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기자한테 전화와서 통화하다가, 애 키우는 얘기가 나왔다. 큰 애 보는 아빠 중에서는 최고령일 거라고. 나는 오랫동안 최연소에 익숙해 있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 최고령 기록들을 세우기 시작한다. 나이가 뭔 의미가 있겠냐, 그냥 할 일 없으니까 잠시 웃자고 하는 얘기들이지. 내가 하는 일들을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40대에는 그러지를 못했다. 좀 더 나은 게 있는데 사정상 이렇게 밀려 있는 거라고,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이거라도 할 수 있는 게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자들의 어깨 싸움, 거기에서 한 발, 아니 여러 발 비껴 서 있다. 이제는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멍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지니까. 또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그냥 하루하루, 삶을 보낼 뿐이다. 거기에 좋은 것, 나쁜 것, 그런 건 없다. 산다는 건, 거기서 거기다. 거기에 의미를 찾고, 즐길 것인가, 아닌가, 그런 차이만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아내 출근하고,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멍하고 잠시 있는다. 그래도 밀린 일들이 있다. 다시 컴을 켜고, 뭔가를 한다. 이렇게 살면 억울하지 않느냐고, 가끔 전화해서 염장질 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 나이에 귀향 갔던 사람들보다는 낫지 않느냐, 웃으면서 말한다. 남자들은 너무 높은 곳을 보고 살도록 훈련 받는다. 자기도 불행하고, 주변도 불행하다.

우리는 생활을 음미하는 훈련을 너무 못받았다. 내가 만난 유럽 사람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은 다른 지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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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이 처음 금감원장 인사에 올랐을 때 사람들이 내게 물었었다. 그 때 이렇게 말했다.

 

권혁세 보다는 낫지 않겠냐.”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권혁세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언론형이기는 했지만, 그는 부패하지는 않았다. 그가 어느 날 재경부 수첩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많은 재경부 공무원들이 강남에 사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서울 외곽에 살았다. 그는 드물게, 부패하지는 않은 공무원이다. 그렇지만 그는 금융은 잘 모른다. 세무 전문이었다. 강직한 세무 공무원인 것은 맞지만, 금융은 자기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가 MB 말기 금감원장이 되었다. 기가 찼다. 그리고 은행장들 점심 때 불러서 돌아가면서 밥 먹으면서 배드뱅크만들어야 한다고 그러고 다녔다. 진짜 권혁세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지가 배드뱅크를 뭔 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 <모피아>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는 원형이 있는 경우도 없고, 없는 경우도 없다. 모피아 중의 한 명의 원형이 권혁세다. 그만큼 내가 잘 알고, 오래 본 사람도 없어서. 더 나쁜 놈도 좀 더 아는데, 가까이 근무한 적이 없거나 경험한 적이 없어서 속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금감원장은 나쁜 놈과 모르는 놈, 이 두 스타일이 돌아가면서 했다. 너무 속내를 잘 알고 나쁜 짓 하는 넘 아니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멍하니 있는 넘, 이 두 스타일이 청와대가 모피아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김기식이 금융에 정통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최소한 권혁세보다는 낫지 않겠냐? 이게 내 생각이다.

 

인간 김기식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단상이 흐른다. 나는 97년부터 보았다. IMF 경제 위기 전에 참여사회연구소에 연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진짜 엣날 일이다. 수없이 많은 일들을 그와 함께 하거나 겪었다.

 

그러나 나는 김기식에 대한 모든 평을 몇 년 전에 접었다. 그 후에도 내게 김기식에 대한 불평이나 흉을 본 사람들은 많다. 그 때마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다.

 

자식 죽은 아비가, 뭔 영광을 볼 게 있겠냐!

 

나는 김기식이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강했다. 지금 얘기 나오는 그 미국 연수 길에 같이 나섰던 중학생 자식이 서울에 돌아온 다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내가 그 경우였다면, 나는 정말로 다 네려 놓고 아무 일도 안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사회적 일이 있는지라, 김기식은 뭔가를 더 했다. 자식과 좀 대화를 더 했었어야 했는데, 이상증후를 보고도 그렇게 못했다마지막으로 그와 나눈 사적인 대화가 그거였다. 나는 지금도 김기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김기식도 나름 욕심이 있고, 자리를 잘 챙긴다는 얘기들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누구처럼 자리 욕심이 있거나 영광을 보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식이 자살한 후에, 그는 하던 일을 접고 떠나려고 했다. 이번 일만 처리하고, 이번 일만그러다 지금까지 오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금감원장으로, 김기식이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권혁세 보다는 잘 할 것이다. 그가 금융 관련된 일만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권혁세 반대편에 서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찾아내는 일을 좀 했다. 설마, 권혁세처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에게 혹시 김기식을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김기식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도 절대로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김기식을 믿느냐고 하면, 아이 잃은 아비의 심정을 믿는다고 할 것이다.

 

단체활동가들의 삶이 생각보다 바쁘다, 그래서 그 속에서 개인 소사에 대한 크고 작은 아픔들이 생겨난다. 김기식도 그런 삶의 피해자 중의 한 명이다. 그가 아직도 엄청난 개인적 야망이 남아있거나, 한풀이 하기 위해서 뭔가 칼을 휘두르려고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기식이 일하는 방식이 좀 치사빤쓰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참여연대가, 단체 스타일이 약간 그렇다. 박원순도 옆에서 같이 일하면, 약간 좀 치사빤쓰 스타일이기는 하다. 어떨 때는 치사빤쓰 동빤쓰, 활동가들이 술 마시면서 그렇게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스타일이다.

 

김기식이 금감원장이 되면, 아마 역대 금감원장 중에서는 가장 잘 하지 않을까 한다. 몇 년 전에, 안철수와 지금 청와대 정책실장인 장하성 선생이 한 편 먹고, 내가 반대편에 서서 금감원 개혁안에 대해서 아주 거대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때 금감원 노조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 것 같다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자기네 자료를 주고 간 적이 있었다. 금감원에는 윗대가리들만 있는 게 아니라 노조도 있고, 나름 개혁하고 싶어하는 직원들도 있다.

 

그런 내부의 개혁 세력을 잘 통제하거나 구슬리고 억압하는 게 지금까지 금감원장이 해온 일이다. 그러니 부패하고, 서로 이익을 주고, 심지어 채용특혜까지.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게 지금부터 금감원장이 할 일이다. 김기식이 그 정도는 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더 나은 사람? 있으면 내가 추천한다. 한국에 금감원장으로 김기식만한 사람도 없다. 다른 대안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에 김기식 인사평을 물었을 때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권혁세보다는 낫지 않겠냐

 

한국당이 인사할 때, 최고의 인사가 권혁세였다. 그만한 사람도 사실 없었다. 나머지는, 인사라기 보다는 쓰레기에 가까워서 입에 올리는 것도 지저분해지고. 그런 권혁세보다는 김기식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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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넘게 반정부 인사로 살았다. 토건 문제로 글을 좀 쓸까 싶은데, 참내. 신문사에서 지면은 확보를 해줬는데, 다시 또 반정부 인사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깝깝하다. 예전에는 집요하게 거의 모든 길을 막아놓았었는데, 이번 정부도 그렇게 할까? 그냥 못 본 척하고 눈 딱 감고 살아도 되는데...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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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재로나 읽히는 농업경제학을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 책으로 바꿀 것인가, 10년도 더 된 나의 해묵은 과제다. 아직도 해법을 못찾고 있다...)

1.

많은 문화 창작은 누가 이것을 볼 것인가, 관객과 관련되어 있다. 당연한 얘기다. 몇 년 전 연극계에서는 아침 10시에 하는 연극 공연을 선보였다. 아침에 출근과 등교 준비를 끝낸 아줌마들을 좀 더 연극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였다. 신선했다. 이런 것을 전문 용어로 관객 개발이라고 불렀다. 연극을 보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연극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객 개발과 같은 문제는 한국의 문화 영역 전반에서 벌어지는 고민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연극이 더 치열했을 뿐이다.

 

책에서도 이 문제가 생겨난다. 사람들이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으면서 독서 캠페인 같은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무의미한 얘기는 아니다. 개별적으로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접근하면 타킷 독자에 대한 마케팅 강화 같은 형식이 된다. 누가 읽을 것인가, 그걸 좁혀서 더 그 독자에 맞추자는 방식이다.

 

이러한 마케팅 접근이 나쁜 것은 아닌데, 나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늘상 이 문제로 출판사와 갈등한다. 연령별, 성별로 읽을 사람을 정하고 거기에 맞추는 시도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러면 저자 자신이 얄팍해진다. 나는 여전히 최소한 한 나라 안에서는 보편적이고,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볼 수 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꾸 얄팍해지면, 나중에는 쓸 내용 자체가 말라버린다. 그런 점에서는 나는 여전히 고전적이다. 그렇지만 누가 읽을 것인가, 이런 걸 고민하지는 않을 수 없다.

 

2.

<88만원 세대>를 처음 준비할 때, 몇 개 출판사와 얘기가 있었었다. 그 때는 결론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 출판 쪽 사람들은 이 책이 대학생에 대한 권면과 같은, 이러면 안된다, 그런 기성세대의 관점으로 마무리가 되기를 바랬다. 무슨 엄청난 철학적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대학생은 책을 안 본다는 게 거의 정설이었다. 어차피 책을 살 사람들은 기성세대니까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책을 마무리해야 나머지 내용이라도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거다. 대학생들이 책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큰 전제 하에서 생겨난 일이다. 나는 내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독자들이나 국민들을 힐난하거나 욕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서 지난한 분석 작업을 하거나 원고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중에 문제적 요소가 된 바리케이드와 짱돌에 관한 장 하나를 더 추가했다. 원래의 원고는 정책 대안들을 얘기하고 끝나는 형태였다. 출판사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차라리 내가 원고를 다 버리면 버리지 그렇게는 절대로 안하겠다고 오히려 더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 쪽을 추가했다. 그거 보면, 나도 어지간히 똘아이다. 누가 뭐라고 하면 방향을 돌리는 게 아니라, 그 방향으로 더 나가버리는 반항적 성격! 내가 생각해도 나도 참 지랄맞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게, 소위 딜리버리 문제라고 하는, 책이 필요한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이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복지 분야에서 딜리버리 문제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같은 것에 대한 논쟁의 핵심이다. 선별적 복지를 할 때 어떻게 꼭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 배달할 것인가, 이 설계가 쉽지 않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받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행정적 절차나 규정 미비 등 여러가지로 배달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일반적으로 한국 출판계에서 주요하게 책 안 읽는 3대 집단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생

2. 농민

3. 민주당 당원

 

대학생은 원래는 사회과학의 주력 독자였는데, IMF 경제 위기 이후로 책 안 읽는 집단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 경향성은 점점 더 강화된다. 최근에는 거의 대학생 독서 절벽이라고 할 정도로 안 읽는다. 여기에서부터 청년들의 문제는 물론이고, 전문적 서적의 고사 같은 일들이 시작된다. “대학교 교제 같다”, 이 얘기는 자발적으로는 아무도 안 읽을 것 같다는 표현이다.

 

농민은, 사실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이게 딜레마다. 농민들이 책을 안 읽으니까 농업에 관한 책은 정말로 큰 맘 먹고 쓰거나, 음식 책처럼 달달하게 가는 수밖에 없다. 농업의 위기 원인 중의 하나가 농민들이 책을 안 읽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농민들에게 책 좀 읽으세요,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당 당원은 왜 책을 안 읽을까? 계량적으로 수치를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예전의 민주노동당 당원 지금의 정의당 당원들이 민주당 당원 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다는 판단들은 일부 있다. 물론 민주당 당원들도 가끔 응원과 지지의 성격으로 특정 책을 많이 사주기는 하는데, 다양한 층위의 독서와는 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당 당원, 이 집단은 책을 가장 많이 읽고, 가장 많이 사는 집단으로 분류된다. 이건 독자 성별 조사 같은 것으로는 잘 안 잡힌다. 최근에는 좀 변했겠지만 한국의 주요 사무실의 부장이나 이사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박근혜 지지하는 보수층인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자기 돈으로 사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많이, 자기 사무실이나 자료실을 통해서 책을 산다. 월간조선류 시장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누가 샀는지 정확하게는 집계 못해도 사기는 샀고, 읽기는 읽는. 몇 년 전 출판 분석 많이 하던 사람이 나에게 해준 말이, 내 책도 아마도 보수 쪽에서 더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사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 이건 팬과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구매 패턴이다. 저놈의 자식이 뭐라고 하는지 좀 보자

 

출판사에서 이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당원은 심정적으로는 가까운데 책은 안 보고, 보수는 심정적으로 너무 먼데 그래도 거기는 책을 좀 사보고.

 

프랑스는 사회당 당원들이 정말 책을 많이 본다. 그래서 그 쪽 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그런 것들이 세계적 빅 히트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그런 정치적 성향과 독서가 좀 반대 방향으로 가서, 좀 더 진지하게 주제를 다루고 싶은 민주당 계열 학자들이 결국 펜을 꺾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가설만 있지, 아무도 진짜 이유는 모른다. 어쨌든 민주당 당원들은 팬덤 패턴 분석이 조금 더 정확하지 독자 패턴 분석으로 뭔가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3.

배달 문제는 크게 집단으로 분류해볼 수도 있지만,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할 수도 있다. , 누군가 불법 다단계에 심하게 빠져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본격적인 진단을 한다고 해보자.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을까? 근본적인 딜레마가 발생한다. 다단계 중독인 사람이 과연 책을 읽을 정신이 있을까? 그리고 그런 중독 상황에서 책 좀 본다고 자신의 생각이나 행위가 바뀔까? 여기까지 배달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경제 다루는 사람들도 다단계 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공익적 가치는 충분히 있는데, 배달이 거의 불가능하다. 알고는 있지만 다루기는 쉽지 않다.

 

배달의 문제는 출판사는 물론이고 저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다. 물론 부정적 영향이다. 주로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방향보다는, 뭘 하지 말아야겠다, 뭘 못하겠다, 이런 형태로 나타난다. 책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특징이 결국 배달, 딜리버리의 문제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교적 초기에 쓰기로 마음을 먹고도 아직도 미적미적거리고 있는 주제가 농업경제학이다. 이것도 근본적으로는 배달 문제를 넘어서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농업경제학 2019’라는 제목으로, 무조건 내년에는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배달과 판매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맞는데, 그러면 사람이 얄팍해진다. 다루기 어렵고 팔기 어려운 주제들, 꺼내기 쉽지 않은 문제들을 다루는 편이 그래도 좀 더 오래 가기에는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면, 결국에는 실력이 는다.

 

(배달의 문제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유료 독자의 문제라는 것도 있다. 이건 다음 번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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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슬슬 공약도 나오기 시작한다. 지역별로, 청년 완전고용 공약 정도는 이제는 나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서비스, 복지, 소규모 창업 등 연결시키면 일부 지역은 불가능하지도 않다. 미국, 일본 등 몇 군데 경제는 사실상 완전 고용이다. 이제는 지자체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공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쟁을 좀 하면 좋겠다. 공약이, 다 거기서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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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블로그는 사연이 많다. 몇 년 동안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서 지금은 쪼그라져 있지만, 참 많은 일들이 블로그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많은 돈을 가져다 주었다. 나도 이 블로그로 인해서 이렇게 적지 않은 돈을 벌게 될 줄 진짜로 몰랐다. 많은 일과 인연이 블로그로부터 출발을 하게 된. 그리고 진짜로 돈도. (아내는 그렇게 돈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마지막 순간까지 믿지 않았다. 지금은 전부 다 아내 통장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블로그는 여전히 유지하는 중이다. 한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정을 붙이고, 소중하게 다루려고 한다.

요즘 생각이, 사람들은 태풍만 보려고 하지만, 태풍이 만들어지는 순간, 태풍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어느 태풍의 씨앗이 진짜 태풍이 되었는지, 사후적으로도 알기 어렵다.

비교를 하자면, 페북은 바람과 같다. 센 바람이 있기도 하고, 약한 바람이 있기도 하고. 블로그는 샘물 같은 것이다. 그 안에 미약하지만, 뭔가 고인다. 그리고 그런 샘물에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오면서, 그렇게 숲 생태계가 돌아간다. 누군가 물을 마시러 올 수 있게 새로운 물을 준비하는 것, 그게 블로그 운영과 비슷한 것 같다. 바람은, 누적되지는 않는다. 물은, 누적되고 쌓인다.

나는 점점 더 메이커의 세계로 가려고 한다. 그래서 더 전위적이고, 더 선명한 각을 만들려고 한다. 블로그는, 그럴 때 도움이 된다. 조금씩이지만 쌓고 누적적이고.

이럴 때 보면 내가 굉장히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다. 2명, 3명, 10명, 그런 작은 논의그룹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천 명, 만 명, 10만 명,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다. 판매하고 유통하는 데에는 이런 수치들이 중요할 수 있지만, 만드는 순간에는 혼자가 아닌 상황이면 충분하다. 머릿수로 물건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애 키우는 와중에,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블로그 운영이다. 이런 자부심은 있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방송에도 없고, 신문에도 없고, 책에도 없는 내용들을 쓰는 경우가 많다. 태풍의 씨앗을 뿌린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 태풍의 씨앗을 뿌려서 거대한 태풍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게, 이 나라가 잘 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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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탈토건의 상징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마 4대강에서 새만금으로 넘어갈 것 같다. 이거 어쩔겨, 같은 질문이다. 한국에서 민주화와 탈토건은 전혀 다른 애기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강화되어도 당분간 탈토건은 별 가망 없을 것 같다. 뭔가 할지, 애 아빠가 뭘 하느냐, 그런 두 가지 생각 중에서 여전히 갈등 중이다. 못 본 척, 나는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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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물질

책에 대한 단상 2018. 4. 10. 11:04

 

(내가 얘기하는 이물질과 사진의 이물질은 아무 상관은 없다...)

 

이물질

 

요즘 나는 부쩍 이물질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단어이기는 한데, 정서적으로 아름답지는 못한 표현이다. 처음에 책을 쓸 때에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다가 고치는 과정에서 많이 쓰게 되는 표현이다. 특정한 개념을 설명하거나 감정을 만들기 위해서 본 라인에서 약간 빠져나와서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래는 이렇게 우회해서 많이 돌아갈수록 후반부에 더 풍부한 사례와 함께 감정을 만들기가 좋다. 그게 책과 논문이 다른 점이다. 논문은 가능하면 직선으로 가지만, 책은 그렇게 가면 너무 매말라서 읽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 결론이라는 게, 사실은 읽는 사람 마음 속에서 무슨 효과가 나야 의미가 있는 거라서, 이것 저것 다 자르고 결론만, 그러면 정말 장작개비처럼 매마른 애기가 된다.

 

초고를 쓰고 나면, 이제 다시 얘기가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얘기를 풍부하게 할 것 같아서 집어넣었는데, 감정만 소모하고 본 가지로 돌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걸 이물질이라고 부른다. 이런 게 이물질인지 핵심요소인지 사실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무의미한 것을 처음부터 그 자리에 배치하고 쓰는 사람은 없다. 돌았냐? 쓸 데 없는 얘기를 쓰게. 책이 대충 300페이지라고 보면, 생각보다 짧다. 죽 달려가도 꼭 필요한 얘기들을 결국에는 분량 조절하기 위해서 빼야 하는데, 꼭 필요하지 않은 얘기를 누가 쓰겠나? 그래도 애초에 생각했던 것 같은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서브라인들이 생겨난다. 이 순간이 고통스럽다. 너는 이물질이야 하고 날려버릴지, 아니면 좀 더 손을 봐서 본문의 내용과 좀 더 호응을 하게 다듬을지,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판단이 어렵다. 어쨌든 이물질이라고 판단되면, 어느 저자가 상관없이 가차 없이 날린다. 이물질 같은 데에도 느낌이 있어서 남겨둔 것들이 있다. 나중에 독자들이 그 부분이 좋았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물질을 처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냥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가면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좀 다른 방식으로 읽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남겨진 이물질이 보너스 같은 요소일 수도 있다.

 

요즘 방식으로 책을 편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학계에서 최고의 책으로 치는 다윈의 <비글호 여행기>가 있다. 여행기랑 상관 없는 개인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요즘 책 편집 같이 하면 비글호 여행기는 온갖 이물질 투성이이고, 이것도 자르자, 저것도 자르자. 그 두꺼운 책이 남는 게 없을 것이다. 과학계에 남을 명저 중의 명저다. 마찬가지 관점으로,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저선을 보면 온통 이물질 투성이다. 어디 그런 책만 그러겠느냐? 심지어 <자본론>도 논리의 전개에 방해가 되는 이물질 덩어리이다. 게다가 결론도 불투명하다. 아마 요즘 책 편집하는 방식으로 하면 <자본론>에는 필요 없는 서문들, 길게 늘어진 수다들, 별 효과적이지 않는 인용들, 다 날라가고 100페이지 미만이 될 것이다. 그랬다면 <자본론>을 읽고 혁명을 꿈꿨던 청춘이 지금과 같이 많았을까? 좋은 책, 고전이 된 책, 어떻게 보면 이물질 덩어리다. 그런 이물질이 거의 없는 것은, 최근에 읽은 시나리오인 사무엘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진짜 중요한 대목인데도 아주 짧게 처리하고 넘어간다. 정보가 너무 중요한 것인데, 설레발 없다. 진짜 기능적으로 딱 필요한 얘기들만 들어가게 설계되어 있다. 영어와 불어, 모국어와 외국어를 바꿔가며 글을 쓰는 사무엘 바케트가 이 대목에서 특별히 한 얘기가 있다. 외국어로 글을 쓰면 복잡한 수식 같은 것을 줄여서 간결해지는 장점이 있다고 (그래, 잘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익스피어도 참 이물질 없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기능적으로 필요한 요소들만으로 구성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세익스피어가 사람이 아니라고 하나보다.

 

글과 책은 다르다. 원고지 10매짜리 글에는 이물질이 들어갈 요소가 없다. 밥 먹고 잠깐 커피 한 잔 마시러 나갔다 오는 산책과 같다. 그러나 책은 다르다. 34일 혹은 일주일 이상 걸릴 긴 여행이다. 목표만 보고 달리면, 중간에 왜 달리는지 이유를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책을 던져 버린다. 중간에 잡념도 하고, 일상 생활을 하고, 그러다 다시 책을 집는다. 쉬어갈 공간도 필요하고, 책과는 상관 없지만 자신의 소양에 도움이 되는 얘기들이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 에코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에코 아내 얘기다. 위스키라고 사과 주스나 포도 주스를 주고, 일절 술을 못마시게 하는 아내에 대한 불평. 그리고 책을 쓰는 데 방해를 하는, 어수선하고 번잡스러운 자식의 친구들. 그래서 우리는 에코는 따로 작업실이나 집무실을 두지 않고 그냥 집에서 글을 쓴다는 것을 알았다. 이게 무슨 중요한 지식이야?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에코를 이해하고, 에코의 글들이 좀 달라 보이는 효과를 갖게 한다.

 

그래서 책은 어떻게 보면 이물질과의 전쟁일 수도 있다. 다 걷어내면 못 읽는다. 그대로 두면, 그래도 번잡스러워서 못 읽는다.

 

(원래 이렇게 마무리할 생각은 아니었고, 일상 생활에서의 이물질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점심 약속이 생겨서 이만 나가봐야 한다. 나 자신의 이물질처럼 느껴지는 일상의 쓸쓸함을 쓰려고 했는데, 본문 자체가 이물질이 되어버렸다.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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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까지 사진을 찍다가 둘째 태어나고 얼마 후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아이는 죽을지 살지, 숨도 제대로 못쉬는데, 뭔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권 후반기로 가면서, 매일 누군가 만나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전부라서, 카메라를 들고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내 삶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시간들이었다.

5년만인지 6년만인지, 올 봄에 카메라를 다시 집어들었다. 달리, 별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사진 찍으러 어디 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냥 왔다갔다 하는 공간에서. 가끔 놀러가는데.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

요즘 사진 찍는 컨셉은, '심도는 얕게, 애정은 깊게'. 말이 좋아서 심도는 얕게지, 이게 돈 때려 박는 일이다. 대학 시절 미학 공부할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미학 교과서라는 게 리얼리즘 얘기가 기본이었다. 나중에 보니까 그랬다. 그래서 심도 깊은 것들, 이런 데 대해서 나도 뼈 속까지 스며든 집착 같은 게 있다.

이제 좀 심도 얕은 것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물론 이게 돈 많이 드는 일이다. 밝은 렌즈가 필요하고, 대구경 렌즈가 필요하고... 심도 얕은데, 어떻게 하면 재수 없지 않을까, 그런 게 요즘 한참 생각하는 고민이다. 좋은 사진은, 원래는 심도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좋은 얘기도, 심도와는 상관 없다.

심도는, 밀도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심도를 얕게 하기 위해서는 밀도를 높여야 한다. 빛도 많이 필요하고, 더 합축하고... 심도가 원래 그런 개념이다. 그래서 돈 많이 든다.

사진에 애정이 있을까? 보기에 따라서는 있다고 할 수 있고, 기계적으로만 보면 애정 같은 것은 없다. 빛이 많거나 적거나 그런 것이지. 그렇지만 묘한 애정 같은 게 사진에는 담겨 나온다. 그리고 반대로 차가움 같은 것도 있다. 사진 기자들이 루틴하게 찍는 사진들은 묘하게 차갑다. 그리고 때때로 짜증이 가득 묻어있다. 이해는 간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르뽀 사진에는 슬픔이 묻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이해는 간다.

하여간 나도 답은 없는데, 그런 '심도는 얕게, 애정은 깊게', 요런 컨셉 같은 것을 머리에 담고, 구현을 해보려고 한다. 무작정 떠나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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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완전고용 선언을 하기 직전이다. 일본은 정치적으로 여러 분란이 있지만, 경제 자체는 실질적 완전 고용이다. 우리는 완전 고용을 얘기만 해도 정치학이나 사회학하는 사람들이, 그게 말이 되느냐고 생난리를 친다. 나는 안될 것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일본도 각기 경로도 다르고 이유도 다르지만,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를 몇 년째 유지한다. 그 상태에서 실질 임금도 올라간다. 우리는 왜 이런 상상 자체를 못할까? 경제에는 적당히 실업이 좀 있어야 한다는 신화가 우리에게는 너무 강하다. 그리고 좀 노는 사람 있어도, 전체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 아무 문제 없다는 약간의 적당주의도 있다. 그리고 고용 보다는 일단은 케이블카도 만들고, 도로도 좀 만들자는 지역의 강력한 토건주의도 여전히 잔존하고. 상상 자체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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