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명랑이 함께 하기를!'에 해당되는 글 99건

  1. 2012.05.30 감자꽃, 활짝 피다... 2
  2. 2012.05.29 감자꽃이 피다, fta 본문도 마무리... 2
  3. 2012.05.27 자주 달개비 그리고 '노무현 컨센서스의 복귀'
  4. 2012.05.25 마루 앞의 뱀딸기 2
  5. 2012.04.28 피맛골 9
  6. 2012.04.15 총선이 끝나고 19
  7. 2012.04.09 대치동 롯데 백화점 앞의 정동영 8
  8. 2012.04.07 위기의 남자 8
  9. 2012.04.05 강남을, 벽 앞에 선 느낌 9
  10. 2012.03.29 내년에는 영화나 같이 만듭시다 5

 

 

잠자꽃이 드디어 꽃잎을 말아올렸다.

 

끛으로 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는 감자꽃을 좋아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히 몽환적인 느낌을 받는다.

 

감자에 조금이라도 더 영양분이 가라고, 감자꽃은 많은 경우 떼어낸다. 꽃이 열려야 뭔가 열리는 다른 과일들과는 다른 대접이다.

 

그래도 나는 좋아한다.

 

좋은 데 이유가 있겠나.

 

 

자주 달개비가 꽃잎을 벌리기 시작한다.

 

동글동글 말려 있는 꽃잎을 보며, 긴장감이 팽팽함을 느낀다.

 

사람으로 치면 18세? 19세?

 

마치 온 우주가 이 꽃잎이 펼쳐지기만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팽팽한 순간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한다.

 

아름다움은 마음 속에 있는 것, 그런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멀대에 작은 몽울 하나 맺혀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참 예쁘다.

 

문득, 한국의 19세,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막 펼쳐지려는 꽃망울,

 

그 순간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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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몽우리가 맺히더니, 오늘 드디어 감자가 꽃을 피웠다. 올해는 봄에 정신이 없어서 감자를 아주 늦게 심었다. 이렇게 늦어도 뭐가 날까 싶었는데, 그래도 꽃이 났다.

 

총선 이후, 괴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고, 매일 같이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마음을 억지로 누르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살면서 별나게 즐거운 일이 뭐가 있을 게 있겠나. 이제는 어지간히 즐거운 일에도 별로 반응하지 않고, 또 왜만큼 실망스러운 일에도 크게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평상심을 잘 유지하느냐그런 건 아니고, 그냥 사람이 무뎌가는 중인 듯 싶다.

 

요즘은 박근혜 세상이다. Kbs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요즘 동구밭 과수원길, 뭐 이런 노래도 나오고, 목화밭도 나온다. 70년대 복고풍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복고스러운. 박근혜와 같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것인지 미리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다.

 

지난 6개월간은 정말 fta와 같이 살아왔고, 하루의 대부분을 fta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보냈다.

 

발효는 이미 했고, 한중 fta, 한일 fta, 연일 난리이다.

 

그 와중에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어놓고 fta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도 누군가는 얘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붙잡고는 있는데, 흥이 막 나서 신이 나는 그런 상황이 아닌 건 당연하지 않은가?

 

원래 꽃 사진도 잘 안 찍고, 접사도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니다. 올 봄에는, 꽃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고, 안 하던 접사도 많이 했다.

 

작은 것에서라도 기쁨을 찾거나, 아름다움을 찾지 않으면, 지금 어떻게 버티면서 계속해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겠나, 그런 거 아니었나 싶다.

 

마당에 감자꽃이 피는 날, ‘fta 한 스푼본문을 끝냈다. 잠시 머리 좀 돌리고, 에필로그를 마치고 나면 지난 겨울부터 끌어온 fta 책은 내 손을 떠나간다. 물론 뒤쪽에서 생각이 좀 바뀐 것들이 많아서, 앞 쪽 내용들에 튜닝을 좀 해야하기 때문에, 당장 원고 작업이 끝나는 건 아니다.

 

한참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 책을 쓰는 것은, 변화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보고, 출간된 시점에서의 상황 그리고 그 후의 6개월, 1년 후도 조금씩은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머리가 아프다.

 

Fta 같은 경우는, 급격하게 사회적 힘이 빠지고, 패배와 좌절감 그리고 그 후에 몰려오는 아른한 듯한 피곤함, 그런 것들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 특별히 힘든 경우였다.

 

총선은, 졌다. 그리고 총선의 패배 이후로, 소위 해석투쟁이라고들 하는데, 중 정치인들은 한미 fta를 전면에 내걸었던 것을 패배 이유로 찾는 것 같다. 별로 그런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얘기를 한다고 해서, 뭐 특별하게 할 얘기가 있지도 않고, 서로 명예롭게 논쟁을 이끌어나갈 듯 싶지도 않아, 그냥 입 다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생겼다.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어쨌든 fta 싸움의 한 영역을 맡아주던 곳이, 그렇게 그냥 무너져 내려갔다. 그 사람들, 지금 fta 고민할 정신은 없을 거다.

 

가만히는 있지만, 참 힘들다.

 

그렇다고 엄청난 한 방이 있어서사실 그런 것도 아니다. 틀을 바꾸고, 프레임을 바꾸어서 다른 해석을 해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나라고 무슨 땡수가 있어서, 다들 기둘려봐,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별 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상황에서, 꾸역꾸역 참으면서, 하여간 일단 본문은 마쳤다. 재밌는 얘기도 꽤 들어갔고, 전혀 다른 시각도 좀 들어가 있지만결정적 한 방은, 없다. 하긴, 그런 게 이런 구조에서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노무현 컨센서스라는 말을 새로 만들었다.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제일 적절한 용어인 것 같아서, 며칠 고민을 하다가 그냥 썼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한달음에 썼는데, 감자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본 게 사실이다.

 

보통은 감자 꽃이 피게 두지는 않는다. 감자는 뿌리에서 열리는 거라서, 꽃이 피어간 말거나 상관도 없고, 씨감자도 그냥 감자에서 나온다. 괜히 영양이 꽃으로 가는 건 손해라서, 감자 꽃은 떼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 다른 작물과는 좀 다르다.

 

내가 감자 키워서 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오히려 씨알이 작은 씨감자가 찌개에 넣으면 더 맛있다. 껍질 안 벗기고 넣을 수 있는 작은 감자, 햇감자.

 

감자 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감자에게서

 

존재에 의미 같은 게 있겠나, 그냥 존재는 존재로서의 의미이다. 그리고 그 존재로서 아름다운 것이다.

 

별 의미는 없을지 몰라도, 감자 꽃에 대한 생각은, 문득 이 시기의 내 삶에 대한 생각과 비슷하게 만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시대, 참 어두운 시대를 살아간다. 한미 fta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게 무슨 정치 절차를 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난 사회적 절차를 새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최선을 다했다, 그런 알리바이를 만들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왜 난 이 작업을 삭발도 하고, 금주도 하면서, 끝까지 끌고 왔을까? 딱히 대답하기가 어렵다.

 

감자 꽃에게, 넌 누구니, 그렇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다. 나도 나에게, 너무 힘들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본문의 마지막 절은, ‘통상 거버넌스라는 딱딱한 제목으로 끝난다. 외교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행정적인 질문인데, 통상교섭본부의 귀속에 관한 내용이다.

 

지난 겨울, 이해영 선생과 이 주제를 가지고 같이 토론회를 한 번 만들어보기로 국회에서 약속을 했었는데, 서로 정신이 없어서 그냥 넘어간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마지막 부분에 정리해 넣은 거다.

 

10년 전인가, 외교부에서 파견근무 요청이 온 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문제삼고 있는, 바로 그 통상교섭본부이다. 당시는 아마 경제국이었나, 그렇게 기억난다.

 

그 때 나는 공직생활 아니 직장생활을 정리하려는 생각을 막 시작한 때라서, 별 이유도 대지 않고 그냥 싫다고 그랬던 적이 있었다.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인데, ‘fta 한 스푼을 마무리지으면서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그 때 외교부로 갔었으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되었을지.

 

 

 

 

 

 

(어제 꽃망울은 이렇게 생겼었다. 이게 하루만에 꽃잎을 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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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작년부터 풀 하나가 슬슬 머리를 밀고 자라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이 멀대 같은 녀석이 나름 군락을 이루었다.

 

그냥 뽑을까 하다가, 뭔지도 잘 모르고, 또 나름 맵시도 있어서 그냥 두었다.

 

달개비의 일종인, 자주 달개비라고 하는 것 같다.

 

어제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이게 은근히 장관이다.

 

 

fta는 고민거리이다. 사람들이 잊는 게 워낙 빠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가는 듯 싶다. 이렇게 금방 잊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잘 잊으니까, 그야말로 '암울한 근현대사'를 지나면서 - 요건 영화 <전우치>에 나온 대사이다 - 우리가 살아남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여간 이 문제를 붙잡고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지난 연말부터이다. 국회에 통과를 시키겠다고 난리를 치면서 국회 날치기를 통과하면서, 그냥 있을 수는 없고, 나도 뭔가를 하기로 생각하면서...

 

그 이후로 내 삶은 개판이 되었고, 일정도 정신 없게 되었다. 올해는 대선의 해, 이것저것 부산하게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전부 엉망이 되었다.

 

물론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중간에 끼어드는 일이 한 두개인 건 아니지만, 한미 fta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특별하게 사마귀를 찍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우연찮게 걸려들어서.

 

접사에서 핀트 맞추기가 아주 어렵고, 또 내 눈도 기가 막히게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눈이라서... 뭐, 이렇게 하고 있는 걸 찍으려고 한 건 아닌데, 전부 삥이 나가서.

 

하여간 이렇게 소일하면서, 머리 속은 온통 fta 생각이다.

 

 

 

책 제목을 'fta 한 스푼'으로 정한 건 좀 된다. 의미야 어떻든, 나는 이 제목이 좋다.

 

이 제목이 나에게 특별히 좋았던 것은, 뭔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거나, 아니면 세상을 뒤집을 정도의 큰 얘기 혹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fta 얘기의 종합편, 이런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이다. 나는 그냥 '한 스푼'만 더 할 뿐, 그런 뉘앙스라서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원래의 제목은 '모든 공포의 총합'... 이 제목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사실 3번을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던... 그렇게 해서는 책이 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너무 보고서처럼 되어버려서, 읽기가 더 어렵게 된다. 또 그러다보면 쓰는 입장에서는 더 부담스러워지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한 스푼으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으면, 이 책은 결국 무게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간에 엎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책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원래의 계획은, 최대한 빨리, 그러다가 총선 전에 못 냈고, 총선이 끝나자마자... 그런데 총선에서는 완전 박살났고.

 

삭발은 벌써 애저녁에 했고, 대선까지 금주를 하면서, 이런저런 힘을 모아서 겨우겨우 끝내는 책이 되었다.

 

시대와 맞서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수레바퀴 앞에 서 있는 사마귀, 딱 그 형국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냥 돌아가는데, 학자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 크기도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렇게 무게감에 눌리고 있었다.

 

 

이번 주말 여기에 부처님 오신 날까지 끼어서, 휴일.

 

하여간 초읽기에 몰려서, 마지막 결론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다.

 

자주 달개비라는 꽃은, 꽃보다도 몽우리가 훨씬 예쁘다.

 

마당에서는 이게 거의 잡초급이라, 이사갈 때에도 얘를 데리고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몽우리가 있다는 데에 참 놀랐다.

 

꽃잎이 만개하게 될 보라빛을 미리 보여주는데, 그 은근함과 신비로움이 보통 아니다.

 

물론 그냥 눈으로 보면, 별 거 아니다.

 

흔히 보는 멀대 같은 잡초에 약간의 몽울진 것, 그렇게 밖에는 안 보인다.

 

하여간 이런 생각을 하다가, 뭔가 내 머리를 빡 때리고 지나가는 생각이...

 

노무현 중후반에서 지금까지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일관된 생각.

 

당시의 청와대, 열린우리당 사람들, 고위직 관료들의 보편적 생각, 그게 이명박을 거쳐서 박근혜까지...

 

이 생각을 나중에 책상에 앉아서 차분히 정리를 해보니까,

 

그게 '노무현 컨센서스'이다. 90년대 워싱턴에서 월가까지, 합의된 적은 없지만 그 사람들이 보편적인 정서처럼 가지고 있는 생각을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르는 것과... 작동 방식은 사실상 같다.

 

그래서 'fta 한 스푼'의 부제는 '노무현 컨센서스'로 하기로, 일단은 마음을 먹었다.

 

이 사건이 비극적인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 중에 하나에서,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협상 내용을 재검토해보아야 한다고 썼던 점이다.

 

그게 워싱턴 컨센서스와는 차이점인 것 같다.

 

노무현은 빠진 노무현 컨센서스, 이게 참 비극적이다.

 

어쨌든 이렇게 최종 결론을 내리고, 앞에 써놓은 원고들에 대한 마지막 튜닝을 하기로 했다.

 

길고 길었던 작업이, 이제 마지막 고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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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 쪽에 딸기 한 종류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아마 흔히 뱀딸기라고 부르는, 그런 것 같다.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사람이 어디 큰 일, 별 일, 그런 걸 보면서 흥분하거나 기뻐하거나 혹은 분노하거나 그러던가? 사람은 원래 작은 것들에 놀라고, 호들갑을 떠는 그런 존재이다.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하면 너무 무지막지하게 큰 질문처럼 느껴진다.

 

이걸 바꾸어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물어보면?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나와 아내가 이사를 나온지도 어느덧 4년이 되어간다.

 

생각보다 나도 아파트 같이 생긴 형식의 집에 오래 살았다.

 

어느덧 정서적으로 도저히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나왔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한동안 잘 몰랐는데, 살아가는 방식이 좀 바뀐 것 같다.

 

생각하는 방식도...

 

 

진짜로는 정말 작은 딸기인데, 접사용 매크로 렌즈로 찍었다. 접사를 즐기는 편은 아닌데, 그냥 들이대는 수밖에.

 

요즘 나는 'FTA 한 스푼'이라는 제목으로, FTA에 관한 책, 거의 최종 클라이막스를 정리하는 중이다. 스케일만큼은 정말 크다. 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의 의식 속에서는 한국을 들었다 놨다...

 

그러나 그런 게 다가 아니다.

 

소소한 행복, 사소한 즐거움, 그리고 계산되지 않은 우연, 그런 것들로 삶의 빈 구석들을 즐겁게 만들지 않으면, 남들 다 아는 얘기를 혼자만 모르는 그런 이상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까치 얘기만 하면 적개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유야 충분히 있는데, 남들이 미워한다고 자기도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이해가 좀 안 가기는 한다.

 

우리 집에 오는 까치는, 고양이 밥을 뺏어먹는다. 물론 지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냐...

 

현관문을 나가는데, 후다닥 까치가 도망가서 옆 집 처마에 앉았다.

 

내가 어디론가 가버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다.

 

하루를 잘게 토막내면,

 

그 토막 중에 얘기치 않은 가벼운 즐거움들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사실은 마음 속에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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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이라는 데가 있다. 서울 생활 했던 중년들에게는, 약간씩의 추억이 있는 거리일 것이다.

 

이명박, 오세훈의 서울시를 거치면서, 뭐... 결국 뤼미에르라는 빌딩 아래 켠의 작은 소품으로 전락한 작은 통로가 되었다.

 

종로로 이사온 다음에, 아내와 가장 자주 오는 건물이기도 하고,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아내가 활동가이던 시절, 주로 했던 일 중에 피맛골을 지키는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아내와 나는 연애 시절에, 피맛골에서 술을 마신 게 아니라, 피맛골을 지키는 일을 같이 했었다.

 

참 지키고 싶었던 골목이고,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모으기도 했었는데...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이 골목 하나를 우리는 지킬 수가 없었고, 우리의 시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어쩌면, 지난 10년, 지는 데 나는 너무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지키려고 했지만, 정말로 온전히 제 모습을 가지고 버틸 수 있게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지금도 피맛골을 보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아리다.

 

어떤 기억이 있을까?

 

한 때 금융경제연구소라는 작은 연구소에서 이종태, 홍기빈, 이런 사람들과 같이 복닥거리면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이종태, 이 양반과 처음 술을 마셨던 곳이 피맛골이었다. 마지막으로 피맛골에서 술을 마셨던 것은, 이곳이 헐리기로 확정된 후, 아마 공지영 선배와 고갈비를 먹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동경에 갔을 때, 그 사람들 표현대로 '오줌 골목'이라는 곳에 가본 적이 있었다. 진짜 조그만 일본식 바에서 아주 색다른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도시가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 것은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는 한다. 그렇지만 서울 한 가운데 있는 종로의 피맛골을 지키지 못했던 것, 그게 우리가 보냈던 2000년대이다. 이 골목에 들어올 때마다, 조선 시대의 애환이 기억나는 게 아니라, 여기에 요렇게 '피맛골'이라는 간판 하나 덜렁 남겨둔 우리의 개발 시대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생각해보면, 지난 15년, 생태든 문화든, 나는 무엇인가 지키고 보전하기 위해서 젊은 시절을 불태웠던 것 같다. 현장에서 그 싸움을 접고, 은퇴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한국의 보수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 그런 생각이 잠시 든다.

 

뭐든 부수고, 뭐든 밀고, 뭐든 엎어버리고, 그 와중에 떡고물 챙기고, 부패하고...

 

보수는 무엇인가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도대체 한국의 보수는, 뭘 지키고 보존하겠다는 것인가, 피맛골에 나무로 걸어놓은 명찰을 보면서...

 

저게 한국의 보수가 스스로의 가슴에 달아놓은 명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 해가 지기 시작한 순간,

 

피맛골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 아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술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을 시간,

 

을씨년스러운 싸구려 보도블록의 차가움이 골목을 스산하게 스쳐간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골목은 그런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시민운동이 피맛골에 해놓은 것은, 저 '피맛골 명찰 하나였던 것 아닌가?

 

명박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상처, 그게 바로 이 골목에 서 있다.

 

완전히 망해버린 영화 '공포 택시'에 나오는 유령들이 모여서 술 한잔씩 하는 골목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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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는 잘 우는데, 언제부터인가 세상 돌아가는 일로 우는 일이 줄었다. 가슴이 삭막해져서 그런지, 아니면 감성이 변한 건지, 하여간 잘 울지는 않게 되었다.

 

총선을 마치고 1시쯤엔가, 개표 방송을 보다가 정말로 서럽게 울었다.

 

뭐,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먹먹하게 잠이 들었고, 오전 늦게 일어나서 정신이 좀 들었더니.

 

몇 군데 전화를 하다가, 결국 김어준에게도 하게 되었다.

 

오후에 만났다.

 

용민이 얘기도 하고, 꼼수 운영할 얘기도 좀 듣고, 꼽사리 운영에 관한 얘기도 좀 나누고.

 

그 다음날 늦게, 정동영팀과 정말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초상집에 가서 화투치다보니, 누구 집 초상에 온 건지도 까먹었다는 얘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그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 빡빡하게 나올 김종훈 생각하면 머리 한 켠이 욱신욱신하다.

 

이번 총선은 내가 생각하거나 설정해놓았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을 변하게 하였다.

 

어쨌든, 좋거나 싫거나 내가 하기로 예정했던 일들은 대선까지는 그냥 하려고 한다.

 

토요일 밤, 잠시 나가서 DVD를 빌려오면서 그 옆의 패밀리 마트 사진을 한 장 찍어왔다.

 

지금 쓰는 소설에 사람들이 더 많은 에피소드를 넣기를 바랬던 공간이 바로 이 곳이다.

 

지금은 주인공이 가서 캔커피 하나 던져주고 오는 얘기로 잠시 나오는데,

 

여기를 예를 들면 비밀접선 장소나, 반전이 기획되는 곳처럼 다루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직은 특별한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사진이라도 보면 뭔가 좀 생각이 나올까 해서.

 

총선,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게 되었다.

 

어쩌면 바뀌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바뀌게 된 것일지도.

 

 

대학에서 다음 학기 수업 안 하느냐고 연락이 왔다.

 

대선 때까지는, 일단은 수업하기는 어렵다고 답을 했다.

 

그 다음은?

 

내년에는 아직 아무 계획도 확정된 것이 없다. 올해까지 쓰기로 한 것들 중 혹시 해를 넘기면 그런 걸 잠시 마무리하는.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나는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박의 등장 이후, 우리 모두의 미래 역시 너무 먼 곳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아직 어둡다.

 

아직은 더 어두운 곳에서 혹은 더 깜깜한 곳에서, 헤매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밤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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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급하게 정동영의 전화를 받고 대치동에 간 적이 있다.

보수신문 쪽의 여론조사 상으로 15%, 많은 경우는 18%까지 벌어진 순간이었다.

물론 그냥 가만 있을 수는 없어서, 몇 가지 의사결정과 대응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끼리 '병풍 작전'이라고 불렀던,

"병풍 한 번 칩시다..."

어디서?

그야, 당연히 대치동 롯데 백화점 앞에서...

그렇게 해서 소위 병풍 작전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정동영 선거사무실에서 벌어진 토크쇼에 온 사람들 중, 시간 되는 대로,

일단 한 번 해봅시다...

얼마나 큰 병풍을 만들 수 있을지,

그런 의도였다.

 

병풍 중에 잠깐 나와서 한 컷.

마침, 너무 친한 사람들 중심으로... 일부로 이렇게 사진을 찍은 건 아니다.

유종일, 위기의 사나이.

선대인, 쟤는 또 왜 저 중에 들어가 있나.

신언직, 맨날 갈구기만 하다가, 이번에 정말로, 제가 선배 대접 해드리겠습니다, 하게 된 양반.

그리고 강남훈.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결정적으로, 학부 시절 강남훈 선생의 책을 읽고 나서, 베낭 매고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었다.

나는 강남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병풍 중간.

강남의 장애인 운동 단체에서 나와서 말씀하시는데,

아, 진짜, 잠깐 눈물 나올 나올 뻔 했었다.

새누리당은, 도대체 자기네 절대 점령 지역에서, 왜 이렇게 문제를 풀 노력을 안했던거냐.

힘이라면, 가장 큰 힘을 가진 집단인데 말이다.

선대인 잠깐.

야하, 오늘도, 참 말 길다.

쟤가 그래도,

심성은 참 고운 애다.

 

중간에 갑자기 '써니' 율동이 나와서,

아, 깜딱야...

정동영, 정말로 춤을 췄다.

바로 앞에서 18미리 각도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잘 추었다.

 정동영,

'써니' 춤 추다가 자기도 모르게 황홀경에.

보통 인간은 아니다.

진짜로, 춤의 박자를,

느낀다...

강남훈 선생.

내가 수 년간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이 강남훈 선생이다.

정말이다,

난 그처럼 되고 싶어서 유학을 갔고, 공부를 했다.

20대에 내가 기대한 것처럼,

강남훈 선생은 그렇게 엄청난 학자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가 그처럼 되고 싶어서 공부했다는 게,

부끄럽지는 않은 사람이다.

그와, 특히 많은 집회에 나갔다.

 

오른쪽 기둥 뒤에 타코 집이 하나 있다.

내가 강남 살던 시절, 한 달에 한 두번씩 일부러 가던 타코집이었다.

여기는...

내가 30대를 보냈던 거리이기도 하다.

이 거리에서 이런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다는 것,

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대선후보급,

누구든 강남을에 나오면 난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다고,

신문에 냈다.

우여곡절 끝에, 정동영이 왔다.

나도 지금,

명박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결과는 모른다.

어쨌든 나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명박 시대, 내가 가진 걸 다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다시는 이런 시대를 맞이하고 싶지 않다.

슬프지 않기 위해서,

나도 춤춘다, 덩더쿵 덩덩.

 

참, 정동영의 입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았다. 한홍구 교수가 유진오 박사 손자라는 사실을.

한경구, 한홍구, 형제와 다 같이 일을 했었는데, 미처 몰랐었다.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는 유진오 박사가 만들었다...

(제대로 나온 한홍구 교수 사진이 없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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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픽쳐스에 출근을 시작한지, 어느덧 4달이 되어간다.

물론 월급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영화사가 원래 그렇다.

촬영 들어가기 전, 영화 기획단계에서는 아무 것도 없다.

물론 나는 안해보던 일이니까, 배우는 것은 많다.

돈 내고 배우라고 해도 돈 낼만큼, 많이 배운다.

이준익, 정말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이준익은 최근 고전 중이다.

은퇴를 선언하고, 계속 쉬는 중이다.

그의 복귀작을 준비하고, 장기 계획도 세우고, 그런 게 우리가 하는 일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걸로는, 그는 지금 슬럼프에 빠져 있고, 우리 모두 슬럼프를 겪는 중이다.

연패 중인 팀은 점수를 리드하고 있어도 불안하고, 에러가 한 번이라도 생기면...

분위기 확 가라앉고, 결국 진다.

LG가 이런 게임이 아주 많다.

지금 우리가, 딱 그렇다.

4달 동안 지켜본 바로는, 당분간 금방 영화촬영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듯 싶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나도 빨리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요 며칠 사이에 생각이 좀 바뀌었다.

기왕 쉬는 김에, 장기계획도 좀 세우고,

정말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 것을 탑재해서,

'이준익 2기'라는 새로운 것을 열 정도로 해야 한다...

고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이게, 타이거 픽쳐스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더욱 크게 만든다.

빚내서 살고 있는 사람들... 영화라는 데가 현재로서는 그렇다.

이준익 2기라는 건 뭘까?

이건 며칠 전부터 내가 가지게 된 새로운 질문이다.

다른 얘기? 다른 철학? 다른 시선?

이제 사극은 그만하고 현대극?

몇 가지 질문들을 던져보면서, 이준익이라는 상품을 어떻게 파는 게 좋을지,

이건 경제학자인 내 입장으로서 해보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 앞에서는, 나는 전공으로 돌아와, 일종의 프로모터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한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꾸 체계화시키고 프레임을 짜는 걸 좋아한다.

가끔은 있지도 않은 걸 가지고 자꾸 뭘 설계하려고 해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특성이기는 한데,

난 내가 맨 앞에 혼자 서 있는 걸 싫어하고, 누군가가 앞에 있고, 그걸 도울 때가 더 편하다.

나꼽살에서도, 선대인을 앞에 내세우고, 나는 보조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게,

내가 원래 그렇게 살아왔다.

하여간 지금 이준익이라는 상품이 내 손에 있다.

이걸 어떻게 팔아야 하나, 그런 질문들을 요즘 던져본다.

얼마 전에 자빠진 오토바이 얘기, 그걸 다시 한 번 원점에서 재검토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이준익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토바이이다.

오토바이와 생태, 그걸 연결하는 작업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오토바이는 이준익이 무의식 속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생태는 이준익이 한 번도 얘기해보지 않은 것.

아내가 임신 중이 아니라면 벌써 같이 지리산에 내려가서, 오토바이 시인 이원규와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을 것 같은데, 지금 나는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하여간 나도...

새로운 질문 앞에 간만에 서보게 되었다.

짜릿한 경험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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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을, 벽 앞에 선 느낌

 

은마, 미도, 이런 곳이 내 삶과 멀지는 않다.

보수신문 기자들이 하도 나보러 강남좌파라고 그래서, 종로로 이사온 게 3년 전이다.

경향신문 연재 중에, 강남을에 대권 주자 중의 한 명이 나가면 그래도 해볼만할 거라고 쓴 적이 있다.

고심 중이던 정동영이 그 글을 보고, 결국 강남을로 출마했다.

 

이래저래, 강남을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결국 나는 정동영을 사지로 몰아넣은 사람이 되었다.

지지율 차이가 10% 너머로 벌어지게 되면서, 좀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다시 대치동으로 갔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잠시, 은마 아파트.

작년에 은마 아파트를 소제로 한 <모래>라는 다큐를 추천한 적이 있다. DMZ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지긋지긋한 은마의 얘기.

나꼽살 초반기, 거의 유일한 유행어가 선대인이 얘기한 '언마' 아파트, 그게 바로 이 은마이다.

 

처음부터 부실 아파트였던 은마, 여기에 강남의 욕망이 녹아있다.

지금 한참 논쟁 중인 개포 재개발단지도 보통 아니지만, 상징성만으로는 한국의 아파트 중에 은마만한 곳이 없다.

사진에 보이는 은마 종합상가, 강남 살던 시절, 가끔 밑반찬 사러 아내와 오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 떡집이 아주 유명하다.

재건축되면 사라질 곳.

은마아파트 바로 길 건너 편에 정동영 선거 사무실이 있다.

강남에서 가치 논쟁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불가능한 꿈을 꾸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정동영이 나보러 강남을에 출마하면 어떠냐고 했다.

이 아저씨가,

농담 하시나.

나도 입생 로랑 양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는 싶지 않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달고 다니던 시절.

강남은 나에게 그런 기억이다.

사람들 눈을 의식해야 하고,

내가 빨갱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숨겨야 하고.

 

회의를 끝내고 선거사무실에서 나오자,

바로 눈앞에 띄는 미도.

아름다운 도시,

강남개발의 신화를 달고 있는 아파트 이름.

너무나도 익숙했던 그 욕망의 한 가운데, 다시 서게 되었다.

수서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그곳이 내가 오랬동안 살던 곳이었다.

그 시절, 참 자주 지나다니던 곳.

교보문고에 가기 위해서 늘 이 길을 지나다니고는 했다.

 

 

정동영 선거 사무실에서 문을 나서자마자,

오른 쪽으로 눈을 돌리면...

요즘은 타팰이라고 부르는, 타워 팰리스가 서 있다.

이곳 팬트하우스에 분양을 받은 사람을 알고 있다.

지금도 사는 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는 나와 동료였다.

지난 가을에 낸 책에, 인터뷰를 했던 어떤 사나이가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다.

문득,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제 본 정동영...

일주일이면, 이 사나이의 정치적 운명이 갈린다.

강남을,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축으로 하는 강남갑과는 또 다른 기기묘묘한 욕망의 사거리.

대한민국 2000년대 욕망의 축이라면,

단연 이곳이다.

대치동을 축으로 하는 학원의 거리,

은마아파트로 대변되는 재건축의 거리,

이게 지금 이 사나이를 가운데 놓고 한바탕,

가치의 용광로 속으로.

 

나는 거대한 벽 하나를 보고 온 듯한 느낌.

불과 몇 년 전까지, 내가 살던 곳이다.

그 한 가운데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과,

이게 세상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

대치동 사거리에서

벽과 벽이 맞부딪히는 중이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버마스가 말했던,

소통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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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는 영화나 같이 만듭시다

 

타이거 픽쳐스는 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데다. 영화를 만드는 데가 맞기는 한데, 영화 전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현재의 오대표나 주력 시나리오 작가들은 아예 공대 출신들이다. 조연출 중의 한 명이 영화관련 학과를 들어가기는 했었는데, 아예 때려치고 일찌감치 현장으로 나온 경우이고.

 

흔하디 흔한 시나리오 작법이니 영화 학원이니 그런 데도 한 번 가본 사람이 없다. 그야말로 현장파, 아직까지 전통적인 충무로 방식으로 일하는 몇 안 남은 곳 중의 하나로 알고 있다.

 

, 특별히 현장이라고 할 것 같지는 싶지만하여간 현장에서 영화를 익힌 사람들.

 

어떻게 보면 막무가내고, 어떻게 보면 정말 재미파’. 영화를 재미있게 하자는 의미도 되고, 재미로 영화를 한다는 의미도 되고. 그런 게 막 섞여있다.

 

뭐 그러면 영화를 같이 많이 볼 것 같은데, 그러지는 않고. 티져는 많이 본다. 누군가 좀 진지하게 앉아서 영화 좀 볼려고 하면 설령 그게 조철현 대표라도 그냥 노가리나 불면서 놀자고 하기 일쑤다. 우린 한 번도 진지하게 앉아서 같이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같이 영화 보는 건, 시사회할 때.

 

지난 수 년간, 난 다음 출간 일정들이 잡혀 있고는 했는데, 더 이상 추가적인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일정을 잡고 있지는 않다. 물론 밀린 것들이 있어서, 과연 이것들을 올해 다 끝낼 수 있을까 싶지만하여간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다 정리할 수 있을 듯 싶다. 그 다음 계획은없다.

 

학자로서 살아온 삶을 정리하면서, 올해는 내가 했던 일, 내가 하던 일, 그런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새로 얹는 일은, 거의 없다, 학문과 관련된 것은.

 

지난 몇 달 동안, 정말 무수히 많은 영화가 우리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또 내려갔다.

 

다음 주부터 조대표가 예전부터 귀에 못이 닳도록 얘기하던 코미디 살인 사건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고, 손상준 조감독이 킬러들의 사생활의 각색 작업을 시작한다.

 

이렇게 수 없는 작업들을 지난 몇 달 동안 했는데, 아직 당장 들어갈 스타트 작품을 아직도 못 잡았다. 그래서 슬럼프이기는 하다.

 

나도 모피아 얘기로 시작하는, 공무원 3부작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계속해서 써보기도 하고, 엎어서 다시 시작해보기도 하고, 그러는 중이다.

 

타이거 픽쳐스는, 다른 영화사에 비하면 작가들이 많은 곳이기는 하다. 이준익 감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최종적으로는 한 테이블에서 공동작업하는 그런

 

아직 스타팅 작품을 잡아서 한 테이블에서 같이 작업하는 단계까지 가지를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공전 중.

 

이 와중에 나는 여전히 원고 작업 중이고, 몇 년째 붙잡고 있는 원고들이나 펼쳐놓은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가는 중이다.

 

한 달 동안 테이블 위에 올려만 놓고 손을 못대던 것으로, 지난 달 경향신문에서 연재를 끝낸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50편짜리 연재 칼럼이 하나 있다.

 

제목은 시민의 정부컨셉으로 갈까 하는데, 시민의 정부 + 시민의 경제라는 의미 정도로제목 작업은 아직 못했다.

 

출판사랑 상의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뒤부분에 보충 설명을 다는 후반작업은 총선 이후로.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다음 정부에 대한 희망사항을 이 책에 담으려고 한다.

 

아마 6월에나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대선이 끝나면,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일본어 공부를 할 겸, 겸사겸사 히로시마에 몇 달 가 있을까 했었다. 사람들 만나기도 싫고, 뭐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학자로서 살았던 삶을 정리하면서, 아무 것도 안하는 시간을 일단 좀 가질려고 했었는데

 

아이의 출산예정일이 끼면서, 곤란하게 되었다.

 

조철현 대표가, 내년 초에, 같이 영화나 만들자고

 

, 그것도 재밌을 듯 싶지만, 글쎄

 

내년 일은 나도 모르겠다. 일단 아기나 열심히 키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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