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상 정치차별금지법

 

일명 연령차별금지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이 인권위에서 만들어질 때, 나도 자문그룹으로 참여를 했었다. 아직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기업체 같은 데에서 사람을 뽑을 때,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면 불법이다. 예를 들면 특정년도 졸업생을 명기하거나, 이런 걸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하면 고령자들이 노동 시장에서 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청년들이 약간 손해를 볼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볼 때 이게 옳기 때문에 법안은 무난하게 만들어졌다.

 

기업이 알아서 하는 거 아니냐, 지금 우리나라의 제도는 최소한 연령에서는 그렇게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요즘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좌파로 살아왔고, 내가 좌파라는 사실을 감춘 적도 없다. 한국에서 진보냐고 물으면 30% 사람 정도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좌파냐고 물으면 2% 정도가 그렇게 대답한다고 알고 있다. 2%, 이건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자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아니라, 대놓고 하는 차별이 많다. 많아도 정말 많다.

 

그러나 이건 내가 내린 판단에 대한 몫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묵묵히 짊어지고 살았다. 나는 내 양심에 따른 선택을 한 것이고, 그에 따른 차별도 그냥 감수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타당한 일인가, 그런 질문을 요즘 해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헌법은 사상의 자유와 같은 양심의 자유를 허용한다. 내가 헌법을 지키고, 법을 지키는 한에서, 좌파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요즘 기업체나 공기업 같은 데에서 하는 면접 같은 거,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진다. 어떻게든지 조금이라도 자신들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을 아예 취업 과정에서 배제시키고자, 별의별 수단을 다 쓴다.

 

근데 이거헌법 위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노동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인사 조치한다는 것, 이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다.

 

진보성향을 가진 구직자를 걸러내기 위한 면접 관행, 이게 위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헌법은 그걸 보장하고 있는데, 지들이 뭔데 거기에 대해서 제약을 가하는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되고, 성별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 그리고 학벌을 이유로 차별해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사상을 이유로, 차별해도 안 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 발전의 방향이다.

 

우리 경제의 다음 모습은 다양성이다. 우리가 요즘 가고자 하는 복지국가를 만든 나라들의 또 다른 힘은 바로 이 다양성에서부터 나온다. 미래 경제의 한 축이 다양성이다.

 

박근혜가 얘기하는 국민대통합이라는 것을, 경제적 관점으로만 본다면 이건 구시대 경제 패러다임이다. 더 많은 다양한 모습들이 나오게 해야 하는데, 자꾸 통합이라고 묶으면, 새로운 변종과 혁신을 지체시키게 된다. 궁극적으로 박근혜의 경제가, 뭐라고 디자인하든, 미래 경제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유 없는 차별을 자꾸 줄이고, 그 안에서 공동체적 연대의식 같은 걸 만드는 게 우리가 가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정치적 이유와 사상의 이유로, 취업할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공연히 기업 사람들이 떠들고 다니는 것 혹은 경제 관료들인 모피아들이 은근히 뒤에서 협박하는 것, 이건 위헌 아닌가?

 

나는 그 불이익들을 그냥 받았다. 그러나 나와 같은 판단을 했을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이 얘기는 좀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라는 이유로 혹은 진보라는 이유로, 고용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가 않는다. 능력이 적합지 않다거나, 조직내 의사결정을 저애한다거나, 다른 이유로 문제를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신념의 차이로 처음부터 걸러내기를 한다는 것은, 우리 헌법 체계에서는 잘못된 관행이다. 그건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좌파 비율이 10~15% 정도 된다. 그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2%만이 좌파라고 대답하는 것, 그건 차별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는 얘기이다. 사회에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는 많지만, 양심의 자유 때문에 차별받는 건, 그건 좀 아니다 싶다.

 

연령, 성별, 지역, 학력 그런 차별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한국이 발전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 혹은 정치적 선택에 따른 차별, 이것도 우리가 유지해야 할 미래의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고용상 정치차별금지법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무슨 권한으로 공공연하게 제한하는 것을 정당하게 보는 것인가? 나는 우리 안에 몸에 밴 차별 관행을 하나씩 줄여다나가면서, 더 많은 다양성을 시스템이 확보하는 것, 그게 미래 경제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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