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겁나게 온다. 올해 8월은 비가 많이 와서, 무지무지할 정도의 열섬 현상은 생기지 않았다. 추세적으로 보면 5월이 가장 많이 더워진다. 그리고 9월도 더워진다. 8월은, 그렇게까지 높아지지는 않았다. 비가 많이 와서. 한동안 아열대 기후라는 말이 유행을 하더니, 이제 간간이 우기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열대성 스콜이라고 하더니, 이제 장마 대신에 우기가 생기는 거 안인가 싶기도 하고. (더위와 밀접하게 관련된 책 하나를 준비하는 중이라서, 덥고 덜 덥고, 더 민감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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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모피아>는 내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책이다. 책 자체 보다도 이 작업할 때 같이 했던 사람들이 결국 내 평생 동료가 된... 이래저래 7년을 같이 했다. 그 연장선에서 영화 <사도>가 나왔고, 지금도 작업은 계속 중이다.

<모피아> 드라마 판권은 나오자마자 팔렸고, 큰 애 낳고 한참 돈 많이 들어갈 때 진짜로 요긴지게 도움이 되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드라마 기획까지만 가고 실제 편성이 되지는 않았다.영화 판권은 성사 직전에서 섰다. 제작자가 안철수를 모델로 만들어볼 생각이 있었는데, 안철수가 정치를 그렇게 잘 하지는 못한 듯 싶었나보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아주 사적인 관점에서, 나만큼 안철수가 잘 해 주기를 바랬던 사람도 없을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가 시기가 좀 겹쳐서, 판권 시기 조율하고 기다리다가 결국 정권이 넘어갔다. 그리고 판권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제작 검토는 몇 군 데서 한 걸로 아는데, 제작비가 겁나 들어가게 되어있는 설정이다.

하여간 최근에는 실사판과 에니메이션판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좀 생겼다. 내가 판단을 내릴 일은 아니고... 어차피 이건 내가 직접 하지는 않을 생각으로 쓴 거라서.

5년 전에 상상으로 작업할 때에 비하면, 소름끼칠 정도로 현실과 싱크로율이 높아졌다. 진짜 돗자리 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 정도로 높은 싱크로율이 생겨날지는 진짜 나도 몰랐었다. 한국, 참 안 변한다.

<모피아> 후속편은, 원래는 교육 마피아 얘기 다루는 걸 생각했었는데, 1년쯤 준비하다 뒤로 미루었다. 자살하는 고3 남학생과 그걸 지켜본 고3 여학생의 얘기로, 어느 정도 설정은 해놨었다. 그렇지만 자살이라는 얘기가 논리적이기는 한데, 내 심경으로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교육 마피아 얘기는 일단 뒤로 미루고,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소설은 작년 7월부터 시작한 게 있다. 설정만 해놓고, 다른 작업에 밀려서 기술적인 조사 직전 단계까지 가 있다.

물론 나는 대부분의 발전소와 현장에 다 가봤고, 전력거래소만 안 가봤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사무실 안에까지는 가봤는데, 나주로 내려간 다음에는... 나주 자체를 몇 년째 안 가봤다. 내 동료들이 아직 이런 설비들을 못봐서.

<모피아>는 김영사에서 냈었는데, 그 때 같이 했던 김영사팀은 벌써 다 다른 데로 옮겨갔다. 이 시리즈는 당분간 그냥 김영사에서 내려고 한다.

정권이 바뀌었고, 처음 몇 주간은 나도 어떻게 될지 전혀 몰랐었다. 이젠 좀 알겠고, 나는 예전에 하던 얘기 만들기를 계속 재밌게 하려고 한다. 얘기 만들기는,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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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fem.or.kr/?page_id=221

사회적 경제 책, 페친 티타임 조촐하게 가질까 합니다.

6월 10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는 저번과 같이 환경운동연합 에코생협에서 하는 작은 카페. 내용이 사회적 경제라 마침, 또...

아내가 40대 때 저에게 늘 하던 얘기가 있습니다. 너네들이 술 마시지 않고 차 마시면서 혁명을 얘기했으면 우리나라 벌써 좋아졌다...

책 사주신 분들에게, 감사도 드릴 겸, 차나 한 잔 대접할까 합니다...

(블로그 봐주시는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 석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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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하면 덜 가난할 수 있을까…해법은 '사회적 경제'"

우석훈 신간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청와대 직제에 일자리 수석을 신설하며 그 산하에 사회적경제 비서관을 배치했다. 이를 두고 사회적 경제가 새 정부의 주요 어젠다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88만원 세대'를 쓴 경제학자 우석훈도 사회적 경제에 주목한다.

그는 신간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문예출판사 펴냄)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왔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덜 가난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답으로 사회적 경제를 제시한다.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인 의미를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 물건이나 지식을 서로 빌려주며 함께 쓰는 공유경제, 그리고 협동조합 등이 중심이 된 경제다. 지역공동체 내에서 주민이 지역 자원을 이용해 수익사업을 하고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을기업도 사회적 경제에 속한다.

책은 사회적 경제의 기본 개념과 역사적 흐름을 설명하고 우리나라와 세계에서 진행되는 사회적 경제의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며 이해를 돕는다.

사회적 경제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 싹을 틔운 이후 노무현 정부 때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협동조합법이 만들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승민 의원 등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저자는 특히 경제불황기 사회적 경제가 사회의 안전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자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바로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자영업을 시작하기보다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에서 1∼2년 정도 일하면서 경험을 쌓고 자신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사회적 경제가 불황기에 고용을 임시로 확충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책은 또 사회적 경제가 '좌파 정책'이라는 인식이 옳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치가였던 무솔리니가 대공황에 빠진 이탈리아의 위기 극복을 위해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 정책을 고민했다는 점과 대표적 협동조합인 농협이 군사정권 때 만들어졌음을 상기시키며 사회적 경제가 이념을 뛰어넘는 시스템임을 설명한다.

저자는 "2008년 이후 새롭게 형성된 사회적 경제라는 흐름이 좀 더 안정화돼서 새로운 구조가 될지, 아니면 10년 정도 유행하다가 '별 볼 일 없다'며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면서 "그러나 이 흐름은 일시적인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경제의 구조적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316쪽. 1만4천800원.

zitrone@yna.co.kr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18/0200000000AKR20170518147100005.HTML?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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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최종 제목이 이렇게 잡힌 것은 출판을 몇 주 남긴 때의 일이다. 그 직전까지는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사회적으로'였다. 나는 이 제목이 더 좋았지만, 도저히 입으로 읽을 수 없는 제목이었다. 입말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파자형 제목을 포기하고, '사회적 경제'를 그냥 이마에 달기로 했다.

이 책은 계약서부터 시작하면, 5년도 넘는다. 진짜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주제가 청년에서 사회적 경제로 바뀐 것은 3년 정도 된다. 그 뒤로도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회적 경제'라고 제목에 다는 것은 나도 부담스러웠고, 출판사도 부담스러워했다.

사회적 경제라고 제목에 쓰는 건, 책 팔기 싫어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랑의 노동'을 비롯해서, 원래 초반 작업 때 사용하던 제목들은 따로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내 심경이 바뀌었다. 책은 덜 팔리더라도, 그냥 정직하고 정확한 제목을 다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책 제목 그대로이다. 어떻게 좌우를 넘는가, 내가 보고 들은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였다.


2.
지금 내용을 마무리하려고 준비하는 또 다른 책이 있다 <국가의 사기>, 시기상으로 그리고 정서상으로,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는 아무래도 쌍둥이 책이 될 것 같다. 한참 중반 작업쯤 들어가 있을 때, 최순실 사태가 벌어졌다. 나에게도 고통스러운 사건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인가? 온다면 그 시대가 우리들에게 바람직한 사회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좌우 이념의 대결로 인해서 어려웠던 문제가 사회적 경제 책에 주로 나간다. 그리고 제도 개선에 관한 얘기 그래서 미래 경제의 비전에 관한 얘기가 <국가의 사기>로 정리된다. <국가의 사기>는 벌써 원고가 마무리되었어야 하는데, 아이 둘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그렇게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나도 이 격동의 시대, 마음을 정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한 번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대체적인 입장 정리는 끝났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3.
사회적 경제를 한국 사회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좀 안다. 그렇지만 변화의 여지가 아직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책을 쓸 이유는 없다.

책을 쓰는 방법이 과연 효과적일까? 생각을 좀 많이 했다.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이고, 효과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길게 시간을 두고 진짜 변화를 생각하면, 여전히 책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내가 엄청난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금은 더 길게, 다른 말로 하면 한가롭게, 뭐가 더 나은 길인지 그렇게 생각을 해본 적은 좀 있다. 하루하루의 호흡으로 살아가면, 책은 쓰기 어렵다.

어떤 책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나면 책이 실제로 나오는데 3년 정도 걸린다. 물론 FTA나 세월호 때처럼 급하게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호흡은, 3년 정도인 것 같다.

3년이 지나도 여전히 의미가 있거나, 여전히 시대의 최전선일 때, 그 때 출간을 한다. 언론과도 많이 다르고, 방송과는 더더욱 다르다. 2~3년 지났을 때 무의미해지는 얘기, 그런 건 책으로 다루기가 어렵다.

최근에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했다.

누군가는 길게 보고, 넓게 살펴보고, 꼭 정답은 아닐지라도 계속 살펴보는 작업을 하는 게 의미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일을 조금은 더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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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yes24.com/Article/View/32909

『88만원 세대』, 『불황 10년』 등 경제와 계층에 대한 통찰을 꾸준히 전해온 우석훈 박사가 자신의 땀이 녹아있는 육아 이야기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로 돌아왔다. ‘두 아이의 아빠가 내 정체성’이라고 적을 만큼 우석훈 박사의 삶은 이제 오롯이 아빠의 역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주말은 완전히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일을 줄여야 했다. 물론 그 역시 일을 줄이는 선택을 내리고 육아에 전념하면서는 조바심이 났다. 좋은 제안을 받으면 “마음이 하루에 세 번 바뀌”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수밖에.


“들어오는 일들이 있는데 ‘내년에 하면 안 되나?’ 생각해보거든요. 꼭 그때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에요.”라는 우석훈 박사의 말은 자신을 ‘보조양육자’라고 칭하면서도 ‘양육자’에 방점을 찍어둔, 자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라는 사실을 단단하게 의식한 사람의 말이었다.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소득을 줄이고, 연봉을 포기하고, 아픈 둘째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갖는 길을 택했다. 다른 부모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들이 있을 것이다.(중략) 이건 내가 가진 문화적 취향이고 정서적 선택이다. 나는 매순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것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다. 먼 훗날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먼 미래에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행복은 믿지 않는다.(17쪽)

 

우석훈 (2).jpg

 

개인이 지불하는 몫이 너무 과하다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떤가요?

 

아침 8시 반에서 9시 정도에 일어나요. 세수만 하고 아이들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요. 그러면 10시가 조금 넘어요. 그때부터는 두세 시간 책도 보고, 글도 써요. 그렇게 오후까지 계속 있을 수 있으면 집에 있고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나와서 사람도 만나죠. 주말은 완전히 죽음이고요.(웃음)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는 완전히 몸으로 때우는 시간이에요. 그나마 요즘은 두 아이가 둘이서 놀기도 하니까 조금 편해졌죠. 이전에는 둘을 다 신경 썼어야 했는데요. 지금은 조금 먼 거리에 있어도 돼요. 둘이 친해졌거든요. 잘 놀아요. 점점 더 편해지겠죠.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는 육아에 관한 아주 꼼꼼한 기록입니다. ‘기록’의 의미가 많이 엿보이기도 하거든요.


이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어 조기교육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선행학습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하는 이야기를 꼭 한 번 써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파서 경황이 없었어요. 이 책은 틈나는 대로 겨우 메모해둔 것들이에요. 육아일기는 쓸 수가 없는 거더라고요.(웃음) 앉아 있을 시간 자체가 없으니까요. 둘째 백일 지나서야 조금씩 쓰기 시작했죠. 지나보니 메모해둔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책을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끝나고 나니까 이제 뭐하고 노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책이 두꺼워졌어요. 이대로 쓰면 두 권은 쓰겠더라고요. 많이 덜어냈어요.

 

앉아 있을 시간도 없다, 육아의 현실이겠죠.


게다가 두 아이가 같은 남자 아이라도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그러다보니 선호하는 것도 다르고, 기저귀 떼는 방식도 다르고요. 보통 일이 아니죠. 똑같이 하는데도 다르더라고요.

 

거듭 사회가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을 개인과 가정이 담당하고 있다고 문제제기 합니다. 특히 출산 장면에서 그랬어요. 이는 경험에서 온 것이기도 한데요.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숨을 못 쉬어서 집중치료실로 갔어요. 열흘 정도 입원을 했거든요. 첫째 때는 안 시킨 검사도 다 하고요. 검사 결과가 괜찮아야 퇴원을 할 수 있었어요. 보니까 병원비가 200만 원이 넘게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출산하다가 생긴 일은 그냥 보험수가만 조정하면 되는 건데, 하고요. 어떤 경우에는 병원을 가야 하는데 돈이 무서워서 못 가는 일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병원비 부분은 그렇게 개선이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요. 생각만 조금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병원비를 내면서도 이런 비용은 괜히 지불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 그야말로 기본이잖아요.

 

몇 살 이전, 처럼 기준만 정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죠. 개인이 지불하는 몫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산후조리원도 그래요. 곳곳에 방치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조금씩 개선한다고는 하는데 경험하는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껴요.

 

국가의 출산 장려 정책이라는 게 탁상공론에 머무는 경우가 너무 많죠. 앞부분에서 첫 아이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라고 적기도 했어요.


지역별로 지원정책이 다 있어요. 그것도 넷째, 셋째, 둘째, 첫째 순이거든요. 그런데 첫째 아이 지원 수준을 올리는 게 사실은 맞아요. 넷째는 아무도 안 낳거든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말이죠. 셋째도 낳으면 엄청 준다고는 하는데 그걸 위해서 셋을 낳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럴 바에야 첫째 아이에게 지원금을 많이 주는 게 출산율 상승의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돈이 많이 들잖아요. 절대 안 하죠.

 

지금 한국 수준에서 출산/육아 정책 분야에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병원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요. 약도 마찬가지인데요. 많이 쓰는 약은 보험에서 빼는 것 같더라고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좋아지는 것 같진 않아요. 이야기는 많은데 실제 육아하면서 느끼는 건 전혀 다르거든요. 어린이집 옮기는 것조차도 너무 힘들고요.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대학도 옮기잖아요. 초, 중,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어린이집만 안 돼요. 진짜 힘들어요. 일단 어린이집이 되면 아무 데도 이사 못 가요. 옮기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까요. 10% 정도 추가 정원만 허용을 해줘도 한결 나을 텐데 말이에요. 제도만 조금 손보면 될 일인데 답답하죠.

 

그렇게 안 하는 이유는 뭘까요?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결정을 하니까 그렇죠. 이건 고도의 행정력을 발휘할 일도 아닌데(웃음) 말이에요. 반드시 예산이 필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이런 것처럼 있는 것 안에서 조정을 하면 편해지는 것이 많아요. 야간 베이비시터 제도(공공 아이돌봄 서비스)가 있거든요. 하지만 대기 줄이 수천 킬로미터예요. 엄두도 못 내죠. 한두 번 알아보다가 포기했어요. 많은 것들이 명목상으로만 있는 거예요. 뭐가 되게 많긴 한데 보통의 경우 거의 해당이 안 되죠. 차라리 써놓지를 말든지 말이에요.

 

 

우석훈 (7).jpg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다


제목에 우선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특히 육아에 있어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간다’는 말이 참 절묘해요.


한 다큐에서 본 거예요. 평생 해녀로 사신 할머니가 나왔는데요.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 끝에 나온 말이에요. 생활하는 입장이 다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들 엄청나게 돈을 쌓아놓고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부분 그럴 것 같아요. 돈이 있으면 있는 규모 안에서 먹고, 없으면 또 없는 규모 안에서 먹죠. 딱 두 배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지낼 만하면 유모차가 망가지고요.

 

유모차부터 도시 문화까지 아우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경제학자 관점으로 본 육아, 생각할 부분이 많았어요.


한두 살짜리 아이에게 명품 브랜드 옷 입히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기억도 못할 때인데 말이에요. 그 아이가 커서 그 얘기해주면 좋아하겠어요? 그 돈 그냥 주지(웃음), 할 거예요. 그러느라고 지금 돈이 없다면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영어 유치원도 그렇더라고요. 우선 의미도 없고요. 아이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나중에 영어 하는 데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대만은 우리 식으로 치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영어 과외 시키는 것을 금지시켰더라고요. 정말 영어를 가르치고 싶으면 영어 유치원 보낼 돈을 모아서 하와이로 몇 달 여행을 다녀오면 돼요. 그게 낫잖아요.

 

육아 산업은 절대 안 망한다고 하는데 ‘이것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자유로운 양육자가 얼마나 되겠어요.


육아 산업도 망해요. 연구하시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은 90년대 말에 알았다는 거예요. 출산율이 줄고 산업이 위축될 거라고요. 고심하다가 럭셔리 전략을 택했다는 거죠. 아이들이 줄어도 단가를 높이고, 브랜드를 차별화시키는 방식으로요. 90년대 말에 그렇게 이미 했다는 건데요. 그러니 럭셔리 전략에는 한계가 없는 거예요. 가격으로 차별화시키는 건 최근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걸 모두가 따를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아요. 돈은 벌기가 힘들지 쓰기는 쉽거든요. 저는 자녀에게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의미 있게 쓰는 게, 돈을 가지고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인 거죠. 돈을 부수면 다시 안 모이거든요.

 

갈등 장면이 많이 나오거든요. 가령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도 고민을 하죠. 양육자가 가지고 있던 가치와 배치되는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잖아요. 육아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마주한 갈등의 순간은 언제였어요?


진짜 아이스크림은 안 먹게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초콜릿 안 사줘요. 그러면 뭐 해요, 할아버지가 사주는데요.(웃음) 이번 생일에는 초코 케이크도 사줬다니까요. 하는 수가 없어요. 되도록 안 먹이고 싶지만 너무 원하면 어쩔 수 없더라고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 덜 먹게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잘 안 돼요.

 

그럴 때 어떻게 하세요? 계속 타협을 해나가는 건가요?


요즘은 자꾸 스마트폰을 보고 싶어 해요. 재미있는 것들이 워낙 많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스마트폰과 TV를 연결 시켰어요. 안 보여줄 방법은 없고, 작은 화면을 보면 눈에 안 좋으니까요. 며칠에 한 번 30분 정도 정해놓고 보여주는 거죠. 타협을 한 거예요.

 

생애 주기에 따라, 자녀의 성장 과정에 따라 고민 주제가 달라질 텐데요. 이것만은 절대 안 하도록 하고 싶다, 하는 것이 있으세요?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는 날이 오겠죠. 지금도 게임기를 보면 너무 황홀하게 쳐다봐요. 진짜 고민이에요.(웃음) 모르겠어요.

 

강하게 기억에 남은 대목이 있어요. 식사를 하면서 ‘세상에 굶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부분이었는데요. 그 부분에서 양육자의 철학이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의 진실이기도 하고요. 시민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부분이에요. 밥투정을 할 때 세상의 절반이 굶는다고 말하면 처음엔 잘 이해를 못해요. 왜 밥을 못 먹느냐고 되물어요. 설명을 해도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죠. 그래도 알아야 할 것들이 있죠. 모두가 우리 같은 것은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투정하면 안 된다, 가르치는 거죠.

 

그런 영역이 많이 있잖아요. 식사 이외에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가르치는 내용이 더 있나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는 하죠. 첫째는 최순실이 누군지도 벌써 알고 있어요. 계속 뉴스에 나오니까 묻더라고요. 거짓말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화가 났다, 맛있는 걸 자기 혼자만 먹었다, 사람들이 밥 먹으려고 줄 서 있는데 혼자 새치기했다, 얘기했더니 진짜 나쁜 사람이네(웃음) 하더라고요. 또 시장 놀이는 일찍부터, 세 살 쯤부터 했어요. 놀이처럼 하면서 교육도 되고요. 반드시 경제 교육이 아니더라도 가게가 무엇이고, 돈이 무엇인지는 일찍 가르친 것 같아요. 돈은 진짜 빨리 알았어요.

 

“고래 팔아요.”
“몇 마리 있어요?”
(중략)
우리는 그때부터 미끄럼틀을 ‘소중이네 고래 가게’라고 불렀다. 그 가게에는 고래가 세 마리 있고, 상어도 판다. 흥정이 끝나면 둘째는 주먹 쥔 손을 내민다. 고래를 팔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걸 받아줘야 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손을 펴서 다시 내민다. 돈 달라는 얘기다. 그 손에 돈을 주는 시늉을 하면 거래가 끝난다.(227-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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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지금은 버틸 수밖에


한 구절, ‘조바심은 인내와 기다림으로 바뀌었다’고 했어요. 여기서 질문이 떠오르더라고요. 육아로 많은 걸 희생한 듯한 느낌을 이야기했는데 실제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의 경우 대부분이 주양육자이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많이 할 테니까요. 박사님은 이런 느낌 앞에서 어떻게 마음 정리를 하셨어요?


버티는 수밖에 없겠죠. 답이 없거든요. 사회 분위기도 호의적이지가 않고요. 계속해서 개선을 하자고 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텐데요. 당장 지금은 버틸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조바심이라는 게 못 먹는 떡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경우도 좋은 제안이 많이 왔었어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요. 마음이 하루에 세 번 바뀌더라고요. 안 간다고 해놓고는 다시는 이런 제안이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요. 그렇지만 결국은 기다리는 마음인 거예요. 다음에 또 오겠지, 하고요. 어쨌든 당분간은 육아에 전념할 생각이거든요. 아이가 아프면 우선순위가 다 바뀌어요. 하는 수 없죠. 아이들은 금방 크니까요. 또 아이들 보는 게 재미있어요.

 

참 새삼스럽게 느껴져요. 육아에 이렇게 참여하는 남성이 점점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보조양육자에 머물러 있는데 말이에요. 주양육자, 보조양육자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증이기도 하겠고요.


보니까 아기 기저귀 갈 줄 아는 할아버지가 거의 없더라고요. 갈아봤어야 말이죠. 평생 기저귀를 한 번도 안 갈아본 거예요.

 

그런가 하면 박사님은 ‘두 아이의 아빠가 내 정체성’이라고 하기도 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은 아빠들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희 집도 주양육자는 아내예요. 다만 아내가 일을 하려다보니 제가 더 시간을 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아내도 많이 힘들어했고요. 제가 프랑스에서 지낼 때 본 건데요. 프랑스 엄마들은 출산 후 열 달이 지나도록 예전 몸매를 회복하지 못하면 좀 놀리는 게 있더라고요. 자기보다 아이를 더 돌보는 건 집착이라는 거죠.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렵잖아요. 저는 그런 걸 보고 살았으니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선진국은 이미 다 그렇게 지내고 있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되겠죠.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아내보다는 제가 더 상황이 되니까요. 들어오는 일들이 있는데 ‘내년에 하면 안 되나?’ 생각해보거든요. 꼭 그때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에요.

 

각자의 상황에 맞는 삶의 방식이 있는데 워낙 한국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어요.


제 차를 없앴는데요. 그러면서도 따져보니까 차 유지비를 생각하면 딱 절반만 가지고 택시 타거나 하면서 지낼 수 있겠더라고요. 차 없다는 핑계로 모임에 덜 나가도 되고요.(웃음) 이제는 아이들이 어린이집도 가고 하니까 낮에는 시간이 있거든요. 그때 글도 쓰고 해요. 많이 나아졌죠. 둘째까지 기저귀를 떼고 나면 이제 아이인 거지 아기는 아닌 거거든요. 좀 서운한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몇 년 간 집에 아기가 있었는데 이제 없는 거니까요. 더 이상 아기는 없고, 악동들만 남겠죠. 그게 아쉽더라고요. 그동안 충분히 놀고 좋은 마음, 편안한 생각으로 아이들이 자랄 수 있어야 뭘 배우더라도 되지 미리 스트레스 줄 이유가 없어요.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흔들리며 사는 거고, 또 그런 게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돈을 많이 들인다고 좋은 것도 아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빠들이 육아에 시간을 더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에게 좋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워낙 집에서 아빠들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요. 조금만 더 해도 만족도가 확 올라가요.(웃음)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책 읽어주는 게 체력적으로 죽도록 힘든 일일까? 아니거든요.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요즘은 어린이집 가서 봐도 아빠들이 많이 보여요. 종종 있어요. 그런 아빠들이 결혼을 했겠지(웃음) 싶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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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이 사위에게 권하면 어떨까


어떤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책을 쓰셨어요? 이 책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으세요?


책을 쓸 때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는데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장인이 사위에게 권해주면 좋겠더라고요. 참고하면 좋겠어, 유럽 스타일이래, 하면서요. 결혼할 때 예단을 보내잖아요. 거기에 끼워 넣어도 창피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장모가 권하기엔 좀 그렇고, 장인이 사위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라면서 권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이 얘기를 했더니 장인이 사위에게 전쟁하자는 거냐(웃음) 하시더라고요.  
 
『88만원 세대』, 『솔로계급의 경제학』, 『불황 10년』 등 경제와 계층에 대한 통찰이 담긴 책도 써오셨고, 『모피아』처럼 소설도, 『1인분 인생』처럼 삶에 관한 이야기도 책으로 꾸준히 써오셨는데요. 아직 쓰지 못한, 꼭 써보고 싶은 책이 남았다면 뭘까요?


에너지 분야 이야기를 거의 안 썼어요. 이쪽으로 더 써볼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한동안 안 봐서 공부해야 할 게 많긴 하지만요. 자료도 업데이트 해야 하고, 현장도 봐야 해요. 몇 년 동안 약속 해놓고 못 쓴 책들이 많아서요. 일정대로 계속 책을 낼 계획이에요.

 

계획이 잡힌 다음 책은 뭐예요?


에세이예요. 50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거든요. 지금 생각하는 제목은 ‘남의 말을 50번 좋게 합시다’인데요. 50세가 넘으면 남의 말만 좋게 해도 밥은 먹고 살겠더라고요. 50대가 되면 욕하고 싶은 사람이 인생에 걸쳐 생기거든요. 성질대로라면 하루에 50번은 욕을 할 수 있어요.(웃음) 그런데 남의 말을 50번 좋게 하면 돈 벌 거예요. 어렵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최순실 씨처럼 되겠죠. 돈이 없어서 그 사람처럼 못 되는 거지 본능과 느낌대로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과 많이 다르지 않을 거예요. 비싼 음식점에서 욕했다는데 막상 비싼 음식점에 갈 일이 없어서 못하는 거거든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 보면 욕을 달고 살잖아요. 제 또래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요. 다음 책은 그 이야기가 될 거예요.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우석훈 저 | 다산4.0
곳곳에서 인구절벽과 보육대란을 논하는 시대, 저자는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아이는 낳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또 대표적인 복지 전문가답게 정책의 구체적인 수정 방향과 보완책 또한 제시한다. 프랑스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검증한 방식을 토대로 국내 상황에 특화한, ‘부모와 아이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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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정세균 국회의장하고 차 한 잔 마시고 왔다. 몇 년간, 거의 매일 보면서 지냈었다.

내가 살아가는 원칙이 그렇다. 누군가 굉장히 힘들 때 같이 지내고, 고생이 끝나면 떠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그가 오세훈을 큰 표 차이로 이기는 것을 보고, 나는 폐렴으로 입원해있는 둘째 아이에게 돌아왔다.

누군가를 돕고, 그걸로 뭔가 얻어걸리는,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는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하여간 간만에 만나서, 나중에 국회의장 그만두면 내가 평전하나 쓰고 싶다고 말했다. 당근빠따, 그렇게 하자고 한다. 어차피 별로 할 일도 없을테니...

정세균과 평생을 같이 지낸 것은 아니지만, 평전만큼은 진짜로 재밌게 쓸 자신이 있다. 그의 삶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아직 보지는 못한 것 같다.

나도 좀 재밌고, 즐거운 거 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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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 분석을 위해서는 시대 구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대통령별로 구분을 하는 게 좀 쉽다. 물론 현실이 그렇게 정부별로 확연하게 갈리지는 않지만, 주요 정책들은 실제 대통령별로 특징을 갖는다.

지금까지 내가 잠정적으로 사용하던 분석틀을 다음과 같다.

YS 시대 - 군사 정권에서 민간 정권으로의 전환기. 서로 공존하기 어려운 정책들이 혼재 되어 있다. 잘 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고.

DJ 시대 - 완화된 신자유주의.

노무현 시대 - 강화된 신자유주의.

여기까지가 '괴물의 탄생'에서 썼던 분류 기준이다.

명박 시대 - '사기꾼의 시대'

'살아있는 것의 경제학'에서 이렇게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내년 봄에 나올 책에서 이걸 좀 더 강화시켜서 '국가의 사기'라는 개념으로 정면으로 다루어볼 생각이다.

근혜 시대 - 순실의 시대

이건 아직 사용한 적이 없는 가설적 내용이다. 지금 하는 사회적 경제 책 분석에서, 어쨌든 근혜가 뭘 했는지, 아니면 뭘 안했는지, 이 분석이 필요해서 가설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근혜 시대가 사기꾼의 시대가 아닌 점은 명확하다. 사기꾼은 자기가 뭘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근혜는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니까, 사기꾼도 못된다. 조희팔은 자기가 사기 치는지 명확히 알았다. 명박도 알았다. 근혜는 그 급도 못된다.

순실의 시대, 근혜는 뭔가 한 게 없고, 순실은 뭔가 한 게 있다.

순실이 한 것을 결국 역사가 알게 될까?

언론으로 드러나지 않은, 최소한 두 가지 분야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일부는 진행 중에 사건이 터져서 중간에 정지, 일부는 미수에 그친 사건.

순실의 시대는, 결국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깊고 넓은 것 같다.

100년 후의 역사에, 근혜 정부에서 '근혜'라는 이름은 결국 사라지고, '순실'만이 남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박근혜 정부'라고 스스로 부르려고 했던 이 시대는, 아마도 '순실의 시대'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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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 새로운 책을 준비하며

 

1.

늘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많은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 혹은 뭔가 창작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라도 정서적 안정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던 것 같다.

 

하여간 죽어라고 살아온 삶, 그게 아주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을 누구에게 권해줄 처지는 아니다.

 

스무 살을 넘어서면서 난 늘 불면이었고, 언제나 수면부족이었다. 감정은 과잉이었고, 날 극한까지 밀어 부쳤던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조금은 더 편하게 생각하면서 살아도 되는데, 별로 그러지를 못했다. 만약에 지난 대선, 결과가 좀 달랐다면 나는 훨씬 더 편안하게 내 삶을 즐기는 쪽으로 살았을 것 같다.

 

그런데 별로 그럴 수가 없었다.

 

2.

내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나랑 같이 일하지 않으면 금방 힘들어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계속 움직인다. 이제 좀 내려놓고 싶기는 한데, 내 주변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편해졌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하여간 당분간 움직이게는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아기 둘의 아빠가 되면서, 나도 이제 좀 이기적이 되었다.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그리고 자빠지는 일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뭘 더 어쩌겠어, 그런 생각도 종종 한다.

 

30대 때의 나는, 무조건 될 때까지, 그런 생각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될 일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것이고, 안될 일은 어차피 아무리 죽어라고 해도 안될 일이었다. 그 때는 그런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건강을 많이 상했다.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쉴 때 쉬고, 잘 때 잔다.

 

요 며칠, 어쩔 수 없이 잠을 제대로 못잤다.

 

두 손이 부르르 떨리고, 손가락 관절 위로 혈관도 잔뜩 부풀어올라,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핑계 대고 좀 쉬었다.

 

손 떨리는 것은 좀 가라앉았다. 그냥 이렇게 살살 살려고 한다. 조금 더 무리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살 살려고 한다.

 

3.

책은 어떻게 할까?

 

이제 그만 쓴다고 맨날 생각하면서도 이래저래, 조금 더 쓰게 된다. 내가 몇 권을 썼지?

 

책 권수를 세던 때도 분명 나에게 있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까먹었다. 모르겠다

 

책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대충 살아서 그렇다.

 

하여간 권수 같은 것은 어느새 기억 뒤편으로 넘어간지도 꽤 된다.

 

책 작업을 할 때, 꼭 필요하고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만 한다. 이 세 가지가 다 맞아서 한 경우 아니면, 꼭 후회하게 된다.

 

, 물론 어느 책이든 그런 조건이 맞는다고 생각을 해서 시작을 하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면, 결국에는 후회하게 된다.

 

3.

내 책 중에 후회를 가장 많이 준 책은 <솔로계급의 경제학>이었다. 이것은 책과는 상관없는, 애초의 기획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점을 마지막까지 극복하지 못한 경우였다.

 

그래도 마칠 수 있었던 게 기적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전혀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게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후회까지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책 작업을 하면서 재밌던 경험은, <솔로 계급의 경제학>을 제외한 나머지 최근 책들은 정말로 책 준비하고 쓰면서 그 과정을 즐겼던 책이다.

 

<솔로 계급의 경제학> 이후로, 크게 결심한 게 한 가지 있다. 적어도 책과 관련해서, 앞으로는 싫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내가 괴로워서 이제는 못하겠다.

 

4.

하여간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요즘은 좀 편안하다. 마음만 편하고 몸이 편치 못하다는 게 단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 달 전부터 생각했던 게 ‘40대 여성에 관한 책이다.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왜 이런 걸 고민하게 되었는가,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이 될 듯 싶다.

 

여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다.

 

40대 후반 여성, 내 친구들이다. 평생을 좋은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슬픈 일이든, 같이 상의하면서 살아왔던 내 친구들이 바로 40대 여성이다.

 

나에게 에세이를 써보게 하면서, 사회과학이 아닌 에세이 책을 준비하게 한 사람이, 바로 가장 오래된 나의 친구이다. 그렇게 오래된 친구가 아니라면 내가 말을 듣겠는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그렇게 말하고 나는 고분고분 듣는 여자 동기들이 있다.

 

40대 중반 여성, 긴박하게 나에게 연락하고 뭔가의 도움을 청하는 40대 여성들은 나의 후배들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본 적이 없는 나에게까지 연락을 하는 경우, 대부분 이혼을 앞두고 있거나 막 이혼을 했을 때였다. 아기는 키워야 하고, 막상 세상을 혼자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 절박한 삶의 무게감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놓고 마주하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주거나 아니면 일감이라도 찾아주어야 한다. 그 삶의 무게감, 어마어마하다.

 

얘기를 같이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엄마의 무게를 같이 져야 한다. 그게 정말로 내가 고민을 같이 한 40대 중반 여성들이다.

 

40대 초반, 나의 아내와 그들의 친구들이다. 아내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그들의 경험이 곧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5.

오랫동안, 내 주변에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많았다. 비율로 따지면 나와 같이 작업하고 일하는 사람들 중에 여성이 월등하게 많았다. 내 책의 에디터들이 대부분 여성이었다. 처음에 같이 작업할 때에는 처녀였지만, 내가 나이를 먹은 것만큼 그들도 나이를 먹어서 아기 엄마들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도 아줌마가 되어갔다.

 

요즘 나는 아주 거친 남자들과 일상을 보내고 있다. 여의도가 그렇다. 여성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조적이거나 상징적이거나대부분은 남자들, 그것도 정치를 매개체로 하는 아주 거친 남자들이다.

 

그렇게 나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로 돌아와있다. 협상하고, 거래하고, 나눌 거 나누고, 그러면서도 서로의 자웅을 겨루고, 우리 편이냐 아니냐, 그런 걸 본능적으로 따져야 마음이 편해지는 그 남자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편과 서열, 그 간단하면서도 미묘한 남자들의 세계, 그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현대에 있던 시절, 대기업의 세계가 그랬다. 정부에서 일하던 시절, 여성들은 아주 드물었다. 그냥 남자들이 학교 따지고, 학벌 따지고, 그런 세계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리고 다시 그 세계로 돌아와있다.

 

6.

그 안에서 정말로 내가 분석해보고 싶은 얘기가 무엇일까, 지난 겨울 내내 고민을 해봤다.

 

40대 여성의 얘기, 그 삶을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나의 친구, 나의 후배, 나의 아내, 그런 좋든 싫든, 한 평생을 이미 같이 살아버린 그 사람들, 그리고 또 그들의 친구와 그들의 언니와 그들의 동생들, 그런 얘기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궁핍이 풍요를 느끼게 해준다고….

 

지금처럼 남성들 가득한 세상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니, 그와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생각이 더욱 애뜻해진다.

 

그리고 뭐가 다른지, 정말로 피부 세포가 감각적으로 느낀지, 약간은 좀 알 것 같다.

 

7.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청년들에 대한 첫 분석을 시작해보던 시절이 다시 생각이 난다. 그 시절, 주변이든 출판사든, 다들 반대했다. 청년, 그거 한국에서는 인기 없는 주제 아니냐

 

난 그 시절의 청년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걸 알 필요가 뭐가 있느냐, 그리고 뻔한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실제 나는 잘 모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뭘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시절 생각이 얼마 전, 여의도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그 눈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모른다는 것은, 분석의 출발점이다.

 

지금 한국의 40대 여성, 사실 잘 모르겠다.

 

8.

분석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도 필요하다. 분석 대상자에 대해서 애정이 없다면 제대로 분석이 되겠는가? 그 애정은, 차이에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남자들에 둘러 쌓여서 오랜만에 나도 순전히 남자들의 전투적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그렇지 않은 존재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애정이 생겼다.

 

막상 분석을 해보면, 무슨 결과가 나올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분석 대상에 대한 애정이 더욱 생긴다.

 

뻔한 거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건 연구자들의 기본 욕구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9.

2015년 대한민국 40대 여성, 내가 던진 새로운 질문이다. 감각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이런 경우 남도 모르고 자신도 잘 모른다.

 

연령과 성별 그리고 시대와 같은 조건을 집어넣고 하는 분석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분석이기도 하지만이렇게 구체적 조건을 주고 나면, 전혀 생소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경험적으로는 그렇다.

 

이렇게 생소한 질문 앞에 다시 한 번 서보려고 한다.

 

그냥 내 양심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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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책 한 권, 내년에

 

원래 경제 대장정 시리즈의 8권이 원자력을 비롯한 에너지 얘기에 할당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태경제학 시리즈로 5권에서 8권까지를 잡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생태경제학 시리즈가 워낙 매 권 힘만 엄청나게 들어가고, 성과는 없는지라

 

나도 강철이 아니라, 7권에서 일단 포기하고 9권을 먼저 냈다. 문화경제학 9권까지 내고, 에라 모르겠다, 그리고 쉬는 중이다.

 

8권을 살려보려고 노력을 좀 했는데, 아주 감성적으로, 포토 에세이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워낙 딱딱한 기술적인 얘기들이 많을 거라서, 좀 부드럽게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서

 

테스트 삼아서 포토 에세이도 한 권 내봤는데, 역시나 실패.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이래저래 헤매는 중이다. 10권은 농업 경제학, 그야말로 거의 안 팔릴 걸 감안하고 나의 양심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야 하는 상황이고.

 

11권은 과학과 기술의 경제학, 박근혜가 창조경제 얘기하면서 완전 김빠져서 에라 모르겠다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분야이기는 한데, 된장과학자들이 박근혜한테 그렇게 열심히 줄 댈 줄은 몰랐다. 빈정 팍 상해서, 안 해!

 

12권은 언론과 정당의 경제학, 그야말로 니미종편 출범하고 언론 환경은 이래저래 개판이 되어서, 그야말로 며느리도 몰라. 게다가 방송은, 내가 방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기 경험한 이후방송 얘기는 다루기도 싫고, 보기도 싫다.

 

내가 싫다는 밖에.

 

하여간 이러다 보니,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어디 처박혔는지 나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이 상태로 올해를 맞았다.

 

사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마당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죽어라고 머리 박고 고민하겠냐, 게다가 사전 연구비로 내 돈 엄청 써가면서

 

그래도 가을이 되면서, 내년 계획을 새로 절절하게 짜다보니, 일단 시작한 거는 어떻게든 마감을 지어야 좋지 않을까 싶어.

 

시리즈의 10권이 농업경제학이다. 어떻게 보면 나의 양심이다. 사람들이 이름 좀 알만한 경제학자 중에서 농업 얘기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내 출발점이 농업은 아니다. 그러나 내 양심이 향하는 마지막 종착지는 농업이다. 여전히 그러하다.

 

그리하여 은퇴하기 전에, 농업 얘기는 어떻게든 좀 정리를 해보자, 이렇게 해서 생각을 시작했드랬다.

 

최근에 농업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 이 구상을 시작했을 때보다도 더 안 좋아졌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그래도 비교적 모범이라고 할만한 프랑스도 독일도 농업 정책은 요즘은 개판 5분 전이다.

 

이렇게 하면 된다, 뭐 그런 게 없다.

 

그래도 나의 양심이니까, 내기는 할 것인데이걸 후년 작업으로 잡았다. 뭔가 새로운 흐름이 내년 상하반기에 나오지 않을까, 그런 가냘픈 희망으로.

 

개별 국가 정책은 개판이지만, EU 통합 정책이 아마 내년에는 좀 더 모습을 보일 듯 싶다.

 

그리고 미국의 변화도, 지켜볼 만하다. 미셀 오바마가 백악관에 텃밭을 시작했다. 푸드 스탬프의 후속 프로그램도 좀 지켜볼 만하고, 일본에서의 청년농업직불금 관련 조치들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내 평생에 농업경제학 책은 딱 한 번 낼 것인데, 상황이 안 좋은 상황에서 그냥 내가 아는 것만 정리해서,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

 

좀 더 기다렸다가 10권 내면서 그냥 시리즈 쫑 탁 내는 것에 대해서 요즘 고민하는 중이다.

 

그렇게 8권은 건너뛰고 10권에서 시리즈를 끝낼까 고민하던 차에

 

며칠 전 저녁 밥 먹다가 밀양 얘기를 보면서, 그냥 사람 죽어도 그만이라고 하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에너지 책은, 간단히 말하면 1쇄 털기가 아주 고욕인 책이다. 거기다 원자력에 반대하는 책, 힘은 힘대로 들고 성과는 없는.

 

몇 년 전에 기든스가 기후변화 관련된 책을 낸 적이 있다. 기든스, 그래 바로 그 제3의 길의 앤서니 기든스이다. 번역자는 홍욱희 선배, 이름 들으면 몰라도 그 때 그 사람, 그렇게 들으면 어지간히는 알만한 사람이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광화문 뒷골목의 중국집에서 탕수육에 빼갈을 정말로 맛있게 같이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옆에 같이 있었던 공무원 양반은 나중에 특허청장이 되었다. 숱한 논쟁과 치고박던 스토리 속에서도 그 양반과 그날 빼갈 마시면서 했던 얘기는 정말 좋았다.

 

이 양반이 한전 출신이다한전 그만두고 나와서 시민운동한 사람, 하여간 이름 하나만큼은 쟁쟁한 사람이다.

 

기든스의 책을 홍욱희가 번역했는데, 그래도 얄짤 없다이게 에너지 책의 한계치라고 보면 된다.

 

천하의 기든스가 써도 어렵다. 아마 움베르토 에코가 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원자력에 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얘기들을 다 모아서 한 번은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는 처음부터 포기하고

 

내가 에너지맨이었고, 에너지로 오랫동안 밥 먹고 살았고, 그걸로 살아왔던.

 

간단하게 책 구성을 생각해봤는데, 일단 책 한 권은 충분히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왜 원자력에 반대하는지, 그리고 그 대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근 민간 전문가 위원회가 하나 열렸고, 위원장을 김창섭 박사가 했다.

 

오래 된 동료이고, 한 때 내 몸처럼 아꼈던, 정말 내 친형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양반이다.

 

2004년도, 민주노동당 처음 원내 진출하는 그 총선 때, 탈핵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처음 썼고, 그 때 탈핵 프로그램을 디자인한 적이 있다.

 

10년 전 일인데, 김창섭 박사가 위원장으로 내린 기술적 결론이 그 시절에 내가 내린 결론과 같았다. 대가리 정상이면, 그 결론 외에는 없을 듯 싶다.

 

그 얘기를 10년만에 다시 꺼내볼까 싶다.

 

그 뒤에도 새로운 경험과 지식이 좀 얹힌 것들이 있다. 하다 보니 발전사 사외이사를 3년이나 했다. 발전소에서 무슨 고민을 하고, 뭘 하고 싶은지, 정말로 그 현장에서 몇 년을 보냈다.

 

그리그리하여

 

내년 상반기에는 간만에 에너지 관련 작업을 좀 해볼까 한다.

 

어떻게 보면 내 깊숙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공직을 그만둔다고 생각할 때, 원자력에 대한 내 입장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원자력을 반대하거나 아니면 반대한다고 입장을 표출하면, 에너지 분야에서는 고위직에 갈 수가 없다. 현실이 그렇다. 생각을 바꾸거나, 아니면 말을 하지 않는 지혜를 갖추거나.

 

당시 나는 3급 부장 말년차였고, 현장 팀장이었다. 슬슬 2급 부장 승진과 함께 초고속 처장 승진이 기다리던 때였다.

 

물론, 그 중간에 내가 원자력 찬성자로 입장을 바꾼다는 전제하에

 

몇 가지 그런 정황과 개인적인 학자로서의 판단을 종합해서, 나는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몇 년간 나의 아내는 빈처가 되었다.

 

그 시절의 얘기들과 그 후에 내가 더 알게 된 것들을 모아서 한 번 구상해볼까, 그런 고민 중이다.

 

왜 우리에게 원자력이 대안이 아닌가, 그 어쩌면 너무 뻔한 얘기들을 한 번 정리해볼까 싶다.

 

, 돈도 안되고, 힘은 힘대로 들고무엇보다도 여태껏 살면서 나와 계속해서 동료로 지내고 있던 사람들과 등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도 선택을 쉽지 않게 만든다.

 

그렇지만 마음과 양심이 가는 대로

 

밀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도 잘 모르겠다.

 

박근혜 하는 걸로 봐서는, 몇 명 죽더라도 공권력이, 질서가, 이렇게 갈 거다.

 

나도 그냥, 양심이 가는 대로 하려고 한다.

 

한 때,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공로로 장관 표창도 받았던 내가

 

이제는 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년도 상반기에 책 한 권 작업할 시간을 배정하고 있다.

 

제목까지는 정해놓았다. 쎈 제목이다.

 

양심을 버리면, 결국 나이 먹어서 행복을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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