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나의 지도자는 아니다

 

나는 정책만 가지고 판단한다. 오랫동안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 입장을 밝히는 것은, 내 삶에서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현역 경제학자로는, 이번 대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활동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어쩌면 공개적으로 내가 판단하는 마지막 순간일 것 같다.

 

아주 솔직하게,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장점만큼 단점도 명확해서, 참 선택하기 어렵다. 그냥, 난형난제라고 하는 게 정말로 솔직한 내 심경이다. 박근혜라는 존재의 절체절명적 상황이 아니었다면, 누가 되거나 말거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모범생이라, 주어진 질문지에 답 없음이라고 쓰고 수험장을 나설 만큼 배짱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일단은 아는 만큼 쓰고, 또 그리고도 더 쓰고, 선처를 기다리는그렇게 살았다. 난 늘 그렇게 비겁하게, 답안지를 제출하는 사람이다.

 

fta에 대해서는, 두 사람 다 마찬가지다. 50 100, 어차피 이걸로 기준선이 나오지는 않는다. 사소한 차이가 있지만, 진짜로 대동소이.

 

결정적으로 내가 안철수가 나의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금융 공약을 보면서 갖게된 생각이다.

 

몇 가지 장식적인 얘기들이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금융위원회를 해체하는 것에 관한 일이다.

 

내 생각에는 해체하거나 말거나, 본질적인 것은 그런 건 아니다. 만약 금융 민주화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과는 다른 층위의 고민이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간단히 말해서, 금융위를 없앴다가 다시 만들었다가, 그리고 다시 없앴다가, 다시 만들었다가이건 영원히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아무 변화도 안 생길 허위 프레임에 관한 일이다.

 

일단 기계적으로 지금 안철수안이라면

 

제일 신나는 건 모피아들이다.

 

박정희 때에도 EPB와 재무부로 나뉘어서 그 사이에 견제가 있었고, 위계상으로는 EPB가 상위 기구였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진 모피아라는 단어를 만든 것들도 EPB 사람이고, 재무부 견제하는 의미로 쓰인 용어이다.

 

지금 안철수안대로 가면, 예전의 재무부를 다시 만들고, 거기에 경제기획원의 총괄기능도 갖고, 보너스로 여기에 더해서 예산 기능까지 다 갖는, 초대형 블록버스터급 모피아 만세, 그런 게 생긴다. 박정희 유신 경제보다 더 이상한 경제 통치 체계, 금융 관리체계로 가게 된다.

 

그리고 몇 년 지나 다시 문제가 생기면 이제 다시 금융 정책 기능을 또 떼어내, 그 이름이 뭐든 금융위 같은 것을 다시 만들자고 하고, 그걸 개혁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 정말 중요한, 금융 결정에 대한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시민의 결정권, 그런 건 앞으로도 최소한 10년 이상, 제대로 얘기해볼 공간도 없게 된다.

 

기타 등등여기서 파생적으로 생겨나는 문제와, 본질적으로는 무엇이 금융 민주화인가, 이자율 등 금융 자체에 대한 건 대선에 설령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논의하기 어렵게 된다.

 

이건 기술적인 얘기이고

 

보다 심각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이 누구를 통해서,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는지, 그런 게 전혀 없고, 잘못이 있다고 얘기할 과정도 없고, 반대 의견을 수렴할 과정도 없다는 것이다.

 

금융 공약의 내용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밀실행정이 캠프라는 이유로 또 다시 반복되는 것

 

그건 우리가 가야 할 미래가 아니다.

 

간단한 공청회 몇 번 하거나, 하다못해 peer group review 해보는 거, 그게 그렇게 힘드나?

 

질문을 해본다면, 명박 시대에 이상한 방식으로 하나은행에 넘겨준 외환은행 어떻게 할 것인가, 멀쩡했던 산업은행을 민영화한다고 쪼갈라 놓은 것,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서부터 답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게 금융 공공성 혹은 금융 민주화의 1번 질문이다.

 

2번 질문은, 이자율과 환율에 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금융 자체의 문제로 순서를 매겨나가면 답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런 누구나 알고 있는 명확한 질문들이 있는데, 금융위 어찌할까, 그게 바로 모피아 프레임 아닌가? 엉뚱한 질문 던져놓고, 이게 개혁이다, 서로 논쟁하는 것, 그건 모피아 함정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판단을 해야 하고,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기준을 금융 민주화로 잡았었다.

 

안철수는 영웅이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는 하늘이 낸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부정하지 않겠다. 어쨌든 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 준 사람이 안철수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영웅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되든, 성공하기를 빈다.

 

그가 통합후보가 되면, 나는 기꺼이 그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지도자는 아니다.

 

이게 그의 공약을 보고, 경제학자로서 내가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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