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하면 책은 돈 주고 사서 볼려고 하는 편인데, 송구하게도 최성각의 책은 한 번도 돈 주고 사서 보지 못했다. 매 번 책이 나올 때마다 보내주시는 바람에,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하여간 매주 미처 읽을 수 없을만큼 몇 박스씩 책이 나에게 배달되어 오고, 또 나도 부지런히 책을 사대고 있는 편이라서, 최근에 우리 집에 온 책이 벌써 마루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급적이면 짧게라도 읽어보고 싶기는 한데, 두꺼운 두 권짜리 케인즈 평전처럼, 아직 펼쳐보지도 못한 책들이 좀 있다.

 

하여간 이번 여름은 앉아서 책을 보는 시간이 좀 늘어나서, 하루에 2~3권 정도는 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책들이 무거운 책들이고, 일부는 골치아픈 논쟁을 담고 있는 원서들이다.

 

살면서 하루에 두 권의 책을 읽지 않는 날은 없도록 하겠다고 옛날에 결심한 적이 있기는 한데, 늘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많이 읽는 날은 꽤 많이 읽은 날도 있으니까, 평균을 내보면 지난 20년 동안 하루에 두 권씩은 읽었던 것 같다. 그래도 책으로 치면, 편식하는 편이다.

 

수필이라는 쟝르를 좋아하고, 특히 시인들이 내는 산문집은 꽤 좋아하는 편이다. 기형도의 산문집은 그의 시로 들어가는 입구와 비슷하다.

 

그래도 요즘은 수필집을 자주 읽지는 못했다. 뭔가 트렌드라는 게 있는지, 최근이 수필집은 몇 권 읽을려고 하다가 토 나올 뻔 해서.

 

최성각의 산문집은 '달려라 냇물아'와 '날아라 새들아', 두 권 모두 재미있다. 두 권을 이어서 읽으면, 약간 연작 소설이나 대하 소설 읽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산골에서의 생활 정착기의 흐름이라서, 거위와 뱀 그리고 개구리 같은 것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풍의 단상들이 썩 재미있다.

 

아직 읽지는 못했는데, 바로 이 거위들을 모티브로 하는 소설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생태라는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이 잔뜩 움추려들고, 또 엄청나게 뻣뻣해지면서 경건 모드로 들어가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최성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밝고 명랑한 톤으로 생태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고, 흔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민간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변하지 않는, 고등학교 시절에 만났던 껄렁껄렁한 친구가, 그 모습 그대로 30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이 될까에 관한 질문 정도?

 

내년에 지금 쓰는 책들이 다 끝나면, 무겁지 않은 수필집을 한 번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수필집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보는 와중에 읽었던 최성각의 산문집은 상당히 재밌으면서 독특한 풍취 같은 것을 느끼게 하여주었다.

 

후반 부에 나와있는 '생태적 위기와 새로운 글쓰기'는 정말 오랫만에 읽은 문학평론이었는데, 통쾌함을 느꼈다.

 

내가 최근의 한국 소설 몇 권을 읽으려다가 토 나와서 포기한 바로 그 심정을 최성각이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

 

최성각이 열어가고 있는 '생태적 글쓰기'는 어쩌면 한국에서 글쟁이가 되거나, 자신만의 문체를 가지고 싶어서 고민하는 대학생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생들도 읽을 수 있도록 충분히 쉽고, 충분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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