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솔로 계급의 경제학'이라는 주제로 책을 내볼까 생각하면서 써본 최초의 스케치가 있다.

 

그 후로 진도도 많이 나갔고, 몇 개의 필승 카드도 생겨났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떻게든 내 손에서 10월말까지 초고를 떨어뜨려 보려고 한참 작업 중이다.

 

지금의 원고는 이 때와는 톤도 다르고, 접근도 전혀 다르게 되었지만...

 

하여간 이렇게 떠듬떠듬, 시작을 한 작업이다.

 

책 작업이 쉽지는 않지만, 돌아보면 그래도 나에게 가장 맞는 작업이 이 작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40대 중반, 이제 더 이상 나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때 내가 가졌던 열정 이상을 이번에 쏟아부으려고 한다.

 

스케치 작업만 몇 번을 했고, 이번만큼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많이 한 적도 없다.

 

내가 어디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는가,

 

나도 까먹을지 모를 것 같아서...

 

책 쓰기 시작하면서 언제나 내 방에서 그냥 쭈그리고 앉아서, 택도 없이 느린 컴 가지고 썼었는데,

 

이번에는 작업실 대신 여관방 잡아놓고 하는 것도 좀 하려고 한다.

 

전화기 꺼놓고.

 

하여간 중요한 주제이기는 한데, 아직도 결정적으로, 나는 답을 잘 모르겠다.

 

나올 때까지, 작파하고 고민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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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계급의 경제학 : 세습 자본주의와 무자식자들                                     

 

우석훈

 

< 들어가는 말 >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의 테제 11)

 

“지금까지 경제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심각하게 만들려고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웃기는 것이다.

 

(우석훈, 솔로 테제 11)

 

1. 자식자, ‘불알 두 쪽’, 프롤레스

 

로마 시절의 일이다. 노예가 아닌 시민 중에 돈이 없는 사람들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군대에 가기 위해서는 로마병의 중장갑 전투 장비를 자신이 직접 사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지킬 것이 없으므로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도 있었던 것 같다.

 

5년에 한 번 로마에서 진행된 시민들의 현황 조사에서 돈이 없는 사람들의 재산란에는 자식들의 이름만이 기록되었다. 그야말로 자식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 ‘자식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라틴어 proli 즉 자식이라는 말에서 proles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야말로 자식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군대에도 갈 수 없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로마 시민층 가난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조선 식으로 얘기한다면, 그야말로 불알 두 쪽밖에 없는 양인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은 우리는 상민이 아닌 모든 양인들은 군역의 의무를 지었다. 최소한 군대 앞에서 만큼은 경제적 차별이 없던 나라였다.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에는 군대와 시민권에 대한 흥미로운 설정이 나온다. 외계의 괴물, 벅스들과 전쟁 중인 미래의 공화국은 군대에 갔다 온 국민들에게만 시민권을 주고, 이들만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경제와 정치, 그리고 군대라는 이 복합적인 권력 중에서 군사 권력이 경제를 누르고 시민권을 통제하는 미래 사회가 설정되어 있다. 아마도 경제 권력이 너무 막강해져 문제를 일으켰는지, 결국 군인들이 기업인들을 통제했던 전사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군대에 가서 정상적으로 복무를 마치지 않으면 투표권을 가진 시민권을 받을 수 없다는 영화에서의 설정은 군대와 경제 사이의 관계의 한 단면을 생각해보게 한다.

 

재산이 없으면 군대에 갈 수 없고, 그래서 더더욱 가난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자신의 이름 뒤에 재산 항목으로 달려있는 것은 자식들 밖에 없는 프롤레스’, 그야말로 자식자, 자식 밖에는 없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2. 프롤레타리아, 팔 것은 몸 밖에 없는 사람들, 무산자

 

로마의 가난한 시민들인 프롤레스들을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끄집어 낸 사람이 바로 칼 마르크스이고, <자본론>에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고, 팔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 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자, 농민이라는 말로 쉽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말로는 자본가(capitalist)는 유산자, 즉 재산이 있는 사람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는 무산자, 재산이 없는 사람으로 번역된다. ‘생산 수단이라는 좀 복잡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 단어를 염두에 둔다면, 무산자라는 번역이 정확하게 원어의 뉘앙스를 살리는 것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의미는 재산이 없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생산수단, 즉 생산을 하기 위한 수단인 공장이나 회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더 가깝다. 자본가의 반대말이니까, 무산자라기 보다는 사장님이 아닌’, 그런 의미에 가깝다.

 

좀 잔인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좀 특수한 경제활동에서 누군가는 사람들을 고용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은 기본적으로는 임금 외에는 없다.

 

<자본론>에 정의된 착취의 개념은 좀 복잡하다. 롱 스토리 숏트, 긴 얘기를 짧게 정의하면 하여간 일한 만큼의 돈을 사장에게 지불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덜 지급된 임금이 바로 잉여가치, 즉 이윤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그 반면, 주류 경제학에서는 노동의 생산성이 바로 임금이기 때문에, 일한 사람이 자신이 생산에 기여한 만큼은 주고 있다고 이해된다. 착취가 있든 없든, 19세기 중후반에 자신이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 외에는 소득이 생겨날 수 없는 이 새로운 사람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를 새로 정립하면서 마음 속에 가졌던 생각일 것이다.

 

아주 추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은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들, 즉 사장님들과 노동자만으로 구성된다는 것이 <자본론>의 기본 논리이다. 그럼, 그 사장을 없애고 노동자들끼리만 생산을 하면 어떨까? 왕을 없애고 시민들이 참정권을 가지고 정치적 결정의 최고 위치에 가도록 만든 것이 프랑스 혁명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왕조를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그런 혁명의 순간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 왕이 직접 통치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 혁명이 한 번 더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이 19세기 중후반을 거치면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최초의 자본주의 형성을 마친 국가에서 생겨난 사회 사상이다. 논리적으로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희생과 고통을 담보로 한 생각이다. 러시아 혁명을 시작으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현실에 사회주의 국가들이 생겨났다. 우리와 같은 민족인 북한 역시 38선 이북에 있던 러시아의 영향권 내에서 사회주의로 근대 국가를 만든 나라 중의 하나이다.

 

3. 룸펜과 중산층

 

룸펜 정확히는 룸펜 프로레타리아라는 단어는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미 등장한 단어이다. 사장과 노동자만으로 사회가 구성되는 것은 아니고, 이건 지금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형성 초기에도 그랬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노동자만 해도 그래도 양반인 것이고, 그 상황에도 가지 못하는 부랑자, 소매치기, 좀도둑, 방랑자, 이런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그들을 룸펜이라고 불렀다. 간단히 말하면 생산 시스템을 기반으로 기본 프레임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룸펜인 것이다. 그럼 그들은 뭘 먹고 사나? 혹은 그들은 일하지 않는가? 영화 <도둑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일을 하는 것이기는 한데, 그 일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들도 노동하는 것인가? 혹은 그들에게도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아주 오래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의 칭송을 바쳐야 하나?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나오는 기막힌 사기꾼을 가치와 생산이라는 틀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상업영화의 제작 및 유통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고, 그것도 아주 자기만족적인 의미로 영화를 제작하거나 다큐를 만드는 인디 영화나 인디 다큐의 종사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런 룸펜들과 함께 또 다른 고민의 대상이 요즘은 그냥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중간계급(middle-class)'라고 할 수 있는데, 어원적으로는 그냥 소득이 중간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더 복잡한 얘기들이 있다. 사장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은 룸펜이야"라고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직업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공무원들이 그렇다. 요즘은 공무원들도 직급에 따라서 노동조합을 만들지만, 그렇다고 공무원이 노동자인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한 때 전세계를 풍미했던 루이 알뛰세의 국가 이데올로기 기구라는 테제에 의해서, 국가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유지하는 장치라고 하면 설명은 쉽다. “너희는 자본의 개들이야”, 이렇게 한 쪽 편으로 밀어버리면 말은 간단하지만, 어딘가 좀 찝찝하지 않은가? 종교인들도 분류가 어렵다. “종교는 아편이다”, 이렇게 자본가편이라고 밀어붙이면 이해는 쉽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종교를 처리하기도 어렵다. 자본주의보다 더 오래된 기관인 대학교, 여기의 교수들, 이 사람들은 또 뭘까? 어차피 일을 해서 월급을 받으니까 노동자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장관 자리에 오르는 웨이팅으로는 또 가장 좋은 직업인 만큼, 통치자 쪽으로 이해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다. 매일매일 드라마에서 보는 스타급 연기자들 그리고 그 자신이 회사인 것도 아니면서 회사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A급 영화감독들, 이 사람들도 자본과 노동자라는 간편하고도 단순한 분류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해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군인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군인은 도대체 어떠한 경제적 위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연금과 재산을 가지고 있는 퇴역한 장성들, 이들은 또 무엇인가?

 

하여간 중간계급 혹은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그렇게 쉬운 개념은 아니다. 한국의 도시가계 연평균 소득이 4,500만원 정도 된다. 도시에 살면서 연소득 4,500만원을 버는 가장이 자신이나 그 식구들이 자신들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듯싶다.

 

4. 블루 칼러와 화이트칼러 그리고 슈퍼을들의 창조계급

 

20세기를 거치면서 노동자 사이에도 분화가 이루어졌다. 공장과 사무실 사이의 분화, 그래서 한 쪽은 작업복을 상징하는 블루칼러, 또 다른 한 쪽은 흰색 와이셔츠를 상징하는 화이트 칼러, 그렇게 나누어서 이해하게 되었다. 어렵게 따지자면 한없이 복잡하겠지만, 이 내용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사무직과 공장직,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고, 대졸과 고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서울 본사에 근무하는 문과와 지방 공장에 근무하는 이공계의 차이로 드러나기로 하였다.

 

좀 큰 눈으로 생각해보면,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블루컬러에 해당하는 노동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그 대신 판매 등 경영과 관련된 역할이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임금으로 볼 때 꼭 화이트 칼러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두 종류의 노동 사이에 사회적 위계와 선호 관계가 설정되는 경향이 있다.

 

직업이 귀천이 없다’, 우린 늘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는 별로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연봉에 따라, 일의 성격에 따라 그리고 근무지에 따라, 직업에 대한 선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이런 노동 방식의 차이에 따라 노동자 사이에서도 처지와 이해가 갈리게 된다. 여기에 자본주의 초기부터 존재했던 중소기업의 문제가 한국에서는 해소되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남아있다. 대기업에 갈 것인고, 공기업에 갈 것인가 혹은 중소기업에 갈 것인가, 이 자본의 성격에 따른 구분이 화이트/블루의 구분만큼 개인의 삶을 극명하게 가르게 된다.

 

굵고 짧게’, 이는 대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연봉은 많지만 오래 일하기 어렵다. ‘가늘고 길게’, 이는 공기업을 의미한다. 연봉이 민간 기업만큼 높지 않지만, 여전히 정년을 보장받고 있으며, 정규직 체계 내로 들어가면 그냥 그렇게 특별히 모나거나 특별히 구질구질하게 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가늘고 짧게’, 이건 중소기업을 상징하는 말이다. 연봉이 적은데, 또 언제 망할지 모르니, 가늘고도 짧은

 

'미스매칭'이라는 용어에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구직을 하라고 정부의 애잔함이 담겨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주어진 현실이 이러니, 선택지가 별로 없다. 마르크스가 얘기한 프롤레타리아, 팔 것은 몸 밖에 없는데, 그나마 잘 안 팔리고, 이래저래 잠시만 다른 데 돌아보고 있으면 삽시간에 룸펜이 되어버리는 삶, 그게 현재 스코어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누군들 가늘고 짧게살고 싶겠나. 할 수만 있다면 굵고 길게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 아닌가? 화이트컬러든 블루컬러든, 결국 회사에 고용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초기 선택의 작은 차이가 개인의 삶의 인생경로를 엄청나게 바꾸게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자신의 미래로써 중소기업은 영 아니고, 공기업은 힘들고, 대기업도 만만찮은 것은 마찬가지이고, 이렇게 사람들이 삶의 주판알을 튀기는 동안, 미국에서 환상적인 계급이 새로 출연하였다. 격론의 대상이 되었던 리처드 플로리다가 얘기한 창조계급(creative class)이 그것이다. 과학과 문화를 막론한 고소득 직종이 창조성을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그의 얘기는 창조성과 함께 도시의 관용성(tolerance)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왔다. 가히 게이논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함의를 가진 이 논의를 쉽게 정리하면, 게이가 많이 사는 도시에 창조계급이 많이 산다는 것이다. 물론 창조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게이라는 말은 아니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루이 뷔통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크 제이콥스는 물론 창조계급이며 동시에 게이다. 간단히 말하면, 마크 제이콥스가 살기에 불편하지 않은 곳에 다른 창조적인 인간들도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학자나 작가 혹은 영화인들은 많은 경우 독창적이며 동시에 괴팍한 사람들이라서, 전통적인 규범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익명성을 존중하지 않는 곳은 불편해서 살기가 어렵다. 플로리다의 이런 얘기들은 너무 간단한 것이라서 그게 맞을까 싶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유교적인 전통성이 강해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대구의 경우, ‘밀라노 프로젝트는 충분한 정부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창조적으로 경제 구조가 바뀐 흔적을 보기가 어렵다. 이 밀라노 프로젝트 실종 사건에 대해서 경제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기는 한데, 그 중 가장 창의적인 해석이 <도시와 창조계급>이라는 플로리다의 테제를 따르는 방법이다. 분명 대구에는 돈이 갔는데, 사람들이 따라가지는 않았다. 유교적 전통에 따른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여성들과 게이들에게는 분명히 살기 어려운 도시 여건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래서 창조적 인간들이 대구에 거주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검증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쨌든 한 가지 설명은 될 것이다.

 

사회적 선호도는 블루칼라<화이트칼라<창조계급, 이 순서대로 나갈 것이다. 푸른 작업복을 입는 것보다는 넥타이를 선호할 것이지만, 그 위에는 다시 넥타이를 맬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창조계급의 영웅, 스티브 잡스도 넥타이를 매지 않고, 또 다른 한 편에 서 있는 마크 제이콥스도 마찬가지이다. 한 때 방송인 중에서 가장 많은 소득을 올렸던 강호동 역시 넥타이를 매지는 않는다. 이 넥타이를 매지 않는 새로운 계급에서 상층부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 줄을 서서 모셔가는 '슈퍼을'을 형성한다. 창조성, 상징적 자본, 매력자본, 이런 슈퍼을 현상을 설명하는 몇 가지 개념들이 있기는 하다. 어쨌든 모두의 노동 조건이 동일한 것은 아니며 임금 조건 역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5. 자동화와 프레카리아트

 

블루칼러에서 창조계급에 이르는 일련의 직업 분화와 추이를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가설이 있기는 하다. 로봇 등 자동화를 중심으로 이해하면 좀 더 간편하다. 지난 100년 동안 노동자들이 했던 많은 일들은 이제 로봇 등 자동화 기기로 대체되었다. 자동차 조립공정에서 이제 사람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설치된 자동화 로봇의 보조 역할에 가깝다. 물론 아직도 수작업으로 자동차 조립을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걸 만드는 사람들은 블루칼라라고 부르지 않고, 장인이라고 부른다. 일부 슈퍼카들을 만들 때 수작업 조립을 한다.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로 노동의 주축이 옮겨간 것은 공장 자동화 과정과 어느 정도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개인용 PC의 보급과 함께 전산 자동화가 이루어지면서 화이트칼러의 자리도 상당 부분 위협당하게 되었다. 지금 화이트칼러의 일자리 중에서도 상당 부분은 결국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여성 내근직의 대표적이었던 전화 교환수가 결국에는 사라지게 된 것이 이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공기업이었던 KT가 민영화되고, 그 정리해고 과정에서 이런 전환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직종들이 몇 가지가 있다. 창조계급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직업들이 대체적으로 로봇화 혹은 자동화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로봇 디자이너, 로봇 영화감독, 로봇 연구자, 이론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여전히 사람들이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디자인한 웨딩 드레스, 전위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과 고가에 팔릴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청년이 자신의 미래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로봇과 경쟁하게 될 것인가 아닌가, 그 기준이 아닐까 싶다. 공무원! 탁월한 선택이다. 대통령이 로봇으로 대체되는 일이 없는 한, 공무원과 국회의원은 적어도 지금의 대학생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여전히 사람이 할 것이다.

 

블루칼라에서 창조계급까지, 노동활동이 중심축이 움직이는 동안, 기계화가 불가능하거나 기계화가 필요 없는 새로운 노동양식이 등장하게 되었다. 유자식자라는 의미의 프롤레타리아와 위험하다는 의미를 가진 precarious라는 형용사의 결합어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그것이다. 불안하고 가난한 노동자 정도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불완전 고용, 불완전 노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리는데, 요즘 우리 말는 비정규직이라고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 중에도 슈퍼을들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파견노동자와 알바까지 포함하는 일련의 노동 양상, 그들을 의미한다.

 

프레카리아트 현상이 지금 막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자본주의 초기부터 존재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경우에도 자본주의 방식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이후의 일 아닌가? 그렇다면 그 이전의 사람들은 무얼 하고 살았단 말인가?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그 도시 빈민들이 지금의 프레카리아트보다 부유하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프레카리아트 현상에 대해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이지만 세계경제 특히 선진국 경제가 더 이상 '발전' 패러다임에 따른 고성장을 하기가 어렵다는 전망을 갖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덩치가 커져나가고 있을 때에는 내부의 문제가 뻔히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갖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러나 그런 식의 고성장이 어렵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지하고 나면, 지금 풀리지 않는 문제가 나중이라고 풀릴 리가 없다는 것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말을 했다. 이제,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단결하라", 이런 선언이 필요하게 된 시기가 도래하는 것일까? 한 쪽에서는 기계로 대처될 수 없는 고급노동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창조계급'으로 분류되는 동안, 이제는 사람값이 너무 싸서 굳이 비싼 로봇으로 대처할 필요가 없는 노동을 중심으로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을 눈 앞에 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분화 현상이 한국에서는 너무 빠른 시간 동안에 벌어지기 때문에 특정 세대 혹은 특정 연령에게서 동시에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청년은 창조적이며, 동시에 프레카리아트적이다. 이제 막 패션 디자이너나 연예 기획사 막내로 데뷔한 20, 그 어느 쪽이든 아직은 가능하다. 창조계급 쪽의 눈으로 본다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면 최소한 밥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화 노동자로 본다면, 실업보험 등 4대 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알바 혹은 그 이하의 경제적 삶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확률로만 본다면, 후자 쪽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 , 그래서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상관 없어요, 어차피 잘 안될 꺼니까요."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말이다. 그러나 자동화의 끊임없는 진전과 한계 노동의 계속적인 등장이 끝이 아니다. 창조계급과 '불안한 노동'과 같은 새로운 트렌드에 얹혀서 또 다른 장파동의 변화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 있다.

 

"애인 있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아보신 적이 있으신가? 어쩌면 멀지 않은 장래, 결혼정보 회사 아니면 이런 질문을 아예 하지 않을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전쟁이나 페스트와 같은 아주 특수한 상황 아니면 전 세대가 다음 세대보다 부유했던 적은 없었는데, 한국은 부의 상대적 안정성 측면에서 다음 세대가 전 세대 보다 가난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기어야 지금 와서 새삼 놀라울 일은 아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빈곤 현상과 함께 섹스도 줄어들게 될 것인가? 로마 시절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안정적으로 작동하던 가부장 중심의 가족 패턴은 이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섹스와 부의 연관관계,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은 아닐까? 돈과 섹스 혹은 경제적 부와 섹스, 이 문제에 대해서 경제학이 질문을 던져본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겠다.

 

엘빈 토플러 이후의 미래학자들은 세상을 지나치게 기술중심적으로 예측하였고,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지독할 정도의 낙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동화와 전산화 그리고 코뮤니케이션의 발전은 이미 상당 기간 전에 예측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 아래에서 살고 있고, 그러한 기술적 발전이 만들어내게 될 또 다른 이면에 대해서 미래학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자동화가 만들어놓은 기술적 전환은 노동자들의 권력을 현저히 약화시켰고, 동시에 그들의 경제적 삶도 열악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결혼은? 결혼은 모계제 사회가 종료하고, 수컷들이 농업을 전담하게 되면서 생겨난 장치이다. 이제 이 열악해진 노동자, 아니 노동하기도 쉽지 않아진 상황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재생산(reproduction)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그리고 섹스는?

 

6. 신빈곤 현상과 메이팅의 위기 : 솔로계급의 탄생

 

연애와 결혼, 섹스에도 좌우가 있느냐 싶겠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 보수층이 강력한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여기에 따라서 종교적 입장과 정치적 입장이 일정하게 궤를 같이 한다. 한국의 보수는 여전히 유교적 전통이 강한 영남 지역의 정서와 강남 대형교회의 지배력이 적당히 결합된 것이라서, 가부장적 권위에 익숙한 집단이다. 혼전 순결에 대해서 입장이 나뉘고, 게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처리에서 입장이 나뉘고, 성폭행 방지법에 대해서 확실히 입장이 나뉜다.

 

자식자 혹은 유자식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로마 시대의 가난한 시민은 자본주의 출발 초기에 노동계급을 지칭하는 은유로 사용되었다. '클래스(classs)'라고 이름 붙여진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898년 톨스타인 베블렌의 <유한계급론(Theory of Leisure Class) >가 아닐 수 없다. 충분히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부유층에 관한 얘기이며, 과시적 소비에 관한 베블렌 재화는 여전히 패션, 알콜, 승용차 등 소비 현상에서 중요한 분석 기준이 된다. 창조 계급의 경우도 기본적으로는 클래스에 관한 은유를 전제로 하고 있다. 2012년 대선이 끝난 직후 크리스마스 이브에 진행된 '솔로대첩'으로 크게 유행하게 된 '솔로계급', 아마도 가장 슬픈 계급론이 아닐까 싶다. 추세적으로 결혼은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과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아마도 지금의 대학생 중에서 1/3 내외가 전통적으로 '가정' 정확히는 핵가족(nuclear family)의 형태를 이루며 출산을 하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그랬듯이 특히 가난한 여성에게 "결혼하라"는 정부와 교회의 메시지가 끊임없이 협박처럼 갈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데살로니가 후서 3 10.)

 

마치 성경에서 노동을 권면하였듯이 보수적 교단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고 말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카톨릭이든 기독교든, 기본적으로는 현 상태를 지키자고 하는 보수적인 종교들인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결혼과 출산에 관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칼빈 시대의 신구교 대립 이후 결혼하는 목사들과 결혼하지 않는 신부들 사이의 예민한 종교 갈등을 다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1인 가구, 즉 솔로들의 증가는 세계적 추세이다. 그렇지만 연애하지 않는 혹은 연애하지 못하는 '솔로 계급(solo class)'의 사회적 등장은 이보다는 좀 더 복잡한 문제이다. 호모 사피엔스로 인류가 등장한 이래로 모든 남녀가 연애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엇갈려 가는 삼각관계의 슬픔과 긴장감 아니었다면 문학이 지금과 같이 융성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로맨스 코메디 같은 영화 장르는 성립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솔로의 증가가 솔로계급의 증가와 연관을 보일 것인가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굳이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다. 가난과 출산 사이에 기계적인 연관관계를 설정하기도 어렵고, 또 결혼과 연애 사이에도 유기적 관계를 찾아보기 어렵다. 연애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는 것처럼,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연애를 안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90년대 중후반 이후로, 많은 경제적 혹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이게 모두 신자유주의 때문이다"라는 간편한 - 그렇다고 진실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 해법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식코> 이후, 의료 문제에 대한 설명은 미국식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이렇게 간편하게 답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전 세계적 부동산 버블, 이것도 신자유주의라는 편안한 설명법이 있다. 유전자 조작식품의 증가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인한 핵발전 문제에 대해서도 민영화와 에너지 산업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면 간단하지만 그리 틀리지 않는 설명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여기에 한국적 특징을 가미하기 위해서는 "이게 다 명박 때문이다", 이러면 되었다. 조금 더 구조적인 설명을 추가하기를 원한다면 "이게 다 삼성 때문이다"라는 것 하나를 추가하면 안성마춤이다. 좀 더 과학적 설명을 추가한다면 "김용철 변호사에 의하면"이라는 수식구 하나를 더 하면 완벽하다. 문재인 후보의 의료비 상한제 공약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이런 얘기들을 종합해서 "결국 삼성화재가 돈 벌어야하기 때문에"라고 말하면 근사도 95% 이상의 설명틀이 된다. 그리고 보수 쪽 학자들의 침묵에 대해서는 삼성에서 돈을 받았거나 삼성의 눈치를 보기 때문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 된다.

 

이런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동원한 간편한 설명이 솔로 현상에서는 잘 맞지는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불이 넘어가는 스웨덴의 경우,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형태로 살아가는 성인들이 1/3이 채 되지 않는다. 1인 가구 비중은 60%를 넘어설 기세이고, 그러다 보니 혼외 출생 국민의 비중이 절반이 넘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 사람들이 덜 사교적이거나 공동체의 해체가 급격히 이루어지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억지로 논리를 만들자면, 혼자 살 수 있으니까 혼자 사는 나라와 혼자 살 수밖에 없으니까 혼자 사는 나라, 그 정도의 차이라고 할까?

 

좀 더 중립적이기 위해서 '메이팅(mating)'이라는 용어를 써본다면, 지금 한국이 당면하는 위기는 경제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메이팅의 위기이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 심지어는 가정의 평화를 꾸리는 것까지 전부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던 사회가 좀 더 현명해지고 자유롭고, 자신의 권리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여성들의 등장과 함께 메이팅의 위기를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다른 아무런 조건이 없어도 메이팅의 위기는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청년을 중심으로 신빈곤 현상이 확대되는 가운데 메이팅의 위기를 만나게 되었다. 원래도 기대 소득이 남성보다 낮은 여성들은 더더욱 결혼과 출산의 비용을 높게 느낄 것이고, 메이팅 비용을 전가받을 수 없는 남성들 역시 출산 비용은 물론이고 연애 비용에 대해서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이래저래 메이팅은 위기가 되었다. 그러면 소득 보전을 해주든, 보조금을 주든 아니면 청년을 위한 분배를 늘리든, 어쨌든 청년들 손에 더 많은 돈이 가게 하면 이 문제가 끝날 것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건 '문제-해법'의 전통적인 접근법보다는 '변화-적응(adaptation)'이라는 좀 더 생태학적인 접근 방법에 가까워 보인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결혼해라"라는 단순 명쾌한 답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은? 한국의 50대 이상 남성들, 결혼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해서 얼마나 적대적으로 대할 것인가, 눈에 선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직까지는 그렇게 다른 반응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지금 한국 경제가 가지고 잇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는 유효한 수단 중의 하나로 복지 좀 더 정확히는 보편적 복지를 늘려나가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복지를 늘려서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보주의자들 역시 출산율을 자신들의 정책 성과로 이해하게 된다. 지금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그렇다. 변죽만 울리다 별 성과 없이 끝났던 오세훈의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를 표방한 '여행 프로젝트'나 출산율 중심으로 복지를 사고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을까? 스웨덴의 사례를 보면, 복지를 높여서, 여성이 행복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출산율을 높이자는 일련의 공식이 그렇게 진보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좌파의 시각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청년들의 솔로 현상 혹은 솔로 계급화 현상에 대해서 좌우 모두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은 입장 정도이다. 그야말로 '요즘 젊은 것들, 끌끌!'의 솔로 버전인 셈이다. 이데올로기는 시대와 함께 변해나가는데, 솔로 현상에 대해서는 기존의 이데올로기들이 아직 채 정비를 하지 못한 상태이다.

7. 세습 자본주의와 솔로계급, 한국은 어디로 가는가?

 

한국에서 3대 세습은 어느덧 일반화되었다.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어쩐지 찜찜한 것은 '3대 세습'은 북한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세습이라고 얘기하면 아버지에서 자식으로 넘어가는 것인데, 어느덧 안정화로 넘어간 한국 자본주의에서 3대 세습은 이제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 삼성, 현대 등 대표적인 재벌 기업들이 지금 3대 세습을 준비하고 있고, 언론은 물론 교회 심지어는 대학 등 학교법인도 3대 세습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이 경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고정 관념들이 여지없이 관철되면서, 누군가는 좀 더 쉽게 삶을 살고,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빈곤 상황에서 나올 수 없는 일들이 보다 더 일반화되고 있다.

 

세습이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인 것은 아니다. 포디즘을 만든 바로 그 헨리 포드는 엄청 구두쇠였고, 그 아들인 포드 2세는 씀씀이가 컸다고 한다.

 

"내 아들은 아버지가 포드이지만, 저는 아버지가 포드가 아니잖아요."

 

구두쇠인 그 포드가 어떤 기자에게 했다는 답변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그렇지만 포드사도 여러 번의 경영위기를 거치면서 전문 경영인 체계가 되었고, 더 이상 포드 가문이 몇 대씩 승계하는 그런 구조에서는 벗어났다. 무엇보다도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당대에 대기업을 일으킨 사람들이 상징적으로 등장하였고, 그들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회사를 승계하지 않는 일을 보면서, 한국에서 3대 세습에 대해서 질문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 아니겠는가?

 

그렇다. IMF 경제 위기 이후 한국의 주류 경제학의 이데올로기대로 경제 운용을 했는데, 한 쪽에서는 사회적∙문화적 이유가 아닌 경제적 이유로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도 어려운 솔로 계급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습이 기본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습형 사회는 왕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세습으로, 정치적으로는 이미 완성된 셈이다. 정치와 경제, 이 필연적으로 연결되면서도 선후를 따지기 어려운 두 요소 중에, 최소한 한국에서 세습이라는 관점에서는 정치가 먼저 진행되는 듯싶다. 그렇다면 1945년 해방 이후, 아니면 1961 5.16 이후로 도대체 한국 자본주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달려온 것일까? 그냥 편하게 얘기하면, 양반과 양반 아닌 사람으로 구성된 한국의 중세에서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서구식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 한 쪽에서는 보통은 3대 아니면 2대로 구성된 세습 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는 한 계급과, 결혼은 물론이고 스웨덴식 혼외출산의 가능성도 없는 또 다른 계급으로 분화되는 이상한 시대로 향하고 있다. 결혼은 하지 않았어도 출산이든 입양이든, 아이를 키우는 여성 그리고 비록 자신이 양육권은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아이가 어디서든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성, 이것과 한국의 솔로계급은 좀 양상이 다르다.

 

이 정도면, 도대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자본주의라는 껍데기를 쓰고 실제로는 중세 사회로 한국 사회가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질문을 던지기에, 근본적인 딜레마가 한 가지 존재한다. 솔로들에게 왜 솔로인가, 이 질문은 너무 잔인하고, 솔로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필요 없는 질문이 된다. 확률적으로, 언제 깨어질지 모르지만 일단은 외형적으로는 평온한 중산층으로 보이는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 솔로 현상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끌끌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질문은 좀 다른 식으로 전개된다.

 

솔로 시대에는 어떤 산업이 뜨고, 어떤 상품이 인기가 있겠는가?”

 

영민하고도 정확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최소한 자본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사람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장사꾼들이 굳이 알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물건만 팔면 되지! 한국의 자본주의는, 어쨌든 세계 유일이며 세계 최초로 과외를 사교육으로 산업화시키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식회사 단계로까지 승화시킨 시스템 아닌가?

 

뭔가 세상에 대해서 엄청나게 복잡한 질문을 던지거나, 아니면 세상을 구원할 방법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독자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거나 혹은 나도 잘 모르는 답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 책 한 권을 읽으면 엄청난 깨달음이 생길 것이라고 강변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삶에 피곤하게 갇혀 살면서 극단적인 비관론이나 염쇄주의 혹은 가벼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을 호소하는 동안, 또 다른 한편에서는 쇄습 자본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좀 억울하지 않은가?

 

솔로가 늘든 말든, 솔로계급이 늘든 말든, 한국 자본주의는 별 특별한 전환점이 없다면 더욱 더 세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갈 것이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우리의 대통령 – ‘그들만의대통령이 아니라 이 스스로 솔로라는 사실 정도? 그리하여 박씨 성을 가진 소황제가 노인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권좌에 등극할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

 

좀 심각하게 사태를 말하자면, 지금까지 오랫동안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생물학자들도 그럴 것이라고 간주한 '이기적 유전자'의 가설이 사회 한 쪽에서는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명체의 존재 이유는 딱 한 가지, 자신의 유전자를 더 넓게 퍼뜨리고자 함이라! 그리하여 자기 자식을 더 많이 낳고, 무엇인가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이 힘들고도 고달픈 삶을 버티고 있음이라!

 

사회 상층부는 어쨌든 세습을 통해서 '영광과 번영!(Glory and Prosper!)'을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동안, 다른 한 쪽은 청년 시기부터 솔로계급으로 편입되어, 자신의 한 몸을 먹여 살리고 너무 구질구질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서 혼심의 힘을 쏟아야 하는 구조, 이러한 대한민국으로 가고 있는 게 과연 한국 경제의 목표이고 종착역인가? 오랫동안 군부 독재 아래에서 한국 경제가 이어져왔다. 그리고 10년에 걸친 민주당 정부, 다시 10년에 걸친 보수 정부, 그 시간 동안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무엇을 한 것이고, 우리가 가려고 했던 세상의 목표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8. 나를 위해 살 것인가, 우리를 위해 살 것인가? : 경제학의 진정한 의미

 

고전철학의 종결자이자 현대를 디자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학의 시원'이라고 하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1. 남아당자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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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계급의 질문, 간단 정리

 

1. 메이팅의 위기

나쁜 남자, 젊은 오빠, 연하남, 프렌디

 

2. 경제적 동기

 

3. 적대감

 

4. 젠더 전쟁

 

5. 세대 전쟁

 

6. 공간의 재구성

 

7. 금융과 싱글

 

8. 최저임금과 기본 소득

 

9. 방송, 출간, 영화 등 문화 부문

 

10. 교육과 솔로

 

11. 가족과 가족 아닌 사람, 그 두 그룹의 관계

 

12. 관계의 경제학

 

13. 사랑의 노동

 

14. 흑인 여성이 편의점에 온다면?

 

15. 솔로를 위한 정책 아니면 엄마를 위한 정책?

 

16. 창조경제와 중공업 그리고 경공업

 

17. 교육과 솔로

 

18. 가난한 솔로

 

19. 부등가 교환 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20. 착취, 성적 착취, 솔로 착취

 

21. 가난한 solo vs 부자 solo

 

22. 솔로들의 정치

 

23. 여성들의 미래

 

24. 솔로와 스포츠

 

25. 솔로와 농업

 

26. 솔로와 군대

 

27. 엄마 사회냐, 언니 사회냐?

 

28. 사회주의와 솔로 현상

 

29. 출산률이 다가 아니다

 

30. 비자발적 솔로, 어쩌라구?

 

31. 고립과 연대

 

32. 솔로와 쇼비니즘 그리고 국가주의

 

33. solo와 자원 그리고 생태

 

34. solo와 에너지 효율성, 통합 그리드

 

35. 메이팅 산업과 거래로서의 결혼 그리고 이혼

 

36. 혼자 늙어가는 남성

 

37. 혼자 늙어가는 여성

 

38. solo와 관광

 

39. 솔로문학, 솔로예술?

 

40. 기계로 대체되지 않는 노동

 

41. 혐오와 증오

 

42. 클라스로서의 솔로

 

43. 군인들의 조직, 솔로들의 조직 그리고 기업론

 

44. 솔로와 반려동물

 

45. 솔로 시대의 국민경제와 거시경제

 

46. 연금문제 등 경제 제도 - 제도를 사람에 맞출 것인가, 사람을 제도에 맞출 것인가?

 

47. 가부장제 그 이후의 삶

 

48. 풍요 그 이후의 고독

 

49. 헤겔이냐 프로이드냐?

 

50. 솔로의 합리성, 합리적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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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계급의 경제학, 헤매는 중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올해, 나는 되는 일이 없다. 뭘 해도 잘 안되고, 어떤 시도를 해도 별 볼 일 없다.

 

보통 나는 계산을 많이 해보고 움직이는 편이다. 계산 같은 건 전혀 안하고 안 따지는 듯하기는 하지만, 사실 생각보다 많이 따진다. 그리고는손해 볼 것 알아도 의리나 명분에 의한 결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의리, 뭐 아닌 듯싶게 살아왔지만, 의리에 의한 결정도 많이 내렸다. 그렇지만 손해 본다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다.

 

하여간, 딴 건 몰라도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내 계산은 거의 맞지 않고, 나도 내 계산을 믿지 않는다. 올해는 무조건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최악으로 안될 것이다, 그런 예상들은 잘 맞는다. 그걸 꼭 계산해봐야 알고, 예상해봐야 아나

 

그러면 아무 일도 안 해야 하고, 가만히 있는 게 맞는데, 8월이 막 시작되는 지금까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고, 예상보다 많은 시도를 했다.

 

그래서 결과가

 

연전연패.

 

아놔,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맞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다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막 던진 건, 박근혜와 살게 된 첫 해, 아주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머리 박고 있었다

 

그렇게 박근혜 시대에 나는 조용히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어려울 줄 알았다, 그렇게 내 삶에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잠시는 현명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것 같았다.

 

하여간 그렇게 해서 올해, 나는 연전연패 중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정답이긴 한데, 그럴 수는 없어서 움직이기는 하는데, 내 실력에.

 

이렇게 헤매는 와중에 새롭게 붙잡고 있는 연구 주제가 솔로 계급의 경제학이라는 거다.

 

보통 같으면 도서관에 몇 년씩 틀어박히고, 볼 수 있는 책은 싹 다 뒤지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나고

 

지금은 그러기가 어렵고. 아기 보는 와중에 며칠에 한 번 잠깐 인터뷰하고.

 

컴 작업은 낮에는 상상도 못하고, 노트북 아니라 노트도 아기 앞에서 꺼내놓기가 어렵다.

 

이러다가 진짜 애기 업고 방송 촬영하러 나가게 생겼다. 당장 이번 주는 수요일 오전부터 촬영인데, 아기 맡길 데가 없다. 에라, 정 안되면 그냥 아기 들처 엎고 나가야겠다. 그러는 중이다.

 

하여간 연구자로서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냥 그냥 버티는 중이다.

 

이 와중에 솔로로 지내는 사람들 인터뷰하고, 의견들 묻고, 그런 걸 모아낼 수 있는 데이터 뒤져보니와 죽겠네.

 

민간기업에서 연구할 때에도 이 정도로 최악은 아니었고, 국제협상 나가는 틈틈이 데이터 뒤져볼 때에도 이 정도로 열악하지는 않았다.

 

그렇기는 한데

 

워낙 주제가 재밌는 주제다. 그리고 야구로 비유하면, 뭔가 배트 끝에 딱 걸렸다는 느낌?

 

연구 여건으로는 최악의 상황이기는 한데, 나름대로는 주어진 조건 내에서는 최선을 다 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솔로로 시작했다가, 청년에 관한 얘기 그리고 젠더 이코노미라고 잠정적으로 이름 붙였던 책 세 개 분량의 얘기들을 지금 한 권에 따 내려놓는 중이다.

 

솔로라는 게, 꼭 청년에 대한 얘기인 것만도 아니고, 꼭 여성 혹은 젠더에 대한 얘기인 것만도 아니다. 구분을 하면 별도의 얘기이기는 한데, 결국에는 그 얘기가 그 얘기이다. 억지로 나눌까, 아니면 합칠까, 나는 합치는 것을 선택했다.

 

그 와중에 최근의 변화에 대해서 좀 극적으로 느낀 게 있다.

 

남성들의 여성에 대하 적대감이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것, 그리고 연령이 낮아질수록 이게 더욱 더 높아진다는 사실.

 

이건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흐름과는 좀 다르다.

 

90년대 이후,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다음 세대가 될수록 마초 지수는 낮아지고, 좀 더 젠더 평등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우리는 생각했다. 어쨌든 추세상, 그 때의 예상은 틀리게 된 것 같다. 90년대 중후반을 정점으로, 남성들은 점점 더 여성들을 혐오하고 적대적으로 느끼는 듯 싶다.

 

그리고 지금 고등학생은?

 

이게 전수조사를 해보지 못해서 뭐라고 하기는 그런데, 최소한 여성에 대한 적개심은 일베 수준으로 현재의 고등학생들이 높지 않을까

 

이런 게 일단 작업 가설이고.

 

대안 학교 남학생들은 전혀 다를 듯싶지만, 아직까지 살펴본 바로는, 뭐 그닥.

 

시간만 좀 더 있고, 자금만 여유가 있으면 이건 좀 더 현황 조사를 해보고 싶은데, 현재 상태로서는 곤란하고.

 

90년대 초중반의 유럽과는 지금 한국의 10~20대 의식의 흐름은 좀 다른 듯 싶다는 작업 가설 하나 정도로.

 

청년 경제에 관한 건, 워낙 오래 작업하던 거라서 어느 정도 기초 작업이 되어있는데, 젠더 이코노미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흐름으로 예상했던 거와 다른 추세가 꽤 튀어나온다.

 

어쨌든 책 작업 시작하고 처음으로 목차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 벌어졌다.

 

목차 안 잡고 작업했던 책들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중간에 다음 목차 잡아가면서 썼던 책들이 좀 많이 팔린 책들이었다.

 

그렇지만 일부러 목차를 안 잡지는 않는다. 잡으려고 했는데, 못 잡았던 것일 뿐이고.

 

솔로 얘기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던 책을 세워놓고, 다시 디자인한 경우라서 목차는 걱정도 안했는데

 

하여간 지금 목차도 못 잡고 있다. 결론은, , 당연히 못 잡고 있고.

 

아마도 당분간 더 헤맬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만에 딱 걸린 느낌인데, 대충해서 그냥 밀어내기, 그런 식으로 작업할 생각은 없고.

 

동화책도 재밌는 얘기 하나가 구상 중이었고, 모피아 2부인 교육 마피아 얘기도 한참 구상 중이었는데, 솔로 얘기에 다 밀렸다.

 

그러나 그럴만한 얘기다.

 

서승환 선생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나는 그 양반한테 첫 경제원론을 배웠다. 그 때 편미분이니 전미분이니, 그런 것만 배운 게 아니라 경제학에 임하는 경제학자의 자세 같은 것도 같이 배웠다.

 

강사 시절에도, 작지 않은 격려를 받았다. 별 거 아니더라도, 그 시절에는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평생 잊지 못할 격려가 된다.

 

하여간 지금 그 양반이 국토부 장관인데,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이 양반이 너무 편안하게 살았던 거라자기 손으로 부동산 거래라도 한 번 해봤을까 싶은. 현실과 이념의 차이, 그런 걸 너무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여간 그 건으로 나도 좀 느낀 바가 있어서, 현실성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해보려고 하는.

 

(생각은 그런데, 대부분의 시간은 아직 돌 지나지 않은 아기랑 놀아주고 이유식 먹이고, 똥 기저귀 갈아주는…)

 

이러 고민 하다가 가끔 TV 틀어서 NLL 얘기하는 거 보면,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짜증 팍 난다.

 

올해는 되는 일 없다. 그리고 몇 년간 역시 되는 일 없을 듯 싶다.

 

우리들의 영웅은 쓰러지거나 배신당하거나 혹은 배신하거나

 

하여간 나는 헤매는 중이다. 그리고 연전연패 중이다. 그렇지만 눈도 뜨지 않고 무작정 맞고 있는 건 아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무쟈게 맞는 중이다.

 

그렇게 눈이라도 뜨면서 맞아야, 맞아 죽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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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리그, 드디어 즐기기 시작하다

 

1.

요즘 딱 20년 된 대우 프린스 자동차를 주로 타고 다닌다. 문제가 많을 거라고는 생각을 했지만, 삼복더위에 에어컨이 이 정도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가 부딪힌 문제는 이게 구냉매라는 걸 사용하는 차라서, 요즘 사용하는 신냉매 위주의 정비소에서는 아예 처리를 할 수가 없다는 것. 진짜 고생고생해서, 구냉매라는 걸 처리할 수 있는, 정말로 서울의 끝에 있는 어떤 정비소를 찾아냈다.

 

기후변화협약 문제를 다루기 전, 몬트리올 의정서가 내가 주로 다루던 문제였다. 프레온 가스로 인한 오존층 파괴에 관한 문제였는데, 한동안 이 문제에서 내가 최전선이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죽어라고 프레온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단종시키고, 그 후에도 이 문제의 뒷처리가 미진하다고 총리한테 보고하던, 뭐 그 사안이다. 익숙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 이 문제와 내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될 줄이야, 내가 알았나? 구냉매라는 게, 쓰면 안 된다. 그러니까 생산까지 어렵도록 한 것 아니냐? 캐나다 북쪽에서 처음 관찰된 오존층의 구멍, 그건 정말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면 지금은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절대 아니다. 그냥 뭔가 하는 척만 했지, 실제 해법은 아직도 좀 거리가 멀다. 하여간 프레온 가스에서 뭔가 전문성을 보이면서, 내가 밥을 먹고 살게 된 바로 그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여름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냉매를 체워줄 수 있는 곳을 죽어라고 찾고 있던 거라이거 너무 미안한 문제라서, 자동차 문제에는 전문가라고 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도 못해보고.

 

그 후에도 20년 된 자동차는 연속해서 에어컨 문제를 일으켰다. 에바프레스라고 불리는, 에어컨 핵심 부품이 망가져서, 그야말로 전국의 부품상을 총 연결하다시피 해서 하여간 거의 마지막 남은 신품으로 교체를 했다. 당연, 이런 복잡한 얘기에는 이게 끝이 아니라서, 잠시 후 에어컨 벨트에 이어 몇 년 전에 교체했다는 콤프레서까지 문제를. 결국 힘들게 부품들을 구해서 다 교체했다.

 

그 사이에 서울 끝에 있는 카센터를 4번이나 갔고, 거의 폐차장 비슷한 분위기의 가계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간당간당한 핸펀 밧테리를 보면서 애묘인간이라는 카툰을 결국 끝까지 다 읽었다.

 

이 더운 여름, 왜 이렇게 쭈그리고 있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안 들면 내가 사람이겠는가? , 돈이 없어서 그렇다, 그렇게 쉽게 말하기에는 사정은 조금 더 복잡하고. 도대체 이 간단한 에어컨 장비조차 이 정도로 방치시켰던 전 주인에게 원망을 하면 내가 더 비참해 보인다. 선의로 그냥 준 사람을 조금이라도 원망하면, 그게 사람인가?

 

그렇게 결국 몇 주에 걸쳐서 하여간 형식적으로 20년 된 승용차의 에어컨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아직도 다 해결된 건 아니다. 1~2단은 부품 문제로 안 나오고 3단부터 나오는데, 부품 구하려면 폐차장에 가서 이제는 나오지 않는 저항을 구해야 한다는오매,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는 못하겠다. 어쨌든 문제는 풀었다.

 

그러나오늘 오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유아들에게 장난감 빌려주는 시청 뒤의 장난감 도서관에 아내와 아직 돌이 안된 아기랑 같이 갔는데, 차가 덥다고 뒷자리에 앉은 아내와 아기는 결국 쭉 뻗었다. 어쩌란 말이냐!

 

에어컨 성능이 워낙 낮고, 차는 검은색, 복사열은 있는 대로 다 받아들인다, 뭐 그거 외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결론.

 

하여간 아기가 덥다고 뒷좌석에서 쭉 퍼져있는 걸 보면서도,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내가 진짜로 3부 리그에 있구나, 그런 생각이 머리를 띠옹.

 

돈이 없어서 20년된 구형 자동차를 타면서 에어컨 고치러 카센터를 들락날락하는 상황, 이 정도면 3부 리그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2.

처음 낸 책이 1쇄 터는데 3년인가 걸렸던 것 같다.

 

나도 잘 아는 게, 사람들이 내 책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보는, 그런 일은 절대 없고, 뭔가 잘 맞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아니다 싶으면 그냥 처 박는. 그래도 데뷔했던 책부터 지금까지 1쇄를 못 터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여간 그런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 덧붙여, 나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하던 일을 접어야 하는.

 

곰곰이 생각했는데

 

, 내가 지금 3부 리그에 있구나그런 걸 느끼게 하는 계기가.

 

3부 리그면 3부 리그답게, 용돈도 줄이고, 생활비도 줄이고, 하던 일의 규모도 줄이고.

 

, 줄였다.

 

그리고 별 돈 들지 않는 허장성세 같은 일들도 줄이고.

 

20년 만인가? 드디어 앰프와 스피커 없는 삶을 꾸렸다. 턴테이블은 벽 한 구석으로 밀렸고, 지금 CD TV에 물려서 듣는다. 그리고 나는 아예 음악을 듣지 않는다.

 

하여간 박근혜를 지지한 사람들이 삶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이 시기, 최대한 줄이고, 아무런 소비도 하지 않는 것, 그게 그나마 정신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것 아닌가?

 

3부 리그, 그 단어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3.

솔로 현상이라는 주제를 가진 책을 하나 준비하는 중이다. 일정이 잡히면 보통 일정대로 달리는 편인데, 처음으로 내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내 이해도의 문제로, 속도를 줄였다.

 

‘88만원 세대를 비롯해서 지금까지 나온 책들은 대부분 2002~2003년도에 했던 생각이나, 그 때 알고 있던 것들을 중심으로 기획된 것들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아주 시간이 지나서 써낸 것, 그게 내 책이다.

 

솔로 현상을 접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아직 결론도 잘 모르고, 중요한 내용들도 잘 모른다.

 

석사 시절이나 박사 시절,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공부하고 그렇게 논문을 썼었다. 책을 쓸 때는, 그렇게 못했다. 이미 아는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그런 고민만 했다.

 

경제 대장정 시리즈가 다 그랬고, 그 중의 1편이었던 88만원 세대 때는 더 그랬다. 결론의 톤, 이런 것에 대해서만 죽어라고 고민을 했다. 그리고 제목에 대해서

 

솔로 현상은, 만약 이게 책으로 나오면, 내가 낸 책 중에서 처음으로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집필 과정에서 정말로 뭔가 새롭게 공부해야만 했던, 그런 책이 될 것이다.

 

그걸 뒤집으면역시 내가 3부 리그에 있는 것 맞다.

 

모르는 얘기를 왜 하고, 모르는 얘기를 왜 쓰려고 해… 3부 리그니까.

 

그렇지만 정말로 결론도 모르겠고, 솔로로 살아간다는 것, 이게 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맬더스가 했던 얘기는, 그러다가 전쟁 난다, 그런 얘기다. 맑스는 그런 식이면 혁명 난다고 얘기했고, 아담 스미스나 케인즈는 알도 못했던 현상이다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생태학자가 한 분 계시다. 그 양반이 대충 한 얘기를 거칠게 내 식으로 정리해보면

 

여자들이 결혼해서 아기 날 생각은 안 하고, 대학원에만 자꾸 오려고 하니, 나라 망하겠다

 

, 원래 표현은 큰 일이야, 큰 일, 그런 감탄사 연발이지만, 모아보면 이 얘기다.

 

그게 한국 1부리그에 있는 남자들이 하는 얘기라고 보아도 좋을 성 싶다.

 

표현의 강도만 조금씩 다르지, 뉘앙스 차이도 없이 완전히 똑 같은, 같은 표현들이 대부분이다.

 

3부리그에서 계속해서 선수 생활을 할지 말지 갈팡질팡하는 내가 풀어볼 수 있는 질문이 애당초 아니다.

 

나도 결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책 작업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로,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내가 3부 리그 아니겠나?

 

잡기 어려운 볼은 잡지 않고, 치기 어려운 볼은 치지 않고

 

형식적으로는 1부 리그이지만 영원히 우리 마음의 번외 리그에 있는 삼미 슈퍼스타즈나는 거기보다 한 두칸 더 낮추어야 하는 3부 리그 아닌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할 수 없더라도.

 

솔로 현상에 대한 분석이 나한테는 그런 것이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지식으로 해석하기에는 너무 크고 어려운 현상이다.

 

잡을 수도 없고, 칠 수도 없지만,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그리하여 이제 나는 정말로 3부 리그를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돈만 안 쓰면, 생각보다 오래 3부 리그에서 버틸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당분간은 더 게임을 뛰고는 싶어졌다. 뭘 해도 잘 안 되는 3부 리그, 잘 할려고 할수록 더 잘 안 되는 3부 리그, 이제 그냥 3부 리그 게임을 즐기려고 한다.

 

차 에어컨만 잘 나와도 좋겠건만, 그나마도 잘 안 되는 나는야 3부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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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계급의 경제학, 작업 재시작 준비

 

아기가 태어나면서, 나도 내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하여간 이것저것 복잡한 일들이 지난하게 있었는데, 좀 더 차분하게 앉아있을 수 있게, 내 주변 일들을 정리하는 중이다. 자잘한 일이라는 게, 정리해도 금방 와서 얹히고, 또 정리해도 얹히고. 혼자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대선이 끝나고 여기저기 부탁 오는 걸 너무 많이 받아서, 기고문이 금새 너무 많아졌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방송도 많아지고.

 

, 하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줄기를 못 잡고 있다 보니, 그냥 반년이 쏜살 같이 지나간 듯 싶다.

 

뭔가 정신 없고 늘 피곤하고 그랬는데, 막상 돌아서서 보면 한 건 아무 것도 없고.

 

그야말로 위기의 중년이다.

 

그렇다고 또 마냥 늘어져서, 어 분위기 안 좋다, 그러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으면 딱히 하고 싶은 것도, 그렇다고 엄청 뭔가 잘 되는 것도, 그런 것도 없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벙벙한 시간들이 오면 워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거 하고는 했는데, 이 나이에 또 그러고 있을 수는 없고.

 

하여, 벌써 몇 년째 붙잡고 있는 한울 원고를 다시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그냥 대학생용 경제학 교과서 혹은 입문서 정도로 편하게 경제학 정리해달라고 부탁받은 거였다.

 

그렇다고 이 와중에 입문서 붙잡고 시간을 보낼 수는 없고.

 

6개월간 이걸 뒤집고, 다시 엎고, 또 뒤집고, 또 엎고, 그러다 보니 내용은 아직 다 정리가 안되었는데, 제목은 솔로 계급의 경제학이라고 붙은 걸로 바뀌었다.

 

아마, 이 제목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대책은 없어도, 뭔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제목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솔로 현상에 대해서, 예전에는 그렇게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게 어찌 보면 엄청 심각한 일이고, 또 어떻게 보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다. Fundamental한 변화냐고 질문하면, 진짜로 자본주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아주 깊은 파동의 일이기도 하다.

 

그걸 간단하게, 요래요래, 조래조래, 그렇게 다루면 안될 것 같아서

 

일단 프롤로그만 남겨놓고, 목차를 전면 재수정하기로 하였다.

 

젠더 문제, 생태 문제, 여기에 임금 체계의 기본까지, 내가 하고 싶던 얘기의 거의 대부분이 솔로 현상으로 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길게 보면, 기본소득에 관한 얘기와 최저임금에 관한 얘기를 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도 있는.

 

애인 있으세요, 결혼하실 생각은?

 

요 간단한 질문 하나가 꽤 멀리 길을 돌아오게는 하였지만, 어쩌면 내가 가고자 하는 긍국의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꽝!

 

하여 일단 쉬면서, 다시 한 번 생각들을 정리해보는 중이다.

 

지금 대학생 중에 우리가 핵가족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가정을 이루어, 엄마, 아빠, 아기로 구성된 그 삶을 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외국의 추세들과 비교하고 한국의 속도를 감안하면 1/3이나 될까 싶다.

 

결혼이 붕괴하는 속도에 비하면 동거로 전환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여기에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저항이 아주 강렬하다. 일부는 자본주의 일반에 관한 특성, 일부는 그야말로 한국적 특성, 그런 게 결합되면서 아주 진귀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이번에는 톤앤매너에서, 바로 그 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는 중이다.

 

증오에 대한 얘기로 책을 마무리짓고 싶지는 않다. 여성은 남성을 증오하고, 남성은 더 큰 힘으로 여성을 증오하고. 이런 건 아닌 듯싶다. 증오가 유머라고 생각하는 일베식 유머는 이미 볼만큼 보지 않았는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8월부터는 좀 더 속도를 내보려고 한다.

 

경향신문에 연재하는 건 8월 말이나 되어야 끝나고, ytn 라디오는 9월까지 가야 끝날 듯 싶다. 그러니까 내가 좀 더 편안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을 통으로 확보하는 것은 가을이나 되어야?

 

솔로 연구에서 한 가지 좋은 것은, 연구 대상자를 찾아 다니는 시간을 현저히 줄여줄 수 있다는 것.

 

내 주변에 솔로들은 넘치고 넘친다. 부유한 솔로, 그런대로 먹고 살만한 솔로, 전혀 먹고 살만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헉헉대면서 살아가는 솔로

 

진짜로 솔로가 풍작이기는 하지만, 솔로 전성시대가 올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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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히로시마로 여행을 간다.

 

몇 개의 테마가 있는데, 요번에는 세토 내해라는 테마가 하나 늘었다.

 

 

내해에 처음 온 건 아니지만, 쿠레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사진은 처음 찍었다.

 

쿠레,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했던 도시이다. 이제는 일본 조선의 몰락과 함께 죽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지방 도시가 나중에 이렇게 될 듯 싶다.

 

 

 

토건 일본의 흔적. 진짜로 보면 정말로 을씨년스럽다.

 

 

 

쿠레 조선소 글자가 선명하다. 일본이 전쟁을 뒤집기 위해 마지막 카드로 만들었던 전함 야마토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믿기기 어렵다.

 

 

 

말로만 듣던 결혼활동, 그 혼활을 실제 본 것은 처음이다.

 

대학원에서 혼활로 논문 쓰는 학생들 지도해본 적은 있지만, 막상 보니, 아 이런 게 혼활이군!

 

마침 '솔로 계급의 경제학'을 한참 준비하던 중이라, 더욱 더 느낌이.

 

 

마침 위안부 할머니 집회가 히로시마에 있어서 찌라씨 한 장.

 

 

 

간만에 와 본 원폭돔.

 

지진 진단으로 한참 공사 중이었다.

 

볼 때마다 많은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몇 번이나 이곳을 왔지만, 폭심지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고 그냥 스쳐지나갔었었다.

 

요즘은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르는, 원폭이 600미터 상공에서 폭발한 바로 그 지점.

 

원래는 이 옆의 T자형 다리 위에 떨어뜨릴려고 했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약간 옆으로.

 

 

 

그라운드 제로가 있는 곳은 이제는 병원 건물이 들어서 있다.

 

다음 여행은 오사카와 고베를 방문하기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요금씩 새로운 얘기들을 모아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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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따뜻한 성장, 새로운 출발

 

‘’신신좌파의 경제학에서 출발했던 책은 진짜 길고 긴 우여곡절을 거쳐 박근혜 쪽 언어인 따뜻한 성장으로 다시 제목이 잡혔다.

 

몇 번 출발을 해봤는데, 그닥 맘에 드는 출발이 나오지 않아서, 갈아엎고, 다시 갈아엎고, 그러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고 간 생각이, ‘동물들의 따뜻한 성장’… 물론 이 제목으로 끝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세습 문제가 갑자기 뇌리를 스치고 갔다.

 

80년대에는 천민 자본주의라는 말을 한국 자본주의를 지칭하기 위해서 종종 사용되었던 것 같다. 박정희 그리고 전또깡으로 상징되는 군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한국은 천민이라는 비유로 참 잘 들어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참 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은 졸부라는 시기를 지나, 이제 점점 더 부자들의 사회가 되었다. 천민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덩치가 커져버린 것일까?

 

하여간 외국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이 한국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뭔지 모르고 핀트가 맞기 않고, 뭔지 모르게 어색하다.

 

그 특이성 중의 하나가, 세습 문제 아닐까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경제 제도 대부분은 삼성의 다음 사업과 중점 사업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삼성이 진짜 관심을 갖는 건 3대 세습 아니야?

 

그렇게 돌아보면 한국의 대부분의 주요 경제기관이나 기구는 세습권에 들어가 있다. 언론이 그렇고, 교회도 그렇다. 교육기관 역시 종종 세습 대상이고.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2대 세습은 양반이고, 지금 대부분의 기관은 3대 세습 문제에 봉착해있다. 정치도 어느덧 세습의 나라.

 

오히려 동물들에게는 좀 미안할지 몰라도, ‘경제적 인간 homo-oeconomicus로 설명하기 보다는 ‘economic animal’, 경제적 동물들의 행위로 설명하는 게 조금 더 타당해 보인다.

 

그런 동물들이 따뜻한 성장을 말하기 시작한다이게 도대체 뭘까?

 

하여간 이런 고민 위에 내가 아는 경제학 지식들을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시 주위를 돌아보니, 그야말로 동물들의 왕국이다. 안철수가 삼성은 동물원이라고 했다는 말이, 문득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가 말했던 동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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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성장’, 쓰기 시작하다

 

소설 모피아원고가 내 손에서 떠나간 게 지난 9월이었나, 그랬다. 그 사이에 아이가 집에 오고, 대선이 끝나고, 고양이들 이사가 끝나고하여간 여덟 달 만에 다시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 중간에 잠깐 잠깐의 작업은 했지만, 길게 앉아서 책 작업은 하지 못했다. 아기 돌보면서 뭔가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8월이면 아내가 복직을 한다. 원래는 그냥 내가 앉아서 아기를 보는 게 계획이었는데, 아침방송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영 마땅치가 않다. 어쨌든 그건 그 때 가서, 고민하고하여간 시간은 계속 없는데, 잠깐 여유가 생긴 틈을 타서 밀린 일들을 좀 처리하려고 한다.

 

처음의 생각으로는, ‘시민의 경제에 대한 얘기를 한 번 정리하고, 그 다음에는 좌파 경제를 한 번 정리하려고 했었다. 시민의 경제는 작년에 나갔고그러나 그 다음 얘기는 정리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오래 전에 조희연 선생 부탁으로, 대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경제학 책 하나를 쓰기로 했는데, 이게 영 시점도 마땅치 않고, 무엇보다도 세울 지지대가 어정쩡해서, 몇 번이나 책 완성단계까지 갔다가 못 낸 게 있다. , 그냥 몇 페이지 더 채워놓고, 마감 땡, 이러면 되는 상황까지 몇 번 갔는데, 영 논리가 한 바퀴 돌지를 않는 거라.

 

‘88만원 세대때도 그랬고, 하여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은, 기획도 어렵고, 마감도 어렵다. 실무에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농부들 다음으로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대학생이니, 어떻게 맞춰도 구성이 어렵다. 물론 그냥 자기계발서 비슷한 것은 이 집단도 책을 읽기는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건영 구성하기가 어렵다.

 

하여간 4번 정도 책을 썼다가 다 털고 새로 쓰는 작업이, 이 책은 몇 번씩 진행 중이다. 마지막 버전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따뜻한 성장을 놓고 끝까지 고민을 하다가, 지난 주에 결국 따뜻한 성장쪽을 택했다.

 

모피브야 너무 뻔한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박근혜 용어다. 그냥 그 사람들이 거의 음가 없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미지도 불투명하지만, 내용은 더더군다나 없다.

 

그걸, 내 식으로, 경제학에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내용들을 담는 틀로 사용하려고 한다.

 

꼭 대학생들만을 염두에 두는 건 아니다. 나도 어깨에 힘 빼고 쓸 것이지만, 정말로 경제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 한국 경제라는 문제에 들어왔을 때, 앞에는 무슨 얘기가 있었고, 뭐가 과연 짚어봐야 하는 것인가, 그런 데 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짚어볼 생각이다.

 

지난 대선 끝나고 나도 작은 걸 결심한 게 있다.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만다

 

대충 모양내기와 폼새로 하는 건, 아예 하지 않고, 하던 거라도 그냥 때우는 거면 세운다그리고 기왕 할 거면, 정말로 최선을 다 해서 한다

 

따뜻한 성장이라는 제목을 집어 들면서, 그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의 따뜻한 성장이 선의라면, 어떤 게 제대로 되는 상황이고, 뭘 짚어봐야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어차피 안 할 거잖아, 마음은 그렇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나 말고라도 정치평론가 등 할 사람은 수없이 많다. 박근혜를 믿느냐? 물론 안 믿지. 그렇지만 내용 자체와 믿음 혹은 신뢰와 같은 얘기를 뒤섞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보고, 작업에서 별 성과가 없으면? 그럼 그 때 다시 갈아엎어도 늦지 않는다.

 

과연 우리의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을 나도 진지하게 던져보려고 한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싶은데, 청자는 대학교 1학년, 국문과, 여학생, 그렇게 잡았다. 내 책에는 청자가 있는 경우가 있고, 없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있다. 그리고 청자가 있는 경우, 실제 대상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2 혹은 고3 여학생인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가상의 청자이다. 내가 알던 그 또래의 여학생들은 이미 나이가 많아져서, 대학을 졸업하거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몇 주 전에 대학교 1학년, 새내기들을 잠시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잠깐 봐서는 무슨 생각 하는지,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가상의 청자를 설정하면, 글을 써내려갈 때 좀 도움이 된다.

 

원래 부탁 받은 건, 운동권 후배들의 입문서 같은 걸로 해달라는 거였는데, , 그닥

 

서로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답답함을 가지고 책을 쓸 이유도 없고, 그렇게 읽을 이유도 없다.

 

하여간 여덟 달 만에 책 작업 다시 시작한다. 대선 끝나고 다시는 책 작업을 안하고 싶었는데, 또 시간이 되니, 다시 시작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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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고양이 생협의 죽음은 참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아마 평생 가슴에 남아서, 내 안에서 같이 살아갈 것 같다.

 

마당 고양이들을 돌보는 것은 의도하거나 기획하지 않은 삶이었다. 세상에,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그런 걸 한 번쯤 생각해보는 순간이었다.

 

작년 봄에 4마리의 고양이가 마당에서 태어났었는데, 그 중에 두 마리는 일찍 죽고, 두 마리가 살아남았다. 각각 강북과 생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사오면서 같이 데리고 오려고 생각했었는데, 처음 영하로 내려가던 날, 생협은 고양이별로 떠나갔다. 특별히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강북과 생협이라는 제목 정도로 고양이들 얘기와 내가 생각하는 가치들을 섞어서 포토 에세이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협이 떠나간 뒤의 얘기들 일부를 합쳐서 아날로그 사랑법이라는 책이 되었다. 아주 즐겁거나, 아주 슬프거나, 그런 감정은 아니다. 삶이라는 것은 때때로 격렬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밋밋하다. 그 밋밋함 속에서 무엇인가 그리워하고, 또 몸이 힘들어도 무엇인가를 돌보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돌봄이란, 소유하지 않는 사랑그런 한 문장을 고양이들과 지내면서 배운 것 같다.

 

누가 누구를 돌보던 것인지,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다. 명박 시대, 어쩌면 고양이들과 웃고 놀면서 때때로 가슴 아파하던 그 순간도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기계적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증오와 기계적 삶을 사람의 삶으로 만들어준 것은, 어쩌면 그냥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버티던 마당 고양이들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상 나는 그들을 돌봐준다고 생각을 했지만, 결국 누가 누구를 돌본 건지, 그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에세이집이 나오게 되었다. 대선 이후, 황망하던 그 겨울을 지내면서 벌어진 얘기들이 혼자 돌아보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원래에는 고양이 생태학에 관한 조금 더 무거운 얘기들을 많이 쓰려고 했었는데, 명박 시대를 보내고, 그리고 다시 박근혜의 시대를 맞으며, 나도 사람인지라처음에 의도했던 길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글들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왜 우리는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가?”

 

늘 내가 TV를 보던 마루 창문 바로 앞에서 생협의 얼어 죽은 시체를 찾았다. 그 때, 녀석을 처음으로 안았다. 참 많이 울었다. 왜 우리는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 생각을 그 때 했다.

 

묵직한 고양이 시체를 가슴에 안아 들고, 한참 울고 나서, 내가 좀 변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박근혜 5, 꼬질꼬질하게 이 땅에서 사람들과 그냥 볼 꼴, 못 볼 꼴 보면서 부대끼면서 살겠다는 것만 정했고, 아직도 뭘 어떻게 하면서 그 시간을 보내야 할지, 정말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일단, 하게 되는 일을 조금씩 하면서, 그냥 꼬질꼬질한 삶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 삶을 고통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어쩌면 바보 삼촌에게 많이 배운 건지도 모르겠다. 삶이라는 게 뭐 그리 복잡한 게 있겠느냐?

 

다음 에세이집 테마도 아직 못 정했다. 내 삶에 결정된 것은 거의 없다. 그래도 그냥 담담하게 시간과 삶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우린 모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들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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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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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를 사는 법

 

작년 2월에 쓰기로 하고 아직도 출간을 못한 책이 하나 있다. 조희연 선생 부탁으로, 대학생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 정도의, 가벼운 접근이다. 특별히 부담 가지지 않고 그냥 아는 얘기 쓰면 그만 아니냐는 정도로 시작된 건데, 그게 그럴 수가 없다. 헤드에 해당하는, 전체 얘기를 묶을 입구가 필요한데, 이게 계속해서 문제였다.

 

신좌파에서 신신좌파, 대선에 이긴다는 전제로 주체를 중심으로 얘기를 모았었다. 물론 여기에도 세계 경제가 바로 경색 국면으로 갈 거냐, 아니면 조금씩 버티면서 조정 국면으로 갈 거냐, 여기에 따라서 서로 다른 두 개의 버전이 있었다.

 

그리고 대선에 졌다. 미안한 얘기지만, 좌파로는 지금 경제 얘기를 내 실력으로는 정리하기 어렵다. 이기거나 지거나,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냐, 그 말이 옳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든, ‘내 얘기는 늘 옳다’, 그렇게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의 희망은, 이번 대선에서 시민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집단이 집권하고, 다음 정권은 이제야말로 좌파그런 꿈을 가졌드랬다. 40대 중반의 내가 꿀 수 있는 가장 큰 꿈이었다.

 

그렇지만 졌다.

 

잘 해보고 싶었다, 그런 무기력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어쩌겠는가.

 

세상이 원래 이렇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박근혜가 이길 줄 알았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현실적으로 내용은 정리해야 하니까, 좌파 혹은 신신좌파라는 키워드를 책에서는 일단 drop… 아쉽지만 그 제목은 다음 기회로.

 

그리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제목으로 한참을 더 고민을 했다. 사무엘 브리튼이라는 사람이 95년에 이미 책 제목으로 쓴 적이 있다. 참 구하기 힘든 책이었는데, 결국 구했다. 같은 제목으로 쓸까, 약간의 변형을 시킬까, 그런 고민을 했다. 이미 내 책에서 몇 번 쓴 적이 있는 표현이고, 내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가장 소극적인 형태로 표현하면 이 정도 된다.

 

그러다 최근, 어차피 박근혜 시대에 정공법으로 갈 거면, 아예 그들의 언어와 문법을 쓰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성장’, 그들이 요즘 즐겨 쓰는 용어이다. 물론 어감만 있고, 용어 정의는 없다. 그리고 내용도 없다. 그렇지만 많이 쓰는 용어이다. 창조 경제는, 그래도 내용은 있다. 설령 근혜네들이 이해는 못하더라도, 그 용어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따뜻한 성장, 그 자체로 아무 내용도 없다. 그야말로 이미지와 뉘앙스만 가진 용어이다.

 

,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런 이미지 전략에 늘 졌다.

 

난 성장주의자는 아니다. 성장 보다는 성장 패턴에 대한 얘기를 주로 했다.

 

어쨌든 대학생들의 경제 입문서에 해당하는 책을, ‘띠뜻한 성장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할까, 요즘 그러는 중이다. 내용은 벌써 4번 가까이 썼다 엎었다, 뭘 정리해야 할지는, 어느 정도는 정리되어 있다.

 

박근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른 사람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난감하다.

 

하던 얘기를 계속하는 것, 복지라는 용어를 들을 때 느끼는 답답함이 있다. 결국 박근혜는 복지를 안 할 거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복지를 얘기하면 결국에는 이긴다

 

요 정도인데

 

,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작년까지 하던 얘기를 기계적으로 혹은 더 쎄게 반복하는 것,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내 생각에는, 그건 세 번 지는 가장 정확하고 정직한 방법인 듯싶다.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부동산종합대책에서 가장 눈에 가는 대책은 1) 수직증축, 2) 보금자리 주택 폐지, 이 두 가지이다.

 

이거, 양아치들이다.

 

수직증축은 명박도, 너무 이상하다고 안된다고 했던 정책이다. 그들의 수준을 가름하는 첫 번째 기준이다. 보금자리 주택은, 격론이 있을 수 있다. 나도 그냥 찬성하지는 않았던 제도이다. 그러나 민간 아파트 공급자들이 아파트 분양가를 올릴 수 있게 보금자리 주택부터 없애는 것, 그건 정말 이상한 이유이고, 이상한 논리이다.

 

그럼 뭐하냐. 이런 거 이상하다고 말하는 나만 이상해지는 시기인데 말이다.

 

약간 좀 괴상한 방식으로, 다시 한 번 나는 마이너의 마이너가 되었다. 민주당은 여기에, 콜 그리고 6억 더, 양도세 면제 기준을 대폭 완화시켜 주었다.

 

의원님, 나이스 샷!

 

박근혜는 명박 보다 더 이상하게 삽질하고, 민주당은 희한한 각도로, “나는 중도다”, 그런 이상한 일을 할 5년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어차피 아무 일도 없다.

 

그냥 박근혜의 용어를 빌려서, 그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가야 하는가, 그런 걸 이 기회를 빌어서 좀 정리해보려고 한다.

 

박근혜가 따뜻한 성장을 했나, 안했나, 이걸 나중에 알 수 있는 간단한 기준이 있다.

 

DJ, 노무현 때 최저임금이 평균 10% 정도 올랐다. 명박 때, 5% 정도 올랐다. , 박근혜는 이걸 어찌할 것이냐?

 

쉽지만 대부분의 것을 보여주는 기준이다. 말이냐, 행동이냐, 그런 걸 간단히 볼 수 있는 작업들을 좀 해보고 싶다.

 

언제 세상이 이론적인 것이나 학문적인 것으로 바뀌더냐? 박근혜를 죽어라고 지지한 그 골수지지자들을 설득하거나 이해시킬 방법은 없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해보려고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한 박근혜 시대를 사는 법이다.

Posted by ret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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