 경복 어쩌구저쩌구, 하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이젠 누가 경기니 경복이니, 그런 얘기 꺼내면 아예 집에 와 버린다. 할아버지들은 칠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그러고들 논다.

 

세계화라는 용어가 한국에서 정말 이상하게 움직여나가서, 원래도 이상한 걸 더 이상하게 만들어버렸다. 미국 학교에 들어가는 전단계로는 최고라고 광고하는 민족사관고, 이런 게 이상해 보이는 건 내 눈에만 그런가?

 

교육 민주화라는 개념을 탁 받아 들고서, 이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조금씩 해보는 중이다.

 

삼청터널의 유래에 관해서 아주 재밌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은 적이 있다. 박지만이 청와대에서 육사를 다녀야 하는데, 길이 너무 막히니까 아예 터널을 뚫어버렸다는 얘기

 

그런 사람들이 무슨 교육에 대해서 얘기할 자격이 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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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들의 시대

 

나의 젊은 시절은 군인들과 지나갔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유신 사무관 혹은 장군님 따라서 왔던 운전수 출신 총무과장, 그런 사람들이 나의 동료였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군 출신들이 아주 많았다.

 

YS를 따라온 사람들은 등산화라고 부르던 것 같다. DJ를 따라온 사람은 지팡이라고 불렀었나? 어쨌든 이런 사람들을 통칭해서 낙하산이라고 부른다. 가끔은 특공대라고도 부르고.

 

명박을 따라온 사람들은 뭐라고 부르나? 진짜로 양아치들의 시대였다. 양아치 중에서도 양아치, 그야말로 쌩 양아치들의 시대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그러고 있을 때, 진짜로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의 행정능력이 명박 시대에 엄청 떨어졌다. 하여간 국민 세금으로 배불린 건 업자들인데, 특히 컨설팅 회사와 로펌들이 아주 노났다. 매킨지에서 한전 구조조정 보고서 쓸 때, 보스톤에서 KBS 구조조정 보고서 쓸 때, 아주 자세히 그 과정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하여간 기가 막혔다. 경제관련 기관들 국감할 때, 근거리에서 지켜보면 아주 가관이다.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자세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능력도 문제다. 정말 능력 없는 인간들이 명박과의 친교를 이유로 승승장구 하는 거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말 이런 시대가 있었나 싶었다.

 

도저히 그 자리에 어떻게 왔는지 이해가 안 되는 인간들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면

 

집사님이십니다

 

그런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새누리당이 왜 망했나? 아마 대통령이 정할 수 있는 자리가 10만개 정도 되는 걸로 들었는데, 그 자리 하나 하나를 다 그렇게 채우다 보니, 그러고도 통치가 제대로 돌아가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

 

분기 경제성장률 1.6%, 그게 세계 경제 탓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양아치 경제의 정확하고 명확한 결과물 아닌가 싶다. 새누리당이 그렇게 무시하고 박대했던 노무현 집권 마지막 해의 경제 성장률이 5%였다. 그들도 능력만 보면 엄청나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명박네급으로 그렇게까지 양아치는 아니었다. 수치가 말해주는 거 아닌가?

 

군바리들도 문제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양아치였던 건 아니다. 등산화들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견제받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DJ를 따라 들어갔던 사람들, 그들에게는 능력은 몰라도 자긍심 같은 게 있었다.

 

명박 옆에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못하리, 해쳐먹을 결심으로 충일한 양아치들만 잔뜩 있었던 것 같다.

 

양아치 중의 쌩 양아치는 부지런한 양아치 아닌가 싶다. ‘얼리버드 청와대’, 그게 망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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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비루함의 연속

 

삶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계속되는 비루함의 연속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비루한 것들을 참고 지내고, 잠시 그것을 잊는 순간이 있다. 무엇이라도 좋다, 잠시 마음을 얹을 수 있는 것, 그 때 잠시 비루함을 잊는다. 그리고 다시 더 큰 비루함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비루함을 느끼지 않고, 늘 신나고 기분 좋게만 사는 존재, 그건 미친 놈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내가 본 최대의 미친 넘은 바로 명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자신은 전혀 비루해지지 않지만, 우리 모두를 비루하게 만들어버렸다. 명박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몽이다. 그는 짧은 5년 동안, 지워지지 않을 상채기들을 너무 깊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대통령이 바뀌면 끝날 것 같지만, 어떤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통증이 줄어들 뿐이다. 명박이 한국의 생태와 한국의 경제에 남기고 가는 것은 그런 깊은 상처일 것 같다. 그 시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악몽과 같다. 깨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가 있는 듯한 깊은 상처,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몇 달간 소설 작업을 하면서 그야말로 일탈과 같이, 먼 여행을 하고 온 것 같다. 몇 달간 거의 매일을 밤을 새다시피 했는데, 이제 떠나 보내고 나니, 그걸 쓰고 있던 순간이 비루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위에서 내리려고 하는 게 비루한 것인지, 하여간 일상의 비루함들이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내 삶에 단절은 한 번 있었다. 정말 10년 전, 공직을 그만두면서 한동안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 한 번 있었다. 그 때는 정말 본능으로 살았다.

 

내 삶을 대체적으로 몇 년 동안의 이정표를 빠듯하게 세워놓고 사는 그런 삶이었다. 경제 대장정 시리즈를 시작하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아직 몇 권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건 좀 더 천천히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시작한 거니까 끝을 내기는 하겠지만, 처음에 생각한 그런 방식으로 마무리 짓지는 않을 생각이다. 뭔가 결정적인 테마가 떠오를 때까지, 좀 더 차분하게 기다려보려고 한다.

 

지난 수 년 동안 대선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말로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했는데, 막상 내년에는 뭘 하고 지내지? 그런 생각이 오늘 문득 들었다. 대선 이후에는 작은 약속도 하나 잡아놓은 게 없다. 뭐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기 때문에 잡아놓을 수가 없었고, 또 그냥 그렇게 비워놓고 싶기도 했고.

 

일정이 꽉 잡혀 있는 삶이 더 좋은 건지, 지금처럼 뭘 할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 더 좋은 건지는 잘 몰겠다. 그러나 그 어느 편이라도, 삶은 비루하다. 뭔가 준비된 대로 움직인다고 해서 덜 비루한 것이 아니고, 또 할 것이 결정되어 있다고 해서 더 비루한 것은 아니다. 삶이라는 것은, 그냥 사는 거다.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더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되는대로 지낸다고 해서 덜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만든다고 더 높은 성취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길이라는 것은 그냥 걸어가는 동안에만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살면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집착이라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 사람들이 성과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게 진짜 마음을 편하게 해주거나, 자신에게 언제나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집착을 만들어서, 그걸로 무언가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정말로 사람을 비루하게 만든다. 그런 것도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 삶에서 진짜로 성취해야 하는 것은 그런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렇게 생각하는 그 자신도 지워낼 수 있는 것,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년에 뭘 할까,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다가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하기로 결정된 것이 없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비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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