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장마를 보내기

 

 

 

아기를 낳고 나서, 엄마 고양이가 아프다.

 

바이러스성 감염이라고 하는데, 눈도 진물렀고, 마른 기침 같은 걸 한다.

 

병원에서 튜브에 담긴 페이스트 형태의 약을 사다가 먹이는데, 이게 먹이기가 쉽지 않다.

 

캔에 섞어서 주는데, 엄마 고양이가 잘 먹지를 않으니까 바보 삼촌이 다 먹어버린다.

 

약을 많이 주기도 어렵고, 식욕도 별로 없고, 그래서 병수발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밤에 엄마 혼자 있을 때면, 그 앞에다 캔을 몰래 밀어넣어주기도 하고.

 

하여간 계속 먹였더니, 어제부터는 아이 낳고서 처음으로 자기가 캔을 먹기 시작했다.

 

바보 삼촌을 밀어내고, 먹기 시작했다.

 

오늘 본 건, 상황은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밥 먹다가 바보 삼촌이 엄마 고양이한테 한 대 맞았다.

 

힘이야 이제 바보 삼촌이 더 쎄겠지만, 그래도 고양이 사이들의 한 방은, 순전히 기싸움이다.

 

바보 삼촌 정도야, 아직도 한 방에...

 

얼마 전에 본 비디오에서, 고양이의 이 한 방에 악어도 꼼짝 못하는 걸 봤다.

 

열 받은 악어가, 친구 악어를 한 마리 더 데리고 왔는데, 걔도 한 방.

 

"너 바보야? 친구가 가잔다고, 그냥 졸졸 따라 다니게?"

 

 

 

작년까지는 비가 오면 가끔 비가 들이치지 않는 현관문 앞에 놔주기도 했는데, 지난 겨울에 개집을 새로 들인 후, 그 안에 넣어둔다. 그러면 자기들이 알아서 먹는다.

 

오후에 나갔는데, 아픈 다음에 처음으로, 엄마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오늘은 밥 안 주나?"

 

마침 바보 삼촌이 없길래, 얼른 캔을 뜯어줬는데...

 

먹을 거만 생기면 기가 막히게 쫓아오는 바보 삼촌.

 

비오는 날, 고양이들이 그냥 피만 피하면서 쭈그리고 있지는 않는다.

 

아기 고양이들에게는 얼마 전부터 아기용 사료를 물에 불려서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지네들이 먹는지, 어른 고양이들이 먹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통은 늘 비어있다.

 

풀밭에서 비오는 날, 새끼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 그건 우리가 늘 상상하던 실낙원과 같았다.

 

 

 

 

아직 엄마 고양이는 재채기를 조금씩 한다. 병원에 물어봤는데, 천식은 아닌 것 같고.

 

출산 이후에 뭔가 더 먹기 시작해서 기운을 차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밝게 생각한다.

 

엄마 고양이를 보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요즘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아주 솔직하게, 내면이 아름다운, 그런 걸 진짜로 느껴본 건, 이 엄마 고양이에게 처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과연 아름답다는 게 뭘까,

 

그런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중이다.

 

우리는 살면서,

 

삶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너무 둔감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그렇게 아름다움에 관한 감각이 둔탁해졌거나 혼탁해졌거나...

 

요즘 그걸 다시 이 녀석에게서 배우는 것 같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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