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칼럼을 마치고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몇어찌 50회째 원고를 끝냈다.

 

2005년에 서울신문에 첫 칼럼을 쓰면서, 거의 매주 어디엔가 칼럼을 썼다. 참 오래도 썼다.

 

꽤 전부터, 이 칼럼을 마지막 칼럼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경제학자로서의 내 삶을 대선 때까지로 맞추어놓고 있던 것은, 이번 정권이 시작할 때부터였다. 미루어두었던 은퇴,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된 듯하다.

 

제일 먼저 정리한 게 학교 수업이고, 그 다음에 강연들. 예전에 신세졌던 사람의 부탁을 받거나,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강연도 많이 정리했다.

 

이번에 칼럼을 정리한다.

 

이렇게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자연스럽게 학자로서의 삶을 정리해가는 중이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다. 쥐면 더 쥐고 쉽고, 뭔가 내려놓으면 아쉬울 것 같아서, 더 얹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나는 칼럼들이 좀 있다. 나름 보람도 있었고, 칼럼이라는 글의 양식에서 몇 가지 시도도 해보았다.

 

그러나 모든 시작하는 것에는 끝이 있는 법.

 

사실 학자 혼자서 해볼 수 있는 시도는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를 해봤지만이미 한계에 왔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거나, “그게 내가 예전에 했던 얘기야”,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학교 바깥에서 공동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고, 그렇게 쓸 돈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머리를 숙이고 학교로 들어가느니

 

그냥 내려놓는 편이 훨씬 깔끔하다.

 

원래는 바로 귀농할 생각을 했었는데, 아내가 취직을 했고, 아내는 그 일을 조금 더 해보고 싶어한다. 나는 그냥 집에서 밥이나 하고, 집안 살림하고그냥 놀 거다.

 

영화와 관련된 일은, 얼마나 오래 할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진짜 영화하는 사람들이 미친 것처럼, 그렇게 영화에 미치지는 않았다.

 

영화를 만드는 일보다도, 영화에 관련된 책은 좀 재밌게 써보고 싶은 것들이 좀 있다.

 

어쨌든 학자로서의 삶은 이제 조금씩 내려놓으려고 한다.

 

대장정 시리즈에 마무리하지 못한 책들이 좀 남아있고, 번외편 책들이 마무리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 뒤에, 경제학 책을 계속 쓸 것 같지는 않다. 더는 아는 얘기도 없고, 더 해놓은 연구도 없고, 그 뒤로 더 연구를 할 계획도 없고.

 

효과적이었는지 혹은 효율적이었는지, 그건 모르겠다. 다만 내게 주어진 시대를 열심히 살기는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퇴로를 막아놓고, 뒤로 가지 않는 그런 글들을 쓴 것 같다. 내려놓는 순간을 정해 놓으면, 눈치 볼 게 확 줄어들고, 신경 써야 할 것도 줄어든다.

 

처음 시작할 때 생각해보면, 나도 참 멀리 와 있는 것 같다. 옳은 데 와 있는 것인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멀리 온 건, 맞는 것 같다.

 

그 동안 칼럼을 쓰면서, 꼭 남기고 싶은 한 마디가 뭘까, 생각해봤더니

 

신문의 칼럼 원고료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싸다는 사실. 이건 좀 시정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신문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당장 뭔가 더 조사를 하거나 아니면 과거에 알고 있던 것을 꺼내놓아야 하는데

 

우리 신문에 글 쓰는 걸 영광으로 알라, 이런 편집국의 자세는 좀 아닌 듯 싶다.

 

물론 말은, 신문이 어려워서 원고료가 그렇게 밖에, 그렇게 하기는 하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편집국 간부들의 말은,

 

당신한테 특별히 지면을 주니 영광으로 아시고

 

괄호 열고, “여기 글 쓰고 싶은 사람들은 많으니까…”

 

그건 좀 아닌 듯 싶고, 모 신문사들처럼 짧은 글에 100만원 이상씩 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지금보다 원고료가 3배 정도는 올라야 할 것 같다. 잠깐 계산해봤는데신문사에서 돈이 없어서 원고료를 적게 지불한다는 말은, 사실 경제학자로서 잘 납득이 가지는 않았다. 칼럼 원고료 3배로 올라도, 신문사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몇 년간 해보고 갖게 된 생각은,

 

당신 아니더라도 글 쓸 사람 많으니깐, 영광으로 아시라

 

요게 신문 원고료가 지독하게 짠 진짜 이유인 것 같다.

 

다음 번에 칼럼을 쓰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마지막 칼럼을 접으면서 요 말 한 마디는 남겨놓고 싶다.

 

어쨌든, 지난 몇 년간 과도한 영광을 누렸다.

 

칼럼도 권력이라면 일종의 권력이다. 나는 내 몸에 붙은 짐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그렇게 펜대를 내려놓을 마지막 순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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