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명랑이 함께 하기를!'에 해당되는 글 99건

  1. 2012.03.27 오랜만에 홍기빈 박사... 6
  2. 2012.03.17 인간의 언어 4
  3. 2012.03.15 영화 <초한지> 혹은 번쾌의 눈물 4
  4. 2012.03.15 명박 시대를 보내며 12
  5. 2012.03.09 화차의 경제학 3
  6. 2012.03.08 그냥 마음이 허해서... 3
  7. 2012.03.07 삭발을 하다 28
  8. 2012.03.05 큰 마이크와 작은 마이크 3
  9. 2012.02.27 마지막 칼럼을 마치고… 6
  10. 2012.02.05 세상이 좋아질까? 10
이정전 선생의 '시장은 정의로운가' 책이 새로 나와서, 오마이뉴스에서 진행하는 대담회에 갔다 왔다.

간만에 홍기빈 박사를 만났다. 홍기빈, 이종태, 이렇게 전부 금융경제연구소라는 좁은 공간에서 복닥복닥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홍기빈은, 나와 동갑이다. 그냥 수 년째, 친구로 지내고 그렇게 같이 늙어간다.

이론적 싱크로율은, 90% 이상일 것 같다.

fta 책 쓸 때, 홍기빈이 출판사를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소개해준 적이 있다. 처음에 fta 책 낸 사람들이, 거의 비슷할 때 출간을 해서, 지금도 잘 알고 지낸다.

홍기빈을 처음 만난 건, 황우석 박사 때였다. pd 수첩 사태가 한참이던 시절, 유학생이던 홍기빈과 그 때 처음 보았다.

준비하던 fta 책의 최종 정리에 들어가면서, 홍기빈에게... 한미 fta에 대한 심경을 좀 물어봤다.

다들, 포기한 거 아니냐...

포기라...

그 말을 들으면서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 것은 사실이다.

홍기빈과 나는, 수 년째 등을 맞대고 같이 버텨온 사이이다. 그도 지친다면... 뭐, 그게 현실이 아닌가 싶다.

홍기빈이나 나나, 금융경제연구소 시절에 대한 약간의 노스탈지아를 가지고 있다. 그 때 모르던 거 공부 많이 했었다, 덕분에.

홍기빈 박사나 송기호 변호사나... 생각해보면 내 삶은 참 행복한 것 같다.

늘 등을 기대고 고민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버틴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김용민 뒷자리에 들어올 사람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해보는 중이다.

미안하지만, 홍기빈, 미화 누님이 안된다고 했다.

경제학자 두 분 모시는 것도 힘들어주겠는데, 세 분을 모시라...

내는 몬한다, 니들끼리 해라...

그러셨다.

다음 주 금요일, 홍박 연구소에서 작은 행사가 있다고 놀러오라는데...

오건호 박사 등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자리이기는 한데, 그렇게 나가서 술 먹고 들어왔다가는 아내한테 정말 쫓겨난다.

내가 요즘, 이러구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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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언어

 

신경민이 민통당 대변인이 되었고, 지역에 출마도 하였다. 신경민, 좋아하느냐고 하면, 당연한 거고. 얼마 전, 어느 패션지에서 같이 대담도 하였다.

 

YTN 라디오를 듣다가, 누가 이렇게 말을 못하나 그리고 이렇게 심할 정도로 운동권 사투리를 쓰나, 싶어서 집중해서 들어보니, 오매나야, 신경민이다.

 

운동권 사투리 중에 대표적인 게, ‘부분’, 심지어는 부분체라고도 불리는. 이 부분, 저 부분, 그런 부분, 엄청 찾는 말이 운동권 사투리 중의 하나이다.

 

한명숙 부분, 세종시 부분, 그런 부분, 강정 마을 부분,” 푸하하, 듣다가 엄청 웃었다.

 

대담할 때에는, 운동권 사투리가 있다는 생각은 못 했고, 좀 말하는 투가 격식을 차리려다 보니, 약간 딱딱하다는 정도의 느낌을 받았었다.

 

평생 말로 먹고 산 신경민이 엄청 부분 찾으면서 버벅거리고 있었더니, ytn의 앵커도 같이 부분 찾고, 그야말로 부분의 대향연이었다. 상대방이 헤매면, 자신도 같이 헤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대인이, 엄청 말 길다. 선대인 앞에 있다 보면, 나도 덩달아 말이 길어져서, 전국민 재울까봐, 좀 신경을 쓰는 편이다.

 

글도 어렵지만, 말도 참 어렵다. 언어학을 부전공처럼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먹고 사는 걱정하다 보니, 세상살이가 팍팍해서. 한국에서 언어 현상에 대해서 가장 관심 있고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고종석이 아닐까 싶다. ‘말들의 풍경’,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말이라는 게 참 묘하다.

 

프랑스어도 직설법을 잘 안 쓰고, 은유와 풍자 이런 걸 많이 쓴다. 일본 사람 말하는 거, 특히 대학에서 토론하는 거 보다 보면 숨 넘어간다.

 

선생님 말씀이 전적으로 옳고, 정말 감동했습니다, , 이런 썰레발을 몇 분이나 푼 다음에,

 

저는, 아주 약간,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학생이 스승에게 이렇게 얘기했다면, 정말 아주 강력한 반대의 표시일 것이다. 아주 조금 다른 느낌이라면, 아예 얘기를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언어와 위계, 이런 것도 분석해보면 정말 재미있는 언어 현상일 듯 싶다.

 

한국에서의 좌파와 우파의 언어습관, 이런 것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정말 재밌을 듯 싶다. 50대의 성공한 부장 혹은 이사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흔히 관찰되는, 남을 싹 무시하고 자기 얘기만 하면서 문득 기분 좋아지는.

 

다들 흉보지만, 누군가 흉본다는 걸 자신만 모른다. 언어 습관이라기 보다는, 그 자신의 삶의 습관이 고스란히 말에 묻어나는

 

위계가 아주 강력했던 시절, 몸에 밴 습관인데, 위계가 약해지는 시대가 왔다는 걸 자신만 모르는강용석한테 이런 언어 습관이 종종 보였다. 한나라당, 민주통합당, 사실 좀 쎄다는 국회의원들은 여야 가리지 않고 요런 식의 언어 패턴이 많이 보인다.

 

좌파들의 언어는, 이와는 조금 다른 패턴. 아주 날이 서 있어서, 일반인들은 단 5분도 그 앞에 마주 서 있기가 피곤한.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먼저 선빵부터 날리고 기선제압하지 않으면, 애당초 쪽수로는 버틸 수가 없던 곳에서 오래 살면, 자연스럽게 이런 언어가 몸에 익게 된다. 한 때 당직자들이 우황청심환 먹지 않으면 도저히 열어볼 수가 없다고 했던 진보신당의 당게시판, 뭐 나름 재미는 있지만, 일반인들은 경기 일으키기 딱 좋다.

 

아마 나도 가만히 돌아다보면, 엄청 엘리트들이 쓰는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었을 법하고, 왕재수 시절이 아주 길게 있었을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의도적으로 입을 잘 안 열고, 주로 듣는다. 들으면서 상대방의 삶이나 걸어온 인생 혹은 이 사람이 하고 싶어하는 것, 이런 걸 찾아내는 게 더 재미있다. 내가 말을 하는 건,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더 쉽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게 추임새를 넣어주는 정도?

 

그러니까 나는 애당초 방송에는 맞지 않는 언어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방송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권만 바뀌면,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서지는 않으리, 그런 심경으로 요즘도 그냥그냥 버틴다.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니…”로 시작한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태초에 행동이 있었으니…”, 요렇게 맑시스트들이 공격하던 시절도 있었다.

 

말이라는 게, 이게 아주 희한한 것이다. 개념도 복잡한 것이지만, 언어 패턴 그 자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명박의 언어, 요건 어떨까? 불어를 써서 미안하지만, 데구떵토 나온다, 요런 뜻이다.

 

어쩌면 그렇게 말 한 마디 한 마디, 복장을 뒤집어놓는지, 그것도 참 신기할 정도로 말초신경을 꼭꼭 골라가며

 

해봐서 안다, 우리가 무심결에 자주 쓰는 이 말이, 아마도 정상적인 한국인의 언어 습관에서는 완전히 사라질 것 같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말을 정상적인 집단에서 해보라.

 

금방, 사방에서 미사일 날라오고, 다연장포 발사되고, 난리 날 것이다. 만약에 이 말을 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면?

 

자신이 그 집단에서 심하게 왕따이거나 혹은 그 집단이 아주 이상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이상한 말을 쓰는 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어?

 

명박이 자주 쓰는 언어들은, 아마 현대 한국어에서 영원히 봉인된 금기어처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우리들의 무의식을 이미 형성하는 것 같다. 정말로 혐오스러운 것으로서 무의식 안에 들어가 버린 최초의 정치 지도자

 

강도는 약간 약하지만, 국회의원이나 장관 중에 본인은…” 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멸종했다. 그건 전또깡의 언어라서 그렇다.

 

아마 조금 지나면, “본 의원은…”, 그런 말도 사라질 것 같다.

 

저는…”, 그러면 될 것을, 본 의원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 궁극적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언어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언어를 가지고 싶다.

 

내가 무슨 영광을 더 보고, 무슨 출세를 더 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는 언어를 가지고 싶겠나?

 

나를 더 낮추고, 누구든지 내 등 위에 올라타고 편안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쉬고 앉을 수 있는 바위 같은 삶이 내가 영감이 되었을 때 구현하고 싶은 삶이다.

 

, 연구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듯 싶다.

 

그냥 결을 따지자면, 언제나 날이 서 있고, 긴장감을 100%로 높이는 손석희의 언어와는 정 반대의 방향? 손석희 앞에서는 누구나 긴장하게 된다. 그러나 내 앞에서는 누구도 긴장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고, 그런 언어를 가지고 싶다.

 

평생 말로 먹고 살았던 신경민 앵커가 당 대변인이 되자마자, 엄청나게 부분을 찾으면서 헤매는 걸 보면서말이라는 게 뭔가, 잠시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부디 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를 빠른 시일 내에 찾아낼 수 있기를 빈다.

 

(이렇게 글을 써놓고 나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 언어습관, 이런 걸 형상화시킬 수 있는 사진은 도대체 뭘까? 무슨 형태의 사진을 찍으면, 언어라는 게 사진으로 표현이 될까? , 첫 질문부터 너무 어려운 걸 나한테 던졌다. 입 모습? 낙서? 포스터? 사진이라는 게 전달력이 참 우수한 장치이기는 한데, 언어 습관을 형상화시켯 보여주기에는와 놔,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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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한지> 혹은 번쾌의 눈물

 

나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많은 종류를 보지는 않는다. 한 가지 영화를 100번씩 보는 걸로, 그걸로 유명해졌다. 참 웃기는 일이다.

 

공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영화를 본다. 교과서를 여러 번 보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많이 운다. 나야 원래 눈물이 많으니, 내가 운 것은 아무 정보도 아니지만, 보고 또 봐도 눈물이 나는 건, 그건 정보가 좀 된다.

 

이준익 감독의 실패한 영화 중의 대표작, <즐거운 인생>, 거기에서 혁수가 공항에 있는 신부터 그 뒤에 몇 장면까지, 그건 보고 또 봐도 눈물이 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영화 <화차>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변영주 감독이랑은 아주 친하고, 어쩌면 인생의 파트너 혹은 파트너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화차>를 보고 울지는 않았다. 물론 울지 않았다고 재미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어쩔지 모르지만,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화 중의 하나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좋아하고 dvd는 물론이고 블루레이까지 모으는 영화지만이 시리즈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울었다는 것과 좋아하는 영화라는 것은, 아무 상관 관계도 없다.

 

, <레지던트 이블 4>, 극장에서 졸면서 하품하다가 울었다, 이거 아직도 안 끝나

 

하여간 그렇다.

 

별 시시껄렁한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도 울고, 어지간한 영화에서는 한 장면씩 울기도 하는데, 또 전혀 울지 않는 영화들도 있다. 좋은 영화, 나쁜 영화, 그 기준과 나의 울음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서 내가 울었다는 건, 아무 정보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참 내드라마 <대물>에서 고현정의 너무 뻔한 연설에서도 울었고, 선덕여왕의 한 장면에서도 울었고, <커피 프린스>는 거의 매회 울었고

 

할 말 없을 정도다.

 

, 그런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그리고 나의 영화 역사상으로도 가장 많이 운 영화가 있으니, 바로 영화 <초한지-천하대전>이다.

 

영진위 통계로는 9 3, 10만도 못 든 영화이다.

 

보통 내가 있는 영화사에서 중요 영화가 나올 때, 관객수 내기를 하는데, 그 때 보통은 50, 좀 작으면 30만 단위로 내기를 건다. 10만 관객은, 내기 단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한 마디로, 한국에서는 완전 실패한 영화이다. , 더 할 얘기가 없는,

 

이 정도면, 아주 졸작이거나, 아주 예술 영화이거나 혹은 독립 영화이거나.

 

물론 이 수준으로 망한 영화 중에 수작은, 구로자와의 <카케무샤>. 한일 문화교류를 시작하면서 첫 빠따로 들어온 영화가 공교롭게도 사무라이 영화, 그것도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전쟁과 관련된 것이었으니, 맙소사어쨌든 영화는 좋은 영화였다. (물론 이 영화에도 내가 우는 대목이 몇 장면 나온다.)

 

, 나의 영화의 울음에 대한 썰래발은 이 정도로 충분.

 

누구나 다 아는 항우, 바로 그 항우와 우미인이 나오는 이 영화를 dvd로 빌려서 보면서, 나는 정말 눈물이, 거짓말 안 보태고 닭똥방울 떨어지듯이 떨어졌고, 다섯 번쯤 다시 돌려보았는데, 볼 때마다 눈물 뚝뚝.

 

물론 이건 좀 특수한 상황이다. 영화 자체가 그렇게 대단했다는 건 아니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이랑 너무나 같아서

 

항우와 유방의 싸움이라는 초한지의 구조는 너무 간단하고, 몸만 있는 듯한 항우와 머리만 있는 듯한 범증이 한 편. 그리고 머리만 있는 장량, 몸만 있는 번쾌, 머리와 몸이 다 있지만 운이 없는 한신그리고 그 아무 것도 없지만 하늘의 뜻이 있는, 그리하여 결국 삼국지 유비의 선조가 되는 유방, 그들의 얘기이다. , 그들의 얘기와 각각의 사연들이야 너무 잘 알려진 것들이고.

 

영화는 처음부터 항우와 유방의 두 대빵은 좀 모자란 사람인듯, 애초부터 앵글 밖으로 빼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 범증과 장량의 머리 싸움으로 각을 잡는다.

 

물론 이 각이면 한신이 좀 나와야 할 듯 싶지만, 한신은 영화 <해운대>에 잠깐 등장한 롯데의 이대호처럼, 소리만 시끄럽고 내면의 얘기는 아주 없는그런 대갈 장군처럼 나온다.

 

(한신을 너무너무 좋아했던 나로서는, 참 아쉽다, 그가 그렇게 소리나 꽥꽥 지르는 돼지처럼 나오다니…)

 

장기라는 걸 두면, 양 쪽의 왕에 나오는 초라는 글자와 한이라는 글자, 바로 그 전쟁에 대한 얘기이다.

 

영화는, 아마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 영화 <초한지>는 통일을 끝내고 어떻게 유방이 그의 측근들을 쳐버릴 수밖에 없는가, 거기에 시선을 맞춘 영화이다. 그래서 이건, 전통적인 유방과 항우의 대결과도 좀 시선이 다르다.

 

(어쩌면 지금 중국의 상황에서, ‘토사구팽’,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는 상황이 좀 반영된 거 아닌가라는 약간의 추측을…)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이자 결정적인 시퀀스는, 보통은 항우의 마지막에 맞추어져 있을 것 같지만, 그 전투가 끝나고 바로 한신과 장량을 잡는, 그렇게 연결된다.

 

이유는 없고, 설명도 안 해준다.

 

다만, 너무 강한 한신을 잡기 위해, 그가 있는 방을 포위하고 활을 날리는 궁사들만이 있을 뿐, 그리고 거기에 대항해서 뭐라도 해보는 한신의 모습.

 

장량은 더 초라하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말을 타고 도망가는 장량, 그리고 결국 활에 맡고 사막의 모래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장량의 말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번쾌가 유방이 자고 있을 것이 뻔한, 왕실로 들어간다.

 

당근빠따, 쫄따구들이, 이제는 대장군이 된 번쾌를 막아선다.

 

근데

 

그 앞에 유방이 나선다.

 

내버려두어라

 

번쾌, 씨부린다.

 

, 번쾌, 좃도 아닌데, 니를 따라 나섰고, 블라블라, 하여간 한신, 장량, 다 니가 좃도 아닐 때 니랑 내랑 쟤들 좃도 아닐 때 이렇게 저렇게 꼬드겨 데블고 나온 얘들,

 

별 잘 못한 것도 없는데, 그리고 내가 걔들한테 하자고 했는데, 니가 이렇게 쳐죽여,

 

, 이제 내 필요 없지?

 

, 번쾌, 이제 필요 없는 존재이구나

 

요 시점에, 유방이 한 마디 할까 말까, 숨 죽이고 봤는데, 역사 속 우유부단의 대명사, 유방과 유비, 역시 한 마디 없고

 

번쾌는, 순간

 

그가 항우와 맞대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던 그의 칼로 그의 목을 그어버린다

 

번쾌의 최후.

 

요 시퀀스가 다 합치면, 10분 조금 넘는데,

 

유방의 즉위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장면에서 한신이 죽을 때부터 번쾌가 죽을 때까지, 나는 거의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냥 울었고,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몇 번을 돌려봐도, 울고 울고 또 울음이 났다

 

이건 미래 시점에 대한 감정이입이 아니라, 바로 그 날의 감정이입이라고나 할까?

 

한명숙이 민주통합당 당대표가 되고, YMCA의 이학영 대표가 최고의원에서 떨어지던 날

 

모르겠다

 

그 뒤의 시대가 좋아질지는하지만 죽어나갈 사람들의 모습들이 너무 분명해보였던 밤,

 

영화 <초한지>를 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더 울었던 건,

 

이러면 안된다, 최소한 영화 속에서는 한 마디 했던,

 

그런 번쾌도 우리에게는 없을 것이라는 걸.

 

그래서, 밤새도록 울고 또 울었었다.

 

이 얘기를 한참이나 지난 오늘 다시 회상하는 것은,

 보통은 통일을 하고 한신과 장량을 쳐내는데,

지금의 민주통합당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데이터상의 승부를 보고, 토사구팽을...


(영화 볼 때에는 없었던 일인데, 나중에 박선숙이 자신의 전략공천을 포기하면서, 번쾌가 아주 없지는 않구나, 그런 걸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선숙, 그가 번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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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 시대를 보내며

 

세상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지 않겠나?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지난 몇 년간, 내 거의 모든 것은 2012년 대선에 맞추어져 있었다.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뭐가 바뀌어? 맞는 말이다. 그래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야, 가장 원초적인 것이고.

 

하여간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더 하나 더해진 질문이, 과연 무엇 때문에 대통령을 바꾸어도 세상은 좋아지지 않을까? 이건 더 어려운 질문이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익숙했던 논문 양식과 사회과학 양식을 벗어나서, 에세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누가 들으면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걸 위해서 영화 시나리오도 쓰기 시작했고, 하다보니 소설도 쓰게 되었다. 그뿐인가? 필요하다면, 드라마도 쓸 기세다.

 

그만큼 나는 명박 시대가 너무 힘들었고, 동시에 그런 시대가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랬다.

 

, 그런 것보다는 조금 작게, 3 15이라는 날짜가 내게 주는 고통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한미 fta가 발효되는 날

 

그 날을 무기력하게 기다리고, 정작 그 날이 오면 최선을 다 하겠다혹은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있기가 너무너무 싫어서

 

삭발을 했다.

 

정신의 분노를 가장 약한 수준의 육체적 고통으로 바꾼 건데, 그렇게라도 안 하면 너무너무 무기력해질 것 같아서.

 

, 나름대로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맡았던 3 15일인데, 그렇다고 감정이야 내가 속일 수 있겠나, 솔직히 무기혁하고 기분 더럽다.

 

그렇다고 그냥 잠을 청하면서 하룻밤 그냥 넘겨 버리기도 그렇고.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기왕 발효된 거,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

 

논리적으로는 맞을 수도 있는데, 그건 니나 해라그래주고 싶었고,

 

하여간 이런저런 생각 중에, 대선 직전에 뭔가 꼬추가루를 뿌려주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두 번째 에세이집 생각이 잠시 났다.

 

엔제까지 내가 에세이라는 형식의 글을 계속 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해가 가기 전에 한 권 더 내기로 생각은 하고 있었다. 꼬추가루 정신.

 

하여간 새로운 책의 제목을 생각하게 된 배경과 맥락은 대체적으로 이렇다.

 

원래의 작업가설로 잡아놓은 제목은 명박 시대라는 것이었다.

 

포토 에세이로 할지, 아니면 그냥 글만으로 갈지, 그건 아직도 생각 중이고.

 

, 형식이 그렇게 중요하겠나,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였는지, 그게 중요하지.

 

첫 번째 에세이집의 모티브는 마흔이었다.

 

두 번째 에세이집의 모티브는 명박 시대’… , 이거야 꽤 전에 잡아놓은 거고.

 

한미 FTA가 발효되는 날, 자정을 지나면서 먹먹하게 고통스러워하는 순간,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제목이 있었다.

 

명박 시대를 보내며”, 부제 : 씨방 새끼, 진짜 5년 동안 죽는 줄 알았다

 

, 이게 제목으로 과연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 출판사의 자기 검열에 걸릴 수는 있지만, 그거야 내 줄 수 있는 출판사를 찾으면 그만이고.

 

씨방 새끼, 진짜 5년 동안 죽는 줄 알았다…’

 

이게 솔직한 내 심정이기는 하다. 진짜 5년 동안, 명랑으로 해학으로, 그리고 소소한 사랑으로, 겨우겨우 버텨냈지, 이 잔인한 시기를 또 견뎌내라면, 도저히 못한다.

 

그래서 요 모티브로, 씨방 새끼, 요 제목에 걸맞는 글들을 6개월 정도 연작으로 써보려고 한다.

 

그래야 대선 코 앞에서, 야 이 씨방새끼야, 그렇게 딱 꽂아놓으면 제목이 나올 수 있는 책이 나오게 된다.

 

물론 수필들을 씨방 새끼난무하게 쓰려고 하는 건 아니다. 가능하면 아름답고 감미롭게, 내가 잘 안 쓰던 낭만파 언어들을 다 동원해볼 생각이다.

 

이 소소한 행복도 다 가로막던, 씨방 새끼야

 

요런 톤으로.

 

오늘은 한미 fta 발효된 날

 

이런 생각도 안 하면, 이 밤을 그냥 온전히 넘기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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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의 경제학

 



변영주 감독의 '화차'가 개봉을 했다. 이 영화가, 여러 가지로 나에게는 의미심장한 영화이다.

 

지금의 나꼽살까지 오게 되는 우여곡절 한 가운데, 이 영화가 자리잡고 있다.

 

연전에 문화와 관련된 라디오 방송을 변영주 감독하고 기획을 시작한 적이 있었다. 거의 성사단계였었는데, 그 때 화차가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기타 등등의 이유로 그 건은 불발이 되었고, 조금 시간을 끌다가 선대인 부소장이 경제 방송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화차에 대한 내용은 그 시절에 이미 알고 있었고, 막 촬영을 끝낸 변영주 감독을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었다. 촬영장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나도 정신 없고 해서 실제 촬영장에는 못 가봤다. 촬영 직전, 촬영 직후, 시사회 직전, 시사회 직후, 개봉 직전, 이렇게 영화의 개봉까지 오는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할 수 있었다.

 

화차 시사회는 타이거 픽쳐스에서 물경 여덟 명이나 한꺼번에 갔었다. 이런 일이 잘 없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궁금해하기도 했던

 

모든 영화에는 겉 얘기가 있고, 속 얘기가 있다. 물론 어떤 영화는, “난 그냥 돈 벌고 싶어요, 아무리 탈탈 털어도 속 얘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

 

내가 화차에서 주목한 것은, 이 화차라는 제목이 갖는 메타포어, 그 자체이다.

 

작년 말에 만났을 때에는, 실제 개봉에서는 제목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름의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제목 그대로 개봉하게 되었다.

 

영화의 겉얘기는, 포스터에 적힌 그대로이다.

 

그리고 영화의 속얘기는, 영화의 대사나 자막 등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영화의 제목 그 자체인 화차이다.

 

기묘한 동음어인데, 꽃마차도 화차, 불의 수레도 화차, 우리 말에서는 그렇다.

 

화차의 일본에서의 의미는 악인을 지옥으로 태우고 가는 불수레 혹은 불의 마차 정도 된다.

 

따져보면, 우리는 개개인이 알아서 문제를 풀라고 하는 꽃마차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그렇게 10년간을 살아온 것 같다. 자기계발서에서 재테크에 이르는, 긍정적 마인드에서 최근의 위로와 치유에 이르는, 일련의 것들은 꽃마차와 연동되어 있다.

 

그렇지만 개인이 풀 수 없는 문제그것은 바로 화차, 불 수레인 셈이다.

 

꽃마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불수레를 만난 우리의 형국, 어쩌면 일본 보다 20년 후에 그 길을 정확히 걸어가고 있는 한국의 소시민들이 만나게 되는 비참한 형국에 대한 데자뷰가 아닐까?

 

애써, 이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야, 그렇게 감추어두었던 이 사회의 처절한 현실이 변영주의 카메라 앞에서 통째로 우리 앞에 드러나게 된다.

 

날 것을 들여다보는 것은 피곤하고 아찔한 일이지만, 다행히도 변영주의 카메라는 그렇게 무식하게 날 것을 그냥 통째로 보게 하지는 않는다. 머리털을 붙잡고, 이걸 보란 말이야, 변영주가 그렇게 우악스럽게 보게 하지 않은 것

 

변영주가 좀 변했다고 나는 표현한다.

 

다른 영화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업성과 비상업성의 교묘한 줄다리기를 했다고 볼 수도 있고, 변영주 감독이 더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잔인하고 들여다보기 싫은 현실이지만, 그걸 우악스럽게, 이걸 좀 봐,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감독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생각보다 큰 영화였다.

 

이선균이 남성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선균을 참 좋아한다. 이선균의 눈을 따라서 영화를 만든 것이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 이거야 개인적인 취향이지만나는 좋았다.

 

 

영화는 던져졌고.

 

이걸 보고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이게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준익 감독이, 이 영화에 대해서 했던 코멘트는, “사회파 감독이군…”, 이랬다.

 

큰 영화가 나올 때마다, 영화사에서는 매번 내기를 한다. 생각보다 좀 짜다. 최근의 어떤 영화에, 나는 200만을 걸었는데, 어쩌면 내가 따갈 수 있는 가능성도 좀 생겼다.

 

화차에 대한 사람들의 예상은, 생각보다 후했다.

 

나는 가장 높은 수치, 450만을 불렀다가, 에라 인심 쓰는 건데, 500만으로 상향조정했다.

 

, 워낙 비수기라서 가능성, 택도 없는 수치이기는 하지만그래도 내기를 이기는 게 맛이 아니라, 설래임으로 기다리는 맛이라는 게 있어서.

 

희망이 있다면, 화차라는 말이, IMF 이후에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단어로 남을 수 있다면

 

일본의 버블 공황에서 나온 말이기는 한데, 강남에서 해운대까지, 화차의 경제학이란 말만큼 군상들의 모습을 더 잘 묘사하는 말은 없었던 듯하다.

 

꽃마차를 기다렸으나, 그들 앞에 나타는 것은 엉뚱하게도 화차.

 

그러고 보면, 화차의 마부는 바로 이명박이었다.

 

그가 끌고 온 747이라는 꽃마차는 우리를 지옥길로 안내하는 마차였던 셈이다.

 

그 속에서 20대 여성이 내릴 수 있었던 개인적 선택은

 

그게 김민희라는 배우가 맞닥거린 복잡미묘한 구조의 덫이 아닌가?

 

명박 시대의 경제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지옥으로 가는 불마차, 화차만한 안성맞춤의 개념이 없는 듯 싶다.

 

이선균의 평범한 아내가 되고 싶었던 어느 한 여인, 엄청난 것도 아닌, 이 간단한 꿈마저도 명박 시대에는, 국가가 시민의 보호자가 아니라 투기꾼 그 자체였던 시절, 행복은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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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마음이 허해서,

타이거 픽쳐서의 오대표가 오늘 찍어준 사진 한 장.

삭발 첫 날,

괜히 이 사진 보면서, 마음이 짠해졌다.

아무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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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을 하다

 

한미 FTA 3 15일 발효된다고 발표되었다. 이미 알고 있던 일이지만, 진짜로 마음이 멍했다.

 

주변 사람들과 좀 상의를 했는데, 그냥 니가 삭발해라

 

나라 경제가 넘어갈지도 모르는데, 경제학자 한 명쯤 삭발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 삭발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건 잘 안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 싫었던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을 지고 가면서, 내 주변에 지나가는 모든 일상적 야만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 그 무기력감 보다는 차라리 삭발이라도 하는 게 나을 듯 싶었다.

 

그래도 우울과 비장미, 이건 영 내 감성 아니고

 

미장원에 가서 우울하지 않게, 그리고 가능하면 너무 흉하지 않게 하라는 게, 아내가 허락을 해주면서 내린 지침이었다. 삭발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이 여인이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바로 새만금 사건으로 아내가 방조제 올라가면서 삭발하던 때였다. 아내는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처음으로 물대포를 맞았다.

 

기왕에 하기로 한 거, 날자를 잡다보니, 한미 FTA 발효일 이전에 방송될 수 있도록 나꼽살 FTA 특별편 녹음을 하기로 했고, 그게 바로 오늘이다.

 

하여간 그리그리하여,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서 나꼽살 녹음 스튜디오에서 제일 가까운 미용실에서 약식으로 삭발을 했다. 이게 뭔가 바꾸지 못한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정말로 무기력과의 싸움과도 같다. 큰 걸 할 수 없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사회의 중요한 계기에, 크든 작든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정성을 내놓으면서 살았던 것 같다.

 

김미화 선배, 선대인 등 나꼽살팀이 삭발하는 자리에 같이 해주었는데, 나름고마웠다. 다들 바쁜 사람들이다. 방송 시작한지 벌써 4달이 넘었는데, 아직 전부 같이 앉아서 소주라도 한 번 하는 자리는 물론이고, 회식 한 번도 제대로 못했다. 잠깐 같이 앉아서 차 한 잔 하는 것도 쉽지 않다.

 

FTA와 관련해서, 삭발 한 번 하고 땡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사정이 바뀌고, 나도 정신이 없어서 아직 마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괴담의 총합으로 이름 붙인 책을 마감하는 게 우선 급하다. 사실 이번 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래저래상황이 계속 바뀌어서 아직 못 끝냈다는 건, 비겁한 변명이고팜플렛으로 낼 수 있는 시기를 놓쳐서, 결국은 얘기를 더 키워야 하는.

 

(밀린 책이 한 권 더 있다. 역시 거의 다 써놓고 마무리를 못하는 책 한 권 더. 이건 주제가 좀 다르다.)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후에 지난 번 시나리오를 가지고 소설로 바꾸는 작업. 하여간 나도 가진 재주와 채널을 전부 동원해서, 이 싸움을 이렇게 간단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아서.

 

안 하던 짓까지 하면서도, 이 난리를 치는 것은, 이 싸움을 그냥 지고 끝내고 싶지는 않아서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거창하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게 되었다. 감성에 맞지도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고, 지치기만 한다. 작더라도 의미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하고, 그걸 조금씩 모아서 어느 순간 돌아보니, 세상이 조금 좋아졌군그런 걸 더 선호하게 되었다.

 

내가 언제까지나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전선을 치면서 방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우리 시대에 해결하고그럴 수 있었으면 한다.

 

좀 밝고, 재밌게 생각하고, 그렇게 삭발도 좀 즐기자고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붉은 돼지의 엔딩 곡인 가끔은 옛 이야기를’, 카토 토끼꼬의 노래를 들으면서 갑자기 눈물이 픽.

 

이게 뭔 궁상인가 싶지만, 예전에 삭발했던 생각, 단식했던 생각, 단식하는 사람 말리던 생각 등등,

 

이 나이에 이게 뭔짓이래, 그런 생각이 잠시 들면서 눈물이 픽. (나야 워낙 눈물이 많아서, 내 눈물에 별 정도값은 없다.)

 

가끔은 지난 이야기를 할까

늘 찾아가던 옛 친구의 그 가게

마로니에 가로수를 창밖으로 내다보며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보냈었지

보이지 않는 내일을 무턱대고 찾으면서

다들 희망을 품었었지.

흔들리던 시대의 뜨거운 바람에 휘말려

온몸으로 세월을 느꼈었지.

그랬었지..

 

집에 들어오니까, 야옹구, 야 이 개새, 무섭다고 푸르르 도망을 가버린다.

 

이럴 수가 있어, 매일 니 똥을 치워주는 건, 바로 나라고 나!

 

잠시 후 금방 익숙해졌는지, 낑낑거리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 아빠, 털갈이를 벌써 했나?

 

요즘은 야옹구도 봄맞이 털갈이를 시작했다.

 

삭발,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머리는 금방 나고, 날씨도 금방 봄이 되고, 사방에는 꽃이 피어날 거다. 진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민주화 되었다고 하는 게 언젠데, 그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또 이러고 있다는 게 약간 슬펐고, 이 문제가 그냥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더 서러웠다.

 

영화 매트릭스비유를 가끔 들고는 하는데, 자본주의 경제라는 게 진짜로 그렇다. 여기에 한국이라는 아주 독특한 사회를 집어넣으면, 진짜로 ‘2중 매트릭스’ – 등에 좋다는 2중 매트리스가 아니라 인 셈이다.

 

한명숙이 어떤 사람인지, 진짜로 또 하기 싫은 경험을 한 번 더 혹독하게 했다.

 

싸움은 이제 중반부를 슬슬 넘어가는 듯싶다. 아직은 꼬불쳐두고 있는 패들이 좀 남아있다.

 

(타이거 픽쳐스의 오대표가 삭발 직전, 멍 때리고 있는 사진을 한 장 찍어주었다. ,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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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마이크와 작은 마이크

 

칼럼을 오래 쓰다보니, 사물이 칼럼의 눈으로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 민주통합당 하는 거 보면 답답해서, 뭐라도 좀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기도 하지만내려놓은 건 내려놓은 거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제 새로운 상황에도 익숙해질 것이다. 혼자서 나라 구하는 거 아니라는, 뭐 당연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참으면서 좀 포기하는 데에도 익숙해지려고 한다.

 

처음 나는 꼽사리다시작할 때, 김어준이 마이크의 매력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큰 마이크를 쥐어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그렇게 실감이 가는 얘기는 아니었다. 방송은 이제 좀 자리를 잡는 듯 싶은데, 어쨌든 김미화 누님의 힘에 기대어, 출발은 성공적인 듯 싶다.

 

내가 쥐어본 마이크 중에서 제일 큰 건 어떤 것일까?

 

뉴댈리에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폐회식 직전에 분과 의장 보고를 한 적이 있었다. 방송은 아니고,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거였는데, 총회장 앞의 대형 화면에 내 얼굴 보면서 얘기하는좀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영향력은없다.

 

그 회의는 깨진 회의였고, 내가 이끌던 분과는 중반 이후 아예 회의를 열지도 못했다.

 

더 많은 권한에는 더 많은 책임이 따른다유명한 사람이 한 얘기는 아니고, 그냥 영화 스파이더 맨에 나온 대사였다. 어쨌든, 요즘은 그런 생각을 좀 해본다.

 

하다보니 트위터의 팔로우 숫자도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많아졌다. 과연 거기에서 한 마디 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하여간 현실은 그렇다.

 

그거야 바깥을 향하는 마이크이고.

 

그렇다면 내 안을 향하는 마이크는 뭐가 있을까? 텍스트의 형태로만 보자면, 만년필로 끄적끄적 거리면서 노트에 쓰는 것들이 가장 많이 영향을 준다. 최초의 발상이나 책의 전체적인 틀 혹은 제목 같은 게 그런 과정에서 나온다. 첫 생각을 던지고 만들어나가는 순간은, 노트 앞에 혼자 앉아있는 순간들인 경우가 많다.

 

그 다음으로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은, 진짜로 임시연습장처럼 쓰는 블로그.

 

다른 사람들도 블로그를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체로, 여기를 아무도 안 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쓴다.

 

물론 하루에 천명 내외의 사람이 오고 가니, 누구나 보기야 하겠지만아무도 안 본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거나, 이것저것 끄적끄적 거려본다.

 

나는 원래 기똥찬 생각을 한 번에 해내는, 그런 천재형은 절대로 아니고, 시간을 많이 들여서 점근법 같은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편이다. 한 번에 쭉 나오면 좋겠지만, 뭐 그럴 능력이 없는데, 어쩌겠는가.

 

그래서 시간을 많이 들여서 착안을 하는 과정에 꽤 많은 공을 털어 넣는다. 물론 늘 같은 상황에 있으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그건 지겨워서 버티지를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여건을 바꾸어보기도 하고, 노트를 바꾸어 보기도 하고만년필은 비싸서 바꾸기가 쉽지 않으니까, 잉크를 좀 바꾸어 보고.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어떨 때에는 토론을 아주 많이 하고, 어떨 때에는 혼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노트에서 블로그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아는 사람들과 상의하거나 토론하는 과정이 들어가기도 한다.

 

어쨌든 여러 사람들의 머리가 모이고, 좋은 의견이든 나쁜 의견이든, 생각이 모이면 최종 결과물이 좋아질 확률이 높다. 물론 그 과정이 늘 부드럽거나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생각을 나누는 편이 훨씬 좋을 듯 싶다. 이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나는토론이 많고, 반대의견도 많은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자기 혼자 생각하고, 자기가 대단한 걸 찾아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꼴불견도 없으니 말이다.

 

한나라당, 아니 이제는 새누리당, 거기가 왜 이상하냐? 맨날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기들끼리 얘기를 해서 그런 것 아니냐? 민주통합당의 486들이 왜 이상하냐? 여기도 늘 자기들끼리, 있지도 않은 힘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큰 마이크와 작은 마이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힘에는 큰 힘과 작은 힘이 있는 것 같다. 그건 권력의 문제이다. 분명히 현실에는 위계라는 게 존재하고, 정치적 힘이든 경제적 힘이든, 더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다. 그러나 마이크에도 그런 게 있을까?

 

진실이든 아니든, 뭔가 찾아가는 길이라고 할 때, 더 큰 게 있고, 더 작은 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가 마지막에 자식이 뿌리려던 홍보 전단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더 큰 마이크가 있고, 더 작은 마이크가 있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내는 순간, 혹은 새로운 것을 찾아내거나 착안하는 순간, 그 순간에 큰 것, 작은 것, 그런 게 있지는 않다.

 

물론 책과 칼럼은 다르고, 매체나 양식에 따라서 전하고 싶은 얘기나 하고 싶은 얘기 혹은 그 얘기들을 전개하거나 정리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다섯 살짜리가 문득 나에게 건네는 말이나 이명박이 하는 말이나, 어떤 말이 더 클까? 뭔가 배우는 순간이라는 것은, 큰 마이크와 작은 마이크라는 논리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새로운 생각이 생겨나거나, 뭔가 해보고 싶은 결정적 순간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게 미약한 것이므로

 

물론 나도 모든 사람들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귀기울여 듣지는 못한다. 그랬다가는용량 초과에, 인격 초과인 상황이 올 가능성이 100%일 테니까. 그렇지만 큰 마이크와 작은 마이크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수 년간 익숙하게 살고 있던 삶의 양식이나 표현 방식을 던져버리고, 마이크를 내려놓을 준비를 하다보니과연 큰 마이크가 있고 작은 마이크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못된 사람과 좋은 사람이 REK로 있을까 싶다. 못된 생각을 많이 하면 못된 사람이 되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 좋은 사람이 되는 거 아닌가?

 

큰 마이크를 쥐기 위해서 자꾸 못된 생각을 하면, 마이크는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스스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 같다. 우파들이 더 큰 힘, 더 큰 권력을 탐하다가 자기 스스로 그 화를 참지 못하고 붕괴하는 게 대충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블로그라는 양식은, 이게 언제까지 문명적으로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참 여러 가지 목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개방적 포맷이다. 요즘 같으면 트위터에 밀려 작은 마이크 같아 보이는

 

그러나 뭔가를 생각하거나, 뭔가를 만들어나간다고 할 때,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는 없다.

 

큰 마이크라고 생각했던 조선일보 맛탱이 가는 거 봐라.

 

힘을 탐하는 것이 주는 허탈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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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칼럼을 마치고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몇어찌 50회째 원고를 끝냈다.

 

2005년에 서울신문에 첫 칼럼을 쓰면서, 거의 매주 어디엔가 칼럼을 썼다. 참 오래도 썼다.

 

꽤 전부터, 이 칼럼을 마지막 칼럼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경제학자로서의 내 삶을 대선 때까지로 맞추어놓고 있던 것은, 이번 정권이 시작할 때부터였다. 미루어두었던 은퇴,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된 듯하다.

 

제일 먼저 정리한 게 학교 수업이고, 그 다음에 강연들. 예전에 신세졌던 사람의 부탁을 받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강연도 많이 정리했다.

 

이번에 칼럼을 정리한다.

 

이렇게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자연스럽게 학자로서의 삶을 정리해가는 중이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다. 쥐면 더 쥐고 쉽고, 뭔가 내려놓으면 아쉬울 것 같아서, 더 얹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나는 칼럼들이 좀 있다. 나름 보람도 있었고, 칼럼이라는 글의 양식에서 몇 가지 시도도 해보았다.

 

그러나 모든 시작하는 것에는 끝이 있는 법.

 

사실 학자 혼자서 해볼 수 있는 시도는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를 해봤지만이미 한계에 왔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거나, “그게 내가 예전에 했던 얘기야”,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학교 바깥에서 공동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고, 그렇게 쓸 돈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머리를 숙이고 학교로 들어가느니

 

그냥 내려놓는 편이 훨씬 깔끔하다.

 

원래는 바로 귀농할 생각을 했었는데, 아내가 취직을 했고, 아내는 그 일을 조금 더 해보고 싶어한다. 나는 그냥 집에서 밥이나 하고, 집안 살림하고그냥 놀 거다.

 

영화와 관련된 일은, 얼마나 오래 할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진짜 영화하는 사람들이 미친 것처럼, 그렇게 영화에 미치지는 않았다.

 

영화를 만드는 일보다도, 영화에 관련된 책은 좀 재밌게 써보고 싶은 것들이 좀 있다.

 

어쨌든 학자로서의 삶은 이제 조금씩 내려놓으려고 한다.

 

대장정 시리즈에 마무리하지 못한 책들이 좀 남아있고, 번외편 책들이 마무리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 뒤에, 경제학 책을 계속 쓸 것 같지는 않다. 더는 아는 얘기도 없고, 더 해놓은 연구도 없고, 그 뒤로 더 연구를 할 계획도 없고.

 

효과적이었는지 혹은 효율적이었는지, 그건 모르겠다. 다만 내게 주어진 시대를 열심히 살기는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퇴로를 막아놓고, 뒤로 가지 않는 그런 글들을 쓴 것 같다. 내려놓는 순간을 정해 놓으면, 눈치 볼 게 확 줄어들고, 신경 써야 할 것도 줄어든다.

 

처음 시작할 때 생각해보면, 나도 참 멀리 와 있는 것 같다. 옳은 데 와 있는 것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멀리 온 건, 맞는 것 같다.

 

그 동안 칼럼을 쓰면서, 꼭 남기고 싶은 한 마디가 뭘까, 생각해봤더니

 

신문의 칼럼 원고료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싸다는 사실. 이건 좀 시정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신문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당장 뭔가 더 조사를 하거나 아니면 과거에 알고 있던 것을 꺼내놓아야 하는데

 

우리 신문에 글 쓰는 걸 영광으로 알라, 이런 편집국의 자세는 좀 아닌 듯 싶다.

 

물론 말은, 신문이 어려워서 원고료가 그렇게 밖에, 그렇게 하기는 하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편집국 간부들의 말은,

 

당신한테 특별히 지면을 주니 영광으로 아시고

 

괄호 열고, “여기 글 쓰고 싶은 사람들은 많으니까…”

 

그건 좀 아닌 듯 싶고, 모 신문사들처럼 짧은 글에 100만원 이상씩 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지금보다 원고료가 3배 정도는 올라야 할 것 같다. 잠깐 계산해봤는데신문사에서 돈이 없어서 원고료를 적게 지불한다는 말은, 사실 경제학자로서 잘 납득이 가지는 않았다. 칼럼 원고료 3배로 올라도, 신문사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몇 년간 해보고 갖게 된 생각은,

 

당신 아니더라도 글 쓸 사람 많으니깐, 영광으로 아시라

 

요게 신문 원고료가 지독하게 짠 진짜 이유인 것 같다.

 

다음 번에 칼럼을 쓰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마지막 칼럼을 접으면서 요 말 한 마디는 남겨놓고 싶다.

 

어쨌든, 지난 몇 년간 과도한 영광을 누렸다.

 

칼럼도 권력이라면 일종의 권력이다. 나는 내 몸에 붙은 짐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그렇게 펜대를 내려놓을 마지막 순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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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질까?

 

학자로서 살아가는 삶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하겠다고 결심한 건 꽤 오래 된다.

 

마흔 살에 은퇴하겠다는, 스무 살 때부터 나하고 했던 약속이 있다. 돌아보면 내 삶은 미친 놈처럼 과로와 과로의 연속이었는데, 그만둘 시간이 정해져서 과로 인생을 살았던 측면이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정부나 외부 지원 없이, 학자 혼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봤고, 이보다 일을 키우기 위해서는 팀 작업이 필요한데, 그건 지금으로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델링 작업이나 장기 시뮬레이션 같은 걸 더 해보고 싶은데, 이런 것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는다.

 

이래저래,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했던 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하고, 뭐 그런 방법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고 싶지는 않고.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누군가 나가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듣고, 그 동안 TV도 참 많이 나갔다. 이제 그건 나꼽살로 어느 정도는 내가 기여할 만큼은 한 거라는 생각이 들고, 올해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에 열심히 하는 걸로.

 

아주 우연한 기회에,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영화사 직원이 되었고, 요즘은 시나리오부터 영화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는 중이다. 나름, 안 해보던 일이라서 재미있다.

 

혼자서 학자로 살아간다는 것, 이게 좀 고달픈 일이다. 어떻게 보면, 나도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지 좀 되는 것 같은데, 그냥 억지로 즐거운 상상을 하고, 웃으면서 참고 버텼던 것 같다.

 

올해까지가 그 한계점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연구소 같은 데 대해서 생각하면 머리가 빡빡하고, 대학 근처만 생각해도 머리가 욱신욱신.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거의 쉬지 못하고 너무 오랫동안 초긴장 상태에서 살아온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연구소나 대학에는 더 이상 비밀스러운 것도 없어서, 신비감이나 기대감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일은, 이제 때려죽인다고 해도 못하겠다.

 

이래저래, 내가 학자로서 사회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은 나도 못 버티고, 또 같은 형식으로는 더 나올 얘기도 없을 것 같다.

 

삶이라는 게, 의미와 보람만으로 살 수는 없고, 흥미나 재미가 없으면 정말로 자신의 혼을 담기가 어렵다. 간단하게 말하면, 학자로서의 삶이 더 이상 흥미가 없고, 어떤 이유로든,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다.

 

경향신문 연재 기준으로 하면, 이제 3번의 칼럼이 남아있다. 사회적으로 하던 일 중에서, 칼럼이 제일 먼저 끝난다. 아마 꼽사리가 가장 마지막까지 진행될 거고, 경제 대장정을 다 마무리하게 될 때까지는 당분간 책은 계속 쓰게 될 거고.

 

어쨌든 그러다 보니 가장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은 질문이, 과연 명박 시대가 끝나고 나면 세상이 좋아질까, 그 질문이다.

 

안타깝지만, 지금 상황대로라면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 이게 내 잠정적 결론이다. 물론 내가 모든 걸 생각할 수는 없으니, 언제라도 돌발 변수가 존재할 수는 있지만, 현재까지로서는 영 아니올시다에 가깝다.

 

그렇지만 어쩌겠냐, 내가 어쩔 수 없는 범위 바깥의 일인데 말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은 나도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음 시대의 일은, 또 다음 시대의 사람이 등장해서 더 많이 분석하고,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세상은 늘 그렇게 흘러간다. 안타깝다고 붙잡고 있는다고 해봐야, 더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괜히 그러다가 정말 노욕이 생겨나게 된다. 처음 출발할 때 생각해보면, 이미 아주 멀리 와 있다. 더 가겠다고 붙잡고 있는 것, 그건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르고.

 

한국 경제를 주제로 12권의 책을 마치고 나면, 정말 더 할 것도 없고, 더는 아는 것도 없는 상황이 될 것 같다. 그리고도 세상이 안 좋아진다면? 어쩌겠냐, 거기까지가 내 능력치의 전부일텐데.

 

어쨌든 시리즈에 남은 책 몇 권 그리고 번외편으로 준비된 기타 등 정리하고 나면, 경제학자로서 더 이상 책을 쓰거나 그런 일은 안 할 것 같다. 그야말로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다.

 

어떻게 보면, 진작에 그만두었어야 할 일들이었는데, 명박 시대라는 이상한 시대를 만나 마지막으로 남은 힘들을 쥐어짜면서 몇 년을 더 버틴 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들의 시대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라고, 지금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걸 끝까지 지키겠다고 할 수 있는 능력치 이상으로 바둥거리면, 정말 사람 추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에서 나도 주체할 수 없는 과분한 영광을 누린 셈이다. 이제 그걸 다음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싶다.

 

권력이나 힘이나, 영광이나, 너무 쥐고 있으려고만 하면 결국에는 추해진다.

 

나는 그렇게 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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