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고민을 시작하다

 

벌써 작년 2월에 나왔어야 할 책 하나가 계속해서 헤매고 있는 게 있다. 대학생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 비슷한 것인데, 일반 대학생은 아니고, 운동권 학생들에게 읽히자는 것, 그런 게 기획의도로 알고 있다.

 

적당히 대충, 빨리

 

이런 게 내가 받은 부탁의 내용인데, 몇 번 거의 탈고 직전까지 갔다가 아직도 방향을 제대로 못잡고 있다. 이유야 간단하다. 알뛰세의 책 제목으로 유명해진, 소위 position, position을 잘 못잡고 있어서 그렇다.

 

대선을 앞두고 정리하는 내용과, 대선을 이긴 이후에 정리했을 내용과, 그리고 대선을 지고 나서 정리하는 내용이 각기 다를까? 어차피 아는 게 같은 내용이니까,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 경우는 다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시민을 키워드로 정리할 것이냐, 좌파를 중심으로 정리할 것이냐, 이걸 가지고 1년 이상의 시간을 고민했던 셈이다. 그 어느 쪽이든 position이 정해지고 나면, 내가 대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어쩌면 기계적인 내용일 수도 있다.

 

처음에 시작은 좌파를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대선을 이기고 나면, 아주 솔직하게 시민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시 정리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어느 쪽이든, 최선을 다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계속해서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선에 졌다.

 

아주 냉정하게, 이 상태가 얼마나 오래갈 것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5년이 지체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솔직하게 그 이상, 그러니까 앞으로도 2번은 더 야당이 집권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그 사이에 position의 차이는 엄청나다. ,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미래는 알기 어렵다. 더더군다나 정치의 미래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 하듯이 지나면 다음 대선도 아주 어려워 보이고, 워낙 밑바닥이 붕괴된 상태라서 그 다음도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 나이도 환갑이다. 이명박부터 시작해서 20년쯤 그렇게 보낸다고 하면, 나의 40대와 50대는 그러게 가는 거다.

 

그런 고민 속에 운동권 대학생을 위한 경제학 교과서의 position이 자리를 못 잡고 헤매고 있었다.

 

, 그냥 아는 얘기, 하고 싶은 얘기를 쭉 쓰면 간단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게 position이 잡혀야 얘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게 안되면, 단 한 줄도 쓰기 어렵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제목은 그 와중에 떠오른 것이다. 내가 처음 한 얘기도 아니다. 그리고 최근에 다보스 포럼이 이 제목으로 열리기도 하였다. 원 저자는, 하여간 내가 알기로는 밀턴 프리드만의 제자였다. 1995년에 사용된 용어이다. 그 이전에도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그 때가 정말로 처음인지,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는 알아보는 중이다.

 

처음 사용된 맥락은 대처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걸로 알고 있다. 95, 여러 가지로 상상해볼 수 있는 시점이다.

 

생태주의자로서의 입장, communalism에 대해서 내가 20대에 생각했던 것 그리고 한국에서 좌파 경제학자로 움직이던 것들에 대한 생각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게 하는 제목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겨우 자본주의에 대한 얘기가 내가 대학생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경제학 얘기의 전부인가, 이건 아내를 비롯해서 내 주변 사람들이 우려와 함께 해준 얘기이다.

 

바로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솔직히는.”

 

이건 내가 그들에게 한 대답이었다.

 

제목은 조금 변주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지난 겨우내 샤르트르와 함께 실존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과 아주 상관이 없지는 않다. 교육에 대한 고민들, 그런 것들도 비슷한 맥락 속에서 진행된다.

 

어쨌든 기존에 써놓았던 원고를 다시 한 번 갈아엎고 새로운 버전으로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이상향이, 그렇게 고결하거나 높은 수준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냥, 나는 이 정도만이라도 하면 좋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박근혜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더 고결한 사회를 희망했던 것 같다.

 

그 얘기를 그냥, 이 기회를 빌어서 해보려고 한다.

 

민주당 버전의 전문가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했던 보편적 복지와 같은 몇 가지 프레임들이 있다. 나는 그것과는 좀 생각이 다르다. 그 얘기를 이번에는 좀 해보려고 한다.

 

지난 대선에는 워낙 복지 프레임이 강했다. 사적으로는 그건 좀 아닌 듯 싶다고 몇 번 얘기를 했었는데, 워낙 그런 흐름이 강해서 내가 하던 얘기는 씨알도 안 먹혔다. 그리고 나도 대선 정국이라서, 그 얘기를 강하게 하지는 않았다. , 일단 이기고 보자, 그런 생각이 나에게도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런 얘기들을 이번에는 좀 편하게 해볼까 한다.

 

여기에 미래학이라는, 아주 한참 날리던 흐름에 대한 내 생각도.

 

2013, 이 아주 독특한 시기에 대해서, 최소한 경제학적 사색 같은 것은 만들어보고 싶다는 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대학생들에게 한 가지 얘기를 남긴다면, 철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거. 철학은 누군가를 상처주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나, 누군가에게 지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스스로 생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제에 있어서도, 철학 공부는 근본적이다.

 

하여간 이런 얘기들을, 나의 학부 시절 도서관에 앉아서 처음 했던 생각부터, 최근에 가지게 된 생각들까지, 그렇게 차분하게 좀 정리를 해 볼 생각이다.

 

그래서 정말로 내가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게 달성될 수 있다고 내가 생각하고 있었는가

 

이 책의 머리에는 맑스의 포이에르 바하의 테제를 앞에 걸까, 생각 중이다.

 

, 지금까지의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려고만 했지, 바꾸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 너무 유명한 구절이다. 운동권들이야 너무 잘 알고 있는 테제라서 굳이 환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나를 위해서 그 구절을 다시 환기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3, 4,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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