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모르지../명랑이 함께 하기를!'에 해당되는 글 99건

  1. 2012.08.21 엄마 앞의 생협 4
  2. 2012.08.21 강북과 생협의 서열 다툼 3
  3. 2012.08.19 외로운 야옹구 15
  4. 2012.08.18 아기 54
  5. 2012.08.16 폭우가 내리던 날 3
  6. 2012.08.12 젖 먹는 아기 고양이 7
  7. 2012.08.07 고양이들의 여름 나기 8
  8. 2012.08.03 fta 그리고 학자로서의 내 삶 정리 27
  9. 2012.07.31 히로시마 시민병원 3
  10. 2012.07.25 손학규 방송과 fta 5

 

 

 

폭우 한 가운데 잠시 비가 그치면, 마당 고양이들 밥 주느라고 바쁘다. 어제는 엄마 고양이가 없는 틈을 타서 강북이 생협에게 밥 먹으면서 펀치 몇 방을 날렸다. 오늘은 엄마 고양이가 나왔다. 생협은 잽싸게 엄마 옆에 자리 잡고 같이 먹는다.

 

이게 질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어제의 분풀이인지, 오늘 따라 생협이 맛있게 밥을 먹는다. 생협이 강북을 야리는 눈매가 예사롭지가 않다. 지루하게 지켜보던 강북이 드디어 하품을 터뜨린다.

 

웃지 않을 수 없다.

 

웃을 일이 요즘 있겠나 싶지만, 간만에 크게 한 번 웃었다. 고양이들의 하품은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하품 보고도 웃음 나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 감정에 대한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삶, 그렇게 심각하게 살 필요가 뭐가 있겠나, 그런 생각이 요즘 문득문득 들기 시작한다.

 

요즘 아메리카노에 대한 때 아닌 논쟁을 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시민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것, 이 정도의 즐거움도 가지지 못하면 되겠느냐, 그런 얘기를 하였다.

 

딴에는 맞는 말이다.

 

움베르트 에코가 아메리카노에 대해서 한 얘기를 잠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아메리카 커피 중에는 위에서 말한 것말고도 구정물 커피가 있다. 대개 썩은 보리와 시체의 뼈, 매독 환자를 위한 병원의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커피콩 몇 알을 섞어 만든 듯한 이 커피는 개숫물에 담갔다 꺼낸 발 냄새 같은 그 특유의 향으로 금방 식별할 수 있다. 이 구정물 커피는 감옥과 소년원뿐만 아니라, 열차의 침대 차량이나 일급 호텔 등에서도 마실 수 있다."

 

(에코, '세상의 바보 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호텔이나 침대차의 그 고약한 커피포트를 사용하는 방법 중)

 

에코는 아메리카노에게 거침없이 구정물 커피 혹은 시체 썩은 물 같은 표현을 썼다. 에스프레소를 만들어낸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노라는 의미는 맛 없는 커피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프랑스에서는 cafe long 혹은 cafe allonge 정도의 표현을 쓰는데,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약간 섞어 연하게 했다 혹은 양이 많다, 그런 의미이다. 물론 아메리카노처럼 그렇게 물을 많이 넣지는 않는다.

 

하여간 아메리카노라는 표현과 관련되서 가장 재밌게 본 것은, 이것이야말로 반미의 상징 아니냐는 반어법.

 

아메리카 + No!

 

이보다 더 적극적인 반미 표현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누가 제일 먼저 한 것인지 아직도 기원이 알쏭달쏭한 이 해석은, 너무나 진지하게 흘러서 도저히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아예 폭발하기 전에 살짝 먼저 김을 빼는, 그런 기가 막힌 바람 빼기 효과를 준다.

 

멋진 만찬을 먹기 전에 고급 초콜렛을 누군가 주면, 얼마나 억울한다. 안 먹을 수도 없고, 먹고 나면 멋진 만찬의 폭발적 기쁨이 반으로 줄어버리고.

 

웃어야지,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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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과 생협의 서열 다툼

 

 

 

 

아기가 태어난 날, 엄마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는 완전한 야생동물이라서 정말로 꾀병 같은 건 없다. 아프다 싶으면 그냥 쓰러지는 게 다반사라,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내내 마음 한 켠에 무거움이 있었는데, 오늘 나오는 길에 보니까 폭우가 내리는 중 엄마 고양이가 나무 한 켠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정을 주고, 돌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 생각들을 더 해보게 된다.

 

늘 생각나는 중학교 때 단짝 친구 중에, 광복이라는 녀석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독립투사로 알고 있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며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들었다. 다른 초등학교나 중학교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되거나, 이래저래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연락이 안되는 친구 중의 한 명이다.

대학에 갔을까?

 

광복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친구의 삶이, 돌아보면 또 생각나고, 돌아보면 또 생각난다.

 

 

 

 

어쨌든 이 땅은 친일파들의 나라 아닌가? 친일파들이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며, 친미파가 되었고, 그들은 결국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던 나라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의 후손은 어렵게 되었고, 돈으로 많은 것의 서열이 만들어지는 이 나라에서 결국 어렵게 되었다. 그 한편으로, 70~80년대에 땅투기하거나 재개발로 난데없는 갑부가 된 졸부들이 어느덧 '메인 스트림'이라고 부르면서 떵떵거리며 살게 된 나라 아닌가?

 

엄마 고양이가 잠시 보이지 않는 동안, 마당 고양이들에게 캔을 뜯어 주었다. 바보 삼촌은 아기들과 서열 다툼을 하지는 않는다. 얘가 바보 같아 보여도, 마음이 참 넓고, 이것저것 나누어주는데 박색하지는 않다.

 

바보 삼촌이 다 먹고 떠나간 다음, 생협도 먹겠다고 나섰다가, 강북한테 몇 대 맞았다.

 

고양이과 동물들이 후려치는 힘이 만만치 않다. 싸울 때 주로 쓰는 무기가 그야말로 펀치인데, 생협이 강북에게 펀치 몇 방을 제대로 맞았다.

 

지켜보는 나야, 그냥 마음이 아플 뿐이다.

 

자기들 사이의 질서이고, 그들 세계의 일이라,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할 방법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싸움이 커지지 않도록, 그리고 힘이 없어도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넉넉하게 주는 방법 밖에 없다.

 

 

 

 

워낙 큰 캔을 뜯어줘서, 생협에게도 차례가 갔다.

 

(얘들 밥 먹이는 게 큰 일인게, 내가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검둥이가 와서 나머지를 다 먹어치운다. 검둥이는 새로 회색빛 애인이 생겼는데, 거기도 아주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3마리 달려 있다. 그 검둥이의 회색빛 애인과 엄마고양이, 그리고 바보 삼촌이 며칠 전에 한바탕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고양이들의 갈등을 보면서, 한국에서 어느덧 무시할 수 없는 지배층으로 성장해버린 졸부들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졸부라는 말은 어느새 쓰지 않는다. 스노비즘이라는 19세기 유럽에서 주로 쓰던 말이 귀족들의 꼴불견을 사회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단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졸부라는 말이 스노비즘과 유사한 기능을 했다.

 

이제는 그 졸부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졸지에 부자가 된지 20년 가량 지나버렸으니, 어느새 '졸'은 아닌 게 되어버렸고, 무엇보다도 국가 지배장치와 문화적 전파 장치들을 이들이 장악했다. 스스로 졸부라는 말을 쓰겠는가? 그리고 졸부라고 견제하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 힘이 없어져버렸다.

 

그들을 우리 사회는 '루저'라고 부른다.

 

"너네 졸부쟎아", 이 말을 꺼내기에도 힘이 부칠 정도로,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정서적을 취약하고, 문화적으로도 빈약해졌다.

 

부자나 특권층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의 지도자들과 민중들은 서로를 Citoyen, 시민이라고 불렀다.

 

대격동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시기에 이름에 붙는 존칭을 없앤다. 꼭 무슨 법칙이 있지 않더라도, 이런 호칭은 변화의 시기에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Camarade, 동지 혹은 동무라는 의미로 번역되는 말은 사회주의 태동기에 서로를 불렀던 말이다. 내가 보았던 가장 눈물나는 Camarade라는 호칭은, 프랑스의 베트남 반전 집회에 대한 필름에서 보았다. 대중들 앞에 샤르트르가 섰는데, 정말로 복부에서 피눈물과 함께 터져나오는 목소리로,

 

"꺄마라드..."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로 눈물 날 뻔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한국은 존칭이 완화되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존칭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갔다. 요즘은 만년필, 자동차 엔진은 물론이고, 화장품, 립스틱, 하다못해 주사에도 존칭을 붙인다.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이 고통스러운 사회 분위기, 우리는 더욱 더 강한 억압으로, 사람이 사물에게도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이런 니미럴...

 

한동안 현대 백화점식 존칭이라고, 표준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가진 사람의 횡포가 더 심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다. 아니면... 바로 죽는 거 아닌가? 언제든지 해고 시킬 수 있고, 재계약에 대한 권한을 가진 사람의 완장질이 극에 달하니까, 자연스럽게 부자들 자동차, 벤츠나 폭스바겐 혹은 토요타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BMW 가진 놈이 무서운 거지, BMW가 무서울 게 뭐가 있냐? 그래도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어디에서 날아올 칼을 맞고 죽을지 모르는데, 사람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에 벌벌 떨어야 하는 시기, 그게 우리가 사는 2012년 아닌가?

 

대통령에게 '님'을 잘 붙이지 않고, 정말로 대통령을 직접 만나야 하는 사람은 각하라는 별도의 호칭을 썼다.

 

없는 사람이 더 몸을 낮추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에게도, 꼭 님자를 붙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대체 넌 뭐야?

 

죽고잡냐?

 

요런 기이한 흐름이 생겨났다.

 

그런 기기묘묘한 사회적 서열이 주는 공포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고, 그 공포는 더욱 강해진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강북에게 밀려서 기다리고 있던 생협에게도 먹을 차례가 갔다.

 

그러나 이건 우리집 마당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개뿔, 아무 것도 없고, 그렇게 내내 기다리던 우리의 청춘에게 사랑과 출산이라는 것은, 너무너무 먼 나라의 일이 되어버렸다는 걸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선진국이 되면, 먹고 사는 것에 대한 1차적 공포로부터 국민들이 최소한 정신적으로 해방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오히려 그 공포가 더욱 더 깊어져서, 고객은 왕이다, 그러나 진짜 왕은 구매력에 의해서 따로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나? 우리에게는 공포가 더 강해졌고, 삶에 대한 팍팍함이 극한치로 가고 있는 중이다.

 

명박과 4년을 보내면서, 이젠 립스틱이나 핸드백은 물론이고, "주사바늘이 굵으세요", 주사바늘에게도 존칭을 붙이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되었다.

 

주.사.바.늘.이.굵.으.세.요.

 

내재화된 공포, 이 사회에서 기다림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그 공포 통치를 5년간 더 하겠다는 사람들, 그들의 두목 근혜 공주가 오늘 대단한 포부를 밝혔다.

 

사람이 사물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 기막힌 시대,

 

죽어라고 국격을 외치지만, 이놈의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의 인격, 서비스 해야 하는 사람의 인격에 대해서는 힘 있는 놈들이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싶다.

 

인격, 사람은 누구나 동등하게 존경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낸 나라에서 비록 허울 뿐인 이데올로기일지라도, 최소한 입에는 달고 다녔던 말이다.

 

재물의 평등은 아니더라도, 정신의 평등 혹은 영혼의 평등을 얘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벤담이 공리주의를 외칠 때, 모든 사람의 행복의 합이 사회적 행복이라고 말했다. 논란거리가 되지만, 한국 사회는 지금 벤담의 공리주의만도 못한, 야만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듯 싶다.

 

인간이 사물을 보고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지금, 이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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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동생이 태어나던 날은 잘 기억이 안난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그냥 어린 동생하고 같이 놀아주던 것만 기억에 난다.

 

보행기에 탄 동생을 너무 쎄게 밀어서 보행기가 마루 끝으로 떨어져서 다쳤던 순간이 황망한 기억, 그런 것들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막내동생이 태어나던 날과 병원에 가서 처음 본 날은, 버스 번호까지 기억을 하고 있다. 둘째랑 막내랑 한 살 터울인데도, 그 사이에 기억에 많은 차이가 있나보다.

 

나흘을 내리 밤을 새다가 낮에 잠깐 와서 눈만 붙이고 갔더니, 야옹구가 오늘은 단단히 심통이 났다.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데, 알아듣는 듯하기도 하고, 잘 못 알아듣는 듯하기도 하고.

 

마당에 있는 고양이들은, 며칠치 밥을 미리 주고 갔는데, 동네 고양이들까지 다 불러들여서 자기들끼리 잔치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검둥이까지 와서, 마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바보 삼촌이랑 하도 싸워서, 보는 대로 쫓아내고는 했는데, 자기들끼리도 어정쩡한 질서가 좀 생겼나보다.

 

까치들까지 잔뜩 몰려와서.

 

뭐, 나 혼자서, 얘네들이 아기 태어난 것을 자기들끼리 축하해주고 있다고, 그렇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기는 오늘 처음으로 젖을 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굉장히 위험할 상황이었다고는 하는데, 그나마 수술이 잘 끝나서.

 

세 시간마다 한 번 터울로 먹는다는데, 두 번째 젖은 시간보다 일찍 보채는 바람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두 번째 젖 먹는 것까지 지켜보다가 새벽에 들어왔다.

 

아기가 태어나는 걸 계기로, 다시 술을 마시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들은 아기 태어나면 금주를 한다는데, 난 술 마시기로 마음을 먹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그냥 맘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며칠 전에 고은 선생 팔순 잔치에 다녀온 적이 있다.

 

진짜 그 양반 20년만에 본 건데, 느낌이 참 남달랐다.

 

20대에 난 고은이 참 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니, 그만한 삶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뀐 건지, 그 양반이 바뀐 건지... 어쩌면 다 바뀐 건지도 모르고, 아니면 세상이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시간을 훌쩍 넘어, 반갑기도 했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나도 나이를 먹으니까, 사랑방 같은 데 편하게 앉아서 객젖은 농담이나 하면서, 그렇게 지내는 게 더 편하지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얘기인데,

 

이 이상한 별에 잘 못 추락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다른 행성에 태어나서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게 마이너들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들었던 적이 있다.

 

새로운 변화를 직감하고, 외로운 모습을 보이는 야옹구를 보면서, 삶이 가지고 있는 영속성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이 세 사진의 공통점은, 우연하게도 50미리 렌즈로 찍은 사진이라는 것, 300미리와 16미리를 주로 쓰고, 그냥 스냅샷 찍을 때는 30미리를 쓰는데, 공교롭게 전부 50미리로 찍은 사진들이 이렇게 모였다. 아주 나이가 어리거나, 아주 나이가 많거나, 아예 사람이 아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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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렵게, 어렵게 아기가 태어났다.

 

옛날 같았으면, 산모나 아기가 다 위험한 상황이었을텐데, 어쨌든 결론적으로 무사하게 태어났다.

 

아이는 어떻게 키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보지는 못했다. 그냥 평범하고, 소박하게, 그 이상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날 닮았으면, 열 살이 되자마자 학교 안 간다고 하면서 쌩 난리칠 거고, 결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업은 농땡이를 치고 말 거다.

 

원래는 아이가 태어날 때쯤이면, 농촌으로 이사 가고, 뭔가 세상의 복잡한 것을 알기 전까지는 그냥 농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생겨서 그렇게 되지는 못했고.

 

하여간 워낙 힘들게 태어나고, 날 때 고생을 많이 해서, 그냥 아프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 말고는 별 생각은 없다.

 

아기와의 첫 대면은 이렇게 지나갔다. 그저 무사하게 살아서 만난 것만으로도, 기뻐서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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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은 고양이들 밥 먹이는 게 큰 일이다.

 

마당의 개 집 안에 밥을 넣어주면 자기들이 알아서 먹는다. 그러나 비가 내릴 때마다 내가 매번 기다리고 있다가 그렇게 해주기는 어렵고, 그냥 비에 젖은 사료를 먹기도 한다. 너무 배고프면, 그거라도 먹는다. 어떨 때는 안 먹고 그냥 버티기도 한다.

 

녹차라떼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4대강 녹조 사건의 한 가운데에서 드디어 비가 왔는데, 이번에는 폭우 경보가 내리고, 강남역이 잠길 정도로 많이 내렸다.

 

낮에 우산들고 나가서 개집 안에 고양이들에게 따로 밥을 주고 왔는데, 엄마 고양이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니까 후다닥 도망을 가는데, 이 안에 4마리 가족들이 전부 들어가서 복닥복닥거리고 있었다.

 

참 많이도 들어가 있다 싶었다.

 

얘네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가족을 이루고 살지는 모르지만, 짧은 시간의 강렬한 기억과도 같다. 고양이와의 기억은, 언제나 찰라와 같다.

 

 

잠시 비가 그쳐서 캔을 뜯어주었다.

 

녀석들 요즘 먹는 분량이 엄청 많다. 너무 많이 준다 싶지만, 먹이를 줄이면 이 안에서 너무 금방 분가가 일어나고, 엄마가 나가던지 아니면 누군가를 쫓아내던지, 자기들끼리 조정을 한다.

 

그게 본성이다.

 

그래도 너무 빠른 분가가 슬퍼서, 넉넉하게 주는 편이다.

 

 

바보 삼촌이 먼저 먹이를 먹고, 저만치 떨어져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늘 어정쩡한 표정이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바보 삼촌의 얼굴이 정말로 화사하게 찍혔다.

 

막상 보면 꾀죄죄하고, 밥도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디룩디룩하다.

 

그래도 잘 보면, 여리고 순진한 구석이 얼굴에서 묻어 나온다.

 

비가 오는 날, 간만에 목욕을 해서 그런지, 정말로 화사하다.

 

보통 마당 고양이 찍을 때 쓰는 렌즈는 g렌즈에 캐스퍼라고 불리는, 70-300미리 존을 사용하는 줌 렌즈이다.

 

여기에 넥스용 어답타를 달아서 사용하는데, 덕분에 손떨방 기능은 전혀 쓰지 못한다.

 

알파용 렌즈는 바디로 손떨방 기능을 미루고, 넥스는 렌즈로 미루고 있으니, 결국 아무도 손떨방 기능을 하지 않는다.

 

뭐, 지금의 아답터가 자동촛점까지는 지원하지만 손떨방 기능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기능이 있더라도 사용할 수는 없다.

 

주로 300미리 구간을 많이 사용하는데, 흔히 셔솟이라고 하는, 셔터속도 확보가 아주 큰 일이다.

 

그나마 실외라서 쓰는 거고, 실내에서는 흔들려서 정말로 한 장도 쓸 수 있는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70미리 자체가 평상 생활에서는 거의 안 쓰는 구간이라서, 실내의 스냅샷이나 야외의 풍경 같은 건 이 렌즈로는 전혀 하지 못한다.

 

더 좋은 렌즈들이 있기는 한데, 그냥 이 정도로 버티는 중이다. 물론 아주 싼 렌즈는 아닌데, 그렇다고 겁나게 비싼 렌즈도 아닌, 특정 목적으로는 만족하고 쓸 수 있는.

 

 

 

 

나는 요즘 내가 세상을 보던 시선을 바꾸는 중이다.

 

정말로 오랫동안 돈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살았다. 더 이상 그렇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쉬움도, 미움도 그리고 약간 남아있던 회한 같은 것도 정말로 마음 속 한 구석으로 밀어내려고 한다.

 

200미리에서 300미리 구간이 내가 주로 사용하는 구간이 된지는 좀 오래된다.

 

고양이도 편하고, 나도 편하고, 그렇게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 수 있는 거리가 그 정도 된다.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화각인데, 그만큼의 거리가 서로에게 편안함을 준다.

 

아래의 새끼 고양이, 생협의 사진이 300미리 구간에서 마주보며 찍은 사진이다.

 

먼 거리는 아닌데, 그 대신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나타난다. 사진을 크롭해도 되지만, 아무래도 300미리 구간을 직접 쓰는 편을 내가 훨씬 더 편안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녀석을 관찰하지만, 녀석도 나를 관찰한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서로 보고, 조금씩 서로 편안해진다.

 

그렇게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느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이 가면, 녀석들도 발톱을 들이대고 으르렁거린다.

 

그렇게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돈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내려놓고, 그 대신 300미리 존으로 세상을 보는 편이, 더 편하고 더 느끼는 게 많다.

 

비 오는 날, 간만에 화사한 느낌의 고양이들을 보면서, 흔히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아름다움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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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고양이가 가끔 나를 울리는 때가 있다.

 

저녁에 먹다 남은 굴비 같은 걸 가끔 녀석들에게 준다. 굴비 대가리나 생선 몸통 같은 건, 보자마자 엄마 고양이는 자기가 먹지 않고, 바로 물고 달려간다, 새끼 고양이들에게로. 그 모습을 볼 때면,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그런 진한 감동 같은 게 있다.

 

물론 엄마 고양이가 매번 그렇게 아기 고양이들 먼저 챙기는 건 아니지만, 굴비 머리나 몸통 같은 것을 보자마자 물고 뛰어갈 때면, 정말로 산다는 게 뭘까, 그런 생각을 느끼기도 한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생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깊이 같은 게 가슴을 쿵 하고 때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같은 배에서 나온 4마리의 아기 고양이 중, 두 마리는 먼저 고양이별로 떠나고, 두 마리가 남았다.

 

엄마 고양이는 그렇게 덩치가 큰 족속은 아니다. 우리 집 마당의 누렁이들 자체가 그렇게 덩치 큰 놈들은 아니다. 그렇지만 협동해서 같이 살면서, 영역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법을 익혔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제 태어난지 3달 가까이 되어가는데, 아기 고양이들은 제법 아기 티는 벗었다.

 

야옹구가 길가에서 죽어가다가 포획된 게 바로 요 나이 때였다.

 

녀석들은 아직도 엄마 젖을 먹는다. 먹이도 이것저것 다 먹지만, 여전히 젖을 먹는다.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개체별 차이가 워낙 커서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듯 싶지만, 엄마 고양이는 특별히 아기들을 더 챙기는 편이다. 어떨 때 보면, 정말 그 사랑이 끔찍하다 싶을 정도로, 새끼들을 챙긴다.

 

지난 수 년 동안 한국에서 유행했던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삐뚫어지고 왜곡된 그리고 전도된 모성을 보면서 모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학을 떼다시피 했다. 그 클라이막스는, 목동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만들어주는 축구 클럽이었다. 같은 클럽으로 6년간 지나게 하면서, 그 클럽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 혹은 나중에 전학온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을 자랑스럽게 교육시키는 목동 초등학교 엄마들의 진짜 이상한 모성이라는 말을 보면서...

 

저게 괴물인가, 사람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진짜 무서웠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어미가 얼마나 요괴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끝은 과연 어디인가, 종잡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대치동에서 그 지랄끝이 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목동의 초등학교 축구 클럽은 정말로 강남의 생지랄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이런 이상한 모성애는 내가 알고 있는 어떤 OECD 국가에서도 벌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게 사랑이야...

 

그렇게 말하는 목동 엄마들을 보면서, 저기 사람 살 데 아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무엇보다, 대치동 교육이나 목동의 축구 클럽으로 자라나게 될 그 자식들의 미래가 무엇인가, 그게 너무 눈에 선하게 보였다.

 

남자들의 밑도 끝도 없는 모성 타령도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만큼 지겹지만, 목동 초등학교의 축구 클럽은 상상 초월이었다.

 

요즘 엄마 고양이를 보면서,

 

엄마의 본래 모습과 그 풋풋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중이다.

 

자식 사랑이 과하면 자식을 망친다, 이건 대치동 교육에 대해서는, 특히 최근에 더더욱 진리처럼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본주의의 탐욕에 물들어 결국 자기 자식의 삶마저 붕괴시키는 그런 모성애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엄마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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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고양이들의 여름 나기

 

 

 

이번 여름은 참 덥다.

 

이 더위 한 가운데에, 경제학자로 살아오던 삶을 마음 속에서 내려놓는 작은 일을 겪었다.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정말로 마음 속에서 그런 걸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느끼게 만든 계기가 몇 가지 있는데,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그걸 맡겨서 분석을 하도록 시킬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더운 여름에 지쳐서 뒤뜰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엄마 고양이와 바보 삼촌을 보면서, 정말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전응길 과장이라는, 오랫동안 파트너로 지냈던 한 공무원이 있었다.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이 10년이 넘는다.

 

"정권은 바뀔지도 모르지만, 세상이 정말로 좋아질지는 모르겠다", 그 질문을 나에게 했던 바로 그 공무원이었다.

 

얼마 전에 그를 만났는데, 그도 많이 바뀌었고, 이제는 변했다.

 

나도 변했을 것이다.

 

그에게 하지 못했던 답변은, 나도 마음 한 구석에 담아두기로 했다.

 

아내에게 이제 경제학자로서는 그만 살아가겠다는 얘기를 했다.

 

아내와 올해 결혼 9년차이다.

 

아직 밀린 일이 조금은 있지만, 아내와 나는 예전에 살던 방식의 삶을 내려놓았다.

 

 

 

 

 

이 녀석은 생협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녀석이다.

 

우연히 뛰어가는 장면을, 그래도 좀 좋은 조건에서 잡을 수 있었다.

 

벌써 아기 티는 많이 벗었다.

 

이 녀석들의 운명에 대해서,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기왕 인연이 된 것,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보살필 뿐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뭔지, 가끔 생각해본다.

 

positivie think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렇게 쓰고, 나는 '나쁜 생각'이라고 읽는다.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할 바에야, 아예 생각을 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한다.

 

 

간만에 마당 고양이 네 마리가 다 모였다. 얘들도 여름을 나느라고, 이렇게 다 모여있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고양이들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다. 금방 금방 시간이 지나가고, 헤어질 때가 금방 온다.

 

먼저 고양이별로 떠나기도 하고, 세력 다툼이 생겨서 밀려나기도 하고.

 

사람의 삶도 그와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사람의 시간은 좀 길다.

 

만약 사람보다 오래 살고, 또 사람만큼 혹은 사람 이상의 지능을 갖춘 존재가 우리를 본다면, 매 순간 내가 고양이들을 볼 때 만큼의 애틋함으로 우리를 볼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늘 애틋하다. 삶은 애틋한 것이다.

 

positive thinking이라는 단어는, 그 애틋함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린다.

 

그렇게 사람을 단세포로 만들고, 생각없는 존재로 만든다.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는, 그 말 자체가 참 부질없는 말이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엄마 고양이는 때때로 아주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내 느낌이 그래서 그런지 혹은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 늘 녀석은 사려깊음이 갖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최근에 제작 중인 몇 가지 영화나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남자들이 만든 얘기에서 여성들이 갖는 수동성 혹은 피상적인 것에 대해서 종종 지적을 하게 된다.

 

물론 내가 만든다고 해도 크게 별 수는 없겠지만...

 

영화 <평양성>의 갑순이가 대표적이다. 잘 나고 강한 여자를 만든다고 만든 건데, 하나도 강해보이지 않고, 하나도 잘 나 보이지 않는다.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라고 하면 그냥 해야 하고, 게다가 욕 하는 것 외에 작전을 주도해서 짜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중요한 일은 남자들이 다 하고, 그 사이에 일정한 각을 가지고 여자도 나온다, 그게 남자들이 만드는 얘기에서 여자들에게 부여하는 상의 거의 전부이다.

 

그리고 나름 영웅적이라고 그려낸 여자들의 대사는...

 

말이 짧다.

 

일부러 지능이 모자르게 보일려고 작심이라도 한 듯이.

 

엄마 고양이를 볼 때, 그런 영화나 제작 중인 시나리오에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과 정 반대인 여성적 존재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이건 엄마, 혹은 대모라고 할 때의 느낌과도 좀 다르다.

 

인간의 말로 표현할 방법이 별로 없다.

 

여성이 중요한 사회가 아니라, 여성이 만든 사회라는 느낌일까?

 

살짝 옆모습을 보이고 돌아누운 엄마 고양이 모습을 보면서, 그런 복합적인 느낌을 받았다.

 

 

자기 밥은 다 먹고 나서 돌아섰다가, 아기 고양이 생협이 밥을 먹기 시작하니까, 까먹었다는 듯이 다시 와서 밥을 먹기 시작하는 바보 삼촌.

 

녀석의 본래 모습은 이런 모습이다.

 

아직은 아기 고양이 두 마리의 개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바보 삼촌만큼만이라도 나와 같이 오래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보장하기가 어렵다. 무사히 이사를 같이 가는 것도 큰 일이고, 그렇게 이사를 간다고 해도 새로 간 집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이사가면서 중성화 수술을 해줄 계획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지금처럼 영원히 가족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에 대해서는 보장이 없다.

 

불교와 기독교에서 각기 고양이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은 다를 것 같다.

 

사람들을 구원의 대상이라고 보는 것처럼 고양이도 구원의 대상이라고 보는 시선이 하나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불교적 생각에서,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약간은 맘 편하지만 가슴 저린 시선이 하나.

 

나는 그냥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약간은 무덤덤하게 넘어가려는 편이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내가 준 먹이를 먹고, 매일매일 내가 주는 밥을 먹으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이 녀석들을 보면서 그렇게 무덤덤한 시선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양이들과 지내면서 증오 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배우게 된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기대하지 않았던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 속에 잠자고 있던 표현의 욕구 같은 것을 일깨워준다는 것.

 

그래서 고양이를 영적 존재라고,때로는 숭배하거나 때로는 저주했던 것일까?

 

분명히 영적인 뭔가의 작동이 있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마침 아기 고양이 생협이 정면을 보고 있는 장면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제는 노랑 눈동자가 더 명확해졌다.

 

자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퇴행일까? 아니면 발전일까?

 

나이를 먹으면, 그 나이만큼 섭섭함과 아쉬움이 나이테처럼 남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섭섭함을 정말로 자신의 삶에서 풀려고 하면, 정말 퇴행적 삶을 살게 된다.

 

저 아기 고양이의 눈을 보면서, 좀 어색한 표현이지만, 내 마음이 그 눈동자 안에 빠져드는 것 같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런 캐캐묵은 질문들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답이 있겠나, 삶이라는 것에.

 

그러나 더 쥐고, 또 더 쥐려고 하는 것,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정도가 내가 배운 거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아기 고양이의 눈망울을 보면서, 노을을 보면서 가끔 느끼는 그런 비어있는 울렁거림,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고양이들의 여름 나기를 보면서,

 

문득 삶에도 여름 나기 같은 것들이 있고,

 

가을을 향해 누워 지내는 그런 긴 잠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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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그리고 학자로서의 내 삶 정리

 

1.

경제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은퇴를 준비한 건 꽤 된다. 마흔 살이 되면 은퇴하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명박이라는, 진짜 이상한 사람의 시대를 만나, 조금 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 한미 fta가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하는 걸 보면서, 여기에 조금이라도 뭔가 보태는 게 내가 할 마지막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선에서 fta 문제가 대선 의제로 올라가는 것, 거기에 학자로서 걸 수 있는 건 다 걸었다.

 

나꼽살에서, 지난 주부터 대선후보 초청 방송을 하는 중이다. 손학규 후보가 지난 주에 나와서, fta 재검토를 하겠다고 받았다.

 

이번 주에는 정세균 후보가, 강령 22조에 있는 그 내용 그대로,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아직 개인적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김두관 후보 쪽에서도 그 정도는 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 문재인 쪽의 대답을 못 들었지만

 

혼자 생각해보면, 참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미 한계치를 넘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이고, 이미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온 것 아닌가 싶다.

 

이미 무리였고, 이 이상도 무리다. .

 

경제학자로 살면서, 알고 있던 이런저런 네트워크까지, 사실상 총동원했다.

 

이 이상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2.

녹음 끝내고 나오는데, 김진표 보좌관이 김진표의 책을 나에게 건넸다.

 

그냥, 운명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학규, 정세균, 김두관,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fta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나도 확신은 없다. 다만 지난 겨울보다는 나은 상황으로 가지고 갈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고그건 이제 시민들의 몫이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

 

스튜디오 녹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서, 경제학자로서, 은퇴하는 순간이라면, 바로 이 순간이라고 생각을 했다.

 

바로 그 순간에 김진표 책이 내 눈앞에 왔다이 또 무슨 기묘한 운명이란 말인가.

 

2002, 봄 어떤 날이 그랬다.

 

그 시절에는 공직에 있었고, 총리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약간의 하극상, 총리한테 직접 보고를 하고, 별도의 결제라인으로 작업을 하는 그런 승부수를 띄울까 말까, 그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위의 상사가 김진표였다.

 

나는 도저히 이 사람이 상사로 있는 한 더는 일을 못할 것 같아서, 고민을 했는데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총리실 근무를 접기로 마음을 먹은 날이 있었다.

 

실제로 사직서를 낸 건 그 다음 해의 일이다. 마음은, 그 때 바로 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나가면 나를 추천해준 사람들이나 전임자들이 곤란해진다고 해서다들 조용해지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다가 다음해 사직서를 냈다.

 

나꼽살 녹음을 마치고, 이제 할만큼 했다, 더 이상 이어갈 수가 없다고 마음을 막 먹는 순간에,

 

누군가 눈앞에 김진표의 책을 딱 들이미는데

 

참 운명 같이

 

이 순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그런 기묘한 인연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

정권은 바뀔 것 같다.

 

그러나 정말로 좋은 세상이 올지는 모르겠다.

 

좋은 세상이라는 건, 포괄적 표현이다. 그 중에 fta 문제 하나에만 학자의 생명을 걸기로 했다. 모든 문제를 내가 다 풀 수 있거나, 최소한의 개선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발효에 즈음하여 삭발을 했고, 내 책 중에서 제일 잘 팔리는 책을 절판을 했고, 금주도 했고,

 

이제 내가 내려놓을 수 있는 건 경제학자로서의 삶이다.

 

어차피 내려놓기로 마음 먹은 것, 더 이상 끌고 나갈 수 있는 한계치에 봉착한 지금,

 

내려놓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 이상은 무리다.

 

혼자 힘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치는 벌써 예전에 넘었는데, 악물고 하는 데에도 물리적 한계가 있다.

 

Fta 문제에 사람들이 환기하기를 바라면서 내 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는 것, 이것도 보람된 일이다.

 

대선에 대해서, 나보다 잘 말할 수 있고,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 차고 넘친다.

 

신문 칼럼 연재는 벌써 3월달에 내려놓았다. 하나씩 내려놓는 중인데, 가장 핵심에 해당하는 것들 것 이번에 내려놓으려고 한다.

 

강의와 강좌, 강연, 그리고 학자로서의 기고와 블로그 등, 내가 하던 핵심적인 일들을 내려놓을 순간이 지금인 듯싶다.

 

옛날에도 김진표와 같은 그룹에 이름을 올리기가 싫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냥 운명적인 일들이 그렇게 벌어진 셈.

 

4.

학자로서 내가 마지막으로 지지했던 정치인은 정동영이었다.

 

그가 영광을 보지 못해서 안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을 지지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지지했던 사람이 정동영이라서

 

그 영광은 영원할 것 같다.

 

우정이라고 표현한다면, 내 마지막 우정은 정동영과 함께.

 

5.

남은 건 대선까지 하기로 한 방송인 나꼽살과, 출판사에 계약이 남은 몇 권의 책들.

 

하기로 한 약속이기 때문에, 나꼽살에 참여하는 것, 남은 몇 권의 책들의 원고를 마무리하는 일, 그 정도는 마무리하려고 한다.

 

마지막 책을 떨면서, 조촐히 은퇴를 하려고 했는데, 시점상 시간이 늦어지면서 그렇게 딱 마무리를 짓지 못한 건 좀 아쉽다.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사회적인 일들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계속 서 있는 건 좀 아닌 듯싶다.

 

새롭게 전개하는 테제는 이제 더 이상은 없고, 정말 기계적인 마무리들.

 

세상이 좋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이 아직도 있지만,

 

학자로서 이래라 저래라 하던 시절은 이제 접으려고 한다.

 

이미, 물리적으로도 너무 무리한 상태에서 오래 버텼다.

 

6.

생각해보면, 그 동안 과도한 영광을 누렸다.

 

이젠 눈도 잘 보이지 않고, 더 이상 예전 같은 집중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실무 경제학자로서 더 이상 분석작업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 한 마디 보태면서 참견질하는 건, 내가 살아온 삶과는 다르다.

 

96년에 학위를 받았다. 잠시 뒤돌아보면, 17년 동안, 진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경제학자로 살았다.

 

충분히 영광스러웠다.

 

이젠 정말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7.

방송기획자 같은 것에 대한 제안들을 좀 받은 게 있는데

 

해보니까, 난 방송에서 즐거움을 느끼거나 보람을 느끼는 체질은 아니다.

 

힘겨웠던 30대를 지나면서 지병처럼 몸에 남은 대인기피증이, 결국은 극복이 안 된다.

 

강의도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보람을 느끼는, 그런 체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방송이나, 강의나, 강연이나, 하면서 즐거운 게 아니라, 싫은 데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고 억지로 한 건데

 

정세균 후보가 fta 재검토를 하겠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참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젠 정말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학규와 정세균만 해도, 나보다 세상을 위해서 더 할 일이 많고, 더 많이 기여할 사람들이다.

 

이젠 억지로 잡고 있던 바통을, 넘길 순간이 왔다는 생각이 머리를 빡.

 

이제 나는 엑셀 작업이나 수치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안 보인다. 한 때는 수차표 잔뜩 쌓아놓고도 숫자의 특징들을 귀신 같이 잡아냈는데

 

이젠 그렇게 숫자가 눈에 보이지가 않는다.

 

이젠 정말 물리적으로도, 내려놓을 때가 온 것이다.

 

8.

살면서 가장 보람된 일이 뭘까,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일, 그리고 같이 살아갈 수 있던 일.

 

조철현, 이준익, 이런 실없는 소리와 망상을 나누어줄 동료가 있다는 일.

 

화가 김선정씨처럼, 우리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파트너 화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

 

뒤의 일을 안심하고 맡길 선대인이나 김용민 같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

 

늘 같이 웃고 부비끼며 살아갈 고양이들이 내 주변에 잔뜩 모여 있는 일.

 

지나보니, 그런 게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태생이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혼자 놀기를 좋아한다.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한다고, 그런 교육을 많이 받고 강요도 많이 받았는데, 사실 나는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족속이다.

 

무리하게 지고 있던 학자로서의 삶을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물리적으로는, 김진표와 나는 운명적으로 상극인지도 모른다, 사회적인 게 아니라.

 

자연인 김진표에게는, 별 감정 없다. 사회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앞으로 뭘 하고 살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밥이야 먹고 살겠지.

 

어쨌든 학자로서는 더 이상 살지는 않을 생각이다.

 

머리를 숙여야 하는 순간이 올 때,

 

학자로서 삶을 내려놓겠다고, 아주 어렸을 때 결심한 적이 있다.

 

좀 늦었지만, 이제 그 순간인 것 같다.

 

한국의 20대를 위해서 한 마디를 남긴다면,

 

Fta를 찬미하는 사람은 평균적 20대의 적이라는 말 정도?

 

(이 기회를 빌어, 그 동안 이 블로그를 찾아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각별한 감사와 고마움을 남기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평온한 삶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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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사진기를 더 이상 집어 들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다시 카메라를 집어들게 만든 계기가 된 사진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사진이었다. 사진으로는 큰 의미는 없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나의 삶에는 이 사진 한 장이 엄청난 변화를 미쳤다.

 

히로시마 시민 병원’…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병원 건물이었는데, 이게 내 머리를 뻥하고 치고 갔다.

 

왜 이 병원 이름이 시민병원일까, 무슨 연유로 이 병원에는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이 고민이 나중에 경향신문에 연재하게 된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글의 첫 번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지역경제에 대해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해보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 사진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어쩌면 학자로서의 1기와 2기를 분기할 정도로 중요한 사진이 되었다. 더 잘 찍은 사진이나 더 좋은 사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중요한 사진으로는, 아직은 이 사진이 나에게 제일 중요하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이 사진을 뚫어져라고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왜 한국의 병원에는 시민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고, 일본의 병원에는 이 이름이 붙게 되었나? 이 질문이 나에게는 컸다.

 

어쨌든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는 못했는데, 그 대신 다시 카메라를 집어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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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꼽살에서 대선 후보 초청 방송을 시작했다.

 

우리야 나꼼수 만큼 힘 있는 방송은 아니라서, 대선후보 방송을 기획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획력을 좀 넘어서는 것이기는 하지만그래도 뭔가 하는 편이 대선 분위기를 만들고, 뭐래도 박근혜 쪽이 아닌 곳에서 얘기를 만들어낼 것 같아서 시작은 했다.

 

그 첫 방송으로 손학규편을 오늘 녹음했다.

 

그냥 내가 지켜본 것에 의하면, 손학규와 정동영은 지난 대선 때 이후로, 참 티격태격, 사이 안 좋다. 그런데 순망치한이라고 할까, 한 명이 없으면 다른 쪽도 힘이 없는, 그런 기묘한 아저씨들 사이의 관계가 있는 듯싶다.

 

내용은 괜찮았다. 평소의 손학규에 비하면, 좀 더 급진적인 요소들을 많이 얘기한 건데, 팟 캐스트라는 방송의 특징상, 우리끼리 치고 받고 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고.

 

Fta에 대해서는 중대한 변화가 한 가지 있었다.

 

‘fta 한 스푼을 내면서 일종의 조정안 같은 것을 냈었는데, 그게 ‘fta 재평가에 관한 것이다. , 일종의 유보안이다.

 

지금 당장 동시다발적 fta에 대한 국가의 입장을 결정하지 말고, 대선 이후 1년 정도 개별 fta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하고, 동시다발적 fta에 대한 입장을 재검토하자는 거다. 그리고 그 평가 결과를 놓고 국민적 논의를 해서, 한미 fta 등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폐기할 것인지, 그런 재검토를 하는 기회를 갖자는 거다.

 

옹색하기는 한데, 이미 사회적 논의의 틀에서 fta가 죽어버린 이상, 그 정도 얘기가 내가 양심상, 낼 수 있는 최대안이었다.

 

일단 손학규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 옹색하고 헐벗은 fta 땅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 만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학규가 고마웠다.

 

같은 질문을 다른 후보들에게도 할 던질 생각이다. 물론 어떻게 답할지, 나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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