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후일담을 그렇게 재밌게 읽는 편은 아니다.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갖다붙이려는 경향이 좀 강한 것 같고, 그렇다고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그 중에서 사실만을 찾아내면서 읽기에는 세상살이가 너무 피곤한 것 같고.

 

어쨌든 한겨레 박찬수 기자의 <청와대 vs 백악관>은 그야말로 심심풀이 땅통으로 읽으면 딱 좋은 책인데,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좀 있다.

 

이 책을 집은 것은, 요즘 세상이 하수상해서, 도대체 청와대에 앉아있는 분들은 요즘 무슨 생각하실까, 그래서 그냥 싱숭생숭한 생각을 하다가 마침 책이 손에 잡혀서...

 

클린턴 뒤에 백악관에 들어간 부시 일행이 백악관에서 만난 컴에는 W 키가 빠져 있었다.

 

조지 W. 부시의 W를 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백악관을 떠난 클린턴 보좌관들 작품이다. 푸하하...

 

(노무현도 청와대 떠나면서 명박을 치지 못하도록 ㅁ, ㅂ 자판을 떼는 앙증맞은 심술을 부렸을까?)

 

책에는 명박이 애용한다는 상황실이 청와대에 생겨난 얘기 그리고 그게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이번 정부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나, 그런 얘기도 상당히 재밌다.

 

무엇보다 '언론 선진화'라는 '대못'이라는 표현을 유행시킨 그 시점의 내부 분위기 같은 게 좀 생생했다.

 

나는 아직도 기자실 폐지가 선진화인지는 여전히 납득을 잘 못하는 편이다. 하여간 명박네 애들이 선진화라는 표현을 엄청 쓰는데, 기원을 따지면 노무현이 먼저 썼었다. 참고로 지금 공기업 선진화라는 표현은 대체로 인원삭감을 의미한다.

 

청와대에 가는 보고서는 국정원 보고서와 경찰 보고서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경찰 보고서는 사본의 일부를 한 번 본 적이 있기는 한데, 국정원 보고서의 원본은 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만드는데 관여해 본 적은 있는데, 몇 번 자료를 보내고도 정작 최종 원본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지를 않는다.)

 

박찬수 기자의 인터뷰에 의하면, 별 거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대통령 브리핑이라는 게 매일 올라가고, 부시는 이걸 아주 열심히 봤다고 한다. 휴가 가 있을 때에도 배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백악관 당직자들은 CNN을 주로 본단다. CIA를 비롯해 미국 정보기관 중 어느 누구도 CNN만큼은 못한단다. 그럴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면서 국정원장의 독대가 없어졌는데, 명박은 국정원 보고서는 꽤 열심히 보는 편이란다.

 

예전에 나는 천호선 대변인을 상당히 싫어했는데, 뭐 어쨌든 박찬수 기자의 전언을 모아보면, 그렇게 아주 황당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대중 말기에 대변인을 했던 박선숙은 상당히 대변인 역할을 부드럽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딸이 아토피로 아주 고생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환경부 차관 시절에 농성장에서 몇 번 보았는데, 저런 사람이 대변인을 해야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편안한 인상이다.

 

지금의 청와대 대변인은, 음... 노 코멘트.

 

어쨌든 노무현 중반기에 천호선 시절에는 일일 브리핑을 라이브로 한 적이 있는데, 이게 명박 정부 들어오면서 없어졌다. 그래서 혼자서 이런 놈들, 하면서 욕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정권 인수하면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초기에는 라이브 브리핑을 하기가 어렵다고 천호선이 물러나면서 조언을 해준 것을 받아들인 것이란다. 아, 그랬구나...

 

처음 책을 집으면서, NSC 얘기가 좀 나올까 싶었는데, 서문에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단다, 허걱.

 

한국에서 NSC에 관한 얘기들은 어지간해서 잘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는 굉장히 중요한 회의인데, 꼭 대북 문제나 국방 관련된 의제만 이 회의에 올라가는 게 아니고, 조약이나 무역 관련된 의제들도 가끔 올라간다.

 

예전에 기후변화협약 업무를 NSC에 올리기 위해서 NSC 사무국 사람들을 종종 만난 적이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시스템인지 감을 잡을 기회가 잘 없어서, 그런 내용을 좀 봤으면 했는데, 좀 아쉽다.

 

하여간 경찰 보고와 국정원 보고가 경쟁 중이라는 얘기는 예전에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 정부가 경찰국가는 경찰국가인가 보다.

 

노무현 시절에 청와대에 관해서 나온 얘기들이 몇 권 있었던 것 같은데, 우연히 잡아서 잠깐 봤는데, 너무 자화자찬이라서 통시적 비교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박찬수의 <청와대 vs 백악관>은, 이 더운 날, 청와대에 혼자 앉아서 명박이 무슨 생각하며 하루를 보낼까, 그런 게 궁금한 사람에게, 이 독특한 구중궁궐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게 해주기는 할 것 같다.

 

만약 내가 이런 책을 쓴다면, 장치 보다는 예를 들면 노무현 시절의 3명의 정책수석의 차이점 비교, 혹은 그 안에 있는 비사, 그리고 협작과 음모, 이런 쪽에 더 맞추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기자라서 그런지. 상당히 점잖게 글을 썼다.

 

(기회가 되면 총리실이나 국정원에 대해서 한 번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도 있는데, 기회가 잘 닿지가 않는다. 나는 군사정권 시절의 국정원은 잘 모르고,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는 좀 아는데, 요즘 국정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그야말로 도통... 따로 조사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참, 명박이 자기 맘대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우리나라에는 3천개 정도 된다고 한다. 명박과 3천 궁녀 정도 될려나?

 

(간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자리까지 합치면 3만개 정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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