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에 익숙해지기

 

시간강사를 첫 취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현대에서 운영하던 연구소에 들어간 걸 첫 취직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때부터 연구소와 관련된 일 아니면 대학과 관련된 일, 하여간 평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런 일들을 하면서 살았다.

 

하긴들인 시간만 가지고 생각한다면, 어른이 된 후로는 술만 마시면서 살았다고 해야 하는 게 정확할지도.

 

어쨌든 이번 총선에는 따로 관여하지 않을 결심을 하고 나서, 소속 기관으로 사용하고 있던 2.1 연구소와 관련된 일들을 좀 급하게 정리할 필요가 생겼다. 정치가, 좀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근사할지는 모르지만,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견디기가 좀 힘들다.

 

아마 사람마다 체질이 좀 다를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화려하면서도 배신이 난무하는 현장이 기질적으로 그렇게 맞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기도 싫은 연구에 이름을 올려놓고 싶지도 않았고, 이젠 시간 강사를 다시 할 열정도 없고, 그럴 체력도 안 된다. 물론 내 나이에 여전히 시간강사 재밌게 잘 하는 양반들이 있기는 한데, 그 정도 힘은 나에게는 없고.

 

그래서 결국 타이거 픽처스라는 영화사에 이름을 걸고, 실제로 출근을 시작했다.

 

, 생기는 건 없지만, 삶이라는 게

 

뭔가 배우는 게 있어야 그 힘으로 또 무지막지하게 남아있는 시간이라는 빈 공간을 채우는 것 아닌가? 보람과 돈만으로 그걸 채우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영화사 근무라는 게 시작되었다.

 

두 달 조금 안되었는데, 무엇보다 재미는 있다.

 

타이거 픽처스는 <평양성>의 참패 이후, 2년째 놀고 있는 중이다. 원래 내가 딱 좋아하는 분위기가, 처음에 시작해서 어려울 때, 혹은 위기에 빠져 있는 집단그들과 동료로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상황, 이게 내가 제일 선호하는 상황이기는 하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제일 어려운 게, 시나리오라는 형식의 글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글이라면 여러 가지 종류의 글에 나도 꽤 익숙해있는 편이기는 한데, 시나리오가 좀 글 치고는 까다로운 편이다.

 

저녁 때, 간만에 정좌하고 앉아서 <사냥개>라는, 요즘 우리가 총력을 다해서 데뷔를 시키려고 하는, 손상준이라는 젊은 조연출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시나리오 상태로 읽으면서 영화가 되었을 때를 상상하는 게, 이것도 일종의 반복훈련 같은 거라서 아직 나에게는 그게 제일 힘들다.

 

그래도 계속 보다 보니, 조금 늘기는 한다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계속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건, 그래도 내가 좀 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여간 어영부영, 두 달이 지나갔다.

 

어쨌든 올해 봄이 되면, 어떤 영화든 촬영이 시작될 것 같고, 상주하지는 못하더라도 현장에도 가볼 생각이다.

 

이제 내 나이도 40대 중반인데, 초짜 입장에서 뭔가 시작하는 게 그렇게 편하지는 않은 나이이다.

 

영화 관련 학과면 학부 1~2학년 때 많이 해봤을 일을 이 나이에 하면서, 그래도 뭔가 익숙지 않던 일을 새로 시작하는 게 재밌기는 하다.

 

2월말이면, 연재 중인 경향신문 칼럼도 끝이 난다.

 

그걸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해왔던 칼럼 작업도 이제 접으려고 한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면, 시사와 관련된 일은 나꼽살 하나가 남는다.

 

, 이것도 선대인과 호흡을 잘 맞추면서 대체할 사람이 있으면 넘기고 싶기는 하지만아마 돈 안 받고 그만큼 시간을 내고, 게다가 정부 혹은 학계와 관련된 일은 완벽하게 막히는보상은 없고, 고통만 존재하는 이 일을 또 하겠다고 할 경제학자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경제 대장정의 길이 아직 좀 남아있다. 어떻게든 이걸 끝내기는 할 생각인데, 기본적으로 나에게는 절대 시간이 부족하다.

 

영화를 직접 만들 날이 내 인생에 올 거라고는 정말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연출을 하지는 않더라도 스탭으로 일하게 되는 순간이 갑자기 오게 되었다.

 

하여간 삶이라는 게, 무슨 계획을 세운다고 꼭 그렇게 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조금씩 시나리오라는 글의 형태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경제대장정 시리즈의 9권이 문화경제학이었다. 나는 이 시리즈가 우리 경제의 미래를 바꾸기를 정말로 바랬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시리즈 시작하고 한 번도 이걸 끝내지 못할 거라거나 혹은 의미가 뭐가 있겠나, 그런 회의를 가져본 적이 없다.

 

힘들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거라고 생각을 했고, 당장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12권을 다 만들어내고 나면, 그래도 의미는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솔직히, 내가 무의미한 일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지난 수 년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민주통합당 대표로 한명숙이 되는 걸 보면서

 

정말 아무 일도 하고 싶지가 않다. 글도 쓰기 싫고, 칼럼 같은 것은 더더군다나 쓰기 싫고, 방송 출연, 인터뷰, 다 싫다.

 

강연은, 지금 이 기분으로 정말로 대중들 앞에서 얼굴을 보고 하고 싶은 얘기가 없다. 보나마나, 짜증이나 내고, 화나 내고 있을 것 같아서, 나오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짓는 건

 

나도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서

 

아니나 다를까, 총선 때까지는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가면서 버틸 듯하던 외환은행 문제도, 한명숙 대표 취임하고 바로 금융위 통과되어 버렸다.

 

나머지 일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 그건 정권이 바뀌어도 더하면 더하지, 덜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글도 쓰고 싶지 않다.

 

그 허탈감의 빈 공간을, 한 번도 이렇게 진지하게 해보지 않았던 시나리오 검토 등의 일들을 하고, 알게 된지 한 달 조금 넘는 젊은 조연출들의 데뷔를 돕기 위해서, 나름대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쥐어짜면서 시간을 보낸다.

 

몇 달째 바깥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이, 해 떨어지기 전에 일찍일찍 집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투자사와의 저녁 모임에도 가서 자리를 지키고 늦게까지 앉아있었다.

 

세상을 구할 수는 없더라도, 몇 명을 도울 수는 있겠지

 

어떻게 보면 소소한 일일지 몰라도, 또 데뷔를 준비하는 연출자들에게는 생이 걸린 일이기도 하고….

 

그건 또 하나의 우주를 탄생시키는 것과 같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람은 있다.

 

경제학을 전공한 것을, 늘 보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취임을 보면서, 노무현 시대에도 느끼지 못했던 무기력감이

 

도대체 지난 10년 동안, 내가 뭘 위해서 살았나, 그런 무기력감과 함께, 내가 지켜오려고 하던 가치가 밑바닥에서부터 붕괴한 느낌이

 

어차피 올해를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로 살아온 나의 삶은 접을 생각이었지만, 그 마지막이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런 출발점은 보고 싶었다.

 

영화사에 한달 반 정도 출근하면서, 일본 어느 스튜디오에서 선물로 보내준 일본 소주 한 병을 선물로 받아왔다. 한 달반만에, 처음으로 뭐라도 얻어걸린 것

 

돈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 어차피 사회과학 책이든, 신문 칼럼이든, 아니면 나꼽살이든, 내가 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처음부터 돈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45살을 살면서, 한 번도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일은 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다.

 

사명감 비슷한 걸로 살아온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나는 보람이라고 불렀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노무현 때에도, 기다리면 세상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고, 명박 시대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한명숙 대표되는 걸 보면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기다려도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12권으로 예정된 농업경제학 등, 경제 대장정 시리즈를 마친다고 해서 도대체 뭐가 좋아질까, 그런 생각을 이 시리즈 시작하고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영화와 관련해서는, 아직 별 계획도 업고, 미리 생각해둔 방향도 없다.

 

어쨌든 영화사에 출근하면서 올해 한 해, 이것저것 눈동냥으로라도 배우고, 촬영 현장에 가고 하다보면,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조금 이해는 하게 될 것 같다.

 

찍어보고 싶은 다큐가 좀 있기는 한데, 아직은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잘 모르겠고.

 

어쨌든 일단은 시나리오에 좀 더 익숙해져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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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 시대, 이젠 나도 힘이 빠진다

 

명박 시대 5년차, 그 동안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나도 깜박깜박한다.

 

노무현 때부터 치면 10, 무슨 힘으로 버티면서 여기까지 왔는지, 진짜 까마득하다.

 

요즘은 단 하나도 새로 일정을 얹기 어려울 정도로, 그야말로 꽉 차 있다.

 

힘이 빠진 건지, 나이를 먹은 건지

 

수업 부탁이 오기는 왔는데, 마흔 살 중반에 시간강사라, 이젠 도저히 못하겠다. 그것도 열정이 있어야 하는 일인데, 이젠 그만한 열정이 남아있지가 않다.

 

나꼽살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방송이다. 안 해보던 얘기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고, 매번 방송 주제를 정하고, 이것저것 틀 잡는 게, 공중파 방송 보다 훨씬 힘이 많이 든다. 경제 얘기만 가지고 여기까지 왔으면, 진짜 많이 온 거다.

 

올해만 하고 전부 내려놓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래도 한 해를 어떻게든 버텨낼 힘을 내는 거지, 내년에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당장 오늘 해야 할 일도 하기 싫어진다.

 

수업도 접고, 강연도 접고, 몇 년째 그래도 나름 즐기면서 계속하던 TV의 다큐나 시사방송 기획 같이 하던 일들도 접었다. 잡지 인터뷰 부탁들도 접고.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뭔가 생각을 더 얹을 공간이 없다는 게 더 크다.

 

뭐가 이렇게 힘이 빠지게 하는 것일까?

 

정권은 바뀔지 모르지만, 세상이 별로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더 이상 힘을 내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맨 밑바닥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방전이라는 표현들을 쓰던데, 요즘 그 말이 나에게도 딱 맞는 것 같다.

 

기쁠 일은 별로 없고, 실망할 일은 잔뜩이고, 기다릴 일은 별로 없고, 기다리지 않아도 생겨나는 좋지 않은 징후들은 잔뜩이고.

 

관성 같은 것일까? 중오도 관성이 된다, 참 무서운 말이다.

 

10년을 버텼으면, 그래도 꽤 오래 안 지치고 버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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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간

 

한국의 시간은 정말 빠르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명박 4년차를 마치며, 격동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종편이 시작하였다. 앞으로의 변화, 너무나 뻔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또 어떤 돌발 변수가 생겨날지 모르니까.

 

한미 fta 날치기 이후로 한국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정치 일정은 물론 사회적 흐름도 급격히 변하는 중이다.

 

1년 전에 나꼼수 같은 게 생길 줄이야 누가 예상했겠나. 선대인하고 앉아서 지하 녹음실에서 경제 얘기하고 있을 줄, 바로 내 일인데도 전혀 알지를 못했다.

 

힘이라는 게 워낙 작용과 반작용 같은 흐름이 있어서, 한쪽 힘이 강해지면 다른 힘도 같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어쨌든 명박 5년차,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기는 했겠지만, 혼돈과 격동은 그 어떤 순간보다 더 클 듯 싶다.

 

살면서 가장 실망한 순간을 생각해보면, 87 12월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열렸던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되면서, 그 실망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진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 충격이 굉장히 오래갔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떨까?

 

나는 이 공간에서 무얼하고, 어떻게 사태를 볼까, 그런 생각들을 좀 해보게 된다.

 

벌써 내년 계획을 이것저것 세워보게 되는데, 올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엉덩이 진득하게 붙이고 앉아있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바야흐로 격동의 시간으로 우리는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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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 그리고 순교의 마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가 가마솥에 들어간다, 그게 참 가슴 아리지만 세상의 이치 중의 하나이다. 토사구팽, 한신이 했던 얘기이다. 그게 싫었던 사람들은 그냥 산으로 들어갔다. 원래 그렇다.

 

<닥터 지바고>에 보면, 진짜 황당한 인간, 코마로프스키가 혁명 전에도 실력자이다가 혁명 후에도 여전히 실세인 장면이 나온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설탕을 들고 오는 장면, 참 그 장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

 

좋은 세상이 오면 어려웠던 시절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가족들끼리도 회후하고 말년도 편하게 보내고, 그래야 할 것 같다. 그게 사람의 마음인데, 그것과 가장 비슷한 모습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얘기에서 좀 본 적이 있다. 소년 연락병이이었던 미테랑이 프랑스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 되었고, 그 시절에 나치와 싸웠던 사람들이 담배가게의 독점적 주인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그런 역사가 잘 없다. 녹두장군은 그냥 죽었고, 왜정 시대에 뭔가 한 사람들은 아주 어려워졌다.

 

중학교 시절에 단짝 친구 중에 광복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주 잘 생겼고, 공부도 잘 했다. 외할아버지가 유명한 독립군이라서, 손자 이름을 광복이라고 하라고 그랬다는 거다.

 

다른 중학교 친구들은 대학 시절에 대부분 다시 만났는데, 끝까지 못 만난 친구가 바로 그 광복이였다. 대학에 못갔다는 얘기를 나중에 얼핏 건너 들었다.

 

유명한 독립군 영웅의 손자가 대학에 올 수 없었던 일, 그게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중학교 때, 나는 약간 세상에 대해서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어떤 흐름에서 혹은 어떤 피에서 나온 사람인지, 그 때 처음 알아봤다.

 

그 시절에 내가 알아본 거로는, 친할아버지는 왜정 때 마포서 형사였다는 것 같다. 정말 가난하게 물려준 게 없던 양반인데, 그 시절에 내가 이해하기로는 하여간 친일파라고 나는 이해했다.

 

나는 외할머니가 키워주셨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예전에 돌아갔으닊 나한테 아무 기억도 없다. 어머니가 고등학생 시절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동아일보 데스크에 계셨던 기자였던 것 같다. 하여간 친척들의 기억을 중학교 때 내가 모아본 거로는, 그렇다. 


중학교 시절, 나의 선조들에 대한 얘기들을 이리저리 맞춰보니, 친가나 외가나, 영락없는 친일파 집안에서 내가 태어난 거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여쭤봤다.

 

우리 외할아버지가 친일파 맞지요?

 

어머니 대답은, 정말 엉뚱했다.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할아버지를 존경해서, 집에 와서 유상 유상, 그렇게 불렀다.

 

친일파 맞네

 

근데 왜 이렇게 집안은 가난해, 양가가 다 친일파 집안인데?

 

그게 중학교 2학년 때쯤, 내가 세상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본 시절에 내린 결론이다.

 

양가 다 친일파이지만,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쫄딱 망한 집안.

 

하여간 내가 독립군 후손이거나, 아니면 그 시절에 뭔가 하려고 했던 집안 내력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명확해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야릇한 아버지의 집안에서 4년제 대학을 처음 간 게 나였고, 여기서 나온 첫 번째 빨갱이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한도에서 양가 통틀어서 여전히 조선일보를 안 보는 유일한 사람도 나이고, 명박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도 아마 어른들 중에서는 유일할 것 같다.

 

아마 내가 사실상 이 집안의 장남이고 장손이 아니었다면, 이 지독할 정도의 친일파 집안, 그리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최소한도의 나를 지키지도 못했을 것 같다. 보수적인 집안이라서, 유달리 장남의 권한이 강하다.

 

하여간 이런 삶을 살다 보니, 왜정 시대, 그리고 그 후의 삶에 대해서는 좀 민감하게 되었다.

 

토사구팽, 그게 한국이 만든 전통이다.

 

힘들게 새 세상을 만들면 고생한 사람이 최소한의 대가를 받는 게 인지상정,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역사를 만들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나는 레닌이 만들고자 했던 민중들의 공화국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 현실 속에서는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런 꿈들을 꾸어본 적이 있기는 했다.

 

명박과 함께, 진짜 지난 4년간 아주 이상한 시대를 만났다.

 

그 이상함의 강도가 너무 깊어서, 그걸 물려야 한다는 사람들이 한국에 생겼다. 그것도 아주 많이 생겼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인가?

 

근데, 그게 안 그럴 것 같다.

 

노무현 때 인수위원회 보면서, 이 정부는 망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공직 생활을 그만둔 적이 있다.

 

박원순의 서울시를 보면서, 그 때보다 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싸움을 1년은 더 해서, 정권을 바꾸어야 한다.

 

그 다음의 시기가 과연 우리가 바랬던 좋은 세상이 될 것이냐,

 

그런 고민과 함께 과연 지금 고통 받는 사람들이 그 시절에는 행복을 누릴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친일파들이 살아남은 역사가, 지금 명박과 싸워서 정권을 바꿔도, 조금은 다른 식으로 계속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격차를 줄이는 정도.

 

그래서 요즘 갑자기 토사구팽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세상 좋게 만드는 것,

 

그것은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Martyr, 문득 순교자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명박과의 싸움, 여전히 순교자가 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숭고해서가 아니라, 돌아올 것들에 대한 이해를 끊기 위함이다.

 

토사구팽, 그것은 오래 전부터 세상의 진리와 같다. 인간이 그걸 바꾸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는 순교자 같은 마음으로, 현세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요즘 김어준을 옆에서 보면,

 

놀기 좋아하고 발랄한 것 좋아하는 그가,

 

문득 순교자 같은 생각을 본인이 하고 있지 않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인간이 처리할 수 없는 일정을 살인적으로 강행하는 그를 보면서,

 

토사구팽이라는 단어, 그리고 martyr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대구 콘서트 이후 잠시 쓰러졌다는 그를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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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바쁘다고 말하는 걸 정말 싫어하고, 또 진짜로 가능하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데, 이게 쉽지가 않다.

 

요즘은, 진짜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쁘다.

 

어지간한 인터뷰는 그래도 조금씩 짬을 내서 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인터뷰로 못할 정도로 바쁘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좀 그렇다.

 

꼽사리는 생각보다 시간을 꽤 잡아 먹는다. 생각해보니, 이게 공중파에 비해서 진입장벽이 아주 높은 형식이라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시간 많이 먹을 것 같다.

 

벌써 진행자 한 명이 시작도 못해보고 교체되고, 김미화씨로 교체되었다. 어제 처음 회의를 가졌고, 바뀐 팀으로 내일 저녁 처음 녹음을 해본다.

 

준비한지 한 달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도 포맷이 잘 안 잡혔다.

 

힘들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힘들다.

 

그리고 시간은 더 많이 들고.

 

결국 김미화씨까지 투입하는 특단의 조치.

 

동생들, 니들 이제 죽었다고 봐, 한 두번 한 것도 아니면서 그걸 하나 제대로 못해서 나까지 움직이게 해?

 

원래는 KBS, 성기영의 경제 투데이, MBC 손에 잡히는 경제, YTN 생생경제, 최소한 이런 데보다는 재밌게 해볼 수 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한 거였는데.

 

그럼, 개콘이랑 경쟁하는 거냐고, 자꾸 그렇게들 물어본다.

 

무슨 실력으로.

 

어쨌든 두 세번 녹음을 해보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할 때, 한꺼번에 공개하기로 했다.

 

이게 서버 비용이 또 만만치가 않다.

 

이래저래, 고민이다.

 

실패하면 실패하는 데로 고민,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서버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뭐 그런 고민들이.

 

다음 일은 다음에.

 

가뜩이나 정신 산만한데, 한미 FTA 비준까지 얹혀서, 진짜 정신 없다.

 

원래도 만만챦게 복잡한 내용인데, 상황 자체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니, 진짜 죽을 맛이다.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그런대로 버티기는 하는데.

 

진짜로 바쁘다는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올 정도로, 요즘은 바쁘다.

 

내일은 일본 신문 한 곳하고 만나기로 했는데, 진짜 미룰 수만 있다면 미루고 싶은 심정이다.

 

, 이 와중에 돼지의 왕’, 극장 가기로 한 게 있고, 일요일은 청춘 콘서트로 대구 가는 게 잡혀있는 것 같다.

 

진짜, 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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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이후, 블로그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이 블로그는, 말 그대로 임시연습장이다.

 

언제까지 할지 잘 몰라서 임시이기도 하고, 또 진짜로 가끔은 초고들을 여기서 써보기도 한다.

 

여기에 속보에 대한 약간의 논평성 성격을 가진 글들을 좀 쓰기도 했고.

 

트위터는 안 했는데, 한미 fta 날치구 국면을 맞아,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하여간 그러고 나니, 블로그 운영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서, 잠시 생각해봤다.

 

책과 관련된 얘기들은 어차피 크게 바뀔 건 없으니, 사람들과 같이 상의해본다는 느낌으로 중요한 순간들에 대한 단상들 중심으로 계속 운영을 하고.

 

여기에 간간히 올렸던 에세이들은 발표하지 않았던 것들과 묶어서 12월경에 에세이집으로 나오게 된다. ‘마흔살을 모티브로 1년 정도 썼던 것들인데, 마흔살을 모티브로 쓰는 건 일단 끝났다.

 

가끔씩 소일하면서 쓰는 것들은 뭔가 주제가 있어야 쓰게 되는데, 1년 정도 마흔살이라는 주제를 썼었다.

 

이젠 이건 할만큼 했고, 또 나도 지겹고.

 

위로나 이런 주제는, 닭살 돋는 주제라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명박 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에 대한 위로, 그런 비슷한 글들을 요즘 써보고 싶어졌다.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냐, 제 정신이면.

 

이런 걸 어떻게 무겁지 않고, 가볍게 그리고 밝게 써볼 수 있나, 그런 질문들이 좀 있다.

 

블로그에서는 댓글 거의 안 달았는데,

 

앞으로 대선 때까지, 즉 명박 치하에서는 위로를 키워드로 하는 글에는 나도 나름대로 위로성 댓글이나 상담성 댓글을 달아볼까 한다.

 

어쨌든 이렇게라도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며 남은 시간들을 버텨야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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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 않기 위하여

 

사람은 살다 보면 지치게 된다. 지치지 않는다고 겉으로는 말해도, 인간이라는 것은 지치게 되어있다.

 

나이를 먹어가면, 누적된 피로감은 더 하다.

 

그러나 지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보면, 그들만큼 지쳐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눈에 피로가 하나 가득이다.

 

그리고 편의점에 가면, 더 지친 영혼들을 만나게 된다. 새벽에 편의점에 잠시 들를 때마다 이 고단한 영혼을 만나게 된다. 마음이 천근만근이 된다.

 

그러나 이 중에서 더욱 지치게 만다는 것은, 절대로 지치지 않을듯한 우리들의 명박, 우리는 지금 명박 4년차를 지나고 있다.

 

여러 가지 모임과 집단들이, 사실 나만 보고 움직이는 상황에서, 별로 지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지친다, 지쳐,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 아직도 1년이나 더 남았쟎아, 이런 썩을.

 

지난 몇 년 동안, 엄청 뭘 한 것 같은 느낌이 있기는 했는데, 돌아서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는 짓이고, 사실 나아진 것은 거의 없다.

 

내가 남들보다 덜 지친 것은, 어쩌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통을 덜 느꼈기 때문이라는,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4, 개인적으로는 참 절제된(!) 소비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DJ 시절에, 앨범을 사고, 스피커를 사고, 기타 등등, 그거에 비하면 이번 정부에서는 산 물건이 진짜 별로 없다.

 

내가 입는 옷들은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산 것들이 대부분, 그냥 헤지면 헤진 대로,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버틴다. 이 정권에서 내가 가장 많이 산 것은 운동화 정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 구두도 이번 정권에서는 한 켤레도 안 샀다.

 

언제 생활비가 없을지 모르고, 어떤 일을 겪을지 모르니, 조금만 내구재에 가까운 것들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 때 샀던 것들.

 

그래도 지치지 않는 건 아니다.

 

요즘 입고 다니는 가을 자켓은 총리실 시절에 입던 것이다. , 이것도 정권 2번을 거치고, 10년 되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새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소비를 해대는 것은 고양구.

 

쥐 좀 잡으려고 들였는데, 쥐는 안 잡고, 오줌만 싸댄다. 결국 세스코 불렀다, 견디다 못해.

 

그래도 지치지 않으려고 즐거운 공상을 하고, 가벼운 상상들을 자꾸 한다.

 

아직 가보지 않은 도시의 꿈 같은 산책길을 상상하기도 하고, 경제가 지금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는 그런 사회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가끔은 한나라당이 없어진 한국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상상을 멈추면, 너무너무 지치게 된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공상하고 상상하고, 자꾸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또 보지 않던 그림들을 보고 가끔은 전시회에도 가고.

 

음악회는 안 간다. 너무 관제 음악회처럼 바뀌어서, KBS 관현악단 같은 음악회에 갔다가는 더 심난하게 되고,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된다.

 

명박 2년차까지는 그래도 KBS 관현악단 정기공연 같은 것은 꼬박꼬박 챙겨서 갔었는데, 그들도 너무 나를 지치게 한다. KBS에 속한 모든 것들은, 즐거운 상상을 방해한다.

 

미술은 정부가 그만큼 장악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가끔 상상력을 지독하게 자극하는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

 

그림이 평온하게 해준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별로 돈이 되지 않는 그림을 그린 젊은 화가들의 몸부림과 이 시대를 지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묘하게 겹치면서,

 

가끔은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큰 돈 들지 않는 것 중에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명박의 숨소리를 사방에서 발견하면서, 이유도 없이 자아가 붕괴하게 된다.

 

나 혼자 지치지 않는 게 무슨 소용이람, 그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 흰 종이를 들어 상상을 하자.

 

명박 없는 세상을.

 

그리고 잠시 지친 영혼을 쉴 수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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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구는 겨울을 제일 좋아한다.

겨울이 되면 느무느무 추운 침대에서 나와 그래도 우리 집에서 제일 덜 추운 방에 식구들이 전부 모여든다. 이불 깔고 생활하는데, 고양구는 이불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그냥 두면, 지가 알아서 이불을 파고 들어가서 요러구 있는다.

자기가 이 집의 진짜 주인이고, 니들은 다 머슴이야, 이런 걸 의심해본 적이 없는 눈치다.

오늘은 국회 가능라고 급하게 스웨터를 집어있고 나갔는데...

아, 자는 동안에 오줌을 쌌다.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한미 FTA 문제로 급하게 집을 나서는데, 마당 고양이 일가가 쪼르르 달려나온다.

어이,

배고픈데,

밥 좀 주고 가지 그래.



왼쪽이 아빠 고양이, 오른 쪽이 엄마 고양이, 가운데가 아기 고양이.

이렇게 일가를 이루는 고양이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고양이 몇 마리, 그것도 가정을 이루고 같이 지내는 고양이 한 가족을 잠시라도 기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끔 태어난 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더 가서 찍어보고는 싶은데, 이보다 가까이 가면 놀라서 도망간다.)



이 고양이 일가를 보면서, 애뜻함과 애잔함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같이 느낀다.

길고양이는 얼마나 살지도 모르고, 언제 사고가 나서 한 마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가끔 밥을 주면, 아빠 고양이가 없거나, 새끼 고양이가 없거나, 그렇게 두 마리만 있거나.

혹은 아빠 고양이만 있거나,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머지 고양이들이 다 잘 있나, 그런 걱정이 든다.

그러다가 가끔 이렇게 세 마리가 다 있으면,

아직 이 가정에는 별 일이 없군...

그렇게 또 하루를 안도하면서 지낸다.


겨울을 이 집에서 날지, 아니면 겨울이 오기 전에 이사를 갈지,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

겨울을 날 거면, 그래도 봄 되기 전까지라도 이 고양이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주고 싶어서,

어떻게 개집이라도 놔줘야 하나,

뭔가 텐트를 치고 이불을 넣어주면 되나,

그런 걱정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겨울을 나면, 이 가족은 또 헤어지게 될 거고,

새로운 새끼들이 태어나고 새로운 가족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내가 돌보고 있는 한, 겨울에 추워서 얼어죽는 건 좀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이 상황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가 않다.

3년 전에, 길에서 죽어가던 세 달짜리 고양이 한 마리와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나한테 딸려서,

밥은 좀 줄 건가, 그러고 있는 고양이들이 좀 많아졌다.

얘네들 말고도 내가 밥을 주는 고양이들이 2~3마리 더 있다.


이렇게 일가를 이룬 녀석들만큼 대놓고 친한 척은 못해도,

길가다 골목길에서 만나면 도망가지 않고 아는 척 정도는 해준다.


삶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

행복이라는 것도 불안한 균형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햇살이 아주 따스하던 가을 오후,

국회에 나가던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고양이 일가에게 밥을 주면서,

삶을 잠시 생각해봤다.


첫 눈 올 때, 저 고양이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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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은 세 마리로 구성된 한 가족이다.

왼쪽이 아빠, 오른쪽 끝이 엄마, 그리고 가운데가 새끼.

얘네들이 벌써 3대째쯤 된다. 고양이들이 겨울 나기가 참 어렵다.

지난 겨울에 우리 집에 있던 아주 귀여운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건너편에 있는 빌라 보일러실에 쓰러져서 동네 동물병원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거 입양받아서 꼭 데려다가 키우고 싶었는데, 두 마리가 감당이 될까 싶어, 결국 포기.

지금의 이 가족들도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되는 데까지는 열심히 걷어먹일려고.

원래 새끼가 세 마리였었다.

장마철 한참 비내릴 때, 마루 앞 쪽에서 비 피하면서 장마 내내 옹알거리면서 지냈다.

가을이 되면서 새끼 두 마리는 보이지 않고, 결국 한 마리가 남았다.

한 달 전인가, 고양이들끼리 엄청 다툼이 났었다.

아마, 별로 필요없어진 아빠 고양이를,

너 나가,

엄마 고양이가 밀어내는 그런 싸움으로 안다.

마음이 안 좋아서 나가서 싸움도 말리고.

기본적으로는 길냥이용 대안 사료를 주고,

집에서 먹다 남은 생선 같은 거 있으면 준다.

오늘은 어제 선거 끝나고 아내랑 정종 한 잔 하면서 구워먹었던 꽁치 부스러기들.

먹이가 모자르다 싶으면, 아마 아빠 고양이가 이 집단에서 쫓겨날 거다.

예전에 마당에서 고양이 많이 기르던 시절,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 고양이가 제일 강해보이는 새끼 한 마리를 집에 두고 떠나고는 했다.

물론 집 안에서 키우면 그런 건 없지만, 마당에서 키우다보면 남은 새끼들이라도 잘 먹으라고,

엄마가 떠나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아빠 고양이는, 먹이를 주면 새끼와 엄마가 먼저 먹고, 자기는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그 때 먹는다.

꽁치 한 마리는 아직 몸이 남아있고, 두 마리는 진짜 머리만 남은 거였는데,

내가 보고 있는 동안에 아직 이 아빠 고양이는 냄새만 한 번 맡고 아직 먹지 않았다.

어제 준 사료도 아직 남아있고.

인류학 하는 사람들이, 수컷은 무엇에 필요한가, 그런 질문들을 종종 한다.


처음 이사왔을 때에는 우리 집 마당을 놓고 고양이들끼리 쟁탈전이 치열했었다.

며칠 마다 한 번씩, 밤이면 대혈투를 벌이는 소리가. 꼬리 잘린 고양이를 보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해 봄이 지나자, 이제 부부가 같이 지내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두 마리가 같이 있으면, 느닷없이 덤비는 침탈자로부터 자기 사는 데를 뺏기지 않아도 될테니.

아마 올해 겨울까지는 이 고양이 가족을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어차피 전세 기간도 끝났고, 이사를 생각 중이다.

지금 사는 데에서 먼 데는 아니지만, 그래도 1킬로는 족히 떨어지는 곳으로 가게 될 것 같은데.

이 고양이 식구들이 눈에 밟힌다.

어차피 겨울을 제대로 날지도 모르고, 내년 봄이 되면 지금의 새끼가 다시 이 마당의 안주인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세 번의 겨울을 나는 길고양이는 거의 없다.

보통 한 번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고, 세 번째 겨울에 수명을 마친다.

자연계에서의 균형이라는 것은, 늘 이런 임시적 균형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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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구는 이제 세 살인데, 여전히 오줌 엄청 싸댄다.

재래식 무기가 무섭다고 하더니, 진짜 무섭다.

요 몇 주간 좀 얌전하더니, 급기야 마루 바닥에다 그냥. 아, 돌겠네.

고양이 제일 많이 오줌을 싼 건, 지난 겨울에 '한국말 할 줄 알아요' 고양이 동영상을 틀었던 다음의 일이다.

눈이 나빠서 잘 보지는 못하는데, 동영상의 다른 고양이 소리를 들었더니, 우리 집에 다른 고양이가 와 있는줄 알고...

엄청 싸댔다.

발정기 아닐 때인데도, 잔뜩 긴장해서.

원래는 헤게루가 본명인데, 별칭 하나를 새로 만들어주었다.

싼나 미르달.

군나 미르달은 재밌는 경제학자이기도 하고, 노벨상도 탄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안 보는 듯 싶다.

스웨덴 상원의원도 하고, 전쟁 중에는 스웨덴 상공부장관도 했던 걸로 알고 있다. 현재의 스웨덴 경제의 기틀을 만든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스웨덴 경제 연구한다고 사람들 엄청 몰려갔는데, 미르달 책은 아직 번역된 것도 없는 것 같다.

발전경제학 한참 날라다닐 때, 스웨덴의 군나 미르달, 미국의 아버트 허쉬만, 프랑스의 베르나르 로지에, 그런 할아버지들의 전성 시대가 있었다.

바로 그 뒤를 이어, 쿠르그만과 리피에츠, 아, 진짜 아름답던 시절이었다.

장하준 선생이 군나 미르달 상 탈 때, 솔직히 엄청 부러웠다.

아, 좋겠다.

미르달의 제자들에게 인정받는 건, 장하준이 발전경제학 적통이라는 의미이다.

언젠가 다시 발전경제학 패러다임이 유행하는 시기가 오면, 장하준은 노벨경제학상 대기 순위 1번쯤 된다, 나이를 좀 더 먹으면.

고양에게 우리말 별칭도 하나 붙여주었다.

쌑지.

이거 뭐, 팥지도 아니고, 왜 이렇게 싸대나, 쌑지.

싼나 미르달양,

소리 지르고 있을 때 잘 들어보면,

쌑지, 쌑지!

내 이름은 쌑지, 그 지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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