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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6 샤넬 책 몇 권... 1
  2. 2009.09.06 코코 샤넬 8
  3. 2009.09.04 Panarchy 3
  4. 2009.08.25 쿡 티비, 그리고 <타짜> 12
  5. 2009.08.24 김현진, 참 여러 사람 부끄럽게 만든다... 7
  6. 2009.08.09 밀턴 프리드만과 카르납 3
  7. 2009.07.30 서울 수돗물, 까칠한 고양이 6
  8. 2009.07.29 박찬수의 <청와대 vs 백악관> 1
  9. 2009.07.27 이사카 코타로의 <마왕> 2
  10. 2009.07.27 고양이들의 순애보 2

 

기왕 샤넬 영화 본 김에, 전기라도 다시 읽고 가려고, 저녁 때 교보 나간 김에 책 몇 권 샀다.

 

전기라는 것도 그렇게 평가에 관한 것들도, 시대가 바뀌면 새로 해보는 것들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럭셔리 : 유혹과 사치의 비밀>은 상당히 중요한 책으로 알고 있는데, 1쇄도 아직 못 턴 것 같다.

 

같은 패션 책이지만, 스타일이라는 코드로 묶여서, 이런 걸 입어라 하면 날개 돟친 듯이 팔리지만, 하다못해 마케팅 아니면 경영학 코드로 묶여서 분석서로 분류되면, 한쪽 구석에 처박히게 된다.

 

패션으로 연구팀을 구성할까 말까, 몇 달 전부터 동료들과 좀 고민을 했었는데, 아직 문화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팀을 구성할 단계까지, 우리의 공부가 가 있지 못하다.

 

나는 못가지만, 가을 프리미어 비전이나 밀라노의 텍스타일 시장이 열릴 때, 이번에는 연구진들이 어떻게든 출장에 가서 좀 분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하는 중이다.

 

내년이면, 그래도 내가 직접하지 않는 연구라도, 젊은 연구진들이 집중해서 이런 코너코너를 분석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나 기업들 등이라도 쳐서 연구 자금이라도 좀 만들어주고 싶다.

 

큰 돈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연구팀을 꾸리려고 하면, 언제나 돈이 왠수다.

 

이넘의 돈, 도대체 공부하는 동네에는 왜 이리 얼굴도 안 보여주고 지랄이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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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영화 이야기 2009. 9. 6. 00:13

간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코코 샤넬>...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 가브리엘 샤넬에 대한 얘기를 좀 길게 썼고, 사실상 결론이 가브리엘 샤넬인 셈이라서 봤다만...

 

샤넬 얘기를 가지고 이렇게 영화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구나, 그리고 오드리 또뚜가 나오는 데도 이럴 수 있구나, 사실상 경악을 금치못하게 재미는 없었다.

 

샤넬이라는 최고의 상품을 가지고도 이렇게 장사를 못하는 수도 있나 싶었다. 꺄날 +에서 후원한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재미는 있었는데, 도대체 이럴 수가 있나.

 

지금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샤날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었고, 내가 샤넬을 얼마나 좋아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니까, 더 괴로웠다.

 

그래도 배운 건 있다. 한국은 망할 것이라는 점.

 

용산 CGV에서 봤는데, 관객이 열 명이 채 안되었는데, 이 관객들은 아주 특색있는 사람들이었다.

 

40대 중후반은 될듯한 부부가 전부였는데, 아마 샤넬을 동경하거나 흠모하거나 혹은 소유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남편을 끌고 온,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내 극장 생활에서 이렇게 중년 부부들로만 차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 본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마크 제이콥스의 옷을 입는다거나 아니면 샤넬의 옷을 입는다고 해서 내가 뭐라고 그런 적은 없다.

 

샤넬의 옷을 입는다거나 샤넬의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샤넬의 혁명 정신을 소비하는 것이고, 그래서 일종의 언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내에서는 별 중요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푸르동의 저서를 샤넬이 읽게 된다. 그리고 푸르동의 책을 다 읽은 샤넬은, 아마 틀림없이 다음 책으로 니체를 읽게 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자본론>을 모든 것의 전부라고 아는 사람들은 푸르동을 아주 이상한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고, 비과학적 접근을 한 사회주의자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 프랑스 좌파의 역사에서 푸르동은 아주 중요한 사상가이다.

 

푸르동과 샤넬의 만남, 그리고 그의 혁명성 같은 것들은 아직도 채 해석이 끝나지는 않은 일이라고 알고 있다.

 

하여간 충격적인 것은...

 

샤넬을 그렇게 좋아하면 샤넬에 대해서 좀 궁금해지기라도 할텐데, 그런 흔적은 극장에서 전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아니, 샤넬의 정신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샤넬처럼 돈 벌고 싶지는 않은가 보지? 샤넬처럼 돈 벌고, 샤넬처럼 신나게 사는 것도 즐거운 일 아닌가?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그래도 샤넬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 샤넬을 소비하는 사람들 중에서 전혀 궁금증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 절망하고, 이 나라가 결국 망하기는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세상에는 샤넬을 소비하는 사람과 샤넬과 같이 무엇인가를 만드는 두 부류의 존재로 나뉘어진다.

 

지금 좌파가 해야 할 일은, 내 평소의 소신이라면, 샤넬과 같이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샤넬처럼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한국은 소비하면서도 도대체 뭘 소비하는지도 모르고, 생산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집단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샤넬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가슴이 설래이지 않는 사람들, 도대체 입에 밥이 들어갈까, 그런 생각이 좀 들었다.

 

샤넬을 소비하면서 샤넬에 대해서 궁금해서 어쨌든 극장까지 오는 40대 주부들과, 역시 샤넬을 동경하면서도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20대 여성들이 경쟁하면 누가 이길까?

 

어쨌든 영화라도 보는 아줌마들이 결국에는 파라다임 싸움에서 이기게 되지 않을까?

 

샤넬도 푸르동 정도는 읽고, 자본론도 읽었고, 니체도 읽었다. 그리고 20세기가 열었다.

 

샤넬이 연 20세기는 버나드 쇼와 같은 남자들이 열어제낀 그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이거 진짜... 샤넬 전기라도 한 번 쓰던지 해야지.

 

아르테꼬의 진지한 전사들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국가 장식학교로 번역되나? 하여간 정부에서 연간 수 백만원씩 재료비 지원하면서 패션을 배우는 사람들을 좀 안다.

 

20대 초반에, 샤넬이 사치품이라고 한 마디 했다가, 아주 뼈도 못추리게 프랑스 넘들한테 논쟁으로 당했던 기억이 소록소록.

 

넌 샤넬을 이해못하면, 20세기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아주 처절하게 당하고, 뼈도 못추리게 당한 적이 있다.

 

하긴, 그러면 뭐하나...

 

프랑스도 사르코지한테 넘어가고, 자신들이 자랑하는 그 생산체계도 마크 데이콥스 같은 뉴욕 좌파들에게 결국 조금씩 넘어가는 중인데 말이다.

 

한국은 패션계로 들어오면, 우파와 극우파들이 득실득실하다.

 

프랑스는 패션계의 마네킹이라고 부르는 모델들까지, 좌파들이 득실득실하다.

 

이 차이가 생산과 소비의 차이인 것 아닐까, 그런 가설들을 하나 가지고 있다.

 

우파들이 패션 시장에서 쪽도 못 쓰는데, 우파 코드로 대구에서 밀라노 프로젝트 하다가 결국 지방 토호들 주머니만 채워주게 되었다.

 

우파들은 생산, 특히 이론과 예술 분야에서 아주 약하기 때문에, 결국 밀라노 모델이든, 파리 모델이든, 프랑스 모델이든, 그런 생산의 영역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좌파 코드와 좌파의 유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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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rchy

독서감상문 2009. 9. 4. 18:23

 

 

21세기에 나온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한 권 꼽으라고 하면 나는 이 책을 꼽겠다.

 

그리고 지금 명박 시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책 한 권을 꼽으라고 해도, 역시 나는 이 책을 꼽겠다.

 

지금 4대강 살리기와 정반대의 사례가 미국의 에버글레이즈 사례인데, 주민들이 참여해서 뭔가를 바꾼 지역은 아주 많은 반면, 에버글레이즈는 생태학자인 홀링과 그의 동료 과학자들이 직접 참여해서 바꾼 대표적인 사례이다.

 

에버글레이즈에 대한 생태학자들의 연구와 성과가 사회 시스템 전체에 적용되어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 파나키라는 책이다.

 

(지금 쓰고 있는 '생태 유토피아'에서 상당히 중심 텍스트로 이 책을 다루고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이 책을 번역하려고 몇 팀이 시도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 두껍고, 논문집이라서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히 번역에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한 번 번역팀을 구성해서 번역해볼려고 하기는 했었는데, 워낙 엄두가 나는 일이 아닌 데다가, 받아줄 출판사가 도저히 없어서 포기한 적이 있다.

 

알리딘 수입가로 75,000발, 읽으면 현 상황에서 상당히 도움이 될만한 책인데, 너무 비싸서 도저히 사서 보라고는 말 못하겠다.

 

http://www.resalliance.org/593.php

 

이 책을 읽고, 뭔가 실천하자고 한 사람들이 만든 resilience alliance라는 그룹이 있다.

 

어떤 얘기들 하시는지, 한 번쯤 보셔도 좋을 듯.

 

(얼마 전에 크루그만 글을 여기서 봤는데, 지금까지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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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에 유학 시절에 케이블 TV를 잠깐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나는 TV는 공중파만 보는 편이다. 유학 시절부터 머리 맡에 CD를 켜거나 TV를 틀어놓는 게 습관이 되어서, 남들처럼 조용한 방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차 마시는 중에 책도 보고, 글도 쓰고.

 

나는 조용해지면 잡념이 늘어서, 대체적으로 뭐라도 틀어놓는 편이다. 이게 참 성격 이상하다. 시끄러운 데에서는 아무 일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조용한 방에서는 또 아무 것도 못한다.

 

대체로 그렇게 살았는데...

 

이사하고 나서는 청와대랑 등을 대고 북악산 한 가운데의 계곡 입구에 살고 있는데, 여기가 지독할 정도의 난시청 지역이다. 튜너를 위해서 꽤 비싼 FM용 안테나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도 전혀 통하지가 않는다.

 

여덟달만에 포기하고 결국 케이블을 들이기로 했다. 매주 PD 저널에 칼럼을 쓰는데, TV는 하나도 보지 않고 PD들에게 뭔가 말을 한다는 것도 영 양심상 꺼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비 내리는 호남선'을 참으면서 선덕여왕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쿡 티비를 달았다.

 

아... 이게 스타 리그가 안 나온다. 아무 생각없이 시간 때우기에는 스타 크래프트 만한 게 없는데.

 

그 대신에 VOD 기능이 있다. 좀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것 같지만, 하여간... DVD 보는 마음으로 너무 뻔해 보이는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리하여 개시 기념으로 영화 한 편을 때렸는데, 이게 <타짜>다. <타짜>는 옛날에 만화로 좀 보기는 했는데, 뜨문뜨문 본 이유 때문에 그렇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섹스, 반전, 돈, 전형적인 B급 코드였다.

 

이 영화는 아마 한국 영화사를 정리한다면, 결국은 김윤석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영화 정도로 남지 않을까... 싶다.

 

호러 특히 괴기 영화나 무서운 영화에 대해서는 나도 한 B급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가 혀를 내두룰 정도로 무섭다고 느낀 영화가 바로 <추격자>였다. 솔직히, 이 영화는 이제는 좀 끝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공포가 끝까지 같고, 정말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김윤석은... 간만에 보는 좋은 배우 같다. 그는 <즐거운 인생>에서도 아주 느낌이 좋았었다.

 

사람마다 스타일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송강호를 비롯한 몇 명의 맨 앞에 서 있는 배우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싫은 이유를 찾으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냥 내 스타일 아니라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어지간하면 싫은 소리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김윤석이 가진 매력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여간 잠깐 그렇게 하고...

 

역시 나는 아저씨는 아저씨고, 옛날 사람이다.

 

DVD로 3편 세트를 전부 가지고 있는 <영웅본색>을 틀고야 말았다.

 

(아버지가 빌려가서 몇 년째 돌려주시지를 않는다.)

 

<영웅본색>을 볼 때, 비로소 나는 가장 편안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나는 왜 나에게 윤발이 오빠 느낌이 나지 않을까, 아주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어쩔거냐. 하늘이 나를 이 형편 없고 느낌 없는 모습으로 태어나게 했는데 말이다.)

 

(참 쿡 티비의 VOD 리스트 중에는 김현진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 바로 그 <언니가 간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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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새 책이 나왔다. 아직 못 읽어봤다.

 

연애 얘기를 내가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성학 교재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한 번 읽어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출판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건데, 이 책 인세를 거의 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에 기부하기로 되어있어서, 정작 김현진에게 경제적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란다.

 

정말 여러 사람 부끄럽게 만든다. 물론 나도 얼마 전부터 내 책 인세의 일부를 학술운동이나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있기는 한데, 김현진처럼 통으로 기부하는 것은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다.

 

참, 여러 사람 부끄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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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는 표현을 꽤 쓰는 것 같다. 어쨌든 신자유주의 최고이 이데올로그라면 바로 밀턴 프리드만을 꼽을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옛날에 읽던 책들을 뒤적뒤적 거리다가 밀턴 프리드만의 53년 논문집을 찾아냈다. 유학 시절에 여기저기 헌책방 돌아다니면서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구해놨었는데, 이제는 여기저기 다 찢겨져서 어디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용캐 이 책이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었나 보다.

 

밀턴 프리드만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꽤 공부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오미 클라인이 알려준 그의 과거 행적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중남미 국가들에서 그야말로 고문관 행세도 톡톡히 했었다. 이런 짓까지 했었나?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은 추천사를 부탁받아서 읽었던 책인데... 그야말로 추천할 기회가 생겨서 고마워... 라고 할 정도로, 나도 잘 모르던 밀턴 프리드만의 중장년사에 대해서 공부할 기회가 되었었다.

 

내년에 나올 사회과학 방법론 책에는 학부시절의 밀턴 프리드만의 생각에 대해서 그가 청년기에 정리했던 생각들을 좀 써볼 생각이다. 바로 카르납의 수업을 들으면서 그가 했던 '실증주의'에 대한 생각들... 이 논문도 어딘가 잘 뒤지면 나오기는 할텐데, 찾을 자신이 없다. 직장도 몇 번씩 옮기고 이사도 몇 번씩 하면서, 한 때는 애지중지하면서 정리했던 자료들이, 산산히 흩어졌다.

 

레닌이 난리를 치면서 비판했던 그 마하에서 카르납 그리고 밀턴 프리드만을 거쳐서 지금의 명박 진영의 경제학자들까지. 그 인식의 계보가 신기하기만 하지만, 정작 우리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그 도그마들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 연구한 것은 잘 보기가 어렵다.

 

geneology 같은 것은 귀찮고 정말로 밥 먹고 살기에 도움 안되는 학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너무 이런 것을 공부하지 않는다.

 

돈 안되는 일을 재미든, 사명감이든, 하여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잘 속지 않는 사회라는 나의 20대의 신념을 지금도 버릴 생각은 없지만.

 

밀턴 프리드만을 찬양하고 찬송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많은 미국 유학 경제학자 중에서 밀턴 프리드만의 책들을 정식으로 앞에서부터 찬찬히 읽은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하이에크의 책도 마찬가지이다. 하이에크의 제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한국 사람들은 많지만, 하이에크의 책들 특히 예전에 슘페터 같은 사람들과 논쟁하면서 썼던 책들을 꼼꼼히 읽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스스로를 monetarist라고 부르고 싶어했던 밀턴 프리드만, 신자유주의가 이제 클라이막스를 넘어 조금씩 꺾여가는 요즘, 더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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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제회의에 참가했다가 아리수라는 물이 있어서 마셨다. 맛은, no comment.

 

고양이 물 먹이는 것도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닌데, 이놈이 처음 우리 집에 온 며칠을 제외하고는 물을 일절 마시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지도 목이 마르긴 하니까 화분에 있는 물, 화분 물받침에 고인 물, 이런 물들을 마신다.

 

길에 살던 고양이를 데리고 온 거라서 자연의 물의 좋은가, 이리저리 추론을 해봤는데...

 

한 달쯤 후에 정수기 물을 주면서 문제의 원인을 알았다.

 

길고양이 주제에, 수돗물은 안 마신다, 허걱.

 

우리 집 고양이가, 이게 입맛이 좀 까다롭기는 하다. 오죽하면 햄버거 고양이라고 별명을 붙여주었겠나.

 

캔도 가끔 따주는데, 딱 자기 선호하는 캔 한 두개 말고는 본 척도 않는다. 그래서 하루쯤 기다려보다가 결국 마당에 사는 원단 길고양이들만 포식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하여간 입이 짧으셔...

 

열 달쯤 지나가니까 요즘은 고양이용 육포나 햄 같은 것도 조금씩은 먹는데, 뭐 그렇게 내켜서 먹는 눈치는 아니고, 주는 성의를 봐서 약간 맛이나... 잘났다, 정말.

 

그러나 굶으면 굶지, 이 고양이는 절대로 수돗물은 안 마신다. 서울시에서 아무리 수돗물 품질이 뛰어나고, 생수 대신 마셔도 된다고 아리수라는 이름을 붙여도...

 

고양이가 본 척도 안 하려고 하는데 어쩔 거냐. 명박식으로 '대한 늬우스' 틀어대나고 해서 고양이가 꿈쩍도 할 것 같지도 않고.

 

썩은 물도 먹고, 툭하면 샤워하고 난 물도 먹는 고양이가 수돗물은 절대로 안 먹는 상황. 잘 났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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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후일담을 그렇게 재밌게 읽는 편은 아니다.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갖다붙이려는 경향이 좀 강한 것 같고, 그렇다고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그 중에서 사실만을 찾아내면서 읽기에는 세상살이가 너무 피곤한 것 같고.

 

어쨌든 한겨레 박찬수 기자의 <청와대 vs 백악관>은 그야말로 심심풀이 땅통으로 읽으면 딱 좋은 책인데,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좀 있다.

 

이 책을 집은 것은, 요즘 세상이 하수상해서, 도대체 청와대에 앉아있는 분들은 요즘 무슨 생각하실까, 그래서 그냥 싱숭생숭한 생각을 하다가 마침 책이 손에 잡혀서...

 

클린턴 뒤에 백악관에 들어간 부시 일행이 백악관에서 만난 컴에는 W 키가 빠져 있었다.

 

조지 W. 부시의 W를 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백악관을 떠난 클린턴 보좌관들 작품이다. 푸하하...

 

(노무현도 청와대 떠나면서 명박을 치지 못하도록 ㅁ, ㅂ 자판을 떼는 앙증맞은 심술을 부렸을까?)

 

책에는 명박이 애용한다는 상황실이 청와대에 생겨난 얘기 그리고 그게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이번 정부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나, 그런 얘기도 상당히 재밌다.

 

무엇보다 '언론 선진화'라는 '대못'이라는 표현을 유행시킨 그 시점의 내부 분위기 같은 게 좀 생생했다.

 

나는 아직도 기자실 폐지가 선진화인지는 여전히 납득을 잘 못하는 편이다. 하여간 명박네 애들이 선진화라는 표현을 엄청 쓰는데, 기원을 따지면 노무현이 먼저 썼었다. 참고로 지금 공기업 선진화라는 표현은 대체로 인원삭감을 의미한다.

 

청와대에 가는 보고서는 국정원 보고서와 경찰 보고서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경찰 보고서는 사본의 일부를 한 번 본 적이 있기는 한데, 국정원 보고서의 원본은 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만드는데 관여해 본 적은 있는데, 몇 번 자료를 보내고도 정작 최종 원본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지를 않는다.)

 

박찬수 기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별 거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대통령 브리핑이라는 게 매일 올라가고, 부시는 이걸 아주 열심히 봤다고 한다. 휴가 가 있을 때에도 배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백악관 당직자들은 CNN을 주로 본단다. CIA를 비롯해 미국 정보기관 중 어느 누구도 CNN만큼은 못한단다. 그럴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면서 국정원장의 독대가 없어졌는데, 명박은 국정원 보고서는 꽤 열심히 보는 편이란다.

 

예전에 나는 천호선 대변인을 상당히 싫어했는데, 뭐 어쨌든 박찬수 기자의 전언을 모아보면, 그렇게 아주 황당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중 말기에 대변인을 했던 박선숙은 상당히 대변인 역할을 부드럽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딸이 아토피로 아주 고생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환경부 차관 시절에 농성장에서 몇 번 보았는데, 저런 사람이 대변인을 해야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편안한 인상이다.

 

지금의 청와대 대변인은, 음... 노 코멘트.

 

어쨌든 노무현 중반기에 천호선 시절에는 일일 브리핑을 라이브로 한 적이 있는데, 이게 명박 정부 들어오면서 없어졌다. 그래서 혼자서 이런 놈들, 하면서 욕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정권 인수하면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초기에는 라이브 브리핑을 하기가 어렵다고 천호선이 물러나면서 조언을 해준 것을 받아들인 것이란다. 아, 그랬구나...

 

처음 책을 집으면서, NSC 얘기가 좀 나올까 싶었는데, 서문에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단다, 허걱.

 

한국에서 NSC에 관한 얘기들은 어지간해서 잘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는 굉장히 중요한 회의인데, 꼭 대북 문제나 국방 관련된 의제만 이 회의에 올라가는 게 아니고, 조약이나 무역 관련된 의제들도 가끔 올라간다.

 

예전에 기후변화협약 업무를 NSC에 올리기 위해서 NSC 사무국 사람들을 종종 만난 적이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시스템인지 감을 잡을 기회가 잘 없어서, 그런 내용을 좀 봤으면 했는데, 좀 아쉽다.

 

하여간 경찰 보고와 국정원 보고가 경쟁 중이라는 얘기는 예전에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 정부가 경찰국가는 경찰국가인가 보다.

 

노무현 시절에 청와대에 관해서 나온 얘기들이 몇 권 있었던 것 같은데, 우연히 잡아서 잠깐 봤는데, 너무 자화자찬이라서 통시적 비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박찬수의 <청와대 vs 백악관>은, 이 더운 날, 청와대에 혼자 앉아서 명박이 무슨 생각하며 하루를 보낼까, 그런 게 궁금한 사람에게, 이 독특한 구중궁궐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게 해주기는 할 것 같다.

 

만약 내가 이런 책을 쓴다면, 장치 보다는 예를 들면 노무현 시절의 3명의 정책수석의 차이점 비교, 혹은 그 안에 있는 비사, 그리고 협작과 음모, 이런 쪽에 더 맞추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기자라서 그런지. 상당히 점잖게 글을 썼다.

 

(기회가 되면 총리실이나 국정원에 대해서 한 번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있는데, 기회가 잘 닿지가 않는다. 나는 군사정권 시절의 국정원은 잘 모르고,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는 좀 아는데, 요즘 국정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그야말로 도통... 따로 조사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참, 명박이 자기 맘대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우리나라에는 3천개 정도 된다고 한다. 명박과 3천 궁녀 정도 될려나?

 

(간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자리까지 합치면 3만개 정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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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이 블로그에 책 얘기가 올라오면, 책을 사야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지 마시라. 만원 넘는 책 사는 거 보통 일 아니다. 도서관에서 읽으시고, 그래도 꼭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가지고 싶다, 생각하면 그 때 사시라. 책 사라고 여기에 짧은 감상 단문 올리는 거 아니니까, 제발 부탁이니 어지간하면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읽으면 좋겠다는 말이지, 책 사라고 하는 거라고 그런 택도 아닌 얘기 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사카 코다로의 <마왕>이라는 책은, 내 기준으로 하면 두 시간짜리 책이다. 소설이고, 가벼운 소설이다. 그리고 한참 더 쓸 것 같은데, 얘기가 끝나버리는, 그야말로 경소설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풀었으면, 그 다음에 최소한 3~4권, 그리고 아마도 7~8권은 더 나가는 진짜 싸움에 관한 얘기가 있을 법한데, 자, 이제 난 싸우기로 마음을 먹었어, 그리고 끝나버린 책이다.

 

그래서 가벼운 책이다.

 

뭐야, 서론부만 쓰고, 이제 정말 싸울까 싶은데, 이게 끝이야?

 

그렇지만 내용은 무거운 책이다. '사소설'은 아니고, 우리들 내면에 있는 무기력을 파고 들어가면서, 너네들 이러다, 당한다, 그런 말을 해주고 싶어하는 책이다. 한국인들이 소비하는 일본 소설은 대부분 사소설이다. 그러나 '마왕'은 사소설은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망했다. 사소설말고, 일본 내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은 소설들이 한국에서는 다 망한다. 지독할 정도의 편식이다.

 

자, 틀은 그렇고...

 

복화술과 운, 두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언어의 세계에 속한 얘기, 하나는 수학의 세계에 속한 얘기이다. 두 얘기를 이어주는 것은, 형제라는, 그것도 어렸을 때 자동차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어서 겨우겨우 살아남고, 겨우겨우 정규직, 그리고 겨우겨우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일본의 두 형제가 서로 다르게 소화하고 있는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보게 된 동기는...

 

<88만원 세대> 후반부를 슈베르트의 마왕으로 마감한 적이 있는데,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일본의 파시즘과 헌법 문제를 다룬 책이 있다고 누군가 집으로 보내주어서...

 

그래서 읽어봤는데, 이 책은 아이디어가 주는 번뜩함으로 무엇인가 깨달았다라고 하는 책 보다는, 이런 식이라면 나는 이렇게 얘기를 풀어보고 싶다라고 하는, 창작의 욕구를 주는 책 같았다.

 

물론 일본 사람들에게, 그리고 점점 더 파시즘으로 가고 있는 일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나와 전혀 다른 의미로 읽혔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는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창작욕을 주는 책이다.

 

더블 플롯을 시도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교과서처럼 사서 두고 보아도 좋을 책이다.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안도를 1인칭 시점으로 하는 1부, 그리고 시오리를 1인칭 시점으로 하는 2부, 왜 준야가 아니라 시오리야? 이거야말로 테크닉이다. 정말로 소설을 쓰고 싶고, 약간은 테크닉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 어쨌든 일본 30대 소설가 중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평을 듣는 이사카 코타로가 왜 테크니션인가, 하는 느낌을 받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촛불집회가 왜 안되는가 혹은 왜 문제인가, 그런 생각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좋을 것 같고, 잘 팔리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테크닉의 복기 교과서로 소장해서 틈틈히 참고할 만한 책인 것 같다.

 

테크닉 만으로는 절대로 얘기가 나오지 않지만,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테크닉이 없으면 얘기 구성 자체가 어렵다, 그런 생각이 이 <마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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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덜룩하게 못생긴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우리 집 마당에 종종 출현한다. 그냥 그런 고양이 한 마리 있나 싶었는데, 관계가 전환되는 계기가 한 번 있었다.

 

장마가 한참일 때, 이 얼룩덜룩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끌고 우리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아, 엄마구나...

 

눈 막 뜬 새끼 고양이는 세상에서 다시 없을 정도로 귀여운 존재이다.

 

그 장마를 잘 버틸까 싶어서, 어느 날부터 처마 밑에 먹이를 주기 시작했는데, 길고 길었던 올해 장마가 끝나고 어느 날부터, 나머지 두 마리 새끼들은 보기가 어려워졌다. 엄마와 새끼, 그렇게 둘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게 생태계에 좋은지, 아니면 세상에 좋은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두 마리 새끼는 장마를 못이겨서 죽었거나, 아니면 엄마가 버린 것 같다. 내가 마지막 본 장면은 딱 한 마리 새끼가 이 얼룩달룩, 못 생겼다고 내가 구박하던 그 엄마 고양이한테 젖을 먹고 있던 장면이었다.

 

왜 한 마리 뿐일까?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사라져버린 두 마리는 아마 젖도 못 떼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어디선가 잘 살고 있고, 다만 힘이 약한 새끼 한 마리를 어미가 끝까지 데리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상상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다. 대충 열 마리 넘는 고양이를 키워봤는데, 그 중에 한 번, 제일 예쁘고 튼실해보이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만 남기고 엄마가 가출한 적이 있다. 나머지 두 마리는 늘 그렇듯이 예전 우리집 현관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런 것이면 좋겠다만...

 

하여간 그래서 얼마 전부터 저녁 때마다 고양이 사료를 조금씩 놓아주는데,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 사라진다. 다만, 한 마리 남은 새끼를 끌고 다니는 그 얼룩달룩 못생긴 고양이 모녀가 먹었으면, 뭐, 그런 마음이다.

 

오늘 저녁에는 정말 못생긴, 누렁이 고양이를 봤다.

 

나는 이 누렁이로부터 모녀 고양이를 지켜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쨌든 늘 하던 것처럼 사료를 주면서 보니까...

 

엄미와 새끼, 그렇게 한참 사료를 먹는 것을 지키던 그 누렁이가 그들이 사라진 다음에 비로소 사료를 먹는 걸 보았다.

 

아빤갑다.

 

가끔씩 어미와 새끼를 지키는 아빠 고양이들이 있다. 이 누렁이는 아마도 아빠 고양이인 것 같다.

 

배고플텐데, 엄마와 새끼가 먹을 만큼 먹고 자리를 지키고 난 다음에야 약간 남은 사료를 먹는 이 누렁이는, 아마 얼룩달룩이 남편이고, 한 마리 남은 새끼 고양이의 아빠일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니, 그 새끼 고양이의 검은색 옆의 노란 줄은, 엄마와 아빠를 섞은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고양이들의 순애보이다.

 

누렁이, 그 자식이 이 고양이들의 아빠이고, 어미인 셈인데, 정말로 아내와 새끼들이 다 먹고 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그런 길고양이를 보면서, 이 한 가족의 순애보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저 녀석들이 올 겨울까지 버틸까, 아니면 이번 겨울을 버텨낼 수 있을까?

 

장마가 지나고 잠깐 펼쳐진 밝은 여름 날, 고양이들의 순애보가 나를 울린다.

 

누렁이면 어떻고, 얼룩이면 어떻겠나. 하나 남은 새끼 고양이를 지금 저들의 어미 아비가 죽어라고 살리려고 하는 것이고, 그 때야 최근 펼쳐진 우리 집 마당의 비밀을 풀었다.

 

지난 겨울 내내 쟁탈전이 벌어졌던 이 마당에, 두 마리 고양이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만큼의 생태 공간을 지킬 수 있다. 지금 저들은 그러고 있는 중이다.

 

이 새끼 고양이가 다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 때는 이 임시적 가족관계가 해체되고, 그들끼리도 경쟁 관계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순애보다.

 

해가 진 밤, 그들 세 가족이 펼치는 고양이 순애보가, 문득 내가 왜 살아가려고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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