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9.03.04 1인당 grdp 1
  2. 2019.03.03 큰 애 초등학교 입학식 편지.. 4
  3. 2019.03.03 지승호 인터뷰..
  4. 2019.03.03 박창진의 <플라이백> 2
  5. 2019.03.03 우리는 성숙할 수 있을까?

몇 년만에 1인당 grdp 좀 챙겨봤다. 2017년 통계까지 밖에 안 나와있다.

1. 울산이 1위 자리를 내줬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개구라. 2017년 기준으로 서울이 4366만원, 울산이 5038만원. 아직은 역전 얘기하기에는 좀 격차가 있다. 산업체 생산량이 지역으로 잡혀서 그렇지, 수치만으로만 보면 울산은 이제 한국 아닌 것 같다.

2. 2016년에 서울은 1인당 소득이 4천만원 넘어갔다. 여기도 수치로만 보면 한국 안 같다. 서울 시민 평균소득으로 계산하면, 우리 집 소득은 연간 1억 6천은 되어야.. 캑. 서울의 돈은 다 어디간겨? 승리가 다 쓸어간겨?

3. 경기도가 서울시 grdp 넘어갔다는 얘기를 얼핏 들어서 뭔가 하고 봤더니, gross로. per head는 아직 꽤 차이 난다. 경기도는 거의 전국 평균이다.

4. imf 이후로 대구와 전북이 전국 최저였는데, 아직도 역전 상황은 없다. grdp 추계로만 보면 imf 충격이 가장 강한 분야는 출판계의 사회과학 분야고, 지역으로 보면 대구와 전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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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가 내일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뭐 해준 것도 없는 아빠가, 맹숭맹숭, 편지라도 한 통 쓴다고 우물쭈물.

 

다들 뭐 해야 한다 하고, 저래야 한다고 하고 난리들이다. 모르겠다. 사는 게 그렇게까지 복잡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편지 받고 후루루 한 번 읽더니, 큰 애가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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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도 이제 나이를 먹는다. 우리, 다 나이를 먹는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홍대 앞에서 만났던 청년 느낌이 조금은 났었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어렴풋한 느낌 같은 건 사라져버렸다.

우리 시대가 풍요로왔던 것은, 그래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만나고, 기록하던 지승호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들 지 잘난 맛에 살던 시절.

언젠가 내가 지승호에게 다시 인터뷰집 하자고 부탁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직은 그런 때는 아니다. 나는 지금 애들 손 붙잡고 격랑의 시절을 보내는 중이다. 언젠가 다시 인터뷰집을 낼 때에는, 인세를 나누는 일 같은 건 하지 않고.. 전부 그에게 주는 계약을 할 생각이다.

나는 그 시절을 행복하게 건너왔다. 인세를 조금 더 받거나 덜 받거나, 강연비를 받거나 무료로 하거나, 살아가는 데 아무 차이도 없다.

그가 환갑을 바라볼 때쯤, 좀 더 편안하게 삶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인터뷰 작가의 괴로움과 즐거움: 지승호 인터뷰

[나와 너]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1914년 5월 어느 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는 한 목사의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에 도달한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제3인칭으로서 그(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신을 믿는다는 것이 그 분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떨리는 목소리가 기어코 입 밖으로 터져나올 테고, 그 고백은 누군가에게 벅찬 기쁨이나 깊은 슬픔을 만들어내고 있을 테지만, 부버는 “사랑은 ‘나’에 집착하여 ‘너’를 단지 ‘내용’이라든가 대상으로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랑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고 선언한다.

사랑은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정의 소유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주어가 너라는 목적어에게 내 진심이라는 ‘사랑’을 던지는 그런 행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난주, 지승호 작가를 만났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터뷰 단행본을 펴낸 작가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인간과의 관계, 특히 대화에 관해 누구보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직업으로서 작업해온 사람이라는 의미다. 인터뷰는 늘 사람과의 관계에 관해 고민해야 하는 작업이면서, 특정한 인격을 ‘정보’로 대상화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독자들이 궁금한 건 그 인터뷰이에 관한 어떤 정보이거나 그 인터뷰이가 말해주는 어떤 정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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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의 <플라이백>에 대한 서평을 썼다.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결국에는 약간 톤다운을 해서..

 

어쨌든 사연 넘치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게 된 한 사나이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조선일보

플라이백


우석훈 경제학자
경제학자로 살다 보니 습관적으로 자본과 노동이라는 이분법적 범주를 먼저 생각한다. 자본에 이득이 되는 것, 노동에 이득이 되는 것. 이런 도식적 구분은 많은 문제에 간편한 설명을 제공한다. 10여년 전 낸 책 '88만원 세대'는 자본이 단기적 이윤만 너무 추구하다가 청년들의 기본적 삶은 물론 '인간의 재생산'에도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라는 간단한 문장 위에 세워져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이렇게 보면 설명이 쉽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시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도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소위 '땅콩 회항'이나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사건'이 그런 사례다. 둘의 행동은 노동자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었다. 주가 하락 등 기업 가치가 떨어졌고, 신뢰도 같은 상징적 자본도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회사 경영주 또는 상급자의 이른바 '갑질'은 다른 OECD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선진국 회사들은 대체로 직장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경영주의 전횡을 견제하는 장치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원칙 있는 회사라면 고위층의 일방적 명령으로 활주 중인 비행기를 돌려 세우고 여객 사무장을 공항에 내려놓고서 다시 출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견제가 부족하고 긴장감 없는 특수한 기업 구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땅콩 회항' 당시 뉴욕 공항에 홀로 남겨진 박창진 전 사무장이 평직원으로 강등된 후 회사에서 버텨나간 얘기를 책으로 썼다. '플라이백'(메디치미디어). 회항을 뜻하는 항공 용어다. 당신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 뜻밖의 일로 회사 고위층에게 찍혀 평사원으로 강등됐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표를 내면 속 시원한 일이겠지만, 대한민국 직장인 대부분은 십수 년 다닌 직장을 떠나면 기댈 곳이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가더라도, 그 누구도 내 존엄성만은 빼앗을 수 없어요." 그가 인용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구절이다. 개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조직 문화는 직장의 비용 감소나 효율 증가 혹은 창조 능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본에 도움이 되는 일도 물론 아니다.

자본과 노동 모두에 이익이 되는 직장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새로운 규범과 약속 그리고 제도가 필요하다. 직장이 유토피아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괴로운 지옥 같은 곳이어서는 노동과 자본,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21세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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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이라는 개념에 집중해서 세상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 책은 별로 힘을 못 썼는데, 동아일보 같은 데에서 성숙은 아니라고 꽤 난리를 쳤었다. 대중적으로 뿌리는 못 내리고, 아주 상층부의 소모적 논쟁만 생겨났던..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성숙해졌는가? 개뿔이다. 힘들 때 성숙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쉽다. 그냥 고개 처박고 있으면 된다. 잘 될 때 혹은 좋은 흐름을 탔을 때, 그 때가 어렵다. 좋으면 고개 빳빳이 들고, "다 내가 잘 해서 이렇게 된 거야", 이렇게 행동하게 된다.

성숙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한국에서는 남자랑 여자랑 비교하면 좀 더 쉬운 것 같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남자 특히 성공한 남자 중에서 그 사이 성숙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보다는 더욱 더 꼰대처럼 되어간다.

진중권은 성숙했을까? 나는 그를 선배로서 존경하고 존중한다. 그렇지만 요 몇 년, 진보누리 시절의 진중권에 비해서 더 성숙해진 것 같지는 않다.

장하준은 성숙해졌을까? 자주 보는 사이는 아니라서, 그의 인격과 삶은 잘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하는 얘기들이 부쩍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그도 어쩌면 삶의 어려운 순간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 적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은 성숙해졌을까? 글쎄.. 참여연대를 움직이던 그 시절에 비해서 진짜로 국민경제 전체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했으니까. 상식적으로는 그 이상 더 성장과 성숙의 기회를 갖기는 어려울텐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몇 년 전에 비하면 분노가 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그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가 정의당 한 가운데에서 많은 고생을 했고, 그 고난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그는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더 가볍고 경쾌하게 움직인다. 모르겠다.. 혹시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내면적으로는 더 성숙해졌을지도.

가끔이라도 보는 남자들 중에서 더 유명해지거나, 더 높아진 사람들은 꽤 많다. 성숙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더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은 잘 없다. 성숙하기 전에 노화가 먼저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들 중에는 예전에 알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더 깊어지거나 우아해지거나, 덜 날카로와지고 편안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한혜정 선생이 대표적이다. 은퇴하기 몇 년 전에 꽤 많은 연구를 같이 했었다. 그리고 은퇴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는 은퇴하지 몇 년, 손자를 돌보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다. 그래도 관심이 줄어들거나 뒤로 간 것 같지는 않은데, 확실히 더 편안해졌다.

시인 노혜경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잘은 모른다. 그렇게 자주 보는 사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방송과 글로 보던 예전의 그의 모습과 요즘의 그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비교해보면, 확실히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변화가 있기는 한 것 같다. 만약 그걸 성숙이라고 부른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여성들은 40대와 50대를 거치면서 많이 변하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른다. 그리고 환갑을 바라보면서 심성에도 변화가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더 처먹지 못해서 환장을 하는 할머니들도 종종 봤다.

사회는 바뀌고, 시간은 흐른다. 개인들도 그 속에서 개인사의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만나게 된다.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해서 공황장애로 가는 사람도 종종 보았고, 이미 끝냈어야 할 부부 관계를 해소하지 못해 수심을 가득 안고 사는 사람도 보았다. 친구들은 잘 나가는데, 자기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 해만 지면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도 보았다. 그리고 많아진 돈과 명예를 감당하지 못해 점점 더 자기 안의 성으로 깊숙이 들어간 사람도 보았다.

성숙이란 뭘까? 몇 년만에 성숙 자본주의 책 내던 시절에 관한 기억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본다.

80년대, 많은 사람들이 운동권이었다. 그 시절에는 우리가 어른이 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같은 것들을 공유했던 것 같다.

이제 그 운동권들에게 힘과 권력이 가는 시대가 왔다. 과연 이 시기에 우리가 성숙한 한국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국가는 그렇다 치고, "저 사람은 그래도 좀 성숙했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좀 배출할 수 있을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언젠가는 넘어서야 하는 허들을 향한 협동진화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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