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완전고용 선언을 하기 직전이다. 일본은 정치적으로 여러 분란이 있지만, 경제 자체는 실질적 완전 고용이다. 우리는 완전 고용을 얘기만 해도 정치학이나 사회학하는 사람들이, 그게 말이 되느냐고 생난리를 친다. 나는 안될 것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도 각기 경로도 다르고 이유도 다르지만,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를 몇 년째 유지한다. 그 상태에서 실질 임금도 올라간다. 우리는 왜 이런 상상 자체를 못할까? 경제에는 적당히 실업이 좀 있어야 한다는 신화가 우리에게는 너무 강하다. 그리고 좀 노는 사람 있어도, 전체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 아무 문제 없다는 약간의 적당주의도 있다. 그리고 고용 보다는 일단은 케이블카도 만들고, 도로도 좀 만들자는 지역의 강력한 토건주의도 여전히 잔존하고. 상상 자체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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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아이들 어린이집 가는 게 두 번이 된지 이제 두 달 조금 넘는다. 낮에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게 좀 있지만 아직은 무리다.

 

큰 애는 어린이집 적응을 잘 못한다. 아침에 울고, 저녁 때 운다. 조금만 늦게 가면 울고 있다. 정말 서럽게 울고 있다. 방법이 없다. 일찍 가고, 더 많이 놀아주는 수밖에.

 

겨울에는 추워서 꼼짝을 못했는데, 이제는 좀 날이 좋아져서 여기저기 움직여볼 대안이 좀 생겼다. 애들 데리고 움직이려면 렌즈 한 가방, 이렇게는 안되고,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하나만 들고 나와서 그냥 그날의 운에 맡기는. 이렇게 나도 놀이 중이다. 오늘은 좀 큰 놀이터로 왔다.

 

꽃이 좋은 계절이다. 개나리에서 벗꽃까지, 일제히 다 피는 진귀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오늘은 30미리 접사렌즈 들고 나섰다. 싼 렌즈인데, 그래도 나는 재밌어 하는 렌즈다. 원래는 접사용이지만, 스냅샷 찍을 때에도 많이 쓴다.  

 

 

 

 

노을 지는 시간에 진달래. 진달래는 꽃이 작아서 사진은 잘 안 찍게 된다. 진짜 간만에 진달래...

 

 

30미리 접사렌즈는 단렌즈 치고 하나도 밝지가 않은 렌즈다. 값도 싸고. 이래저래 잘 안 쓰기는 하지만, 빛만 좋으면 얘도 화사하게 사진을 뽑아주기는 한다.

 

아팠던 둘째 아이다. 언제나 가슴 속에 담아놓고 산다. 더 예쁘고, 더 밝게 찍어주고 싶다.

 

 

 

 

30미리 장점은, 눈에 보이는 시선과 비슷하기 때문에 보는 대로 나온다는 점. 그래서 스냅 찍을 때 많이 사용하는. 아쉬운 점은, 장점의 반대. 좀 멀거나, 좀 가깝거나, 애매해진다.

애들 뛰는 거 30미리로 찍을려면, 진짜 큰 마음 먹고 딱 준비하고 있다가 한 방에 들어가야. 찬스는 딱 한 번. 진짜 찍으면서 하늘의 운에 맡기는...

 

 

 

이것도 역시 30미리. 벗꽃은 벗꽃인데, 큰 벗꽃 나무 한 구석에서 작게 꽃이 피어 올랐다. 접사용 렌즈이기는 한데, 다루기가 쉽지 않은. 10장 정도 실패하고, 결국 조리개 수치를 9까지 올렸다. 아예 15 정도 한 번에 갈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서. 고양이 찍을 때 이렇게 조리개 높이면 터락 같은 게 다 뭉개진다. 그래도 정물은 움직이는 게 아니니까 해 좋고, 숨만 잘 참으면... 이 정도 수치면 슬슬 팬 포커스 시작될텐데, 접사 렌즈라서 여전히 심도는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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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

잠시 생각을 2018. 4. 9. 14:29

 

 

 

30미리 매크로 렌즈. 이 렌즈가 별로 특징 없고, 다루기도 힘들다. 그렇게 밝은 렌즈도 아니고, 화각도 애매하다. 그냥 가지고 다니다가 스냅샷으로 쓰기도 하는데, 애매한 만큼 독특한 느낌의 사진을 종종 만들어준다. 접사로 하면 삥 맞추기 어렵고, 노출 조절도 어렵다. 최대노출로 하면, 진짜 촛점 범위 극히 일부 말고는 다 날아간다. 그런데 내가 가진 바디가 그렇게 삥을 잘 잡아주지는 못하고. 매뉴얼로 맞추다 보면, 낯술 마신 것처럼 머리만 빙빙 돈다. 눈 아파서, 노안 온 눈으로는 그렇게 못한다. 어지간해서는 렌즈를 잘 안 조이는 편인데, 이넘은 최대로 조이게 된다. 그래도 접사라, 심도가 너무 낮다. 이래저래, 다루기 힘들다. 앵두꽃, 쉽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다. 가끔 있어도, 다들 벗꽃인 줄 안다. 사실 거기서 거기인 나무지만, 그래도 엄연히 앵두꽃이다...

 

그래도 내가 올해는 좀 살만하가 보다. 몇 년만에 카메라를 집어들고, 세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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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10, 주인 없는 나라 같다

 

 

보수 정권 10년을 거쳤다. 정확히는 9. 삼성증권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과연 이게 실수였는지, 아니면 더 근본적인 문제의 이상신호일 뿐인지, 여러 가지를 돌아보게 한다. 없는 증권을 실제로 팔았다는 것, 이게 과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보수 정권 내내 인사가 문제였다. MB는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고 표를 받아갔다. 집권 내내, 경제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인사들이 지독할 정도의 정치주의만 있었던 것 같았다. 박근혜 때는? 괜찮은 인사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능력도 있고, 평도 괜찮은 사람이 가끔 있었다. 그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이상했다. 그 중의 일부는 순실이 인사라고 들었는데, 실제 언론에서 기자들이 취재하는 것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다. 돈을 받고 한 건지, 친구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친구를 앉힌 건지, 아마 언론의 시각 뒤에서 벌어진 일들은 영원히 역사로 묻힐 것 같다. 별 대단한 기관의 엄청난 인사도 아니니까, 역사 책에도 한 줄 기록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하여간 알려졌으면 대형 참사가 될만한 일들이 그냥 묻히는 것을 보았다.

 

그거야 그렇다 치자. 일상적이거나 근본에 해당하는 일들이 그 동안 어떻게 되었을까? 대표적인 사건이 미세먼지 대응이다. 내가 늘상 미세먼지만 보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피엠텐이라는 단어를 들고 와서 저자로 데뷔했다. 초기에 보수 쪽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취했던 입장은, 중국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 계절별 자료 같은 걸로, 결국 해봐야 소용 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있자, 이런 게 보수 정권 내의 기본 기류였다. 대기에 기저 효과라는 것이 존재하니까, 중국 것은 중국 것대로 외교적으로 푼다고 하더라도 기저에 해당하는 것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었는데, 보수 정권은 그냥 뭉갰다. 결국 중국이 자기들이 견디다 못해서 고강도의 도시 대기정책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중국은 그냥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니까 아무 것도 아니다, 임시방편이다, 요런 얘기들을 했다. 중국이 그것만 한 것은 아니고, 전통적인 가정 난방 방식인 석탄 난방을 줄이고 천연가스로 전환하는 노력을 했다. 몇 년 후면 중국 도시들의 미세먼지 수치가 한국을 역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들도 나온다. 보수 정권 9, 집권세력의 기조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는 것이, 뭔가 하는 것보다 더 강했다. 주인 없는 나라 같았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뭔가 하는 방식과 같았다. 그게 오늘의 현실이다.

 

쓰레기, 배출 문제는 더 심각하다. 결국 중국에서 한국산 폐비닐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문제는 좀 더 기원이 깊다. 지금의 수도권 매립지를 소위 sanitary land-fill, 위생 매립지로 조성하겠다고 하는 초기 논의 과정에서부터 설계가 좀 엇나갔다. 침출수 문제가 불거지면서 매립을 하고, 나중에 메탄 가스로 재수거하는 그런 장기적 관리계획이 아니라 너무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갔다. 지금 하늘공원이 있던 난지도 매립장은, 옛날에 매립했지만 메탄 가스 재활용을 한다. 모든 것을 다 분리시키는 것이 과연 옳았는가? 이런 것은 중장기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질문이기는 하다. 어쨌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원칙대로 하면, 매립할 것은 매립하고, 재활용할 것은 재활용하고, 그렇게 하면 된다. 그리고 최대한 가정과 산업에서의 배출량을 줄이고. 그건 교과서인데, 그렇게 안했다. 민간 위탁하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폐기물 문제를 이제는 남의 일 보듯이 한다. 그렇지만 이 지경일 줄은, 나도 놀랐다. 뭔가 우리가 처리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가정용 폐기물은 중국에 팔고, 산업용 폐기물은 남해 바다에 던졌다. 그래서 해양오염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해양 투기를 멈추게 되었다. 이제 어쩌지? 나머지는 중국에 보냈다. 중국이 안 받아 준단다. 이제 어쩌지? 우리나라는 민간에서 쓰레기 분리수거 참여도 등 각종 지표는 거의 세계 최고급이다. 만약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홍보를 늘리고 시민들의 참여와 협조를 더 구할 수 있다. 그냥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그냥 눙깠다’. 이 정도면 더 많은 분량을 태우는 방법 밖에 없다. 다이옥신 등 그 유명한 환경 호르몬 문제가 눈앞에 불거질 것이다. 보수 시절의 역대 환경부 장관들, 도대체 뭘 했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4대강이 경제적이라는 둥,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둥, 이 딴 소리에 동의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았다.

 

문제는 지금 심각하다. 지금이라도 전체적으로 폐기물에 대한 밑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다시 한 번 고민할 때이다. 지금까지야 보수 정권이라서 그랬다 치고, 앞으로는?

 

여기서부터가 통치 행위다. 지난 일들을 들추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쟤 잘못했어요, 쟤 나쁜 사람이예요, 이런 일러주기는 비교적 쉽다.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 쉽지 않다. 지금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여러 분야를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도대체 보수 10, 그들은 뭘 한 거야? 우리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나 쓰레기,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이 어느 정도 돌아갈 정도의 시스템도 안 만들었다. 박근혜 집권 초기, 한국의 보수들이 영구 집권을 꿈꿨었다. 그렇게 자기들의 나라라고 생각을 했으면, 주인 의식을 가지고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방법을 도모했어야 할 것 아닌가? 이건, 여기저기서 해먹을 생각만 했지, 도무지 통치자로서 뭔가 노력했다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도서관, 이런 기본에 해당하는 것들도 더 손대기 어려울 정동이 엉망이 되었다. 심지어 주식 발행과 관리까지,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을 정도다. 도대체 그들은 그 10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 중국의 대기질 조건이 한국을 역전하고, 중국이 폐기물 안 받아준다고 하니까 국가적 대란이 날 지경이고. 뭐야? 기생충이야? 자기네 나라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자기네가, 그게 기본적 원칙이다. 그 정도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놓고, 뭘 했느냐?

 

정치는 눈에 보인다. 바로바로 보인다. 반응도 즉각적이고, 대응도 즉각적이다. 경제는 눈에 잘 안 보인다. 생활경제는 더더군다나 잘 안 보인다. 이런 걸 차분히 개선하면서 장기적 시스템을 갖추는 정권이 유능한 정권이다. 보수 10, 그들은 정치만 했다. 그리고 부패했다. 그게 지금 우리가 보는 이 난장판이다. 안 보이는 걸 잘 하는 것, 그게 진짜 실력이다. 그리고 그 체질이 튼튼해지는 것, 그게 선진국이다. 환경 문제에서 한국과 중국은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나라였다. 지금 이게 뭐냐? 중국 탓만 10년 동안 했는데, 진짜로 이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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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가려고 한 것은 아닌데,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가 정족산사고를 들르게 되었다. 뭔가, 잠시 느껴지는 게 있었다...)

 

1.

5, 7, 두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을 옮기고 나서, 적응을 잘 못한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전에 있던 어린이집이 워낙 좋았다. 아침마다 몇 시에 데리러 올 건지, 더 일찍 올 수는 없는지, 아이의 관심은 오로지 하원 시간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아침에 어린이집 안 간다고 운다. 방법이 없다. 오후에 길이 막혀서 약간이라도 늦으면 아이는 울고 있다. 담임 선생님이 나한테 막 뭐라 뭐라 한다. 내가 이렇게 혼이 날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질른 건가, 가끔 황망하기도 하다. 어쨌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여행 다니고. 마침 봄도 오고 해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더 많이 여행을 갈 생각이다.

 

집에서 가깝고, 익숙한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 일부러 가려고 한 것은 아닌데, 전등사가 지켜온 정족산사고를 보게 되었다. 작년 11월에 애달 데리고 갔다가 전주사고를 본 적이 있다. 아련한 생각들이 난다. 여기 오기 전 들렀던 강화문학관에서 팔만대장경 경판이 머리 속에서 겹쳐진다. 책이란 게 뭘까?

 

2.

한국에서 책은 위기다. 사회과학도 위기고, 그림책도 위기고, 심지어는 아이들 보는 동화책도 위기다. 386들이 부모가 되면서 한동안 동화책의 전성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다 옛날 얘기이거나, 기대가 너무 많아서 생겨난 신화 같은 얘기다.

 

하루걸러 들려오는 얘기들이, 누가 누가 책을 더 이상 안 쓰기로 했다, 누가 그냥 취직했다. 그런 얘기들이다. 이러다가 정말 작가 중에서 굶어 죽는 사람 나오겠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전업작가들이 맞게 된 최대의 위기 국면이다.

 

사실 나도 책을 계속 써야하는지, 2년 전부터 고민을 했다. 내가 처음 나왔을 때, 출판사 MD들이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라는 얘기를 하고는 했다. 여전히 사회과학 전업작가라는 이름을 들을 정도이기는 한데, ‘가난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주어야 한다. 수식어 하나를 더 단다면 강연 안하는정도 될 것 같다. 강연을 아예 안하지는 않는데, 고등학교나 시민단체 같은 데에서 부탁 오는 것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해주는 정도다. 게다가 나는 돈 받고 강연 듣는, 소위 유료강연은 안 한다. 책을 사면서 돈을 낸 건데, 무슨 돈을 또 받아, 그런 생각이 강하다.

 

작년 말에, 언제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계속 책을 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다 반대했다. 반대의 의미는 명확했다. 이게 돈이 안된다, 애들 둘을 어떻게 키우려고 하냐? 무책임하게

 

솔직히 애들 키울 생활비까지 걱정하면서 살아야하는, 그런 정도는 아니다. 그냥 먹고 살만은 하다. 벤츠나 그런 거 사야겠다고 갑자기 정신이 해까닥하는 경우만 아니면, 별 걱정은 없다. 지금처럼 아내의 모닝 가끔 얻어 타면서 살면, 별 걱정은 없다. 어쨌든 계속해서 책을 잘 쓰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해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친구 한 명은, 당장 벤츠를 사라고 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거라고. 벤츠도 사고, 골프도 치고, 에 또 뭐 그런 그런 것도 다 하면 지금처럼 벌어서는 택도 없다. 그래서 좀 남자로서, 어른으로서, 욕망이라는 것을 가지라고 한다. 그게 성공이라고. 그래서 벤츠를 사면 결국 벤츠만큼 돈을 벌게된다는, 별 말도 안되는 경제 강의를 내 앞에서친구야, 미안한데, 내가 경제학 박사 20년차다. 나는 머리에 총맞았냐고 그랬다. 내가 총맞았냐, 벤츠를 타게. 지금 행복한데, 불확실한 먼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행복을 포기할 것인가! 총 맞았거나, 미친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부모가 돈 벼락을 주거나, 하늘이 돈 벼락을 내려도 나는 그렇게는 안 살 것 같다. 그 돈이면 세상을 위해서 얼마나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많은데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책을 쓰기로 작년 말에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목표는 딱 우리 집 생활비만큼. 목표는 그런데, 좀 안 맞아도 별 상관 없다. 내 마음이 그렇다. 한국에 처음 등장한 사회과학 전업작가로서, 그렇게 살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걸로 족하다. 이 얘기도 크게 하지 어려운 게, 주변의 저자나 작가들의 삶이 진짜로 너무너무 힘들다. 최선을 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그런 얘기를 들을 때, 힘들고 미안하다. 세상이 원래 그래, 배울 만큼 배우고 할 만큼 한 40, 50줄의 작가들이 이런 얘기를 서로 위로라고 하는 게 정상적으로 보이는가? 뭔가 이상한 것이다. 꼭 대학 입시 앞두고 점수가 잘 안 나올 때, 대학 졸업하고 취업 잘 안될 때 청소년과 청년들이 하는 것 같은 얘기를, 나름 스타급 작가들이 지금 서로 위로라고 하고 있다. 다른 얘기를 하기는, 너무 서로 미안하다. 세상이 원래 그래, 그런 얘기가 참 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다르게 할 수 있는 얘기가 별로 없다.

 

3.

책은 한 사람이 모을 수 있는 지식을 최대한도로 담아내는 최고의 매체다. 물론 누구나 그 정도는 인정한다. 그래서 책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가 힘 있는 사회다.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나라들 대부분, 그 시절에 자신들의 출판문화도 전성기였다.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지식이나 경험이 책으로 나올 수 있는 나라, 그 나라가 잘 사는 나라다. 잘 살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렇게 책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지식을 모아 나가다 보니까 잘 사는 나라가 된 것 아닐까 싶다.

 

책은 전세계적으로 약해지는 흐름에 놓여있기는 하다.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건 비정상적이다. 원래 그래, 그게 아니라, 우리만 그래그게 좀 더 정확한 진단일 것 같다.

 

4.

태풍이라는 은유를 요즘 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태풍의 눈이라는 얘기를 참 좋아했다. 영화 <퍼펙트 스톰>에 가장 슬픈 태풍의 눈 얘기가 나온다. 즐거운 버전의 얘기도 있다. 진짜로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작 그걸 만드는 사람들만 잘 모르는 경우. 태풍의 눈이라서 그렇다고들 한다.

 

요즘은 태풍의 씨앗 혹은 태풍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런 얘기를 가끔 생각한다. 북태평양 어느 한적한 섬 앞바다, 그곳에서 태풍의 씨앗이 만들어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피어 오르는 물기운 중의 하나가 결국 태풍이 된다. 어느 씨앗이 태풍이 되었는지, 언제 되었는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태풍이 태풍으로서 형성이 되고 자리를 잡아야 그 때부터 위성 관측이 시작된다. 친구 중에 태풍이 오는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인 사람이 있다. 작은 태풍이 거대한 태풍으로 자라날 때 즐거워한다. 태풍의 피해자들이 보면 미친 놈이기는 할텐데, 위성으로 태풍 관찰하는 게 거의 유일한 취미다. 그런 사람도 태풍의 씨앗은 모른다.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송과 책을 비교해보자. 방송은 태풍을 쫓아다니는 것이다. 태풍이나 태풍급, 그 정도가 된 것들 것 쫓아다니는 행위를 우리는 방송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방송 하는 사람들의 머리는 이미 다 된 것들 혹은 터지기 직전의 마지막 몽우리, 이런 것을 찾는데 특화되어 있다. 태풍이 아닌 것은 손도 대지 않는다. 그걸 옆에서 보면, 좀 웃기기는 하다. 자기는 태풍이 아닌데, 태풍들만 만나다 보니, 자기가 태풍급이라고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좀 험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방송에서 보는 것들은, 그 세계에서는 태풍이 된 사람들을 본다. 그래서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노래가 되는 것이다.

 

책은 방송과는 다르다.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책을 쓰고, 출간하는 과정, 이것들은 북태평양 어느 곳에서 태풍의 싹을 만드는 일과 같다. 너절하고, 전혀 멋진 일이 아니다. 다만 그 후에 생겨날 태풍을 생각하면서 고단하고 지난한 과정을 참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태풍의 싹이 전부 태풍으로 자라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상상 없이는, 춥고 배고프고 고단한 과정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태풍의 싹의 일부가, 당대 혹은 후대에라도 태풍이 된다. 보람 있는 일이다.

 

태풍을 보는 눈과 태풍의 싹을 만드는 눈은 다르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방송은 트렌드를 쫓아간다. 책은 트렌드를 만든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여전히 책을 중요한 매체로 생각하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 아닌가?

 

5.

지역의 소소한 이야기, 지역색과 향토색 가득한 이야기, 이런 건 요즘 책이 안된다. 로컬의 문제,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평생을 사진만 찍은 사진 전문가가 알게 된 세상에 대한 지혜, 이런 것도 책이 안된다. 책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보려고 하는 사람이 적어서 그렇다. 쉽게 버리기 어려운 얘기들이 요즘에는 책이 안된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게 된 사회, 그 사회가 진짜로 강한 사회다. 우리에게는 더 소소하고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한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런 지식들이 사회화되기에는 너무 체질이 허약해져 버렸다. 그러면 잘 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구한말에 한국에 온 선교사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한국에 관한 책을 쓰고 그런 것들이 발간되었다. 우리는 소중한 자료라고 한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한국인이 외국에 와서 보고 느낀 것, 그런 것이 지금 우리에게서 출간될 수 있을까? 꼭 하멜 표류기 같인 희귀성이 있는 것 아니더라도 나름 그 나라에서 발간이 되고, 우리에게 소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는 지금 태풍만 찾아 헤맨다. 그러다 길을 잃는다. 다들 미래학만 하려고 한다. 정부나 민간이나. 현재를 잃어버린 나라가 미래만 찾는다. 앞길이 어두울 때 종교만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책을 계속해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뭔가 만드는 것, 얘기든 내용이든 논리든, 그런 일을 좋아했다. 태풍이 되든 태풍이 되지 않든, 태풍의 씨앗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은 내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것이 태풍이 되든 되지 않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태풍의 씨앗을 만드는 일, 그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보람된 일 중의 하나다.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최근에 느낀 게 있다.

 

책은 정직해야 하고, 내용도 정직해야 한다. 그래야 태풍이 되지 않더라도 미풍이라도 된다. 그리고 그 미풍이라도 필요했던 사람의 눈에 전달될 수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책 만들 때 사용하는 기법 같은 것들을 될 수 있으면 빼고, 담백하게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태풍이 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나는 태풍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내 일을 한다.

 

우리는 세계사에서 드물게 실록을 만들고, 그것을 죽어라고 보존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게 뭐 팔리겠냐, 우리의 선조들이 순실이나 근혜처럼 국가를 가볍게 생각했다면 우리는 벌써 망했을 것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 목숨 걸고 팔만대장경을 찍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게 우리의 DNA 안에 흐를 것 같다.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고, 삶을 바꾸는 일은 아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풍이 여러 개 필요하다. 그 태풍의 눈을 만드는 사람들의 삶은 순결하고, 정직하다. 지금 이 시대에 아직도 책을 쓴다고 마음을 먹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존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매체로서의 책이 망하는 속도가 한국에서는 너무 빠르다. 벌써. 나의 경험담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일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요즘 내 책들이 예전 책보다 훨씬 공도 많이 들어가고, 품도 많이 들어간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정성 들여 책 내용을 구상하고, 고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보다 훨씬 잘 팔렸고, 영향력도 높았다. 지금은, 예전의 3~4권 만들었을 힘을 책 하나에 쏟는다. 그래도 버티기 힘들다. 할 수 없다. 시대가 변했다.

 

예전에는 책의 의미에 대해서 지금처럼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요즘 생각해보니까, 지금 책을 만드는 것은 태풍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태풍의 눈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인, 이제 태풍은 아니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행위가 태풍의 눈 같은 것은 아니다. 조용하고, 계속 조용하고, 앞으로도 조용할 것이다. 전혀 다른 시선과 전혀 다른 각오로, 태풍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책 만드는 행위에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 일은 혼자 하면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자신의 최선을 담아서 책을 내기 시작하는 것, 그렇게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는 변화에서 의미가 생긴다. 나는 아직도 거대한 태풍을 기다린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푸른 하늘이 나타난다. 나는 아직도 그런 맑은 하늘에 대한 꿈을 거두지 않았다.

 

 

(강화문학관에 갔다가 팔만대장경 장판 하나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만들어졌다고, 그냥 잠시 스쳐지나갔듯이 보기만 했었다. 진짜로 만져볼 수도 있고, 먹물로 종이에 찍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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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전등사에서. 마치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할 것 같은 하루를 보냈다. 매일, 매 순간이 늘 즐거울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렇지만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처럼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삶에 가장 행복한 순간, 그 순간인 지금 그리고 바로 오늘, 그렇게 살아가기로 한다.

 

자꾸 신경질 내고 심통내봐야, 좋아질 것도 별로 없다.

 

6학년 때 아버지하고 전등사를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기분은 별로였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이후로 전등사 안으로 들어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매일매일,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이들과 떠나는 긴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원래는 아내는 그냥 집에서 좀 쉬고, 나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려고 했었다. 이번에는 아내도 같이 가고 싶다고.

 

일단은 내가 가보지 않은 시와 군, 기초 단위의 지역들을 좀 더 돌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잘 몰랐던 느낌들을 좀 잡아보고 싶은 약간의 욕심도.

 

그렇게 알아서 뭐에다 쓸 것인가? 목적은 없다. 그냥 안 가본데 가보는... 그러다보면 나도 뭔가 느껴지는 게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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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전등사. 애들하고 있는 게 늘 즐겁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많이 즐겁다. 큰 애가 어린이집 옮긴 이후로 계속 기분이 안 좋고, 우울해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놀아주려고 노력 중이다. 내년에는 학교 들어간다. 당분간, 어딘가 같이 많이 돌아다니려고 한다. 결국 맺는 말에서는 뺐지만, 50대 에세이를 쓰고 난 나의 결론이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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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나는 출판사를 고르지는 않고 에디터를 고르는 편이다. 같이 호흡 맞춰서 일하는 에디터가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낸다. 글쎄... 출판사에 따른 변화는 크지 않고, 에디터와 호흡이 더 큰 편이다. 그래서 내 책 손 본 에디터들과는 굉장히 오랫동안 알고 지낸다. 사장 거치지 않고 직접 일하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는데, 길게 보면 좋은 점이 더 많다.

 

<아날로그 사랑법>이 요즘도 팬레터가 종종 오는 책이다. 에디터가 나중에 회사를 옮기면서 한동안 연락 못했다. 간만에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더니, 그 사이 쌍둥이 엄마가 되었다. 두 달 되었단다. 오매나야... 견디다 못해서 언니 도움을 좀 받으려고 오늘 이사하는 날이랜다. 애 둘 키우면, 둘이 키우면 둘이 뻗고, 셋이 키우면 셋이 뻗고, 넷이 보면 한 명이 그래도 좀 쉰다. 엄마, 아빠, 두 명이 감당할 노동량을 넘어선다. 막 웃는다. 그렇단다.

 

간만에 책 얘기도 좀 했다. 나는 몰랐는데, <아날로그 사랑법>이 좋은 에세이로 선정되어서 정부 지원도 좀 받고 그랬었단다. 정부 욕 잔뜩 해놨었는데. 예전에 공지영 작가님이 나에게 <봉순이 언니> 얘기를 몇 번 하신 적이 있다. 내가 좀 헤맬 때였다. 써놓고 잊어버린 책이었는데, 그 책이 나중에 다시 살아났다고. 꼭 그런 것까지는 아니지만, 쓸 때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책과 실제 팔린 책 사이에는 좀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영혼 한 부분을 떼어넣는다고 생각하면, 책들이 다 의미가 생기기 마련이다.

 

간만에 부인 출근이랑 애들 어린이집까지 다 챙겨보내고 잠시 커피 한 잔 마시고 예전 지인이랑 옛날 얘기 좀 했다. 오후에는 식구들 다 데리고 바닷가로 여행 간다. 노는 게 남는 거다, 인생의 철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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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힘든 시대, 광고라도 힘들지 않게 하면 좋겠다, '피식 광고' 대세. 뭔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내 삶에는 피식하고 웃을 요소가 너무 없다. 아고고, 죽겠다, 곡소리 날 일들만 많다. 요즘 4시 반에 칼같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면 큰 애가 울고 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뭐라 뭐라, 막 뭐라 한다. 내가 이렇게 혼날 일을 했나 싶다. 여의도에서 죽어라고 밟고 왔구만, 길이 겁나 막혔서 잠깐 늦었을 뿐인데.

 

2.

 

 

애들 어린이집 끝나고 큰 애가 너무 우울해해서, 비 오는 날 빗길을 뚫고 경찰 박물관에 갔다. 1년만에 왔나? 여기가 너무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잠시 아이들 기분 업 시키는 데에는 효과가 있다. 요즘은 4시 반에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고 6시 반 아내가 올 때까지, 어디 잠깐씩 데리고 가기도 한다. 그것도 몇 주째 하고 나니까, 갈 데가 별로 없다. 퇴근 시간이라, 길도 엄청나게 막힌다. 오늘은 비까지 왔다.

 

 

 

 

3.

저녁 먹고 나서 짐정리 먼저 한다고 싸우다가 큰 애랑 둘째랑 전부 혼났다. 핵핵.

그리고 이빨 닦다가 둘째가 큰 애한테 반말 하고, 물 뿜고... 둘째는 손도 들고, 무릎도 꿇었다. 울었다.

아이고, 하루가 길다. 이제 잠 들었다. 나는 온몸이 안아픈 데가 없는 것 같다.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싶다.

 

 

하는 일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하루가 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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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쓸 때에는, 이 책이 나를 바꾸는 책이 될 줄 몰랐다. 아마 내 모든 책 중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정말로 많은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아이가 태어났고,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이런 기적적인 일을 이 책이 만들게 될지, 쓰는 중에는 정말 몰랐다. 여전히 팬레터가 꾸준히 오는 책이기도 하다. 인생이 바뀌었다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연락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날로그 사랑법>은 내가 사랑하는 책이 되었다...)

 

책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써보라는 요청은 종종 받는다. 근데 이게 두 가지 이유로 쓸 수가 없다. 일단 나는 책 쓰는 법을 잘 모른다. 매번 쓰는 방식이 다르고, 매번 접근 방식도 다르다. 주제에 따라서도 변하고, 에디터에 따라서도 변한다. 심지어 출판사에 따라서도 변한다. 어떻게 쓰는 건지, 알고 쓰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그때 생기는 벽들을 넘어간다. 벽의 종류에 따라서 넘어가는 법도 매번 바뀐다. 그리고 못 넘어간 경우도 많다. 그때는 좀 작업을 해 놓았어도 출간을 포기한다.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그리고 좀 더 결정적으로, 나는 책 파는 법을 모른다. 여러가지로 주변 사람들이 도움을 해준다. 나도 그런 도움을 잘 참고해서 잘 해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그걸 내가 알면 벌써 책 파는 법’, 대박 학원을 내서 떼돈 벌었을 것 같다. 그런 걸 안하는 건, 내가 엄청 양심적이거나 돈 버는 걸 싫어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렇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그런 재주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면절대로 그건 책으로 내지 않고 학원을 낼 거다. 그것도 돈 아주 많이 받고. 그렇지만 아마 나 살아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책 파는 법을 내가 잘 터득하면 나만 잘 먹고 살지,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나? (아침에 해주는 증권 방송 볼 때마다 느끼는 일이다. 증권을 그렇게 잘 알면 벌써 떼돈 벌어서 하와이 같은 데 가서 살았을 것 같은데, 이 추운 날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에게 증권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을까? 저 사람이야말로 진짜 박애주의로 깨달은 사람일까?)

 

그래서 나는 아직 책 파는 법은 전혀 모르고, 심지어는 책 쓰는 법도 모른다. 그냥, 매번 어떻게 어떻게 주어진 문제들을 극복할 뿐이다. 새로운 문제는, 또 새로운 방법으로 극복한다. 그리고 종종 실패한다. 그러니 나는 책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쓸 수가 없다. 내가 책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쓰면, 100% ‘바담풍이다. 나는 이렇게 잘 못했는데, 여러분은 잘 해보세요루소가 도망다닐 때 음악선생님을 했다는 얘기와 같다. 그걸 구경 온 진짜 음악 선생님이, 소질이 엿보이니까 정말로 음악 할 생각 있으면 자기한테 연락하시라고루소가 엄청 쪽팔려했다는 후일담이. 근대를 만든, 바로 그 루소에 대한 얘기다.

 

이런 기타 등등의 이유로, 맨 번 책 쓰는 것에 대한 책을 써보라고 하면 거절했다. 내가 지금 쓰면, 사기꾼이다. 알면 너부터 잘 해봐, 딱 그런 구조에 걸려 있다. 게다가 한 권 한 권 책 내는 게, 아직도 너무 힘들다. 그리고 갈수록 더 힘들다. 뭘 잘 모르던 시절, 마침 그때는 출판 시장이 괜찮았다. 지금처럼 공을 안 들여도 잘 팔렸다. 지금은, 한 권 한 권이 다 너무 힘들다. 진을 뽑을 정도로 힘을 들여서, 겨우 체면치례 할 정도가 된다. 실력이 내가 줄었나? 실력이 주는 경우는 없다. 분명 더 늘었고, 더 나아졌는데, 옛날만큼 하기가 너무 힘들다. 분명히 내가 쓰는 방법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를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더 힘들다.

 

그래도 책 쓰기 폴더를 하나 열었다. 계기는 간단하다.

 

번역가 박산호 선생이 요즘 사진을 배우신다. 같이 배우는 사람이 찍어준 사진을 흑백으로 전환해서 올려놓으셨다. 사진은 화사하다.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쪽팔림을 감수하고 얼굴을 가끔은 들이미는 것, 그게 책 쓰기의 시작과 비슷하다. 싫어도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한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그게 출발이다.

 

문득내가 가지게 된 약간의 노하우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쓰는 법까지는 아니고, 굼뱅이도 기는 재주가 있어서, 하다보니까 길 수 있게 된 것.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메모를 해보기로 했다. 난 뭘 잘 모르기도 하지만, 까먹는 것도 빛의 속도로 까먹는다. 3년 정도 그런 메모를 모으면, 그 때쯤은 지금보다 책 쓰는 법이나 책 파는 법을 조금은 더 알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진짜로 책 쓰는 법이라는 책을 낼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할 일이 없는 오후, 잠시 쓸데없는 짓을 좀 해본다.

 

요령1. 쓸 데 없는 글을 쓸 때가 가장 생산적이다.

 

쓸 데 없는 글들을 되도록 많이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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