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에세이, 초고는 끝났다. 제목은 '달달한 50대'로 하기로 했다. 경합 중인 부제목이 '개수작과의 결별', '우리는 이제 21세기로 간다' 그리고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하여', 요렇게 세 개가 있다. 셋 다 의미있는 부제이기는 하다. 감정적으로는 개수작과의 결별이 맞다. 논리적으르는 21세기로 간다가 맞고, 또 정직하다. 그렇지만 여운은 '나와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하여'가 길다. 크게 잘 팔린 책은 아니지만 '아날로그 사랑법'이 중간에 있던 포토 에세이집이다. 거기에서 다시 이어가는 데에도 사랑 얘기가 더 나은 것 같고. 이 세 가지를 놓고 마지막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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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에필로그도 마쳤다.

 

나는 나를 사랑할까? 이런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이제 50, 나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지금 잘못 생각하면 다음 기회는 60, 더 이상 무엇인가를 고민해봐야 의미가 없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제 50, 나의 최고 재산은 역시 시간이다. 경제학적으로 가장 의미가 있는 자산의 우선 순위를 매기는 방법이 있다. 재능은 이제 나에게 약점이 되었다. 50, 늙어가고, 가지고 있던 능력과 재능도 줄어드는 시기다. 재산, 내 인생의 특징은 재산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불쌍해진다. 상대적으로 나에게 가장 많은 자산적 요소는 시간이다. 시간은 많다. 대부분의 50대가 나와 비슷할 것이다. 그 시간을 잘 쓰기 위해서, 나는 스물두 개의 글을 썼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내 친구들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고, 우리가 같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무엇인지, 나름 곰곰이 생각해봤다. 10년 후, 지금을 회상하면서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나도 나를 사랑하고, 내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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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마지막의 마지막 글이다. 형식은, 글짓기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백범 일지 중)

아주 유명한 글구다. 이걸 놓고 진짜 간만에 백일장 나간 것 같은 기분으로 글짓기 하는 게 에세이집의 마지막 글이다. 여기 필요한 썰래발들은 앞에 털어놓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글짓기에서 장원을 했다. 6학년 때, 이게 참. 뭔가 상을 많이 탔는데, 그게 국정원에서 후원한 거라는 건 나중에. 반공 글짓기를 너무 잘 해서, 국정원에서 내는 책에 들어갔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박정희 시절이다. 하여간 그 시절 이후로, 줄구장창, 진짜로 글 많이 썼다. 여기다 쓰고, 저기다 쓰고. 내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글 많이 쓴 걸로는 거의 태평양급.

글의 구성이라는 것은 6학년 때 겨우 생각을 해보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전에는, 그딴 거 없었고, 대학 시절에는 형식 실험을 진짜 많이 했다. 익숙한 글을 또 쓰는 거, 재미 없었다. 하다하다, 왼손으로 글 쓰기를 시도했다. 그러면, 글 스타일이 또 변한다. 글 많이 쓸 수도 없고, 빨리 쓸 수도 없으니, 좀 담백해진다. 오른손으로 쓰면? 거의 지랄맞은 소리들을 늘어놓게 된다.

자, 이제 마지막 글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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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 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백범 일지 중)

 

 

50대 에세이의 마지막 글을 써야 한다. 이 자리에 백범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일종의 패로디를 쓰기로 생각한 것은, 처음 50대 에세이를 구상하던 초기 단계였다.

 

내가 특별히 백범을 좋아해서? 별로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잘 모른다. 그냥, 남들 아는 정도. 특별히 더 많이 알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좋아하거나 흠모하거나, 그렇지도 않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열성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은.

 

이상하게 김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좀 있었다. 테러리스트라서 싫다는 의견이 제일 많았고, 과대포장되었다는 의견이 일부. 그리고 무능해서 싫다는 것도. 다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백범 일지가 과연 김구가 쓴 것이겠냐? , 이광수가 적당히 넣을 거 넣고 뺄 거 뺀, 춘원의 작품일 뿐이라는... 그럼 다 개구라?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여간 이 시점에 내가 백범 일지를 다시 읽고 뭔가 생각을 다시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문화가 강성한 나라이면 좋겠다는 백범의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 21세기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의 글들은 20세기적이거나, 20세기적으로 해석되었다. 대부분의 냉전의 산물이거나 독재 시대의 산물이다. 혹은 동구가 붕괴하기 이전에 팽팽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을 수용하던 생각 역시, 군인들과의 싸움 속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한국의 역사는 언제 결정적으로 페이지가 넘어갔을까?

 

아주 주관적으로만 생각해보면, 최순실이 이게 민주주의냐고 소리칠 때 청소부 아줌마가 "염병하네"라고 외치던 날, 우리는 이제 다른 시대로 넘어온 것 같다. 최순실에게 당당하게 염병하네, 과연 누가 외칠 수 있었겠나?

 

이제 한국의 역사는 그 뒤로는 가지 않을 것 같다. 뒤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 꼭 좋아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염병하네", 그 상태에서 아주 오랜 기간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50대 에세이를 굳이 쓰기로 마음 먹고, 그것도 아주 공개적인 형태로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염병하네"가 최순실만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는 청소 아줌마 뒤로 싹 숨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저 거침없는 염병하네, 그건 나를 향한 것은 아마 아닐 것이야...

 

그래서, 염병하네...

 

내 안에 있는 20세기적인 것들을 한 번쯤, 나도 탈탈 털어내고 싶었다. 그게 50대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진짜 배경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면?

 

마치, 백범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쓴 것처럼, 나도 내 생각을 정리해서 하나를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모두 이런 글을 한 번쯤은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은?

 

아니, 나는 원하는 건 따로 없고, 그저... 이런 것이 개수작이다.

 

개수작과의 결별을 위해서는, 고통스럽고 별로 안 쓰고 싶고, 그리고 남들이 싫어할지 몰라도,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글을 꼭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 하면? 나머지 50년의 삶이 다시 개수작이 될 수도 있다. 그저 하던 대로... 내가 제일 잘 나가, 아니 잘 나갔어, 이런 거적데기 같은 소리나 하면서,

 

그게 이 김구 패로디를 써보고 싶은 이유다.

 

그렇지만 막상 쓸려니까, 역시 무섭다. 그래서 계속 시간을 끌고, 또 시간을 끈다. 백범 일지를 다시 며칠에 걸쳐서 읽은 것, 이런 게 기본적으로는 개수작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었나, 그랬다. 당연히 기억 잘 안 나지...

 

그래서 다시 읽어보기는 해야 할 것 같은. 형식적으로는 맞는 얘기인데, 요런 게 개수작이다. 바로 써도 되는 데, 그래도 시간을 좀 끌고, 도망가고 싶은.

 

그러니까 지금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것 그리고 그 배경, 그런 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도, 역시 개수작이다.

 

그리고 지금은 오후 1시 반,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몸에서 나는 신호에 뇌가 열심히 반응하는 것, 이런 것도 개수작이다. 생각은 물론이고, 내 몸도 알아서 개수작을 한다.

 

그래서 이 글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언제 이 개수작이 끝나고 글을 쓰기 시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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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스무 번째 글 끝냈다. 사실상 전체의 결론이다. a4 100장을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119장에서 끝났다. 뒤에 하나 덧붙이는 글은 김구 패로디를 해볼려고. 어떤 형식으로 할지는 생각해둔 게 없는데, 어떤 내용으로 할지는 처음부터 정해둔 것이 있고,

50대 에세이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내가 이렇게 50대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줄 몰랐다. 준비해 둔 얘기를 10개도 넘게 뺐다. 몇 개는 여기저기 쑤셔넣었는데, 도저히 쑤셔넣을 수 없는 것들은 다음 기회에.

마지막 글은 '인생은 비즈니스가 아니다'와 '바쁘면 지는 거다', 두 개의 제목이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다. 결국은 미래 가치에 관한 얘기이고 김구 패로디와 연결되는, '바쁘면 지는 거다', 이게 마지막 글이 되었다.

김구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남들 아는 것보다 더 아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던 사람들 중에서, 21세기적 가치를 가진 사람의 가장 대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그에 관한 패로디를 써보겠다는 것은, 글을 시작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다.

영화 <대장 김창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래저래 다섯 번 정도 본 것 같다. 왜 망했을까?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도 김구를 한 번 다루어보고 싶어졌다.

하여간 글 하나를 남겨놓고 있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책이 끝났다. 준비 한 것부터 치면 1년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책이 끝나면, 정신적으로 탈진 상태가 된다. 알던 것을 다 꺼집어내고 나니까, 이제 뭐하지? 그런 느낌이 잠시...

다음 에세이집은? 아무 생각 없다. 육아 에세이를 준비할 때에는 벌써 50대 에세이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책 사이에 나눌 것과 넘길 것, 보완 효과를 보일 것, 그런 것들을 좀 염두에 두었다.

이번에는, 그냥 다 털어넣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다음 주제가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 그렇다. 내 삶이, 아이 키우다 보니 그야말로 하루 버티고 또 다른 하루를 맞게 되는 삶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내년에 뭐할지, 나도 전혀 모른다. 아내가 많은 것을 결정하고, 나는 그냥 맞춘다.

내가 결정한 것은, 별 거 없다. 일본어를 배워야겠다... 근데 어디서 어떻게? 모르겠다. 천천히 생각해보고.

요즘은 내가 드물게 속 편한 시기다. 이 어려운 시기에, 나만 혼자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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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열 여덟번째 글 초고 끝냈다.'참으면 암 된다 - 적당주의와 뻔뻐니즘'... 요런 제목이다. 아마 다른 부제를 달았다면, '나는 이청준에게 무엇을 배웠나', 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이지만, 좀 아플 듯한 비판도 포함시켰다. 뺄까 말까,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는데, 넣는 것이 낳을 듯 싶다. 잘 아는 사람을 비판할 때, 여전히 힘들다. 빼는 거야 마지막 순간에 빼도 되니까, 일단은 넣어놓고... 마지막 문단은, 적당하게 마무리지었다.

"50대, 나는 더욱 적당히 살아갈 것이다. 사랑도 적당히, 분노도 적당히, 하는 일도 적당히, 나는 적당주의가 체질이다. 내가 너무 열심히 살려고 하면 내 안의 암세포들도 겁나게 열심히 살려고 할 것이다. 어이, 암세포 친구, 대충대충 하지? 그들에게 얘기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너무 완벽하게 감정을 조절하고, 싫은 소리도 안 하고 심통도 안 하고, 그렇게는 안 하려고 한다. 너무 참으면, 암 된다. 이제 그냥 참으면서 속으로 삭히는 것도 적당히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주변의 동료들을 위해서, 심통은 딱 5분만, 그 이상 길게 끌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리고 일년에 딱 몇 번, 나는 나를 믿는다고 말하는 뻔뻔한 짓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뻔뻐니즘이다. 그 뻔뻔한 짓을 안 해도 되는 순간, 그게 나의 경제활동이 정지하는 날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 미쳤나, 내가 그렇게 살게. 그것도 늙어서 생기는 집착이다. 적당히 하고, 적당할 때, "이만하면 적당하다", 그렇게 말하고 물러서는 것이 좋은 삶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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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열 일곱번째 글 끝냈다. '기다려도 행복은 오지 않는다'고 제목을 달았다.

"사랑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행복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에 목숨을 걸면, 생명은 늘어난다."

이 글은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내가 쓰지 않는 오글거리는 방식으로 쓰는 게 원래의 목표였다. 역시 오글거린다. 그걸 참는 게 행복이다. 다음 글은, '참으면 암 된다 - 적당주의와 뻔뻐니즘'이라는 제목을 달려고 한다. 이 글은 마지막 문장이 먼저 생각났던 글이다. "마지막 순간에,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뻔뻐니즘이다. 뭔가 만드는 일, 마지막에 나를 믿지 않으면 완성을 할 수가 없다. 물론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믿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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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열 여섯번째 글 끝냈다. 책의 제목이자, 마지막 장인 4장의 제목이자, 이 글의 제목은 '달달한 50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지었다. 권총 자살한 프랑스 총리에 대한 얘기로 글을 시작했다. 확 무겁게 만들고, 그걸 받아서 몇 번을 꺾었다. 50이라는 나이가 그렇다. 친구의 죽음이나 총리의 권총 자살이나, 그냥 삶의 한부분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너, 그러다 진짜 뒤진다... 이 얘기도 그냥 부드럽게 할 수 있다.

"나는 혹시라도 내가 하는 말에 독설이라도 섞여 있을까 봐, 3살 아기에게 생선 가시 발라주듯이 꼼꼼하게 발라내기 시작했다. 뒤돌아서면서 "근데" 하면서 야박하게 한 마디 하는 거, 그 버릇이 제일 고치기 어려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하면서 그냥 씩씩하게 전진하는 것, 한 마디 더 하는 버릇을 겨우겨우 고쳐가는 중이다. 하나마나한 얘기를 꼭 하고야 마는 우리들의 개수작, 이제는 그 개수작과 결별할 시간이다. 아직도 우리는 50년이나 살아야 한다. 이제는 좀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달달한 50대'가 우리들의 새 이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저씨, 꼰데, 386. 86그룹, 다 '알흠답지' 못한 이름들이다. 우리, 같이 좀 살자. 개수작, 사요나라, 아디오스,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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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에세이, 마지막 장인 4장의 글 리스트를 확정했다. 포맷상, 다섯 개씩 넣었는데, 여기는 여섯 개. 줄이고 줄이는데, 너무 아까워서 도저히 빼지 못하는 것들만 살아남았다. 여섯 번째 글은, 당연히 김구 선생 패로디다. 제목만 패로디하고, 문체까지 패로디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섯 개는 먼저 쓰고, 여섯 번째는 김구 선생 자서전을 다시 한 번 꼼꼼이 보고 쓸 생각이다. 너무 어렸을 때 읽어서 느낌이 없다.

4번에 있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남만 가득한 곳으로", 요 얘기는 아주 어려운 얘기가 나올 것 같다. 나는 가능한 한 쉽게 할 생각이지만, 이번에는 노마디즘 얘기를 한 번 할까 싶다.

글 숫자는 하나 늘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좀 짧게 끊어가는 식으로 하려고 한다. 형식 실험도 할 수 있는 한, 좀 해보고...

1. 달달한 50대, 우리들의 새 이름
2. 행복에 복리 이자를 붙이는 법 
3. 참으면 암 된다 - 적당주의와 뻔뻔주의
4.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남만 가득한 곳으로
5. 버킷 리스트는 바께쓰에
6.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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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둘째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 중이다. 어쨌든 둘째도 어린이집을 옮기기는 하나보다. 30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 두 군데를 아침 저녁으로 뛰면서, 진짜로 캑캑. 게다가 옮긴 큰 애는 매일 같이 울어서, 오후 2시에 데리고 왔다. 이 나이에 뭔 짓인가 싶었다. 이제 요번 달로 이 지랄도 끝나나보다. 사실, 멍하다. 아침에 아내 지하철역, 그리고 순서대로 돌아서 두 군데 어린이집. 하루는 정말 일어나기 싫었는데, 그래도 5분만에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지난 주에 보니까 입안이 헐었다.

요즘 오는 전화는 잘 받는다. 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 다들 노니까 좋냐고 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정주부들이 이런 전화 받고 심통이 났을까, 상상이 간다. 바로 앞에 있었으면 소주병으로 머리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성숙한 50대. 그려, 잘 지내.

이 생활도 다음 주로 쫑이다. 어린이집 두 군데를 도는 건 이젠 안 해도 된다. 한 군데만. 둘째가 다시 적응하는 기간이 있어서 한동안 오전에 다시 데리고 오는 지옥의 일정이 있기는 하지만, 시간은 금방 간다. 이젠 곧 봄이다.

연애도 별로 한 적이 없어서 손 잡고 어디 걸어가고, 그런 기억도 거의 없다. 애들 손 잡고 엄청나게 빨빨거리고 다닌다. 둘째 손 잡으면 큰 애가 자기도 손 잡아 달란다. 아빠 가방 들었잖아. 그래도...

어저께, 아내가 큰 애 하원 시켜준다는 얘기를 했었나보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갔는데, 날 보더니 운다. 엄마 안 와? 그래, 그럼 더 있다 와. 핑... 나는 빛의 속도로 다시 돌아나서려는데, 큰 애가 웃는다. 집에 가자... 하여간 일곱 살이긴 하지만, 대가리 핑핑 돈다. 눈치밥도 많이 늘었다.

이렇게 한 달을 지내니까, 예전에는 없던 생각 하나가 생겼다.

내가 살아있구나...

살아있기는 한가보다, 고통이 느껴지는 걸 보니. 그렇게 또 하나의 겨울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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