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명랑이 함께 하기를!'에 해당되는 글 99건

  1. 2012.07.18 박근혜가, 진짜 이길까? 10
  2. 2012.07.15 비 오는 일요일 오후, 행복한 점심 7
  3. 2012.07.11 시련의 날들 7
  4. 2012.07.08 자주 달개비의 날들 4
  5. 2012.07.06 한미 fta, 학자로서 모든 걸 걸었다 8
  6. 2012.07.06 행복은 연출되지 않는 것 7
  7. 2012.07.05 고양이와 장마를 보내기 9
  8. 2012.07.02 우리에겐 모두 엄마가 있었다! 13
  9. 2012.07.02 요즘 새로 배우는 것들 3 2
  10. 2012.07.02 7월이 시작하는 날 3

박근혜가, 진짜 이길까?

 

 

(마음으로 보는 사진. 별 의미는 없지만, 이사갈 생각을 하다보니 묘하게 기분이 뭉클해져서 처음으로 우리 앞집 사진을 찍은 거다, 아내 기다리면서. 내 눈에만 앞집이 보인다.)

 

1.

내가 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특수한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가능하면 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려고 하고, 내 주변이 특정 부류의 인간들로 가득 차게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게 일부러 조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능하면 다양할 수 있도록 의도적 노력을 한다.

 

지난 대선 때의 분위기는, 말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좌파든 우파든,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처럼 대선 5~6개월을 앞두고는 명박 시대를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미래를 디자인하거나 사업계획서를 짰다. 물론 마음이 그런 건 아니지만, 큰 돈이 움직이는 일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거나, 장기계획을 세워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 어쩔 수가 없는 측면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에도 나도 대선은 물 넘어 갔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독자후보에게 주는 한 표도 정말로 찍고 싶지 않았었다. 심상정과 노회찬의 맞대결에서 심상정이 이겼다. 잠깐 신났던 것 그때 뿐이었고, 결선투표에서는 권영길이 이겼다. 약속한 대로, 나는 권영길에게 투표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투표장에 가기가 싫었다.

 

그 전날, 인터뷰집을 준비 중이던 지승호와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투표 아침날 안동과 청송 같은 곳에서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들이 투표장으로 몰려가는 기이한 풍경을 보았었다. 천천히 쉬면서 올라왔으면 투표장에 가지 않을 충분한 핑계와 이유가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나는 부지런히 올라왔고, 정말 가기 싫지만 예비 선거 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권영길에게 투표했다.

 

지금의 용어로는 통합민주당의 당권파가 주도하는 선거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정말로 지긋지긋한 생각을 가졌던 게 그날이었다. 물론 비겁한 변명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당시 정동영에게 투표할 이유도, 권영길에게 투표할 이유도 전혀 찾지 못했고, 어차피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 이명박에게 투표하던 주변 사람들을 알고 있고, 또 그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심지어 나에게도 주장했던 사람들도 알고 있다.

 

노무현이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했듯이, 이명박은 우회전 깜빡이 켜고 좌회전 할 거다…”

 

물론 택도 없는 얘기였지만, 왜 지지해야 할 이유를 만들지 못한 그 선거에서 이명박의 당선을 예상하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 같다. 혹시라도 투표하면 자기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 약간의 심리적 이유 같은 것들이 기묘하게 결합하며, 그 투표는 뚜껑 열기 전부터 해보나 마나한 투표였다.

 

2.

그때부터 다시 5년이 흘렀다. 아주 솔직히 얘기해보자. 대부분의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장기 투자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큰 돈이 움직이는 결정들, 이미 현장에서는 대부분 박근혜 시대를 전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 드라마, 이런 문화 부문에서도 규모가 크면 어느 정도는 이런 걸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

 

배우 감우성이 육영수에 관한 영화에서 박정희 역할을 맡았다고 난리이다.

 

혹시 아나? 내년이면 감우성에게 어떻게라도 줄 대고 싶은 사람이 10리길을 넘을지도? 인생 뭐 있냐, 한 방이지.

 

감우성은 좀 억울할지도 모른다. 그 이상으로 줄 대는 사람들이 줄을 이미 10리가 넘는데, 유독 감우성만 욕을 먹는 것은? 유명해서 그런 것 아닌가?

 

노 리스크 노 리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경제의 법칙 그대로이다.

 

인생 뭐 있냐, 한 방이지

 

그거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돈이 그렇게 좋더냐? ,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돈 앞에 절대강자라는 건 없다.

 

그러나, “인간적 매력에 이끌렸다”, 요렇게 말을 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본다. 돈이 아니라, 연기의 동기가 있다고 하는 말이기는 한데, 그러면 정말로 박정희를 힘과 권력에 이끌려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인간적으로도 존경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감우성에게 엄청난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은근슬쩍, 그 보다 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박근혜 주변에 사방 십리길은 이미 섰기 때문이다.

 

권력의 전환이라는 건 그런 거다. 푹 고개 숙이고 묵묵히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감우성처럼 잽싸게 기회를 잡거나

 

3.

그 때나 지금이나 민주당 쪽에는 별 감흥 없는 후보들이 서 있는 건, 뭐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거야 개인적 주관이니, 순전히 내 생각이다.

 

그 와중에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내가 대선후보들의 캠프를 속속들이 구성원이니 분위기를 다 뒤져본 건 아니지만, 나도 이 짓을 10년째 하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정책 전문가나 조언 그룹의 배치 구조나 흐름 같은 건 조금은 알게 된다.

 

약간의 차이점을 감안하고 내가 느낀대로 얘기해보자.

 

문재인 주변에, 일단 선수는 없다. , 꽤 줄을 서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몇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만 보자면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박쥐이다. 이건 나를 포함해서 하는 얘기이다. 그리고 소위 선거 시장에서 정말로 자신이 무엇인가 내다팔 게 있다면, 그리고 그걸 정말로 자기가 만들었다면, 최소한 5년간 작업한 걸 한 번에 파는 일이다. 문재인에게 줄을 대서라도 자기가 가진 걸 팔고 싶다면, 차라리 박근혜에게 가서 파는 게 낫지 않겠는가?

 

30대 전문가들이 명박에게 줄을 대는 건, 5년 전에는 보기 어렵던 일인데, 요즘 박근혜 주변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문가들의 행동 패턴만 보면, 명박 때보다는 박근혜 쪽을 줄을 서는 빈도가, 훨씬 높다. 명박과 근혜 사이에 무슨 특별한 차이점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벌써 새누리당의 두 번째 집권을 바라보는 시기라서 그런 건지, 그건 판단이 잘 안 선다. 어쨌든 30대 혹은 40대 초반 전문가들이 새누리당에 줄줄이 줄을 서는 것은, 지난 번에는 잘 못 보던 현상이다.

 

약관 과장해서 말하자면, 문재인을 만나고 싶은 전문가가 1명이 있다면, 근혜를 만나고 싶은 전문가는 100명이다. 도저히 그 규모상, 개임이 안 된다.

 

지난 대선 때 전문가 그룹이 가장 많았던 사람은 정동영이었고, 그 이후에 측근에 괜찮은 학자가 많았던 것은 손학규와 정세균이었다. 두 사람 다, 그렇게 이번에는 그렇게 든든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지는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 팀이 리그 순위가 내려가면 잘 하던 선수들도 송구 에러 같은 것을 주로 일으키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까? 돕기는 돕는데, 목숨을 걸거나 신명나게 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쩔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김두관? 여기는 좀 판단이 어렵다. 김두관이 갖는 인간적 장점과, 또 동시에 발생하는 인간적 약점이, 사실 같은 문제의 앞뒷면 같은 건데

 

그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서류응시 분위기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다. 대기업이 뭐 특별한 거 해준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하여간 서류가 물밀듯이 밀린다. 반면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사람 뽑기가 정말 어렵지 않은가?

 

캠프 규모만이 아니라 캠프 분위기만으로 본다면, 근혜와의 게임은, 사실 하나마나다.

 

이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어지간히 사정 좀 볼 수 있는 사람들은 벌써 몇 달 전부터 이구동성으로 하던 얘기이고.

 

그렇다면 안철수는? 줄 대고 싶은 사람은 적지 않은데, 안철수는 줄 대는 걸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 사람인 듯 싶다.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매우 외롭고, 그래서 외로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4.

객관적인 정황이나 상황 아니면 사기 같은 걸로 보더라도, 이 게임은 이미 하나마나한 게임이기는 하다. 이거야말로 하나마나한 말이고.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의 계획이나 내가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근혜시대라고 전제하고 구상하지는 않는다. , 어차피 별 하는 일이 없어서 그런 이유도 있고. 그러나 진짜로는, 나는 아직도 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그렇다고 지금부터 남은 기간, 야당 쪽의 대선후보가 뭘 엄청나게 잘하거나, 갑자기 대오각성해서 신기를 부르면서 한 손에는 장창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하늘의 바람을 부르며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명박 때나, 근혜 때나, 누가 뭘 잘 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 저 쪽이 너무 못해서 이기는, 그런 형상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후보다 너무너무 잘 해서 승리했던 건, 적어도 대선에서는 노무현 때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몇 년 전부터인가, 한국에서는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지면 망한다는, 이상한 징크스 같은 게 있는 듯 싶다. 홍준표가 대표적으로한나라당 대표되고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졌는데, 아드레날린 과다분비로, 망했다.

 

싸움이라는 게, 꼭 많은 군대와 튼튼한 보급 그리고 확실한 작전, 그런 것만으로 이기는 건 아닌 듯 싶다.

 

이유가 몇 가지가 더 있는데, 너무 길어지니 대충 생략하고하여간 난 누가 이길지는 모르지만, 이길 가능성은 높다고 아직도 생각을 한다.

 

요즘 박근혜 쪽 책사들,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특히 경제 전문가들, 얼마나 신이 났던지. 옛말에 호사다마라고 했다.

 

나는 꼽사리다운영할 때, 나는 대선에서 진다는 전제로 그 방송을 기획하거나 준비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진다고 생각하면서, 아니 질 것이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는, 그렇게 매주 내용을 채우고, 몇 주 후 혹은 몇 달 후에 방송할 아이템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그렇게 만들지는 못한다.

 

연구소로 치면, 연구원 두 명과 보조 연구원 둘이서 매주 연구 보고서 하나씩을 내놓는 건데, 최선을 다한다는 정도의 마음으로는, 그렇게 못한다.

 

5.

요즘은 참 어려운 시기이다.

 

난 축구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국가대표 축구팀은 싫어하고, 월드컵에서의 스포츠 쇼비니즘 광기는 정말 싫어한다. 그렇다고 기왕 나갔는데, 우리 팀 지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도 게임은 보고, 가능하면 이기면 좋겠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우리나라의 대표팀이니까 꼭 잘 해야 한다고 하는 건, 요건 아주 싫어한다.

 

하여간 국가대표 축구팀이 게임에 나서면, 아주 지겹도록 경우의 수를 계산하다. 박근혜와 이 쪽의 게임은, 16강 턱걸이에 걸려있는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경우의 수 따지기보다 더 고약하다. 객관적으로 따져볼 게 없지 않은가?

 

요즘 호사가들이 하는 말을 그냥 옮겨보면

 

민통당 경선은 문재인이 무난하게 이기고, 문재인과 안철수의 경선에서는 안철수가 무난하게 이기고, 안철수와 박근혜의 본선은 박근혜가 무난하게 이긴다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렇게들 말한다.

 

이걸 보고 있으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혹은 어떤 다짐을 하든, 참 어려운 시기 아니겠나?

 

위로라는 말은, 솔직히 오랫동안 재수없다고 생각했었다. 위로의 뜻이 나쁜 게 아니라, 요게 속된 말로 신자유주의의 자본의 음모와 결합된 기묘한 상술 같은 경우가 많아서, 참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위로가 필요해”, 이 문장에 대해서 공감을 하게 된다.

 

이 쪽이 뭘 잘 해서 이기기가 아주 어렵게 된, 진짜 더럽게 꼬인 게임, 그런데도 시간은 다섯 달이나 남아있고, 마음 속에서 무너지면 안되는 게임. 게다가 상대방은 언론과 검찰 등 법제도의 철저한 보호 아래, 전문가들 마저도 학자라는 이름은 버리고 그냥 줄줄 서 있는 상황, 여기에서 최소한 지지 않는 접점을 유지하는 것,

 

그게 위로의 힘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좀 한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로가 필요하다면, 그게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건 아주 요상한 야구 게임을 외야에서 응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실책을 줄이는 팀이 지지 않는 것.

 

그러나 우리가 응원하는 팀은, 급조된 팀이며, 2군에서 엉겁결에 올라와 1군 게임을 치루는 팀과 같아. 실책이 아주 많고, 상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실책을 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더 많은 실책을 하기를 바라면서, 특히 더 결정적 실책을 하기를 바라면서 야구 게임을 보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꼴찌만 하는 팀들을 계속해서 응원했었다. ‘G’라고 불리던 LG를 오랫동안 응원했고, 붙박이 꼴찌 한화를 응원했다.

 

그래도 나름, 즐겁고, 재미도 있다. 이런 말이 위로가 될까? 하여간 그렇게 아주 가끔씩은 서로 위로를 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연합군인 데다가, 연패 중이고 리그 꼴찌를 기록하는 팀

 

, 그게 우리 팀이다.

 

그러나 이번 리그에는 프로야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마지막 한 게임 이기는 팀에게 리그 우승이 주어진다는 거.

 

이런 말이 좀 위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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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일요일 오후, 행복한 점심

 

새끼 고양이들이 태어난 날짜는 정확히 모른다. 한 달 보름 아니면 두 달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얘들이 젖을 완전히 떼지는 못했다. 가끔 보면 아기 고양이들이 엄마에게 꼭 붙어서 젖을 먹기도 한다.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지만, 고양이들의 세계에서는 큰 일들이 있었다. 아기 고양이 두 마리는 먼저 고양이별로 갔다. 아들 고양이라고 부르던 녀석은 바보 삼촌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검둥이에게 밀려서 며칠, 집에 들어오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어쨌든 검둥이를 다시 밀어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자기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길이 별로 없다.

 

그리고 엄마 고양이가 한참 아팠다. 바이러스성 질환이라고 하는데, 약 한 달 정도 먹이면 금방 나을 거라고 병원에서는 말했다. 엄청 비싼 약을 사다가 먹였는데, 그야말로 배달이 문제였다. 캔에 조금씩 타서 주는데, 남자 고양이들이 지들이 먼저 싹싹 먹어버리는데, 약을 먹일 방법이 없었다. 하여간 그렇게 한 달 가량 애를 태우기는 했는데, 캔을 따줘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녀석이 얼마 전부터 식욕을 회복해서, 그야말로 폭풍흡입을 시작했다. 아기 젖 주는 동안은 더 많이 먹고, 어떻게든 먼저 먹으려고 할 것 같은데, 그러지를 않았다.

 

 

정말로 몇 주만에 마당 고양이 일가가 다 모여서 밥을 먹게 되었는데, 늘 보던 풍경 같기는 하지만, 사실 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보 삼촌은 어디 안 가고 늘 마당 한 구석에 있고, 뭐 먹을 걸 주면 제일 먼저 와서 먹는다. 정말 눈치 없이 자기 입만 알아서 바보 삼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녀석이 없는 마당은 텅 비어 보였다.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이후, 세상은 그야말로 새누리당 세상처럼 바뀌어버렸고, 박근혜의 힘은 절정을 향해서 치닫고 있다. 줄 설 사람들은 벌써 박근혜 쪽에 어지간히 줄을 서기는 한 것 같고, 자신의 인생을 놓고서 한 번씩들 도박을 하는 듯싶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30대 전문가들 중 보수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이번에 바꾸는 사람들의 심경을, 솔직히 잘 이해하기는 어렵다. 엄청나게 자신이 보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이해가 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럴 때, 인생은 길다, 그런 얘기를 해준다. 삶이라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자신이 믿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서 있을 때, 긴장이 가장 적고, 후회도 적은 것 아니겠는가?

 

새끼 고양이들이 드디어 밥을 먹게 된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보람있는 일은, 곽노현 교육감을 나꼽살에 초청해서 방송을 할 수 있던 것 그리고 그의 충판 기념회에 한 구석을 도울 수 있던 일.

 

그 일련의 일들 준비하면서, 세상 인심이라는 생각을 약간 하기는 했다. 나는 원래 누군가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만 그 사람을 만나고 그 주변에 있어주려고 하는 편이라서, 나중에 대법원 판결은 어떻게 나더라도,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나는 보람을 느꼈다.

 

보람이라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싶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보람이라는 것은 일상에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남아있는 고양이들의 이름은, 강북과 생협이다. 두 마리 다, 그 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던 단어를 그냥 붙여준 거다. 생협 얘기 많이 할 때 생협을, 강북 얘기 막 시작하고 개념 정리할 때 강북을.

 

고양이들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 훨씬 빠르고, 훨씬 역동적이다. 길고양이들의 경우는, 훨씬 더 빠르다. 두 번의 겨울을 넘기기가 쉽지 않고, 대부분 세 번째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더욱 즐겁고 재밌게 사는 게 고양이들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쟎이 있을 것 같다. 결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유 양식일텐데, 이런 사람들의 눈으로는 모든 고양이들은 다 불행해 보일지도 모른다. 길고양이들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는다. 단 한 녀석도 결과로 환원한 시각에서는, 행복이라는 게 없다는 게 논리적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고양이도 명예를 가지거나 명성을 갖지는 않는다.

 

숙종이 키웠던 고양이는 임금님 무릎에 앉아서 고기반찬을 먹고 살았다. 그리고 숙종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버티다가 같이 죽었다. 그래서 숙종 옆에 묻혔다고 들었다. 그런 눈으로 보면, 모든 길냥이의 삶은 불행하게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다. 대학에 갈 때까지 모든 행복을 연기하는 지금 한국의 교육, 그건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지독할 정도의 결과주의 시각만을 사람들에게 탑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순간의 행복을 찾는 것, 그런 걸 고양이들에게 더 배워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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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날들

 

바보 삼촌이라고 부르는 아들 고양이는, 좀 덜떨어진, 그래서 약지 못한 고양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작년 장마, 마당에서 태어난 세 마리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고, 결국 내가 아침, 저녁으로 고양이들 수발을 들게 만든 바로 그 녀석이다. 장마 내내 마루 앞에서 울어대던 세 마리 고양이 중, 가을을 맞은 것은 이 녀석 밖에 없었다.

 

녀석과 추운 겨울을 같이 보내면서, 매일 같이 지난 밤을 무사히 보냈는지, 그야말로 조석으로 문안하듯이 살폈던 녀석이다. 새로운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다음에, 바보 삼촌이라는 별명을 얻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말로 내 자식만큼 귀여워하면서 지낸다.

 

지난 주부터 녀석에게 시련의 시간이 왔다. 늘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라서,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는 고양이가 몇 마리인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회색 줄 가진 녀석이 얼마 전부터 종종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정말로 가끔이나 보게 되는 아빠 고양이까지 치면 7~8마리는 되는 듯싶다. 그 중에 지금 아기들의 아빠인 검둥이와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물론 당연히 나는 바보 삼촌편을 들지만, 이건 엄연히 자기들 세계의 일이라, 내가 딱히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밤이나 새벽이나,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나가 보고 가끔 빗자루 같은 걸 들어서 위협도 해보지만, 워낙 빨라서소용 없다.

 

토요일부터 바보 삼촌이 보이지가 않기 시작했는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안 가던 광이나 주차장 지하까지 뒤져봤는데, 없다

 

녀석은 우리 집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내가 주던 밥을 먹고, 마당 한구석에서 엎어져 자는 것만 해봤기 때문에, 자기 부모들하고는 또 다르게, 집 밖에서는 살 수가 없다. 이사 갈 때에도 데리고 갈 수밖에 없는 게, 녀석에게는 야생의 생활이라는 게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녀석이 있던 자리에는 검둥이가 대신 앉아있고, 아직 바이러스 감염이 다 낫지 않은 엄마 고양이 먹으라고 챙겨주던 특식까지 녀석이 벌렁벌렁 먹고 자빠졌으니, 이거야 원. 워낙 날래서, 하루 종일 붙잡고 있을 것 아니면, 나도 수 없다.

 

그 동안 정동영의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이 있었고, 박원순 시장에게 보낸 조그만 보고서를 놓고 회의 일정이 잡혀서 이래저래 회의 조율하고 있었다. 아직 초고는 못잡았지만, 곽노현 교육감을 위한 조그만 보고서 하나를 준비하는 중이고, 새 책도 나왔다. 이래저래 정신 없이 며칠 지나면서, 정말로 마음 한 구석에 무거움이 많았다.

 

녀석에게는 그야말로 삶이 걸린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전에도 녀석이 검둥이의 도전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대개는 아빠 고양이가 끼어들어서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정말로 아직 어리던 바보 삼촌이 검둥이에게 쫓겨서 죽기살기로 도망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엄마 고양이가 갑자기 담장에서 뛰어내려오면서 검둥이를 크게 한 번 쳤다. 그러나 바보 삼촌도 이제는 다 컸고, 매번 그렇게 엄마가 도와주지는 않는다.

 

팻 로스라는 말이 있었다. 키우던 동물을 떠나 보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인데,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니더냐? 야생 고양이들을 돌보다 보면,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더 자주, 더 많은 고양이를 떠나 보내게 된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녀석들이 있다.

 

지난 달에만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떠나 보냈다. 한 마리는 너무너무 예뻐서, 정말로 녀석이 고양이별로 떠나고 난 다음에 꿈에 나왔다. 또 다른 한 마리는, 그 전날까지도 분명히 잘 뛰어다녔는데, 그 다음 날 마당 한 구석에서 뻣뻣하게 굳어있던 시체로 만나게 되었다. 내 손 안에서 죽어가던 고양이, 죽었던 고양이, 그런 기억들이 많다. 그 때마다 크든 작든, 슬픔을 만나게 된다.

 

시련

 

삶은 시련의 연속이기도 하다. 아무리 아닌 것처럼 생각하려고 해도, 시련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을 어쩔 수는 없다. 그건 고양이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을 거야!

 

이게 무슨 캔디 주제가냐. 그러나 나는 눈물이 원래 많다. 특히 혼자 있을 때나, 영화를 볼 때나, 눈물을 아주 많이 흘린다.

 

결국 오후에 나가면서 평소에 고양이 밥을 주지 놓지 않던 뒤뜰에도 먹이를 놓았다. 검둥이 힘에 밀려서 앞마당은 못 오더라도, 뒤편 한 구석에서라도 바보 삼촌이 혹시 근처에 오면 밥 먹으라고.

 

꼽사리 녹음 끝내고 밤에 들어오는데, 바보 삼촌이 마당 한 구석에서 아기 고양이들과 놀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 세어보는데, 네 마리, 다 있다바보 삼촌 등에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놀고 있다가 나를 보고 후닥닥 도망갔다.

 

느낌 없는 멍한 표정, 분명 바보 삼촌!

 

명박 시대를 지내면서 삶에 기쁨을 느낄 일이 이런 것 밖에 없나, 그런 한심한 생각이 잠깐 들기도 하지만, 정말로 반갑고 고마웠다. 녀석은 이제 겨우 한 살, 삶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다. 바보 삼촌이 세상의 즐거움과 환희를 조금은 더 맛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비 오는 새벽, 우산 들고 다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러 나가는 것은, 먹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녀석들의 영토 싸움이 더 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멋지고, 잘 생기고, 똑똑하고, 강한 것만이 숭상 받는 시대, 나는 바보 삼촌에게 밥 주러 나간다. 우리는 너무 오래, 강한 것만을 숭상하면서 살아왔다. 그건 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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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달개비의 날들

 

 

 

소설 <자산어보>가 새로 발간이 되었다. 오세영의 소설이었는데, 몇 년 전에 정말 재밌게 읽었었다. 분에 넘치게 재출간을 하면서 추천사에 대한 부탁이 들어왔다. 소설에 추천서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추천사를 쓸 때의 중간 제목은 바다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결국 출간이 되었을 때는 다시 <자산어보>가 되었다.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에 관한 이야기이고, ‘흑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마 정약전으로 알고 있는데그 유배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 최초의 생태학자라고 해도 좋을, 정약전이 흑산도라는 동네에서 정신적 지주로 동네 사람들과 바다 생태계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요 몇 년 사이에 정말 재밌게 읽은 소설이기도 했다. 작가인 오세영에게도 관심이 좀 있었다. 송파 도서관 근처에서 내가 작업하던 시절이었는데, 오세영도 송파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본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같은 도서관에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친근함이 생기게 된다.

 

<자산어보>를 처음 읽고, 다시 재출간이 되는 동안에, 두 책을 사이에 두면 제일 큰 변화는 내 삶의 공간이 바뀌었다는 걸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정동에 살던 시절, 아파트에 앉아서 소설을 읽었는데, 재출간이 되었을 때에는 아파트를 떠났고, 지금은 주택에서 산다.

 

가끔씩 삶을 관통하면서, 그래, 이런 거야, 이런 마음을 들게 하는 책이 있다. <88만원 세대>를 쓸 때만 해도, 나도 30대였다. 그 시절에는,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도 좀 있었고, 결국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취직을 다시 해야 하나, 그냥 버텨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노무현 시절이었는데, 아직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 한적한 곳에서 조그만 연구관 같은 건 해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냥 나는, 유배자 살아가는 심경 비슷하게 그냥 버티면서 좀 더 작업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을 때 손에 잡았던 책이 <자산어보>였다. 정약전의 삶에 대해서 우리는 별로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 싶다. 아우인 정약용이 워낙 화려해서, 거기에 가리워진 측면이 적지는 않은데, 나름대로 참 멋진 삶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자주 달개비라는 꽃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 이런 잡초가 있나 싶었는데, 워낙 열심히 줄기를 올려대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새벽에 꽃을 피우고, 점심 먹기 전에 꽃이 진다. 그렇지만 매일 같이 꽃일 피워내면서, 두 달 넘게 매일 꽃을 볼 수 있었다. 총선이 끝나고 울적하던 시기에, 마당에 있던 꽃들을 매일 보면서 나도 지친 마음을 추스렸다.

 

꽃은 매일 같이 피었다. 막상 보면 아주 작고 볼품 없어 보이지만, 이런 꽃이 수 십 송이, 몇 시간을 위해서 피어나는 걸 보면, 작은 장관이 펼쳐진다. 슈베르트가 기타를 보고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표현할 때, 그런 느낌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사회에서 좀 움직이려고 할 때는 YS의 시절이었다. 문민정부라고 이름을 달아서, 운동권들이 사회에서 조금은 더 개방적으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시절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정부에서 일을 하던 건 DJ 시절이었다. 정부기관이나 정부 단체에서, 좋든 싫든, 운동권들을 조금은 더 중요 자리에 배치하려고 했고, 뭔가 대외교섭을 해야 하는 자리에 앉히려고 했었다. 좋든 싫든, 그런 시기였다.

 

명박의 5년간, 그야말로 토건의 시대였고, 영혼을 팔아야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기에 정부와 관련된 일을 뭔가 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전향하지 않았거나 전향할 생각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평균적으로 아주 어려운 시기가 펼쳐졌을 것이다. 그 시기가 5년 더 연장된다는 것은, 이제 시작해보려는 사람들이나 이제 사회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입사 면접 때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를 환기해보게 하는 것과 같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순조의 아들이었던 효명세자가 조선이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거의 마지막 기회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효명세자의 시기는, 보면 볼수록 애틋함이 많다. 마지막 개혁 군주가 될 수 있었던 효명세자는, 그러나 너무 일찍 죽었다.

 

명박에서 박근혜로 넘어가는 게, 90% 이상 확정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즘, 문득 효명세자가 대리첨정하던 순조 시절 생각이 잠시 났다. 대한민국 버전이 세도정치의 부활과 박근혜를 앞으로 미는 사람들의 구도는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조선은, 세도정치로 나라 망해먹은 경험이 있는 나라라서, 해방 이후 50년 넘게 세도정치 형식으로 나라가 가지 않도록, 많이 버틴 셈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이게 딱 세도정치랑 너무 유사해보이지 않는가?

 

아침에 피어나는 자주 달개비를 매일 보지는 못한다. 어쨌든 이런 시기에 소설 <자산어보>에 대한 추천사를 쓰면서, 나도 지난 몇 년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근혜 버전 세도정치가 서울 한 가운데에서, 강남을 중심으로 뭉게뭉게 피어나는 이즈음, 20대가 이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방식으로 희망을 볼 수가 있겠는가? 예전 식으로 얘기하면, 필화 사건과 유사한, 말로 인해서 감옥에 가있는 정봉주 생각하면, 이 시기가 얼마나 더 세도정치에 가깝게 가있는지, 그런 생각을 더더욱 해보게 된다.

 

자본주의라서 뭐가 많이 바뀐 듯 싶지만, 조선이 망해가는 과정과 지금의 강남발 세도정치의 구도가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가진 것들이 뻔뻔해질 때, 한국은 늘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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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학자로서 모든 걸 걸었다

 

 (별 의미는 없는 사진인데, 장마비 내리는 동안 아내 기다리면서 잠시. 왠지 몽환적 느낌의 사진이 나올 것 같았다.)

 

교정 보고 마지막으로 원고 정리하면서 며칠간 밤을 샜다. 어차피 낮에 틈틈이 자니까 밤 새는 것 자체가 힘들지는 않은데, 너무 오랫동안 집중을 했더니, 몸이 내 몸이 아니다. 긴장이 쉽게 가라앉지가 않는다.

 

fta에 대한 책은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작년 10월부터 그야말로 모든 일정을 잠시 세우고, 몇 달 동안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게 되었다.

 

그 동안 수업도 하지 않게 되었고, 강연들도 대부분 정리했고, 신문에 쓰던 칼럼들도 정리했다. 원래도 정리할 생각이 있기는 했었는데, fta 문제 때문에 좀 서둘러 정리를 했다. 그만큼 나는 작업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것도 아주 많이.

 

어쨌든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몇 달 동안을 악으로, 깡으로 버텼던 것 같다.

 

국회에서 날치기가 되던 순간, 발효가 되는 순간, 총선에서 지는 순간, 작업의 방향을 다시 잡고, 새로 시작하다시피 해야 하는 순간이 세 번쯤 있었다.

 

총선 끝나고서는, 접으려고 했었다.

 

도저히 낼 수 있는 결론이 없었고, 정말로 바늘 하나 꽂을 땅도 없어 보였다.

 

그 동안에 일정은 완전히 개판이 되었고, 책 몇 권이 마냥 뒤로 밀렸고, 셋팅되어 있던 다큐 작업 하나를 날렸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책 한 권도 날렸다.

 

하여간 일정에 없던 책 때문에, 나름 비싼 대가를 치룬 셈이다. 물론 진짜 대가는 그런 것 보다는 더 하다.

 

거의 모든 경제학자와 거의 모든 공무원들과 맞서게 되는 상황이 되었고, 역시 거의 대부분의 야당 쪽 대선후보들과도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알고는 시작한 거지만, 또 막상 그 상황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싸움이 한미 fta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의 학자로서의 마지막 싸움은 한미 fta가 되었다.

 

너무 이렇게 극단으로 갈 필요가 있느냐고, 주변에서는 그런 얘기들을 많이 했는데, 누군가는 그렇게 시대의 한 극단에 서 있어야 할 것 같기는 했고, 나는 그냥 이걸 나의 마지막 전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된 책들을 제외하면, 마지막으로 내가 기획했던 책이 fta 책이 되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순서상으로는, 이 뒤로도 예전에 했던 작업들을 정리하면서 나올 책들이 좀 더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새롭게 경제학 책을 기획하거나 준비하는 건 없다.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한미 fta가 통과한 다음에, 거기에 적응하는 다음 시나리오를 생각해내고, 또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얘기를하고 싶지가 않고,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뒤에 남아있는 책들은, 한미 fta 발효 한참 전에 준비된 거고, 그 때 골격이 잡힌 것들이라, fta와는 별 상관없이 마무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충돌하는 책들은, 이번에 출간 일정 조정하면서 날려버렸다.

 

그냥 여기에 학자로서의 삶을, 묻기로 했다.

 

물론 그 뒤에도 써보고 싶거나 만들어보고 싶은 얘기들이 생겨나지 않은 건 아니다그러나 그건 학에 관한 얘기는 아니고, 경제학에 관한 얘기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이전의 아동들을 위한 그림책을 써보고 싶어졌다. 물론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다행히 내 주변에 내가 아주 좋아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몇 명 있다.

 

영화에 대한 책이, 아직 구상 중까지 간 건 아니지만, 좀 분석해보고 싶은 게 생겨났다. 조지 루카스에 관한 얘기인데, 이렇게 저렇게, 한 번 꼭 분석해보고 싶고, 다루어보고 싶은 게 좀 있다.

 

오랫동안 놓고 있던 국악에 관한 얘기도 좀 해보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날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하여간 경제학자로서 생각할 수 있는 테마나 책 혹은 연구과제에 관한 구상은 더 이상 하지 않고, 기획도 하지 않는다. 못하게 되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희망이라고 하는 걸,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한 다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 상황은 나빠지더라도, 그래도 조그마한 전환의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했었다.

 

공간의 문제나 부동산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그랬고, 20대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그랬다.

 

심지어 농업 문제를 다룰 때에도, 지금은 어렵지만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냥 마음만 그렇게 먹은 게 아니라, 요래요래, 조래조래, 요렇게 하면 좋아질 수 있다그런 생각이 있었다.

 

Fta에 대한 책 작업을 마치고 난 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앞으로 뭔가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말을도저히 나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럴 가능성이, 현실이 아니라 이론적이거나 가상적인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좋아질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 fta 문제를 최소한 지금보다는 의미 있게 진전시키기 전에는 말이다.

 

원튼, 원치 않튼, 결국 한미 fta 문제에, 나는 학자로서의 생명을 걸게 된 셈이다.

 

그건 정권이 바뀌느냐, 바뀌지 않느냐, 그것과는 또 층위가 다른 문제이다.

 

어쨌든 남은 대선 때까지, 나도 나의 최선을 다할 생각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는 않고, 있지도 않은 희망을 정책에 대한 기술적 문제로 디자인할 그럴 능력이 나한테는 없다.

 

그래서 여기가 최후의 마지노선이 된 셈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 문제를 그대로 두고 다음 분석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된 셈이다.

 

한미 fta 문제를 대선을 경계점으로, 극적으로 풀게 된다면?

 

한국은 적어도 지금보다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여건에서, 새롭게 분석할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시대가 좋아지면, 새로운 흐름도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전혀 풀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추이대로 계속 악화된다면?

 

그걸 염두에 두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낼 능력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에, 어차피 내가 상상할 수도 없고, 내가 생각해볼 수도 없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경우에도 나는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보는 이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공감해달라고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마음 속으로 뭔가 느껴지지 않으면, 어차피 서로 하나마나한 얘기이고, 서로 시간 낭비이다.

 

한미 fta 한 스푼, 그런 면에서 내가 현역 경제학자로서 가졌던 최대의 낙관 아니면 마지막 낙관일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이 문제가 지금보다는 현저하게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마지막 페이지에 마지막 글자를 떨어뜨릴 때까지, 놓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명랑함을 잃고 싶지는 않았고, 우울하고 암울하게 미래에 대한 묵시록 같은 얘기를 던지고 싶지는 않았다. ‘fta 한 스푼은 처음에는 공포 버전으로 생각했다가, 가능하면 스푼버전 같은 형태로 끌고 가려고 노력했다.

 

내 삶에서도 그러고 싶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도 그렇게 하고 싶다.

 

늘 즐겁게 살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림책이나 영화에서, 짧게라도 웃음과 명랑을 빈 구석구석 채워넣으며,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미 fta를 그대로 두고, 현 상태에서 경제가 즐거워지거나 발전하는 그림이, 나한테는 안 보인다.

 

아주 우울한 지지리 궁상 같은 얘기만 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차피 생각하고 있던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경제학자로서의 삶을 이제 정리하는 것이 더 편한 선택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없다, 그렇게 지금까지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런 얘기를 한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 같아서는, 결국 그렇게 될 것 같다.

 

한국의 경제학자들의 99%는 한미 fta를 희망적으로 보았고, 대단한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결국 나도 그들이 인도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기는 한데, 그 시기를 경제학자로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럴 자신도 없고.

 

대선이 끝나면, 태어날 자식이 보게 될 그림책과 동화책 같은 걸 소일거리로 쓰면서 즐겁게 살아갈 자신은 있다. 그리고 정말 즐겁거나 유쾌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영화를 같이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영화에 대한 소소한 것들을 분석하면서 심각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자신도 있다.

 

사람이 살면서 배워야 할 것은, 경제학이 다가 아니고, 돈의 세계가 다가 아니다.

 

경제학자로서, 새롭게 기획을 하는 마지막 작업이라고 생각하면서, 어쨌든 fta 작업을 마쳤다. 여기가 학자로서의 나의 마지노 선이다.

 

한미 fta 앞에서, 삭발을 했고, 내 책 중에 가장 잘 팔렸던 책을 절판했고, 여기에 마지막으로 학자로서 나의 삶을 걸었다.

 

45년간 살아온 인생을 다 걸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 시대에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경제학자로서 걸 수 있는 나의 모든 건 다 걸었다.

 

그리고 지금 나와 같이 이 벌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내가 숨을 거둘 때까지, 친구이고 동료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될 것이다.

 

책은 내 손을 이제 떠났다.

 

한국에서 내가 한미 fta 폐기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던 마지막 경제학자가 될지, 아니면 내 뒤에 또 누가 있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진짜로 지고 싶지 않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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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연출되지 않는 것

 

올해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떤 여자 어린이가 있다. 이제 학교에 좀 익숙해질까 싶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학교는 쉬운 걸 무섭게 가르치는 곳이예요.”

 

무섭게’, 이 단어가 가슴을 쿵하고 찔렀다. 이 어린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넓게 보면 강남의 한 언저리에 있는 학교이다. 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의 여자 어린이에게도 무서운 곳으로 느껴졌나보다.

 

아기 고양이들은, 이제 슬슬 젖을 뗄 때가 가까워졌다. 한 달 내내 광과 뒤뚤에 숨어 지내다가 요즘은 마당 앞으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캔에 든 고기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새끼용 사료를 조금씩 물에 불려서 줘보는데, 어른들이 먹은 건지 얘들이 먹은 건지, 그건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아기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에게 앉겨 젖 먹는 것을 볼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기 정도이다.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들을 품에 앉고 젖을 먹일 때,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문득 학교는 쉬운 걸 무섭게 가르치는 곳이라는 어느 어린이의 말이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학교에서 행복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행복이라는 것이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아예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 그건 좀 아닌 듯 싶다. 선생님한테 칭찬 듣고, 공부 잘 했다고 칭찬 듣고그런 건 행복이 아니다.

 

성취와 쟁취, 그런 걸 행복과 동의어로 알고 세상을 살게 되면, 결국 어느 순간 행복에 대해서 너무너무 무감각해지거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치명적 인간이 되지 않을까?

 

돌아보면, 나도 행복을 제대로 배웠던 기억이 잘 없는 것 같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불행하지 않을지 몰라도, 행복을 배우지 못한 것은 정말로 불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손에 쥐고 과시하는 것, 그건 행복 아니다. 누군가의 눈을 통해 투영되는 찰라의 화려함, 그것도 행복 아니다.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품에 앉고 젖먹이는 엄마 고양이를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게 행복을 배우는 첫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가끔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을 돌보면서, 누가 누구를 돌보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행복은 연출되지 않는 것, 그런 걸 가끔 녀석들을 보면서 배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고양이들의 사진은 연출할 수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찍는 거다.

 

사진은 빛을 가지고 노는 거라, 해 아주 좋은 밝은 날 주로 찍고, 걔들이 나와있는 곳에서 찍고, 보여주는 모습대로 찍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상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행복을 만나게 된다.

 

행복은 연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우리는 최소한 초등학생 때에는 행복해지는 것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배울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하루에 한 번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삶, 그건 사람 사는 게 아니다.

 

그건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

 

더 나이를 먹어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지금부터라도 행복을 배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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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장마를 보내기

 

 

 

아기를 낳고 나서, 엄마 고양이가 아프다.

 

바이러스성 감염이라고 하는데, 눈도 진물렀고, 마른 기침 같은 걸 한다.

 

병원에서 튜브에 담긴 페이스트 형태의 약을 사다가 먹이는데, 이게 먹이기가 쉽지 않다.

 

캔에 섞어서 주는데, 엄마 고양이가 잘 먹지를 않으니까 바보 삼촌이 다 먹어버린다.

 

약을 많이 주기도 어렵고, 식욕도 별로 없고, 그래서 병수발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밤에 엄마 혼자 있을 때면, 그 앞에다 캔을 몰래 밀어넣어주기도 하고.

 

하여간 계속 먹였더니, 어제부터는 아이 낳고서 처음으로 자기가 캔을 먹기 시작했다.

 

바보 삼촌을 밀어내고, 먹기 시작했다.

 

오늘 본 건, 상황은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밥 먹다가 바보 삼촌이 엄마 고양이한테 한 대 맞았다.

 

힘이야 이제 바보 삼촌이 더 쎄겠지만, 그래도 고양이 사이들의 한 방은, 순전히 기싸움이다.

 

바보 삼촌 정도야, 아직도 한 방에...

 

얼마 전에 본 비디오에서, 고양이의 이 한 방에 악어도 꼼짝 못하는 걸 봤다.

 

열 받은 악어가, 친구 악어를 한 마리 더 데리고 왔는데, 걔도 한 방.

 

"너 바보야? 친구가 가잔다고, 그냥 졸졸 따라 다니게?"

 

 

 

작년까지는 비가 오면 가끔 비가 들이치지 않는 현관문 앞에 놔주기도 했는데, 지난 겨울에 개집을 새로 들인 후, 그 안에 넣어둔다. 그러면 자기들이 알아서 먹는다.

 

오후에 나갔는데, 아픈 다음에 처음으로, 엄마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오늘은 밥 안 주나?"

 

마침 바보 삼촌이 없길래, 얼른 캔을 뜯어줬는데...

 

먹을 거만 생기면 기가 막히게 쫓아오는 바보 삼촌.

 

비오는 날, 고양이들이 그냥 피만 피하면서 쭈그리고 있지는 않는다.

 

아기 고양이들에게는 얼마 전부터 아기용 사료를 물에 불려서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지네들이 먹는지, 어른 고양이들이 먹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통은 늘 비어있다.

 

풀밭에서 비오는 날, 새끼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 그건 우리가 늘 상상하던 실낙원과 같았다.

 

 

 

 

아직 엄마 고양이는 재채기를 조금씩 한다. 병원에 물어봤는데, 천식은 아닌 것 같고.

 

출산 이후에 뭔가 더 먹기 시작해서 기운을 차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밝게 생각한다.

 

엄마 고양이를 보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요즘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아주 솔직하게, 내면이 아름다운, 그런 걸 진짜로 느껴본 건, 이 엄마 고양이에게 처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연 아름답다는 게 뭘까,

 

그런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중이다.

 

우리는 살면서,

 

삶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너무 둔감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그렇게 아름다움에 관한 감각이 둔탁해졌거나 혼탁해졌거나...

 

요즘 그걸 다시 이 녀석에게서 배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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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모두 엄마가 있었다!

 

1.

눈으로 보는 것과 글로 전달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엄마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핥아주기 시작한다.

새끼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져서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또 다른 새끼 고양이가 왔다.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의 젖을 먹기 시작했다.

 

만약에 지문으로 처리한다면, 이렇게 네 줄에서 다섯 줄 안팎의 짧은 문장이 될 것이다. 이렇게 드라이하고 삭막하지 않게, 묘사를 한다면 호들갑스러운 몇 페이지 분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글과 그림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사진과 영상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막 태어난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새끼 고양이들이 비가 그친 후, 마당에서 엄마 고양이가 목욕을 시켜주고, 젖을 물리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을지, 일단 동영상으로 찍어서 편집을 할지, 잠시 고민을 했었다. 나는 사진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네 컷 정도의 사진으로 처리하는 편이, 더 감동적으로 이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판단이 맞았던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감동이라는 것은, 복합적인 것이니 말이다.

 

2.

어느 방송국에서 어머니에 대한 방송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작년부터 어머니가 편찮으시다. 난 별로 보여줄 일상이 없을 뿐더러, 내 주변의 식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연락이 온 거니까, 일단 얘기는 전해드렸다.

 

요즘은 많이 아파서, 나중에 그럴 기회가 있으면 하시겠단다.

 

어쨌든 나에 관한 건 아니니까, 일단은 그렇게 방송국에는 전달을 하려고 한다.

 

어머니종종 생각하게 되는 주제이기는 하다. 내게는, 그렇게 편한 주제는 아니다.

 

난 이 집안에서 처음 태어난 좌파이고, 다른 어느 친척과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3.

엄마 고양이가 아기 고양이를 돌보는 모습은, 가끔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꼭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진실이라고 할까, 가감 없이 삶이라는 것이, 마치 우주가 잠시 정지된 것처럼, 그렇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뭔가 굳이 말을 덧붙이거나, 부연하는 설명들을 달 필요가 없을 듯한.

 

, 저런 게 삶이구나

 

하나의 존재가 있기 위해서, 저렇게 많은 수고와 노력이.

 

그걸 보는 그 자체가 내게는 감동적이다.

 

가끔 생각해보면, 내가 아무리 아기 고양이들을 돌봐준다고 해도, 자기 엄마가 돌봐주는 것만 하겠나, 그런 생각이 든다.

 

4.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극진한 돌봄을 받으면서 지금 이 자리에 이게 된 존재가 아니던가.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아기 고양이들이 엄마 옆에서 얼마나 평온하고 행복해보이는지, 문득 잃어버린 실락원처럼, 저런 순간이 우리에게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모든 고양이가 다 이렇지는 않다.

 

지금의 엄마 고양이는, 내가 봤던 많은 암컷 고양이들 중에서도 특히 새끼들을 열심히 돌보는 편이다. 녀석의 손을 떠나 고양이별로 간 아기 고양이만, 내가 본 게 4마리이다.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녀석도 겪는다.

 

얼마 전에 딱딱하게 굳은 아기 고양이 시체를 내 손으로 치웠던 적이 있다. 그 순간에도 녀석은 남은 녀석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무감각한 표정이지만, 그 속이 무감각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감동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도 내가 느꼈던 감동이나 생각들을 전달하려고 해보는데,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여전히 어렵다.

 

어쨌든 우리 모두, 삶에 한 번쯤은, 이런 아기 고양이들처럼, 지극하게 돌봄을 받던 시절이 있던 존재들이다.

 

지금 얼마나 받든,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지금 어떤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엄마들이 극진으로 돌보던, 그런 고귀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 위에서, 지금의 이 비루한 삶이라도 생겨난 것이 아니던가.

 

지금이 비루하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엄마가 돌보아주고 있는 이 아기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우린 모두 한 때, 극진한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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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배우는 것들 3

 

2) 스타워즈와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를 내가 몇 번쯤 봤을까? 겁나게 많이 봤는데, 아직 100번은 안된 것 같다.

 

어렸을 때 본 것은 깊이 생각을 안 해 본 거라, 그냥 본 거고. 마음 먹고 열심히 봤던 건, 노무현 후반 부, 한참 한미 fta 추진하던 그런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때도 메이킹 필름이나 코멘터리 같은 것까지, 나름 챙겨서 본 적이 있다. 모든 영화를 다 그렇게 보는 건 아니지만, 일단 보는 영화는 가능하면 100번은 채워서 보려고 하고, 또 관련 자료들도 같이 보려고 하는 편이다. 100번 보면 아냐? 물론 그렇게 봐도 모르는 건 여전히 잘 모른다.

 

<스타워즈>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은, <인디애나 존스>를 다시 보고, 코멘터리와 메이킹까지 다시 보기 시작한 후의 일이니까, 아마 2달 전부터의 일인 것 같다. 지금은 엎어진 영화이지만 이준익 감독이 자청비시나리오 작업을 한참 할 때, 그걸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오래된 블록버스터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캐스트 어웨이> 같은 걸 그 즈음에 다시 보기도 했다.

 

하여간 그 다음부터 거의 두 달째, 계속해서 <스타워즈>만 보는 중이다. Dvd 버전으로 보고, 블루레이 버전을 사서 보고, 그 안에 있는 크고 작은 자료들까지 탈탈 털어서 계속 보는 중이다. 아직은 노트를 하면서 보고 있지는 않은데, 곧 지나면 메모 작업도 해보려고 한다. 7월 초에, 블루레이 사가 버전이 재발매된다. 물론 이것도 나오면 사서 보려고 한다.

 

한국 영화 중에서 100번 채워서 본 영화들이 몇 개 있다. <짝패>가 그랬고, <달마야 놀자> <화산벌> 그리고 <오 브라더스> 같은 걸 그렇게 보았다.

 

원래 내가 무슨 재능이 있거나, 기가 막히게 머리가 좋거나, 아니면 느낌이 있거나, 그런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서, 공부할 때부터 그냥 좀 무식하게 보고 또 보고, 그렇게 많이 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나같이 별 재능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제일 낫다.

 

몇 년 전에 조지 로메로와 조지 루카스를 비교하는 작업을 했던 적이 있었다. <생태 요괴전>을 한참 구상하던 시절이었는데, 두 사람을 한참 비교한 다음, 나는 조지 로메로 쪽을 선택했었다. 물론 일본 여행 이후, 나중에 요괴로 모티브가 바뀌기는 했지만, 이 책의 첫 모티브는 조지 로메로에게서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조지 루카스는 그 당시 나에게 아무 느낌도 주지 않았다.

 

하여간 그건 옛날 일이고, 요즘은 <스타워즈>만 보고 또 본다.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의 자료들을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 그러는 있는 중이다.

 

내가 뭔가를 진짜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은, 두 번 받아보았다. 대학원 시절과 박사 과정 초기, 앙드레 니꼴라이에게 배울 때 그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다. 현대에 다니던 시절이나 에너지관리공단에 있을 때, 뭔가 배운다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적응하는 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한국무역협회의 부회장이 된 오영호 차관하고 일하던 시절에는, 진짜로 뭔가 배운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존경하지 않으면, 뭔가 배우기가 쉽지 않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공무원 중에서 내가 진짜로 존경했던 것은 오영호 차관이었다. 물론 그와 나는 살아갈 길이 다르고, 하고 싶은 일도 달랐지만, 오랫동안 주변 사람들은 내가 오영호 작품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었다.

 

공직을 그만둘 때, 진짜로 나를 만류했던 건 한 사람이었는데, 당연히 오영호 차관이었다. 뭔가 몇 가지를 해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차피 내 삶은 그게 아니라서, 그냥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에게, 진짜로 많이 배운 건 사실이다.

 

뭔가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보면, 뭔가 정말로 배운다는 생각을 아주 오랜만에 받게 되었다.

 

<스타워즈> DVD든 블루레이든,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이고, 또 누구나 본 영화이다. 게다가 무수히 많은 매니아들이 있는 영화이다. 나도 한참 시스가 어떻고, 포스가 어떻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고 다시 보면서, 그 때와는 전혀 달랐고, 예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새롭게 이 현실을 보게 되었다.

 

한동안 이 일을 하려고 한다. 한 달 정도는, 일단 dvd부터 자세히 보고대부분 원서라서 돈이 좀 깨지기는 하겠지만, 논문 쓸 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고문헌과 논문들을 챙겨서 보고. 그리고 나서 조지 루카스 인터뷰를 짧게라도 해보려고 한다.

 

원래의 인터뷰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하려고 몇 년째 조금씩 준비하던 게 있었는데, 그걸 이걸로 바꾸었다.

 

연락은? 내가 요즘 한국에서 외국 영화를 가장 많이 수입하던 사나이들, 그리고 어쨌든 천만 관객을 불러모았던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는 중 아닌가?

 

조연출 한 사람이 웃기는 얘기를 하기는 했다. 핸펀을 막 뒤지더니, “조철현 바로 위에 조지형이 있었는데, 전호 번호가 없어졌네요…” 하하하.

 

아직 뭘 어떻게 하고, 뭘 얼마나 더 배워야 할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뭔가 엄청나게 배우고,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조지 루카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찾아가면서, 간만에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다.

 

뭔가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주는 가슴설래임,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그런 생각에 <스타워즈>를 보고 또 보고, 그러고 있다. 누구나 보았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소재를 다시 뒤집어서 2012년이라는 공간에 맞게 해석해보는 것, 이게 참 재밌다.

 

오랫동안, 경제학이든, 생태학이든, 일반인은 접하기 어렵거나 평생 한 번 들어보지도 못할 얘기들을 가지고 공부를 했었다. 장 밥티스트 세이나 튀르고의 책 혹은 존 스튜어트 밀의 경제학 책 같은 건, 정말로 경제학자들도 잘 안 보는, 그런 몇 사람만 보는 책이었다. 난 이런 종류의 공부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있었다. <스타워즈>와 조지 루카스에 대해서 공부하는 건,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누구나 보았고, 대부분의 사람이 한 두시간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소재이다.

 

간만에 뭔가 배운다는 즐거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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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이 시작하는 날

 

 

 

사람이란 원래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별로 거창한 이유는 가지지 않고, 그냥 내 주변에 나타난 고양이들을 돌보기 시작한지 몇 년 된다.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난 건, 한 달 조금 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보기 시작한 건 아직 한 달이 안 된다.

 

6월은 내내 가뭄이었고, 4대강과 관련된 아주 이상한 논쟁을 하면서 한 달이 가버렸다. 6월의 마지막 날에는 서울에도 비가 왔다.

 

비가 그치고 날이 좀 개기 시작하자,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들은 아직은 날 엄청 무서워한다.

 

앞에 있는 녀석이 강북, 뒤쪽에 있는 녀석이 생협, 이렇게 두 마리가 살아남았다.

 

 

간만에 네 마리가 모두 모인 가족 사진과 같이 되었다.

 

그 사이 아들 고양이는, 바보 삼촌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큰 형에 해당하지만, 나이를 먹어도 그냥 집에 남아있는, 예전에는 어느 집에나 있었을 법한 그런 바보 삼촌 분위기라서.

 

출산을 하고 나서, 엄마 고양이는 요즘 좀 아프다.

 

처음에는 눈에서 심상치 않은 눈물이 나서 병원에 가서 물어봤더니, 몸이 허약해져서 생기는 바이러스형 질환이라고 한다.

 

튜브처럼 생긴 약을 먹이는데, 이걸 먹이는 것도 큰 고역이다. 캔 같은 데 타서 주는데, 바보 삼촌이 눈치도 없이 다 먹어버린다.

 

사실, 가족 사진처럼 생긴 사진을 몇 번 찍기는 했는데, 그 때마다 한 마리씩 아기 고양이가 고양이 별로 떠났다.

 

짧게 보았던 녀석들이지만, 가슴 속에 깊은 그리움을 남겨놓았다.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고양이들이 꿈에 나왔었다.

 

헤어짐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삶에 대해서 배워가는 것, 아무리 배운다고 해도 그걸 알 수가 있겠나 싶다.

 

우리는 욕심이 너무 많고, 그걸 내려놓기가 싶지 않다.

 

그 욕심들이 모두 모여서, 우리는 명박 시대라는 아주 이상한 시대를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자기가 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보상받으려는 것, 그런 게 분양이라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와 전세 끼고 집 사기’, 이런 것과 만나면서 그야말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그런 괴물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싶다.

 

손에 쥐고자 하는 게 너무 많았고, 남들도 다 이렇게 한다는, 맞어, 그렇게 하는 게 진짜야, 이런 악마의 목소리 같은 유혹이 너무 많았다.

 

영화나 출판 혹은 드라마 같이, 큰 돈도 움직이고,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하는 곳에서는 벌써 박근혜 시대를 상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걸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상반기가 지나가면서, 내 주변에서는 내년 계획을 세우는 일이 부산하다.

 

나는, 내년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냥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고, 반골학자가 한 명 있었던 걸로, 내가 이 시대에 할 수 있었던 것을 그냥 마음 속에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명박 시대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이 시대를 고양이들과 아웅다웅하면서 겨우겨우 버텨낸다.

 

만약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올해 다 할 생각이다.

 

근혜 시대, 그걸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는 것도 싫다.

 

바보 삼촌이, 참 아무 생각 없이, 정말로 명랑하게 살아간다.

 

녀석들에게 배우는 게, 생각보다 많다, 명박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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