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마당에 검은 고양이가 나타난 것은 지난 가을이 끝날 무렵이었다.

일년에 몇 번, 마당을 차지하기 위한 고양이들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2년 전에 이 싸움에서 승리한 누렁이가 일가를 이루고 산다.

물론 그렇다고 이 가족들만 마당에 사는 건 아니다.

나는 늘 먹이를 주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친하게들 지낸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일요일 오전, 검은 고양이가 마침 혼자 있던 아들 고양이를 밀쳐내기 위한 싸움을 걸었다.




늘 나를 보자마자 도망가던 검은 고양이에게 무슨 심경이 변화가 생겼는지, 혹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다른 동네의 고양이들도 먹고 갈 수 있게 나는 먹이를 넉넉하게 주는 편이다.

오늘 처음으로 사진을 찍을 잠깐의 시간을 낼 정도로, 검은 고양이가 가깝게 왔다.

(물론 실제로는 300미리 정도 되는 줌을 썼으니까, 사진으로 보이는 것처럼 가깝게 있지는 않다.)


사진을 보고서야, 엄청 큰 상처가 생긴 줄 알았다.

삶이란...

치료를 해주고 싶지만, 그럴 방법은 없다.


오후에 나오는데, 가족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들이 마당에서 같이 쉬고 있었다.

하여간 변화가 생기기는...

아빠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엄마 고양이와 아들 고양이가.

상처가 안 스러워서 특식으로 주는 사료를 줬다.

팽팽한 분위기...

누렁이들은 사료는 양보해도, 캔까지 양보하지는 않을 모양새다.


짜리하게 경계하고 있는 게 엄마 고양이.

그냥 내 마음에는, 검은 고양이의 상처가 안되서 뭐라도 좀 주고 싶었던 거지만.

그거야 내 생각이고.


사진으로 보니, 검은 고양이의,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보이는,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상처가 더 안스러워 보인다.

상처난 고양이는 물론이고, 꼬리 잘린 고양이 등, 동네에서 숱하게 보기는 하지만.

어쩐지 내가 거두어 먹이는 고양이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는 않다.



남 먹는 거 보지 말라고...

그래도 이 녀석들이, 혈연이 아닌 다른 고양이가 이렇게 가깝게 오도록 하는 건 처음 보았다.

며칠 이렇게 실낭이를 하다가, 그냥 식구처럼 살게 될 듯 싶다.



엄마는 벌써 다 먹었고, 아들이 남은 걸 핥는 중이다.

검은 고양이, 뭔가 냄새에 이끌렸는지, 나도 좀 줘...

해보지만 소용없다.



엄마 고양이가 아들이 남은 걸 다 먹을 때까지, 검은 고양이를 견제한다.

이 집 아빠 고양이는, 2달 전 구청에 끌려가서 중성화 수술을 하고 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동네 짱이라, 카리스마 만빵이다.


식사 끝...

물론 사료가 충분히 있어서, 검은 고양이도 굶거나 그럴 상황은 아니다.

그렇지만 상처가 너무 안되어서 따로 뜯어준 특식은, 구경도 못했다.


어쨌든 어제와 같은 전투 분위기는 아니고,

옆에까지 오도록... 사실은 많이 친해진 거고, 많이 익숙해진 것.

싸우면서 정든다는.


이 고양이 가족들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른다.

봄이 오면 또 새로운 짝들을 찾기 시작할 거고, 엄마들이 아기를 가지게 되면,

가족 구성에 전혀 새로운 변화들이 온다.


안방에 사는 야옹구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마당 고양이들.

carrying capacity, 수용능력이라는 생태학에서 사용하는 아주 딱딱한 개념 같은 것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삶...

이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내일은 동물병원 가서, 검은 고양이 뭐 먹는 약이라도 없나, 좀 알아봐야겠다.)

'남들은 모르지.. > 야옹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년 전의 부부 고양이  (1) 2012.02.27
하오의 연정  (3) 2012.02.26
겨울을 앞둔 고양이들...  (7) 2011.11.01
마당 고양이 가족  (9) 2011.10.27
싼나 미르달  (6) 2011.04.27
Posted by retir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