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삼촌, 굽은 나무가 선산지킨다고 하더니, 정말로 강하다...)

 

하룻밤 사이에 고양이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고양이별로 떠나갔다.

 

아직 11월 중순밖에 안되었는데, 때이른 한파가 찾아왔다. 이번에 태어난 아기들, 아직 이름도 못 붙여주었는데, 한꺼번에 떠났다. 봄에 태어난 네 마리 중, 두 마리가 살아남았는데, 목둘레를 감은 흰털로 인기를 독차지하던 생협도 이번 추위를 못 이겼다.

 

영화사 고양이 둘은, 아마도 인근 아파트촌에서 도둑고양이 퇴치한다고 놓은 쥐약을 먹은 것 같다. 천만이는 그날 바로 고양이별로 갔다. 대박이는 며칠을 죽어라고 버티더니, 병원에 입원하면서 사투하다가 천만다행으로 살아 돌아왔다.

 

고양이들과의 삶은 늘 이렇게 이별을 눈 앞에 둔 안타까운 사랑과 같다.

 

 

(한꺼번에 자식을 넷이나 잃은 엄마 고양이, 표정이 애잔하다.)

 

몇 달 동안 정들면서 살아왔던 생협은 늘 그 녀석이 놀던 화단 한 구석에서 발견되었다. 혹시라도 영역 다툼 때문에 밀려난 거 아닌가, 그렇게 마음을 돌리려고 했는데, 결국 추위에 얼어죽은 시신으로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일인 듯 싶지만, 늘 자신들이 먹고 놀던 그 어디에선가 고양이들의 사체를 발견하고 처리할 때마다, 경건해진다. 태어난지 한 달도 안 되는 아기 고양이들은, 정말로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같이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마다 몇 마리의 고양이를 새로 만나고, 또 몇 마리의 고양이를 이렇게 내 손으로 떠나 보낸다.  

 

펫 로스라는 말이 있다. 반려동물들과 헤어짐은 그 자체로 심한 정신적 충격이기에 그런 말이 생긴 것이다. 물론 매번 떠나 보낼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냥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니냐나는 그렇게 좀 신경을 무디게 하려고 한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말로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처음에 죽은 고양이 사체를 만질 때에는, 참 당혹스러웠다. 요즘은, 그래도 그 마지막 모습이라도 눈 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몸은 고양이별로 떠나고, 마음은 내 마음 속에 담아두려고 한다. 내 마음은 넓다. 내 마음 속에서라도 그 혼이 배불리 먹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으면 한다.

 

졸지에 자식 넷을 추위에 떠나 보낸 엄마 고양이의 모습이 애잔하다. 얼마나 끔찍하게 애지중지하던 녀석들인데, 그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간만에 살아남은 녀석들이 모여서, 어쨌든 사는 놈들은 또 살아야 하니까, 겨울을 준비하면서 몸에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아이들의 아빠인 검둥이가 간만에 집에 와서 개집 옆에 누워있는 걸 봤다. 녀석도 자식들이 고양이별로 떠난 걸 아나 보다. 어지간해서는 잘 보이지 않더니, 집에 왔다. 검둥이의 애인이면서, 바보 삼촌이 연애를 걸려고 했던 걸로 알고 있는 삼색 고양이 한 마리도 간만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갔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고양이별이여 영원하라!

 

그런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내가 찍은 생협의 마지막 사진... 정말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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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녹색당>에서 일하는 김현입니다.

그 사이 여러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 13일, 충남 홍성에서 <녹색당>이 또 한 번 창당대회를 가졌습니다.

총선에서 2% 이상을 획득하지 못하면 등록이 취소된다는 현행 정당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창당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당원들을 더 만나고 지역과 소통했던 과정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아시겠지만, 지난 5월에 <녹색당>은 2% 이만 등록취소 조항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고,

지난 달 10월26일, 서울행정법원은 이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여 위헌소송을 제청하였습니다.

두 번씩이나 창당대회를 치룬 것이 좀 억울하긴 하지만,

무척 환영할 만한 결정이었습니다. (관련 내용)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남았습니다.

2% 미만 등록취소(정당법 44조)는 서울행정법원도 위헌이라고 판단한 만큼, 헌재도 위헌 판결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정당법41조, 그러니까, 등록 취소된 정당의 동일 당명 사용 금지의 위헌여부입니다.

<녹색당>은 헌법소원을 제출한 상태인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듯합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녹색당>의 명칭은 무엇일까요?

지난 재창당대회 때 주요 안건으로 상정되었는데, 당원들은 <녹색당+>를 선택했습니다.

‘녹색당’이라는 명칭을 살리면서 여러 의미가 있는 ‘+’라는 부호를 하나 덧붙인 것입니다.

사전에 선관위에 공개적인 질문을 통해 기호나 부호 등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재창당 즈음, 선관위는 <녹색당+>는 <녹색당>과 동일명칭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정당 등록 접수가 각하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강하게 항의했지만,

지난 6개월간 재창당을 위해 준비한 것을 생각하면, 일단 정당등록 후에 싸워야겠다는 판단을 했고,

결국 한 발 물러서서 <녹색당더하기>라는 이름으로 등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녹색당>이라고 읽습니다.^^

선관위 직원들도 동일당명 사용 금지 조항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어서

헌재의 전향적인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녹색당>이라는 명칭을 되찾을 수 있지요. 헌재의 빠른 판결을 기대합니다.

재창당과 당명 이야기로 조금 길어졌는데,

제가 앞으로 2년 동안 <녹색당>의 사무처장을 맡게 된 것도 변화 중에 하나입니다.

그 동안 사무처장 직을 맡았던 하승수 전 처장이 공동운영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자리를 제가 이어받았습니다.

사무처장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고,

당원들과 당내 주요한 분들이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셔서 부담을 덜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큰 조직에서 중책을 맡는다는 무게감은 저를 짓누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동안 녹색정치를 희망했던 분들의 기대감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해나가겠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못 하는 일이 있으면 질책을, 잘 하는 일이 있으면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드린 편지가 너무 재미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재밌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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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새만금 특별법 법안 원문

1902437_의사국 의안과_의안원문_새만금 의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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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강동원강석호강창일고희선권성동권은희길정우김관영김기준김기현김도읍김동완김상민김상훈김선동김성곤김성주김세연김승남김영록김영우김영주김영환김용익김우남김윤덕김장실김재경김재원김종훈김춘진김태원김태흠김한표김 현김현숙김현미김회선김희정나성린남인순노영민노웅래노철래류지영문재인문병호민현주민홍철박근혜박남춘박대출박민수박민식박상은박성호박수현박영선박완주박인숙박지원박홍근배기운배재정변재일부좌현서기호서병수서영교손인춘송광호송영근신경림신경민신계륜신동우신성범신의진신장용신학용심윤조심학봉안규백안홍준안효대양승조여상규염동열오제세우윤근원유철유기준유기홍유성엽유승민유승희유인태윤관석윤영석윤후덕이강후이군현이명수이목희이병석이상민이상직이언주이용섭이원욱이윤석이이재이인제이재영李宰榮이종걸이종훈이진복이찬열이채익이철우이춘석이학영이해찬이헌승이학재인재근장병완장윤석전병헌전순옥전정희전하진전해철정갑윤정두언정몽준정문헌정병국정성호정세균정수성정우택정의화정진후정희수조경태조현룡주승용주호영진성준진 영최규성최동익최민희최봉홍최원식최재성최재천추미애한기호한선교한정애함진규홍문종홍일표홍지만황영철황우여황주홍황진하 의원(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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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새만금 해수유통

 

우리나라의 생태운동의 큰 출발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반핵, 하나는 새만금. , 크게 보면 그렇다.

 

새만금 개발파는 언제나 멋진 그림을 그렸고, 조감도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참, 멋진 그림들을 그렸다.

 

그러나 우리는 늘 꼬질꼬질했다. 언론은 늘 우리를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 근본주의자, 고리타분한 인간, 그렇게 몰아붙였다. , 꼬질꼬질한 건 맞다. 우린 늘 돈이 없었고, 우리를 치장할 줄도 몰랐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아내와 만난 건, 새만금 때의 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새만금 방조제에 아내가 올라가던 때의 일이다.

 

아내가 삭발을 했다. 정말 예뻤다. 나는 그녀가 그 정도로 살벌하게 에쁜 줄 몰랐다. 그러나 삭발을 하고 나니, 정말로 눈이 부시도록 예뻤다. 그래서 예쁘다고 그랬다. 아내는 내 말을 곡해했다. 삭발한 순간도 예쁘다고 해주는 남자물론 난 그렇게 화사하고 멋진 남자는 아니다.

 

어쨌든 아내는 그렇게 삭발을 하고 새만금 방조제로 올라갔고, 그 위에서 물대포를 맞았다. 내가 아내에게 선물로 했던 핸펀은 바다물 속에 풍덩했고, 가방도 바다 속에 풍덩.  

 

, 다친 데 없으면 되었다. 그러나 바다 위 방조제에서 활동가들에게 물대포를 쏜 것은 살인행위이다, 그걸 내가 잊지는 않는다. 아무리 삭발한 활동가라도 그냥 물에 빠지라고 물대포를 쏜 행정 행위에 대해서 잊을 수가 있겠나.

 

나는 그 삭발한 활동가와 결혼했다. 그리고 우리는 9년을 살았다. 아이가 안 태어나서 참 맘 고생 많이 했는데, 올 여름에는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

 

그 중간에 새만금과 관련된 사연도 많다.

 

어쨌든 사람들은 생태운동이라고 하면, 꼬질꼬질하고 꾀죄죄하다는 이미지를 덮어 씌우고, 세상 물정 모르는 옛날 사람처럼 몰아붙인다. 반대를 위한 반대주의자, 그렇게 해놓은 이미지 속에서도 어쨌든 우리는 결혼을 했고, 우여곡절 속에서도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나름대로는 재밌게 산다.

 

세련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아름답게는 산다.

 

오늘 블로그 이름을 새만금 해수유통으로 바꿨다.

 

이 문제에는 해법이 있다. 그리고 우리도 많이 양보했다.

 

마치 해법이 없는 것처럼 우리를 몰아붙이는 사람들과 지난 10년 내내 싸웠다.

 

오늘부터 내 이름은 새만금 해수유통이다. 그 때 아내가 20대였다. 20대 여인이 삭발하고 새만금 방조제에 올라가던 순간, 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그녀를 사랑했다.

 

어정쩡하게 새만금 개발하자고 다시 나서는 사람들에게, 아무 일도 없는 듯, 가만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적들의 수괴, 새누리당은 남경필이고, 민주당은 박지원이다.

 

니들이 죽나, 우리들이 죽나, 지금부터 전쟁이다.

 

4대강 돈은 다 빨아먹었고, 4대강 후속 사업은 국회 통과가 어려워보이니까, 이번에 눈을 돌린 게 새만금이다.

 

새만금 찬성하면서 토건 문제 있다고 하는 거, 그건 말이 안된다.

 

내 블로그 이름은 오늘부터 새만금 해수유통이다. 지금부터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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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나의 지도자는 아니다

 

나는 정책만 가지고 판단한다. 오랫동안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 입장을 밝히는 것은, 내 삶에서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현역 경제학자로는, 이번 대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활동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어쩌면 공개적으로 내가 판단하는 마지막 순간일 것 같다.

 

아주 솔직하게,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장점만큼 단점도 명확해서, 참 선택하기 어렵다. 그냥, 난형난제라고 하는 게 정말로 솔직한 내 심경이다. 박근혜라는 존재의 절체절명적 상황이 아니었다면, 누가 되거나 말거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모범생이라, 주어진 질문지에 답 없음이라고 쓰고 수험장을 나설 만큼 배짱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일단은 아는 만큼 쓰고, 또 그리고도 더 쓰고, 선처를 기다리는그렇게 살았다. 난 늘 그렇게 비겁하게, 답안지를 제출하는 사람이다.

 

fta에 대해서는, 두 사람 다 마찬가지다. 50 100, 어차피 이걸로 기준선이 나오지는 않는다. 사소한 차이가 있지만, 진짜로 대동소이.

 

결정적으로 내가 안철수가 나의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금융 공약을 보면서 갖게된 생각이다.

 

몇 가지 장식적인 얘기들이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금융위원회를 해체하는 것에 관한 일이다.

 

내 생각에는 해체하거나 말거나, 본질적인 것은 그런 건 아니다. 만약 금융 민주화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과는 다른 층위의 고민이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서, 금융위를 없앴다가 다시 만들었다가, 그리고 다시 없앴다가, 다시 만들었다가이건 영원히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아무 변화도 안 생길 허위 프레임에 관한 일이다.

 

일단 기계적으로 지금 안철수안이라면

 

제일 신나는 건 모피아들이다.

 

박정희 때에도 EPB와 재무부로 나뉘어서 그 사이에 견제가 있었고, 위계상으로는 EPB가 상위 기구였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모피아라는 단어를 만든 것들도 EPB 사람이고, 재무부 견제하는 의미로 쓰인 용어이다.

 

지금 안철수안대로 가면, 예전의 재무부를 다시 만들고, 거기에 경제기획원의 총괄기능도 갖고, 보너스로 여기에 더해서 예산 기능까지 다 갖는, 초대형 블록버스터급 모피아 만세, 그런 게 생긴다. 박정희 유신 경제보다 더 이상한 경제 통치 체계, 금융 관리체계로 가게 된다.

 

그리고 몇 년 지나 다시 문제가 생기면 이제 다시 금융 정책 기능을 또 떼어내, 그 이름이 뭐든 금융위 같은 것을 다시 만들자고 하고, 그걸 개혁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 정말 중요한, 금융 결정에 대한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시민의 결정권, 그런 건 앞으로도 최소한 10년 이상, 제대로 얘기해볼 공간도 없게 된다.

 

기타 등등여기서 파생적으로 생겨나는 문제와, 본질적으로는 무엇이 금융 민주화인가, 이자율 등 금융 자체에 대한 건 대선에 설령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논의하기 어렵게 된다.

 

이건 기술적인 얘기이고

 

보다 심각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이 누구를 통해서,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 그런 게 전혀 없고, 잘못이 있다고 얘기할 과정도 없고, 반대 의견을 수렴할 과정도 없다는 것이다.

 

금융 공약의 내용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밀실행정이 캠프라는 이유로 또 다시 반복되는 것

 

그건 우리가 가야 할 미래가 아니다.

 

간단한 공청회 몇 번 하거나, 하다못해 peer group review 해보는 거, 그게 그렇게 힘드나?

 

질문을 해본다면, 명박 시대에 이상한 방식으로 하나은행에 넘겨준 외환은행 어떻게 할 것인가, 멀쩡했던 산업은행을 민영화한다고 쪼갈라 놓은 것,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서부터 답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게 금융 공공성 혹은 금융 민주화의 1번 질문이다.

 

2번 질문은, 이자율과 환율에 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금융 자체의 문제로 순서를 매겨나가면 답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런 누구나 알고 있는 명확한 질문들이 있는데, 금융위 어찌할까, 그게 바로 모피아 프레임 아닌가? 엉뚱한 질문 던져놓고, 이게 개혁이다, 서로 논쟁하는 것, 그건 모피아 함정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판단을 해야 하고,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기준을 금융 민주화로 잡았었다.

 

안철수는 영웅이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는 하늘이 낸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부정하지 않겠다. 어쨌든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 준 사람이 안철수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영웅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되든, 성공하기를 빈다.

 

그가 통합후보가 되면, 나는 기꺼이 그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지도자는 아니다.

 

이게 그의 공약을 보고, 경제학자로서 내가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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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태어난 삼색 고양이와 봄에 태어난 강북걸 사이의 스킨쉽. 진정으로 다정함이 뭔지를 배우게 된다.)

 

가을이 막 깊어가기 시작할 때, 새로운 고양이들이 태어났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앞에 놓고는 삶에 대해서 잠시라도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사의 조철현 대표는 요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사에서 간략하게 니체 이전과 니체 이후에 대한 철학사 강의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삶에 대해서 대단한 통찰력이나 이해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삶에 대해서 너무 가벼워서도 안되고, 너무 무거워서도 안 된다는 정도의 생각을 한다. 고양이들의 삶은 짧다. 그리고 야생 고양이들의 사이클은 더더욱 짧다. 내가 돌보고 있는 동안에도 맨 처음 마당에 자리잡았던 모녀 고양이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 봄, 바보 삼촌의 아빠였던, 내가 아빠 고양이라고 부르던 녀석이 사라졌다. 봄에 태어났던 삼색이와 누렁이, 두 마리도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떠나갔다.

 

무엇인가를 돌본다는 것은, 참 익숙해지지 않는 헤어짐과 익숙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태어난 세 마리 아기 고양이들, 얘들 데리고 이사갈 생각하면 머리가 욱신욱신하다. 잽싸기는, 엄청나게 잽싸르고, 눈치도 엄청 빠르다.) 

 

요즘 돌본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 이래저래 내가 돌보는 고양이들이 열 마리가 되었다. 집안에 야옹구, 마당 고양이 7마리, 여기에 영화사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 다들 나름대로 신경을 써고 돌보고 있지만, 내년 봄에도 계속 볼 수 있는 고양이가 몇 마리인지, 나도 잘 모른다. 이사가면서 혹시라도 못 따라오는 고양이가 있을 수도 있고, 이사간 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양이가 있을 수도 있고. 게다가 영화사 사무실에 있는 고양이들은 겨울이 되면서 더 이상 사무실에 있기가 어려워져서, 입양 보낼 데를 사무실에서 수소문하는 중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약간씩 애잔하게 남아있다.

 

아주 간단한 얘기이지만, 돌보는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 과연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것인가,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인가, 그런 본질적인 질문이 가끔 든다. 고양이들과 이렇게 지내면서 나도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게으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규칙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만 한다. 내가 없으면 굶거나 아주 힘들어지는 존재가 있다는 게, 날 힘들 게 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변화를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씩 해보기 시작한다.

 

머리로 아는 것과 살면서 배우는 것 아니면 조금씩 느끼는 것, 그 사이에 간극이 많다.

 

어디에서 나왔던 얘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듣기는 아내한테 들은 얘기가 있다. 전문가 집단 중 수명이 가장 긴 집단이 정원사들이라는 것. 정원사가 죽으면 그가 돌보던 정원도 황폐해지고, 귀하게 대접받던 식물들도 그냥 시름시름, 죽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원사들은 그게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어쨌든 기를 쓰고 오래 살게 된다는 것.

 

나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키워주셨고, 그래서 내 유년기 기억의 대부분은 외할머니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는 않으셨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학교 들어가는 거는 보고 눈을 감아야 한다고 맨날 얘기하셨다. 그리고 나중에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거는 봐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결국은 박사학위를 받고 취직하는 것까지는 보셨고, 결혼하는 것은 못 보셨다. 현대 다니던 시절,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당시만 해도 조모상의 경우는 휴가가 안되어서, 장지에는 못 갔다.

 

돌봄과 사랑은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은 다른 듯싶다. 사랑은 집착과 한 끝발 차이다. 스토커와 짝사랑을 구분하기는 참 어렵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아동학대, 지금 사교육으로 자녀들을 내모는 부모들이 기본적으로는 다 아동학대 아닌가? 그러나 사랑과 구분하기는 어렵다. 돌봄은 집착으로 바뀌지는 않고, 스토커로 바뀌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 그것을 돌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을 해본다.

 

과연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것인가, 마당의 고양이들과 몇 년째 같이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고양이는 올해 두 번째 새끼를 낳았다. 봄부터 이미 건강이 썩 좋지는 않은 상태다. 이번에는 고등어를 구워서 주는데, 눈치 없는 바보 삼촌이 어김없이 나타나서 후다닥녀석의 별명이 그래서 바보 삼촌이 되었다. 봄 출산 때에는 엄마 고양이가 바이러스 감염까지 있어서 기침을 심하게 했다. 사람 천식 있는 것처럼 콜록콜록상당히 비싼 약을 사다가 캔에 타서 먹이는데, 녀석은 이 약 탄 캔까지 그냥 처묵처묵.

 

, 눈치 좀 봐라.

 

사랑이라는 게 뭘까, 이걸 이해하는 건 참 어렵다. 그러나 돌봄이라는 게 뭘까, 그건 그렇게 무겁거나 치명적인 속성이 없어서 더 편하다. 조금씩 서로를 돌보는 것, 이것은 다다익선이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으면, 특별한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가지지 않은 채로, 약간씩 서로 숨 쉴 공간을 만드는 것.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혹은 문화적으로나, 약간의 숨 쉴 공간이 지금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다. 우리는 시방, 너무 날 선 삶들을 살고 있다.

 

(햐, 녀석도 몸단장한다. 아직 성별도 제대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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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상 정치차별금지법

 

일명 연령차별금지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이 인권위에서 만들어질 때, 나도 자문그룹으로 참여를 했었다. 아직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기업체 같은 데에서 사람을 뽑을 때,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면 불법이다. 예를 들면 특정년도 졸업생을 명기하거나, 이런 걸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하면 고령자들이 노동 시장에서 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청년들이 약간 손해를 볼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볼 때 이게 옳기 때문에 법안은 무난하게 만들어졌다.

 

기업이 알아서 하는 거 아니냐, 지금 우리나라의 제도는 최소한 연령에서는 그렇게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요즘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좌파로 살아왔고, 내가 좌파라는 사실을 감춘 적도 없다. 한국에서 진보냐고 물으면 30% 사람 정도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좌파냐고 물으면 2% 정도가 그렇게 대답한다고 알고 있다. 2%, 이건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자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아니라, 대놓고 하는 차별이 많다. 많아도 정말 많다.

 

그러나 이건 내가 내린 판단에 대한 몫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묵묵히 짊어지고 살았다. 나는 내 양심에 따른 선택을 한 것이고, 그에 따른 차별도 그냥 감수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타당한 일인가, 그런 질문을 요즘 해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헌법은 사상의 자유와 같은 양심의 자유를 허용한다. 내가 헌법을 지키고, 법을 지키는 한에서, 좌파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요즘 기업체나 공기업 같은 데에서 하는 면접 같은 거,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진다. 어떻게든지 조금이라도 자신들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을 아예 취업 과정에서 배제시키고자, 별의별 수단을 다 쓴다.

 

근데 이거헌법 위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노동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인사 조치한다는 것, 이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진보성향을 가진 구직자를 걸러내기 위한 면접 관행, 이게 위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헌법은 그걸 보장하고 있는데, 지들이 뭔데 거기에 대해서 제약을 가하는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되고, 성별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 그리고 학벌을 이유로 차별해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상을 이유로, 차별해도 안 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 발전의 방향이다.

 

우리 경제의 다음 모습은 다양성이다. 우리가 요즘 가고자 하는 복지국가를 만든 나라들의 또 다른 힘은 바로 이 다양성에서부터 나온다. 미래 경제의 한 축이 다양성이다.

 

박근혜가 얘기하는 국민대통합이라는 것을, 경제적 관점으로만 본다면 이건 구시대 경제 패러다임이다. 더 많은 다양한 모습들이 나오게 해야 하는데, 자꾸 통합이라고 묶으면, 새로운 변종과 혁신을 지체시키게 된다. 궁극적으로 박근혜의 경제가, 뭐라고 디자인하든, 미래 경제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유 없는 차별을 자꾸 줄이고, 그 안에서 공동체적 연대의식 같은 걸 만드는 게 우리가 가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정치적 이유와 사상의 이유로, 취업할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공연히 기업 사람들이 떠들고 다니는 것 혹은 경제 관료들인 모피아들이 은근히 뒤에서 협박하는 것, 이건 위헌 아닌가?

 

나는 그 불이익들을 그냥 받았다. 그러나 나와 같은 판단을 했을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이 얘기는 좀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라는 이유로 혹은 진보라는 이유로, 고용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가 않는다. 능력이 적합지 않다거나, 조직내 의사결정을 저애한다거나, 다른 이유로 문제를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신념의 차이로 처음부터 걸러내기를 한다는 것은, 우리 헌법 체계에서는 잘못된 관행이다. 그건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좌파 비율이 10~15% 정도 된다.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2%만이 좌파라고 대답하는 것, 그건 차별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는 얘기이다. 사회에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는 많지만, 양심의 자유 때문에 차별받는 건, 그건 좀 아니다 싶다.

 

연령, 성별, 지역, 학력 그런 차별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한국이 발전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 혹은 정치적 선택에 따른 차별, 이것도 우리가 유지해야 할 미래의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고용상 정치차별금지법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무슨 권한으로 공공연하게 제한하는 것을 정당하게 보는 것인가? 나는 우리 안에 몸에 밴 차별 관행을 하나씩 줄여다나가면서, 더 많은 다양성을 시스템이 확보하는 것, 그게 미래 경제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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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꼽살의 미래는?

 

선대인과 나는 꼽사리다방송을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넘어간다. 경제 대안 미디어가 있어야 한다는 선대인의 열정 아니었으면 이 방송은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좀 게으른 종류의 인간이라, 묻어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 방송을 선대인 방송이라고 그러는 거다. 처음 만들자고 한 사람이 선대인이었으니.

 

어쨌든 나꼽살은, 외부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제작진들은 성공한 방송으로 평가한다. 나름대로는 보람도 있고, 만드는 과정이 재미도 있다. 보통 한 방송을 만드는 데 한 달 정도 걸린다. 처음 아이템 고르고, 이렇게 저렇게 방향을 잡고, 섭외가 필요한지 판단을 한다. 처음 얘기 나와서 기획을 시작해서 방송 만들어질 때까지, 보통 한 달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우리는 7명이 한 팀이다. 작가도 있고 매니저도 있고, 엔지니어도 있다. 지금 나꼽살팀의 피로감은 극한에 몰릴 정도이다. 늘 몇 개의 방송이 기획 중에 있으니, 방송 중의 긴장감은 물론이고 기타 업무로 누군가 쓰러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게다가 스탭진은 일종의 자원 봉사 형식이 되어서, 자신들의 생계도 별도로 책임져야 한다. 어떻게든 얼마라도 만들어서 그런 부담이라도 덜어주고 싶지만, 별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그냥 지금까지 끌고 왔다.

 

물리적으로 대선 이후에 더 하기가 어려운 게, 지금도 이미 오버 차지인 셈인데, 대선 날만 보면서 그냥 달려온 거라서 그렇다. 설날, 추석, 그럴 때에도 쉬지 않고 온 거라서, 이미 무리이다.

 

실무적으로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막방을 대선 전에 하느냐, 대선이 지나고 하느냐, 그 정도 문제이다. 나는 대선 전 마지막 방송을 막방으로 하자는 입장이다. 누군가 쓰러진다고 해도, 책임지기가 좀 어렵다.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한 회분이라도 줄이는 게 유리하다.

 

어쨌든 이제 막방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나꼽살의 향후 진로에 대해서, 내부에서도 조금씩 얘기를 시작해본다. 일단 과로고 오버 차지 상태이니까, 대선 끝나면 무조건 한동안 쉰다

 

한 번도 우리는 MT를 가거나 전부 모이는 회식도 제대로 못했다. 대선 끝나면, 제작진 전부 일본 같은 데라도 가서, 그냥 쉬자요렇게 의견을 모으는 중이다.

 

제일 좋고 부드러운 것은, 공중파에서 경제쇼 같은 형태로 주간 방송이 되고, 지역에서도 각 지역 버전으로 그렇게 네트워크 프로그램으로 가는 게 최적의 해법이다. 그러나 이건, 뭐 우리가 결정할 사안은 아니고.

 

두 번째 방식은, 지금과 유사한 방식으로 벙커에서 계속 녹음하는김어준 총수는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계속 지원하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 물론 의미는 있지만, 물리적으로 힘들다.

 

세 번째 방식은, 김용민이 대안 미디어를 차린다는 전제 하에서, 유사한 경제방송을 그 쪽에서 진행하는 것. 물론 역시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나는 대선 후에도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뒤를 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

 

, 이런저런 제약 조건들이 있으니까, 아직 뾰족한 다음 진로에 대해서 누구도 해법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독지가가 있어서 지원을 해주면 좋겠지만, 뭐 그런 독지가는 없다가 경험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상황이다.

 

기타 별로 실현 가능성이 없는, 시민들의 방송 같은 것을 만들고, 등등의 얘기들도 있다. 선대인도 많이 지쳤다. 방송 끝나면 아내와 세계 여행하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경제방송으로는 이만큼 성공한 방송을 또 다시 기획해서 만들기가 쉽지는 않다. 경제 주류의 목소리만으로는 견제가 어렵다. 기업과 모피아들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가 균형을 맞추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악으로 깡으로 끌어가기에는 이미 한계까지 왔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고민을 해보기는 하지만, 아직 마땅한 해법은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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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년 후

 

같은 상황에서 1년 후, 5년 후, 10년 후 그리고 30년 후를 나누어서 생각해보는 것은 학자로 살면서 몸에 밴 습관이다. 물론 생각한다고 해서 맞춘다는 보장은 없다.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야말로 ceteris paribus, 다른 상황이 동일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해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물론 우리의 삶은 대개 한치 앞도 모르는 상태에서 움직인다. 그러니 길게 앞으로 올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올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귀찮을 뿐이지.

 

일요일 오후, 창 밖으로 바보 삼촌이 마당에 내려 앉은 산비둘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한참 보았다. 저들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5, 명박 5년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삶의 안정성이라는 것이 많이 떨어졌다. 직업의 안정성이 농경사회에서 벗어나며 자본주의가 잠시 찾은 타협책이었는데, 그게 지금 무너지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5년 후에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될까? 혹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썩 만족스러워서 5년 후에도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까?

 

파리에 살던 시절, 식당에서 서빙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스믹이라고 부르는, 최저생계비 약간 넘는 돈을 받았는데, 사실 당시 프랑스의 상황이라면 다 때려치우고 식당에서만 일해도 한국에서 어벙벙한 직업을 갖는 것보다는 나은 조건이었다. 당시 식당에서 일하던 젊은 사람들이 그 분야에서 평생을 보내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고 신기했던 적이 있었다. 불어로 레스토랑 업계를 restauration이라고 부른다. 이걸 하나의 분야로 생각하고, 그 안에서 전문직이 되기 위해서 교육 계획 같은 걸 세우는 걸 보면서, 정말로 놀랐었다. 이건 우리식 사농공상 감성으로 간단하게 이해할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garcon de café, 커피 종업원에 관한 비유를 든 적이 있다. 누구를 위하여 커피 종업원은 커피를 나르는가? 정말로 그 커피 종업원들이 쟁반에 커피를 받쳐든 채 달리기 시합을 하는 걸 보면서 신기했던 적이 있다. 루디크 혹은 루덴스라고 부르는 유희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종종 인용되는 샤르트르의 구절이다. 커피 종업원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교를 부리면서 커피를 나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질문이다.

 

영화 <디어 헌터>에 보면 미국의 철강 노동자들이 중고 세단이지만 어쨌든 세단을 타고 엽총을 들고 사슴 사냥을 하면서 휴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풍요의 자본주의라고 지칭되던 그런 시절의 문화적 특징들이다. 이런 것들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독특한 일상성인데, 그 안을 지탱하는 것은 안정성이라는 조건일 것이다. 슘페터가 아주 오래 전에 했던 창조적 파괴라는 단어를 자본주의가 전면적으로 다시 내세우면서 혁신을 맨 앞에 얹은 것은 9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이후로 안정성을 강조한 나라들이 있고, 안정성을 깨는 게 발전이라고 생각한 나라들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북구의 소규모 경제를 운용하는 나라들이 국가와 시민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안정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갔고,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은 안정성을 깨는 게 발전이라고 여겼다. 우리의 경우는 조금 더 심각했다. 안정성을 극단적으로 깨고, 그게 국가가 좋아지는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정계와 관계의 윗자리를 차지했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삶의 안정성이라는 것이 바닥으로까지 추락하게 된 것 아닌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라고? 고위직 중에서도 자살로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로 이건희 일가나 정몽구 일가쯤 되는 사람들 빼고는 한국에서는 지금 그 누구도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괴로우면 자신이 기분 좋아지는, 그 지독한 상대 비교의 논리가 아니라면, 지금 어느 누구의 삶도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명박처럼 어쨌든 하는 일마다 하늘이 돕고, 땅이 돕고 그리고 쥐가 돕고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사람의 아들의 삶 역시 안정적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 거스를 수 없는 변화도 없다. 카메라에 쓰는 필름 메이커들이 회생하기는 어렵고, 거기에 따른 각종 장비와 기술들도 일부 하이엔드나 복고 취향이 아니라면 과거처럼 전성기 영광을 다시 보기는 어렵다. 그런 큰 변화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마지막 LP 공장이 문을 닫는 걸 본 게 몇 년 전인데, 올해 다시 LP 공장이 문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죽어라고 다시 LP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개인의 삶의 안정성을 그야말로 밀크 쉐이크처럼 돌려버리거나 스무디 만들듯이 헤집어놓는다고 해서 그 사회가 발전한다는 논리는 좀 이상하다. 사회의 속도가 빠른 것과 개인 삶의 안정성이 지켜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개개인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는 것은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부의 축적과는 좀 다른 얘기이다. 그건 흔히 말하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와도 다르다. 성장이 무조건 높다고 해서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인민재판 방식으로 늘 재분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닐 성 싶다.

 

5년 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의 진짜 의미는 5년 후가 어떻게 될지 그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5년 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던 현 상황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우리의 5년 후, 그 때도 역시 대선 기간일 것이다. 그 때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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