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성, 새로운 책을 준비하며

 

1.

늘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 많은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 혹은 뭔가 창작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나는 일부러라도 정서적 안정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던 것 같다.

 

하여간 죽어라고 살아온 삶, 그게 아주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을 누구에게 권해줄 처지는 아니다.

 

스무 살을 넘어서면서 난 늘 불면이었고, 언제나 수면부족이었다. 감정은 과잉이었고, 날 극한까지 밀어 부쳤던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조금은 더 편하게 생각하면서 살아도 되는데, 별로 그러지를 못했다. 만약에 지난 대선, 결과가 좀 달랐다면 나는 훨씬 더 편안하게 내 삶을 즐기는 쪽으로 살았을 것 같다.

 

그런데 별로 그럴 수가 없었다.

 

2.

내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나랑 같이 일하지 않으면 금방 힘들어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계속 움직인다. 이제 좀 내려놓고 싶기는 한데, 내 주변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편해졌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하여간 당분간 움직이게는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아기 둘의 아빠가 되면서, 나도 이제 좀 이기적이 되었다.

 

몰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그리고 자빠지는 일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뭘 더 어쩌겠어, 그런 생각도 종종 한다.

 

30대 때의 나는, 무조건 될 때까지, 그런 생각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될 일은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것이고, 안될 일은 어차피 아무리 죽어라고 해도 안될 일이었다. 그 때는 그런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건강을 많이 상했다.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쉴 때 쉬고, 잘 때 잔다.

 

요 며칠, 어쩔 수 없이 잠을 제대로 못잤다.

 

두 손이 부르르 떨리고, 손가락 관절 위로 혈관도 잔뜩 부풀어올라,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핑계 대고 좀 쉬었다.

 

손 떨리는 것은 좀 가라앉았다. 그냥 이렇게 살살 살려고 한다. 조금 더 무리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살 살려고 한다.

 

3.

책은 어떻게 할까?

 

이제 그만 쓴다고 맨날 생각하면서도 이래저래, 조금 더 쓰게 된다. 내가 몇 권을 썼지?

 

책 권수를 세던 때도 분명 나에게 있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까먹었다. 모르겠다

 

책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대충 살아서 그렇다.

 

하여간 권수 같은 것은 어느새 기억 뒤편으로 넘어간지도 꽤 된다.

 

책 작업을 할 때, 꼭 필요하고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만 한다. 이 세 가지가 다 맞아서 한 경우 아니면, 꼭 후회하게 된다.

 

, 물론 어느 책이든 그런 조건이 맞는다고 생각을 해서 시작을 하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면, 결국에는 후회하게 된다.

 

3.

내 책 중에 후회를 가장 많이 준 책은 <솔로계급의 경제학>이었다. 이것은 책과는 상관없는, 애초의 기획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점을 마지막까지 극복하지 못한 경우였다.

 

그래도 마칠 수 있었던 게 기적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전혀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게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후회까지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책 작업을 하면서 재밌던 경험은, <솔로 계급의 경제학>을 제외한 나머지 최근 책들은 정말로 책 준비하고 쓰면서 그 과정을 즐겼던 책이다.

 

<솔로 계급의 경제학> 이후로, 크게 결심한 게 한 가지 있다. 적어도 책과 관련해서, 앞으로는 싫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내가 괴로워서 이제는 못하겠다.

 

4.

하여간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요즘은 좀 편안하다. 마음만 편하고 몸이 편치 못하다는 게 단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 달 전부터 생각했던 게 ‘40대 여성에 관한 책이다.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왜 이런 걸 고민하게 되었는가,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이 될 듯 싶다.

 

여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다.

 

40대 후반 여성, 내 친구들이다. 평생을 좋은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슬픈 일이든, 같이 상의하면서 살아왔던 내 친구들이 바로 40대 여성이다.

 

나에게 에세이를 써보게 하면서, 사회과학이 아닌 에세이 책을 준비하게 한 사람이, 바로 가장 오래된 나의 친구이다. 그렇게 오래된 친구가 아니라면 내가 말을 듣겠는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그렇게 말하고 나는 고분고분 듣는 여자 동기들이 있다.

 

40대 중반 여성, 긴박하게 나에게 연락하고 뭔가의 도움을 청하는 40대 여성들은 나의 후배들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본 적이 없는 나에게까지 연락을 하는 경우, 대부분 이혼을 앞두고 있거나 막 이혼을 했을 때였다. 아기는 키워야 하고, 막상 세상을 혼자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 절박한 삶의 무게감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놓고 마주하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주거나 아니면 일감이라도 찾아주어야 한다. 그 삶의 무게감, 어마어마하다.

 

얘기를 같이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엄마의 무게를 같이 져야 한다. 그게 정말로 내가 고민을 같이 한 40대 중반 여성들이다.

 

40대 초반, 나의 아내와 그들의 친구들이다. 아내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그들의 경험이 곧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5.

오랫동안, 내 주변에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많았다. 비율로 따지면 나와 같이 작업하고 일하는 사람들 중에 여성이 월등하게 많았다. 내 책의 에디터들이 대부분 여성이었다. 처음에 같이 작업할 때에는 처녀였지만, 내가 나이를 먹은 것만큼 그들도 나이를 먹어서 아기 엄마들이 되었다. 그렇게 그들도 아줌마가 되어갔다.

 

요즘 나는 아주 거친 남자들과 일상을 보내고 있다. 여의도가 그렇다. 여성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조적이거나 상징적이거나대부분은 남자들, 그것도 정치를 매개체로 하는 아주 거친 남자들이다.

 

그렇게 나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로 돌아와있다. 협상하고, 거래하고, 나눌 거 나누고, 그러면서도 서로의 자웅을 겨루고, 우리 편이냐 아니냐, 그런 걸 본능적으로 따져야 마음이 편해지는 그 남자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편과 서열, 그 간단하면서도 미묘한 남자들의 세계, 그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현대에 있던 시절, 대기업의 세계가 그랬다. 정부에서 일하던 시절, 여성들은 아주 드물었다. 그냥 남자들이 학교 따지고, 학벌 따지고, 그런 세계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리고 다시 그 세계로 돌아와있다.

 

6.

그 안에서 정말로 내가 분석해보고 싶은 얘기가 무엇일까, 지난 겨울 내내 고민을 해봤다.

 

40대 여성의 얘기, 그 삶을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나의 친구, 나의 후배, 나의 아내, 그런 좋든 싫든, 한 평생을 이미 같이 살아버린 그 사람들, 그리고 또 그들의 친구와 그들의 언니와 그들의 동생들, 그런 얘기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궁핍이 풍요를 느끼게 해준다고….

 

지금처럼 남성들 가득한 세상에서 일상을 보내다 보니, 그와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생각이 더욱 애뜻해진다.

 

그리고 뭐가 다른지, 정말로 피부 세포가 감각적으로 느낀지, 약간은 좀 알 것 같다.

 

7.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청년들에 대한 첫 분석을 시작해보던 시절이 다시 생각이 난다. 그 시절, 주변이든 출판사든, 다들 반대했다. 청년, 그거 한국에서는 인기 없는 주제 아니냐

 

난 그 시절의 청년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걸 알 필요가 뭐가 있느냐, 그리고 뻔한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런데 실제 나는 잘 모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뭘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시절 생각이 얼마 전, 여의도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그 눈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모른다는 것은, 분석의 출발점이다.

 

지금 한국의 40대 여성, 사실 잘 모르겠다.

 

8.

분석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도 필요하다. 분석 대상자에 대해서 애정이 없다면 제대로 분석이 되겠는가? 그 애정은, 차이에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남자들에 둘러 쌓여서 오랜만에 나도 순전히 남자들의 전투적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그렇지 않은 존재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애정이 생겼다.

 

막상 분석을 해보면, 무슨 결과가 나올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분석 대상에 대한 애정이 더욱 생긴다.

 

뻔한 거 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건 연구자들의 기본 욕구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9.

2015년 대한민국 40대 여성, 내가 던진 새로운 질문이다. 감각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이런 경우 남도 모르고 자신도 잘 모른다.

 

연령과 성별 그리고 시대와 같은 조건을 집어넣고 하는 분석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분석이기도 하지만이렇게 구체적 조건을 주고 나면, 전혀 생소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경험적으로는 그렇다.

 

이렇게 생소한 질문 앞에 다시 한 번 서보려고 한다.

 

그냥 내 양심이 흐르는 대로, 그렇게 가려고 한다.

 

 

'낸책, 낼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세균 평전 쓸까 싶은...  (0) 2017.02.16
시대 분류, 순실의 시대  (0) 2016.12.22
원자력 책 한 권, 내년에…  (9) 2013.10.21
솔로 경제학, 최초의 스케치  (20) 2013.09.21
솔로계급의 질문, 간단 정리  (5) 2013.08.04
Posted by retired
,